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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21:1-34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
욥기 21:1-34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3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또 조롱할찌니라 4나의 원망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내가 어찌 초급하지 아니하겠느냐 5너희는 나를 보아라, 놀라라, 손으로 입을 가리우라 6내가 추억하기만 하여도 답답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7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8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9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10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11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12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13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 14그러할찌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나이다 15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구나 16그들의 복록이 그들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와 판이하니라 17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 재앙이 그들에게 임함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 18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 19하나님이 그의 죄악을 쌓아 두셨다가 그 자손에게 갚으신다 하거니와 그 몸에 갚으셔서 그로 깨닫게 하셔야 할 것이라 20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시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하셔야 할 것이니라 21그의 달수가 진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22그러나 하나님은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23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평강하며 안일하고 24그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 골수는 윤택하였고 25어떤 사람은 죽도록 마음에 고통하고 복을 맛보지 못하였어도 26이 둘이 일반으로 흙 속에 눕고 그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27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궤휼도 아노라 28너희의 말이 왕후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의 거하던 장막이 어디 있느뇨 하는구나 29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악인은 남기워서 멸망의 날을 기다리움이 되고 멸망의 날을 맞으러 끌려 나감이 된다 하느니라 31누가 능히 그의 행위를 면박하며 누가 능히 그의 소위를 보응하랴마는 32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고 그 앞선 자가 무수함같이 모든 사람이 그 뒤를 좇으리라 34이러한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너희의 대답은 거짓뿐이니라

1. 욥이 친구들에게 자기의 말을 듣고 당한 일을 보고 배우라고 함

의인도 고난을 받으나 죄 때문은 아님

본문 1-4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또 조롱할찌니라 나의 원망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내가 어찌 초급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욥이 그 친구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욥이 자신을 조롱하는 친구들에게 조롱만 하지 말고 자신의 말을 잘 들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망’이라는 말은 히브리 말의 ‘근심, 수심’을 뜻합니다. 즉, 이제 욥이 근심함은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을 바로 섬긴다고 섬겼는데 지금 죄인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징계가 왔기 때문에 근심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연유를 알고자 하여 마음이 초조하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너희는 나를 보아라, 놀라라, 손으로 입을 가리우라”고 하였습니다. 욥을 보고 놀라고 손으로 입을 가리라는 것인데, 욥이 친구들에게 왜 놀라며 입을 가리우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고난이 심함을 보고 놀라는 친구들에게 모든 고난이 악인이 저지른 죄 값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의인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 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으로 연단되어 정금같이 되는 또 다른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자신을 통해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의인도 고난당한다는 것을 배우라는 것은 첫째로 고난당함이 무조건 다 죄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으로써 연단을 시켜 정금같이 더 좋은 인격을 만들어 하늘나라에서 귀히 쓰는 자리에 앉히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현재 욥이 당하는 고난의 양이 놀랄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내가 추억하기만 하여도 답답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닥친 비참한 일들을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난을 많이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2. 악인도 잘되는 일이 있다고 함

악인은 형통하다가 경각(頃刻)간에 음부에 내려감

본문 7-12절에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
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그들이 오래 살고 세력이 강하고 자손이 잘되고 집이 평안하고 두려움이 없고 사업이 잘되어 즐거워하며 형통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이렇게 모든 면에서 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인은 어떻게 됩니까? 시편 73편 3-14절에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찌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종일 재앙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책을 보는데, 악한 사람은 잘된다는 것입니다. 몸도 건강하고 죽을 때에도 잘 죽습니다.
죽을 때에 잘 죽으면 복이라고 합니다. 또 죽은 다음에 얼굴이 하야면 복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얀 얼굴이나 시꺼먼 얼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천당 간 사람의 얼굴은 하얗고 지옥 간 사람의 얼굴은 시꺼멓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뇌출혈로 사망하면 시신 얼굴이 검고, 폐병으로 사망하면 시신 얼굴이 하얗습니다. 그러므로 천당과 지옥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죽은 사람의 얼굴 색깔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이 잘되고 살이 너무 쪄서 눈이 쑥 다 나오고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더하고 항상 평안하며 재물은 늘어가도 그것에 상관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며 바로 살아도 재앙을 만나는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정금보다 더 좋은 신령한 하늘의 복을 주시며 하늘에 가서 귀히 쓰시려고 연단 하시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잘되지만 갑자기 음부에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안 믿다가 갑자기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시편 73편 17절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 또 의인이 환난을 받는 것에 대해 왜 그런 일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여 그것을 알고자 하여 기도를 하면서 많이 연구하였는데,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 이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고난당하게 하셨구나. 아, 그래서 그 사람들(악인들)을 평안하게 해주셨구나’하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은 늘 채찍질을 해서 기릅니다. 그러나 돼지는 잘 먹이기만 하고 채찍으로 한 번도 안 때립니다. 그런데 돼지가 더 복이 있습니까? 돼지는 잡아먹는 것이 목적이므로 때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잘 먹여 살찌워 잡아먹기만 하면 되므로, 막대기와 손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잘 길러 앞으로 후계자를 만들어 모든 것을 다 상속으로 물려주어야 하는데, 잘못 나가면 물려줄 수가 없으므로 채찍질을 하고 꾸지람을 하고 징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난으로 연단을 시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것은 돼지와 같기 때문에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날마다 채찍질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연단시키셔서 쓰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 비밀을 영적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간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4-16절에 “그러할찌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구나 그들의 복록이 그들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와 판이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며 하나님을 반대하면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계획은 성도와 판이하게 달라 세상의 것만 계획하는 것입니다.

3. 악인은 심판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함

살아 있을 때에 모든 일을 하라

본문 17-18절에 “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 재앙이 그들에게 임함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입니다. 악인의 등불은 재앙이 임하여 반드시 꺼지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시며 바람 앞에 검불같이 날아가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 날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보면 악한 사람은 다 이렇게 자주자주 멸망하였으므로, 지금 있는 악인들도 반드시 조금 있으면 심판을 받아서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하나님이 그의 죄악을 쌓아 두셨다가 그 자손에게 갚으신다 하거니와 그 몸에 갚으셔서 그로 깨닫게 하셔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쌓아 두셨다가 자손에게 갚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몸에 갚으심으로 그로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시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하셔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멸망을 자기가 보게 되고 전능자의 진노를 자기가 마시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의 달수가 진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달수라고 하는 것은 죽는 날, 즉 사후(死後)를 가리킵니다. 사후에는 자기 집에 있는 것이라도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조금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놓고 가야 합니다. 떠난 다음에는 다시 와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자손이 그것을 잘 지킬 것인지도 알수 없습니다. 또 상속세가 나가는데, 땅 같은 경우에는 60%를 국가에 내야 하니 자손에게는 40%밖에 못 갑니다.
우리 기도원 뒷산이 이만 평인데, 그 땅 임자가 왔다고 하여 그에게 땅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기도원 땅 값 시세와 같은 값에 팔겠다고 하는데, 평당 십만 원씩만 잡아도 뒷산이 이만 평이므로 이십 억이나 됩니다. 주인은 보아하니 분명 못해도 평당 이십 만 원은 받으려는 것 같은데, 그러면 총 사십 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하러 그 뒷산을 사십 억이나 주고 삽니까? ‘농사를 하겠나, 소득이 나오나, 그린벨트라 집을 짓겠나’라고 생각을 하니 ‘이러다가 그 노인네는 땅을 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땅 주인이 김일성과 동갑으로 올해 80세라고 하는데, 생전에 누가 아무 쓸 가치가 없는 그 산을 몇 십억을 주고 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실 때에 ‘너는 몇 살을 살고 오너라’고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것보다 한 살도 더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도 더 살 수 없습니다. 그 날, 그 시간이 되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나면 60%가 다 국가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자손이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스스로 벌어먹는 것이 크지, 부모한테 물려받아 살면 방탕하기 쉽습니다. 돈이 귀한 줄을 모르고 쉽게 모든 것을 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쉽게 되는 줄 알면 안 됩니다. 언제나 세상이라는 것은 힘들고 땀을 흘려야 되는 것인 줄 알고 노력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저 슬슬 들어온 것은 까딱하면 그것 가지고 사람 버리기가 쉽습니다. ‘달수가 진하면 무슨 관계가 있느냐’,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토지를 몇 십만 평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달수가 차면 안 믿는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고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갈 것인데, 무슨 소용이나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에 잘하고 가야 합니다.

4. 악인에게 심판이 당장에 임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함

고난이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임

본문 22절에 “그러나 하나님은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높은 자들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심판하시는데 누가 그런 하나님께 감히 지식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23-26절에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평강하며 안일하고 그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 골수는 윤택하였고 어떤 사람은 죽도록 마음에 고통하고 복을 맛보지 못하였어도 이 둘이 일반으로 흙속에 눕고 그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아주 상반된 두 종류의 형편을 말하였습니다. 극히 행복을 누린 자나 고통만 당한 자나 둘 다 마찬가지로 죽어 다 흙 속에 들어가고 구더기가 덮이니 육신으로 보면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둘 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 하늘나라에 가서는 고난 받은 사람이 더 낫습니다. 평안하게 윤택하게 돌아가던 사람은 만들어진 것이 없지만 고생을 하고 복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일생 고난을 당할 때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였겠습니까? 사람이 고난을 당해야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온 것을 복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 이유는 복을 만들라고 주신 것이므로, 그 고난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그것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복으로 잘 만드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승리하고 영혼의 자라남이 ‘고난’ 가운데에서 이루어집니다. 미워할 일이 생길 때에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고 참지 못할 것을 참고 용납하지 못할 때에도 용납하면서 영을 잘 이루어나가면, 그 사람은 정금같이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윤택한 사람은 젖이나 먹고 껄껄하고 돌아다니다 죽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만들어진 것이 없었고 나사로는 하늘나라에 갈 때 자기를 잘 만들어가지고 갔습니다. 아무리 장례를 잘해도 쓸데없습니다. 육신은 다 일반이므로 영혼을 고난 중에 만들어가지고 가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큰 유익입니다.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 잘 참고 자기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승리적으로 통과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나가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잘해주는 사람도 좋은 사람이지만 잘못해주는 사람도 좋은 사람입니다. 잘해주는 사람은 잘해주므로 좋고, 잘못해주는 사람은 그 사람을 통하여 자신을 만들 수 있으므로 좋은 사람입니다. 잘못해주는 사람에게서 도리어 얻는 것과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자기가 깨져나가고 죽어집니다.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참게 되고 하나님을 앙망하게 되며 잘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말해 팔자가 좋은 사람도 좋고, 팔자가 나쁜 사람도 하늘나라에 가서 보면 더 많이 만들어가지고 가기 때문에 좋습니다. 그러나 팔자가 좋지 않은 사람이 원망이나 하고 눈물이나 또랑또랑 흘리고 돌아가면 시원치 않습니다. 팔자가 안 좋은 가운데서 찬송하고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그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믿음으로 승리해나가면 큰 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것을 가지고 화를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복을 만들어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흙 속에 누우면 다 일반입니다. 잘 살다 갔든지 못 살다 갔든지, 장례를 잘하고 관을 두꺼운 것을 했든지, 다 일반으로 썩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석관을 하든 금관을 하든 그 안에 것은 다 썩어질 것이므로 아무 소용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위로는 헛되고 대답은 거짓됨

본문 27-28절에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궤휼도 아노라 너희의 말이 왕후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의 거하던 장막이 어디 있느뇨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자신을 공격하고 해하려는 친구들의 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말은 악한 사람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악인의 거하던 장막이 어디 있느뇨’라고 하며 ‘왕후의 집이 어디 있으며’라고 합니다. 아무리 세상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다 망하기 때문에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29-30절에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악인은 남기워서 멸망의 날을 기다리움이 되고 멸망의 날을 맞으러 끌려 나감이 된다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길 가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악한 사람이 다 망한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고 알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모든 사람이 걸어간 길이요, 그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를 알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본문 31-32절에 “누가 능히 그의 행위를 면박하며 누가 능히 그의 소위를 보응하랴마는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의 왕들, 과거에 세상에서 잘 살던 사람들을 누가 면박할 수 없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보응할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다음에 메고 가서 무덤에 장사하고 그 무덤을 잘 지킨다고 한들 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망부석을 가져다 지킨다고 해도 다 어리석은 일들입니다. 무덤을 지킨다고 사람이 가 있거나 망부석을 가져다 놓거나 철조망을 쳐놓는 것은 아무 쓸데없는 일입니다.

본문 33절에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고 그 앞선 자가 무수함같이 모든 사람이 그 뒤를 좇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죽어 골짜기에 무덤을 파고 거기다가 누이는데, 그가 흙덩이를 달게 여기고 털썩 가서 눕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평안히 잘 있는 것 같다는 것
입니다. 운구(運柩)할 때에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고 또 뒤에도 많이 따라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장을 들고 나가고 뒤에 관이 따라 가는데,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만장을 들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흙 속에 들어가고 시신에는 구더기가 생길 것인데, 사람들이 많이 따라가면 뭐하겠습니까? 옛날 왕들이 죽어 장례할 때 몇 만 명이 동원되어 앞, 뒤로 만장을 몇 천 개 들고 꽃상여를 메고 따르도록 하였지만, 그것도 다 헛되고 헛된 일입니다. 그리고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고’라고 하였는데, 그래봤자 흙 속에 들어가 구더기가 생기고 썩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이러한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 너희의 대답은 거짓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잘되고 못 되는 것을 세상의 일로만 따지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악한 사람만 재앙을 만나고 의인은 잘된다고 하는 것이 욥의 친구들의 대답이나, 욥은 말하기를 악한 사람이나 의인이나 거지나 왕이나 죽은 다음에는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친구들의 대답이 다 거짓이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잘못되고 의인만 잘된다는 것도 헛됨은 의인도 세상에서 고난을 받다가 죽은 다음에 장사를 지내는 것은 악인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연단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가서 잘되는 그것 하나로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금과 같은 신앙 인격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가서 면류관을 쓰고 영원토록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난도 주시고 여러 가지 시험도 주시며 연단을 잘 시키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세상에서 잘된다, 못 된다는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내세주의, 의인도 고난을 받는 수가 있다는 것, 연단을 받
아서 자기를 잘 만들어가지고 가는 사람이 복이라는 것, 육신으로 볼 때에는 다 마찬가지라는 것, 또 혹 악한 사람이 더 잘되는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서는 성도가 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또 영원히 복을 받는 자가 성도라는 것, 또 환난 가운데에
서 자기를 욥과 같이 만들고 연단을 잘 받아서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이 영원히 복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