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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요한일서 5:14-21 중생한 자는 범죄치 않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중생한 자는 범죄치 않음
요한일서 5:14-21

14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 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 하느니라 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1.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얻음

본문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다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구하는 것은 100% 다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기를 힘을 써야 됩니다. 즉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욕심으로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사람의 뜻대로 구한다고 다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찾습니까? 성경에서 찾습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감동과 신앙양심으로 찾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할 때에는 얼마든지 주십니다.

본문 15절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구한 것은 다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은 반드시 주실 것이므로 이미 받은 줄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본문 16-17절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 길을 걸어가는 성도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는 중생한 신자가 짓는 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또 중생한 영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 있기 때문에 (요 5:24), 다시는 사망이 없습니다(요 11:25-26). 그러므로 옛 사람을 따라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영적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

또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이 죄는 믿지 않는 불택자의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죄 하나를 범했을지라도 그 죄 값으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세에서도 영이 죽은 자이고, 내세에서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 중에서도 언제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안 믿어도 다음에 예수님을 믿을 사람 같으면 택한 백성이며, 그때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택한 백성의 죄는 예수님께서 그 죄 값을 물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택자의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사함 받을 수가 없습니다. 즉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또한 사함 받지 못하는 죄는 성령 훼방죄와 짐짓 짓는 죄, 그리고 불택자의 죄로 죽을 때까지 예수 믿지 않는 죄입니다. 이러한 죄는 사함 받지 못합니다. 성령 훼방 죄는 성령의 역사인 줄을 중심으로 알면서도 죽을 때까지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데, 죽을 때까지 성령을 반대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입니다. 또 짐짓 짓는 죄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6-27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라고 하였습니다. 짐짓 짓는 죄도 성령의 역사인 줄 알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 고의적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항하는 죄입니다. 성령 훼방 죄나 사망에 이르는 죄나 짐짓 짓는 죄는 다 같은 것입니다.

성도가 짓는 죄에 대해서

하여간 죽을 때까지 믿지 않으면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아무리 성령의 역사를 반대 하다가도 회개하고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즉 누구든지 회개하고 믿는 사람은 전부 다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중생한 성도가 짓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짓는 죄는 이미 예수님이 죄 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지옥 가는 죄는 아닙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짓는 죄도 죄는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 값을 다 물어 주신 죄이기 때문에 지옥에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값을 다 물어 주셨지만, 죄이기는 하므로 하나님께서 회개 시키게 하시려고 물질문제, 자녀문제, 여러 육신의 문제 등으로 징계 하십니다. 그런데 징계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쫄딱 망하게 만드십니다. 마지막에는 죽는데 이르게 하십니다. 그래도 택한 백성이므로 불 가운데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일이 없도록 삼가 조심하며, 생명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3.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치 않음

본문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 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중생한 자를 가리킵니다. 중생한 자라는 의미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자, 즉 거듭 난 자입니다. 거듭 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 난 것입니다. 또한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라고 하였는데,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라는 뜻은 성령께서 성도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4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신 자 곧 성령께서 지키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감히 만지지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 확실히 나타나 있습니다. 범죄치 않는다고 했으면 범죄치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되겠는데, 간혹 범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이 범죄치 않는다”라는 것을 “습관적이고 상습적으로 범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혹시 실수로 범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처럼 범죄치 않는다고 확실히 나와 있는데 이것을바꾸어 해석한 것은 진리에 바로 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범죄 하는 것은 뭐가 범죄 하는 것일까요? 믿는 사람은 중생한 영과 육신의 부패성이 있는데 육신의 부패성이 범죄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육신의 부패성, 곧 옛사람이 범죄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새사람이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만 좋아하고 하나님 말씀만 좋아합니다. 또한 중생한 영은 죄를 절대 반대 합니다.
따라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자기 속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선을 행하려 하고, 옛 사람은 죄를 지으려 하여 서로 싸우다가 옛사람대로 살면 죄를 짓고 새 사람대로 살면 의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 속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범죄 하는 것은 옛 사람이고 이것을 따라가면 범죄 하는 길입니다. 의를 행하는 것은 새 사람이고 중생한 영혼을 따라가면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확실한 말씀입니까?

또한 중생한 영혼은 악한 마귀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한 성구만 믿어도 아주 참 좋습니다.
전에 명륜교회에 강희숙 권찰이라고 있었는데 삼선교에 살았습니다. 나이가 한 삼사십쯤 되었는데 혼자서 새벽예배에 나오는 젊은 여자였습니다. 삼선동에서 명륜동으로 오려면 동소문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그런데 혜화동 로타리쯤 오다보니 어떤 남자 한 명이 따라오더랍니다. 그래서 빨리 걸었더니 또 빨리 따라오더랍니다. 거의 다 따라 잡힐 만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난 자 마다 범죄 치 아니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 도 못하느니라” 하고 이 성경말씀을 갔다 댔다고 합니다. “악한 자가 감히 만지지도 못하는 데 어딜 따라오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남자가 ‘이 여자는 예수쟁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예수 골수분자(骨髓分子)를 ‘괜히 붙잡았다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고 달아난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잡힙니다. 그러니까 성경말씀으로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이 한 구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생활

본문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고,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라갑니다. 세상은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내려갑니다. 성도는 올라가고 세상은 내려가니까 서로 마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과 핍박이 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그래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따라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온 세상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다 마귀에게 속한 줄 알아야합니다. 불신자속에 역사하는 공중에 권세 잡은 자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2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즉 말하자면 불신자 안에서 역사하는 영은 공중 권세 잡은 마귀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도 불순종 하게 되면 마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인데 반해 불순종 속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지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한 불신자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불신자는 악한 자에게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지 불신자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추석을 지키려고 무덤에 가서 절하거나 제사 드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성도는 제사 안 지내고, 차례도 안 지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차례를 지낼 때 조상이 와서 먹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귀신 섬기는 것이고 마귀 섬기는 것입니다.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도 마귀에게 하는 것입니다. 조상은 벌써 세상 떠나서 천당을 가거나 지옥을 갔지, 거기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육신은 곧 장막 집이라 했는데, 죽은 사람을 묻어 놓고 그 앞에 절하고, 입었던 의복 앞에 절하는 것은 모두 우상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절을 하거나 제사 음식 먹는 것 모두 안 됩니다. 온 세상이 마귀에게 속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도 무덤에 가서 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귀 섬기는 것인지 모르고 하나님께 죄 짓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묘지가 일산에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장례 지내러 갔었는데, 열두 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무덤 곁에 서서 찬송을 한참동안 불렀습니다. 인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전도부인 같았습니다.
한참 인도 하더니 그 다음에는 “절해라, 절해라” 하니까 전부 다 넙적 엎드려서 절을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지 말든지 절을 하지 말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마귀 섬기려면 뭐하려고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르고 짓는 죄도 죄입니다. 양잿물을 모르고 먹어도 죽습니다. 모르고 지어도 죄이고, 죄 값은 반드시 사망입니다. 모른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은 자기가 배우지 못해서 모르는 것이고, 또 성경을 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죄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제대로 알아서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영적 지각 있는 생활

본문 20절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에게 영적 지각을 주었습니다. 참된 자는 하나님이신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또한 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 있게 됨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우상을 멀리하는 생활

본문 21절에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우상 섬기는 것이 큰 죄이므로 우상에서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 하라”는 것은 자신이 우상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귀히 여기는 것이 우상인데 자기가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또한 자기 남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남편이 우상이고,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아내가 우상이고,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녀가 우상이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항상 우상에서 멀리 떠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에스겔 14:2-4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과 자기 생각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생활을 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요한일서 5:4-13 믿는 자의 증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믿는 자의 증거
요한일서 5:4-13

4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6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7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8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9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10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 세상을 이길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사도가 됨

본문 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것은 중생했다는 뜻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혼이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로 살아나는 것이 중생입니다. 중생한 영, 즉 산 영혼이 있는 사람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했는데,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것을 다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33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예수님께서 다 이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세상을 다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산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주님이 주시는 능력, 주님이 주시는 생명력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음

성령과 물과 피가 하나임

본문 5-7절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피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26-27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1:22에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깨끗해졌다고 했는데, 진리는 말씀이므로, 말씀을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은 말씀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성취하셨고, 또 속죄의 피를 흘려주셨다는 뜻입니다. 물과 피로서 우리 구속을 완성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의 세계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본문 7절에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진리이고 또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물과 피와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일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다”라는 것입니다. 
셋이 합하여 하나라는 것은 말씀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피를 증거하지 않습니까? 그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갈라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말씀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 가운데 말씀이 있고, 그리고 성령께서 증거하십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증거하시고, 말씀을 우리에게 증거하십니다.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성령 이 셋이 언제나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셋이 언제나 있어야 됩니다. 말씀이 있어야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되고, 또 성령의 감동이 언제나 있어야 됩니다. 피를 믿고 구속에 감격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대로 성령으로 그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됩니다. 그래서 셋이 합하여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또 무엇이 하나입니까? 말씀, 피, 성령 셋이 합하여서 구원의 도리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이 구원의 도리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 구원의 도리를 믿는 믿음이 하나요 생명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의와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시고 우리 영을 살려 주시고 의를 입혀 주시고 성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점 정결케 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혀 나가십니다. 이 셋이 합하여 우리의 구원 하나를 이루어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힘써 믿음을 지키고 말씀을 순종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증거가 있음

본문 9절에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본문 10절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라고 했는데, 믿는 사람은 자기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 또 인도해주시는 증거, 하나님이 생명이 되어주신 증거, 또 성령께서 감동시켜주시는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감사하는 증거 등 증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감격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또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는 증거,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송이 보다도 단 증거, 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는 증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은혜 받은 증거와 같이 믿는 사람에게는 은혜 받은 증거가 다 있습니다. 세례문답 할 때에, “믿기 전보다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라고 보통 물어보는데, 믿기 전과 달라진 것이 있어야 됩니다. 안에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고”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어떤 분은 “마음이 평안하다. 또 즐겁다. 믿기 전보다 걱정이 없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증거가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다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을 믿고, 인도해주시는 것을 믿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걸 믿고, 그런 것들이 다 증거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감동을 받는데, 그것이 증거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은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또 말씀을 지키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증거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증거가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시는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감격하는, 감사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증거가 없이는 안 됩니다.

죽은 신앙은 증거가 없습니다. 증거가 있다가도 믿음이 죽으면 맹맹해집니다. 그러나 산 믿음 가진 사람은 늘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고 하나님만 섬기려고 하고 늘 증거가 있습니다. 안 믿으려고 해도 안 믿을 수 없습니다. 기도 안 하려고 해도, 기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려고 해도 찾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능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겁니다. 증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증거가 있음

또 세상을 이긴 증거가 있습니까? 믿음으로 나올 때에 세상을 이긴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가 있습니다. 보호해 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는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는 순종해야 나타납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증거가 있지,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증거가 없습니다.

받는 자밖에는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받는 자밖에는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2:17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에게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만 압니다. 꿀 먹은 사람에게 증거가 있죠? 그것을 그 옆에 사람이 압니까? 그것은 모릅니다. 옆에 사람이 아무리 가까이 가도 모릅니다. 먹은 사람만 압니다. 그와 같이 믿는 사람에게는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영생이 있는 것이 증거임

본문 11절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증거합니까?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 증거라는 것입니다. 또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고”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 1:4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영원히 삽니다. 본문 11절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영생을 주신 것이라고 하였고, 이 생명은 그의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주신 것, 생명을 받은 것이 증거입니다. 영생이나 생명이나 같은 것입니다.

영생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앞으로 천당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과 현재에 우리 영혼이 날마다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는데, 그것은 영혼이 사는 것이고 또 계속 살아나갑니다. 날마다 살아나가고 해마다 살아나가고 영원히 살아나갑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생명, 그것을 우리가 이미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받았습니다. 영혼이 산 사람은 영생입니다. 자라나는 것은 영생을 받은 것입니다. 영생해 나가는 것입니다. 아들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중생한 영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들이신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은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접붙임을 받았습니다.그러니까 영생이 자기 속에서 역사합니다. 영혼이 사는 것입니다. 영생의 생명이 날마다 살아가는 것입니다.

산 믿음, 산 생명, 산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죽은 믿음은 안 됩니다. 죽은 믿음은 속에 예수님을 믿어서 영생의 생명이 있긴 있는데 역사를 못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고 산 역사가 없고 그저 죽은 상태와 같이 활동력이 없습니다. 그것이 죽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것은 산 생명의 역사가 없고, 행함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일을 할 때 외부적으로 껍데기로만 형식적으로 행할 수 있지만, 참된 역사는 속에서부터 생명의 역사로 인해서 행해지는 것이어야만 됩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이 행하는 것은 다 죽은 행동입니다. 산 역사에서부터 나오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산 믿음, 산 역사, 산 생명은 살았어야 됩니다. 죽은 것은 안 됩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감동도 없고, 능력도 없고, 힘도 없고, 또 하나님을 향해서 달음박질 하는 것도 없습니다. 죽은 믿음은 이러한 것들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 해도, 그래도 속은 살아있습니다. 아주 죽은 것은 아닙니다. 사데 교회에게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하였는데, 남은 바 죽게 된 것이란 거의 다 죽고 조금 남았다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행함이 없기 때문에 산 생명을 가지라고 책망한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즉 본서를 기록한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생명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영의 생명입니다. 마태복음 16:25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육신의 목숨을 잃는 자는 영의 생명이 산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1-3 신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임
요한일서 5:1-3

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1.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생의 증거임

본문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난 자’라고 하였는데, 났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 난 것이 거듭난 것입니다. 그래서 ‘난 자’라 하면 예수 믿는 사람, 중생한 사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을 말하며, 이들을 하나님께서 구해서 났습니다. 중생했다는 말씀입니다. 중생한 사람, 즉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다 사랑합니다. 이유는 다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니까 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면 중생한 것이고, 안 믿어지면 중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믿어지면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새로 났다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 된 증거도 또한 믿어지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인가, 택한 백성이 아닌가?’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자는 중생한 자입니다. 택한 백성입니다. 죽을 때까지 안 믿으면 그것은 중생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불택자입니다. 택자와 불택자는 믿는지 안 믿는지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믿어지면 택자이고, 안 믿어지는 사람은 불택자입니다. 거듭난 증거는 무엇이냐 하면 믿어지는 것이 거듭난 것입니다. 안믿어지면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믿어지면 거듭난 것이요, 택한 백성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또한 그리스도에게서 난 사람을 사랑합니다. 거듭난 영혼으로 사는 사람은 같이 거듭난 사람을 사랑합니다. 한 생명이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같이 받았으니까 또 그리스도의 한 지체이니까 성도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니까 그 지체도 사랑하는 겁니다. 그 몸도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이 무겁지 않음

본문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또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또 계명을 사랑해서 계명을 지키면, 계명이 무겁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하면 무겁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업고 다닐 때 손자가 한 20kg 나간다고 하면, 사랑으로 업고 다니니까 힘든 줄 모르고 잘 업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무겁게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멩이를 20kg 짜리 업고 다니라고 하면 할머니가 업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조금 업고 내려놓고는 허리가 딱 부러져 죽겠다고 할 것입니다. 돌멩이 20kg 짜리는 못 업고 다니지만 손자는 잘 업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힘들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 힘들지 않지요? 사랑하니까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면 힘들 것도 힘들지 않습니다. 억지로 하면 가벼운 것도 힘이 듭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으로 하면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무거운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사랑으로 하면 쉽습니다. 왜 쉬운가 하면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세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자기 세계의 것이 되므로 그것이 쉽습니다. 물고기가 강이나 바다에 들어가면 가기가 쉽지만, 육지에 나오면 가기가 힘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세계에 닿은 성경말씀은 지키기가 쉽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의 세계가 자기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딱 들어맞고 좋고, 그대로 하면 시원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물고기가 물에 들어가 헤엄치면 힘들겠습니까? 힘이 하나도 안들 것입니다. 꼬리를 슬슬 치며 쉽게 헤엄치며 힘 드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수 믿는 것이 아주 쉽습니다. 또 성경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주 쉽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말씀대로 하는 것이 힘이 들고 억지로 하기 때문에 죽을 지경이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봉사할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쉽게 하는 것이지 억지가 아닙니다. 하고 싶어서 하고, 하라면 좋아하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하려 하고, 즐거움으로 합니다. 억지로 봉사하는 사람은 낙제입니다. 봉사하라고 하면 “나는 안 나가. 다른 사람이나 나가라.”고 합니다. 기도원 봉사하라면 안 나가며, 다른 사람이나 나가라고 한답니다. 봉사하라면 기다렸다가 “예” 하고 나와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당 처음에 지을 때 봉사하러 많이 나왔습니다. 박원옥이라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학생이었습니다. 매일 나와서 풀무를 붙였습니다. 돌을 깨기 위해 정을 갈아야 했는데 풀무에 석탄을 넣고 매일 불을 붙였습니다. 누가 나오라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나온 것입니다. 기쁘고 즐거움으로 봉사했던 것입니다. 왜 즐거움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 사랑의 세계에 들어갔으니까, 그 세계가 자기의 세계이니까, 자기가 좋아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좋아서 왔다 갔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왔다, 저기에 갔다 하는 것입니다. 올라 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세계에 못 들어가면 전부 억지입니다. “또 하라고 하나? 아, 힘들어 못 하겠다. 또 연보 하라고 하나? 힘들어 못 하겠다.” 하는데, 사랑하면 또 하자고 합니다. 하자고 자꾸 합니다. 왜 요새 연보 안 하냐고 합니다.

지달웅 목사가 창광교회에 집사로 있을 때에, 건축연보를 매년 하니까 좀 그만 두자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건축 연보를 그만 두려고 했는데, 지달웅 목사가 내게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열심을 내서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마음을 바꾸어 해마다 연보해서 우리가 예배당 건축도 하고 기도원 건축도 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신학교나 성경 번역하는 것을 교단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하자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라고 합니다. 그런 목사가 필요합니다. 교단적으로 무엇을 할 때에도 앞장서서 나가면서 하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바람에 지달웅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자는 것이 자기의 세계입니다. 안 하자는 것은 믿음에서 떠난 세계이고, 하자는 것은 믿음 안에 있는 세계입니다.

요한일서 4:17-21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음
요한일서 4:17-21

17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 사랑의 효과

그리스도의 구속완성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졌음

본문 17절에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지극히 큰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므로써”라는 말씀입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완성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완성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사랑을 온전히 이룸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 사랑을 온전히 이룬 것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사랑 안에 거하려고 힘을 쓰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 안에 거하게 해주십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음

본문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거하며, 그 사랑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어 사랑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하면, 아무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사랑을 온전히 이루었기 때문에 아무 가책과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 있는 자는 두려움을 다 내어 쫓습니다. 두려워 하는 자에게는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형벌이 있다고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두려움을 다 내어 쫓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는데(10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하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이가 모든 것을 은사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오려고 하다가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이처럼 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그 어떤 것이 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폭포수와 같이 계속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시고,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이 큰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우리에게 쏟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있습니까? 두려움이 없습니다.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걱정될 만한 것이 온다고 해도 그것은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바로 일으켜 세워 주시려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사랑, 독생자까지 주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손해 보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주시지 않습니다. 또 손해 볼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유익되게 하는 것만 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와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시는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탕자와 같이 아버지의 품속을 떠났다가 왔다고 해도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가 거지꼴로 돌아오는 아들에게 입을 맞추고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며 송아지를 잡고,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고, 잔치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돼지와 같이 되었을 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떠나지 않습니다. 죽는 것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므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려고 죽게 하시는 것입니까? 천당으로 데려가려고, 영광스러운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려고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한 것도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데려가시려고 순교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순교도 사랑으로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올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허락하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믿음을 지키며 이겨야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나? 무슨 팔자인가?” 하며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래도 나를 사랑하셔서 연단시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 모든 것을 주신 줄로 믿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회개시키시고, 낮추게 하시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시려고, 또 나를 만드시려고, 사랑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고, 그 큰 사랑을 계속 쏟아 부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으며, 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손해를 주겠습니까? 손해를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죽는데 내어 준다고 할지라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내어주어 죽는다고 하면 하늘나라에 가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습니까? 곤고에 처해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므로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즉 불평과 원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나사로가 불쌍합니까?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거했는데(눅 16:23), 왜 불쌍합니까? 불쌍한 자는, 안 믿고 물 한 방울 없는 지옥에 간 부자입니다. 요새 정치가들이 서로 물고, 뜯고, 도적질해 먹는데 얼마나 불쌍합니까? 얼마 있다가 다 탄로가 나고 끝장이 날 때는 두려울 것입니다. 두렵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났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났는지 안 떠났는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두려움이 있나 없나, 불평이 있나 없나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또 팔자타령 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데 무슨 팔자타령입니까? 나에게 오는 모든 환경은 제일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슨 팔자가 이런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난 증거인 줄 알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또 가장 필요한 것으로 골라서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면 원망이나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면 매를 맞아도 즐겁습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위해서 돌에 맞을 때에 얼마나 감사했습니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에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된 것은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처럼 되는구나”하며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된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진리를 위해서 핍박을 받으시고 죽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나도 되는구나’ 하며 얼굴이 천사처럼 된 것이라고 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함

본문 19절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성도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이같은 사랑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랑의 원동력에 의하여 하나님과 믿는 형제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랑은 신본주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그 사랑이 넘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참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이목구비(耳目口鼻), 사지백체(四肢百體) 등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손을 미워하고 또 그 사람 발을 미워하고 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붙은 것을 다 사랑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다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 붙은 것, 하나님께 소속된 것들, 하나님의 지체를 다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것을 다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붙은 사람들, 그 지체들, 소속들을 다 사랑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또한 “그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붙은 것을 다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께 붙은 자들, 하나님의 지체들을 다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지체이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도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의 지체를 사랑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몸도 사랑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몸을 사랑할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에게 소속한 지체를 사랑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지체입니다. 예수님은 머리이시고 성도는 몸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에게서 오는 것은 다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교회도 사랑하고 성도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모든 것을 다 사랑하게 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말 하는 자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미워하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는 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다시 형제를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 자녀의 모든 것, 즉 자녀의 지체 몸, 머리 발을 다 사랑하게 됩니다. 그 자녀의 지체 하나가 병신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자녀의 손이 병신이라고 하면 그 손을 미워할까요? ‘어떻게든 고쳐서 잘 사용하는 손이 되게 하겠다’ 하지 않겠습니까? 또 고쳐 주려고 애를 쓰고 사용하지 못함에 더욱 마음을 쓰지 않겠습니까? 미워하여 잘라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고쳐주어서 바로 세워서 깨끗하게 만들고 온전하게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보는 바 형제를 사랑치 못하는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본문 21절에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라고 하였는데, 요한복음 15:12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이 주님의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께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요한일서 4:7-16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일서 4:7-16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 중생한 자는 아가페 사랑이 나옴

본문 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의 거룩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이성적(에로스)이거나 우정적(필리아) 사랑이나 동족적(스톨게)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인간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아가페의 거룩한 사랑을 발휘하여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나서”는 중생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거룩한 사랑을 하는 것은 중생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됩니다. 중생한 자는 그 영에서부터 거룩한 사랑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이 방해하면 사랑이 나타나지 않으며, 부패성이 방해하지 않으면 계속하여 사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중생한 영이 물과 성령으로 났으며 그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본문8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라고 하였는데, 7절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에 대해서 말했고, 8절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중생하지 못하고 영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영에서는 사랑이 나올 수 없고 하나님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 구원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영원한 사랑을 주시기 위해 성도를 선택하셨고, 독생자를 보내어서 대속해 주셨고, 사랑으로 성도를 불러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그릇입니다(롬 9:23-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

본문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사랑은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 되는 인간들을 살리시려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 인간의 죄를 대신 지워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사랑은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이에서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살리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신 사랑은 하나님이 최고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삼으셨음

본문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한 것입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 주셔서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길이와 넓이를 측량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언제나 깨달아야 됩니다. 에베소서 3:18-19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 하면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얼마나 큰지 측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가 한정이 없고, 길이가 한정이 없고, 높이가 한정이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이 속에서 나옴

본문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친분이나 인정과 동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거룩한 아가페 사랑이 아니고, 인본주의 사랑입니다. 성도의 사랑은 거룩한 아가페 사랑이어야 합니다. 아가페 사랑이 속에서 넘쳐 나와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어야 됩니다. 그 사랑으로야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속에 없는 증거입니다. 사랑이 속에 있으면 밖으로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이 속에 있으면 그 사랑이 나오게 됩니다. 안 나오는 것을 보니까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은 이간 붙이는 것, 원수 되게 하는 것 등입니다. 또 더러운 생각 등을 주어서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 마귀가 주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기고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마귀에게 붙잡힌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

본문 12-15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성도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 간에 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믿음으로 거룩한 사랑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 안에서 온전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성도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여야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서 온전해집니다.

베드로전서 4:8에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면 허다한 죄가 덮어지고, 사랑하지 아니하면 허다한 죄가 자꾸 발견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죄가 자꾸 발견되고, 못하는 것만 보이게 되면 자기에게 사랑이 없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면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결점이 있어도,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말을 빨리해서 좋은 때도 있겠지만,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말을 빨리 안하면 실수를 안 했을텐데 말을 빨리 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어제 심방을 갔는데 심방 간 집의 남편은 영감인데, 젊은 여자 하나를 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따님이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합니다. 그 뒤로 알아보니까 딸이 아니고 부인입니다. 부인을 보고 딸이냐고 했으니 얼마나 실례입니까? 말을 안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괜히 물어본 것입니다. 부인이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또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말 안하는 것이 유익이 많습니다.

이와 같이 누구나 좋은 점도 있고, 좋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좋지 않은 점을 보고 미워하지 말고, 좋은 점을 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다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못하는 사람은 저것을 잘하고, 저것을 잘하는 사람은 이것을 못합니다. 다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이 있는데, 좋은 점을 보고 서로 사랑하고 좋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점을 보고 틀렸다고 하며, 미워하면 마귀가 역사합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작은 아들의 좋은 점을 보고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나쁜 점을 보았다면 때려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나가서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꼴로 돌아 왔으니, “너는 나하고 원수이다”하며 내쫓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의 좋지 않은 면을 보지 않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좋은 면을 보고 용서해 주고, 사랑해주고, 영접하고, 씻기고, 의복을 갈아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해주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남의 좋은 점을 보고 서로 사랑하고 좋게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고 믿습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그 영이 하나님 안에 거하여 안식과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서도 그 성도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안에 들어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일서 4:1-6 거짓선지자를 분별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거짓선지자를 분별하라
요한일서 4:1-6

1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5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6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

1. 영들을 분별하라

본문 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 있고, 마귀에게 속한 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고친다,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가 나타난다, 성령의 역사이다”라고 말해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를 시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과 마귀에게 속한 영을 분별하지 못하면 마귀를 따라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고, 마귀에게 속한 영을 따라가면 마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귀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서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11:14-15에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단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에 까딱하다가는 속아서 마귀를 따라가기 쉽습니다. 골로새서 2:18에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거짓 선지자가 나와서 하나님의 영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영을 믿게 하고, 그것을 따라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인지, 마귀에게로부터 온 영인지 그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과 마귀에게 속한 영을 분별하는 방법은
첫째, 교리가 성경에 맞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교리가 성경에 맞지 않으면 마귀의 역사이고 성경에 맞으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요 16:13) 진리를 떠나서는 절대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위반되게 나가는 주장이나 역사는 마귀의 영으로 알고 끊어 버려야 합니다.
둘째는 맺히는 열매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 열매가 불경건하고 악한 것이면 마귀의 영입니다(마 7:15-19).
셋째는 중생한 성도의 심령에 불안과 공포를 주고 뒤숭숭하게 하는 것은 악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성도의 심령에 평안과 안식과 생명을줍니다. 
넷째는 성령의 역사로 분별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성도는 악령의 역사를 만나면 서로 통하지 않고 갈등을 느끼게 합니다. 
다섯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여부로 분별됩니다.
사도 요한 당시에도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왔는데, 말세에는 특별히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마 24:11).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의 영

본문 2-3절에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인가, 마귀의 영인가는 무엇으로 분별한다고 하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인하면 마귀의 영입니다. 즉 적그리스도의 영이요, 미혹하는 영입니다.
그 당시에 그노시스 사상이 있었는데, 그노시스 사상은 이단으로 예수님은 육체가 없는 영체만으로써 가현적으로 나타난 것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고 단지 사람 중의 하나로 아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적그리스도이며, 그들 속에 악령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노시스 사상은 물질은 악하다고 하며,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창조하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또 물질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육체도 물질이므로, 예수님은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합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이며 이단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신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께 속한 영은 무엇으로 분별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고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고,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이고 미혹하는 자입니다. 또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잘못된 주장은 마귀의 영

성경에 맞지 않는 잘못된 주장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아닙니다. 성경에 맞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주장을 할 때에 그것이 성경에 맞나, 맞지 않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맞으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입니다. 성경에 안 맞으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아니고, 마귀의 영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아니고 마귀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단번에 분별을 해야 합니다.

요새 모든 병이 귀신에게로부터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귀신만 내보내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병이 귀신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김기동씨 파가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병이 귀신에게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범죄했기 때문에 죄로 인해서 오는 병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한 것을 보면 죄 때문에 병이 온 것이고, 요한복음 9장에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병이 온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귀신에게로부터 온 병도 혹시 있지만, 모든 병이 다 귀신에게로부터 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김기동씨의 주장에 의하면, 안 믿은 사람의 죽은 영혼이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120세 살아야 되는데, 120세 전에 죽은 것은 귀신이 되어서 공중에 떠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맞습니까?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창세기 6장에 120년 있다가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120년 산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에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갖다가 120년을 다 살지 못하고 죽으면 귀신이 되어 떠돌아 다니다가 병나게 한다는 것은 성경에 안 맞습니다. 그것은 악한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 이외에도 마귀의 역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가 감람나무다, 자기가 의인이다, 자기가 그리스도다, 자기가 인 떼는 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다 성경에 안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당 점하는 식으로 기도해보면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이고,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보기에 점잖고, 진실한 것 같고, 기도 많이 하고, 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무조건 다 하나님의 영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맞는 것만 하나님의 영입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그것이 성경에 맞는지, 안 맞는지 언제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쏭달쏭하고 사이비하게 나오지만 성경으로 딱 잘라야 됩니다.
성경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입니다. 그 검으로 “이것은 옳다, 이것은 아니다”하며 딱 잘라버려야 합니다. 또 꿈꾸고 예언한다는 것도 다 마귀의 역사인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해보니까 “너는 어떻게 되겠다, 넌 또 무슨 팔자이다”라고 말하는 것 전부가 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2. 성령으로 마귀의 영을 이김

본문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령을 가리키고, “세상에 있는 이”는 마귀의 영을 가리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로 인해서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가 자기의 힘으로는 마귀의 영을 이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보다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의 힘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 속한 자는 진리의 말씀만 들음

본문 5절에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세상에 속하였으므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합니다.

본문 6절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말”이란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란 중생한 성도를 가리킵니다. “진리의 영”은 성령은 가리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 말을 하면 잘 듣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 즉 하나님께 속한 자는 진리의 말은 듣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안 듣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적인 교회는 세상에 속한 말, 육신에 속한 말, 세상에서 복 받는다는 말,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말만 합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진리의 말씀만 전합니다. 참된 진리의 말씀은 영의 귀가 열린 사람만 듣습니다. 즉 진리는 영의 귀가 열린 사람만 듣고, 사모하는 사람만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진리만 가르치는게 참 교회입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진리만 가르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으려고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면, 그것은 참 교회가 아닙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하였는데, 진리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구
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혹의 영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며 육체와 세상주의로 나갑니다. 미혹케 하는 영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요한일서 3:10-24 서로 사랑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서로 사랑하라
요한일서 3:10-24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20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 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1. 마귀에게 속한 자

마귀의 자녀는 의를 행치 아니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음

본문 10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 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는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또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죽인 예

본문 11-12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했습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담의 맏아들이 가인이고 작은 아들이 아벨인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왜 죽였다고 하였습니까? 그의 행위는 악하고, 불순종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을 잡아서 제사한 것이 아니라 제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곡식으로 드렸는데 그것은 불순종이고 악한 것입니다. 아벨은 양의 피와 기름으로 드렸는데, 이것이 순종한 것입니다. 가인이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아우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에 시기가 나서 그 동생을 죽였습니다.

이 시기 마귀라는 것이 아주 악한 마귀입니다. 시기로 자기 동생을 죽였습니다. 동생이 잘 되었는데 시기할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는 받고 자기의 제사는 안 받으셨는데, 동생의 제사를 받고 자기 제사를 안 받았으면 왜 안 받으셨는지 동생하고 의논을 좀 했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동생이 말해줬을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아버지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아담한테 “왜 제 제사는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고, 동생의 제사는 받으셨을까요?”라고 물으면, 아버지가 “너 무엇을 가지고 드렸느냐?” 했을 것이고, 가인이 “농사한 그 곡식을 가지고 드렸습니다.” 하면 “그래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 우리가 범죄 했기 때문에 희생의 피를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네 동생은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가서 제사를 했기 때문에 그것은 받은 것이다. 너도 이 다음에 그렇게 해라.”고 답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가인도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갔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뻔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는 악하고 동생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에 그것이 시기가 나서 잡아 죽였다고 했습니다. 시기 마귀가 악독한 마귀입니다. 사촌이 전답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사촌이 전답을 사면 좋지, 왜 배가 아픕니까? 자기가 못 사는 것을 사촌이라도 사면 그래도 좀 낫지 않겠습니까? 시기 마귀가 악한 마귀입니다. 시기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될 때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고 다 좋은 것인데 그것을 기뻐해야지 시기가 나서 죽이면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본문 13절에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19에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겠지만, 너희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불러내서 내게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고 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속한 것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자기 것이니까 세상이 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증거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라

본문 14절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치 않는 자는 어떻다고 하였습니까? “사망에 거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면 생명에 거하는 자입니다. 사랑치 않는 자은 사망에 거하는 자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생명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와 영의 세계는 다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세계로 모두 다 한 세계입니다. 
그리스도의 세계는 생명의 세계고, 빛과 사랑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마귀의 세계는 사랑이 없는 세계이고, 미워하는 세계이며, 시기하는 세계이고 죽이는 세계입니다. 어느 세계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사랑의 세계에서 살면 사랑을 할 것이고, 사랑이 넘쳐 나올 것입니다. 마귀의 세계에서 살면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미움 밖에 안 나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세계에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사망의 세계입니다. 마귀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속에서 사랑이 나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은 생명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미워하면 무슨 세계에서 사는 줄 알면 됩니까? 사망의 세계, 마귀의 세계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죄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됩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사랑이 나옵니다. 몸뚱이는 마귀의 세계에 있는데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이 됩니까? 사랑의 세계에 자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속한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됩니다. 들어가지 않고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것은 자기 세계가 아니고 다른 세계의 것을 가져다 하는 것인데 되겠습니
까?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는 줄 알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세계에 지금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

본문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무엇입니까? 살인하는 자입니다. 살인은 미워하는 데서부터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살인이라고 알았는데, 예수님은 미워하는 데서부터 살인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살인이 미워하는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미워하다가 살인하게 되니까 살인의 뿌리가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것부터 살인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왼뺨을 돌려대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가지라고 하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5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10리 까지 가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워하지 않는 그것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미움이 나올 만할 그 때에 믿음을 쓰면 미움이 안 나옵니다. 그것이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파리 100마리를 잡아먹었다고 해도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잡아먹었으면 됐지, 미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파리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속상해하지 말고, ‘난 안 잡아먹었다’ 한 마디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꾸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괜히 그것을 가지고 미워하고 속상해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속상해하는 것은 벌써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파리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속상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안 잡아먹었다고 한 마디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하나님이 그 안 잡아먹은 것을 나타내주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다 드러내주십니다. 안 잡아먹은 것은 안 잡아먹은 대로, 잡아먹은 것은 잡아먹은 대로 드러내주실 거니까 속상해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입니다. 살인은 미워하다가 나오기 때문에, 살인의 뿌리는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채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선교하러 가고, 전도하다가 매 맞아 죽고, 이 복음을 들고 가다가 목숨을 버리고 나가다가 순교당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본문 17-18절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도와줄수 있는데 안 도와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도와줄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도움 받는 사람은 도움을 안 받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립해서 자기가 자기 일 해먹는다는 생각으로 자기 할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십니다. 도움 받을 생각은 절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자립을 하고, 자기가 일 해먹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하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애쓰다가 그 다음에 굶어서 쓰러졌다고 하면, 그 때는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노인들, 고아들, 무의탁 하는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 좋지만,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 해먹어야 됩니다.

화요일 날만 되면 우리 교회 사무실에 아침부터 돈 구걸하는 사람들이 나란히 섭니다. 두 사람, 세 사람 떼를 지어 가지고 오고, 또 오고하는데, 아마 하루 몇 십 명이 화요일 날짜를 정해놓고 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얼마씩 줍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멀쩡하게 왔습니다. 그래서 “왜 젊은 사람이 왔느냐? 일 해 먹으라”고 하고는 그냥 보냈습니다. 노인들은 당연히 우리가 얼마씩 도와줘야겠지만, 젊은 사람이 노인들 가운데 끼어서 얻어먹으려고 하다니 무슨 짓입니까? 그러
니까 도와줄만한 사람은 도와주고, 나가서 일 해먹어야 될 사람은 일해 먹어야 됩니다. 자립정신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아예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도움 받겠다는 사람들은 도와줘도 희망이 없습니다.

일본에 우에노 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김주봉 목사가 도시락을 한 40개씩 매일 만들어서 그 공원에 거지들을 모아놓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매일 나누어주는데 그 사람들 가운데 일 할 만한 사람들이 더러 있으니까 김주봉 목사가 취직을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취직을 시켜주면 사흘을 못 가서 또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왔느냐?” 물으니, “거지 노릇 사흘만 하면 그 이상 더 좋은 팔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지 생활이 얼마나 좋았는지, 거지 노릇 사흘만 해놓으면 부끄러운 것은 다 없어지고, 그저 얻어먹으니까 먹을 것 염려 없고, 화재 날 염려 없다는 것입니다. 집들 다 불붙어도 자기 집은 불 안 붙는다고 했답니다. 어쨋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대로 도와주는 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3. 사랑하는 자가 주께 받을 복

주 앞에서 굳세게 됨

본문 19절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행하면 마음이 주 앞에서 굳세게 됩니다. 즉 사랑을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힘이 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음

본문 20절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가책 받을 것이 있는데,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 가책 받을 것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라고 했는데,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있습니까? 많이 있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지내놓고 보면, 마음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잘 못해 놓고서도 마음의 가책을 받지 못하는 것은 화인 맞은 양심입니다.

보통은 무엇을 하나 잘못하면 “내가 잘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가책을 받지 않고 뻔뻔하게 나가는 것은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이고, 양심이 마비가 된 사람입니다. 언제나 마음은 온유 하여야 하고, 신앙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합니다. 가책을 못 받는 사람은, 완악한 사람이고, 강퍅한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책 받을 것이 많겠습니까? 자기 마음에 가책 받을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표준이 아닙니다. 나는 잘한다고 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잘못한 것이 많은가 하며 항상 겸손해야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해야 됩니다. 자기 생각에 잘했다고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누구의 마음에 맞아야 됩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하시도록까지 해야 됩니다.

본문 2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받음

본문 22절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양심에 가책이 없이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에게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하였는데, 무엇이나 구하는 바를 주께 받는 방법의 첫째는 마음에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됩니다. 마음에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려면 회개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마음에 책망할 것이 있는데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구하여도 못 받습니다. 둘째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원수까지 사랑하여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면서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구해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바를 다 받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즉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원수 맺힌 것은 다 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찾아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시편 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여야 됩니다.


4.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모든 것을 받음

본문 23절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계명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구약 성경의 대강령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만 모든 것을 다 받습니다. 왜 못받습니까? 사랑하지 못하므로 못받습니다. 미워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마귀의 세계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또 다른 사람과 막힌 것이 있으면 못 받습니다. 사람과 막히면 하나님과 막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막히지 않아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막히지 않아야 합니다. 보일러 파이프에 더운물이 돌아야 방이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파이프가 한 군데 막히면 다 막히게 됩니다. 첫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히고, 둘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히고, 셋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힙니다. 이와 같이 사람 앞에 막히면 하나님 앞에도 막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서로 용납하고 풀어야 합니다. 오른 뺨 치는 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왼 뺨도 돌려대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취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왼뺨을 돌려대면서라도, 속옷까지 주면서라도, 십리를 동행하면서라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막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안 막히면 몇 만 배 더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히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과 막히지 않으려고 왼 뺨까지 돌려대면 하나님께서는 더 높여주십니다. 
즉 그 사람의 인격을 높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인격을 무시한다고 해서 사람과 막히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멸시와 무시를 당하셨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높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24절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참된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과 영적 교통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닌, 산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산 믿음을 가진 자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성령께서 알게 해주십니다.

요한일서 3:1-9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
요한일서 3:1-9

1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1. 하나님의 자녀

세상이 알 수 없음

본문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습니까? 독생자를 주셔서, 독생자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주셔서, 우리 대신 속량해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리와 사자같은 자들이었고, 또 이방 사람으로서, 죄로 인해 죽어야 하는 자들이었고, 우상을 섬기고 마귀의 종살이하다가 지옥에 가서 영영히 불구덩이 속에서 다시 나오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려고 독생자 보내주시고, 또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주시고 우리를 건지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 큰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왕의 자녀보다 억만 배 높습니다. 세상의 어느 집의 자녀보다 더 큰 것입니다. 안 믿는 자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호적을 다 옮겼습니까? 우리 호적은 다 하늘나라에 올라가 있습니다.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호적에 다 올라가 있고, 또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잘 모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인줄을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체로 변화됨

본문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그와 같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고린도후서 3:17-18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영광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주와 같은 형상으로 화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와 같이 화하여 예수님의 영광체와 같이 화해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참 좋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영광을 보고, 예수님의 형상을 보니까 영광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광의 형상으로 화해진다는 말입니다. 홀연히 예수님의 영광같이, 영광으로 화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영광에서 또 영광으로 이룬다”는 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체는 영광의 부활체입니다. 또, 죽지 않는 부활체입니다. 우리가 영광의 부활체, 썩지 않는 부활체로, 죽지 않는 부활체로, 또 늙지 않는 부활체로, 쇠하지 아니하는 부활체로 다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문을 열지 않아도 가겠다고 하면 가고, 오겠다고 하면 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문 닫아 놓은 집안에 문 열지 않고 쑥 들어가고, 나가고, 사람에게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이기도 하고, 또 저기 가겠다고 하면 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겠다고 하면 와지는 것입니다. 또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몇 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먹어도 괜찮습니다. 영광체가 되어서 예수님과 같은 영광체로 나타납니다.

부활하여 영광체를 입고, 예수님과 같이 공중에서 심판하고, 지상재림하여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 합니다. 천년왕국에서는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나와서 왕 노릇하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며 나오며 다스립니다. 천년왕국 후에는 백보좌 심판을 거쳐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같이 영광체로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다 얼굴이 변변치 않습니다. 얼굴 잘생긴 것이 별로 없다고 봐야합니다. 다 못생겼습니다. 또 미인이라고 해도 어딘 가에 흠이 다 있습니다. 얼굴이 희기도 하고 불그스레하기도 하고, 코가 쑥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고, 미인은 무슨 미인입니까? 다 시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재림하시면 다 영광체로 화하니까 전부다 미인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얼굴이 환해집니다. 다 신령한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비행기 타고 다니느라고 수고가 많은데 그 때는 비행기가 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미국에 가겠다고 하면 가지는 것입니다. 오겠다고 하면 와지는 것입니다.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가려면 10시간 가고, 오려면 12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영광체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가겠다고 하면 벌써 가지고, 오겠다고 하면 벌써 와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비행기는 갖다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합니다. 다 필요 없습니다.

영광체로, 신령한 몸으로, 영광이 있는 몸으로 다 이렇게 변화가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굼벵이가 매미 되려면 땅 속에서 굼벵이로 있다가 매미가 돼서 공중에 올라가서 날아다니며 노래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다음에 부활해서 하늘나라의 영광체로 화한다는 것을 배우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올라갑니다. 변화가 됩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해집니다. 그 때는 화장할 필요 없습니다. 다 영광체인데 화장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저보고 마사지 했냐고 물어보는데, 그래서 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사지 하지, 다른 마사지는 안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는 마사지면 되지, 다른 마사지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영광에서 영광으로 가는 그리스도와 같이, 조금만 있어 보면 우리가 이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체와 같이 변화가 됩니다. 그와 같이 됩니다. 땅속에서 굼벵이와 같이 살던 것들이 영광체가 되어서 공중으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이것은 참 한량없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적적인 역사입니다. 이리와 타조와 같던 자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영광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의 형상과 같이 화할 줄을 아는 것입니다. 소망 있습니까? 소망 있습니다. 세상에서 ‘못생겼다, 없다, 시꺼멓다, 어떻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는 다 영광체가 되는 것입니다. 늙은 사람도 영광체가 되면 젊은사람 같이 되고, 병신들도, 장애자들도 다 영광체가 되는데, 그때는 장애가 다 없어지고, 영광체가 다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깨끗하게 자라나야 함

본문 3절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망을 가졌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되는 소망을 가졌으니까 이제 깨끗에서 깨끗으로자라나야 합니다. 이제 깨끗에서 깨끗으로 자라나고, 또 깨끗에서 더 깨끗하고, 깨끗에서 더 깨끗, 깨끗에서 깨끗, 그렇게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깨끗하면 자라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2에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깨끗해져갑니다. 과실도 많이 맺습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얼굴 시꺼먼 사람들도 예수 잘 믿고 은혜 받게되면 얼굴이 환해지고 광채가 납니다. 그리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 광채가 나오고 영광체로 변합니다.

그러면 소망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즉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죄는 멀리 떠나보내고, 순종하는 생활, 분리하는 생활, 더러운 마음, 물욕과 정욕과 사욕 다 떠나서 깨끗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깨끗해지는가 하면, 중생한 영을 사용하면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영에게 이용당할 때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또 중생한 영혼에게 그 마음이 이용당할 때 몸도 깨끗한 몸이 됩니다. 더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그 마음이 몸을 이용하면 몸을 깨끗케 합니다. 마음과 몸이 깨끗케 되려면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해야 합니다.

상당히 오래 전에 내가 도봉산 굴에 가서, 겨울에 한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중생한 영이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깨끗한지, 속이 전부 깨끗해졌습니다. 그래서 ‘아, 이렇게 깨끗한 세계가 있구나’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다 ‘깨끗’으로 개명을 할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이상해할까 봐 안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서 중생하는 영이 아이 마음을 전부 다 이용해서 나가니까 마음이 아주 깨끗해졌습니다.

또 깨끗한 영도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서 점점 더 깨끗해져야 합니다. 점점 의롭게 되어야 하고, 깨끗에서 깨끗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순종할 때 깨끗해집니다. 순종할 때, 즉 순종해서 영이 마음을 사용할 때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믿을 때 깨끗해지고, 순종할 때 깨끗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그 다음 순종할 때에 점점 깨끗해 나가는 것입니다. 부패성이 이용하는 마음은 더러운 마음입니다.


2.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

본문 4-6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죄와 더불어 싸우라는 것입니다. 죄와 더불어 싸워라. 마귀와 더불어 싸워라. 죄는 마귀에게 미혹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8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깨끗해지려면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죄는 마귀로부터 오고 부패성과 마귀는 언제나 단짝인데, 그 부패성이 우리 마음을 이용하면 악한 마음, 더러운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이 몸을 이용하면 죄 짓는 몸이 되는 것
입니다. 반면에 중생한 영혼과 생명이 내 속에 있고, 또 내부에서 감동을 시키고, 중생한 영이 마음을 이용하면,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그 다음에 그 마음이 우리 몸을 이용하면 깨끗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깨끗에서 깨끗으로 자라나는 몸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마귀 역사가 많기 때문에 죄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와 더불어 싸우고,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계속 범죄하게 만들려고 물욕과 사욕과 정욕을 계속 충동을 시켜서 불의를 행하게 합니다. 또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나오게 해서 불의한 길을 걷게 만드는데, 마귀들이 다 그렇습니다. 거기 넘어가지 말고. 불의한 세력에 넘어가지 말고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지 마귀와 타협하면 안 됩니다. 히브리서 12:4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싸우지 않았다”는 것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죄와 더불어 싸워서 이기라는 것입니다. 지면 안 됩니다. 주일날, 교회 못 가게 하는 것이 마귀 역사입니다. 주일날 교회 안 오고 다른 데 가면 죄짓는 것입니다. “나는 주일날 다른데 못 간다”하고 싸워야합니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계명을 범하게 만들어 죄 가운데 빠뜨립니다. 그리스도의 성도들은 깨끗하게 나가야 하고, 의에서 의로 나가야 하는데, 이것을 못하게 하려고 마귀는 자꾸 여러 가지 시험을 합니다. ‘죽인다’, ‘내 보낸다’, ‘감옥에 가둔다’, ‘직장에서 떨어진다’, ‘이혼한다’ 등 여러 가지로 마귀가 위협하여 계명을 범하게 합니다. 즉 말하자면 성경대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깨끗한 데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깨끗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습니까? 중생한 영을 써야 하고, 하나님 말씀 받아서 그대로 믿어야 하고, 또 순종해야 됩니다. 믿고 순종해야 깨끗해집니다. 순종함으로 깨끗해집니다. 성경에 다 있는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죄와 싸우다 피흘리기까지 아니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땅에 떨어져도, 직장에서 떨어져도 주일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까?’라고 고민될수 있습니다. 다른 직장에 가면 되지 뭘 어떻게 합니까? 거기서 주일날 나오라고 해서 쫓겨나면, 다른 직장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동네 쫓겨나면 저 동네로, 저 동네서 핍박하면 다른 동네로, 이렇게 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옵니다(마10:23). 갈 길을 다 가기 전에 예수님의 권고가 온다는 것입니다. 또 직장이 떨어지면 죽을 것 같습니까? 그 직장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좋으면 뭐합니까? 돈 많이 준다고 합니다. 돈 많이 받으면 뭐합니까? 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잘 살면 또 뭐합니까? 집을 크게 산다고 합니다. 집을 크게 사면 뭐합니까? 잘 먹는다고 합니다. 잘 먹으면 또 뭐합니까? 어떻게 먹는 것이 잘 먹는 것 같습니까? 매일 소갈비 좋은 것으로 사다 먹고, 그 다음에 삼겹살이나 사다 먹고, 또 뭘 먹어야 합니까? 그 다음에 칠면조 고기 사다 먹고 해서, 잘 먹어도 사실 잘 먹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잡곡밥에 된장국, 김치와 채소를 먹는 것이 건강식입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다 부활하는데, 부활체의 영광이 다릅니다. 자라나서 가야 합니다. 조금 자라난 사람, 덜 깨끗한 사람, 또 의로우심과 같이 좀 더 자라난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과 비등하게 자라나야 예수님 신부로 예수님께서 데리고 나가시지, 허리 아래에서 달싹달싹 하는 것을 어떻게 데리고 나가시겠습니까? 신부가 허리 밑에서, 무릎 아래서 달싹달싹 하면 어떻게 데리고 다니느냔 말입니다. 그래도 정 못해도 어깨만큼은 자라나야 데리고 다니지, 허리 밑에, 무릎 밑에 달싹달싹 하는 어린 아이 같은 자를 어떻게 데리고 다닙니까? 자라나야합니다. 자라나려면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또 깨끗하려면 깨끗한 대로 나가야합니다. 깨끗하려면 세상을 멸시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서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깨끗해집니다. 순종함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죄는 마귀와 더불어 하나이기 때문에.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음

본문 9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죄는 마귀에게 속했다고 했습니다. 의를 행하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고,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것은 거듭난 것을 말하는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새로 났다고 했습니다. 거듭난 영혼은 범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어서입니다. 씨는 말씀입니다. 말씀인 물과 성령으로 중생했고 말씀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습니다.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났다고 했습니다. 중생되었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지만 믿는 사람이 육체의 정욕대로 살면 범죄 합니다. 중생한 영혼은 새사람이고, 육체의 정욕은 옛사람입니다. 육체의 부패성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새사람으로 살면 범죄 하지 않고, 옛사람으로 살면 범죄 한다고 했습니다. 왜 범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거듭났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육신의 부패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부패성으로 살면 범죄 합니다. 반대로 영으로 살면 범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15-29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적그리스도를 주의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적그리스도를 주의하라
요한일서 2:15-29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8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22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24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25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6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8자녀
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2:15 너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없다.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눈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2:17 세상도 지나가고 세상의 정욕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 

2: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이다.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고 너희가 들은 대로 지금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안다. 

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실제로 우리에게 속해 있었던 것은 아니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했다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2:20 너희는 거룩한 분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았고, 너희 모두가 알고 있다. 

2: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알기 때문이며,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22 거짓말쟁이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이다. 

2:23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고, 아들을 시인하는 자는 아버지도 모시고 있다. 

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여라. 만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2:25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친히 약속하신 것이니, 곧 영생이다. 

2:26 나는 너희를 미혹하게 하는 자들에 관하여 이것을 너희에게 썼다. 

2:27 너희는 그분께로부터 받은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므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그분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에 대하여 너희를 가르친다. 그것은 참되고 거짓이 없으므로,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그 안에 거하여라. 

2:28 그러므로 자녀들아, 언제나 그 안에 거하여라. 그러면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담대함을 얻고, 또 그분께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2:29 만일 너희가 그분께서 의로우신 줄을 안다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분께로부터 났음을 너희가 알게 된다.


1.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르지 말 것

본문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사랑해야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부하려 하는 자는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걸리고, 침륜에 빠진다고 했는데, 믿는 자는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고 만족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사랑하라 했습니까? 원 사랑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여벌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손님이 왔다고 닭을 잡아주는데, 닭을 통째로 손님에게 주고, 아이들에게는 여벌로 다리와 머리, 발, 똥집 같은 것을 줍니다. 금에서 금싸라기가 혹시 떨어지는 수가 있는데. 원 금은 하나님께만 돌리고, 그것에서 떨어지거나 그릇에 조금 묻은 금싸라기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큰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가고, 예수님만 즐거워하고, 예수님만 기쁘게 하고 다른 것은 다 여벌로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예수님을 바라보고, 세상 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세상 것은 아무리 많아도 다 헛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모든 것을 지내봤지만 다 헛되다고 했습니다. 왕궁을 13년간 레바논 백향목으로 지었지만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또 과수원을 만들고 여러 가지 과수를 심고, 금은보배를 많이 쌓고, 노래하는 남녀도 많이 두고, 몸이 원하는 것을 다하고, 마음이 원하는 것을 다 해보고,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다 해봤지만 마지막에는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전도서 1:2에 헛되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했습니다.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다 헛되다고 하였는데, 천 년의 갑절을 사면 이천 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지내놓고 보면 세상에 나지 못하고 배 안에서 낙태되어 죽는 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기의 죽음이나 어른의 죽음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또 일백 자녀를 낳고 장수할지라도 그것도 다 지내고 보면 헛되다는 것입니다.

다만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제일 중하다고 했는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즐거워하고 영적 낙원에서 살고,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 낙원에서 사는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생활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여벌로 사랑하고, 물질에 대해서는 언제나 마귀가 따라다니는 데 물질 문제 때문에 마귀 시험 들지 않도록 하고, 있는 바가 족한 줄로 알고 거기 맞춰서 사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본문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사람들이 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려고 하고 정욕을 채우려고 합니다. 이생의 자랑이라는 것은 명예 출세, 세상에서 호사생활하는 것, 출세하고 자랑할 만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마귀가 시험한 것도 이 세 가지입니다. 선악과 따먹을 때도 마귀가 이 세 가지로 시험하였는데, “보암직하고”는 안목의 정욕, “먹음직하고”는 육신의 정욕,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는 것은 이생의 자랑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것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에 빠집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풍성하면, 즉 그것들을 많이 취하면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세상 것을 많이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돈 많은 사람이 믿음 지키기가 힘들고, 명예영광으로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믿음 지키기 힘들고, 정욕에 빠진 사람이 믿음 지키기가 힘듭니다. 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것이 많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까? 그러나 많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도리어 믿음에서 떠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진리를 구하고, 영이 살고, 생명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면 먹을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세상에서 높아지면 뭐 하겠습니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다 취하면 또 뭐 하겠습니까? 영의 세계의 것이 부요해야 됩니다. 영의 것이 부요하고 영이 자라나고 영적 생명이 풍성해져야 되겠는데, 세상 것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만 영원히 남음

본문 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지나갑니다. 부귀영화도 지나가고, 또 정욕적으로 살던 것도 다 지나가고, 이생의 자랑도 다 지나가고, 잠깐 있으면 다 지나갑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합니다. 베드로전서 1:24-25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 지나갑니다. 육체는 풀이요 영광은 꽃인데, 꽃은 떨어지게 되어있고 풀은 마르게 되어있습니다. 무엇만 남느냐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한 것만 영원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한 것, 말씀대로 순종한 것, 말씀대로 구원 이루어나간 것, 말씀대로 하나님의 일을 봉사한 것, 순종한 것, 믿음 지킨 것은 영원히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만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왜 남아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은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자라 난 것은 자라난대로 하늘나라에 그대로 갑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은 의니까. 의를 가져가므로 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된다고 하였는데, 베드로후서 3:13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의인데, 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은 영원한 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지나가지 않습니까? 세상의 좋아하는 것도 다 지나갑니다. 즐거워하는 것도 다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까지 가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를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께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힘쓰고 또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나가고, 또 물질로 받들어 나가야 할 때는 물질로 힘을 다해서 받들어 나가고, 자기 몸으로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야 할 때는 몸으로 받들어 나가고,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고 했는데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서 그대로 순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정욕대로 살지 말고, 육신 중심대로 살지 말고, 일시적인 안일주의로 살지 말고, 세상 향락주의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살고, 살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야만 됩니다.
날마다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을까?’를 찾아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영원히 하늘나라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2. 적그리스도를 주의하라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일어남

본문 18절에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아” 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믿음이 어린 사람들을 가리키고, 또한 모든 사람을 다 가리킵니다. 사도요한이 나이가 많아서 젊은 사람들을 향해서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고 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라는 말씀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라고 했는데,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인 줄은 무엇을 보고 안다고
했습니까?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는 걸 보고 압니다.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의 말씀대로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 때부터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났는데, 세상 끝 날까지 많이 일어납니다. 사도요한 때부터 마지막 때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지막 때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까지가 말세입니다. 2천 년 전부터 마지막 때라고 했는데, 왜 끝이 안 나느냐면,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참아주시기를 천년을 하루
같이 참아주시기 때문에 2천 년간 참아주신 것은 이틀 참아주신 것과 같습니다. 이제 이틀 지난 것은 그다지 큰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 때부터 마지막 때인데, 2천 년간 참아주신 것은 이틀 참아주신 것이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지막 때 중의 끝이라는 말입니다. 말세 중에 끝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났지만, 이 말세의 말에도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날 것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참 교회에서 나간 자들이 적그리스도임

본문에서 적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우리에서 나간자”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속했다면 나가지 않았을 것인데 나간 것을 보니까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나갔다는 것은 참 교회에서 나간 것입니다. 참 교회와 거짓 교회가 있는데 참 교회에서 나간 것을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참 교회는 하나인데, 로마 카톨릭에서는 교황의 통치를 받는 교회가 참 교회라 하고, 신교에서는 제도적 교회가 참 교회가 아니고, 질적으로 참된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참 교회라고 했습니까? 
에베소서 2:20에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운”교회가 참 교회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15에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참 교회라고 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즉 말하자면 기초가 진리이고 기둥도 진리이고 밝혀 나가는 것도 진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 교회입니다. 기초도 진리, 세워 나가는 것과 기둥도 말씀, 또 촛대로 밝혀 나가는 것도 말씀인 것이 참 교회입니다.

참 교회에 대한 3대 징표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례를 바로 거행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권징을 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교회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참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에 어긋난 것은 참 교회라 볼수 없습니다. 터가 말씀이 아니고 세워 나가는 것도 말씀이 아니고 인본주의고, 또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고 사람의 교회를 만들어 놓는 것은 다 참 교회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주인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야 되고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주장하는 교회가 되면 그것은 사단의 회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부지런히 권징을 해야 합니다. 왜 부지런히 권징을 해야 참 교회가 되는 것입니까? 마귀는 계속 누룩을 집어넣습니다. 마귀 역사가 계속 들어오고, 계속 일어납니다. 그것을 가만히 두면 전부 다 부패해서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교회의 성결성을 유지하려면 부지런히 권징을 해서 잘못된 것을 치료해야 합니다. 권징을 해서 하나님의 참된 진리와 순결성을 보존해 나가는 것입니다.

참 교회에서 나간 것이 적그리스도입니다. 참 교회에서 나간 것은 창조의 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첫째는 성경에 어긋나 맞지 않고, 그 다음에는 섭리를 거역합니다. 그 다음에는 권징을 안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난장판이 되고, 비진리가 들어오고 마귀 역사가 들어와도 권징하지 못하고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결국 참 교회가 다 몰락이 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이사야 1:21에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신실하던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창기가 되어서 각종 죄가 다 들어가서 어지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나간 것은 단지 교단이 갈라져 나간 것이 아니라, 참 교회 원리에서 나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참 교회에서 나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적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참 신을 대적하는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말세인 줄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얼마나 많이 일어났습니까? 신신학자들이 전부 다 거짓선지자입니다. 또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자들이 다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이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그릇된 신비주의로써 하나님 말씀 아닌 것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자들이 전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기독교를 핍박하는 세력입니다. 기독교에 대해 박멸정책을 쓰는 세상 나라들이 전부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 많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때입니다. 지금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습니까? 동정녀 탄생 부인하는 자들, 재림 부인하는 자들, 기독교를 박멸하고 멸절하려는 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런 적그리스도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제 마지막 때인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요새 열린 예배 같은 것이 다 잘못된 것입니다. 열린 예배, 기독교 사회주의, 세상주의를 교회에 끌어들이는 것이 전부 다 적그리스도인데, 이런 것들로 인해 교회가 전적으로 부패하고 세속화되는 것을 보고 “아, 이제는 마지막 때다”하며 마지막 때인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임

본문 19절에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입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3)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그 때 많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그노시스파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이신 줄 믿어야 하고,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신 줄 믿어야 하는데, 믿지 않고 그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무슨 중간 상태의 어떠한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것이 적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시인해야만 아버지도 시인하는 것입니다. 요새도 아들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 많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자들,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지 않는 자들이 기독교 안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신신학자들은 아들을 부인하며 “예수님은 그저 성인 가운데 하나다. 사람 가운데 좀 제일 나은 사람이다. 선생 가운데 제일 유명한 선생이다”라며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어야 되는데,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전부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어느 시대나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신신학자들, 즉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고, 신성을 부인하고, 재림을 부인 하는 자들이 전부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왔습니다. 기독교에서 나간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속했다면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인데, 나간 것을 보면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한 것이 분명합니다. 기독교 근본 교리에서 나간 자들, 탈선된 자들이 전부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중생한 영은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음

본문 20절에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본문 27절에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름 부음은 참되고 거짓이 없습니다.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서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있는데 그 기름부음이 가르친대로만 하면 그것은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까 틀림없습니다.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이제 모든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참되고 거짓이 없고, 바로 나갈 수 있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름 부었다는 것은 첫째, 중생, 즉 진리와 영감으로 우리 영혼을 중생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을 살릴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살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름 부은 것입니다. 또 중생한 영속에 진리와 영감이 내주, 내재하셔서 역사합니다. 본질이 진리와 영감으로 됐고, 중생한 영속에 진리가 있고, 진리가 역사하고, 성령께서도 역사하십니다. 그것이 기름 부은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와 영감으로 된 본질이 또 계속적으로 진리와 영감으로 역사하고 인도하는데, 그것은 참 되고 거짓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내 양은 내 음성을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알기 때문에 따라온다. 타인을 따르지 않는 것은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안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내 양이 내 음성을 안다’는 것은 기름 부음이 예수님의 음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알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속에 기름 부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 딱 들어맞습니다. 다른 것을 가져다 대면 안 맞습니다.
속에 기름 부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나타 자동차의 부속품은 소나타에 들이 대면 딱 들어맞습니다. 또 벤츠 자동차의 부속품은 벤츠 자동차에 가져다 맞추면 딱 들어맞습니다. 다른 것은 안 맞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속에 기름 부음이 있기 때문에 주의 음성을 들으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것이다!’ 백분의 일 밀리도 차이가 없습니다. ‘됐다! 이것이 실제다. 이것이 생명이다. 이대로 믿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 기름부음이 있는 사람은 주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 딱 들어맞습니다. 다른 사람의 음성을 들으면 안 맞습니다. 그것은 속이 편안하지 않고 시원치 않고 꺼림칙하고 그것을 가지고는 될 것 같지 않는 것입니다. 주의 음성 들어야 딱 들어맞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음성이 무엇인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의 음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이 주의 음성인데, 성경 말씀의 신령한 뜻을 영으로 가르치는 것이 주의 음성입니다. 성경 말씀의 신령한 바른 뜻을 영의 세계에서 받아 깨닫고 이것을 영으로 가르칠 때에 자기 속에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딱 들어맞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믿어야 되겠다, 이거다’ 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딱 들어맞게 따라 갑니다.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 학교에 김용기 장로가 있었는데, 왜정 말단에 덕소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아현교회 김현봉 목사님을 만났는데, 들어 보니까 딱 들어맞았습니다. ‘이게 진짜다.’라고 생각을 해서 덕소에서 아현교회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덕소에서 아현교회까지 한 칠십 리 되는데 그 거리를 자동차도 없을 때에 걸어서 나갔습니다. 딱 들어맞아서 나간 것입니다. 교회 없어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서 성경 해석하는 것을 들어 보니까 ‘이게 진짜다, 이게 예수님의 음성이다, 이거다’ 하고 칠십 리를 멀다 하지 않고 교회에 나가는 것입니다. 딱 들어맞았는데 칠십 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살아나고 속에 기름 부음이 있어서 주의 음성이 오니까 딱 들어맞은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어야 딱 들어맞습니다. 뭐 다른 것 아무리 먹어도 시원찮습니다. 김치를 먹어야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김치로 자라났기 때문에 본질이 김치를 먹어야 맞게끔 돼 있는 모양입니다. 다른 것 먹으면 잘 안 맞습니다. ‘양식 먹어라, 빵 먹어라, 뭘 먹어라, 이것이 영양이 많다.’ 해서 그것을 먹으면 시원찮습니다. 김치를 먹어야 딱 들어맞습니다. 아침에 우유 한 컵 먹으면 좋다고 해서 조금 먹어 봤는데 안 맞는 겁니다. 딱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속이 편안치 않고, 어떤 때는 소화도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 그만 두었습니다. 또 빵 먹으면 좋다는데,빵도 딱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제일 딱 들어맞는 것은 밥하고 김치입니다. 그것만 딱 들어맞는 겁니다.

속에 기름 부음 부은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딱 들어맞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다른 것은 맞지 않습니다. 철학이다, 과학이다, 무슨 학이다 하면서 세상 것을 아무리 가져다 줘도 그것은 속에 맞지 않습니다. 기름 부음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 미혹 받는 이유

그런데 비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은 왜 따라 가겠습니까? 속에 기름부음이 있는데 적그리스도를 따라가고, 비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 때문에 양심을 안 써서 잘못된 것을 따라가는 것이고, 또한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비진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미혹을 받는 이유는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욕심, 
둘째는 신앙양심을 쓰지 않는 것, 
셋째는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미혹을 받습니다. 중생한 사람도 양심 안 쓰면 마귀에게 끌려갑니다. 또 진리를 극진히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진리가 아니어도 따라갑니다. 그 다음에 욕심이 있으면 비뚤어집니다. 나침반이 남북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옆에 쇠붙이가 하나 들어가면 침이 비뚤게 됩니다. 남쪽을 가리키고 북쪽을 가리켜야 되는데, 옆에 쇠붙이가 들어가면 남쪽을 가리키다가 옆으로 비뚤어지게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뚤어져 나가면 남쪽으로 가려는 것이 서쪽으로 가게 되어 결국에는 서남쪽으로 갑니다. 가다가 파선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있으면 안 됩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은 우리로 하여금 기름 부음을 흐리게 만들고, 구름이 덮어서 해가 안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미혹이 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에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악한 자가 와서 미혹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다고 하였는데, 아주 겸손하고, 천진난만하고, 욕심 없이 말씀을 따라가면 반드시 주의 음성을 깨닫고, 분별하고,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본문 21절에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알기 때문에, 즉 말하자면 기름 부음이 속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쓴다는 것입니다.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았습니다. 기름 부음은 참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 적그리스도

본문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이건 그 당시에 그노시스파에서 물질은 다 악하므로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창조자이시고, 예수님은 피조물이고, 또 예수님은 육체가 아니고, 영으로 왔고, 영으로 창조된 자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그런 파가 많이 나왔는데 그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 적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은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일 뿐이다’라고 하면 적그리스도입니다. 또 반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일 뿐이고 사람은 아니다’라고 해도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서 두렵고 떨림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섬겨야 됩니다. 세례 요한은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을 어떻게 풀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로 믿고, 언제나 우러러 경외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예수님을 섬겨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치유하시고 우리 죄를 대속해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완전한 사람이시고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해서 승천하셨습니다. 세례 문답할 때 “예수님이 누구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까?” 하면 “내 죄 때문에”, 자기 죄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셨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삼일 만에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살아나서 어떻게 되셨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승천하셨다고 대답합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승천해서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놀고먹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틀렸습니다. 하늘나라 가서 놀고먹는 것이 말이 됩니까? 여기 놀고먹는 사람 있습니까? 놀고먹으면 안 됩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는데, 일하고 먹어야 됩니다. 노는 사람은 다 일하고 먹어야 합니다. 할 것이 없으면 길바닥이라도 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노는 것
은 성경위반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고 해야 맞습니다. 놀긴 왜 놉니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시고, 대언자가 되셔서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대언하고 계시고, 우리 구속을 이루어 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 중에 자기가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자기를 예수라고 합니까? 자기가 예수라 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문선명은 자기를 예수라고 하고, 재림주라고 합니다. 또 박태선은 감람나무라고 합니다.

감람나무는 예수님을 나타내는데, 자기를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상홍도 자기를 예수라고 했습니다. 안상홍이 무슨 예수입니까? 안상홍은 죽었습니다. 이렇게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이 몇이 있는데 전부 허무맹랑한 것입니다. 또 자기를 어린양이라고 하는 자도 나왔습니다. 자신이 어린 양, 즉 예수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전부 다 한가지로 말하면 적그리스도입니다. 전부 적그리스도인줄 알면 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이렇게 써 붙였다가, 저렇게 써 붙였다가하고, 또 ‘예수님은 사람 가운데 하나다, 선생이다, 인간은 선생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신신학자들도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또 ‘내가 예수다’ 하는 것도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 말하는 것은 전부 다 적그리스도로 알면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줄 알고,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완전한 속죄주이시고, 사람으로서 대속해 주시는 줄 알고, 지금도 우리와 같이 해 주시는 줄 알고, 예수님을 바로 알고 벌벌 떨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말로만 지식으로만 알지 말고, 진짜 하나님이신 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항상 같이 해 주시고, 항상 우리를 권고해 주시고, 살아계셔서 우리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3. 영생의 생활

본문 24-25절에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전부 다 들었습니다. 요한일서 1:1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들은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해야 합니다. 그가 약속하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인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본문 26-27절에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미혹하는 사람이 많이 나왔는데, 미혹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있기 때문에 기름 부음이 가르치는 대로 가면 미혹을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 있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우리가 압니다. 미혹하는 자는 목자의 음성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전부 다 조작이고 마귀소리고 혼란하고 혼돈이고, 이 미혹하는 세력은 기름 부음과 맞지 않습니다. 미혹하는 세력이 많이 나왔으나, 너희 속에 기름 부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면 미혹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늘 가르치는 대로, 주의 인도하는 대로 나가면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주의 음성이 아니면 안 맞습니다. ‘들어보니 이건 아니다, 속이 안 맞는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자의 말을 들어보면 ‘아니다’라는 것이 나옵니다. 성경에 안 맞습니다. 자기 심령에 맞지 않습니다. 심령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8절에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진리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의를 잘 이루어 나간 사람은 예수님 재림할 때 부끄럽지 않습니다.

본문 29절에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리스도에게서 난 줄을 압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요한일서 2:1-14 영으로 앎.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으로 앎
요한일서 2:1-14

1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7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바 말씀이거니와 8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9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12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 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 신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받음

우리의 대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본문 1절에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죄를 범하면 대신 기도해주는 대언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언자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기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면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해준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34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죄를 자복하면 예수님이 대신 간구해준다는 것입니다.

죄를 자복하지 않으면 기도해도 쓸 데 없습니다. 완고해졌고 생명에서 떠나있기 때문에 쓸 데 없습니다. 자기가 잘 하는 줄로만 알고 허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대언자라는 것입니다. ‘대언자’라는 말은 ‘보혜사(保惠師)’라는 말과 같은 말인데, 성령님께서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고 또 예수님이 우리의 보혜사가 되십니다. 대언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기도해주십니다. 우리가 미련하고 게을러서 기도를 잘 못해도, 예수님이 기도 해주시는 그 기도로 인해서 우리가 오늘까지 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 안 해주셨으면 우리는 벌써 죄 값으로 다 망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기도해주신다고 해서 방심부주의하고 죄를 거침없이 지으며,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예수님이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죄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죄에서 나오려면 날마다 회개하고 바로 서야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우리의 대언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계십니다.

택한 백성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

본문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자신을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우리를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화목 제물로 바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의 죄만 위해서 죽으셨는가? 본문에서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느니라”고 했는데, 택한 백성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해석이 있고,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택한 백성만 위해서 죽으신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택한 백성의 죄만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택한 백성을 구원하고, 택한 백성을 구원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바로 되고, 세상이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나가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죄 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들로 인해서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알게 되고, 하나님이 계신 것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하나님께 바로 해야 되겠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로마서 8:21에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피조물이 지금 마귀의 종노릇하고 죄악의 종노릇하는데, 이제 곧 해방이 된다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을 구원해내서 죄악에게 이용되던 피조물이 해방이 되어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하나님의 뜻에 이용당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0에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마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택한 백성이 구원받음으로 인해서 만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이용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판도 연기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만물에게 미친다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이 구원받음으로 인해서 이 세상 만민과 만물이 다 망할 것이 망하지 않았습니다. 택한 백성의 구원이 아니었으면 다 망했을 것인데, 택한 백성이 구원받음으로 인해서 만민과 만물이 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만물이 죄를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택한 백성이 구원받음으로 인해서 만민이 죄를 알게 됩니다. 그 전에는 몰랐는데 믿는 사람을보고 세상 사람들이 죄를 알게 됩니다. 우상 섬기는 것이 죄라는 것도 택한 백성이 구원받음으로 인해서 알게 됩니다.
만민을 위해서 죽었다는 말, 즉 온 세상을 위해서 죽었다는 말이 그런 것입니다. 온 세상이 망할 것을 건져주시려고 택한 백성을 건져내신 것입니다. 택한 백성의 죄만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불택자를 위해서 죽었다고 하면 예수님의 피가 낭비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왜 피를 흘렸겠냐는 말씀입니다. 불택자는 믿지 않을 것을 분명히 아시는데, 예수님의 피를 그 사람들을 위해서 흘려주었다고 하면 예수님의
피가 다 허비되고 마는 것입니다. 피를 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만 위해서 흘린 것이 분명합니다. 불택자는 아무리 해도 안 믿을 것을 알지 않겠습니까? 오지 않을 것을 알지 않겠습니까? 믿지 않을 것을 아는데 왜 그 사람들을 위해서 피 흘려주겠습니까? 그 사람들을 위해서 피 흘려주면 피가 다 허비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택한 백성의 죄만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 피흘려주심으로 택한 백성이 구원받고, 불택자도 택한 백성이 구원받는 것으로 인해서 많은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아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임

본문 3-4절에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를 아노라하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아노라 하고 계명을 안 지키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이고,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아노라 하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이고 거짓말하는 자가 되고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 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알면 그 말씀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안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아닙니다. 옛날로 말하면 왕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왕의 명령을 지키고, 왕의 명령을 안 지키는 자는 왕을 참으로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왕을 참으로 아는 사람이 왕의 명령을 안 지킬 수가 없습니다. 경찰을 참으로 알면 경찰의 명령을 지킵니다. 안 지키는 것은 참으로 알지 못하는 자인데,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5절에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고 하였는데,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 지키는 자는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자이고, 그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로써 저를 아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지켜야 하나님을 아
는 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 온전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는 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3. 형제를 사랑하라

옛 계명과 새 계명은 사랑하라는 것임

본문 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고 했습니다.

옛 계명은 이미 너희가 들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6:5-8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19:18에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3:34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옛 계명이 무엇입니까? 옛 계명도 ‘사랑하라’입니다. 율법의 강령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인데, 이것이 옛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새 계명은 또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새 계명이란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입니다.

그러면 옛 계명과 새 계명이 같습니까? 예,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하는 것이 옛 계명도 되고 새 계명도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하라는 것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빛의 세계는 사랑의 세계임

본문 8절에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어두움이 지나가고 믿는 사람에게는 참 빛이 비추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4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자는 자는 그 빛을 알지 못합니다. 낮에도 자니까 눈만 감으면 마치 밤과 같습니다. 깨어서 일어나면 그 빛이 비추어집니다.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 있습니다.
그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사랑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9-10절에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입니다.
참으로 빛 가운데 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있는 자인데,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있는 자는 형제를 미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이고, 그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며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본문 11절에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디에 있는 자입니까? 어두움 가운데 행하는 자이고, 갈 곳을 알지 못하고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입니다. 불쌍히 여겨야 됩니다. “어두움이 그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자는 눈이 다 멀어서 어두운 가운데 헤맵니다. 갈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빛 가운데 들어가면 환하게 갈 곳이 보이고 또 형제를 사랑하게 되고 심령이 밝아지고 그리스도 빛 가운데서 행할 수가 있습니다. 미워하는 세계는 사망의 세계입니다. 미워하는 세계는 어두움의 세계입니다. 미워하는 세계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는 자가 거하는 곳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먼저 들어가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들어가면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되고, 빛 가운데 거하게 되고 눈이 밝아집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눈이 밝아집니다. 그러면 갈 바가 밝히 보입니다.
계명을 안 지키면 어두움 가운데로 쫓겨날 수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자기의 본능이 됩니다. 자기의 신앙 본능이 사랑이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계명을 안 지키는 자는 사랑 가운데 거하는 자가 아닙니다. 어두움에 있는 자입니다. 어두움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눈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해야만 눈이 밝아지고 갈 곳을 밝히 보고, 사랑해야만 그 빛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됩니다.


4. 각 신자의 정도대로 권면함

본문 12-13절에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말하고 아비들에게 말하고 청년들에게 말했습니다. 자녀들은 젊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너희에게 쓰는 것”은 현재 쓰는 것인데, 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초보적 신앙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 아비들은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는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연조가 많은 사람들은 근본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오랫동안 배우고 체험하고, 그래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또한 청년들에게는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과 신앙의 청년들은 악한 마귀를 잘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영광스러운 신자들이 됩니다.

본문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아이에 대해서 말하고, 아비에 대해서 말하고, 청년에 대해서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라는 것은 하나님을 알았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아버지를 알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 아비들, 즉 신앙의 연자가 오랜 사람들은 태초부터 예수님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위의 13절과 같습니다. 아비들은 오랫동안 배우고 신앙의 경험이 많아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잘 아는
것입니다. 청년들, 즉 신앙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너희가 강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이 젊은 사람들은 강하고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다”고 하십니다. 신앙의 젊은 용사들은 마귀를 잘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흉악한 자는 마귀입니다. 강하고 시험도 잘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있고, 모든 흉악한 마귀 역사를 잘 이기는 신앙의 용사들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다 이기었는데 그래서 이 편지를 썼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1:1-10 영적 사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적 사귐

요한일서 1:1-10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5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1. 생명의 말씀
생명의 말씀인 그리스도께서 영원부터 계시다가 나타내신바 됨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기록을 했고, 기록한 장소는 에베소, 기록한 때는 주후 90년경입니다.

본문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태초는 영원한 태초입니다. 시작이 없습니다.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영원부터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은 1:2-3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태초부터 말씀이 계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태초부터 성자께서 말씀으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이 말씀에 관하여는”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눈으로 봤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눈으로 봤다는 것이고, 또한 손으로 만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손으로 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생명의 말씀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손으로 만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내신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우리가 보았고”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봤다는 것입니다. 또한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 영원부터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이십니다.


2. 증거의 목적

예수를 믿음으로 서로 사귐이 있음

본문 3절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복음을 믿는 사람은 서로 사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귐이 됩니다. 교제하고 교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고, 아버지와 사귀고, 또 성도들과 사귑니다.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생명을 받았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성도와 서로 사귐이 있는 세계입니다.

증거의 목적은 기쁨이 충만케 하려함

본문 4절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를 기록해 보내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입니다. 이 편지, 이 성경을 써서 보내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그 사람들이 믿게 되면 얼마나 기쁨이 충만하겠습니까?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예수 믿게 되면 얼마나 기쁨이 충만하겠습니까? 아흔아홉 마리 있는 양보다 한 마리 잃었던 양을 찾은 기쁨이 더하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성도들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 말씀을 기록도 하고, 전하기도 하고, 전도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을 구원하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1-22에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전도해서 한 사람 데리고 나오면 기쁩니다. 아이 없는 집에서 어른끼리 살다가 아이 하나 낳으면 아주 예쁩니다. 아이를 놓고 아주 즐거워하고 웃고 별소리 다 합니다. 그러나 어른끼리 살면 필요한 말만 합니다. “어디 갔었냐? 저녁때인데 음식 가져오라”와 같이 필요한 말만 합니다. 아이가 하나 있으면 필요한 말만 하지 않고, 괜히 쓸데없는 말까지도 아이들에게 많이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놓고 기뻐하는 것처럼, 전도하면 그 가정과 교회가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가정에 기쁨이 임합니다. 전도하십시오. 전도해서 생명을 얻으면 아주 기뻐합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하면 인사했다고 좋아하고, 또 아이가 손을 흔들고 다리를 흔들흔들하면 기뻐서 아이에게 할 소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너희에게 써서 보내는 것은 너희가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오고 하나님께 바로 서면 아주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전도해서 새 교인이 나와야 교회에 기쁨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것을 써 보낸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고 써 보냈습니다.


3. 빛 가운데 행하라

빛과 생명이신 하나님

본문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라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것은 영적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빛이십니다.
그에게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는 말씀은 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어두움이라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밝다는 것입니다. 빛이시니까 밝게 비추어 나가십니다. 그래서 어두움이 다 드러나고, 모든 허물이 다 드러나고, 좋은 것도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어두움이 다 드러납니다. 어두움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시니까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래서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시고 또 빛이시고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믿은 대로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는 밝은 세계입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빛의 세계는 시원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기쁨이 충만한 세계고, 생명 있는 세계고, 성령으로 역사하는 세계로 다 같은 세계입니다. 한 세계입니다. 생명, 빛, 성령이 다 한 세계입니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하라

본문 6절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귀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과 교통한다고 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있으면 거짓말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두운 가운데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 점과 흠과 티와 같은 것이 다 어두운 데 있는 것입니다.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죄짓고 나가고,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아직도 빛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빛 가운데 있고 어두운 가운데 있지 못하겠는데, 하나님과 사귄다고 하고도 어두운 가운데 있으니까 거짓말하는 자이고 사귐이 없는 자입니다.

본문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합니다.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진리 가운데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진리 가운데서 죄를 떠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 즉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은 서로 사귐이 있다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서로 교통이 됩니다. 영적 교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빛 가운데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는 죄를 지으면 거기서 쫓겨납니다. 죄를 짓고는 못 삽니다. 빛 가운데서 살 수 없습니다. 죄는 흑암에 속한 것이므로,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죄 가운데 빠지지 못합니다. 만약 죄 가운데 빠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두움에 있는 자이고 또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빛
가운데 있으면, 빛 가운데 행해야 하겠는데 그것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있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행동이 어두운 가운데 사는 자로 나타나는 자는 빛 가운데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빛의 행동이 나타나고, 의와 선과 믿는 일과 거룩한 생활이 나타납니다. 빛 가운데 있으면 그곳이 하나님의 세계니까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죄만 짓고 양심 안 쓰고 어두운 가운데서 컴컴한 행동만 하고 돌아가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이고, 또한 하나님과 사귐이 없습니다.


4. 각죄(覺罪) 회개

자기 죄를 숨기지 말고 자복할 것

본문 8절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죄 없다 하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전도서 7:60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10에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기도할 때도 “범죄 치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 없다고 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 했습니다.

본문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자백을 해야 합니다. 잠언 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죄를 자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합니다.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죄를 언제나 자복하고 버려야 됩니다.

기도할 때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해야 되는데 회개할 것이 없다는 것은 어두워지고 완악해져서 그렇습니다. 발뒤꿈치와 같이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조그만 가시 하나 들어가도 아파야하는데 굳어졌기 때문에 모릅니다. 흑암 속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다고 합니다. 완악해진 것입니다.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해야 됩니다.

상한 심령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자기 죄를 늘 발견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아, 내가 뭘 잘못했다’ 하면서 자기가 잘못한 것을 늘 찾아야 합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잘못했는지.’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 한 주 동안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찾으라는 것입니다. 언행심사, 말과 행위와 생각에서 마음으로 지은 죄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하는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해주십니다.

본문에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죄를 자백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죽은 걸 믿으면 사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가 있으니 찾아서 회개할 것

본문 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죄 없다고 하면 왜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까? 열왕기상 8:46에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라고 했습니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다 죄인이라고 했는데 자기가 범죄 하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에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죄 없다고 하면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습니다. 완악한 심령, 교만한 마음, 어두워진 심령은 참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 속에 없습니다. 온유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자기의 잘못을 날마다 찾아야 됩니다. 자기의 잘못, 부족한 것,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것, 말씀대로 하지 못한 것, 말씀대로 함에 있어서 부족한 것, 충성 다하지 못한 것을 찾아서 회개해야 됩니다. 사랑하지 못한 것, 미워한 것, 용서하지 못한 것, 그런 것들을 다 찾아서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깨끗케 해주십니다. 회개하지 않고 그냥 나가면 심령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진리가 그곳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고,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