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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일 토요일

베드로전서 2:9-25 인고효주(忍苦效主).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인고효주(忍苦效主)
베드로전서 2:9-25

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18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고, 거룩한 나라이고,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그분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들이다.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는 외국인과 나그네 같은 너희에게 영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한다. 

2:12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서 행실을 선하게 하여라. 이는 그들이 너희를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비방하다가도 너희의 선한 행위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날에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님을 위해 복종하여라. 권세를 잡은 왕에게나, 

2:14 또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을 칭찬하기 위해 왕이 보낸 총독들에게 복종하여라. 

2:15 이는 너희가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2:16 너희는 자유인으로 살아라. 그러나 그 자유를 악행의 구실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라. 

2:17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왕을 존경하여라. 

2:18 종들아, 너희는 모든 일에 두려움으로 주인들에게 복종하여라. 선하고 너그러운 자들에게 뿐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렇게 하여라. 

2:19 누구든지 부당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여 슬픔을 참으면 이것이 은혜이다. 

2:20 너희가 죄를 지어 매를 맞고 참는다면 무슨 칭찬이 있겠느냐? 그러나 너희가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운 일이다. 

2:21 너희가 이것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기 때문이다. 

2:22 그분은 죄를 짓지 않으셨고, 그분의 입에는 거짓이 없으셨으며, 

2:23 그분은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맡기셨다. 

2:24 그분이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를 친히 짊어지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이 채찍에 맞아 상하심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으나,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신 분께 돌아왔다.


1. 신자의 신분

본문 9-10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신자들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요, 또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사랑하셔서, 사랑으로 택하여 준 족속입니다. 우리가 사랑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고 볼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사랑의 대상자로 삼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또 왕 같은 제사장이다, 즉, 세력이 없는 제사장이 아니라 왕권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제사장의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되고, 또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바쳐야 하고, 그 다음엔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받으심직하게 하는 일, 이것이 제사장의 할 일입니다. 금년에 몇 명 인도했습니까? 또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몇 명을 받으심직하게 길렀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받으심직하게 성도들을 잘 길러나가야 됩니다. 심방하는 사람들은 자기 구역에 있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받으심직한 성도들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하나님 앞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받으심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무엇입니까? 거룩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라고 하였는데, 거룩으로 교제하는 나라라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더럽고 부정한 것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는, 개인적인 더럽고 부정한 것은 다 내어 놓고, 거룩한 주의 이름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중생한 영으로, 거룩한 나라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셨으니까 거룩하고, 하나님의 것이니까 거룩합니다. 성도들이 주의 이름으로 모이면 거룩한 나라가 됩니다. 성도가 교회에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섬길 때는 다 거룩한 나라입니다. 다 거룩한 성도입니다. 전에 마귀 노릇 하던 것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나라가 된 믿는 백성 가운데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 다음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을 삼았습니까? 본문 2장 3절에,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그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고 너희를 이렇게 불러 택해주시고 제사장을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하나님의 그 사랑,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의를 세상에 선전하게 하려고 너희를 불러줬다고 했습니다.


2. 승육(勝肉)생활

본문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은 나그네요, 행인입니다. 행인의 삶은 잠시 잠깐이면 지나갑니다. 나그네 생활을 끝마친 다음엔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가야 됩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야곱도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살았으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한 성, 즉 더 나은 본향을 예비했다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11절에,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부패성이 속에 있습니다. 그것을 늘 제어하고, 아예 말살을 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영혼이 살 수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항상 너희가 부패성을 제어하고 정욕을 제어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사랑이 충만하고, 의롭고, 거룩하신 그 하나님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3. 제도 순종
본문 13-14절에,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을 세우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왕이든지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세워놓은 다음에는 그 왕이 잘 하기를 기도해줘야 되겠습니다. 받들어나가야 되고, 또 그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평안해야 너희가 평안히 믿는 일도 하고, 또 복음도 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왕 자리에 대통령이 있으니까 대통령이 왕입니다. 그가 잘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주라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그 손해가 성도들에게 다 옵니다. 잘하면 또 혜택이 성도들에게 다 옵니다. 대통령이 잘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본문 15-17절에,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유합니다.
신자는 영의 자유,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면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종과 같이 우리가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 말씀했는데 ‘사환들’이란 아랫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데 있어 선하고 관용하는 윗사람만 순종하는 게 아니라 까다로운 윗사람에게도 순복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잘 된다는 말입니다. ‘까다로운 자에게도 그리하라’고 하였듯이 까다로운 윗사람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4. 인고효주(忍苦效主)

19-20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은 세 가지입니다. 애매히 받는 고난이 있고(19절), 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고난과,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20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상급이 큽니다. 하나님 앞에 제일 아름다운 일입니
다. 선을 행하면 고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또 자신의 구원도 이루어지고, 끝까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주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도 되는 것입니다. 애매히 고난 받는 것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잘 참으면 그것도 아름답습니다. 주님이 선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면 죄가 있어서 받는 고난은 유익이 없을까요? 그것도 유익이 많습니다. 그래야 회개하지 않겠습니까? 고난 받지 않으면 회개하지 못합니다. 죄가 있어서 매를 맞고 고난 받아도 회개할 기회가 생겼으니까 유익이 많은 것입니다. 죄가 있는데도 매 맞지 않으면 내내 못되게 나가다가 망할 것 아닙니까?

본문 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을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해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고 참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자기의 구원도 되고, 다른 사람의 구원도 되고, 하나님의 빛이 널리 비추어나가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본문 21절 중반 절에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리스도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발자취는 무엇입니까? 죄 없이 욕을 받았지만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그 고난 안 받으려고 대적하지도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한 그것입니다. 욕을 받아도 대신 욕하지 않고 그 욕을 잘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치 않으셨고, 욕먹으실 일이 한 가지도 없는데 많은 욕을 잡수셨단말입니다. 그래도 대신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각종 잘못을 다 했다고 해도 가이사의 ‘반역자다, 성전을 헐겠다고 한 자다, 율법을 고치겠다는 자다,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다’라는 등 별것을 다 갖다 붙였지만 예수님은 대신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한테 다 맡기셨습니까?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로 다 심판해주실 것이므로 자기가 할 것이 아닙니다. 또 섭섭해 하셨습니까? 내가 안 했는데 왜 했다고 하느냐고 하며, 예수님이 섭섭해 하신 게 아닙니다. 안한 걸 했다고 해도 가만히 있으셨습니다. 모든 고난을 다 갖다가 예수님께 지웠어도 그 고난 안 받으려고 하지 아니하시고, 또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다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신 발자취입니다. 그 발자취를 따라오면서 예수님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것과 욕먹은 것을 잘 배워나가라는 겁니다.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하나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욕하고 고난을 주나? 그러나 그것을 누구에게 다 맡기라구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세밀하게 다 심판해주실 것이고, 아닌건 아니라고 밝혀질 것이고, 또 죄를 지었으면 죄지은 것을 나타나게 해주실 것이니, 파리 한 마리도 안 잡아먹었는데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입니다. ‘안 잡아먹었다’ 한 마디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잘못했는지 안 했는지, 파리 잡아먹었는지 안 잡아먹었는지 그대로 드러내주십니다. 그러니 ‘안 잡아먹었는데 왜 잡아먹었다고 그랬느냐, 사람을 죽이려고 하느냐’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안 죽습니다. 안 잡아먹었는데 왜 죽겠습니까? 잡아먹었다고 해도 안 죽으니까 욕을 해도 순순히 그 욕
을 먹으라는 말입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 다음엔 어떻게 하셨습니까?

본문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고난주는 게 문제가 아니고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자기 사명 다하고, 자기가 순종할 것을 순종하고, 자기에게 지워주신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것을 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좋은 것을 하겠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지워주시는 대로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그러면 공의로 심판 하시는 하나님께서 다 드러내주실 날이 옵니다. 자기가 진실하게 양심대로 하고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이 다 드러내줄 날이 옵니다. 요셉이 죄 짓지 않은 것 드러내 주신 날이 오지 않았습니까? 죄 졌다고 해서 감옥에 가두었지만 다 드러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각종 잘못을 했다고 뒤집어 씌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예수님 죄 없으신 것을 다 드러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주시는 왜 마시지 않겠다고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주는 잔이 여러 개입니까? 한 개입니다. 여기서 주는 잔을 안 마시고, 다른데서 주는 잔을 마시려고 거기에 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다른 잔입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잔을 주셨는데 그 잔을 안 마시고 딴 잔만 마시겠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쓰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라고 했는데 갈릴리에 가서 지겠다고 하면 그것도 안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셔서 고난을 당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땅에 퍼진다고 했는데,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갈릴리에
가서 좀 쉬운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지워 준 십자가는 예루살렘에서 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어디까지 복종하셨습니까? 친히 나무에 달려 죽기까지, 자기 몫으로 주어진 십자가, 또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시니까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사시고 우리도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기 할 일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말들을 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어보시니까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라 합니다,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합니다”라며, 세상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 답변도 하지 않으시고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날 누구라 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 말 저 말 하는 거 다 들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말하라고 그냥 놓아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에 대하여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게 복이 있다. 네가 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알게 하셨다. 그런데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살아나야 되겠다”고 가르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하자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는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것, 십자가 멀리하겠다는 것, 또 예루살렘에서 지라고 했는데 다른 데 가서 지겠다고 하는 것 등은 전부 자기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곳에서 십자가를 져야지, 다른 데 가서 지겠다는 것은 안 됩니다. 전도도 하나님이 요나엑 어디 가서 하라고 하셨습니까? 니느웨로 가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말씀을 순종해서 전도를 하긴 하는데 다시스로 가서 하겠다고 해서 잘 되었습니까? 전도하는 건 니느웨 가서 하는 거나 다시스에 가서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니느웨 사람도 사람이고 다시스 사람도 사람인데 아무데서나 전도하면 되지 왜 꼭 니느웨를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그래도 니느웨로 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 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습니까? 죽으니까 성공입니까 실패입니까? 성공입니다. 안 죽으셨으면 실패입니다. 죽었더니 하나님이 살려놓았습니다. 지극히 높여 놓으셨습니다. 모든 무릎을 꿇게 만드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주라’ 칭하여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살려놓았습니다. 자, 이것이 대성공 아닙니까?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나님이 명하신 곳에서 자기 할 일을 순종하고 사명을 다하니까 많은 열매가 맺혔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가 맺힙니다.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가는 문제가 안 됩니다.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책임, 자기 갈 길, 자기의 진 십자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메워주신 멍에 잘 감당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몫에 내어준 그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가고, 또 지고 나가다가 죽으면 하나님이 살려놓으십니다. 높여놓으십니다. 더불어 많은 사람도 살려놓습니다. 또 하나님이 이로써 영광을 받으십니다. 

본문 25절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양과 같이 길을 잃었었는데 이제는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예수님에게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명을 다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그 예수님에게로 돌아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욕 안 먹었으면 우리가 예수님에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고난을 안 받았으면 우리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사명을 다하셨으니까 살아난 것입니다. 욕을 먹고 안 먹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난 받고 안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사명을 다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고, 사명을 다하다가 죽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 이루어져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