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께 피하는 자의 복
시편 5:1-12
1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2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5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8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 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시편 5:1-12
1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2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5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8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 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1. 아침에 기도하고 바라봄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라
본문 아래에 작은 글자로 ‘다윗의 시,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노래’라고 하였는데, ‘영장(彾長)’은 노래를 인도하는 사람이고, 관악(管樂)은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류를 말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라
본문 아래에 작은 글자로 ‘다윗의 시,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노래’라고 하였는데, ‘영장(彾長)’은 노래를 인도하는 사람이고, 관악(管樂)은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류를 말합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소원을 다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기도뿐 아니라 심사(心事)까지 다 살피시어 모든 것을 해결해달라는 것입니다.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믿는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믿는 신앙입니다. 특별히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왕권으로 보호 하시고 다스리시며 인도해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 ‘나의 하나님이여’에서 하나님은 ‘엘로힘’이라는 말인데, ‘능력의 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기도는 ‘능력 있는 하나님’을 믿고, 왕이 되신 하나님, 자기 마음속을 다 통찰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보고하는 기도입니다.
본문 3절에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잘 들어주실 것을 믿고 하는 기도입니다. 즉, 만물을 접촉하기 전인 아침에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보다 새벽에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좋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잘 들어주십니다.
우리도 아침에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아침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쳐 기도하는 것이 아주 귀한 일입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 예배당, 산 등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깨어서 이불 속에서 기도하지 말고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난 다음에는 방안에서만 기도하지 말고, 바깥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기도가 아주 잘됩니다. 새벽에 깨서 이불 속에서 기도하려고 돌아누웠다가는 손을 모으고 자게 되기 십상입니다. 이불 속에서 기도할 때 마귀가 와서 ‘자라, 자라. 손을 모아라. 또 누워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 26장 14절에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고 하였고, 잠언 6장 10-11절에는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자던 자가 침상에서 일어나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려고 하지만, ‘좀더 졸자, 좀더 자자’하는 바람에 결국은 기도를 못하게 됩니다. 그만 잠만 자고 관둡니다.
무조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난 다음에 집안에서 기도하지 말고 밖에 나간 다음에 ‘한적한 곳으로’ 걸어가 거기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기도하려고 힘쓰면 할 수 있는데, 도무지 힘을 안 씁니다. 기도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힘을 쓰고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정신을 안 차리고 도무지 힘을 안 쓰는 것입니다. 기도를 못하고 기도를 못하니, 마귀의 종이 되어 믿는 일을 하나도 못합니다. 마귀의 일만 해주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라
하여간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야겠습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십시오. 하루 24시간의 10분지 1이면 2시간 24분이니, 2시간 24분은 무조건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시간의 십일조를 바칩니까? 이제는 바치라는 것입니다. 시간의 십일조 2시간 24분을 기도하는 시간과 성경 보는 시간으로 힘을 써서 바쳐야 합니다. 하려고 힘을 써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또 다른 일도 잘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의 일을 안되게 만들어주실 리가 있습니까? 어떻게든 기도하려고 힘쓰고, 바치려고 힘을 쓰고, 성경 보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힘써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여간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야겠습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십시오. 하루 24시간의 10분지 1이면 2시간 24분이니, 2시간 24분은 무조건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시간의 십일조를 바칩니까? 이제는 바치라는 것입니다. 시간의 십일조 2시간 24분을 기도하는 시간과 성경 보는 시간으로 힘을 써서 바쳐야 합니다. 하려고 힘을 써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또 다른 일도 잘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의 일을 안되게 만들어주실 리가 있습니까? 어떻게든 기도하려고 힘쓰고, 바치려고 힘을 쓰고, 성경 보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힘써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비행기도 힘써서 가야, 올라가지 않습니까? 힘써서 프로펠러가 돌든지, 제트 엔진이 가동되어야, 가든지 올라가든지 하는 것입니다. 힘을 안 쓰고 가만히 있으면 비행기가 가다 떨어집니다. 힘써 믿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힘 안 쓰고 믿는 사람은 얼마 안 가면 타락됩니다. 반드시 타락이 됩니다. 아무 힘이 없는 무능력한 자가 되고, 또 촛대는 다 옮겨지고 껍데기만 남습니다. 힘 안 쓰고 믿는 사람은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는 것은 주께 기도한 다음에는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믿고, 그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시기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으로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하는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심
본문 4절에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과 같이, 악은 하나님과 같이 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악을 버리고 나와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악을 가지고 나오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본문 4절에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과 같이, 악은 하나님과 같이 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악을 버리고 나와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악을 가지고 나오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본문 5절에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게 자랑하는 자가 오만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게 자랑하는 자들은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섰다 하는 자들이 오만한 자들입니다. 자기가 무엇이나 잘하는 줄 알고 자랑하며, 남을 멸시하는 것이 오만한 자입니다.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는 것은 오만하면 벌써 죄가 들어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목전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는 잘한 것이 하나도 없고,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아야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무엇을 자랑하고 자기가 뭐가 된 줄로 알면, 하나님께서 버리십니다.
본문 6절에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진실해야 하며,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벌써 마귀 편에 선 자인데,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믿는 사람은 언제나 진실하게 양심대로 모든 일을 똑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는다 멸망을 받습니다.
또 피 흘리기를 즐긴다는 것은 남을 살인하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워하는 것이나 욕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욕하는 자, 또 남에게 손해 주는 자들은 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을 사랑하고 도와주며,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어떻게 하든지 협조하려고 하며, 자기가 소금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소금이 뜻하는 것은 자기가 녹아서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이는 자를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속이는 자를 싫어하신다고 하였는데, 속이는 것 중에서 제일 큰 것은 거짓말로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을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것을 옳다고 하는 것,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것, 그것이 거짓말입니다.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성경을 바로 못 가르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말씀을 바로 못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잘못된 것을 따라가는 것도 미워해야 합니다. 따라가는 자들은 거짓말을 따라가는 것이고 거짓말에 따라가는 자들도 거짓말을 하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3. 하나님을 경배하며 의뢰하는 생활
본문 7절에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기가 자격이 있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풍성한 인자(仁慈)를 힘입고 주의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전은 지성소를 가리키는데, 우리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집에 들어가서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영적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면서 섬기는 생활을 말합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는 생활은 ‘처음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사랑은 영적 생명이 있는 세계로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영이 살아나 새 생명을 얻고 나가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세계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찾아서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고, 또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성소를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날마다 경배하는 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못하면 성소 밖에 있는 바깥마당 생활인 것입니다. 성전 바깥마당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측량하지 않으시고 돌보지 않으시며, 맛 잃은 소금처럼 내버리셔서 사람에게, 이방인에게 42일 동안 밟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집에 들어가서 기도를 많이 하고 신령한 세계를 찾아 주님을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지성소를 날마다 바라보고 경배하는 생활, 즉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고 경배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세계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찾아서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고, 또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성소를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날마다 경배하는 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못하면 성소 밖에 있는 바깥마당 생활인 것입니다. 성전 바깥마당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측량하지 않으시고 돌보지 않으시며, 맛 잃은 소금처럼 내버리셔서 사람에게, 이방인에게 42일 동안 밟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집에 들어가서 기도를 많이 하고 신령한 세계를 찾아 주님을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지성소를 날마다 바라보고 경배하는 생활, 즉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고 경배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의를 입혀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 입는 것을 가리키고, 의로 나를 인도해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른 진리로 인도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바로 살고 바로 믿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서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려는 간절한 소원이 성도에게 있는데, 그것이 ‘주의 길을 내 목전에서 곧게 하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진리대로, 바로 믿게 해달라는 소원을 가지고 주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바른 진리 하나를 들으면 눈이 번쩍해서 그것을 따라가야, 신앙이 바로 서는 것입니다.
4. 원수들의 상태와 그 결말
본문 9절에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은 이렇게 신실함이 없습니다. 말에 신실함이 없고 또 마음도 진실하지 못하고 심중이 심히 악하고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습니다. 열린 무덤이란 무덤을 열어놓으면 거기서 송장 썩은 냄새만 나오듯, 그 사람 속에서 더러운 냄새만 나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입을 열면 더러운 말, 남에게 손해 주는 말, 썩어진 말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첨은 자기 이익을 보려고 거짓으로 발라맞추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정당한 보고를 하는 것은 아첨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당한 보고를 안 하는 것이 죄입니다. 보고하면 누가 미워할까봐 보고하지 않는 것은 자기 사명을 못하는 벙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개인의 유익만 생각하는 아첨하는 사람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보고할 것을 안 하므로 하나님의 일이 틀어져나가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바로 세워야 할 것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바로 인도해야 할 것을 바로 인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보고하지 않은 사람에게 책임을 지워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은 이렇게 신실함이 없습니다. 말에 신실함이 없고 또 마음도 진실하지 못하고 심중이 심히 악하고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습니다. 열린 무덤이란 무덤을 열어놓으면 거기서 송장 썩은 냄새만 나오듯, 그 사람 속에서 더러운 냄새만 나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입을 열면 더러운 말, 남에게 손해 주는 말, 썩어진 말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첨은 자기 이익을 보려고 거짓으로 발라맞추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정당한 보고를 하는 것은 아첨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당한 보고를 안 하는 것이 죄입니다. 보고하면 누가 미워할까봐 보고하지 않는 것은 자기 사명을 못하는 벙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개인의 유익만 생각하는 아첨하는 사람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보고할 것을 안 하므로 하나님의 일이 틀어져나가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바로 세워야 할 것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바로 인도해야 할 것을 바로 인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보고하지 않은 사람에게 책임을 지워야 합니다.
본문 10절에는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에게 정죄를 받게 되고,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9절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집니다. 원리 원칙대로 하고, 성경에 바른 대로 하고, 제 자리를 지키고, 바른 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진실하게 하고, 또 하나님이 주신 권세에 순종하여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신실하게 하면, 일이 안 될 것 같아도 잘됩니다. 교단과 교회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도 그것이 잘되어나갑니다. 희생, 충성하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아도, 그것이 잘되어나갑니다. 교역자들도 이렇게 하면 잘되어나갑니다. 그런데 이것과 반대로 하는 사람은 다 실패합니다. 잘될 것 같아서 나갔는데 그것이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진실하지 못한데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원리 원칙대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지 못했는데,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순종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일시적으로 잘되는 것 같지만 얼마 안 가서 거꾸로 다 꽁지를 박습니다. 자동차 꽁지를 박는 것처럼 꽁지를 박고 그 다음에 앞길이 딱 막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그러다가 또 누가 건져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복종하였더라면, 그 권세로 건져주시겠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복종을 안 하였는데, 누가 건져주겠습니까? 배반하였으므로 건져줄 권세가 없고, 그러니 그것이 실패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9절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집니다. 원리 원칙대로 하고, 성경에 바른 대로 하고, 제 자리를 지키고, 바른 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진실하게 하고, 또 하나님이 주신 권세에 순종하여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신실하게 하면, 일이 안 될 것 같아도 잘됩니다. 교단과 교회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도 그것이 잘되어나갑니다. 희생, 충성하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아도, 그것이 잘되어나갑니다. 교역자들도 이렇게 하면 잘되어나갑니다. 그런데 이것과 반대로 하는 사람은 다 실패합니다. 잘될 것 같아서 나갔는데 그것이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진실하지 못한데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원리 원칙대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지 못했는데,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순종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일시적으로 잘되는 것 같지만 얼마 안 가서 거꾸로 다 꽁지를 박습니다. 자동차 꽁지를 박는 것처럼 꽁지를 박고 그 다음에 앞길이 딱 막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그러다가 또 누가 건져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복종하였더라면, 그 권세로 건져주시겠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복종을 안 하였는데, 누가 건져주겠습니까? 배반하였으므로 건져줄 권세가 없고, 그러니 그것이 실패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을 볼 때 몇 가지만 했으면 되겠는데, 그것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신실하게 하고, 원리 원칙대로 하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복종하며 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또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고, 진실하고, 희생 충성, 희생 봉사하면 다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안될 것 같아도 잘됩니다.
5. 주께 피하는 자의 복
본문 11절에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주님께로 피하는 자가 기뻐하고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피난처로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께로 피해 가는 자가 기뻐하고 복을 받습니다. 병아리가 나가 돌아다니다가 독수리가 오거나 아이들이 따라오거나 개가 따라오면, 어디로 피해 갑니까? 자기 어미 날개 아래로 달아내려 갑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피하는 생활이 그와 같습니다. 세상에 환난이 많고, 마귀가 잡아먹으려고 하고, 시험도 많고 하지만 “주여!”하고서 주님 안으로 냅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께 피해 들어가면 주님은 그 넓으신 날개로 우리를 다 품어주시고, 원수가 와서 손을 못 대게 해주십니다. 악한 자가 손도 못 대게 해주십니다. 매를 맞아도 안 아프게 해주시고, 능력으로 그 사람을 지켜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께 피하는 자를 능력으로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주님께로 피하는 자가 기뻐하고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피난처로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께로 피해 가는 자가 기뻐하고 복을 받습니다. 병아리가 나가 돌아다니다가 독수리가 오거나 아이들이 따라오거나 개가 따라오면, 어디로 피해 갑니까? 자기 어미 날개 아래로 달아내려 갑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피하는 생활이 그와 같습니다. 세상에 환난이 많고, 마귀가 잡아먹으려고 하고, 시험도 많고 하지만 “주여!”하고서 주님 안으로 냅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께 피해 들어가면 주님은 그 넓으신 날개로 우리를 다 품어주시고, 원수가 와서 손을 못 대게 해주십니다. 악한 자가 손도 못 대게 해주십니다. 매를 맞아도 안 아프게 해주시고, 능력으로 그 사람을 지켜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께 피하는 자를 능력으로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삽니다. 부자는 돈으로 살고, 기술자는 기술로 살고, 학자는 학(學)으로 살고, 장사꾼은 장사로 살고, 권세자는 권세로 살고, 다 자기 있는 것을 가지고 사는데,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믿음
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참고, 믿음으로 달음박질하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믿는다는 것은 성경말씀대로 바로 순종하는 것, 양심을 바로 쓰는 것입니다. 핍박이 와도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어려운 고난이 와서 외부적으로는 고난이어도 속에는 천국이고, 매를 맞아도 아프지 않게 해주시고, 풀무 가운데 들어가도 뜨겁지 않게 해주십니다. 불의 기세를 면케 해주신다고 안 그러셨습니까? 믿음으로 주님께 피해 사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서도 그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통과하게 해주십니다. 주께로 피신하여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영영히 기뻐 외치게 해주십니다.
또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름은 인격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인격 자체를 진정으로 사모하며 본받으려는 자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그 사랑 가운데서 사는 신앙을 가져야만, 주님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믿는 세계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데 거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는 세계로 깊이 들어가면 거기가 즐거움의 세계요, 하나님의 보호의 세계요, 생명의 세계입니다.
본문 12절에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믿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또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세워나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방패가 되시고, 복을 주십니다. 호위하셔서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인도해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기도를 하며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