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요한일서 1:1-10 영적 사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적 사귐

요한일서 1:1-10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5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1. 생명의 말씀
생명의 말씀인 그리스도께서 영원부터 계시다가 나타내신바 됨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기록을 했고, 기록한 장소는 에베소, 기록한 때는 주후 90년경입니다.

본문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태초는 영원한 태초입니다. 시작이 없습니다.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영원부터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은 1:2-3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태초부터 말씀이 계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태초부터 성자께서 말씀으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이 말씀에 관하여는”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눈으로 봤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눈으로 봤다는 것이고, 또한 손으로 만졌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손으로 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생명의 말씀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손으로 만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내신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우리가 보았고”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봤다는 것입니다. 또한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 영원부터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이십니다.


2. 증거의 목적

예수를 믿음으로 서로 사귐이 있음

본문 3절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복음을 믿는 사람은 서로 사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귐이 됩니다. 교제하고 교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고, 아버지와 사귀고, 또 성도들과 사귑니다.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생명을 받았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성도와 서로 사귐이 있는 세계입니다.

증거의 목적은 기쁨이 충만케 하려함

본문 4절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를 기록해 보내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입니다. 이 편지, 이 성경을 써서 보내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그 사람들이 믿게 되면 얼마나 기쁨이 충만하겠습니까? 전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예수 믿게 되면 얼마나 기쁨이 충만하겠습니까? 아흔아홉 마리 있는 양보다 한 마리 잃었던 양을 찾은 기쁨이 더하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성도들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 말씀을 기록도 하고, 전하기도 하고, 전도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을 구원하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1-22에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전도해서 한 사람 데리고 나오면 기쁩니다. 아이 없는 집에서 어른끼리 살다가 아이 하나 낳으면 아주 예쁩니다. 아이를 놓고 아주 즐거워하고 웃고 별소리 다 합니다. 그러나 어른끼리 살면 필요한 말만 합니다. “어디 갔었냐? 저녁때인데 음식 가져오라”와 같이 필요한 말만 합니다. 아이가 하나 있으면 필요한 말만 하지 않고, 괜히 쓸데없는 말까지도 아이들에게 많이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놓고 기뻐하는 것처럼, 전도하면 그 가정과 교회가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가정에 기쁨이 임합니다. 전도하십시오. 전도해서 생명을 얻으면 아주 기뻐합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하면 인사했다고 좋아하고, 또 아이가 손을 흔들고 다리를 흔들흔들하면 기뻐서 아이에게 할 소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너희에게 써서 보내는 것은 너희가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오고 하나님께 바로 서면 아주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전도해서 새 교인이 나와야 교회에 기쁨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것을 써 보낸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고 써 보냈습니다.


3. 빛 가운데 행하라

빛과 생명이신 하나님

본문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라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것은 영적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빛이십니다.
그에게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는 말씀은 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어두움이라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밝다는 것입니다. 빛이시니까 밝게 비추어 나가십니다. 그래서 어두움이 다 드러나고, 모든 허물이 다 드러나고, 좋은 것도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어두움이 다 드러납니다. 어두움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시니까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래서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시고 또 빛이시고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믿은 대로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는 밝은 세계입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빛의 세계는 시원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기쁨이 충만한 세계고, 생명 있는 세계고, 성령으로 역사하는 세계로 다 같은 세계입니다. 한 세계입니다. 생명, 빛, 성령이 다 한 세계입니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하라

본문 6절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귀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과 교통한다고 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있으면 거짓말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두운 가운데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 점과 흠과 티와 같은 것이 다 어두운 데 있는 것입니다.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죄짓고 나가고,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아직도 빛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빛 가운데 있고 어두운 가운데 있지 못하겠는데, 하나님과 사귄다고 하고도 어두운 가운데 있으니까 거짓말하는 자이고 사귐이 없는 자입니다.

본문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합니다.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진리 가운데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진리 가운데서 죄를 떠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 즉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은 서로 사귐이 있다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서로 교통이 됩니다. 영적 교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빛 가운데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는 죄를 지으면 거기서 쫓겨납니다. 죄를 짓고는 못 삽니다. 빛 가운데서 살 수 없습니다. 죄는 흑암에 속한 것이므로,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죄 가운데 빠지지 못합니다. 만약 죄 가운데 빠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두움에 있는 자이고 또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빛
가운데 있으면, 빛 가운데 행해야 하겠는데 그것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있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행동이 어두운 가운데 사는 자로 나타나는 자는 빛 가운데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빛의 행동이 나타나고, 의와 선과 믿는 일과 거룩한 생활이 나타납니다. 빛 가운데 있으면 그곳이 하나님의 세계니까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죄만 짓고 양심 안 쓰고 어두운 가운데서 컴컴한 행동만 하고 돌아가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이고, 또한 하나님과 사귐이 없습니다.


4. 각죄(覺罪) 회개

자기 죄를 숨기지 말고 자복할 것

본문 8절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죄 없다 하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전도서 7:60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10에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기도할 때도 “범죄 치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 없다고 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 했습니다.

본문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자백을 해야 합니다. 잠언 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죄를 자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합니다.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죄를 언제나 자복하고 버려야 됩니다.

기도할 때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해야 되는데 회개할 것이 없다는 것은 어두워지고 완악해져서 그렇습니다. 발뒤꿈치와 같이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조그만 가시 하나 들어가도 아파야하는데 굳어졌기 때문에 모릅니다. 흑암 속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다고 합니다. 완악해진 것입니다.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해야 됩니다.

상한 심령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자기 죄를 늘 발견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아, 내가 뭘 잘못했다’ 하면서 자기가 잘못한 것을 늘 찾아야 합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잘못했는지.’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 한 주 동안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찾으라는 것입니다. 언행심사, 말과 행위와 생각에서 마음으로 지은 죄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하는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해주십니다.

본문에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죄를 자백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죽은 걸 믿으면 사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가 있으니 찾아서 회개할 것

본문 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죄 없다고 하면 왜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까? 열왕기상 8:46에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라고 했습니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다 죄인이라고 했는데 자기가 범죄 하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에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죄 없다고 하면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습니다. 완악한 심령, 교만한 마음, 어두워진 심령은 참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 속에 없습니다. 온유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자기의 잘못을 날마다 찾아야 됩니다. 자기의 잘못, 부족한 것,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것, 말씀대로 하지 못한 것, 말씀대로 함에 있어서 부족한 것, 충성 다하지 못한 것을 찾아서 회개해야 됩니다. 사랑하지 못한 것, 미워한 것, 용서하지 못한 것, 그런 것들을 다 찾아서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깨끗케 해주십니다. 회개하지 않고 그냥 나가면 심령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진리가 그곳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고,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