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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8일 수요일

역대상 10:1-14 사울의 범죄와 최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사울의 범죄와 최후
역대상 10:1-14

1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받고 엎드러지니라 2블레셋 사람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3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를 인하여 심히 군급하여 4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 병기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5병기 가진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 6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 7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저희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이 와서 거기 거하니라 8이튿날에 블레셋 사람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를 벗기다가 사울과 그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9곧 사울을 벗기고 그 머리와 갑옷을 취하고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어 모든 우상과 뭇 백성에게 광포하게 하고 10사울의 갑옷을 그 신의 묘에 두고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 11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
이 블레셋 사람의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12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 아들들의 시체를 취하여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을 금식하였더라 13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1. 이스라엘의 패전

본문 1절에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받고 엎드러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블레셋 나라와 전쟁을 하다가 패전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도성도 많이 빼앗기고 사울왕도 죽고 사울의 아들들도 죽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특별히 이번에는 사울의 죄 때문에 패전하였습니다. 본문 13절에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지도자인 사울이 범죄한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다 패전하고 실패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 한 사람이 범죄하면 그 한 사람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다 망하고 지도자가 잘하면 그 나라 전체가 복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아주 중요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도 잘못하면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고, 교회의 지도자도 잘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다 떠나고 교인들 전체가 마귀에게 삼키어집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사야 9장 15-16절에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 하나로 인하여 사울의 인도를 받은 이스라엘도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인도자가 먼저 바로 서야 하고 따르는 자들은 인도자가 바로 서도록 기도해주고 받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걷는 인도자와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또 바로 인도하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2. 전사한 요나단

본문 2-6절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를 인하여 심히 군급하여 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 병기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병기 가진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 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울과 세 아들 모두가 전쟁 마당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로운 사람 요나단이 함께 죽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가 잘못할 때에 가담하지 않고 아버지가 잘못한다고 간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해도 죽이지 말라고 하며, 다윗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사랑한 사람입니다. 또 사울의 적자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장차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통치할 것을 알고 다윗을 잘 도와준 요나단입니다. 선한 요나단이요, 너그러운 요나단이요,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서 순종한 요나단인데, 빛을 보지 못하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죽고 말았습니다. 요나단은 선만 심어놓고 열매는 하나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전쟁에서 사울 왕만 죽고 요나단은 안 죽었어야 되는데, 요나단도 죽었습니다. 전쟁 때에는 악한 자도 죽고 선한 자도 죽을 수 있습니다. 악한 자만 골라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의인이나 악인이나 같이 죽으면 의인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나단이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상급을 하늘나라에서 전부 다 갚아주시려고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요나단에게 어떻게 갚아주셨겠습니까? 요나단이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많이 했는데, 선을 행할 때에 요나단의 영이 자라나고, 심령의 눈이 밝아지고, 믿음이 자라났습니다. 영이 자라나며 선을 행한 자체가 은혜와 복을 받은 것이고 보상을 다 받은 것입니다. 또 이 세상에서 못 받은 상은 하늘나라에 가서 다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 하나를 받았으면 하늘나라에서는 없는 것입니다. 백 냥짜리 선을 행하고 세상에서 보상을 하나도 못 받으면 백 냥짜리 상급이 하늘나라에 그대로 다 옮겨져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절반을 상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면 절반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 선을 행하여 세상에서 그 보상을 다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나단이 선한 일을 많이 행하고 세상에서 하나도 받지 못하고 갔는데, 그것이 요나단에게 가장 큰 유익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다 받았다면 세상에서 잠시 누리고 없어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대접 받았으면 몇 년이나 가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하늘나라에 가서 받으면 영원무궁토록 남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상급을 하나도 안 받고 갔으니 그 상급은 하늘나라에 옮겨져서 그대로 다 남아 영원무궁토록 요나단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요나단이 ‘쑥’ 자라난 큰 자로 영원토록 남아 있게 됩니다. 의를 행한 사람은 요나단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벌써 의를 행한 자체가 자라난 증거로서 영원한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세상에서 상 못 받은 것은 하늘나라에 가면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하루가 짧아지면 내세에서의 하루가 길어집니다. 이 죄악 세상, 환난 세상의 하루가 짧아지면 영원한 하늘나라의 하루가 길어집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하고 상급을 못 받은 자는 이 세상의 것을 하늘나라의 것으로 바꿔가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인은 살아도 유익이고 죽어도 유익입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은 살아도 하나님의 저주이고 죽어도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3. 사울의 죽음과 길르앗야베스 사람들

본문 3-5절에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를 인하여 심히 군급하여 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 병기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
행치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려지니 병거 가진 자도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엎드려 죽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자살을 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맹렬히 따라오므로 사울이 곧 잡힐 것 같았습니다. 또 이스라엘 군대가 다 도망친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따라오는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 만한 실력이 없었습니다. 이제 곧 원수에게 잡히면 여러 가지 능욕을 당할 것 같습니다. 삼손이 블레셋에 잡힌 후 눈알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며 여러 가지 능욕과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당하였는데, 사울은 이런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병사에게 죽여 달라고 했는데, 병사가 못하므로 자기 칼을 빼서 배에다 대고 그 위에 엎드려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죽었는데 내가 어떻게 살겠느냐’하여 사울 왕을 보호하던 호위병도 자살해서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이 자살한 것이 잘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입니다. 원수에게 잡혀서 능욕을 당할지 안 당할지는 알 수 없고 원수가 와서 찔러 죽일지, 어떻게 죽일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데,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불명예라고 생각하여 할례 없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치 않으려고 자살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명예 중심으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사울이 전쟁에 나갔으면 끝까지 싸우다가 잡혀서 죽던지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던지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자기가 미리 판단해보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살한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자살하는 것은 살인입니다. ‘너희 생명은 너희 것이 아니고 값으로 산 것’이라고 했는데, 값으로 산 하나님의 생명을 자기가 끊었으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죽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 행위이고 죽는 순간까지 죄를 지으면서 죽은 것입니다. 사울 왕이 원수의 칼에 죽었
으면 살인 죄는 안 범하는데, 자살했기 때문에 살인 죄까지 범하고 죽은 것입니다.

본문 7절에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저희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이 와서 거기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성읍에 와서 거했다고 하였는데, 패전하면 이렇게 손해가 막심합니다. 여러 성읍을 빼앗기고 많은 사람이 죽고 왕도 죽고 아들도 죽고 많은 사람이 도망치고 아주 비참하게 됩니다.

본문 8-10절에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를 벗기다가 사울과 그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곧 사울을 벗기고 그 머리와 갑옷을 취하고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어 모든 우상과 뭇 백성에게 광포하게 하고 사울의 갑옷을 그 신의 묘에 두고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고 하였습니다. 전쟁하다가 군사가 죽으면 이긴 군대가 와서 다 벗겨 가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패전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몸뚱이만 제외하고 투구도 벗겨가고 칼도 다 가져가고 의복이나 구두도 벗겨 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이스라엘의 사울 왕이 죽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의 갑옷을 취하고 블레셋 사방 모든 백성과 우상에게 이스라엘 왕이 죽었다고 공포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몸뚱이는 내버리고 머리는 베서 다곤의 묘에 걸어놓고 사울 왕의 갑옷은 신당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이렇게 죽어가지고 블레셋 나라 우상의 묘에 갑옷이 던진 바 되고 머리는 다곤 우상의 묘(신당)에 매달렸으니 형편없이 된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 아들들의 시체를 취하여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을 금식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울이 죽은 다음에라도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전에 길르앗야베스에 암몬이 침략했을 때에 사울 왕이 가서 건져준 일이 있었습니다.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이 그 일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가 사울 왕과 그 아들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받은 은혜를 생각하여 사울 왕의 시체를 찾으러 무시무시한 그곳으로 갔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주검이 가득한 곳을 찾아가서 사울의 몸과 세 아들의 시체를 길르앗야베스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상수리 나무아래 장사하고 칠 일을 금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사울에게 신세를 지고난 뒤로 40여년이 지난 때이지만 과거에 한 번 건져준 것을 늘 잊지 않고 있다가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다음에라도 은혜를 갚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사울 왕의 시체가 길바닥에 그냥 굴러다니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아들들의 시신과 함께 장례를 잘 치러줌으로 은혜에 보답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이 참 기특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도 몇 십 년 전에 우리를 한 번이라도 도와준 사람을 잊지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다가 언젠가 기회가 될 때 보답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이 8.15 해방 후에 한국을 독립시켜 준 것과 6.25 사변 때 우리를 건져준 것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다 같이 감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들 개개인마다 도와준 사람이 많이 있을 텐데, 그 사실을 잊지 말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
져야 되겠습니다. 또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처럼 기회가 되면 죽은 다음이라도, 그 자손들에게라도 은혜를 보답하려고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또 사울이 죽은 것에 대해서 칠 일을 금식한 것은 형식적으로 장례만 치러 준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울을 사랑하여 애도를 표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슬퍼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금식한 것입니다.

4. 사울이 죽은 원인

교만하여 월권 행동한 죄

본문 13-14절에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범죄하여 죽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3장 8-14절에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제사는 레위 지파 중에서도 제사장만이 집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는 베냐민 지파 사람인 사울 왕이 교만해져서 제사를 집전함으로 월권 행동을 한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망령되이 행했다고 책망을 하고 하나님께서 왕의 연대를 영영히 두지 않을 것을 고하였습니다. 교만해서 월권 행동한 것이 사울의 첫째 죄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죄 - 완전한 순종을 해야 함

두 번째 죄는 사무엘상 15장 23절에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왕을 버리셨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버리십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서 벌벌 떨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울이 무슨 말씀을 버렸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멸망시키라고 하셨는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나라에 손해를 주고 괴롭게 하며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 크게 방해가 되므로 아말렉을 다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한 몫 쓰시려고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왕이 나가서 아각 왕도 죽이지 않고 데리고 오고 살찐 짐승도 데려옴으로써 아말렉을 전부 멸망시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킨 것입니다. 아각 왕을 죽이지 않은 것은 사정을 봐주느라 죽이지 않은 것이고, 살찐 짐승들을 안 죽인 것은 자기가 잡아먹으려고 안 죽인 것으로, 인정과 욕심이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몫 쓰시려고 왕으로 세웠는데 인정과 욕심이 들어와서 어떻게 한 몫 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몫 쓰시려고 세우셨는데,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면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몫 쓰시려고 세워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한 몫 쓰시려고 살려주시고 세워주시고 또 왕과 같은 권위도 주시고 여러 가지를 많이 주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존귀하게 해주시고, 권세를 주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어느 정도는 순종하였습니다. 그때 아말렉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말렉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멸망 시키다가 한 사람만 남겼으니 몇 십 만분지 일 외에는 다 순종하고 몇 십 만분지 일만 순종을 못한 것입니다. 그 당시 목축업을 하던 아말렉이므로 짐승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 짐승도 전부 다 멸망시키라고 하셨으므로 다 죽이다가 왕과 군대가 한 번 먹을 것으로 일부 살찐 것만 남겨온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백분의 구십구는 순종했고 백분의 일만 못한 것으로 볼 때, 거의 다 순종하고 조금만 못한 것입니다. 욕심과 인정이 들어와서 완전히 다 순종하지 못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진노 하시고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니까 나도 너를 내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다가 채 다 못한 것이 죄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끝까지 이용당해야 합니다. 끝까지 이용당해야지, 어느 정도만 이용당하다가 제 욕심과 정으로 기울어지면 사울 왕과 같이 됩니다. 시종일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데에 이용당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울 왕과 같은 결과가 됩니다.

신접한 자에게 물은 죄

그 다음으로 사울의 또 한 가지 죄는 신접한 자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신접한 자는 오늘날 무당이나 점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무엘상28장 6-7절에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
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신접한 여자를 찾아가서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하고 신접한 자가 사무엘을 불러올리자 이미 죽은 사무엘이라는 자가 땅 속에서 올라왔고 사울은 그것에게 묻고 땅에서 올라온 사무엘이라는 자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올 수 있습니까? 못 불러 옵니다. 이때 땅에서 올라온 자는 사무엘이 올라온 것이 아니고 마귀가 사무엘의 탈을 쓰고 사울 왕을 속이려고 나타난 것입니다. 죽은 사무엘이 다시 온 것이 아니고 마귀가 사무엘이라고 하며 와서 사울 왕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의 혼을 불러왔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배뱅이가 오긴 뭘 오겠습니까? 죽은 사람의 혼이 왔다고 하는 것은 전부 다 마귀 역사인줄 알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의 혼은 한 번 떠나면 오지 못합니다. 지옥 가서도 못 오고, 천당 가서도 못 옵니다. 무당이 “어머니 혼이 왔다, 할아버지 혼이 왔다”고 하는 것은 전부 다 마귀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제일 싫어하시고 마귀는 하나님의 대적인데, 사울 왕이 그 마귀에게 가서 물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겠습니까? 제일 안 되는 짓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 왕이 왜 신접한 자에게 갔다고 하였습니까? 사무엘상28장 5-7절 상반절에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에게 사정이 다 있습니다. 사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혹 꿈으로 들을까 하여도 응답을 안 해주시고 우림으로도 응답을 안 해주셨습니다. 통과 같이 생긴 우림은 소리가 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알 수 있었는데, 도무지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또 선지자를 통해서 응답을 주실까 기다려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도 보내지 않으시고 안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라도 가야 되겠다 하고 신접한 자에게 가서 물어봤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 도와준다고 해서 반대파에 가서 붙으면 되겠습니까? 요새도 도와줄 줄 알았는데 안 도와준다고 반대파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옳습니까? 아히도벨은 다윗의 친구이고 다윗의 모사인데, 다윗에 대해 섭섭한 맘이 들자 다윗을 배반하고 다윗 왕을 죽이려는 압살롬에게 가서 다윗 왕을 죽일 모략을 꾸몄습니다. 사울 왕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신다고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시는 마귀, 신접한 자에게 가서 물어본 것입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 묻지 않은 죄

본문 14절에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8장에서는 아무리 물어봐도 하나님께서 답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신접한 여자에게 갔다고 하였는데, 왜 본문에서는 물어보지 않았다고 하였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만큼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상달할 만큼 기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까? 
첫째는 철저히 회개를 해야 합니다. 
둘째는 선지자를 찾아 가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또 물어보아야 합니다. 
셋째는 응답이 없어도 끝까지 기도했어야 될 것 같습니다. ‘기도하다 죽자’하고 그저 응답해주실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응답이 없으면 성경말씀을 믿자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실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회개를 철저히 하되 상한 심령을 가지고 자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죄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 교만했던 것,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것을 다 회개했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아 가야 합니다. 
셋째는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안 들어주셔도 끝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사흘, 한 주간 계속해서 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 안 되면 두 주간, 세 주간 계속 기도하는 것입
니다. 그래도 안 되면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이제는 성경말씀을 믿습니다’하면서 나가면 성경에 다 답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을 안 들려주셔도 성경말씀에 답변이 다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믿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답변이고 응답입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응답이므로 그렇게 했더라면 사울 왕이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이 잘 안 되도 인본주의를 쓰지 말고 안 도와주시면 도와주시지 않는 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다가 이렇게 해도 안 도와주신다고 하면서 자기가 다른 방법을 쓰고, 인본주의를 쓰고, 수단을 쓰고, 세상 방법을 써봐야 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안 도와주셔도 그저 성경대로 나가고 ‘죽으면 죽자’하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며 죽도록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안 도와주신다고 비뚤게 나가거나 반대로 나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또 정 안 도와주시면 성경말씀에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다 망할 것 같아도 성경에 유익하게 된다고 하였으므로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부인들이 남편들이 바람을 피운다고 짐을 싸가지고 나가고 남편이 춤바람이 났다고 자기도 춤을 추고 다니면 그 집안은 망합니다. 남편이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부인은 끝까지 가정을 잘 지키고 원리 원칙에 서야 합니다. 남편이 들어오면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고 잘 대접하면서 가정을 잘 이끌어나가면 언젠가는 그 남편이 돌아옵니다. 그러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좀 비뚤게 나간다고 같이 비뚤게 나가면 둘 다 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실 때에 비뚤게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도와줄 줄 알았던 사람이 안 도와준다고 반대편에 가서 붙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원리 원칙에 서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나가고 안 도와주셔도 하나님을 섬기며 나가는 것
입니다. 안 도와주셔도 그저 성경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죽어도 그대로 믿고 나가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도와주시면 그냥 죽으면 될 것 아닙니까? 저 좋은 천국, 영생하는 곳이 있는데 죽는 것이 도와주시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죽으면 더 좋은 대로 가게 되니 이것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를 도와줄 줄 알았던 사람이 안 도와줄 때에 반대편에 가서 붙지 말아야 합니다. 안 도와줘도 자기 할 일만 여전히 잘해나가면 마침내는 도와줄 날이 옵니다. 그러면 잘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