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증거 전도
사도행전 3:11-20
사도행전 3:11-20
3:11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있을 때에 모든 백성들이 크게 놀라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3:12 베드로가 보고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왜 이 일에 놀라느냐? 또 우리 자신의 능력과 경건으로 그를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3:13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너희가 그분을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판결하였으나 너희가 그 앞에서 거절하였으니,
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달라고 요구하였다.
3:15 그리하여 너희가 생명의 근원이신 분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다.
3:16 그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강건하게 하였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이 너희 모두 앞에서 그에게 이처럼 완전한 건강을 주었다.
3:17 이제 형제들아, 너희가 너희의 지도자들처럼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한 줄을 안다.
3: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들을 이와 같이 이루셨다.
3:19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아서서 너희의 죄 씻음을 받아라.
3:20 그러면 유쾌하게 되는 때가 주님으로부터 이를 것이며,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실 것이다.
3:12 베드로가 보고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왜 이 일에 놀라느냐? 또 우리 자신의 능력과 경건으로 그를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3:13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너희가 그분을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판결하였으나 너희가 그 앞에서 거절하였으니,
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달라고 요구하였다.
3:15 그리하여 너희가 생명의 근원이신 분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다.
3:16 그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강건하게 하였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이 너희 모두 앞에서 그에게 이처럼 완전한 건강을 주었다.
3:17 이제 형제들아, 너희가 너희의 지도자들처럼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한 줄을 안다.
3: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들을 이와 같이 이루셨다.
3:19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아서서 너희의 죄 씻음을 받아라.
3:20 그러면 유쾌하게 되는 때가 주님으로부터 이를 것이며,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실 것이다.
1. 책망
본문 11절에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베드로가 살렸습니다. 그때에 나은 사람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크게 놀랐습니다. 어떻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낮게 할 수 있느냐? 베드로와 요한이 어떤 사람이냐? 하며 크게 놀라며 모든 사람이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곳에 모였던 것 같습니다.
본문 12절에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참 잘한 것입니다. 이때에 가만히만 있었더라면 베드로가 상당히 큰 대접을 받을 뻔 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걷게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감사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또 우러러 보며 어떠한 사람이길래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낮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베드로와 요한을 하나님과 같이 또 우러러 보았습니다.
이때에 베드로가 가만히 있으면 상당히 큰 대접을 받게 됩니다. 또 베드로의 말 한마디면 이 사람들이 다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귀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하며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개인의 경건과 개인의 권능으로 이 사람을 낮게 한 것이 아닌데 왜 기이히 여기느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13-16절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낮게 한 것이 아니고,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 사람을 낮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먼저 증거했고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을 책망하였습니다.
본문 13-15절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였나이다.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를 결안 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신 예수님을 빌라도가 놓아주기를 결안 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했다고 하였습니다.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너희가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살인한 자가 누구입니까?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고 바라바는 형벌하겠다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놓아 줄 것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바라바는 살인한 사람입니다. 유월절을 당하면 한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는데 그 전례에 의해서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놓아주는 것을 반대하고 살인한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생명의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리셨다”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3절).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만 다 이루고,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온전히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순종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하나님을 위해서만 모든 것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들이지만 종의 위치에서 이렇게 끝까지 순종을 했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했습니다. 우리도 종의 위치에 언제나 있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독생자이시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도, 아버지께 대해서 종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종은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고, 또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입니다. 자기 뜻은 하나도 행하지 아니하고 아버지 뜻만 행하고, 자기를 위해서 하지 않고 아버지만 위해서 하는 것이 종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가 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였고 베드로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종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주인을 위해서 삽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자기 생각대로 하나도 하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만 하고 주인을 위해서만 충성합니다.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또 종은 소유권이 없습니다. 자기의 소유가 없고 온전히 주만 위하려고 하고, 주인을 위해서만 쓰려고 하고, 주를 위해서만 충성하려고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 종의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고, “앉으라” 하면 앉고, “서라”하면 서고, 또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또 주를 위해서만 살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놓아주는 것을 반대하고 살인한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생명의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리셨다”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를 너희가 죽였도다”라고 하였는데 예수는 생명의 주십니다. 생명의 주를 너희가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려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일의 증인”이란 사도들이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 사람을 온전히 낮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2. 위로
본문 17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 한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위로입니다. 앞에서는 생명의 주를 죽였다고 책망을 했습니다. 책망해 놓고는 너희가 알고 했겠느냐? “생명의 주를 알지 못하여서 그러한 줄을 알아라, 또 관원들도 알지 못해서 그러한 줄을 아노라”하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책망한 다음에는 위로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았으면 죽였겠느냐? 몰라서 그런 줄 안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대로 된 것으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해 받으실 것을 미리 예언해 놓았는데 그 성경이 이루어 진 것이다,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다고 낙심하지 말라, 알지 못해서 그렇게 한 줄 안다, 또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다 돌린 것이 아닙니다. “알지 못해서 그렇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하니님이 이렇게 해를 받게 하셨다”하며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면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 가지만 하면 안 됩니다. 한 가지만 생각하면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다”는 것입니다.“빌라도는 놓아 주려고 했는데 너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살인한 사람을 놓아달라고 하고, 예수를 죽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책임이 너희에게 있다”는 것도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만 하면 안 됩니다. 또 “가라사대”가 있습니다. 즉 다른 면이 또 있습니다. 다른 면으로 볼 때에 “너희가 알지 못해서 그랬지 알고 그랬겠느냐?” 이렇게도 한번 생각하고 위로를 해 준 것입니다. 또 다른면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입니다. 몇 가지로 생각을 했습니까? 2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가지로 “이것만 옳다”하면 안 됩니다. 물론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아 죽였으므로 생명의 주를 죽인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하나” 하면 안 됩니다. “알지 못해서 그랬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느냐?” 이렇게도 생각해 보아야 된단 말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 “성경에 예수님이 고난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성경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것이다”하며 여러 면으로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누가 또 여러 면으로 생각을 했지요? 요셉이 여러 면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다음에 “나와 약혼한 여자가 잉태했으니 죽여야 된다”고 이것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가만히 끊어 버리면 되지 않느냐? 폭로시켜서 죽이는 것보다 내가 안 드러내면 되지 않느냐?” 그것을 또 생각해 보았던 것입니다. 또 한가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성경에 처녀가 잉태했다는 말이 있는가? 생각해 본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하나 있단 말입니다. 어디 있어요? 이사야 7:14절에 있단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겠는가?하며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그가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라고 알게 해주었습니다.
요셉도 여러 면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한 가지만 생각하면 죽여야 됩니다. 약혼한 여자가 자기와 관계없이 아이를 가졌는데 죽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다음에 또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죽일 필요가 있는가? 내가 안 데려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며 가만히 끊고자 했단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여러 면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지 하나만 생각하여 사고를 내고 끝을 맺으면 안 됩니다.
최근 어머니가 자살했는데 또 그 아들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서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인데, 선생으로서 학생을 처벌을 했는데 그 처벌당한 학생의 부모가 와서 폭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무 억울해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었습니다. 사실 억울하지요. 학생들이 잘못해서 바로 되라고 책망을 했는데 그 부모는 알지도 못하고 와서 그 여선생에게 폭언을 했으니 너무 억울합니다. 자기네 아들을 잘 인도해주려고 했는데 도리어 수모를 당하니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이런 수모를 받고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하고 자살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죽자 아들이 또 몇 달 동안 고민하다가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가 살아서 무었을 하겠느냐”하며 아들도 자살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좁아 한 가지만 생각한 것입니다. 선생이 잘못된 학생을 책망하는 의로운 일을 하다가 학생 부모에게 폭언과 수모를 당했다고 하면 “이 세상에는 저런 악한 사람도 있는가보다, 말세다, 사람이 여러 가지 종류이다”하며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것으로 너무 억울해서 죽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악한 사람 있는 것을 몰랐습니까? 부모가 그러니 아이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악한 사람이 있는 법인데 “아! 그 사람이 그것이로구나”하며 이렇
게 알고 그냥 가르치면 되는 것인데 죽긴 왜 죽습니까?
또 학생의 부모가 와서 폭언을 했다고 해서 자기가 낮아질 것 같아도 안 낮아집니다. 바로 했는데 왜 낮아지겠습니까? 하나만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또 내가 가정에 대해서도 가정부인으로서, 아이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해야겠다, 우리 아이는 그렇게 안 되도록 만들어야겠다” 하며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자기 집도 생각하고, 다른 아이들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만 생각하고 죽었습니다.
또 아들은 어머니가 죽었으면 죽었지, 왜 자기도 따라 죽는가 말입니다. 어머니가 죽었으면 “내가 이제 정신을 차려서 어머니가 못 다한 것을 내가 해야겠다” 하며 더 열심히 공부를 잘해서 앞으로 자기도 좋은 선생이 되어 어머니가 못 다한 것을 자기가 할 수 있는데 왜 죽는가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아들도 그 어머니와 같은 것입니다. 또 못되게 돌아가다가 책망 받은 학생과 폭언한 그 부모도 같은 것입니다. 그 부모에 그 아들입니다. 둘 다 밴댕이 속입니다. 밴댕이가 밴댕이를 낳은 것입니다.
왜 여러 가지로 생각을 못하느냐는 말입니다. 사람이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한 가지만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사회라는 것은 여러 가지를 다 맞추어 나가는 것이 사회이지 한 가지만 맞추는 것이 사회가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교회에 나와서 여러 사람을 생각해야지 자기 혼자만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예배시간에 자기 혼자만 생각하여 찬송 부르면 되겠습니까? 자기 혼자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한 가지 일
만 생각하지 말고 또 다른 면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여야 원만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갑니다. 베드로도 여러 가지로 생각하여 나갔기 때문에 위로도 해줄 수 있었고, 또 잘 인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3. 교훈
본문 19-20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것입니다. 죄를 회개 하고 세상으로 향하였던 것을 돌이켜 예수님께로 향하면 성령이 그 속에 역사하여 기쁘며, 하나님의 권고가 오며,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옵니다. 이 날이 유괘하게 되는 날입니다. 또 택한 백성이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오고 복음이 땅끝까지 퍼지면 예수님의 재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