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복을 주심
스가랴 8:1-23
스가랴 8:1-23
1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4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5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6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7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찌어다 10그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어니와 11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12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13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찌니라 손을 견고히
할찌니라 14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열조가 나의 노를 격발할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 15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찌니라 16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8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 월의 금식과 오 월의 금식과 칠 월의 금식과 시 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20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21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
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1. 예루살렘 축복 약속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심
본문 1-2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10번 이상 나오는데, 이것은 ‘군대의 하나님, 능력으로 일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군대로 원수를 쳐부수는 것처럼, 능력으로 원수를 쳐부수시고 능력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며 능력으로 예루살렘을 건축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능력의 여호와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인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핍박하는 사람들, 유다 나라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질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이 고난 받는 것을 질투하시는데, 스가랴 1장 15절에 보면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를 핍박하며 괴롭히고 죽이면서 정작 자기들은 안일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이 고난 받는 것을 질투하시는데, 스가랴 1장 15절에 보면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를 핍박하며 괴롭히고 죽이면서 정작 자기들은 안일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말씀입니다. 3절 이후 본문 9절에도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돌아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치 않고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떠나시고 성전은 훼파되었는데, 이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성전을 지으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돌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거하시고 그날부터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 복입니다. 진리의 성읍인 예루살렘에 가야만 진리를 찾을 수 있고, 진리와 영감으로 영적 성전이 지어져나가면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며, 그곳이 여호와의 성산이 됩니다.
본문 4-5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지팡이를 짚고 온 분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늙어서 지팡이를 잡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장수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에는 일찍 죽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므로 장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 여자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좋은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유다 사람들이 미약하여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과거에 바벨론에 점령당하여 성읍은 다 불태워졌었고, 사람들도 포로로 잡혀가며 비참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루살렘이 이렇게 진리의 성읍이 되고 성산이 되었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눈에는 전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기 때문에 기이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지대를 만들어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불러내시고 서방에서부터 구원해내시어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약속대로 이루시며, 정의롭게 모든 것을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에는 하나님께 매를 맞아서 쫄딱 망했었는데, 회개하고 돌이키며 성전 건축을 시작하니까 잘되도록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비참했던 예루살렘의 과거를 돌아봐야 함
스가랴 7장 3-6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 월 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 월과 칠 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오 월의 금식은 예루살렘 성전이 5월에 불탄 것에 대한 금식이고, 칠 월의 금식은 그달랴가 살해당하고 유다 나라가 완전히 없어진 날에 대한 금식입니다. 유다 나라라는 명칭도 없어지고 유다가 바벨론의 한 도
가 되었으니, 원통하여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계속 금식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70년간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것에 대해서 통곡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이 여호와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내면에 들어가 보면 자기를 위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2년 동안 수양을 받았는데, 그때가 요셉에게는 신학교를 다닌 기간이었던 셈입니다. 바울이 아라비아에 있었던 3년도 바울에게는 신학교 기간이었고, 요나도 고기 뱃속에 있었던 3일이 신학교였습니다. 자기가 죽어지고 자기를 위한 것이 싹 다 없어져야만, 성경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싹 다 없어졌습니까? 자기가 굶든지, 매를 맞든지, 감옥에 갇히든지, 죽든지, 주를 위해서라면 전부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정신으로 바쳐야 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악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하였는데, 요나는 그런 곳에서 40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당장에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 가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파하다가 죽으면 순교자가 되는 것이고,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소돔 고모라, 아골 골짜기, 초막, 궁궐, 니느웨로 가다가 죽으면 특별 좌석에 올라가고, 핍박과 멸시를 받으면 상급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를 위하는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이것을 고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70년 동안 한 금식 기도가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시작하려면 자기 볼 장을 보는 것부터 고치고, 자기를 위하는 것에서 떠나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때부터가 시작인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에서 떠나지 못하면 성전 건축을 몇 십 년 했다고 해도 다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금식하고 울며 재계하며 70년간을 기도했어도 헛수고인 것입니다.
2.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복을 주심
하나님께서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복을 주심
본문 9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지대를 쌓던 날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돌아오셔서 그날부터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해주셨습니다.
본문 10절에 “그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어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사람이 삯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심령도 평안치 않고, 마음도 평안치 않으며,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영적 성전을 건축하기 전에는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많이 뿌려도 소득이 없습니다. 일꾼은 돈을 벌어서 전대에 넣지만 그것이 구멍 뚫린 전대가 되어 하나님께서 다 불어버리신 바가 됩니다. 그러나 성전 지대를 놓은 때부터는 다릅니다.
본문 11-1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찌니라 손을 견고히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남은 백성’은 성도를 가리키는데, 성도들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손을 견고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부터 영전 성전 건축을 시작해야 함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을 시작한 때부터 찾아오셨고, 그때부터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이 진리의 성읍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을 시작하는 것을 보니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경대로 하니 거룩하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성전 건축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이름만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위하는 것부터 다 없애고, 자기를 포기하며, 하나님만을 위하는 것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또 성전 건축을 하려면 낡은 건물을 헐어버려야 한다고 하였는데, 우리의 옛 건물, 옛 사람, 썩어져가는 구습을 헐어버려야 하겠습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 자기를 위하는 욕심, 못된 버릇을 하나씩이라도 고치며 헐어버리라는 말입니다. 못된 버릇을 헐지 않고 성전 건축을 하면, 하나도 건축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못된 버릇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회개하며 고치도록 노력합시다. 이제는 싹 다 돌이켜야 합니다. 음란한 마음을 가지
고 있는 사람들, 거짓 맹세하는 사람들, 남을 비방하는 고질병이 있는 사람들도 그러한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큰 소리 치는 사람도 그것을 뽑지 못하고 내버려두면 성전 건축에 구멍이 뚫리게 마련이고, 아무리 큰 그릇이라도 구멍이 뚫려있으면 물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도 구멍으로 다 새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감람유를 담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위하는 것과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70년을 믿어도 헛수고를 하는 셈입니다.
3. 은혜 베풀 때에 행할 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로 작정하심
본문 14-15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열조가 나의 노를 격발할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 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지대를 놓은 때부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로 하셨기 때문에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복을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 베풀 때에 행할 일
1)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하라
본문 16-17절에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
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성경말씀 중에 진실이 첫째라고 하였습니다. 김현봉 목사님께서는 참고 견디는 것이 첫째라고 하시면서, 늘 양심을 똑바로 쓰고, 참고 견디며, 일심정력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배운 사람은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나와서 양심을 똑바로 쓰고,
참고 견디며, 일심정력을 하라는 말씀을 가르쳐도, 김 목사님께서 한 마디 하신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만 주신 은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더욱 많이 배웠으면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도 기독교의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도 진실, 둘째도 진실, 셋째도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많이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이기선 목사님께 배운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특이한 리듬으로 성경말씀을 읽어내려 가시면서 강도하셨는데, 해석을 하지 않으셔도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예로써 사도행전 1장 8절을 크고 높은 소리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외치시면 성도들이 깜짝, 깜짝 놀라고 정신이 바짝 들고 당장 증인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해도 잘 안 되니까 여러분들이 웃는 것입니다.
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성경말씀 중에 진실이 첫째라고 하였습니다. 김현봉 목사님께서는 참고 견디는 것이 첫째라고 하시면서, 늘 양심을 똑바로 쓰고, 참고 견디며, 일심정력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배운 사람은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나와서 양심을 똑바로 쓰고,
참고 견디며, 일심정력을 하라는 말씀을 가르쳐도, 김 목사님께서 한 마디 하신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만 주신 은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더욱 많이 배웠으면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도 기독교의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도 진실, 둘째도 진실, 셋째도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많이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이기선 목사님께 배운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특이한 리듬으로 성경말씀을 읽어내려 가시면서 강도하셨는데, 해석을 하지 않으셔도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예로써 사도행전 1장 8절을 크고 높은 소리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외치시면 성도들이 깜짝, 깜짝 놀라고 정신이 바짝 들고 당장 증인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해도 잘 안 되니까 여러분들이 웃는 것입니다.
하여간 진실하고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악담하고 원망하며 해하면서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금식하며 울고 재계하는 것은 성전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계(齋戒)’라는 것은 속된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 기간 동안에는 더러운 것을 먹지 않고 아예 더러운 것에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먹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먹지 않으면서 70년간을 재계하며 살았어도, 진실하지 않으면 모두 헛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해하려고 거짓 맹세를 하거나 거짓 증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화평한 재판을 베풀라
다음으로는 화평한 재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뜻도 있고, 모든 성도가 화평하도록 판단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간질을 시켜서 불화하도록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이를 때렸을 때 어머니가 “너희 아버지는 때리는 사람, 나쁜 사람이다. 앞으로 아버지를 따라가지 말아라”고 말하는 것은 불화하도록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널 사랑해서 때렸다. 사랑하지 않으면 널 때리겠느냐? 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널 때리겠느냐? 아버지 말씀을 잘 듣고 네가 회개하고 바로 서면 좋은 사람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화평하도록 재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우리 아버지가 넘버원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잘 섬겨야 가정이 화평하지 않겠습니까?
화평하도록 재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우리 아버지가 넘버원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잘 섬겨야 가정이 화평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이 시험에 들었을 때에 화평하도록 재판을 하려면 “목사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셔서 그러신 것입니다. 목사님이 자신을 위하신 것이 아니고 교회와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이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을 다 져야 하므로 그러신 것입니다”라고 좋게 말해야 합니다. 반면 불화하게 재판하는 것은 “안 하실 것을 하셔서 괜한 사고가 났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것은 매번 다 그러니까 목사님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이 교회에서는 불이 일어나서 성도들이 목사님을 반대하고 일어설 것입니다. 하여간 이렇게 불화하게 재판하는 사람들
도 많이 있습니다. 전도 부인들 중에서도 화평하게 재판하지 못하고 불화하게 재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라고 ‘쌀 표’를 가져다주라고 하면, 몇 장씩 받아가서 “내가 목사님께 이것을 타 가지고 왔으니 받으세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기가 높아지고 자기의 공로를 세우며, 교회와 목사님이 자기의 뜻대로 되는, 아무것도 아닌 교회와 목사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구역장들도 “교회가 당신을 사랑하여 이것을 보내주셨습니다”라고 하여야 합니다. 언제나 사사건건 자기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자기의 공로를 나타내며 자기가 했다는 사람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3) 남을 해하려고 도모하지 말라
또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풀며,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성전 지대를 쌓았다는 것은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여 그로 말미암아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성품을 하나씩 이루어나가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이 점점 없어지고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며, 못된 버릇들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합니다. 독사의 독이 있는 것을 빼버리고, 남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씩 고치며 성전 건축을 해나가야 합니다.
영이 새 생명을 얻어서 생명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힘을 얻어서 예수님의 성품대로 만들어져나가야 합니다. 사랑해도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이기주의 사랑입니다. 세리들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자를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이런 이기주의 사랑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선물을 주면서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고, 먼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자도 낙제입니다. 불쌍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과부, 고아, 비천한 사람을 도와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같이 공정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성전 지대를 쌓았다는 것은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여 그로 말미암아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성품을 하나씩 이루어나가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이 점점 없어지고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며, 못된 버릇들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합니다. 독사의 독이 있는 것을 빼버리고, 남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씩 고치며 성전 건축을 해나가야 합니다.
영이 새 생명을 얻어서 생명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힘을 얻어서 예수님의 성품대로 만들어져나가야 합니다. 사랑해도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이기주의 사랑입니다. 세리들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자를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이런 이기주의 사랑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선물을 주면서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고, 먼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자도 낙제입니다. 불쌍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과부, 고아, 비천한 사람을 도와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같이 공정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4. 금식 절기가 변하여 즐거움이 됨
본문 18-19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 월의 금식과 오 월의 금식과 칠 월의 금식과 시 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1년에 4번씩 금식 절기를 지켰습니다.
앞서 말한 5월과 7월 금식 이외에 4월에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것을 기억하려고 통곡하며 금식하였고, 10월에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시작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통곡하며 금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금식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부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성전, 내 나라의 성전, 내 민족과 내 나라, 나의 예루살렘이 포위를 당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도성과 나라가 잘못된 것을 두고 애통해야 하는데, ‘자기 것’을 위해서 애통했다는 것입니다. 또 금식 절기가 다 지나면 여상하여졌습니다. 과거에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할 때에는 모든 종교 생활이 의식주의에 지나지 않았고, 자기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을 시작한 다음부터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몸을 바치고 즐거워하면서 주님을 섬기게 되었고, 모든 절기가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영이 살아서 심령 속에서 부터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고, 감격이 넘쳐서 희생의 정신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애통하고 금식하던 절기가 희락의 절기가 된 것입니다.
5. 여러 나라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옴
본문 20-2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2절에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전 건축하는 데로 돌아와서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신다”라고 하며 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대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하는 사람들이 귀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다 흠모하고 사모하며 좋아하고, 거기에 같이 가서 하나님을 섬기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9장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가 믿는 진리, 예수님을 바라보며 돌아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