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금 등대와 감람나무
스가랴 4:1-14
스가랴 4:1-14
1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2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3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4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6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7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 8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11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 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13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14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1. 순금 등대와 감람나무
순금 등대 - 순수한 말씀으로만 이루어져나가는 믿음의 참 교회
본문 1-2절에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스가랴 선지자를 깨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고 물어볼 때에 스가랴 선지자가 순금 등대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순금 등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등대는 일곱 가지로 갈라져 일곱 촛대가 되고, 일곱 촛대 위에는 불을 켤 수 있는 등잔이 놓이고, 등대 양 옆에는 두 감람나무가 있었습니
다. 그리고 그 감람나무에서 등대까지를 연결한 금관이 있어서 그 관으로 감람나무 기름이 등잔에 공급되어 일곱 등잔에 불을 켤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등대’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장20절에 “네 본 것은 내 오른 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하였습니다. ‘순금’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금은 믿음이고, 순금은 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순금 등대는 믿음으로 된, 참 교회를 가리킵니다.
믿음은 말씀에서 납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행함과 함께 해야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고 그저 믿는 것은 미신이며, 맹신입니다. 헛된 것입니다. 말씀이 없이 ‘믿사오니’라고 하는 것은 다 허황된 믿음입니다. 순금은 섞은 것이 없는, 순수한 것입니다. 섞은 것이 없는 순수한 말씀만 믿는 것이 순금 신앙입니다. 말씀에 다른 것을 섞지 않은 것이 순금입니다. 섞으면 순금이 아닙니다. 섞은 것 없이 말씀만 믿는 믿음, 말씀만 세워나가는 신앙, 말씀으로만 이루어져나가는 교회가 순금 등대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4장 2절에는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섞은 것은 가짜입니다. 또 섞어놓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섞으면 안 됩니다. 갈라디아서 1장 8-9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섞으면 안 됩니다.
성경 그대로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에 조금이라도 감하거나 더하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저주를 받습니다. 가감할 수 없습니다.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만 세워나가고, 말씀 그대로만 가르치고, 말씀 그대로만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교회들이 인본주의로 성경말씀에 다른 것을 섞고 있습니다. 교회가 오락 기관이 되어 가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순금 등대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무당 굿하는 식으로 춤추며 떠들어댑니다. 옛날 초대 교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경건하게 하나님을 찬송하며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명한 가수를 데려다가 구경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수를 데려다가 구경 오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만 이런 것이 아니라 선교지에 나가도 점점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며, 먹고 놀게 만들어놓았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춤추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아졌습니까? 율동 예배라고 하면서 여자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돌아가는데, 그런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고 하였고(요 4:24), 또 영으로 마음으로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4:15). 성경대로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성경에서 떠난 것은 순금 등대가 아닙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도 성경말씀으로만 증거해야지, 무슨 책 읽은 얘기, 세상 얘기를 하면 성경에서 떠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떠난 것은 순금 등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교회들이 순금 등대였는데, 점점 신비주의, 신신학, 해방 신학, 복음 성가 등 오가잡탕이 다 들어왔습니다. 요새 복음 성가를 하는 사람이 한국 민속 노래의 곡조를 따다 붙인다고 합니다. 또 성경대로 하면 젊은 사람들을 붙잡지 못한다고 하며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고 합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세상 아이들이 노라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예 세상에서 놀 바에는 교회에 와서 놀아라, 세상에서 방탕할 바에는 교회에서 방탕하라는 식입니다. 세상 곡조가 교회 안에 다 들어왔습니다.
80세 되신 할머니 교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 상당히 좋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요새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회에서 춤추는 것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하면 젊은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까?
또 신비주의로 나갑니다. 신비주의는 감정의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의 만족을 얻는 것은 술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노라리하는 도취, 교회에서 신비주의하는 도취, 다 취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 정신대로 하지 못합니다. 사진에 보니까 여자들이 강단에서 춤을 추는데, 한 쪽 어깨를 드러내고, 의복은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을 입었습니다. 이것은 음란, 방탕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순금 등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순금 등대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다른 것을 섞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순금 등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순금 등대만 하나님께서 그 촛대에 불을 붙여주십니다. 교회가 순금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말씀만 전해야지, 다른 것을 섞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가짜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습니다.
감람나무 - 예수 그리스도
본문 3절에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두 감람나무’는 역사적으로는 정치적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과 종교적 지도자인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가리키며, 예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치적으로 왕직을 가지고 통치하시고, 종교적으로는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을 가지고 구원 사역을 하십니다(히 4:14).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두 감람나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정치적으로 기름 발리운 왕이시며, 종교적으로 기름 발리운 선지자와 제사장으로서 직분이 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 44절에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주는 하나님, 또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도 ‘주’이시고 그리스도도 ‘주’이십니다.
본문14절에 주 앞에 모셔 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모셔 섰다는 뜻입니다. 감람나무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감람나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람나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막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예수님의 대명사입니다. 교회에서 진리만 세워나가고 진리대로만 했으면 미혹을 받지 않을 텐데, 진리를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감람나무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이것이라고 하면 따라가고 저것이라고 하면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니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순금 등대가 되려면 성경을 가감 없이 순수한 성경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등대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순금이어야 합니다. 섞으면 안 됩니다. 촛대에 불을 켜서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두 감람나무는 두 촛대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 4절에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가 같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일곱 관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들을 가리키며, 오늘날에는 교역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진리와 은혜를 교회에 공급하실 때 관이 되는 교역자를 통해 공급하십니다. 교역자는 먼저 항상 심령이 깨어서 예수님과 교통하여 막히지 말고, 또 교인들과도 막히지 않아야 합니다. 잘 소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역자는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아 성경 진리를 깊이 깨닫고, 교인들에게 잘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성도들도 항상 예수님과 영적으로 막힘이 없이 교통하며, 교역자와 막혀서도 안 됩니다. 금관이 막히면 기름이 흘러내려오지 못하므로 등불이 꺼지게 됩니다. 항상 교역자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잘 이루어지고, 또 교역자와 교인 사이에 막힘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람나무 기름이 교회에 잘 공급됩니다.
2. 신의 역사로 큰 산이 평지가 됨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임
본문 4-6절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순금 등대를 이루어나가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본문 7절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큰 산’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큰 산과 같이 난공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을 힘입어 행하면 그것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됩니다. 아무리 큰 역경일지라도 스룹바벨의 지시를 따라 전 백성이 힘을 합하여 믿음을 쓰고 모든 정성과 물질과 힘을 기울이면 성령께서 능히 건축되게 해주십니다. 물질적으로 빈약해도 모든 힘과 정성을 다 기울여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형통케 해주십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건축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의 날
본문 8-10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은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이 큰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일의 날’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가 하면 성전 건축이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큰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점점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신으로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의 심령 속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즉, 자신이 골방에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거기서 세밀한 작은 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즉 하나님의 말씀 작은 것 하나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무시하고 큰 것만 해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하지 못합니다. 작은 것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작은 것 하나부터 그대로 순종하는 것, 자신의 작은 죄를 깨닫는 것, 이것이 작은 데에서부터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작지만 못된 버릇을 깨달아 뽑아버리는 데에서부터 성전 건축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신앙 양심에 옳다고 깨달아지면 그대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전 건축이 되는 길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으면 떠나야 성전 건축이 되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나귀를 바치라고 할 때에 바치면 됩니다. 그러면 성전 건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바치면 성전 건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성전 건축이 되지 않습니다. 옳은 것을 옳은 줄로 알면 가야 합니다.
성전 건축은 자기 영이 자라나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나가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의와 진리와 거룩을 입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를 뽑고, 두 개를 뽑고, 하나를 건설하고, 두 개를 건설해 나가다보면 큰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귀히 여기며 연결되어서 큰 성전을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연결되어서 더 큰 성전, 더 큰 교단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계 5:6).
3. 두 감람나무와 그 해석
감람나무가 되시는 예수님께 바짝 붙어서 기름을 공급 받아야 함
본문 11-14절에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 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등대 좌우의 기름을 흘려 내는 두 감람나무와 그 두 가지의 뜻을 천사에게 물어보았을 때, 천사가 두 감람나무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감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금관은 금으로 된 파이프입니다. 이것이 감람나무에서부터 촛대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촛대를 순금 등대라고 한 것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교회가 순수한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순금 등대가 되는 교회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감람나무에서부터 기름이 촛대에 공급되어야 합니다. 기름이 공급되지 못하면 불이 붙지 못합니다. 다 꺼집니다. 기름은 감람나무에서부터 금관으로 연결되어 촛대까지 내려옵니다. 금관은 교역자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하나님이 교역자들을 세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교회에 흘러 내려 살아나게 하십니다. 금관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금은 믿음입니다. 감람나무 기름은 금관을 통해서만 내려옵니다. 교역자가 신앙 절반, 다른 것 절반으로 하여 섞이면 기름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순수한 믿음으로 순수한 말씀만 세워나가야 합니다. 순수한 믿음으로 감람나무가 되시는 예수님께 바짝 붙어야 합니다. 그렇게 붙어서 기름을 공급 받아야만 교회가 삽니다. 교역자가 기도를 많이 하고, 예수님께 바짝 붙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자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기름이 교회로 들어갑니다. 교회가 삽니다. 그러나 요새 교역자들이 말씀만 전하지 않고 다른 것을 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기름이 흘러 내리지 않습니다.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예수 가라사대’만 전해야 합니다. 강단에서 세상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성경만 전해야 합니다. 교회는 금관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 바른 금관이 되어야 합니다. 또 바른 교역자를 길러내기 위해서 신학교가 필요합니다. 성경말씀만 가르치는 신학교가 필요합니다. 다른 것을 가르치면 교회가 살지 못합니다. 교역자는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기도하고, 진리와 영감으로 생명을 받아서 교회에 공급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배워서 성경에 능통하여 생명력 있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관이 바로 되어야 교회가 바로 됩니다.
금관이 바로 되어야 교회가 바로 됩니다.
또 교인들은 금관과 막히면 안 됩니다. 막히면 기름이 내려오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금관과 통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금관을 통해서 기름이 흘러내려오므로 영이 사는 교회, 운동력이 있는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죄악을 밝히는 교회, 의를 세워나가는 교회가 참된 순금 등대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순금 등대를 세워나가시는데, 순금 등대의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금관이 좋아야 합니다. 또 금관은 감람나무에 바짝 붙어서 기름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에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순금금관이 되어 교인들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촛대를 통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인도해야 합니다. 순금 등대를 세워나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바른 교역자 양성을 위해 투자하고 힘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인들도 기도를 많이 하고, 교역자와 막히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금관이 감람나무에 바짝 붙지 않고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으로 생명을 삼고 나가므로, 자기도 살고 교인들에게도 생명을 공급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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