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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1일 토요일

여호수아 4:1-24 열두 돌을 세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열두 돌을 세움
여호수아 4:1-24

1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 4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서 5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6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7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8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명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서 돌 열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 두었더라 9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 10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11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12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13사만 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14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같이 하였더라 15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16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을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17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18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19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치매 20여호수아가 그 요단에
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22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1. 요단강 가운데서 열두 돌을 취하여 가나안 땅에 세울 것

본문 1-8절에 요단강 가운데서 열두 돌을 취하여 가나안 땅에 세우라고 했습니다. 앞 장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너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15-17절에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요단강은 물이 많았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궤를 메고 앞장서서 나가는데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먼저 들어가야 요단강이 갈라집니다.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가야 하는데 얼마나 멀리 따라가야 합니까?

여호수아 3장 4절에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언약궤와 이천 규빗쯤 거리를 두고 따라가야 합니다. 언약궤
는 앞장 선 제사장들이 메고 가고 백성들은 이천 규빗쯤 떨어져 언약궤와 제사장을 바라보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천 규빗은 자로 재면 삼천 척입니다. 미터(m)로 말하면 천 미터 정도가 됩니다. 즉, 멀리서 바라보며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바라보면서 사모하며 그 주위를 따라가라는 뜻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서 앙망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면서 그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요단강에 먼저 도달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에 들어서라고 했습니다. 물을 갈라놓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물이 넘치는데 물에 들어서라는 것입니다. 빠져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믿고 들어서라는 뜻입니다. 죽지 않을 것을 믿고 들어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죽는 것이고도와주시면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건너게 해주신다고 하셨으니 건너게 해주실 것을 믿고 무조건 요단강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물이 갈라집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물을 갈라 주실 것을 믿고 요단강에 들어섰습니다. 들어섰을 때 갈라지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갈라 주실 것을 믿고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물에 들어섰을 때에 물이 갈라졌습니다. 발이 잠기게 되자 저 위에서부터 물이 쌓여 내려오지 않고 그 다음에는 마른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땅으로 건너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제사장은 마른땅에 앞장서서 요단강 가운데 들어섰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 말고 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곳을 지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언약궤 옆으로 다 지나가 올라가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표를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가운데에 섰는데 제사장이 선 그곳에서 한 지파가 하나씩 돌 열둘을 취하여 메고 강을 건너가 요단강 건너편에 그 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본문 4-8절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명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서 돌 열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 두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들이 선 곳 요단강 가운데에서 열두 돌을 열두 지파의 대표가 하나씩 메고 강을 건너가 요단강 건너편에 가서 세워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념이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홍해를 갈라 건너보내신 것도 혹 잊어버릴 염려가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이 희미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다시 기억나게 하시려고 이와 같이 하신 것입니다. 또 자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셨나, 그 사실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손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게 만들라는 뜻이 담긴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건져주신 일이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사람의 생각으로는 살 가망이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살려주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손들에게 말해주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었을 것인데, 살 가망이 없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역사로 사망의 물을 다 말리셔서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신 그 일을 자손들에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먼저 자신부터 늘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안 건져주셨다면 요단강가에서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요단강에서 죽지 않고 살게 하셨습니다. 또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쓰러져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즉, 가나안 땅에 자기 부모도 못들어간 것입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못 들어갔는데 광야에서 태어난 젊은 사람들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이며 능력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늘 감사하며 그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손들에게도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늘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증거를 세우고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늘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건너갈 수 없는 강을 건너가게 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고 요단강가에 열두 돌을 세운 것은 다 구원의 하나님을 잊지 말고 늘 감사하라는 뜻이 담긴 것입니다. 장차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오셔서 피 흘리심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잊지 말고 그리스도의 피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잊어버리지 말고 감격에 넘치고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애굽 생활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잊지 말고 항상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저는 예수님을 안 믿었으면 제가 어떻게 될 뻔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게 만들어 주셔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들, 예수님을 안 믿었으면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오늘날 이곳까지 왔을 것 같습니까?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과거에 건져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건져주신 것입니다. 자기가나온 것이 아닙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 능력으로 우리를 건져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또 광야 생활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 중에 우리를 건져주셔서 가나안 복지,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평안하고 복된 그 땅에 있으니 그 사실을 두고 늘 감사해야 합니다. 또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늘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여러 번 들었다고 해도 또 해주고 또 해주어야 합니다. 자꾸 해주어야 합니다.
6.25 사변 때 피난 나오던 것을 늘 말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망의 골짜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때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산 지난 날 동안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고비가 많이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신앙이 없었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에서 많이 건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을 영적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서 다 멸망 받을 뻔했는데 그 중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 또 현재 평안한 자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또 요단강을 건
너서 가나안 복지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지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에 감사하며 돌 열둘을 가져다가 세워 놓아야 합니다. 요단강 가운데와 강 밖에 세워 놓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어깨에 하나씩 메고 나왔으니 꽤 큰 돌인 것 같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다 힘이 셌습니다. 모세가 돌 비석 두 개를 산에서 가지고 내려온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돌이상당히 많이 있었고 요단강에도 아마 돌이 잔뜩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메고 나오라고 하셨을 때에는 자기 힘에 겨우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을 골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한 돌을 세워 놓아야 오래 갈 것입니다. 아마도 제일 큰 것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힘에 겨우 멜 만한 것, 그런 것들을 가져다 세워서 후대에 기념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요단강 가운데에서 열두 돌을 메어 건너편에 세우라고 하셨고 또 다른 열두 돌로는 요단강 가운데에 세워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2. 요단강 가운데에 열두 돌을 세움

본문 4장 9절에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두 돌은 미리 내어다가 강 건너편에 세우고 열두 돌은 요단강 가운데에다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뒤의 열두 돌은
물 속, 즉 물에 잠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돌들은 물이 합하고 나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속에 있는 돌들, 증거 열두 개와 외부에 세워 놓은 돌들, 증거 열두 개가 있는 것입니다. 내적 증거 열둘과 외적 증거 열둘, 이것을 늘 가지고 있으라는 뜻 입니다.

먼저 너희를 구원해 주신 내적 증거를 잊지 말고 늘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만 아는 것입니다. 받은 자 밖에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자기가 받은 은혜는 자기가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요단강과 사망의 골짜기에
서 어떻게 건져주셨는지 자기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병이 나서 다 죽게 되었는데 건져주신 사람, 가정이 망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건져주신 사람, 낙심 중에서 건져주신 사람, 다 몰락이 되어서 형편없는 가운데서 건져주신 사람, 이렇게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역사가 많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구속,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건져주셨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살려주시고 사람의 생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해주시고 넘지 못할 산을 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에 있는 열두 가지 증거를 잊지 말고 늘 기억해야 합니다. 다 잊어버리고 속에 아무것도 없이 빈털터리로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늘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건져주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불만 속에 사는 것, 무엇이 없다, 없다 하면서 걱정하는 것, 이러한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요단강을 건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오늘 이 자리, 복된 자리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복된 자리로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예배당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예배당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신지 아십니까? 요단강을 건너는 것보다 더 크신 역사로 이 예배당을 주셨습니다. 또 집 있는 사람은 집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세를 살아도 감사해야 합니다. 세 들어 살 집이 없어서 못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전에는 셋집이 있었습니까? 피난 나올 때 있었습니까? 또 무엇 한 가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건강 주신 것, 성경을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주신 것, 기억력을 주신 것 등 등,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게 해주신 것 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벌써 죽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주신 것에 대해 증거를 가지고 감사해야합
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도해주신 것,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 것,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신 것 등,
늘 감사할 것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늘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내적 증거 뿐 아니라 외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잊지 말고 속에도 증거를 가지고 감사해야 하고 자손이나 다른 사람에게 늘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구원에 대한 것을 외적으로 증거를 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넘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넘

본문 10-11절에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홍해 바다는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의 지팡이를 바다에 가리켜 갈라지게 하였습니다. 즉, 모세의 믿음으로 홍해 바다를 가르고 건너 갔습니다. 이번에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무조건 요단 강물에 들어선 것입니다. 요단 강물에 들어가 요단강물을 밟자 그 물이 곧 끊어졌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온 물이 끊어져서 위에 쌓이고 아래는 다 흘러가 마른땅이 된 것입니다. 요단강도 마른땅으로 건너게 되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먼저 발로 밟고 들어서니까 물이 마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은 요단강 가운데 굳게 서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다 건너가라고 하였습니다. 합니다. 우리의 영적 구원, 신령한 자리로 인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앞서 건너 감니다.

본문 12-13절에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사만 명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지파 반은 먼저 앞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4만 명 가량이 건너갔습니다. 많은 군대가 건너갔는데 이 사람들은 요단강 동쪽에서 기업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앞장서서 요단강을 건너간 것입니다. 또 가나안 전쟁을 다 정복한 후에 동쪽으로 건너와서 살려고 하였습니다. 가족들은 놔두고 장정 군사들만 건너갔습니다. 먼저 받은 사람들은 앞장서서 나가야합니다. 또 많이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많이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사람은 앞장서서 나가야된다고 했는데 그대로 실행한 것입니다.

백성이 여호수아를 두려워 함

본문 14절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인도자를 크게 해야만 백성들도 인도를 잘 받고, 인도자도 잘 인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백성들이 두려워하면서 인도자의 말을 잘 순종해야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인도자를 무시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나라나 단체는 아무 힘을 못 씁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반대하는 것입니다. 불신임을 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요새 우리나라가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인도자가 신용이 다 떨어지고 국회의원들이 다 납작해졌습니다. 대통령까지 신용이 다 떨어지니까 우리나라에 대한 염려가 많이 됩니다. 나라가 잘돼야 할 텐데 걱정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도 교역자를 우러러 보고순종하는 교회는 잘 됩니다. 그러나 교역자를 무시하고 비방하는 교회는 잘 안되고, 비방하는 사람들은 복을 못 받습니다. 교역자를 비방하는 사람은 은혜를 못 받고 은혜를 못 받으면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교역자가 은혜의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크게 하시고 백성들이 두려워하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이기 때문에 모든 백성이 그 종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일이 잘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만 하면 갈라집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안 갈라집니다. 제사장이 순종하니까 갈라졌고 백성들이 다 건너간 것입니다. 제사장만 건너간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쓸 사람, 믿음으로 앞장 설 사람이 앞장서서 나가면서 어려운 난관을 다 이겨놓으면, 뒤에서 따르는 사람은 쉽게 건너갑니다. 다 건너갈 수 있습니다. 60만 명인데 어떻게 다 건너가게 할 수 있습니까? 자기가 건너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일은 제사장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은 명령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고 명령대로 순종해 나가면 아무리 큰 홍해바다와 요단강이라도 마른땅으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물이 말라지고 또 그리로 모든 백성이 건너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생활

본문 15-18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을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고 하였습니다.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 굳게 섰습니다. 그래서 모든백성은 요단강을 다 건너갔습니다. 제사장은 요단강 가운데에 굳게 섰고 모든 백성은 마른 땅으로 요단강을 건너간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다 건너간 다음에 건너서 땅에 올라갔습니다. 가나안 땅을 발로 밟는 동시에 요단강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다고 하였습니다. 백성은 다 건너가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은 가운데 섰다가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강 물이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는 것은 하나님을 모신 것과 같습니다. 본문13절에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라고 했는데, 여호와 앞에서 건너갔다는 말씀은 다시 말해서 언약궤 앞으로 건너갔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건너갔다는 것은 언약궤 앞으로 건너갔다는 말씀
입니다. 왜냐하면 언약궤는 여호와 임재의 상징이고 또 하나님 말씀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중심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발로 들어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물이 넘쳐서 빠져 죽을 것 같아도,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발로 밟아라’하면 무조건 발로 밟는 것입니다. 밟으면 물이 마릅니다. 안 마르면 빠져 죽습니다. 물이 넘쳐흐르는데 빠져 죽지 않겠습니까? 안 마르면 빠져 죽을 만한 물인데 하나님께서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해주신다고 하셨으니까 믿고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이 말랐습니다. 다 건너갔습니다.
그 다음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바위 육지에 올라가니까 물이 다시 합해졌습니다. 순종하면 강이 갈라지고 또 순종하면 물이 합해집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모시고 명령을 순종하여 발자국을 뗄 때에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명령대로 순종하면 강이 갈라집니다. 홍해 바다가 마르고 요단강이 마르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4. 후대에 열두 돌이 주는 교훈

열두 돌이 주는 내적증거와 외적증거를 확실히 해야 함

본문 19-20절에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치매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라고 하였습니다. 요단강 가운데 열두 돌, 밖의 열두 돌은 증거를 삼기 위해서 세워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단강 밖에 세운 열두 돌은 외적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신 것을 모든 사
람에게 알게 하시려는 증거입니다. 강 가운데 세운 열두 돌은 다 잠겨서 모릅니다. 내적 증거입니다. 믿음으로 걸어가는 길은 내적 증거도 있고 외적 증거도 있습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가 많도다’라고 하였는데 자기 밖에 모르는 내적 증거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알게 하는 외적 증거가 있습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확실해야 되고 밖에 나가 많은 사람에게 이 증거를 전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들어서면 갈라집니다. 확실합니다. 갈라지기 때문에 건너갈 수있습니다.

내적증거와 외적증거가 확실해야 합니다. 희미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세워놓았습니까? 돌을 세워 놓았습니다. 요단강 가운데 12개, 요단강 밖에 12개를 세웠습니다. 증거를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의 역사로 요단강을 건넜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경홀히 여기며 소멸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합니다. 건너게 해주신 것을 늘 잊지 말고 감사하면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해주신 것도 늘 잊지 말고 감사하고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신 사실,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기적적으로 불러주셔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하신 사실, 요단강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건너게 해주셨고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신 사실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증거를 확실히 갖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돌을 세워놓고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확실한 내적, 외적증거로 감사해야 함

과거에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홍해 바다와 같은 난관에서 건져주시고, 애굽 생활하는 데에서 나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광야 생활을 통과하게 하시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신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입니다. 약속하신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단강이 가로 막혀서 약속하신 땅을 받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말리우시고 약속하신 복된 자리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 모두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해주신 일이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해주신 일도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복된 자리입니다. 건너지 못하면 복된 자리가 아닙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오늘 이 곳에까지 이르게 해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잊으면 안됩니다. 잊으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돌을 세워놓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서 이곳까지 인도해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즉, 시험과 난관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얼마나 많이 도와주셨는지를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셨으면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기적적인 역사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돌을 세워놓은 것처럼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나를구원해주셨는가, 과거에 어떠한 어려움에서 나를 건져 주셨는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이곳까지 인도해주셨는가, 원수가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했는데 거기서 어떻게 건져 주셔서 오늘 이곳까지 인도해주셨는가’를 기억하며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요새 이북에서는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고 하는데 우리 한국도 과거에 많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특히 거창에서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거창에는 평야가 없고 산이 많습니다. 해방 후에 사방에서 막아 놓았기 때문에 쌀을 못 들어가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6.25 사변 때에 하나님께서 유엔군을 보내서 인민군을 이북으로 보내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유엔군이 오지 않았으면 인민군이 부산까지 점령할 뻔했습니다. 목포, 대전을 점령하고 낙동강까지 갔었습니다. 목포에서 돌아 나왔던 인민군은 마산까지 갔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었어도 다 점령당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엔군을 보내주셔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거기서 건져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전부 공산국으로 통일될 뻔 했고, 그렇게 됐으면 이북과 똑같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똑같이 되어서 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도탄에 빠져서 자유롭게 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통행증이 있어야 다니는데 통행증을 잘 안 해줍니다. 평양에서 신의주 가는 기차가 하루에 한 대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탈 수가 없으니까 창문으로 기어들어가 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이렇게 건져주신 것만으로도 늘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 우리를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또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까지 믿음으로 살게 하셨는데 여러 가지 시험과 난관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지 않았으면 죽을만한 시험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만능으로 요단강을 말리우시고 건져주신 하나님을 감사해야 합니다.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 요단강을 건너서 복된 자리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늘 감사해야 합니다. 확실한 증거를 세워놓고 감사해야 합니다.

열두 돌의 증거를 자손들에게 전달해야 함

1) 과거의 일을 후일에 전달해야 함

본문 21-22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자손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마른 땅으로 건넌 것을, 세워놓은 돌을 보며 자손들에게 알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본문 23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라고 하였는데 이를 알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홍해 바다를 말리우시고 건너가게 해주신 하나님을 알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늘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돌을 세워놓고 자손들에게 알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6.25 사변 때의 상황을 알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창광교회 중, 고등학생 수련회에서는 6.25 사변에 대해 알게 하는 시간이 한 시간씩 들어갑니다. 6.25사변을 지내본 사람들이 강의를 합니다. 한국이 죽을 뻔 했던 사건이 많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때, 살려 주신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또 우리를 신앙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것,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는데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 주신 것,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들어 갈 수 없는데 말씀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늘 잊지 말고 감사하며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손들이 부모에게 들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셨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다 죽을 뻔 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건짐을 받았다’는 것을 또 전달해 줍니다. 그러면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자기만 알고 감사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를 해주어야 하고 자손에게도 증거 해주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홍해 바다를 건넌 것처럼 요단강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해주신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2) 여호와의 손이 능한 것을 알도록 하여 그를 경외하도록 해야함

본문 24절에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돌을 세워놓고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고 자손들에게 증거 해주라는 것입니다. 자신 속에만 증거가 있으면 되는
데 왜 남한테 증거 해주라고 했습니까? ‘이는 이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려고’라고 하였는데 우리 하나님이 이만치 능하다는 것을 이 땅 백성에게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나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전도 하라는 것입니다. 증거 해주고 성경 말씀을 전해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해주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우리만 알고 있지 안 믿는 사람은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가서 말해주라는 것입니다. 나가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성경을 말해주라는 것입니다.
요새 한보 사건 때문에 정태수씨가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는데 우리도 욕심대로 나가면 망한다. 욕심을 버리고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라고 전해 주어야 합니다. 정태수씨가 청문회 하는 것을 보았는
데 인격자로 보였습니다. 말도 잘하고 국회의원들이 물어볼 때 그 위에 올라가서 대답하는데 보통 사람 이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크게 하려는 허영심 때문입니다. 또 양심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뇌물 주어서 허영심을 채우려고 하였습니다. 욕심이 들어가고 허영심이 들어가고 양심 안 쓰니까 마지막엔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만들고 국가도 어지러움에 빠쳐 놓았습니다. 아깝습니다. 그 사람이 선한 데 쓰임을 받아 목사가 되었으면 잘했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목사가 되었으면 보통 목사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도적의 두목이라도 두목의 자격이 있어야 한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나며 능술한 사람이라도 욕심이 들어가면 망합니다. 은행에서 몇천억, 몇백억을 사용할 수 있어도 양심을 쓰지 않으면 망합니다. 그 다음 허영심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힘만큼만 해야 하는데 자기 힘보다 몇 배 큰 것을 하려고 하니까 가다가 거꾸러집니다. 누구든지 자기 힘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대로 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큰 거, 더 큰 거’하다가 망합니다. 아파트도 자꾸 ‘큰 거, 큰 거’하다가 자기는 1억도 없으면서 10억짜리 샀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욕심과 허영심으로 하면 다
망합니다. 또 돈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돈 따라가면 망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증거가 확실하므로 이 증거를 전해야겠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셨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요단강이 말라지겠는가?’라고 하여 하나님의 능하심을 알게 하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해야 됩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 애굽에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영원토록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너희를 위해서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복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인도자를 잘 복종해 나가야 자기 구원도 잘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도 잘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