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너희가 때가 오래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너희가 때가 오래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히브리서 5:12-14 너희가 때가 오래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너희가 때가 오래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히브리서 5:12-14

12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1. 어린 신자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함

본문 12절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믿은 지가 오래 되었다는 말입니다. 믿은 지가 오래된 사람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어린아이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하는 말씀도 되고, 권면하는 말씀도 됩니다. 예수 믿은 지가 오래된 사람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믿은 사람도 있고 또 수십 년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 오래 믿었으면 이제는 마땅히 선생이 되었어야 할 텐데, 아직도 초보에 머물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지가 오래되었어도 믿음을 안 지킨 사람은 선생이 되지 못합니다.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하였는데, 믿은 지가 오래 되었지만,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이유

◉ 마음이 세상 염려와 재리에 가득 차 있고, 완고함

본문 13절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면 때가 오래 되었으면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왜 선생이 되지 못했습니까? 그것은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마음이 길가 밭과 같이 완고하고, 돌밭과 같이 고집이 있고, 가시밭과 같이 세상 염려와 재리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믿은 지가 오래 되었지만 선생이 될 수 없습니다.

◉ 은혜를 받지 못함

그 다음에는 히브리서 6장 7절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야 된다고 했습니다.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해야만 자라나겠는데,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지 못합니다.
즉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이 신령한 은혜를 내리워 주실 때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은 믿은 지가 오래 되었어도 초보적인 신앙에만 머물게 됩니다. 또 은혜를 받아도 그릇에 구멍이 뚫린 사람은 다 새어 나갑니다. 모래밭과 같아서 비가 오면 다 빠져나가 몇 시간 후면 다 말라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진리와 영감의 은혜를 받아서 자라나야 되겠는데, 악습이 있어 그리로 다 새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밤낮 그 자리에 있습니다. 

◉ 말씀의 초보와 기초를 버림

그 다음에 말씀의 초보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기초를 버린 사람은 자라지 못하므로 초보적인 신앙에 있습니다. 기초는 신앙양심입니다. 신앙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합니다. 양심을 삐뚤게 쓰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어린아이의 신앙으로 있습니다.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초보적인 진리를 내버리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초보적인 것을 내버린다는 것은 제일 중요한 주일을 못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초보적인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고, 제 칠일은 하나님의 안식일로 너나 네 가족이나 우양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주일은 하루 종일, 즉 24시간이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날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주일 예배시간에 빠지는 사람도 있고, 직장에 가느라고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의 기초가 무너진 것입니다.

또 주일에 예배당에 나왔다가 예배 한 시간만 참여하고, 그 다음에는 육신적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말씀의 기초가 무너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3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육에 속한 증거입니다.

육에 속한 것, 즉 시기와 분쟁하는 것을 가지고는 오래 믿어도 희망이 없습니다. 또 주일은 하루 종일 하나님의 날인데, 하나님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의 날을 지켜야 됩니다. 처음으로 예수를 믿어도 처음부터 주일을 잘 지키고, 양심을 바로 써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6:1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라고 하였는데, 처음으로 예수를 믿어도 철저하게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즉 “믿습니다” 하며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범사를 믿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또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라고 하였는데,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죽은 성도들이 모두 부활합니다. 이러한 기본 교리를 버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거나, 몸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도의 초보를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초보적인 기초를 쌓았다가 다시 무너뜨리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간다” 하는 이 진리는 초보적인 진리입니다. 천당 간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또 부활할 것을 믿고,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영생을 믿는데, 이것을 다시 무너뜨리면 안 됩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걸어가야지 “천당이 있겠나? 없겠나?” 의심하는 것은 초보적인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돌보아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믿다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나? 안 돌보아 주시나?” 하는 것은 초보적인 진리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보적인 진리를 무너뜨리고 다시 받으려고 하지 말고, 일단 초보적인 진리를 믿고, 그 진리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굳건하게, 끝까지 진리를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습니다, 천당을 믿습니다, 영생을 믿습니다, 심판을 믿습니다” 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며 나가야지,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겠나?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어떡하나?”하는 것은 초보적인 진리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에도 하나님께서 홍해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라지게 하셨으므로, 발자국을 뗄 때마다 “믿습니다” 하며 나가야 다 건너갈 수 있습니다. 가다가 “홍해가 합해지면 어떻게 할까?”하면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의심하면 홍해가 합해지고 맙니다. 하나님이 안도와 주십니다. 

그러므로 홍해를 건널 때에 첫발자국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면서 건너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맨 뒤에 떨어져서 건너오는 사람까지도 “믿습니다”하며 건너가야 합니다. “합해지면 어떻게 하나?”하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그 사람은 초보적인 진리를 버린 것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에 어떻게 건너가야 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하며 가야 합니다. 가다가 마지막에 한 발자국 남았을 때에 “합해지면 어떻게 하겠나?” 하고 믿지 않으면 합해지고 맙니다. 물에 장사되어 죽고 맙니다. 

그 다음에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라고 하였는데, 영원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는데, 영생을 얻을 자도 있고, 영벌을 받을 자도 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천년 왕국이있고, 천년 왕국이 지난 후에는 백보좌 심판이 있습니다(마 25:31-46). 

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습니다, 영원한 심판을 믿습니다”하며 믿음으로 계속 나가면, 처음으로 나온 사람도 영이 잘 자라나며, 좋은 신자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이런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나가면, 젖이나 먹는 초보적인 신앙에만 있게 됩니다.

젖은 초보적인 진리임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둘로 갈라 놓았습니다. 즉 젖과 단단한 식물로 갈라놓았습니다. 젖이나 먹는 사람도 있고,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젖이나 먹는다는 것은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신구약 성경을 초보적인 진리로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초보적인 진리로만 사는 사람들은 다 젖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을 초보적인 진리로만 가르치는 교회는 젖으로 먹이는 교회입니다. 

예를 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을 해석할 때에, 초보적인 진리로 해석하는 것은 즉, 젖으로 해석하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생명 길을 가는 것이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 사망 길을 가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단단한 식물은 신령하고 깊은 진리임

그러나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것은 그보다 한 계단 들어가서 예수 믿는 사람 중에서도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고,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것이 넓은 길로 가는 것이냐? 하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음란, 방탕하며, 주일을 안 지키고, 사기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넓은 문으로 가는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우상 섬기는 것 등이 다 넓은 길로 가면서 믿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믿긴 믿습니다. 목사나 집사 중에도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좁은 길로 가면서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일을 지키느라고 생명을 내어놓고 나가는 사람은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고, 생명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생명 길은 영적 생명이 자라나는 길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다 양보하고 “그저 믿습니다” 하며 나가는 것은 넓은 길로 가면서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르치는 것이 단단한 식물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사람은 힘을 많이 써야 됩니다. 또 연단을 많이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젖을 먹으면 쉽습니다. 젖을 먹으면 그저 우물우물하다가 꿀꺽 삼키면 넘어가지만 단단한 식물은 씹어야 되고, 또 까서 그 속에 있는 것을 먹어야 되므로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은 쉬운 게 아닙니다. 노력을 해야 됩니다. 즉 옳은 진리를 찾아 그 말씀대로 지키려고 애써야 합니다. 

또 예를 들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노아 방주에 탄 사람입니다, 즉 구원의 방주에 탄 사람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노아 방주에 못 탄 사람으로 다 망합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초보적인 진리입니다. 즉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은 “예수를 믿어도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어 나가야 된다, 세상을 이기는 방주를 만들어 나가야 된다, 즉 세상의 물이 들어오지 않는 방주를 만들어 나가야 된다, 앞으로 환난이 와도 그것을 다 이길 수 있는 실력 있는 방주를 만들어 나가야 된다, 이것이 노아의 방주를 탄 사람이다”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젖으로 먹으면 쉽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 들어오면 다 방주를 탔으니까 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사람은 교회에 들어왔어도 성경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즉 자기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말씀을 받아서 만들어 나가고, 또 말씀을 받아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방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단한 식물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으려면 힘을 많이 써야 됩니다. 말씀을 받으려니까 힘을 써야 되며, 또 그 말씀으로 자기를 만들어 나가려고 하니까 힘을 써야 됩니다. 또 세상을 이겨 나가야 하므로 힘을 써야 하고, 세상을 발로 밟고 위로 나가려고 하니까 힘을 써야 합니다. 단단한 식물은 힘을 많이 써야 됩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예수를 믿고 기도하니까 병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나았으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자기가 다른 사람의 병을 위해 기도해 주니까 다른 사람의 병이 나았습니다. 대구에서 신유은사로 유명했던 현신애 권사 같은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병을 기도해서 고쳐 주고, 귀신도 쫓아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만 믿는 것은 젖으로 먹는 것입니다. 이제 한계단 더 들어가서 단단한 식물로 먹으려면 기도해서 육신의 병이 낫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병 낫는 동안에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생명이다”하며 예수님을 내 생명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단단한 식물로 먹는 것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었습니다. 오천 명이 먹었으니까 “예수님의 능력이 크다”하며 여기까지만 알면 젖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것을 단단한 식물로 먹으려면 “떡은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이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고 육신이 산 것처럼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내 영혼이 살아야 되겠다”고 하며 나가는 것이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단한 식물을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보통 뭘
좋아합니까? 젖이나 먹고 그저 즐거워하며 좋아합니다. 단단한 식물은 힘이 드니까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나? 참 별나게 예수를 믿는다, 그렇게 믿는 것은 율법주의다, 성경을 다 행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하며, 젖으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오천 명이 먹은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지만, 예수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참으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고 하였을 때에는 다 달아났습니다. 열두 제자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희도 가려면 가라”고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하였습니다(요 6:68). 이것이 단단한 식물을 먹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참으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되겠습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자라납니다. 아이들도 젖만 먹으면 자라납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젖만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1년이 좀 지나면, 그 다음에는 이유식을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살이 되어도 젖, 두 살이 되어도 젖, 세 살이 되어도 젖만 먹으면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자라나지 못하고, 힘이 없습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처럼 성도들도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자라납니다. 단단한 식물은 성경에 깊은 진리 즉, 신령한 뜻입니다. 이것을 받아야 합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은 사람은 “그것은 하면 안 된다, 이겨야 된다”는 결심이 있지만, 젖을 먹는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 다 된 것이다, 괜찮다”하고 나갑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자라나겠습니까? “예수를 믿었으니까 구원받았다”하며 시험이 들어와도 시험을 이기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괜히 손해 볼 필요가 없다, 고난당할 필요가 없다”하며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며 나가는 것이 젖으로 먹은 것입니다.

이북에서 1948년 11월 3일에 선거를 했는데, 그날이 주일입니다. 주일에 선거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성도가 주일에 선거 안 하려고 결심을 하고 나갔는데, 장로 한 사람이 있다가 “우리가 왜정 때에도 다 양보하고 나갔는데, 이번에도 한번 양보하고 나갑시다”하며, 장로가 말하는 바람에 주일에 선거 안 하려고 했던 성도들이 폭삭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장로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은 것이니까 주일에 선거하는 것은 구원 문제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보하자”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젖으로 먹은 것이 확실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는 것은 젖으로 먹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것은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입니다. 젖으로 먹는 것은 몇 십 년 믿어도 내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믿었어도 그 자리에 내내 있습니다. 또 분별력이 없습니다.

2. 장성한 신자
단단한 식물을 먹음

본문 13-14절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단단한 식물은 성경의 신령한 깊은 진리를 가리킵니다. 단단한 식물은 오랜 신앙의 경험 속에서 선한 싸움을 싸워 연단을 받고, 깊은 기도와 신앙 체험과 성경을 깊이 연구하므로 깨닫게 되는 진리입니다. 영이 어린 신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합니다.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함

지각은 심령의 감각을 말합니다. 말씀을 순종할 때에 영이 자라나고, 영이 자라난 것 만큼 지각이 자라납니다. 성도는 영적 지각을 사용해야 연단을 받게 되고, 선악을 분별하게 됩니다. 지각을 사용한다는 것은 ‘영의 양식인가? 아닌가?’를 분별한다는 말입니다. 즉 ‘이 진리가 옳은가? 옳지 않은가? 이것을 먹어야 사는가? 안 먹어도 사는가?’를 지각을 사용해서 분별하라는 말입니다. 분별력이 없는 것은 어린아이입니다. ‘진리이냐? 진리가 아니냐? 영이 사는 것이냐? 영이 살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냐?’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는데, 영적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을 잘 받아 나가야 합니다. 

연단을 받아 단단한 식물을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은 다음에는 이로 씹어야 됩니다. 이로 씹으면 거기서 단맛이 나오는데 그것을 삼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소화를 시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 또 단단한 식물을 받아먹고, 새김질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힘을 얻고 자라나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처음으로 믿었어도 얼마 안 되면 선생이 됩니다.
오래 믿은 사람보다 앞 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보다 세리와 창기가 더 앞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마 21:31) 오래 믿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오래 믿은 사람이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면 그만 뒤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초보적인 진리를 버리지 말고 굳게 지키며, 단단한 식물을 주일마다 받아먹고, 그 말씀을 새김질하고, 그 말씀에서 힘을 얻어 나가야겠습니다. 또 그 말씀을 지키므로 자기의 실력을 만들고, 영적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나가야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올 대환난을 발로 밟고,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며, 하나님 앞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