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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9일 토요일

호세아 6:1-11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
호세아 6:1-11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4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8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9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11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1. 제3일에 일으키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본문 1절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라고 하였는데, 여호와께로 돌아갈 생각이 났습니다. 생각을 잘했습니다. 그런데 미리 돌아왔으면 될 것인데 좀 늦었습니다. 앗수르를 의지해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봤지만 많은 상처를 받고 많은 매를 맞았습니다. 미리 돌아왔으면 고생이 덜하고 손해가 덜했을 것인데, 수단과 방법을 다 써보아도 결국 많은 손해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최종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두 갈래, 세 갈래로 찢어놓으셨지만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찢으셨지만 싸매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치셨지만 낫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았습니다. 욥기 5장 17-19절에 “볼찌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찌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징계하셔서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고,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낫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낫게 해주시는 하나님, 싸매주시는 하나님,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고 그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복하고 회개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깨어 기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데 가서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못 고칩니다. 다른 곳에 가서 아무리 싸매려고 해도 싸맬 수가 없습니다. 누가 못 싸매줍니다. 그저 하나님께 나아가서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엎드려서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며 간절히 일심정력,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간절히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상처를 싸매주실 것이며 그 아프던 병을 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서 싸맴을 받는 방법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면서 기도하려고 하나 아무리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할 죄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합
니까? 어떤 사람은 죄가 생각이 안 난다고 합니다. 그래도 죄가 많습니다. 죄가 많기 때문에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죄를 자꾸 찾아서 회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들

언제나 쉬지 않고 기도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하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뢰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계속해서 교통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하고, 주의 인도와 주장을 받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음란한 마음, 행음, 세상과 짝한 것, 사람의 말을 들은 것, 사생자를 낳은 것, 지계표를 옮긴 것 등을 다 회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지계표를 옮긴 것이 없나 찾아봐야 합니다. ‘진리를 양보한 것이 없나? 죄를 용납한 것이 없나? 진리를 양보하고 좀 넓혀 나간 것이 없나? 전에는 그것을 죄로 인정했는데 지금은 죄로 인정 안 하는 것이 없나?’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지계표를 옮기는 것입니다. 전에는 주일날에 조금만 무엇을 해도 죄인 줄 알고 안 했는데, 요새는 주일날 웬만한 것은 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계표를 옮긴 것입니다. 전에는 주일날에 무엇을 사면 양심에 가책이 되었는데, 요새는 주일날 무엇을 사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지계표를 옮긴 것입니다. 지계표 옮긴 것, 그것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죄인 줄로 알지 못하고 심령이 마비되고 진리를 양보하고 경계선을 무너뜨리며 거침없이 양심을 안 쓴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를 철저히 하되 애통하며 죄를 미워하면서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면서 해야 합니다. 간절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만나고 교통하고 그리스도안에 들어가며 그리스도의 역사가 자기 속에 임하게 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만나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싸매 주시고 병을 다 고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야지, 사람이 고칠 수 없습니다. 너희는 머리부터 발꿈치까지 상처투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1장 5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병든 것입니다. 마음이 피곤하고 머리가 병들고 하나님께 매를 맞은 것입니다. 또 이사야 1장 6-8절에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은 영적 시온을 말하는데, 영적 시온 성이 원수에게 다 에워싸여서 고립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의 망대와 같이 영적인 면이 아주 고립 당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만 드세고, 영적 생명의 역사는 그저 망대와 같이 조금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매를 맞은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간절히 구할 때가 되었고, 이제는 회개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싸맴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고, 상처가 나음을 얻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 간절히
돌아가서 기도하고 회개하며 전력으로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싸매주시고 고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를 그리스도의 공로로 다시 살리심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오래 두지 않으시고 이틀 후에 살리시고 삼 일 후에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즉, 잠깐 있다가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일으켜주십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오래 두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는 자, 말씀대로 바로 서는 자, 거짓으로 회개하지 않고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오래 두지 않으시고 살리시며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틀 후에 살리시고, 삼 일 후, 즉 잠깐 후에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시어 그리스도의 그 공로를 사람에게 적용시켜서 구원하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금요일이고, 부활하신 것은 주일날 아침입니다. 만으로 말하면 토요일과 주일 만 이틀이고, 또 세는 날로 말하면 제3일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다가 삼 일 만에 살아나셨는데, 그 그리스도의 공로를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입혀서 그 사람을 살리시고 건져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살려내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일으켜주지 않으십니다. 회개한 사
람을 살려내시고 회개하는 성도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새벽 빛같이 일정한 하나님의 역사

본문 3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 길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밖에 없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만 찾으면 다 삽니다. 죽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나오심이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라고 하였는데, 새벽 빛이 일정하게 나오지 않습니까? 동이 트면 얼마 있다가 밝았다가 밝은 다음에 조금 있으면 해가 올라옵니다. 일정합니다. 동이 터서 훤하게 밝았다가 그 다음에 해가 올라오는 것이 일정합니다. 어떤 날은 해가 안 올라오거나 어떤 날은 동이 트지 않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일정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일정하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힘써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일정하게 나타나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덜 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또 유다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시고, 이방 사람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회개하고 낮아져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반드시 그 사람을 싸매주시고 또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어 주셔서 응답해주시고 상한 심령을 고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새벽 빛 같이 일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잘하면 됩니다. 남이 예수님 잘 믿는 것을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자기가 잘하면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이 복 받는 것을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가 하면 됩니다. 무엇을 하면 됩니까? 회개하면 됩니다.

또 회개해야 할 것들

그런데 무엇을 회개합니까? 하나님을 멀리한 것, 노하시게 한 것, 음행한 것, 사생자를 낳은 것, 지계표를 옮긴 것 등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사람에게 물어본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서 사람의 의견을 따라 행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고 사람이 하라는 대로 했던 것,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도하기를 쉬는 죄, 쉬지 않고 기도하지 못한 죄,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또 물 먹을 동안에도 하나님과 쉬지 않고 교통하지 못한 죄,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과 떠나지 않아야 하는데 마음이 잠시라도
하나님을 떠난 죄,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살지 못하고 영의 제사를 드리지 못한 죄,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힘써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를 써서 하나님께 기도하되, 새벽에 기도하고 힘써 기도하고 기도 시간을 좀 많이 가지려고 애쓰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바가 있어야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 시간을 빼앗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기도 시간을 마귀가 빼앗아 먹습니다. 기도 시간을 마귀에게 빼앗긴 사람은 그 다음에 다른 것을 빼앗깁니다. 그렇기에 기도 시간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 장사입니다. 기도 시간을 안 빼앗겨야 합니다. 그 사람이 힘 있는 성도입니다. 기도 시간 하나를 빼앗겨놓으면 다른 것을 다 빼앗깁니다.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하고 성경 보는 것, 둘을 합해서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루 24시간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는데, 그 시간을 십일조도 안 드리고 다 잘라먹는 것이 말이 됩니까? 20시간에 대한 십일조는 2시간이고 4시간의 십일조는 4×6=24, 24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루 시간의 십일조는 2시간 24분입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까? 다시 말하는데 기도하는 시간과 성경 보는 시간을 합하여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2. 여호와께서 인애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않으심

끝까지 사랑하라

본문 4절에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도다’라고 하였는데, ‘너희의 인애’라는 것은 너희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너희 사랑, 너희의 경건, 곧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는 그 사랑, 너희가 믿음을 지키려고 하는 그 믿음이 아침 구름같이 사라지고 안개같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슨 신앙이라고 합니까? 냄비 신앙이라고 합니다. 잠깐 동안 설설 끓다가 금방 싸늘하게 식어지는 것입니다. 불에 올려놓으면 살살 끓어오르다가 내려놓으면 싸늘하게 식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아침 안개와 같이, 쉬 사라지는 구름과 같이 식어지면 안 됩니다. 무엇을 좀 한다고 하다가 얼마 가서 그만 두곤 하는데, 그러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합니다.

너희가 회개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조금 지나서 또 못 사랑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가려고 성품을 좋게 쓰다가 조금 있으면 또 옛 사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속에서 돼지가 나오고, 또 고양이 발톱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도 사랑도 조금 하느라고 하다가 얼마 못 가서 뒤로 돌아섭니다. 믿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이 정도입니다. 십일조를 하다가 얼마 못 가서 또 십일조를 안 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다가 조금 있으면 그 사랑이 이슬과 같이 또 식어집니다. 부모를 공경하려고 용돈을 좀 드리다가 또 안 드리고, 마음을 바로 먹고 이제는 좀 해보려고 하다가 뒤로 돌아서 또 안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서 하려고 하다가 또 옛 사람이 나오고, 결심하고 바로 믿고 믿는 일을 좀 제대로 해보려고 하다가 또 아침 안개가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러니 밤낮 입학만 하고 졸업은 못합니다. 입학은 10번, 20번을 했는데 졸업은 끝내 못합니다. 성경도 마태복음만 그저 내내 봅니다. 조금 보다가 그만 두고, 또 다시 시작을 하려니까 또 다시 마태복음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도행전을 못 나갑니다. 시작은 잘하는데 나가다가 그만 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지, 어째서 중간에 그만 두느냐는 것입니다. 너희의 인애가 아침 안개와 같고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지 말고 시종일관하십시오. 일단 시작한 일은 끝까지 나가십시오. 어려움이 와도 나가고 시험이 들어와도 나가고 환난이 들어와도 나가고 고통이 와도 나가고 역경이 와도 나가고 핍박이 와도 나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광야가 와도 나가고 아골 골짜기가 와도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망 문이 생깁니다. 가다가 그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섭섭하다. 조금도 안 도와준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억울해도 나가고 인정하지 않아도 나가고 섭섭해도 나가고 뺨을 쳐도 나가야만 소망 문이 생깁니다.
알아줄 날이 오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신앙,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하든지 나는 그저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내가 할 것을 하는 것이고, 내 책임을 하는 것이고, 내가 나갈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내 도리를 하는 것이지, 누가 잘해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잘해주었다고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잘해줘도 공경하고, 매를 때려도 공경하고, 천대해도 공경하고, 내쫓아도 공경하고, 공부를 안 시켜줘도 공경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공경입니다.
우리의 인애, 사랑이 너무 조건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너무 얕습니다. 자기에게 잘해줄 때에는 사랑하고 못해줄 때에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섭섭하게 할 때에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 안 됩니다. 옳지 않습니다. 너희 인애가 아침 구름과 같고, 쉬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냄비와 같으냐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천박한가? 하려고 하다가 왜 그만 두느냐? 왜 그렇게 변덕이 많으냐? 왜 꾸준하고 시종일관하지 못하느냐? 조금만 잘못해도 횅하고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좁고 얕으냐?’는 것입니다.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돌려대면서라도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또 겉옷을 빼앗고자 하면 속옷을 주면서까지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십시오. 또 억지로
5리를 가려고 하면 10리까지 가면서 끝까지 사랑해보십시오.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손해가 난다고 팩 돌아서고 조금만 섭섭해도 뺑 돌아서면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섭섭한 것도 있고 억울한 것도 있고 멸시 받은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실제로 멸시를 해도 꾸준히 그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나를 멸시한 사람이 회개할 날이 옵니다. 회개할 날이 올 것 아닙니까? 사울 왕을 보십시오. 사울 왕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해도 다윗은 끝까지 사울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으로 대하며 그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고 아꼈습니다. 생명을 아껴주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으로 악을 이기고 사랑으로 원수를 이기고 시종일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나가니, 다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깁니다. 사랑이 다 정복합니다. 피차 사랑하고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끝까지 계속해서 사랑하면 최종에는 사랑이 이깁니다. 구름같이 하지 말고, 이슬과 같이 돌아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본문 5절에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라고 하였는데, ‘치고’라는 말에는 도장을 새기는 것처럼 ‘새겼다’ 또는 ‘훈련시켰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라고 하였는데, 선지자의 말로 책망을 해서 그 사람들을 훈련시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다는 것은 불순종하면 사망한다는 말을 저희가 전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성취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다가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이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에 예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인애를 원하고’와 마태복음 9장 13절에 나온 ‘긍휼을 원하고’는 같은 말입니다. ‘인애’는 사랑인데, 마태복음에는 ‘긍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애를 원하십니다. 인애, 사랑, 긍휼, 그 다음에 하나님 아는 것을 제사보다 더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의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사랑에 세계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고,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려고 늘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계에 들어가야 하고, 그 사랑에 감격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떠나서 제사만 드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영적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과 사랑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그 다음에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여기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 같아도 실은 조금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을 좀 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진리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의가 얼마나 철저한지,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좀 더 알고,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알고, 하나님의 의를 좀 더 알고, 하나님의 공의도 좀 더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아나가는 데에서 사람이 바로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아나갈 때에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또 그 성경말씀을 순종하는 것에
서 하나님을 점점 알아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점 더 많이 알아나가야만 우리 영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래야 큰 자가 됩니다. 또 그래야 모든 일들을 충만하게 할 수 있고, 또 만물을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 해야 할 것을 바로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할 것도 바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하는 것은 잘못해도 괜찮고 하나님 앞에만 바로 하면 된다는 것이 고르반 사상인데, 이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외식하는 바리새교인들의 사상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바로 하는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도 바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바로 못하면 하나님께 대해서도 바로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모든 도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려우므로 하나님을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도리를 바로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벌벌 떨면서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은 십일조를 안 드릴 수 없고,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없으며, 주일날을 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두렵고 심판이 두렵기 때문에 사람에게 할 도리도 바로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도리도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은 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은 그 말씀이 두렵고 떨립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게 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원하십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잘 순종하는 것입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알아나가기를 바라십니다. 자라나서 하나님을 닮아나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제사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의 마음으로는 잘 안 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순종할 때에 그 일이 되는 것입니다. 또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랑의 세계는 영적 세계입니다. 생명의 세계입니다. 빛의 세계입니다. 성령의 세계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다 하나입니다. 사랑의 세계, 빛의 세계, 영적 세계, 생명의 세계, 다 하나인데 그 세계에 들어가려면 죄를 회개해야 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세계에 들어간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이 넘쳐서 그 사랑이 속에서 넘쳐 나오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3. 배약자를 심판하시고 회개자를 구원하심

언약을 어긴 아담

본문 7절에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겼습니다. 
어떻게 어겼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안 먹으면 살고 먹으면 죽는다는 언약, 이것을 행위 계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과 언약을 해놓고서 은근 슬쩍 그것을 어겼습니다. 누가 먼저 어겼습니까? 하와가 먼저 어기고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왜 따먹었습니까? 뱀의 유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유혹을 받았습니까? 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에 귀
가 번쩍 열렸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데로 돌아선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만 위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며,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것을 가장 즐거운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뱀이 들어와서 유혹하는 바람에 그만 자기를 위하는 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바람에 자기 위할 생각이 들어왔고, 다시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 때문에 그만 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다가 자기를 위하는 데로 돌아선 것이 선악과를 따 먹은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데로 돌아서면 그 사람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는 자가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하는 것이라 해도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성경말씀을 도둑질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여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무엇이나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아담이 언약을 어긴 것은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위하다가 어기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위하면 언약을 어기게 되고, 또 안 어겼다고 해도 벌써 자기를 위한 것 자체가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안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안 도와주시니까 또 어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여간 자기를 위하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은 도적인데, 하나님께서 도적에게 칼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자기를 위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자이기 때문에 칼을 안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니 자기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게
됩니다.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역하게 됩니다. 패역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안 되겠습니다.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지키고 말씀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말씀을 어긴 것은 즉시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올 줄 알고 즉시로 회개하고, 말씀을 어기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어기면 망합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말씀을 어기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자기에게 해당하는 말씀, 자기에게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고서 자기 욕심을 채우고 그 욕심대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을 어기지 않으려면 지키지 못할 것을 지켜야 하고, 어려운 것을 지켜야 하고, 힘든 것을 지켜야 하며, 손해나는 것을 지켜야 합니다. 자기가 제일 지키기 힘든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자기가 지키기 힘든 것은 안 지키고 쉬운 것만 지키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오늘의 내가 당면한 문제를 놓고 ‘이것을 말씀대로 하려면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여기로 가야 하는가, 저기로 가야 하는가?’할 때에 생명을 내놓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말씀대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언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손해를 보고 낮아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과 의와 신을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검은 마음을 먹고 하루살이는 걸러먹고 약대는 삼키는 식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조그만 것에는 양심을 지킨다고 하고 말씀대로 한다고 하지만, 현재 자기가 당면한 큰 문제는 꿀꺽 삼키며 나가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는 것입니다.

도피성(교회)의 타락

본문 8-9절에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길르앗’과 ‘세겜’은 도피성이 있는 곳입니다. 여호수아 20장 8절과 신명기 4장 13절에 나온 도피성은 전부 6개인데, 그 가운데 길르앗과 세겜이 있습니다. 길르앗은 도피성이 있는 도시요, 제사장의 거처가 있는 곳입니다.
도피성이 얼마나 좋은 곳입니까? 그곳은 그릇 살인한 자가 도망쳐 와서 보호를 받는 곳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거기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 사함을 받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교회와 같습니다. 도피성은 요새로 말하면 교회입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모든 사람이 죄 사함과 구원을 받지 않습니까? 교회에는 교역자가 있습니다. 길르앗이 역사적으로 그렇게 좋은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길르앗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행악자의 고을이 되었습니다. 피 발자취가 편만하고 서로 물고 찢고 잡아 죽이는 곳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교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먹으려는 강도 떼들, 제사장의 무리가 교회에 수두룩하게 들어와 앉았다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이 교인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서라도 연보를 좀 더 내게 해서 유익을 보려고 별의 별 수단을 다 씁니다. 무슨 축복 기도다, 별미 기도다 하며 속여서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뜯어 먹으려고 하는 사기꾼들, 강도 떼들이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강도 떼들한테 속지 마십시오. 요새 무슨 기도가 있습니까? 별미 축복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삭이 아들이 사냥해 온 것을 먹고 축복해준 것을 흉내 내어 먹고 축복해줄 테니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별미 축복입니다. 먹을 것을 음식으로만 가져오지 말고 돈으로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가져오면 축복을 변변히 못 받고 많이 가져와야 축복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교인들을 다 속여가지고 돈을 빼앗는 것입니다. 강도 떼들입니다. 또 무슨 기도입니까? 병 기도가 있습니다. 병 기도를 하면 아픈 것이 다 낫는데, 한 번 기도를 받으려면 돈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살인자들과 강도 떼들이 길르앗과 세겜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상처만 주고 싸매주지는 아니하며 서로 미워하고 물고 찢는 것들이 강도 떼들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살인자들 아닙니까?
교회는 도피성입니다. ‘다 오너라. 누구나 죄 지은 자들은 다 오너라. 마음 상한 자들도 다 오너라. 심령의 병든 자들도 다 오너라. 낙심하는 자들은 다 오너라. 연약한 자들도 다 오너라’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온 사람들을 싸매어주고 위로해주며 심령의 병을 말씀으로 고쳐주고 심령을 살려내는 데가 교회입니다. 말씀의 약을 잘 써서 고쳐나가야 합니다. 교회라는 곳은 심령의 상처를 고쳐주고 병을 낫게 해주어야 합니다. 주일날이 되면 교인들이 한 주간 생활하다가 상처를 받아서 예배당으로 나옵니다. 여러 가지 병이 들어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배를 드리는 한 시간 동안에 심령의 병을 다 고쳐내고 쓰러진 사람의 심령을 벌떡 일어나도록 세워주어야 합니다. 상처가 싸매짐을 받으며, 새 힘과 용기를 얻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산 교회입니다. 그런데 살려내는 것은 안 하고 어떻게 하든지 빼앗을 궁리, 서로 물고 찢을 궁리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저희끼리 편을 갈라 돌아가는데,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교회에서는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서로 간에 인사해야 합니다. 자기 앞사람하고 한 번 악수하고 뒷사람하고 한 번 악수하고 양편 옆 사람, 오른쪽 사람, 왼쪽 사람하고 다 한 번씩 악수하고 가야 합니다. 내 옆의 사람하고 악수하고 그 다음에 앞사람, 뒷사람하고 악수하면 몇 사람하고 악수할 수 있습니까? 네 사람과 인사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시간에 다른 곳에 앉아서 또 네 사람과 악수하면 여덟 사람과 악수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다른 네 사람과 인사하면 벌써 열두 사람인데, 하루에 열두 사람씩만 하면 사흘이면 몇 사람하고 하겠습니까? 48명입니다. 5일간 사경회 기간에 그렇게 인사하면 60명과 인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서
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남을 도와주고 위로해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데를 싸매주는 간호사 노릇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손과 마음이 되어서 싸매주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긍휼히 여겨서 싸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여간 살려내는 교회, 싸매주는 교회, 건져내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본문 10-11절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집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에브라임은 행음 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도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이 음행해서 더렵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사로잡혀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참 성도가 회개하여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행음하고 더럽히다가 많은 징계를 받고 회개한 뒤에 돌아올 날이 옵니다. 참 성도는 돌아올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징계 가운데서 참 성도는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해서도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추수할 일을 정했다는 것은 심판과 구원을 정했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9절에 ‘추수 때(심판과 구원의 때), 가라지는 거두어서 불에 사르고 곡식은 곳간에 들인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많은 환난과 징계 가운데서 참 성도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가라지)는 거둬다가 불에 사르시고, 곡식은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