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과 이스마엘
창세기 21:1-21
1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6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9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10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11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12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13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15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16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 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17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20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21:2 사라가 임신하였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때가 되자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21:3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아 준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불렀고,
21:4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의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째 되는 날에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21:5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태어날 때에 나이가 백 세였다.
21:6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로 웃는 자가 되게 하시니, 듣는 모든 사람이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 하고
21:7 또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겠는가? 그러나 내가 아브라함의 노년에 아들을 낳았다." 라고 말하였다.
21:8 그 아이가 자라서 젖을 떼었는데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
21:9 사라가 보니, 이집트 여자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이삭을 조롱하였다.
21:10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십시오.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21: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에 관련된 일로 인하여 근심이 가득하였다.
21:12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와 네 여종의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라. 사라가 네게 말한 대로 다 들어라. 이삭을 통해서 태어나야 네 자손이라 일컫게 될 것이다.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자손이기 때문에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하셨다.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어 주고 그 아이와 함께 내보내자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를 방황하였다.
21:15 하갈이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아이를 한 덤불 아래로 보내어놓고
21:16 그 여자는 화살이 미치는 거리만큼 반대편으로 가서 마주앉아 말하기를 "내가 자식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구나." 하고 소리 높여 우니,
21:17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말하기를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니,
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그를 붙잡아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 것이다." 라고 하며,
21:19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 주시니, 하갈이 물이 있는 샘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다.
21:20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셨고, 그 아이는 자라 광야에 살면서 활 쏘는 사람이 되었다.
21:21 그가 바란 광야에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이집트 땅 여자를 데려와 아내로 삼게 하였다.
창세기 21:1-21
1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6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8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9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10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11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12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13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15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16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 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17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20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21:2 사라가 임신하였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때가 되자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21:3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아 준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불렀고,
21:4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의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째 되는 날에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21:5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태어날 때에 나이가 백 세였다.
21:6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로 웃는 자가 되게 하시니, 듣는 모든 사람이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 하고
21:7 또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겠는가? 그러나 내가 아브라함의 노년에 아들을 낳았다." 라고 말하였다.
21:8 그 아이가 자라서 젖을 떼었는데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
21:9 사라가 보니, 이집트 여자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이삭을 조롱하였다.
21:10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십시오.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21: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에 관련된 일로 인하여 근심이 가득하였다.
21:12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와 네 여종의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라. 사라가 네게 말한 대로 다 들어라. 이삭을 통해서 태어나야 네 자손이라 일컫게 될 것이다.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자손이기 때문에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하셨다.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어 주고 그 아이와 함께 내보내자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를 방황하였다.
21:15 하갈이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그 아이를 한 덤불 아래로 보내어놓고
21:16 그 여자는 화살이 미치는 거리만큼 반대편으로 가서 마주앉아 말하기를 "내가 자식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구나." 하고 소리 높여 우니,
21:17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말하기를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니,
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그를 붙잡아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 것이다." 라고 하며,
21:19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 주시니, 하갈이 물이 있는 샘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다.
21:20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셨고, 그 아이는 자라 광야에 살면서 활 쏘는 사람이 되었다.
21:21 그가 바란 광야에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이집트 땅 여자를 데려와 아내로 삼게 하였다.
1. 이삭을 낳음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시고 행하심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 위하여 사라가 잉태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신다고 하였는데, 사람이 계속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계속해서 힘을 쓰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되는 것입니다. 금년에 안 되면 명년을 기다리고, 명년을 기다렸다가 안 되면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힘을 쓰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집니다. 온전히 행해집니다. 당장 안 된다고 할지라도, 몇 년 있어도 안 되더라도, 좀 더 있으면 온전히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계속해서만사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실 것을 끝까지 믿고 자꾸 힘써서 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사라가 잉태하였는데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권고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실 때, 사람도 계속해서 자꾸 힘써 노력해야 잉태하는 것입니다. 여러 번, 여러 날, 오랫동안 노력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어서 그의 집에서 길리운 다메섹 엘리에셀이 그의 상속자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종을 첩으로 얻어서 아이를 하나 낳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와 언약을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사라가 잉태하기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나이 들어 희망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다렸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잉태하기를 힘써서 계속할 때, 여러 날 후에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만사가 이와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인데, 우리가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행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를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때가 안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있는 힘을 다 기울이고, 그 다음에는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끝까지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
나님께서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법,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받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는 자기를 다 바치는 것입니다. 믿는 일을 위해 재정과 환경 모두 다 바쳐서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안 된다고 그만두지 말고 계속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열 번, 스무 번, 100번이라도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먼저 말씀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즉시 순종해야 됩니다. 말씀부터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권고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거나 하
라고 하십니다. 또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나님의 권고가 임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하지 말고 순종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하라는 말씀입니다. ‘힘이 없다’, ‘자격이 없다’, ‘돈이 없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가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다 바쳐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하고 얻어 갈 생각을 하고, 얻어먹을 생각만 하는 것은 거지 근성입니다. 그런 생각은 못 씁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바쳐서 희생해야 합니다.
개척 교회할 때도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어야 합니다. 누가 해주겠거니 하지 말고, 먼저 자기 것을 다 팔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 될 때 다른 사람이 보조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것을 다 기울여서 계속해서 힘을 쓰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이루어지게 만드
시는 것입니다.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에 쓰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격 없는 사람을 들어서 쓰십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을 자격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희망이 없습니다. 자격이 없고 희망이 없지만, 하나님의 권고함에 따라서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을 쓰니까 마침내는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먼저 말씀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즉시 순종해야 됩니다. 말씀부터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권고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거나 하
라고 하십니다. 또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나님의 권고가 임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하지 말고 순종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하라는 말씀입니다. ‘힘이 없다’, ‘자격이 없다’, ‘돈이 없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가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다 바쳐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하고 얻어 갈 생각을 하고, 얻어먹을 생각만 하는 것은 거지 근성입니다. 그런 생각은 못 씁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바쳐서 희생해야 합니다.
개척 교회할 때도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어야 합니다. 누가 해주겠거니 하지 말고, 먼저 자기 것을 다 팔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 될 때 다른 사람이 보조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 것을 다 기울여서 계속해서 힘을 쓰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이루어지게 만드
시는 것입니다.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에 쓰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격 없는 사람을 들어서 쓰십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을 자격 있습니까? 육체적으로 희망이 없습니다. 자격이 없고 희망이 없지만, 하나님의 권고함에 따라서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을 쓰니까 마침내는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2. 이삭을 믿음으로 양육함
말씀대로 이삭이라고 이름함
본문 2-4절에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
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 바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삭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7:19절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태어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길러야 됩니다. 말씀대로 이름을 짓고 말씀대로 길러야 됩니다. 그 다음에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한 것도 말씀대로 행한 것입니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는 그 즉시부터 모든 것을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삭이라고 이름함
본문 2-4절에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
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 바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삭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7:19절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태어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길러야 됩니다. 말씀대로 이름을 짓고 말씀대로 길러야 됩니다. 그 다음에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한 것도 말씀대로 행한 것입니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는 그 즉시부터 모든 것을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삭을 낳음으로 기뻐하여 웃음
본문 5-7절에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라가 웃은 것은 좋은 웃음이고, 의심하는 웃음이 아닙니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 무슨 의심을 하겠습니까? 여기서 사라가 웃은 것은 전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겠다고 천사가 말해주었을 때 불신앙으로 웃은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89세 난 사
라에게 아들이 있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웃은 것이지만, 지금은 이삭을 출생한 것이 사람의 능력과 지각을 초월하여 신적 역사(神的役事)로 출생한 것이니 놀랍고 기뻐서 사라가 웃은 것입니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90세 할머니인 사라가 해산했다는 말을 사람들이 들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뻐하며 웃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면서 웃는 것이고, 될 수 없는 상상 밖의 일이 이루어졌으니까 웃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라가 늙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의 생각에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라가 자녀를 젖먹이겠다고 누구도 감히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아들을 낳게 해주셨으므로 사라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송한 것입니다.
본문 5-7절에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라가 웃은 것은 좋은 웃음이고, 의심하는 웃음이 아닙니다. 아들을 낳은 다음에 무슨 의심을 하겠습니까? 여기서 사라가 웃은 것은 전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겠다고 천사가 말해주었을 때 불신앙으로 웃은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89세 난 사
라에게 아들이 있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웃은 것이지만, 지금은 이삭을 출생한 것이 사람의 능력과 지각을 초월하여 신적 역사(神的役事)로 출생한 것이니 놀랍고 기뻐서 사라가 웃은 것입니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90세 할머니인 사라가 해산했다는 말을 사람들이 들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뻐하며 웃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면서 웃는 것이고, 될 수 없는 상상 밖의 일이 이루어졌으니까 웃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라가 늙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의 생각에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라가 자녀를 젖먹이겠다고 누구도 감히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아들을 낳게 해주셨으므로 사라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송한 것입니다.
3.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
이삭이 젖 떼는 날에 큰 잔치를 배설함
본문 8절에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돌잔치가 아닙니다. 젖을 떼는 날에 대연을 배설하였다고 하는 것은 육신적으로 젖 뗀 것이 좋아서 대연을 베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삭을 통해서 하
나님의 구원운동을 이루실 터인데, 이삭이 젖을 뗀 것만큼 구원 운동이 성장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제는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을 만큼 성장했으므로 그것이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큰 잔치를 배설한 것입니다. 구원 운동이 성취돼 나아가는 것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육신의 젖을 뗀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젖이나 먹다가 단단한 식물을 먹을 만큼 지금 이렇게 자라났으니까 그야말로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는 말입니다.
자기 혼자서 즐거워할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다 모아 놓고 구원운동이 잘 되는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이므로 대연을 베풀고 먹었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사라가 봄
본문 9-10절에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라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17:24-25절에 이스마엘이 13세 때에 할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마엘이 13세 때, 아브라함이 99세였고,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삭을 낳았으니 이스마엘과 이삭은 14살 차이입니다. 그러면 이삭이 3살에 젖을 뗐다고 하면, 그때는 이스마엘이 16세나 17세 쯤 되었을 것입니다. 동생 이삭이 서너 살일 때, 형 이스마엘이 희롱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희롱했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괴롭게 하고 못살게 하고 깎아 내린 것 같습니다. 또한 본문 20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이스마엘이 장성하여 화살 쏘는 자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이스마엘이 여러가지로 이삭을 괴롭게 하고, 활 쏘는 연습하면서 위협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또 핍박하고 깎아내려 낮추고 압제하여 자꾸 이삭을 희롱한 모양입니다.
사라가 보니까 이삭이 참 안되었습니다. 큰일 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삭이 자라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이삭이 이스마엘에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또 죽이지는 않더라도 너무 괴롭게 하고 너무 희롱 하니까, 이삭이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못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하였습니다.
4.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음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함
본문 10절에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남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남편 아브라함에게 심한 걱정이 생겼습니다.
본문 11절에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깊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내어 쫓겠나? 그도 아들인데’라고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라가 ‘내어 쫓아주십시오’ 하지 않고 ‘내어 쫓으라’고 하였는데, 사라가 화가 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이요, 또 자기가 90세에 낳은 아들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인데, 약속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고 자꾸 못살게 하고 기를 못 피게 하니까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래서 자기 남편 보고 내어 쫓으라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명령식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근심치 말고 내어 쫓으라고 하심
본문 12-1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깊이 근심하면서 기도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계속 근심이 들어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길 때는 특별히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내쫓으라고 하는데, 얼마나 중대한 문제입니까? 그래도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맏아들 아닙니까?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겠습니까? 사람을 내어 쫓으라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심히 근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말씀 하시기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종의 아들을 아브라함이 쫓아도 죽지 아니하고 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이루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염려하지 말고 내쫓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내어 쫓음
본문 14절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과 여종을 내쫓으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작정을 했습니다. 언제 내쫓았느냐 하면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내쫓았습니다. 조금 더 애착심을 가지고 ‘조금 더 있다 가라. 조금 더 있다 가라’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음에는 즉시로 순종하여 실행했습니다. 시간을 지체하면 마귀 시험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음에는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즉시 순종입니다. 즉시로 해야 하지, 그저 우물쭈물하여 한 번 더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아들쳐다보고 하다가는 애착심이 생겨 마음이 그만 해이해집니다. 결심이 해이해집니다. 그리고 마귀가 틈탑니다. 그 아들을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볼 것도 없습니다. 다 내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예” 하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해야 합니다. 얼굴을 내내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스마엘아, 나가라” 하고, 하나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로 순종해야 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순종을 해야지 우물쭈물 하다가는 마귀 시험이 들어옵니다.
아브라함의 용기가 대단합니다. 아무리 자기 아내 사라가 내쫓으라고 해도 자기 맏아들을 내쫓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단번에 결심하여 단념을 하고 아침에 딱 내쫓았으니 얼마나 그 신앙이 존귀합니까? 이것이 힘 있는 신앙입니다. 아들보다 말씀을 더 귀히 여기는 신앙입니
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 귀히 여기는 신앙이고, 또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쫓으라는 그 말씀을 귀히 여기는 신앙입니다. 아들을 희생해서라도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신앙은 위대한 신앙입니다. 인정선을 넘은 신앙입니다. 인정에 얽매여서 끌려 다니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인정선을 넘어서 끊을 것을 딱 끊어버리고 내어 쫓을 것을 쫓아야만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쫓으라고 하셨는데, 분가해 줄 수도 있겠지만, 분가는 내쫓는 것이 아닙니다. 무자비하게 아예 사정을 봐주지 않고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에 대해서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아라”고 말한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육신의 생각과 욕심을 내어 쫓아야 함
이스마엘은 육에 속한 자이고 이삭은 영에 속한 자입니다.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언제든지 핍박을 할 터인데, 육에 속한 자를 내쫓아야만 영에 속한 자가 자유롭게 자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인정, 인본주의 신앙과 인본주의 생각을 언제든지 쫓아내야 됩니다. 우리 속에 육신의 생각을 그대로 둬 두면 영의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둘 다 잘 될 것 같습니까? 육신도 잘 되고 영도 잘 돼서, 둘 다잘 되면 좋을 것 같은데, 둘 다 좋으려면 사고가 납니다. 자꾸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고 희롱을 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사람들이 영의
사람들을 자꾸 핍박을 하고 희롱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육신의 생각을 내쫓고, 날마다 인정을 내쫓고, 딱 끊어버리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인정과 욕심을 끊어버리고, 인간의 것을 다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내쫓아야 합니다. 그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됩니다. 육에 속한 신자의 의견을 내쫓아야 합니다. 육에 속한 신자가 영에 속한 신자를 핍박하고 못살게 하고 압제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데, 육의 속한 신자의 그 의견을 내쫓아야 합니다. 들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의 의견과 그들의 일 처리 하는 방법을 내쫓아야 합니다. 그리고 육에 속한 신자에게는 직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장로로 세우면 안 됩니다. 육신에 속한 신자를 장로로 세워 놓으면 사사건건 육신중심으로 하자고 합니다. 인본주의로 하자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신자에게는 손해되는 방법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의 의견은 육신 중심이므로 영에 속한 신자에게 희롱이 되는 것이고 핍박이 되는 것이고 손해를 주는 것이고 압박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의견을 내쫓아야 영에 속한 신자가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같은 장로를 하나 세워 놓으면 그 교회의 일은 다 틀어 집니다. 이스마엘 장로를 하나 세워 놓으면, 목사가 영에 속한 일을 하려고 할 때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라고 열심히 가르치면, 그 장로는 주일날을 안 지키기 때문에 목사님에게 왜 자꾸 그런 설교만 하느냐고 합니다. 또 교인들이 주일을 지키려고 해도 장로가먼저 주일을 안 지키는데 일반 성도가 무슨 주일을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장로가 하자는 것이 다 육신 중심입니다. ‘노라리 합시다’, ‘주일날 산책할 겸 야외예배 갑시다’, 또 ‘술 먹는 사람도 집사로 세웁시다’ 등 사사건건을 육신 중심으로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장로에게 맞습니다. 맞으니까 그렇게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신자는 그렇게 하면 자꾸 치이고 손해를 보고 압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이 둘을 겸해 나갈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 이 둘을 겸해 나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마엘과 이삭에게 둘 다 기업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이삭을 길러 나가고 이스마엘은 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이스마엘의 의견을 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의견을 들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견을 안 세워주면 그 다음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도망쳐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안 됐지만 영을 기르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브라함의 목적은 영의 사람인 이삭을 기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길러 나가는 것이 목적이지,
아들을 많이 가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도 영적인 사람을 길러 나가는 것입니다. 교인을 많이 모으고 예배당을 잘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을 길러 나가는 데에 표준을 두고, 거기에 손해되는 것은 다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방법에 있어서도
영적 손해가 되는 것은 다 내쫓고 인본주의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인본주의 장로를 세우지 말고, 인본주의를 들여와서 의견 제출하는 것을 내쫓고, 성경대로 영의 사람을 길러 나가는 데에 언제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의 사람을 길러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인본주의 장로가 있는 곳에서는 영의 사람을 길러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안 됩니다. 사사건건 인본주의로 하자고 하기 때문입니다. 행정은 장로가 하고 목사는 강단만 맡는다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가만히 계시고 성경 말씀만 가르쳐 주십시오. 행정은 우리 장로가 다 할 것입니다”, 또 “돈은 제직회에서 다 관할할 테니 목사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라고 하면서 목사님은 설교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성경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되었습니까? 그렇게 되면 강단은 생명 없는 강단이 됩니다. 목사가 가르치는데 왜 생명이 없느냐면, 목사는 ‘동으로 가야 합니다’라고 가르쳐 놓아도 행정하는 장로들이 ‘서로 갑시다’ 하고는 서쪽으로 가게 됩니다. 행정이라는 것도 교회를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목사가 강단에서 기껏 목이 쉬도록 동으로 가야 한다고 땀을 흘리며 가르쳤는데, 장로가 ‘우리는 서로 갑시다’ 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가르쳐 놓았으니 이제 가만히 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서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 다음 돈을 관리하는 제직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은 개척 교회를 세우려고 힘써 모았는데, 집사들이 ‘교회 돈으로 뭐 사먹고 씁시다’, 또 ‘청년들에게도 천만 원씩 줍시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사님은 구원 운동을 위해서 교회 개척하고 약한 자들 도와주고 선교 사업에 쓰려고 했는데, 집사들은 그저 먹자주의와 놀자주의를 위해서 쓰겠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가르친 것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 가르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인본주의 장로와 인본주의 집사를 세워 놓으면 목사는 이 빠진 사자와 같이 됩니다. ‘앙앙’ 하기만 했지 물지는 못합니다. ‘앙앙’ 하다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속만 상하지 하나도 효력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일 교회에서 목사의 말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 목사가 성경을 아무리 잘 가르쳐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말이 실현이 되지 않으면, ‘앙앙’ 울다가 그만 두는 사자와 같은 것입니다. 장로들은 목사가 가르친 대로 행정 해나가고, 집사들도 목사의 가르침대로 재정 관리해야 합니다. 목사가 잘 인도할 때, 목사의 인도가 서 나가도록 잘 받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가 독재를 하면 되겠습니까? 독재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로 하지 않는 믿음 좋은 사람을 장로로 세워야 합니다. 좋은 장로가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장로가 있으면 독재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장로가 잘 도와주면 목사의 어깨가 가벼워지고 화살에 맞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인정하게 되어 좋습니다. 장로는 믿음이 좋은 사람을 세워야 하는데, 참으로 인본주의를 안 쓰고 신앙적인 사람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 장로는 세우면 안됩니다. 그리고 제직회도 하나님의 옳은 뜻에 집사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믿음 있는 사람을 세워서 재정처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가 혼자서 돈을 쓰면 안 됩니다. 반드시 회계하는 사람을 세우고 제직회를 구성하고 재정회계장부도 기록해야 있어야 합니다.
결산보고를 일 년에 한 번씩 반드시 공표해야만 재정으로 인한 시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목사가 제 마음대로 하면 교인이 다 떨어져 나갑니다. 제직회가 처리하도록 하되 목사가 정당하게 하도록 인도하면 교인들이 다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내쫓으라’는 것은 요새로 말하면 인본주의의 의견을 내쫓으라는 것이고, 그것을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욕심을 내쫓으라는 것이고, 육신의 생각을 내좇고 용납하지 말며 하나님의 인도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또 교단적으로 말하면, 인본주의 교단과는 결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신학을 주장하는 잘못된 교단하고는 같이 합동해서 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갈라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이스마엘은 갈라지라는 것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함께 있을 수 없으니 이스마엘을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의 희롱을 통하여 육신에 속한 것을 쫓아 버리게 하시고 약속의 아들을 보호하여 영적 운동이 잘되어 나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5. 이스마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함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서 방황함
아브라함이 내어 쫓을 때에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나가게 했습니다. 하갈이 나가서 갈 곳이 없어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서 방황함
아브라함이 내어 쫓을 때에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나가게 했습니다. 하갈이 나가서 갈 곳이 없어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습니다.
본문 15-16절에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물 한 가죽부대 지고 나간 것을 다 먹었습니다. 나긴지 며칠 된 것 같습니다. 물을 다 먹었고 떡도 다 먹었는데, 다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갈이 ‘자식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이 미치는 거리만큼 가서 마주 앉아 아이를 쳐다보면서 방성대곡했습니다. 아이도 울었습니다. 아이는 자기 엄마를 쳐다보면서 울고, 또 하갈은 아이를 쳐다보면서 울었습니다. 하갈은 아이가 굶어 죽는 것도 볼 수 없고,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는 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슬퍼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약속을 주심
본문 17-18절에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하갈에게 아이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본문 17-18절에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하갈에게 아이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본문 19절에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릴 자에게는 눈을 밝혀서 샘물을 보이게 하셔서 그 샘물을 먹고 살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릴 자의 눈을 밝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하갈의 눈을 밝게 해서 샘물을 발견하게 하여 그 아
들에게 마시우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리려고 하시면, 눈을 밝게 해서 좋은 것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살 길을 발견하게 만드십니다.
살 길을 보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면 살게 만드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복을 받지 못할 자는 눈이 어두워서 살 길을 보지 못합니다. 샘물 곁에서도 샘물을 보지 못하고 목말라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릴만한 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
는 자에게 이렇게 눈을 밝혀서 갈 길과 샘물과 먹을 것과 살 길을 보여주시고 그 길로 인도하셔서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살릴 자에게는 눈을 밝혀서 샘물을 보이게 하셔서 그 샘물을 먹고 살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릴 자의 눈을 밝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하갈의 눈을 밝게 해서 샘물을 발견하게 하여 그 아
들에게 마시우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리려고 하시면, 눈을 밝게 해서 좋은 것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살 길을 발견하게 만드십니다.
살 길을 보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면 살게 만드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복을 받지 못할 자는 눈이 어두워서 살 길을 보지 못합니다. 샘물 곁에서도 샘물을 보지 못하고 목말라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릴만한 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
는 자에게 이렇게 눈을 밝혀서 갈 길과 샘물과 먹을 것과 살 길을 보여주시고 그 길로 인도하셔서 살리십니다.
이스마엘이 애굽 여인을 아내로 삼음
본문 20-21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이 장성했습니다. 강건해졌습니다. 활 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씩씩하고 용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이 힘을 세지고 세력이 강하여 졌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애굽 땅 여인을 취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아내는 애굽 여자를 취했습니다. 세상과 짝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므로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세상과 짝했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주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더욱 힘이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용기가 있고 건강하고 사냥도 잘하고 더 일이 잘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교회는 외부적으로는 더 잘 되어 나갑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살려 나가는 데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영적으로 나가는 데에 생명이 있지, 이스마엘처럼 세상과 짝하여 나가는 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교회가 아무리 힘이 세고 숫자가 많고 잘 나가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고 하나님의 기업이 없습니다. 거기는 그러다가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 하셨고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라가 아들을 낳았는데, 젖 뗄 때에 큰 잔치를 배설 했습니다. 그런데 여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사라가 낳은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라가 낳은 아들 밖에는
기업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먼저 낳은 아들을 내쫓아야만 됩니다. 안 쫓으면 약속의 아들인 이삭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이삭이 이삭의 것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마엘을 내어 쫓았습니다. 우리도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생각과 욕심을 내어 쫓고 영적 생명 운동이 자라나도록 해야겠습니다.
본문 20-21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이 장성했습니다. 강건해졌습니다. 활 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씩씩하고 용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이 힘을 세지고 세력이 강하여 졌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애굽 땅 여인을 취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아내는 애굽 여자를 취했습니다. 세상과 짝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므로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세상과 짝했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주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더욱 힘이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용기가 있고 건강하고 사냥도 잘하고 더 일이 잘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교회는 외부적으로는 더 잘 되어 나갑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살려 나가는 데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영적으로 나가는 데에 생명이 있지, 이스마엘처럼 세상과 짝하여 나가는 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교회가 아무리 힘이 세고 숫자가 많고 잘 나가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고 하나님의 기업이 없습니다. 거기는 그러다가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 하셨고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라가 아들을 낳았는데, 젖 뗄 때에 큰 잔치를 배설 했습니다. 그런데 여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사라가 낳은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라가 낳은 아들 밖에는
기업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먼저 낳은 아들을 내쫓아야만 됩니다. 안 쫓으면 약속의 아들인 이삭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이삭이 이삭의 것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마엘을 내어 쫓았습니다. 우리도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생각과 욕심을 내어 쫓고 영적 생명 운동이 자라나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