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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6일 토요일

스가랴 14:1-21 그리스도의 오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그리스도의 오심
스가랴 14:1-21

1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2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3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4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5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6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7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9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10온 땅이 아라바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11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 12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13그날에 여호와께서 그들로 크게 요란케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14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15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육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16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20그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 예루살렘이 노략되고 열국이 파멸됨

본문 1-2절에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백성들은 사로잡혀 가며 비참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남은 백성으로 끊어지지 않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때에도 남은 백성이 있게 해주십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남겨놓으신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오심

본문 3-4절에 “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5-46절에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막아두었던 휘장이 둘로 갈라져 찢어졌는데, 이것은 이방 사람과 성도들 사이에 막혔던 담이 허물어졌다는 뜻도 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의문과 제도, 의식이 십자가에 도말되어 하나님과 통하게 되었다는 뜻도 있습니다. 유다 사람이나 이방 사람들이 통하며 모든 세계의 사람들이 통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막혔던 담이 터졌습니다. 이처럼 감람산이 동서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길이 열리고, 유다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에 막혔던 길이 전부 열려서 그 골짜기로 도망을 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산이 갈라져서 골짜기가 생겼고, 그곳으로 도망만 가면 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골짜기로 도망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오셔서 구속을 완성하신다고 하였는데, 우리도 예수님께로 도망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길을 다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도망만 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통하고, 사람들끼리도 통하는 자리에 서야 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통한다는 것은 이방 사람과 유다 사람, 민족과 민족, 이 지방과 저 지방 사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 사람과 유다 사람이 서로 통하게 하기 위해서 구속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통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통하지 못하면 감람산으로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막아놓은 담을 다 헐어버려야 합니다. 같은 지방사람끼리 세워놓은 담, 당파를 짓는 것은 헛되이 믿는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에 서는 사람이 아니고 육신에 서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과 통하고, 사람 사이에 통하는 신앙으로 이루어져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으로 도망쳐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6-7절에 “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빛이 없는 흑암을 만났지만 그리스도의 빛이 그들에게 비추어갑니다.

본문 8절에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생수의 강이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르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끊임없이 흘러내려간다고 하였습니다. 생수의 강은 예루살렘에서부터 흘러나가는 강인데, 이것은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이루시는 생명의 역사를 말합니다. 생명의 역사가 곧 생수의 강인데, 이것이 사방으로 흘러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47장 1-5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
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생수가 성전 제단 밑에서부터 흘러서 강이 되고, 처음에 일천 척을 측량하니 발목에, 또 일천 척을 측량하니 무릎에, 또 일천 척을 측량하니 허리에, 또 일척 척을 측량하니 사람이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영적 예루살렘에서부터 생수의 역사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수의 역사는 제단 밑에서부터 시작되므로 하나님의 재단에서 생활하
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이 강이 내려갈수록 깊어졌는데, 이것은 순종할수록 깊어진다는 뜻입니다. 일천 척을 순종해서 내려가니까 생수의 강이 발목에 오르고, 거기에서 또 순종해서 내려가니까 무릎에 오르고, 거기에서 또 순종하여 내려가니까 허리에 오르고, 또 순종해서 내려가니까 큰 강이 되었습니다. 생수의 역사, 그 시작은 예루살렘, 즉 성전 밑 제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거기에서 흘러나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생활, 제단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것만큼 깊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하나님만 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존경하게 되고, 하나님만 세상의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천상 천하에 하나님께서 홀로 주장하시게 됩니다.

본문 10-11절에 “온 땅이 아라바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라바’는 황무지 들판인데, 생수가 흘러나가니 게바, 림몬, 베냐민 문, 하나넬 망대,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 다 살아서 숨 쉬게 됩니다. 생수가 흘러가는 곳마다 생수가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높이 들렸다고 하였는데, 예루살렘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높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생수가 흘러나오는 곳을 높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들의 왕이 되어 주십니다.

3. 원수들에게 내리는 재앙

본문 12-13절에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들로 크게 요란케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치려는 모든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저주를 내리십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재앙을 내려서 자기네들끼리 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 14-15절에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육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끼리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차자 자기들끼리도 서로 싸웁니다. 그리고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와 육축에게도 같은 재앙이 내렸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아무리 보화를 많이 쌓아놓아도 하나님께서 한번 치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쌓아둔 재물이 썩었고 의복은 좀먹었으며 보화는 녹슬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많이 쌓아두었어도 하나님께서 한 번 손을 드시면 끝이 납니다. 소나 양이나 말 등의 육축도 전부 재앙으로 멸망하고 맙니다.

4. 남은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킴

본문 16-18절에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하 만국이 하나님께로 오게 된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다음에 세상의 것은 망하고 천하 만국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자들은 만군의 하나님을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않으면 창일함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창일함은 나일 강이 넘치는 것을 말하는데, 나일 강물이 넘쳐야 사방에서 물을 끌어다가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농사를 짓기가 곤란합니다. 나일 강이 철철 넘어야 그 부근에 있는 토지들의 농사가 잘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되는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9-20절에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그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오지 않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십니다. 왜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십니까?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광야에서 초막에 거하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과거에 여러 죽을 고비
와 재앙들을 만났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이 없던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며 구원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수장절과도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추수감사절과 같습니다. 유월절이나 장막절, 오순절이나 수장절 등 절기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서 초막절만 나온 이유는 그들이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아가는 가운데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라는 데에 있습니다.
즉, 광야에서 멸망할 뻔 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장막 집은 육신을 말하는데, 이것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장막 집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유다 사람이나 이방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들도 초막 생활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고, 유다 사람도 광야 생활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아니하시고 나일 강에 창일함이 없게 저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늘 해야 하겠습니다. 이사야11장 8-9절에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계에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넘쳐흐르면 최후 승리입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가 이 땅 위에 완성되면 우리가 천 년 동안 살게 됩니다. 마귀는 잡아 가두고, 그리스도께서는 왕이 되셔서 말방울까지 성결이신 예수님만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5. 여호와의 이름이 높아지고, 사람이 여호와를 섬김

본문 21절에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솥이 하나님의 성물로 쓰입니다. 과거에는 이방 사람도 여러 가지 솥을 사용하였는데, 아마 떡이나 밥 등 여러 가지 음식을 해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호와께 사용됩니다. 과거에는 자기를 위해 썼던 솥인데, 지금은 하나님을 위해 제사 드리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의 솥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데 이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 그릇, 의의 병기가 되어 이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그릇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솥이 여호와의 성물이 되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데에 사용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솥도 하나님께 제물로 이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솥, 기구, 사람, 제물, 짐승 등은 모두 하나님께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전에는 성도만 있고,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로만 충만하게 됩니다.

스가랴 13:1-9 연단 받는 신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연단 받는 신앙
스가랴 13:1-9

1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3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4그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5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6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목자를 치라는 명령 7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8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9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1. 우상과 거짓 선지자가 끊어지게 됨

본문 1절에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와 더러움을 다 씻어버리고 구원해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스가랴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400~500년 전이므로, 본문은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와 더러움을 씻으시고 깨끗하게 해주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2-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가 밝히 나타나면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우상을 끊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과거에 섬기던 우상과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던 모든 것을 전부 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점과 사술을 쫓고,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갔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잘못된 것이 다 드러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잘못된 것으로부터 건져서 구원해주시고, 더 이상 그것들을 따라가지 않도록 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기 전에 섬기던 우상들이 허무하다는 것도 깨닫고, 회개하여 버리게 되며, 귀신의 역사를 따라가던 것도 떠나게 됩니다.

본문 3절에 “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자기 부모라고 해도 성경말씀에 어긋나고 거짓된 교리를 쫒는 사람은 칼로 찔러서 책망하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4절에 “그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진리가 밝히 드러났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들이 부끄러워할 날이 옵니다. 자기의 정체를 가리려고 가면을 쓰고 다니지만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리가 양의 가죽을 입고 나와서 속이는 일도 밝히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거짓을 들추시면 용납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다 우상을 섬기고 점이나 치러
다니고 거짓 선지자를 따라다니며, 예수님을 믿어도 제대로 믿지 않고 형식적으로 따라다녔지만, 진리가 밝히 나타나면 거짓 선지자,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짓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에 털옷을 입고 사람을 속일 수 없게 됩니다. 과거에는 외식하며 의인인 체 하고 다녔지만 진리가 나타나면, 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전부 드러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진리가 밝히 드러나면 거짓 선지자들이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라고 고백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선지자 노릇을 하겠습니까? 자기의 정체가 다 드러나고,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을 전부 고백하게 됩니다.

본문 6절에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상을 섬기다가 받은 상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나 귀신을 따라가던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미혹되어 거짓 선지자와 우상을 따라가게 된 것이 상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미혹에 끌려갑니다. 그러나 미혹 받은 사람을 건져내는 것도 가까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죄 가운데 빠져서 마귀에게 넘어간 사람을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건져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목자를 칠 때에 양이 흩어짐

본문 7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에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스가랴13장 7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게 되면 양이 흩어
진다는 것을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짝은 예수님이신데, 목자를 치니까 양이 흩어지게 되어,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제자들이 전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따라간 제자는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뿐인데, 이들도 제자의 자격으로 따라간 것이 아니고 구경꾼으로, 친척의 자격으로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구속해주실 것을 미리 예언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면 그의 양들이 다 흩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다시 부활하시고 그들을 불러서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다는 것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를 치면 양들이 흩어지지만, 하나님께서 흩어져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손을 드리우신다는 것입니다. 목자를 칠 때 자기를 낮추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손을 드리워서 돌봐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부로 나타나는 큰 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숨어서 믿음을 잘 지켜나가는 사람, 자기가 미약한 줄 알고 자기를 낮추며 겸손히 나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손을 드리워서 돌봐주십니다. 목사를 칠 때에도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환난의 날에 손을 펴서 구원해주십니다.

3. 삼분지 일을 연단시키심

전 세계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음

본문 8-9절에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에서 삼 분지 이는 멸절하시고, 남은 삼 분지일은 은같이 연단하여 금 같은 시험을 하십니다. 삼 분지 이가 멸절하고 삼 분지 일이 남게 된다는 것은 숫자적으로 정확히 삼분지 일과 이가 아니고, 전 세계가 세 부류로 나눠진다는 뜻입니다. 첫째는 믿지 않는 사람, 둘째는 형식적으로 믿는 사람, 셋째는 충성을 다해 믿음을 지키는 성도입니다. 불신자 삼 분지 일, 형식적으로 믿는 사람 삼 분지 일, 바로 믿는 사람 삼 분지 일인데, 이렇게 전 세계인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는 삼분지 일은 은 같은 연단, 불 같은 시험을 받게 됨

믿지 않는 사람, 형식적으로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 중생하지 못하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 예수를 믿어도 믿음이 죽은 사람은 전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삼 분지 일이 말씀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평안하고 안일하게 믿으려는 사람은 삼분지 이 가운데 들어갑니다. 그들은 말씀도 지키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되므로,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나머지 성도들을 불 가운데 던지신다고 하였는데, 이는 연단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마귀가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타락시키려고 달라붙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연단시키십니다.

이처럼 말씀을 지키는 것은 편안치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는 참 신자를 타락시키려 하고, 하나님께서는 연단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고 하였습니다. 삼분지 이는 형식적인 신자이고, 삼 분지 일은 말씀을 지키며 믿는 참된 신자인데, 이러한 자는 하나님께서 불로 연단하십니다. 불 가운데 던져
서 은같이 연단하시고 금 같은 시험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제대로 믿으려 하면 불 같은 시험과 연단이 옵니다.

연단을 받아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귀함

이 세상은 진리를 반대하고 거스르는 세상이기 때문에 바로 믿으려고 하면 시험이 오기 마련입니다. 자기와 세상을 부인하고 말씀만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불 같은 시험이 오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으로 연단되고 단련되면 좋은 믿음으로 좋은 신자가 됩니다. 다니엘 11장 33절에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환난 받을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는 큰 환난이 올 텐데, 거기에서 믿음을 지키면 귀한 금과 은처럼 됩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단련시켜서 정금 같이 나가게 하시려고 환난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바로 믿는 사람은 환난과 연단으로 정금이 됩니다. 왜냐하면 연단과 환난을 많이 받아야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연단을 받지 못하면 무엇에 쓰이겠습니까? 쓰일 데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환난과 연단의 과정을 모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고 삼 분지 일의 사람에게만 주십니다. 그리고 연단을 받아 정금과 같이 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성도는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 성도 안에 늘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연단 받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스가랴 12:1-14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애통(哀痛)해 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애통(哀痛)해 함
스가랴 12:1-14

1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2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국민에게 혼취케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미치리라 3그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무릇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4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아보고 모든 국민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5유다의 두목들이 심중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거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찌라 6그날에 내가 유다 두목들로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국민을 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리라 7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거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8그날에 여호와가 예루살
렘 거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9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10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그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 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1. 열방이 예루살렘을 치러 옴

본문 1-3절에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국민에게 혼취케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미치리라 그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무릇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과 인생의 심령을 지으시고 주장하시며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면 국민이 예루살렘을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성으로 알고, 그것을 자기 소유로 만들려고 침략해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삼키려 하는 것은 혼취케 하는 잔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같이 하여 보호하시므로 결코 먹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 나라들이 교회를 미약하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알고, 자기의 이용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혼취케 하는 잔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멸하려 하는 자들은 도리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천하 만국이 예루살렘을 치려 하다가 크게 상하고 도리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미약해 보여서 그들이 교회를 쉽사리 들어 없애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으로 무거운 돌이 되게 하셔서, 그것을 드는 자가 크게 상하고 많은 손해를 보게 하십니다.

2. 여호와께서 유다를 돌보고 열국을 멸하심

본문 4-5절에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아보고 모든 국민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유다의 두목들이 심중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거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물리쳐주셔서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 6절에 “그날에 내가 유다 두목들로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국민을 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의 두목들을 나무 가운데 화로같이 되게 하고 곡식단 사이에 횃불같이 되게 하셔서, 유다 백성을 에워싼 국민을 사르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유다 사람들을 본 곳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7-8절에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거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거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을 축복하셔서 다시 잘되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3. 성도들이 주를 바라보고 애통함

본문 9-10절에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창으로 찔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바라보고 애통한다는 것입니다. 독자를 잃은 고통으로 애통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그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므깃도 골짜기’는 사람을 많이 죽인 곳인데, 이처럼 사람이 많이 죽어서 애통해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14절에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남자들을 따라 아내들도 따로 애통해 하였는데, 이것을 보니까 아내를 데리고 다녀야 하겠습니다. 아내들도 따라다니면서 같이 애통해야 합니다. 오늘도 데리고 왔습니까? 자기만 혼자서 애통하면 안 됩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애통해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해서 애통하는
생활, 나를 위해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애통하며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고 하면서 희생의 정신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해서 늘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는 신앙, 디모데와 같이 늘 감격하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하겠습니다.

2017년 8월 25일 금요일

스가랴 11:1-17 세 목자(牧者)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세 목자(牧者)
스가랴 11:1-17

1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2너 잣나무여 곡할찌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3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 4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 떼를 먹이라 5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6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찌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7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쌔 8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12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13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4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5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우매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할찌니라 16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17화 있을찐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

1.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고

본문 1-2절에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찌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나라인 레바논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할 원수가 들어올 것을 가리킵니다.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시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백향목’은 훌륭한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을 가리키고, ‘잣나무’는 지도자들을 가리키는데, 이 나무들이 다 넘어지고 훼멸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와 같이 훌륭한 사람들도 망하여 곡하게 되고, 무성한 삼림도 엎드러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 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므로 목자가 곡을 하며, 영화로운 것과 아름답게 꾸며놓은 것도 일시에 훼멸하게 됩니다. 요단강 북쪽은 비옥한 땅이라서 곡식이 잘 자랐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올 때에는 그것들이 전부 황무해진다는 것입니다.

2. 세 목자를 치심

세 목자

본문 4-5절에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 떼를 먹이라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을 판 목자, 그 양 떼를 사는 목자, 또 그 외의 목자가 있는데, 양 떼를 산 목자들은 잡아도 죄가 없다고 하고 팔아먹은 목자들은 부요케 되므로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 외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양 떼를 산 목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떼를 매수한 정치가나 지도자, 또 그러한 나라나 정권을 가리킵니다. 돈을 주고 양 떼를 샀기 때문에 양을 자기의 이용물로 삼는
것입니다. 또 팔아먹은 목자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 돈을 받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러한 행동이 그들에게는 양심의 가책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나는 부요하게 되었으니 여호와께 찬송하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교회로 보면 타락한 교역자들을 가리킵니다. 돈을 받고 자기의 양 떼를 넘겨서 이용물로 삼는 목자가 요즘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목자들은 양 떼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목자와 양 떼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그러지 아니하고, 팔려갈 때에도 수수방관하며 말 한 마디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요새 교회들이 점점 이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양 떼를 매수해서 자기의 이용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치가들 중에서도 교회를 자기 정권의 이용물로 삼으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나 단체, 교회들은 전부 양 떼를 돈으로 산 목자들입니다. 돈으로 샀기 때문에 잡아먹어도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도 예수님을 팔아먹은 사람, 산 사람, 그 이외의 목자들이 있었는데, 어느 시대나 이렇게 교회를 이용하려는 국가나 기관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 목자

과거 왜정 시대에도 일본 정부에서 신사 참배를 하도록 만들어 교회를 매수하려고 하였는데, 그때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들이 교회를 팔아먹었습니다. “신사 참배는 죄가 아니고 국가 의식이다”라고 하면서 선전을 하였고, 일본 정부는 팔아먹는 목자들에게 하루 백원씩을 주면서 일본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예로 들자면 일본 정부는 산 목자이고, 돈을 받고 협조한 목사들은 팔아먹은 사람입니다. 왜정 시대에 보통 월급이 18원이었는데, 백원을 받았으니 약 여섯 달 월급은 받은 셈입니다. 이틀만 나가서 연설을 하면 일 년 치 월급을 벌게 되니, 열심히 돈을 벌려고 선전하는 바람에 교회가 일본 정부에 거의 다 팔렸습니다. 그리고 양 떼는
목사의 말만 듣고 괜찮다고 하니까, 다 팔려서 사는 자들의 수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산 자들은 자기가 샀기 때문에 잡아도 죄가 없다고 말하고, 판 자들은 부하게 되었다고 여호와를 찬송 했을 것입니다.

신사 참배 결의는 1938년도에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남북 총회가 모여서 결정되었는데, 이로 인해 38선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남북이 합해서 총회로 모였는데, 형사들이 사방에서 감찰을 하고, 목사들에게는 돈을 주면서 동의, 제청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고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대하던 몇 사람은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돈을 받고 일본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한 것입니다. 정부는 산 사람이고, 목사들은 팔아먹은 사람입니다. 또 중간치들은 가만히 있었는데, 그들은 양 떼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자들에 해당합니다. 양 떼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으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또 말하게 되면
잡혀가니까, 잡혀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양 떼만 불쌍합니다. 잡아먹힐 양 떼들이 참으로 가련합니다.

그 시절에 최권능 목사가 신사 참배에 반대하다가 새냄 위에 숨게 되었습니다. 오산에서 한 십오 리 정도 내려가면 바닷가에 새냄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때 새냄에 교회가 없어서 사람들이 오산 교회를 다녔습니다. 최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신사 참배를 하면 안 된다. 죽은 어머니한테 가서 젖을 빨면 젖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피가 나온다. 신사 참배를 하는 목사는 죽은 목사이다. 거기서 젖을 빨아 봤자 젖은 나오지 않고 피만 나온다”라고 바른 증거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 최권능 목사가 오산 교회에 갔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새냄에 간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성도들이 그 말을 오산 교회 목사에게 전달하였는데, 오산 교회 목사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그 목사가 “그러면 내가 죽은 어머니냐”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오산 교회 담당 목사가 최권능 목사가 새냄에 있다고 고발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 목사님은 감옥에 갔다가 평양으로 호송되어, 그곳에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목사들이 이렇게 돈 때문에 매수를 당합니다.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매수를 당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정권에서는 목사들이 공산주의가 성경적이라고 선전합니다. 왜냐하면 유무상통(有無相通)하며 하나가 되니까 성경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산주의는 교회들이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돈을 주면서라도 자기의 이용물로 계속 사들이는 것입니다. 하여간 어느 시대나 교회를 매수해서 자기들의 이용물인 어용 기관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못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주면서 목사들을 내세우고, 또 목사들은 그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성서 공회에서도 자신들이 번역한 성경이 잘못되었는데, 이미 자신들이 한국 교회의 성경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성경책 한 권에 이익이 배가 더 남도록 하였습니다. 값을 아무리 올려도 경쟁자가 없고, 또 아예 경쟁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았습니다. 목사들에게 돈을 주어서 자기들이 잘못한 것인데도 잘되었다면서 그 성경을 쓰자고 결의하게 하면, 성도들은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돈을 많이 받아먹은 지도자들이 양 떼를 팔아먹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밑에 있는 양 떼들은 진리가 잘못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옳다고 하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목자들은 양 떼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교단이야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무슨 관계냐? 그저 평안히 교회만 가면 된다”고 하면서 말 한 마디하지 않고 따라갑니다.

이렇게 세상은 교회를 어용 기관으로 삼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돈을 받고 팔아먹는 사람들, 가만히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이러한 일들을 반복합니다. 불의의 세력과 돈을 받고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중간치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도 모르는 양 떼들만 불쌍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달 동안 세 목자를 치심

본문 7-8절에 “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쌔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막대기 둘을 취해서 하나는 은총이라고 쓰고, 하나는 연락이라고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총과 연락으로 양 떼를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양 떼를 먹이시고, 성도 사이에서 연락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세 목자를 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끊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동안에 갑자기 세 목자를 끊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세 목자는 팔아먹은 목자, 양 떼를 산 목자, 중간치들인데, 이들을 끊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2장 8-9절에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래 두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에 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스가랴 7장 1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듣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목자를 미워하시고, 세 목자는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저와 같이 피난을 다니던 목사 한 분이 지금은 미국으로 가서 미국장로 교회 소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장로 교단 중에서 PCUSA가 있는데, 그곳이 신 신학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해 전에 만나서 PCUSA 교단에서 나오라고 했더니, 여기서 나가면 그 교단에 다시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냥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 미국 목사는 세 목자 가운데 어디에 속합니까? 잘못된 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못 나오는 사람은 몇 번째입니까? 세 번째 목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끊으실 때는 산 자만 끊으시는 것이 아니고, 또 팔아먹은 자만 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 목자를 한꺼번에 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기 때문에 서로 잡아먹고 물고 찢으며 싸운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4장 17-21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살진 양은 파리한 양을 뿔로 받고 발로 밟는데, 이렇게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요새 총회나 교단들이 서로 물고 찢고 잡아먹는데, 하나님의 벌이 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가지고 매수하며 서로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타락된 증거입니까?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이 세 목자를 한꺼번에 멸망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11절에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고 하였습니다. 은총이 잘라졌기 때문에 이제 은총이 없습니다. ‘백성과 세운 언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해주겠다고 하신 언약인데, 그것을 폐하시고 보호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되게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해주시겠습니까?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자르고 보호해주시겠다던 언약을 당일에 폐하셨기 때문에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지자의 말을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이 재앙과 고난을 받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것을 말합니다.

3. 은 30으로 준가(準價)를 삼음

본문 12절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예수님이 은 삼십에 팔린다고 세밀하게 예언하셨습니다. 또 그 돈은 성전에 가서 토기장이에게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3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전에서 가져다가 토기장이에게 던진 것입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그 돈을 성전에 도로 가져왔다가 제사장이 받지 않는다고 하니까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제사장들이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다고 하였습니다.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받은 은 삼십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 것은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21장32절에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찌니라”고 하였는데, 종 한 사람의 값이 은 삼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 한 사람의 값에 팔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신데, 종 한 사람의 값에 팔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돈으로 살 수 있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치없이 보았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을 종 한 사람만한 가치로 밖에 보지 않습니다. 자기네는 존귀한 사람이고, 금과 은과 같은 사람이고, 백향목과 같이 굉장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면서, 예수님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몇 푼짜리도 되지 않게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 삼십에 파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매수하는데 돈이 얼마 들지 않습니다. 팔아먹는 사람이 싼 값에 파니까 얼마내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신앙을 싼 값에 판다는 것은 예수를 파는 것인데, 고작 은 삼십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요새도 자기가 쫓겨날까봐 신앙을 양보하고 진리를 양보하면서 예수를 파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잘못된 목자인 줄 알면서도 잘못되었다고 말하
지 않고, 그저 따라가는 것도 예수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판 사람은 토기장이에게 던져집니다. 토기와 같이 비천해진다는 것입니다. 툭 치면 깨지는 토기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예수를 팔아먹은 자는 토기와 같이 점점 내려갑니다. 예수님을 종 한 사람의 값으로 팔았으니 자기는 예수님보다 더 내려가서 성냥 자루만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됩니다.

본문 14절에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잘랐고, 이번에는 연락이라는 막대기를 잘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막대기 둘 모두를 자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 간의 교통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막히면 사람과도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4. 우매한 목자가 일어남

본문 15-16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우매한 목자의 기구들을 취할찌니라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참 목자를 죽였으니 이제는 우매한 목자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매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셨는데,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버리지 아니하고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그 굽을 가른다고 하였습니다. 참 목자가 나왔으니 이제 우매한 목자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매(愚昧)’란 어리석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매한 목자가 나와서 이들에게 착취를 당하고 노략을 당하며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5. 양 떼를 버린 목자에게 화가 있음

본문 17절에 “화 있을찐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 양 떼를 산 목자, 중간치들은 벙어리 노릇을 하는 목자에 포함되는데, 이들은 능력이 없어집니다.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고 하였는데, 팔이 마른다는 것은 능력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편 눈이 어두워져 보지 못하는 심판이 임합니다. 영안이 어두워져 아무 능력이 없게 되고, 팔은 말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스가랴 10:1-12 모퉁이 돌과 구원의 즐거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퉁이 돌과 구원의 즐거움
스가랴 10:1-12

1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2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3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4모퉁이 돌이 그에게로서, 말뚝이 그에게로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로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로서 나와서 5싸울 때에 용사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대적을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로 부끄러워하게 하리라 6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찌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7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8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 불어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같이 번성하리라 9내가 그들을 열방에 뿌리려니와 그들이 원방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존하여 돌아올찌라 10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돌아오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11내가 그들로 고해를 지나게 하며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홀이 없어지리라 12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본문 1절에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봄비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번개를 내시는 하나님께 봄비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필요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비’는 은혜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만 하면 필요한 것을 적당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비가 와야지만 먹을 것이 잘 자라듯이,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2. 우상 숭배는 재난의 원인이 됨

본문 2절에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드라빔’은 점치는 데 사용되는 우상이고 ‘복술자’는 점을 치는 사람인데, 드라빔은 허탕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며 거짓 꿈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술자와 우상에게 가서 물어보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는데, 지도자들이 문제입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하는데, 가르치지 않고 허탄한 것만 말합니다. 또 복술자는 요새로 말하면 신비주의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꿈으로 말하고 계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복술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실치 못한 것을 말하고 꿈도 거짓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도를 받고 그들에게 가서 물어보면 그 위로함이 헛되고 백성은 양같이 유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하고 말씀만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강단에서 성경 한 절 봐놓고 꿈꾸는 소리나 하고, 또 지시를 받았다는 소리나 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진리를 먹지 못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본문 3절에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수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않고 허탄한 것을 가르치는 목사에게는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십니다. ‘수염소’는 정치가들을 가리키는데, 목자가 정치가들과 합작하여 헤롯 왕과 빌라도도 친구가 되었고 제사장과 빌라도도 단짝이 되어 예수님을 잡아 죽였습니다. 서로 좋아하지는 않으면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데에 한 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러시아 공산 혁명 때에도 레닌이 거짓 선지자들과 합작하고 참 기독교인들을 많이 죽였는데, 그 레닌도 공산 혁명을 일으키고 얼마 못 가서 죽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수염소를 죽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거짓 목자들과 기독교를 이용하던 수염소들을 다 벌하십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은 전쟁의 준마와 같이 강하게 건져주십니다. 수염소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타락된 종교가들과 합하여 참 성도를 핍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하시고 유다 족속을 강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3. 유다 족속에게서 모퉁이 돌이 나옴

본문 4절에 “모퉁이 돌이 그에게로서, 말뚝이 그에게로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로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로서 나와서”라고 하였습니다. ‘모퉁이 돌’과 ‘말뚝’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22장 23절에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그가 그 아비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라고 하였고, 이사야 54장 2절에는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견고히 박아 장막을 견고하게 만들어서 다른 사람이 흔들어 뽑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말뚝이 되어주셔서 교회를 견고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이 되심으로 그 돌을 의지하여 짓는 성전은 견고하고 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또 ‘싸우는 활’도 그리스도이신데, 찬송가에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방패와 병기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가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나갈 때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노라”고 하면서 골리앗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병기가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5절에 “싸울 때에 용사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대적을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로 부끄러워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선한 싸움을 싸울 때에, 모퉁이 돌과 말뚝과 싸우는 활과 권세 잡은 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가면 승리합니다. 스가랴 9장 15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성도를 호위하시기 때문에 성도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또 제단 모퉁이와 같을 것이라는 것은 성
도가 원수를 많이 사살하지만 믿음의 행위로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원수를 이기고 즐거워할 때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제단을 생각하며 경건한 태도로 하나님 앞에 즐거워 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피를 마시고’라는 말씀에서 ‘피’자가 작은 글자로 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에는 ‘그들이 원수를 이기고 즐거워한다. 술 취한 것같이 할 것이다’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피’라는 말이 없어서 이것을 연구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작은 글자로 해놓은 것은 번역하는 사람들이 알기 쉽게 해놓은 것인데, 스가랴 9장 15절 말씀은 원수를 이기고 즐거워하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하면 원수를 이깁니까? 모퉁이 돌과 말뚝을 의지하며 나가야 이깁니다. 또한 싸우는 활과 권세 잡은 자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가면 원수를 이길 수 있습니다. 자기가 싸우려고 하면 이길 수 없고, 하나님으로만 싸워야 승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능력의 주님으로, 모퉁이 돌로, 활로, 권세 잡은 자로, 말뚝으로 견고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뚝을 한 번 박아놓으면 누구도 빼지 못하는데, 이 말뚝은 장막 치는 말뚝, 성전을 건축하는 말뚝, 복음을 전파하는 말뚝입니다. 이것들을 한 번 박아놓으면 그리스도께서 말뚝이시기 때문에 뺄 수 없습니다.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4. 구원의 즐거움을 주심

본문 6절에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찌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를 긍휼이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요셉 족속’, ‘유다 족속’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성도들인데,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견고하게 하시고, 구원해 주시며, 긍휼이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9장 9절에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는데,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싸래기 하나도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였는데, ‘싸래기’라는 것은 쌀 한 톨이 깨지거나 부서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쌀 반 개짜리, 삼 분의 일짜리, 사 분의 일짜리 등이 전부 싸래기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자라는 성도들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반 개짜리 성도라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반 개짜리 성도입니까? 자기 아내나 자식들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아들 자랑하지 말고 자기 여편네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에 오래 있었던 집사가 저보고 목사님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좋으냐고 하니까, 목사들이 가정에 대해 자랑하는 것이 듣기 싫었는지, 언제든지 자랑하지 않는 목사님 같은 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퉁이 돌, 말뚝, 싸우는 활, 권세 잡은 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아가는 자는 용사와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같이 마음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즐거움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 성도인데, 근심, 걱정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항상 즐겁기 때문에 성도는 언제나 용사와 같고, 포도주를 마심같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5. 유다 백성이 각처에서 돌아옴

하나님께서 친히 휘파람으로 불러 모으심

본문 8절에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 불어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같이 번성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휘파람은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기운을 내서 소리를 내는 것인데, 한 번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휘파람을 불어서 그들을 구속하신다는 것입니다. 휘파람도 아버지 입에서 나온 소리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소리이고,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소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휘파람은 크게 나지 않고 작게 나는데,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미한 소리로 불러주십니다.
휘파람이 작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아버지께서 부르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음에 딱 맞아서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깥에서 불어도 하나님께서 부시는지, 아니면 도적이 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휘파람을 불러서 세미한 음성으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작은 감동, 작은 역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작은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것으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큰 것을 바라면 탈선하게 됩니다. 엘리야 때에도 호렙 산에 불과 바람과 지진이 지나갔는데, 여호와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강력한 바람으로 산을 가르고 바위를 쪼개는 일이 일어났지만, 그곳에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지진으로 땅 전체가 흔들흔들하고 불이 지나가서 뜨끈뜨끈하게 맹렬했지만, 그곳에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역사가 마귀의 역사라는 것은 아닙니다. 열왕기상 19장 11-1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세미한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가는 큰 역사가 나타났다가 여호와 앞에서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으셨다는 것은 그것이 여호와께서 하신 구원의 역사, 생명 운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국을 흔들어놓는 것은 맹렬하게 한 번 역사하시는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 운동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운동은 세미한 소리입니다. 휘파람 소리같이 세미한 음성입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거짓 선지자 850명을 숙청하였지만, 이세벨의 추격에 의해 도망쳐서 브엘세바 들 가운데 있는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완전 실패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목숨도 유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셔서 생명이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 번성하게 해주십니다.

세미한 소리는 언제 들려옵니까? 자기가 다 깨져나가야 들립니다. 엘리야가 전국을 뒤집어엎어서 바로 왕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큰 일을 하겠다는 것은 바람과 지진과 불같은 것인데, 그것은 이렇게 실패하고 맙니다. 자기가 큰 일을 하겠다고 하는 곳에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할수 없을 그때에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다 죽어지고 없어질 때에 들리는 세미한 소리를 따라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생명 운동이 이루어집니다. 또 이렇게 휘파람 소리를 따라가면 번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방에서 불러 모은 백성들을 견고케 하심

본문 9절에 “내가 그들을 열방에 뿌리려니와 그들이 원방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존하여 돌아올찌라”고 하였는데, 원방에서부터 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돌아오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앗수르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오는데, 사방에서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거할 곳이 부족해서 거할 곳을 넓히자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그들로 고해를 지나게 하며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홀이 없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고해(苦海)’는 쓴 바다, 고난의 바다인데,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이 고난의 바다를 잘 통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해가 왔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고, 건너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바다 물결이 흉용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잔잔해집니다. 그리고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라고 하였는데, 나일 강은 애굽에 있는 것이므로 애굽의 강이 마른다는 뜻입니다. 또 앗수르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던 원수의 국가이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견고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면 견고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며 자기의 힘을 의지하면 견고하지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면 견고하게 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도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고 용맹한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 이기고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휘파람을 불어서 인도하실 때 그 음성을 잘 알아듣고 따라가면 번성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열국에서 모아주시고, 열국을 정복하게 해주십니다. 애굽과 앗수르도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나가는 것입니다.

스가랴 9:1-17 하나님께서 둘러 진치고 적군을 막아주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께서 둘러 진치고 적군을 막아주심
스가랴 9:1-17

1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2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3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은즉 4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 5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6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7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 8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1또 너로 말할찐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찌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13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14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같이 쏘아 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15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16이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17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1.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친히 지켜보심

유다 부근 여러 나라에 여호와의 경책이 임함

본문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하드락 땅과 앗수르의 수도인 다메섹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두로’는 돈이 많은 도시인데, 자기를 위하여 보장, 즉 요새를 잘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모아놓았다고 하였습니다. 또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많이 모아서 쌓아놓았습니다.

본문 4절에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은과 금을 많이 쌓아 놓은 항구 도시 두로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치고 불로 사르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도 이제 이렇게 됩니다.

본문 5절에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아스글론’, ‘가사’, ‘에그론’은 블레셋 나라의 도시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손을 드시면 소망이 끊어지고 수치로 아파하며 무서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는 가사에 임금이 끊어지게 됩니다.

본문 6-7절에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강대국 블레셋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교만을 다 끊고 벌하십니다. 여부스 사람은 사사기에 보면 악을 행하여 말살당한 족속인데, 에그론이 죄만 짓다가 여부스 사람과 같이 말살된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둘러 진치고 적군을 막아주심

본문 8절에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적국 나라들을 심판하십니다. 아무리 부요하고 풍성하며 강한 나라라고 해도 하나님 나라의 원수라면 다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이스라엘은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적군을 막아서 왕래하지 못하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34편 7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천군 천사를 보내서 진쳐주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포학한 자가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 눈으로 살펴보시고, 만약 들어오려고 하면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려고 왔는데, 하나님께서 불말과 불 병거를 보내 진을 치게 해주셨고 엘리사를 해하지 못하게 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천사를 보내 그들로 진을 치고 원수가 해하지 못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평화의 나라를 건설해주심

예언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심

본문 9절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말씀이 응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 4-5절에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주전 500년에 장차 그리스도께서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신다는 것과 왕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종교에서 500년 전에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 있습니까? 성경에서는 5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말씀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또 이사야는 주님께서 탄생하시기 약 700년경 전의 선지자인데, 그의 동정녀 탄생을 비롯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틀림없이 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나시겠다는 예언을 창세기 3장 15절에서 예언하신 후 4천년이 지나 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천 년 전에, 다윗에게는 천 년 전에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이 그대로 응해졌습니다. 성경말씀은 일점일획의 변함도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절대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시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함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살아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천당에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및 천당에 간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현봉 목사님, 그리고 다른 모든 목사님들도 모두 다 하늘나라에 살아 있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천당에 간 사람들은 다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하늘나라로 이사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너라’하고 말씀만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사는 것과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것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족히 비교할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고난이 많은 세상입니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야 하고, 추우면 히터를 켜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는 에어컨이나 히터가 필요 없고, 햇빛과 달빛이 쓸 데 없습니다. 병원도 쓸데 없습니다. 다시는 병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빛을 비춰주십니다. 모든 것이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도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고, 천년 왕국도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마지막 끝에 가서는 불 심판이 있다고 하였는데, 불심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한 것은 우리의 왕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십니다. 십자가 못 박히시기 전에도 왕이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왕이십니다. 우리의 영적 왕이시고, 만왕의 왕이시며, 만물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왕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왕의 통치와 왕의 인도를 받고, 왕의 명령을 순종하며, 왕의 나라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도 왕의 통치를 받고 사는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왕은 어떤 왕이십니까? 공의로우시며 구원하시는 왕이시고, 공의를 이루어나가시는 왕이십니다. 불의하신 왕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이런 왕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고, 왕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날개 아래서 살고, 그를 의뢰하며,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이루신 의를 가지고 살고, 공의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려고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또 겸손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려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훌륭한 사람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제일 낮은 사람, 고난 받는 사람, 고아와 과부, 비참한 사람, 병난 사람, 약한 사람, 상처 받은 사람을 다 싸매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평화의 나라를 건설해주심

본문 10절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전쟁이었는데, 이제는 화평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화평의 나라, 평화의 나라이며, 서로 낮은 자리에 처하려고 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 세계인데, 거기는 겸손한 나라이고 서로 낮아지는 나라입니다. 평화의 나라이고, 싸움이 없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참된 생명의 나라로 점점 창성해나갑니다.

본문 11-12절에 “또 너로 말할찐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찌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갇힌 자를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언약의 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입니다. 언약의 피를 믿고, 그 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격에 넘쳐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라고 하였는데, 감옥에 갇혔어도 소망을 품었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겸손하고 온유하면서도 능히 우리를 건져주시는 왕이 계십니다. 감옥에 갇혀도, 구렁텅이에 빠졌어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반드시 건져주신다는 믿음과 소망을 품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잡혀가면서도 ‘오신다, 오신다’라고 하십시오. 보장으로 돌아오라는 것은 보호처로 돌아오라는 뜻인데, 우리의 견고한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원수에게 배나 갚아주십니다.

4. 유다를 강하게 하고 원수를 심판하심

본문 13절에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유다는 당긴 활을 가리키고, 북쪽 이스라엘은 먹인 활을 가리킵니다. 유다를 향해 활을 당기면 그 화살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던 헬라인들에게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게 되기 때문에 유다는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후에 승리는 성도에게 있습니다.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고,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승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천하고 미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아무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언약의 피 때문에, 우리가 그 피를 믿고 있기 때문에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갇혔어도 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난처로 도망쳐야 합니다. 거기에 가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먹을 것도 주시고, 앞길을 열어주십니다. 시편 34편 7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틀림없이 소망대로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4절에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번개같이 회리바람을 타듯,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원수를 물리쳐주십니다.

본문 15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을 짓는 참 성도, 생명이 살아 있는 성도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호위하여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술 취한 자같이 즐거워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성령으로 즐거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성도가 성령으로 즐거워하는 생활을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원수를 이기고 즐거워합니다. 또 ‘피’를 계속 상기시키는데,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마 예수님의 피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좀 더 연구해보아야 하겠습니다.

5. 구원 받은 성도들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남

본문 16절에 “이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성도들을 양 떼 같이 구원해주셔서 성도는 면류관의 보석과 같이 빛나게 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가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해나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면류관의 보석같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성전을 잘 짓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성도, 그의 통치를 잘 받는 성도는 아름답고 형통합니다. ‘처녀’나 ‘소년’은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고, ‘곡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며, ‘새 포도주’는 이사야 55장에 구속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소녀같이 약한 자는 구속의 은혜로 감격에 넘치고, 소년처럼 강한 자는 말씀으로 즐거워하며 형통하고 빛납니다. 면류관의 보석과 같이 빛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양 떼같이 구원해주시고, 면류관의 보석과 같이 빛나게 해주시며,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곡식으로 강해지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강해지는, 그러한 신앙으로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8:1-23 하나님께서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복을 주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께서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복을 주심
스가랴 8:1-23

1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4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5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6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7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찌어다 10그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어니와 11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12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13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찌니라 손을 견고히
할찌니라 14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열조가 나의 노를 격발할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 15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찌니라 16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8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 월의 금식과 오 월의 금식과 칠 월의 금식과 시 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20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21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
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1. 예루살렘 축복 약속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심

본문 1-2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10번 이상 나오는데, 이것은 ‘군대의 하나님, 능력으로 일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군대로 원수를 쳐부수는 것처럼, 능력으로 원수를 쳐부수시고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며 능력으로 예루살렘을 건축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능력의 여호와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인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핍박하는 사람들, 유다 나라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질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이 고난 받는 것을 질투하시는데, 스가랴 1장 15절에 보면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를 핍박하며 괴롭히고 죽이면서 정작 자기들은 안일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말씀입니다. 3절 이후 본문 9절에도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돌아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치 않고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떠나시고 성전은 훼파되었는데, 이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성전을 지으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돌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거하시고 그날부터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 복입니다. 진리의 성읍인 예루살렘에 가야만 진리를 찾을 수 있고, 진리와 영감으로 영적 성전이 지어져나가면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며, 그곳이 여호와의 성산이 됩니다.

본문 4-5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지팡이를 짚고 온 분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늙어서 지팡이를 잡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장수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에는 일찍 죽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므로 장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 여자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좋은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유다 사람들이 미약하여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과거에 바벨론에 점령당하여 성읍은 다 불태워졌었고, 사람들도 포로로 잡혀가며 비참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루살렘이 이렇게 진리의 성읍이 되고 성산이 되었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눈에는 전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기 때문에 기이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지대를 만들어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불러내시고 서방에서부터 구원해내시어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약속대로 이루시며, 정의롭게 모든 것을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에는 하나님께 매를 맞아서 쫄딱 망했었는데, 회개하고 돌이키며 성전 건축을 시작하니까 잘되도록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비참했던 예루살렘의 과거를 돌아봐야 함

스가랴 7장 3-6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 월 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 월과 칠 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오 월의 금식은 예루살렘 성전이 5월에 불탄 것에 대한 금식이고, 칠 월의 금식은 그달랴가 살해당하고 유다 나라가 완전히 없어진 날에 대한 금식입니다. 유다 나라라는 명칭도 없어지고 유다가 바벨론의 한 도
가 되었으니, 원통하여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계속 금식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70년간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것에 대해서 통곡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이 여호와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내면에 들어가 보면 자기를 위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2년 동안 수양을 받았는데, 그때가 요셉에게는 신학교를 다닌 기간이었던 셈입니다. 바울이 아라비아에 있었던 3년도 바울에게는 신학교 기간이었고, 요나도 고기 뱃속에 있었던 3일이 신학교였습니다. 자기가 죽어지고 자기를 위한 것이 싹 다 없어져야만, 성경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싹 다 없어졌습니까? 자기가 굶든지, 매를 맞든지, 감옥에 갇히든지, 죽든지, 주를 위해서라면 전부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정신으로 바쳐야 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악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하였는데, 요나는 그런 곳에서 40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당장에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 가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파하다가 죽으면 순교자가 되는 것이고,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소돔 고모라, 아골 골짜기, 초막, 궁궐, 니느웨로 가다가 죽으면 특별 좌석에 올라가고, 핍박과 멸시를 받으면 상급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를 위하는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이것을 고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70년 동안 한 금식 기도가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시작하려면 자기 볼 장을 보는 것부터 고치고, 자기를 위하는 것에서 떠나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때부터가 시작인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에서 떠나지 못하면 성전 건축을 몇 십 년 했다고 해도 다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금식하고 울며 재계하며 70년간을 기도했어도 헛수고인 것입니다.

2.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복을 주심

하나님께서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복을 주심

본문 9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지대를 쌓던 날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돌아오셔서 그날부터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해주셨습니다.

본문 10절에 “그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어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사람이 삯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심령도 평안치 않고, 마음도 평안치 않으며,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영적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는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많이 뿌려도 소득이 없습니다. 일꾼은 돈을 벌어서 전대에 넣지만 그것이 구멍 뚫린 전대가 되어 하나님께서 다 불어버리신 바가 됩니다. 그러나 성전 지대를 놓은 때부터는 다릅니다.

본문 11-1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찌니라 손을 견고히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남은 백성’은 성도를 가리키는데, 성도들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손을 견고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부터 영전 성전 건축을 시작해야 함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을 시작한 때부터 찾아오셨고, 그때부터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이 진리의 성읍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을 시작하는 것을 보니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경대로 하니 거룩하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성전 건축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이름만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위하는 것부터 다 없애고, 자기를 포기하며, 하나님만을 위하는 것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또 성전 건축을 하려면 낡은 건물을 헐어버려야 한다고 하였는데, 우리의 옛 건물, 옛 사람, 썩어져가는 구습을 헐어버려야 하겠습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 자기를 위하는 욕심, 못된 버릇을 하나씩이라도 고치며 헐어버리라는 말입니다. 못된 버릇을 헐지 않고 성전 건축을 하면, 하나도 건축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못된 버릇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회개하며 고치도록 노력합시다. 이제는 싹 다 돌이켜야 합니다. 음란한 마음을 가지
고 있는 사람들, 거짓 맹세하는 사람들, 남을 비방하는 고질병이 있는 사람들도 그러한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큰 소리 치는 사람도 그것을 뽑지 못하고 내버려두면 성전 건축에 구멍이 뚫리게 마련이고, 아무리 큰 그릇이라도 구멍이 뚫려있으면 물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도 구멍으로 다 새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감람유를 담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위하는 것과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70년을 믿어도 헛수고를 하는 셈입니다.

3. 은혜 베풀 때에 행할 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로 작정하심

본문 14-15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열조가 나의 노를 격발할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 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지대를 놓은 때부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로 하셨기 때문에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복을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 베풀 때에 행할 일

1)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하라 

본문 16-17절에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
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성경말씀 중에 진실이 첫째라고 하였습니다. 김현봉 목사님께서는 참고 견디는 것이 첫째라고 하시면서, 늘 양심을 똑바로 쓰고, 참고 견디며, 일심정력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배운 사람은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나와서 양심을 똑바로 쓰고,
참고 견디며, 일심정력을 하라는 말씀을 가르쳐도, 김 목사님께서 한 마디 하신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만 주신 은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더욱 많이 배웠으면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도 기독교의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도 진실, 둘째도 진실, 셋째도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많이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이기선 목사님께 배운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특이한 리듬으로 성경말씀을 읽어내려 가시면서 강도하셨는데, 해석을 하지 않으셔도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예로써 사도행전 1장 8절을 크고 높은 소리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외치시면 성도들이 깜짝, 깜짝 놀라고 정신이 바짝 들고 당장 증인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해도 잘 안 되니까 여러분들이 웃는 것입니다.

하여간 진실하고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악담하고 원망하며 해하면서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금식하며 울고 재계하는 것은 성전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계(齋戒)’라는 것은 속된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 기간 동안에는 더러운 것을 먹지 않고 아예 더러운 것에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먹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먹지 않으면서 70년간을 재계하며 살았어도, 진실하지 않으면 모두 헛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해하려고 거짓 맹세를 하거나 거짓 증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화평한 재판을 베풀라 

다음으로는 화평한 재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뜻도 있고, 모든 성도가 화평하도록 판단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간질을 시켜서 불화하도록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이를 때렸을 때 어머니가 “너희 아버지는 때리는 사람, 나쁜 사람이다. 앞으로 아버지를 따라가지 말아라”고 말하는 것은 불화하도록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널 사랑해서 때렸다. 사랑하지 않으면 널 때리겠느냐? 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널 때리겠느냐? 아버지 말씀을 잘 듣고 네가 회개하고 바로 서면 좋은 사람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화평하도록 재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우리 아버지가 넘버원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잘 섬겨야 가정이 화평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이 시험에 들었을 때에 화평하도록 재판을 하려면 “목사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셔서 그러신 것입니다. 목사님이 자신을 위하신 것이 아니고 교회와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이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을 다 져야 하므로 그러신 것입니다”라고 좋게 말해야 합니다. 반면 불화하게 재판하는 것은 “안 하실 것을 하셔서 괜한 사고가 났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것은 매번 다 그러니까 목사님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이 교회에서는 불이 일어나서 성도들이 목사님을 반대하고 일어설 것입니다. 하여간 이렇게 불화하게 재판하는 사람들
도 많이 있습니다. 전도 부인들 중에서도 화평하게 재판하지 못하고 불화하게 재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라고 ‘쌀 표’를 가져다주라고 하면, 몇 장씩 받아가서 “내가 목사님께 이것을 타 가지고 왔으니 받으세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기가 높아지고 자기의 공로를 세우며, 교회와 목사님이 자기의 뜻대로 되는, 아무것도 아닌 교회와 목사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구역장들도 “교회가 당신을 사랑하여 이것을 보내주셨습니다”라고 하여야 합니다. 언제나 사사건건 자기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자기의 공로를 나타내며 자기가 했다는 사람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3) 남을 해하려고 도모하지 말라 

또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풀며,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성전 지대를 쌓았다는 것은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여 그로 말미암아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성품을 하나씩 이루어나가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이 점점 없어지고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며, 못된 버릇들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합니다. 독사의 독이 있는 것을 빼버리고, 남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씩 고치며 성전 건축을 해나가야 합니다.
영이 새 생명을 얻어서 생명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힘을 얻어서 예수님의 성품대로 만들어져나가야 합니다. 사랑해도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이기주의 사랑입니다. 세리들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자를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이런 이기주의 사랑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선물을 주면서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고, 먼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자도 낙제입니다. 불쌍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과부, 고아, 비천한 사람을 도와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같이 공정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4. 금식 절기가 변하여 즐거움이 됨

본문 18-19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 월의 금식과 오 월의 금식과 칠 월의 금식과 시 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1년에 4번씩 금식 절기를 지켰습니다.
앞서 말한 5월과 7월 금식 이외에 4월에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것을 기억하려고 통곡하며 금식하였고, 10월에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시작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통곡하며 금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금식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부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성전, 내 나라의 성전, 내 민족과 내 나라, 나의 예루살렘이 포위를 당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도성과 나라가 잘못된 것을 두고 애통해야 하는데, ‘자기 것’을 위해서 애통했다는 것입니다. 또 금식 절기가 다 지나면 여상하여졌습니다. 과거에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할 때에는 모든 종교 생활이 의식주의에 지나지 않았고, 자기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을 시작한 다음부터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몸을 바치고 즐거워하면서 주님을 섬기게 되었고, 모든 절기가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영이 살아서 심령 속에서 부터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고, 감격이 넘쳐서 희생의 정신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애통하고 금식하던 절기가 희락의 절기가 된 것입니다.

5. 여러 나라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옴

본문 20-2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2절에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전 건축하는 데로 돌아와서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신다”라고 하며 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대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하는 사람들이 귀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다 흠모하고 사모하며 좋아하고, 거기에 같이 가서 하나님을 섬기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9장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가 믿는 진리, 예수님을 바라보며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7:1-14 형식적 종교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형식적 종교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
스가랴 7:1-14 

1다리오 왕 사 년 구 월 곧 기슬래 월 사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2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 월 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4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 월과 칠 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7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 8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13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14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1. 금식 문답

과거 유다 백성의 금식 생활

본문 1-3절에 “다리오 왕 사 년 구 월 곧 기슬래 월 사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 월 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다리오 왕 사 년 구 월 사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습니다.

벧엘 사람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질문을 하였는데,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고 성전도 다시 건축되어 가는데, 옛날 성전이 불에 탔던 것을 기억하며 울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예레미야 52장 5-13절에 “성이 시드기야 왕 십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그 사 월 구 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갈대아 인이 그 성읍을 에워쌌더니 성벽을 깨뜨리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인의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미치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그들이 왕을 잡아가지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를 신문하니라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이고 또 립나에서 유다의 모든 방백을 죽이며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 년 오 월 십 일에 바벨론 왕의 어전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라고 하였습니다. 70년 전 5월이면 포로로 잡혀갔을 때인데, 이 시기에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서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5월이면 금식을 하고 애통해 하며 몸을 재계(齋戒)하는 일, 즉 절제하여 속화된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재계하는 동안에는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고,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근신하고 경건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한 금식 문답

본문 4-6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 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5월과 7월에 금식하고 애통해 하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식의 참 목적은 자기를 부인하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의 금식은 그들 자신을 위하여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6절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간판만 하나님을 위한것이고 속은 자기를 위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이것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격될 수 없습니다. 무효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 하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하느냐를 언제든지 깊이 깨닫고 분별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위해서 하며,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첫째여야 함

유다 백성들이 70년간 울며 애통하며 재계할 때에 외부적으로는 굉장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속화된 것, 육신적인 것을 아예 경멸 하면서 죄를 끊어버렸을 것 같은데, 중심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들 중에서도 자기를 위해서 교회 일을 보는 사람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낙제입니다. 예배당을 짓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짓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짓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 일도 자기를 위해서 보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는 무엇이나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주님을 위해서는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는 정신으로 나가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생명을 바치려고 하며, 어떠한 희생이 와도 달게 받고, 무조건 충성하는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도 가고, 소돔 고모라도 가고, 어떠한 희생이 와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야 합니다. 죽으라고 하시면 죽으면서까지 생명을 내놓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외부적으로는 다 같아 보이나 속이 다릅니다.

교역자들 중에서도 현재의 교회보다 좀 더 좋은 데로 가라고 하면 기뻐서 간다고 하고, 지금 교회보다 좀 못한 곳으로 가라고 하면 원치 않는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마지못해서 가긴 가는데, 불평과 원망이 가득하니 하나님의 일이 되겠습니까? 또 자기 구원이 되겠습니까?
현재 몇 백 명 되는 교회를 보던 사람이 한 열 몇 명 되는 교회를 맡아도 단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몇 백 명 되는 교회에서 몇 백만원의 사례를 받다가 열 명도 안 되는 교회에 가면 돈도 얼마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굶게 하시면 굶자. 죽게 하시면 죽자’라고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 없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역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양심적으로 한 번 답변해보십시오.

우리가 무슨 일이든 주님을 위해서 하는지 분명히 판단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판단 받고, 양심에도 판단 받고, 말씀에 비추어서도 판단 받아야 합니다. 중심에서도 판단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실 때에 그곳의 가축들까지 다 죽이라고 하셨는데, 사울은 살찌고 좋은 짐승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가지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가장 살찌고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울 왕이 먹으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제사하는 것은 둘째이고, 목적은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지 않으시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목적만 받으십니다. 첫째로 자기를 위하고, 하나님께는 둘째로 바치는 것은 원치 않으십니다.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마귀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화라도 이와 일맥상통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어떤 사람이 멀리 나무를 하러 가서 도토리 같은 것을 주워 부모님과 형에게 주려고 가지고 내려오는 길에 날이 저물어 외딴 집에 들어가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도깨비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도토리를 하나씩 깠더니 ‘바짝’하고 소리가 자꾸 나자 도깨비들이 ‘아, 돌담이 무너진다’고 하며 전부 달아나느라 금 망치와 은 망치를 놓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와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친구가 그와 똑같이 하였는데, 도깨비들이 두 번이나 속겠습니까? 실컷 얻어맞고만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첫째여야 하는데, 자기를 위하는 것이 첫째이고 두 번째로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떡을 많이 해서 결국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첫째이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을 둘째로 갖다놓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도 있지만, 희귀합니다. 하여간 자기를 위해서 하느냐, 하나님을 위해서 하느냐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유익이 될 것 같으면 종교 생활을 하고, 자기에게 불리할 것 같으면 하지 않으려는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바꾸지 못하면 70년간 믿었어도 헛 믿은 것이고,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속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십니다.

예전에 김현봉 목사님께서 예수를 왜 믿느냐고 했을 때, 천당에 가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낙제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주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셨으므로 감사해서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합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합격을 맞는 것이 참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자기를 위하는 것을 다 버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을 바꾸어놓지 못하면 70년간 예수님을 믿은 것이 헛된 일이 됩니다. 양심적으로 볼 때에 나를 위해서 하는지, 주를 위해서 감사함으로 하는지 잘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바쳐놓고 죽도록 충성을 하는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인지 자신이 바로 판단해서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 청종하라

본문 7절에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참된 신앙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전부터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주셨는데, 백성들이 그것을 잘 순종하였으면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선지자를 통해서 책망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본문 8-1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망하기 전에 진실한 재판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진실한 판단을 하고, 긍휼히 여기며, 사랑을 베풀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
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이러한 말씀들을 싫어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귀는 막으며, 청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그 마음은 금강석 같이 완고하고 강퍅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전하신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 진노가 여호와께로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3. 청종치 않은 자가 받는 벌 

본문 13-14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지 않는 모든 열국을 헤치셨습니다. 등을 돌리고, 귀도 막고, 마음은 금강석같이 강퍅하게 하고는 하나님을 부르며 찾기는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으시고, 이제는 회리바람을 보내어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을 헤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 땅이 황무해지고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회리바람에 다 날려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스가랴 6:1-15 네 말과 네 병거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네 말과 네 병거
스가랴 6:1-15

1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 산이더라 2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3셋째 병거는 백마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6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7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8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9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0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 11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12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
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14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15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찐대 이같이 되리라

1. 네 말

홍마(紅馬), 흑마(黑馬), 백마(白馬), 그리고 어룽지고 건장한 말

본문 1-3절에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 산이더라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셋째 병거는 백마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네 말은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온 말과 같습니다. 순서만 바뀌었습니다.

본문 4-5절에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말들은 하늘의 네 바람인데, 전쟁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51장 1-2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을 일으켜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처하는 자를 치되 내가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여 그 땅을 비게 하리니 재앙의 날에 그를 에워 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네 말은 바람을 일으키는 것, 즉 전쟁, 운동,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를 가리킵니다. 흰 말은 복음 운동과 희생, 붉은 말은 마귀 운동, 검은색 말은 흑암과 기근이며, 어룽진 말은 혼합주의입니다. 첫째가 붉은 말인데, 이것은 마귀 운동입니다. 죄악과 살인 및 혈기를 부리는 것이 붉은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붉은 말 탄 자가 큰 칼을 가지고 나와서 땅의 화평을 제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6-7절에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고 하였습니다. 북(北)은 죄악을 상징하는데, 마귀의 역사가 있는 곳, 기근이 있는 곳, 흑암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붉은 말도 마귀이므로 어디 있다고는 안 해도 북편에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기근과 고통의 흑암을 만나면, 하나님께 회개하게 되고, 회개하면 흰 말이 따라갑니다. 환난 가운데서 부르짖고 회개할 때 복음의 문이 열려서 흰 말이 따라갔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마귀 역사를 당하며 곤란할 때 하나님께 회개하면 흰 말이 와서 구원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복음을 받아서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자기 생명으로 받고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룽진 말이 가는 남쪽은 진리를 혼합하여 나가는 혼합주의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인간의 지식을 섞는 신 신학, 말씀을 안 따라가고 감동만 따라가는 신비주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가면 점점 말씀에서 떠나게 되고, 마귀의 종이 되며 밥이 됩니다. 성경말씀에 세상을 섞고 인본주의와 신비주의를 섞어서 믿는 것은 다 어룽진 말입니다. 이 말은 건장합니다. 신앙대로 나가면 좁은 문이고, 진리를 양보하고 세상과 타협해나가면 건장한 말처럼 교회도 잘되고 모든 것이 잘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
적으로 잘되는 것일 뿐,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연약하지만 온유하며 겸손하게 예수님만 의뢰하고 나가는 복음 운동은 점점 창성해집니다. 마침내는 그 영광이 커집니다.

본문 8절에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북방으로 간 말은 흑마, 백마입니다, 마귀 운동, 흑암과 기근을 만나서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적마나 흑마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니까 마음이 시원해지고, 흰 말은 복음 운동이니까 택한 백성을 구원하여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2. 성전 건축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운 면류관

본문 9-1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70년 만에, 대개는 주전 530년에 백성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일부 바벨론에 남은 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금, 은, 보물과 재물을 모아서 성전 짓는 데에 보내자고 하였습니다. 이제 바벨론의 세 사람,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돈을 가지고 와서 요시아의 집에 들어가 있는데, 하나님의 명령으로 스가랴가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본문 12절에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순’이라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므로, 그 은금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오셔서 참된 영적 성전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드리라는 말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면 성전 건축은 주님께서 해주심

우리가 그저 성전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그리스도께 다 바쳐 영광을 돌려놓으면, 그리스도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으시고 ‘보이는 성전보다 나를 더 중히 여기는구나. 내가 성전을 지어줘야겠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구제 사업, 사회 사업, 고아원 사업, 양로원 사업 등이 다 좋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만들어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씌우면 성전은 하나님께서 다 지어주십니다.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도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여 오셔서 자기 곳에서 돋아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니,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서 그만 위하며 순종만 하면, 성전 건축은 주님께서 해주십니다.

자기가 짓는 것도, 돈으로 짓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보이는 스룹바벨 성전보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영적 성전을 짓지 못하고, 보이는 성전만 잘 지어놓으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껍데기만 지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성전을 잘 지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며, 그리스도만 위하고, 모든 귀한 재물과 자기 생명까지도 그리스도를 위해 써야 합니다. 성전은 그리스도께서 지어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능치 못한 것이 없으십니다.

학개 2장 7-9절에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은과 금이 없어서 못하시겠습니까? 너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순종하며 이용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만국을 진동시켜서라도 깨뜨리시고 만국의 모든 세력을 다 파괴하고서라도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을 계속 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리고,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며, 회개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신령한 교제를 하면서, 처음 사랑과 처음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일은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영적 성전도 보이는 성전도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은과 금이 다 하나님의 것이니, 그것으로 다 해주십니다. 믿는 일이 잘되도록 하나님께서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제사장이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능히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능히 평화의 성전으로 건축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수고한 것은 절대로 헛되이 돌아가지 않음

본문 14절에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헬렘’은 바벨론에서 온 세 사람인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 중 헬대의 다른 이름입니다.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다른 이름이 또한 ‘헨’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네 사람을 기념하여 그들이 가져온 재물로 만든 면류관을 성전 안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져온 보람이 있습니다.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는 바벨론에서 금, 은을 가져와서 복을 받았고,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영접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면류관은 여호와의 전에 두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천국에 영원히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
다. 주를 위해서 충성하며 바친 것, 주를 위해서 봉사한 것, 주의 종들을 자기 집으로 영접한 것, 면류관을 만들어서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린 것은 하늘나라에 영원토록 남아 있습니다. 쓰기는 예수님께서 쓰시지만 바친 것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바친 것으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으면 자기도 영광입니다.

주를 위해서 수고한 것은 절대로 헛되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서 수고하십시오. 주를 위해서 수고하고 바치며, 면류관을 씌워드리십니다. 그렇게 영광 돌린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하늘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자기에게 돌린 영광은 결국 다 없어지지만, 자기를 희생하고 예수님께 영광 돌린 것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당나귀를 바친 사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사람, 마가 요한이 다락방을 바친 것, 과부의 두 렙돈, 동방박사의 황금과 유향과 몰약,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유 등은 모두 영원히 하늘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해서 영광을 돌리기 위해 희생하며 봉사한 것만이 하나님의 성전에 남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먼 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찐대 이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금과 은을 가져와서 면류관 씌운 것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8절에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한 것이 상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인하여 내게 있는 권세를 다 쓰지 않은 것이 상이라는 것입니다. 대가를 받았으면 상이 없습니다. 희생하며 봉사한 것이 하늘나라의 상입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만 위하고 그에게만 영광을 돌리며 주의 일에만 충성하면, 그것이 예수님께 면류관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을 위한 것만큼 하늘나라에 남아 있게 됩니다. 남,녀 선교부가 오늘 모이는데, 선교부가 모여서 선교하느라 기도하고 애쓰고 연보하는 것, 전도하는 것, 그리고 심방하는 것도 희생이며 봉사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늘나라에 쌓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청종하는 생활

‘청종(聽從)’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안일주의와 방종과 방탕에 빠지지 말고, 술 취하지 말며, 생활의 염려로 둔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청종하라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아무리 힘든 십자가라도 단 마음으로 지고 가는 것이 청종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면 떠나지 않고,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하시면 가고, 낮아지라고 하시면 낮아지고, 핍박을 받으라고 하시면 받는 것이 청종입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것을 가져 오라고 하실 때에 가져가는 것이 청종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 이상을 먹이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예수님만 위하고 사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생명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받으시고, 오셔서 보이는 성전 및 영적 성전을 다 건축해주십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2017년 8월 24일 목요일

스가랴 5:1-11 성전 건축에 대한 여호와의 권면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전 건축에 대한 여호와의 권면
스가랴 5:1-11

1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2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3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4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5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7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8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9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10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11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1. 날아가는 두루마리

두루마리와 옛 성막의 척수가 같음

본문 1절에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들었다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 각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을 들지 않고 땅만 바라보고 자기만 바라보면, 두루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당시에는 양피로 만든 두루마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눈을 들어서 위에 것을 찾고 사모하고 바라보려고 애를 쓸 때에 이 두루마리를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본문 2절에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십 규빗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날아가는 것처럼 속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옛날 출애굽 때 만든 성막의 척수입니다.
출애굽기 26장 1절부터 보면 성막의 크기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스가랴서는 성전 건축을 권면하고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두루마리의 장광이 성막의 장과 광의 척수와 같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 두루마리를 통해서 성전 건축의 모든 것에 대해 가르쳐주시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도적질과 맹세

본문 3절에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짓는 것에 대해 도적질한 것, 맹세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에 대해 무슨 도적질을 했습니까? 무슨 맹세를 했습니까?

본문 4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도적질에 대한 것은 말라기 3장에 나와 있습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기 때문에 저주 받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십일조를 안 드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만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십 분의 구’도 우리 것이 아니고 모두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는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야 하고, 십일조 아닌 것도 하나님께 써야 할 때에는 바쳐야 합니다. 제 것이라고 해놓으면 그것이 도적입니다. 누가복음에 ‘불의의 재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았기 때문에 불의의 재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재물은 다 각 사람에게 임시로 맡겨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므로 불의의 재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벗은 몸으로 왔다가 벗은 몸으로 갑니다.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서울 시내에 높은 빌딩을 짓고 있는 부자도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시면 다 내놓고 빈손 들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손도 능히 그것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안 드린 것이 첫째 도적이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바칠 만한 것을 바치지 못한 것도 도적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쓰려고 주셨는데, 그렇게 안 쓰고 붙들고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도적질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고 하였습니다.

‘맹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전 짓는 것에 합당치 않은 맹세를 말합니다.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 앞에서 그것에 협력하지 않고 손해를 주는 맹세,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는 맹세를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성전 건축에 협조하지 않으며 돈을 내지 않겠다. 나가서 돕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백성들 중에 어떤 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협력을 안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포로로 있다가 이제 돌아왔는데 무슨 성전을 이렇게 크게 짓느냐며 망령된 맹세를 합니다. 개인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맘에 딱 맞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성전의 규모도 빈부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다르므로 전체 백성의 맘에 딱 맞을 수가 없습니다. 같은 규모라도 가난한 사람의 눈에는 크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돈 없는 것만 생각하고 너무 크다고 할 것이고, 부자는 또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에 딱 맞지 않아도 서로 잘 참고 잘 협력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까지 힘써 하고, 그 외에는 스스로가 적응하려고 해야 합니다. 성전 하나를 지어도 의견이 똑같을 수 없으므로 싸움에 버금가는 토론을 몇 번이나 거쳐야 하기 마련인데, 그럴수록 사견(私見)을 버리고 어떻게 하든지 성전 건축을 해야 한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각으로 잘 지어야 하는 것도 못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즉 순종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말씀이 있다는 점이 정말 중요한 것임을 알고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결과에 대해서는 그것이 설령 내 마음 같지 않더라도,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말씀만 있으면 된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전 짓는 것에 협력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며 방해하거나 비방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에 도적질하고 내놓지 않는 것, 자기 기대에 어긋난다고 망령되이 행동하는 것은 다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을 일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 에바와 여인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본문 5-6절에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바’는 곡식을 재는 기구로, 옛날 우리의 말이나 되와 같은 것입니다.

본문 7-11절에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인’은 죄악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죄악이 에바 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죄가 점점 들어차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시대처럼 죄악이 관영한 것입니다. 죄가 점점 들어참으로 성지에서 들어서 옮기는데, 학의 날개를 단 두 여자가 멀리 시날 땅으로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지 않고 죄만 짓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거룩한 땅에서 들어내어 멀리 이방 세상 시날 땅으로 내쫓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성전을 짓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도적질한 데 대해서 양심에 가책이 들면 그만 두십시오.

‘성전을 지어야 하는데, 이렇게 낭비하면 안 되겠다. 하나라도 절약해서 성전을 지어야겠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데에는 다 쓰면서 성전 짓는 것에는 조금만 바친다는 것은 양심상 바로 되지 못한 것입니다. 또 망령되이 맹세하는 일 등 성도가 여러 가지 죄악에 물들면 하나님께서 드러내버리십니다.

‘두 여인’은 에바 속의 여인과는 또 다른 악을 가리킵니다. 성도가 그렇게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나라로 와서 치게 만드신다든지, 그 외 원수 국가를 보내서 잡아가게 하신다든지 하여 결국 하나님의 복된 자리에서 살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자기 뜻이 아니어도 학의 날개를 단 두 여자에게 붙들려 그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날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마귀가 와서 끌고 갈지, 무슨 바람에 날려갈지 모릅니다. 시편 1편 3-6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
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알맹이가 없으니 바람이 불면 날아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바른 신앙 생활을 안 하면 이렇게 됩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나오면서 못된 짓, 비방, 도적질도 같이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점점 죄악이 차면 더 큰 죄악의 세력이 와서 그 사람을 납 조각으로 눌러 뚜껑을 덮고 마귀 패로, 멀리 세상으로 내버리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는 바람 날개를 안 탈 수 없습니다. 그것에 실려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자기가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거룩하고 복된 땅에 살기를 원하십니다. 먼 시날 땅에 가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좋은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남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짓게 되면 그렇게 안됩니다. 반드시 바람 날개를 타고 날아갈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죄를 짓지 않고, 자기 자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성전 짓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해 충성할 때에 복 받는 줄로 아십시오. 우리가 그런 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스가랴 4:1-14 순금 등대와 감람나무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순금 등대와 감람나무
스가랴 4:1-14

1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2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3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4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6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7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 8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11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 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13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14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1. 순금 등대와 감람나무

순금 등대 - 순수한 말씀으로만 이루어져나가는 믿음의 참 교회

본문 1-2절에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스가랴 선지자를 깨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고 물어볼 때에 스가랴 선지자가 순금 등대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순금 등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등대는 일곱 가지로 갈라져 일곱 촛대가 되고, 일곱 촛대 위에는 불을 켤 수 있는 등잔이 놓이고, 등대 양 옆에는 두 감람나무가 있었습니
다. 그리고 그 감람나무에서 등대까지를 연결한 금관이 있어서 그 관으로 감람나무 기름이 등잔에 공급되어 일곱 등잔에 불을 켤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등대’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장20절에 “네 본 것은 내 오른 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하였습니다. ‘순금’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금은 믿음이고, 순금은 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순금 등대는 믿음으로 된, 참 교회를 가리킵니다.

믿음은 말씀에서 납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행함과 함께 해야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고 그저 믿는 것은 미신이며, 맹신입니다. 헛된 것입니다. 말씀이 없이 ‘믿사오니’라고 하는 것은 다 허황된 믿음입니다. 순금은 섞은 것이 없는, 순수한 것입니다. 섞은 것이 없는 순수한 말씀만 믿는 것이 순금 신앙입니다. 말씀에 다른 것을 섞지 않은 것이 순금입니다. 섞으면 순금이 아닙니다. 섞은 것 없이 말씀만 믿는 믿음, 말씀만 세워나가는 신앙, 말씀으로만 이루어져나가는 교회가 순금 등대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4장 2절에는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섞은 것은 가짜입니다. 또 섞어놓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섞으면 안 됩니다. 갈라디아서 1장 8-9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섞으면 안 됩니다.

성경 그대로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에 조금이라도 감하거나 더하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저주를 받습니다. 가감할 수 없습니다.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만 세워나가고, 말씀 그대로만 가르치고, 말씀 그대로만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교회들이 인본주의로 성경말씀에 다른 것을 섞고 있습니다. 교회가 오락 기관이 되어 가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순금 등대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무당 굿하는 식으로 춤추며 떠들어댑니다. 옛날 초대 교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경건하게 하나님을 찬송하며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명한 가수를 데려다가 구경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수를 데려다가 구경 오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만 이런 것이 아니라 선교지에 나가도 점점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며, 먹고 놀게 만들어놓았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춤추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아졌습니까? 율동 예배라고 하면서 여자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돌아가는데, 그런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고 하였고(요 4:24), 또 영으로 마음으로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4:15). 성경대로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성경에서 떠난 것은 순금 등대가 아닙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도 성경말씀으로만 증거해야지, 무슨 책 읽은 얘기, 세상 얘기를 하면 성경에서 떠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떠난 것은 순금 등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교회들이 순금 등대였는데, 점점 신비주의, 신신학, 해방 신학, 복음 성가 등 오가잡탕이 다 들어왔습니다. 요새 복음 성가를 하는 사람이 한국 민속 노래의 곡조를 따다 붙인다고 합니다. 또 성경대로 하면 젊은 사람들을 붙잡지 못한다고 하며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고 합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세상 아이들이 노라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예 세상에서 놀 바에는 교회에 와서 놀아라, 세상에서 방탕할 바에는 교회에서 방탕하라는 식입니다. 세상 곡조가 교회 안에 다 들어왔습니다.

80세 되신 할머니 교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 상당히 좋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요새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회에서 춤추는 것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하면 젊은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까?
또 신비주의로 나갑니다. 신비주의는 감정의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의 만족을 얻는 것은 술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노라리하는 도취, 교회에서 신비주의하는 도취, 다 취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 정신대로 하지 못합니다. 사진에 보니까 여자들이 강단에서 춤을 추는데, 한 쪽 어깨를 드러내고, 의복은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을 입었습니다. 이것은 음란, 방탕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순금 등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순금 등대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다른 것을 섞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순금 등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순금 등대만 하나님께서 그 촛대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교회가 순금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말씀만 전해야지, 다른 것을 섞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가짜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습니다.

감람나무 - 예수 그리스도

본문 3절에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두 감람나무’는 역사적으로는 정치적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과 종교적 지도자인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가리키며, 예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치적으로 왕직을 가지고 통치하시고, 종교적으로는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을 가지고 구원 사역을 하십니다(히 4:14).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두 감람나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정치적으로 기름 발리운 왕이시며, 종교적으로 기름 발리운 선지자와 제사장으로서 직분이 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 44절에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주는 하나님, 또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도 ‘주’이시고 그리스도도 ‘주’이십니다. 
본문14절에 주 앞에 모셔 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모셔 섰다는 뜻입니다. 감람나무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감람나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람나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막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예수님의 대명사입니다. 교회에서 진리만 세워나가고 진리대로만 했으면 미혹을 받지 않을 텐데, 진리를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감람나무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이것이라고 하면 따라가고 저것이라고 하면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니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순금 등대가 되려면 성경을 가감 없이 순수한 성경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등대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순금이어야 합니다. 섞으면 안 됩니다. 촛대에 불을 켜서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두 감람나무는 두 촛대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 4절에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가 같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일곱 관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들을 가리키며, 오늘날에는 교역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진리와 은혜를 교회에 공급하실 때 관이 되는 교역자를 통해 공급하십니다. 교역자는 먼저 항상 심령이 깨어서 예수님과 교통하여 막히지 말고, 또 교인들과도 막히지 않아야 합니다. 잘 소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역자는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아 성경 진리를 깊이 깨닫고, 교인들에게 잘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성도들도 항상 예수님과 영적으로 막힘이 없이 교통하며, 교역자와 막혀서도 안 됩니다. 금관이 막히면 기름이 흘러내려오지 못하므로 등불이 꺼지게 됩니다. 항상 교역자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잘 이루어지고, 또 교역자와 교인 사이에 막힘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람나무 기름이 교회에 잘 공급됩니다.

2. 신의 역사로 큰 산이 평지가 됨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임

본문 4-6절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순금 등대를 이루어나가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본문 7절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큰 산’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큰 산과 같이 난공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을 힘입어 행하면 그것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됩니다. 아무리 큰 역경일지라도 스룹바벨의 지시를 따라 전 백성이 힘을 합하여 믿음을 쓰고 모든 정성과 물질과 힘을 기울이면 성령께서 능히 건축되게 해주십니다. 물질적으로 빈약해도 모든 힘과 정성을 다 기울여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형통케 해주십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의 날

본문 8-10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은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이 큰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일의 날’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가 하면 성전 건축이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큰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점점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신으로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의 심령 속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즉, 자신이 골방에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거기서 세밀한 작은 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즉 하나님의 말씀 작은 것 하나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무시하고 큰 것만 해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하지 못합니다. 작은 것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작은 것 하나부터 그대로 순종하는 것, 자신의 작은 죄를 깨닫는 것, 이것이 작은 데에서부터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작지만 못된 버릇을 깨달아 뽑아버리는 데에서부터 성전 건축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신앙 양심에 옳다고 깨달아지면 그대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전 건축이 되는 길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으면 떠나야 성전 건축이 되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나귀를 바치라고 할 때에 바치면 됩니다. 그러면 성전 건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바치면 성전 건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성전 건축이 되지 않습니다. 옳은 것을 옳은 줄로 알면 가야 합니다.
성전 건축은 자기 영이 자라나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나가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의와 진리와 거룩을 입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를 뽑고, 두 개를 뽑고, 하나를 건설하고, 두 개를 건설해 나가다보면 큰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귀히 여기며 연결되어서 큰 성전을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연결되어서 더 큰 성전, 더 큰 교단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계 5:6).

3. 두 감람나무와 그 해석

감람나무가 되시는 예수님께 바짝 붙어서 기름을 공급 받아야 함

본문 11-14절에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 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등대 좌우의 기름을 흘려 내는 두 감람나무와 그 두 가지의 뜻을 천사에게 물어보았을 때, 천사가 두 감람나무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감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금관은 금으로 된 파이프입니다. 이것이 감람나무에서부터 촛대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촛대를 순금 등대라고 한 것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교회가 순수한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순금 등대가 되는 교회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감람나무에서부터 기름이 촛대에 공급되어야 합니다. 기름이 공급되지 못하면 불이 붙지 못합니다. 다 꺼집니다. 기름은 감람나무에서부터 금관으로 연결되어 촛대까지 내려옵니다. 금관은 교역자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하나님이 교역자들을 세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교회에 흘러 내려 살아나게 하십니다. 금관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금은 믿음입니다. 감람나무 기름은 금관을 통해서만 내려옵니다. 교역자가 신앙 절반, 다른 것 절반으로 하여 섞이면 기름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순수한 믿음으로 순수한 말씀만 세워나가야 합니다. 순수한 믿음으로 감람나무가 되시는 예수님께 바짝 붙어야 합니다. 그렇게 붙어서 기름을 공급 받아야만 교회가 삽니다. 교역자가 기도를 많이 하고, 예수님께 바짝 붙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자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기름이 교회로 들어갑니다. 교회가 삽니다. 그러나 요새 교역자들이 말씀만 전하지 않고 다른 것을 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기름이 흘러 내리지 않습니다.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예수 가라사대’만 전해야 합니다. 강단에서 세상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성경만 전해야 합니다. 교회는 금관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 바른 금관이 되어야 합니다. 또 바른 교역자를 길러내기 위해서 신학교가 필요합니다. 성경말씀만 가르치는 신학교가 필요합니다. 다른 것을 가르치면 교회가 살지 못합니다. 교역자는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기도하고, 진리와 영감으로 생명을 받아서 교회에 공급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배워서 성경에 능통하여 생명력 있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관이 바로 되어야 교회가 바로 됩니다.

또 교인들은 금관과 막히면 안 됩니다. 막히면 기름이 내려오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금관과 통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금관을 통해서 기름이 흘러내려오므로 영이 사는 교회, 운동력이 있는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죄악을 밝히는 교회, 의를 세워나가는 교회가 참된 순금 등대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순금 등대를 세워나가시는데, 순금 등대의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금관이 좋아야 합니다. 또 금관은 감람나무에 바짝 붙어서 기름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에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순금금관이 되어 교인들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촛대를 통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인도해야 합니다. 순금 등대를 세워나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바른 교역자 양성을 위해 투자하고 힘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인들도 기도를 많이 하고, 교역자와 막히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금관이 감람나무에 바짝 붙지 않고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나가므로, 자기도 살고 교인들에게도 생명을 공급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017년 8월 23일 수요일

스가랴 3:1-10 사단의 대적과 여호수아의 정화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사단의 대적과 여호수아의 정화
스가랴 3:1-10

1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6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7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8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9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10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1. 사단의 대적과 여호수아의 정화

본문 1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돌아와 스룹바
벨 총독과 함께 성전을 건축하던 대제사장이었습니다(학 1:1). ‘여호와의 사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마귀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했는데, 우편에 서서 대적하였습니다. 우편은 법정에서 유죄를 주장하는 자리입니다. 사단은 ‘네가 무엇을 하겠느냐? 네 죄가 많다. 너는 아무 자격이 없다’고 하며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성도를 정죄하며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사단의 대적을 막지 못하면 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참소를 이기기 위하여 언제나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에 마귀가 수첩에 루터의 죄목을 써 가지고 와서 ‘네게 이런 죄가 있는데, 무슨 종교 개혁을 하려고 하느냐?’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루터가 수첩에 빨간 잉크로 십자가를 그렸는데, 그 죄목이 지워지고 마귀는 달아났다고 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성도를 참소하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성령님께서 변호해주십니다. 마귀가 우리를 참소할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갖다 대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나는 심부름만 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사단의 참소를 이기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만 순종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만 두라고 하시면 그만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만 두라고 하시기 전에는 그만 두지 않는다. 사단아, 물러가라’하며 물리쳐야 합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이 여호수아를 참소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셨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여호수아와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불에서 꺼냈다는 것은 
첫째로 환난 중에서 건져냈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방치하셨더라면 불에 타서 멸망하였을 것이나, 하나님께서 긍휼로 건져내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내지 않으셨으면 성도는 세상의 모든 환난 중에서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번제단에서 그슬려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에 제단 숯불을 대어서 정결케 해주셨습니다(사6:6-7). 우리는 죄 중에 멸망할 자인데, 예수님의 희생의 제사로 말미암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셋째는 불 같은 시험으로 연단시키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시련 속에서 우리를 연단시켜나가십니다(벧전 1:7).

본문 3-5절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옷’은 죄로 인해 더러워진 옷을 말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와서 참소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하셨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다 제하여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죄를 전부 제하여주셨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또 모든 성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의의 옷을 입으시고 정한 관을 머리에 쓰셨습니다. 히브리서 8장 1-4절에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찌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단번에 제사를 드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12장 2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라보면 도움이 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더러운 것을 다 벗겨주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
며, 아름다운 관을 씌워주십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의를 성도에게 입혀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예수님께서 모든 택한 백성들이 행해야 할 의를 대신 행해주셨습니다. 또 택한 백성들이 죄 값으로 당해야 할 형벌을 대신 다 받으심으로 성도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의를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사죄와 칭의(稱義)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도 곁에서 성도를 변호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
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

본문 6-7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 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내 율례’는 월삭과 안식일과 유월절 등 각종 절기와 제사 제도를 가리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율례를 지키면, 내 집을 다스리게 되고, 뜰을 지키게 되며,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뜰을 지킬 것이며’란 성전 마당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집의 뜰을 지키는 것이 큰 복입니다.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의 뜰 지키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란 자유와 형통함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도와 율례를 잘 지키면 어디를 가나 떳떳하고, 인정을 받습니다. 형통케 되고,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율례를 지키는 것에는 주일을 잘 지키라는 뜻도 있고, 십일조를 잘 드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지말라는 것은 끊어버리고, 하라는 것은 하는 것이 율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곧,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첫째,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고, 
둘째, 하나님의 뜰을 지키게 되고, 
셋째, 왕래하며,
넷째, 아름다운 관을 머리에 씌워주시고, 
다섯째,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십니다. 이 다섯 가지만 있으면 감사하고 만족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 죄를 제거해주심

본문 8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동료’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동료, 즉 다른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대제사장이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다른 제사장이나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해야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게 됩니다. ‘순’은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나실 것을 가리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4절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라고 하였습니다. ‘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돌이라고 한 것은 강하다는 뜻입니다. 돌이 강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강력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돌과 같이 극강하셔서 어디에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렇게 강한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번 손만 드시면 다 결단이 납니다. 스가랴 2장 9절에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한 번 움직이기만 하면 다 뒤집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 손만 움직이시면 원수는 발 아래로 내려가고 성도는 올라갑니다. 강력한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강하고, 어떤 나라가 강하고, 어떤 왕이 강하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손 한 번만 움직이시면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돌이라고 한 이유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또 일곱 눈이 돌에 있다고 하였는데, 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 완전한 지혜로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는 것입니다. 돌에 눈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 완전한 지혜, 전지전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새길 것을 새겼다는 것은 구속의 진리를 새겼다는 것입니다. 즉, ‘새길 것을 새기며’란 산 돌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성취하여 구원의 새 길을 보여주셨다는 뜻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진리를 완전히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믿는 성도의 죄악을 하루에 제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태산과 같이 크고 피와 같이 붉은 죄라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으면 즉시로 그러한 죄에 대한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성도가 구속 받은 영적 세계에서 진리와 은혜의 그늘 아래 복락을 누리며 살 것을 가리킵니다. 또는 천년 왕국 시대에 될 일을 가리킵니다.
미가서 4장 4절에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 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천년 왕국에는 마귀가 없고 죄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셔서 통치하십니다. 백성들은 자기가 농사한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아래에서 그 열매들을 먹고 삽니다. 거기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충만한 나라입니다. 마귀를 잡아가두므로 전쟁이 없는 화평한 시대입니다. 천년왕국까지 구원 역사가 계속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