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1-14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당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 범죄
시대에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고 노아를 통하여 방주를 지어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본문 1-2절에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성도고 사람의 딸들은 불신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성도가 불신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으로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이것은 가인의 계통에서 난 사람의 딸들과 셋의 계통에서 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혼합된 것입니다. 즉 성도가 불신자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영적 신앙의 길을 걷는 계통과 육신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계통이 혼합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성도들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되고 결혼을 해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사람의 딸의 아름다움을 보고 안목의 정욕대로 육신의 정욕대로 취해서 아내를 삼았습니다.
세상적인 물질이나 명예 등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좋아하는 대로 취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채우기 위해서 모든 것을 취합니다. 사업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사업을 하고, 돈을 쓰는 것도 자기들의 좋아하는 대로 돈을 씁니다. 이것이 타락의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결혼을 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결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결혼을 하려면 첫째가 믿음입니다. “얼마나 잘 생겼느냐?, 돈이 얼마나 있느냐?, 직장이 무엇이냐?,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를 먼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첫째로 보는 것이 “돈”과 “직장”입니다. 그 다음이 외모입니다. “키가 얼마이냐? 잘 생겼느냐?”입니다. 그 다음에는 학교 입니다. 이것을 보고 결혼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노아 시대와 같은 타락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결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욥은 눈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욥기 31:7절에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라고 하였습니다. 눈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욕심을 따라가고, 육신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은 타락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자가 하나님의 참된 종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나 감사히 받습니다. 환난도 감사히 받고, 고난도 감사히 받습니다. 환난과 고난이 육신의 생각으로는 좋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다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비방해도 “믿음” 하나만 보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거기에서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장로 별명이 “아부하는 장로”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목사를 받드니까 저 사람은 목사에게 아부하는 사람이라는별명이 붙은 것입니다. 재직회에서 그 장로에게 “왜 아부하느냐?”는 말이 나온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장로는 “나는 본래 배우기를 어렸을때부터 목사를 전적으로 받드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못한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장로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인정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장로가 공학박사가 되어 알래스카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가서도 교회를 잘 받들고 나갔다고 합니다. 아주 귀한 장로입니다. 결혼할 때에 “믿음” 하나만 보고 결혼했는데, 이처럼 귀한 장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범사를 믿음으로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결혼하는 것도 물론 믿음으로 해야 되겠지만, 물질을 소유하는 것도 믿음으로 소유해야 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면 하면 안됩니다. 돈 버는 것도 믿음으로 해야 되겠고, 직장도 믿음으로 취하여야 합니다. 좋은 직장에 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직장에 가야 되며, 일단 직장에 간 다음에는 아무리 돈을 적게 주어도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냈으니까 “여기에서 내가 충성한다”하며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믿음으로 합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식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돌아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로마서 14:23에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인본주의와 사업주의로 아무리 크게 했다고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죄입니다. 일이 크던지 작던지 믿음으로 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합격입니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하였는데,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하면 되겠습니까? 누구 좋아하는 대로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대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내게 손해가 나도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면 환난과 결박이 있다고 해도 마주 나가서 환난과 결박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그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하는 것은 벌써 타락된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꺾어 버려야 됩니다.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꺾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가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아버지의 뜻만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는 길이고,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소돔 고모라, 아골 골짜기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곳으로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선교사로 나가야 합니다.
선교사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죽으면 순교자가 되는것입니다. 순교자의 반열은 특별 반열입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이 순교자입니다. 순교자는 하나님 앞에 가면 영원히 빛나는 면류관을 쓰며, 영원한 영광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짧은 세상입니다. 이 짧은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이 하늘나라에 가면 영원히 남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나라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연단과 시험을 참는 것입니다. 짧은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받는 고난은 잠깐입니다. 십자가를 져도 잠깐입니다. 잠깐만 믿음으로 통과하면 영원한 것이 자기에게 이루어집니다. 이런 큰 것을 하나님이 주시려고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목의 정욕에 기울어져서 믿음으로 하지 않고,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나가는 것은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뜻대로 나가지 말고, 모든 걸 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뜻을 바로 찾아서 나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2. 심판 결정
일백이십 년 후에 심판하심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체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는 것은 육신 중심으로 돌아섰다는 말입니다. 성도가 육신 중심으로 돌아서면 신앙이 타락 됩니다. 신앙이 타락이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십니다. 신자가 영으로 살아야 되겠는데 영으로 살지 못하고, 육신대로 살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따라가게 됩니다.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120년 후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120수는 하나님의 만수이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를 즉시 심판하시는 때도 있으나 대개는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오래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벧후 3:8-9).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 즉시 회개하고 바로서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일백이십 년 있다가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일백이십 년 후에 노아 방주를 지었다는 말이 아니고 일백이십 년 후에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의 수명이 일백이십 년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일백이십 세가 되기 전에 죽으면 전부 귀신이 된 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떠돌아다니다가 와서 병도 나게 하고 모든 재앙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을 내쫒는 사람한테 기도를 받으면 귀신이 다 나간다고 말합니다. 귀신 내쫓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일백이십 년 살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백이십 년 있다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그 전에 죽는 사람은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은 마귀인데 사람이 왜 마귀가 되겠습니까? 또 언제 죽어도 그 사람이 예수를 믿었으면 천당 가고, 안 믿었으면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자기 조상이 귀신이 되었다는 것은 마귀를 자기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할아버지가 귀신이 되어 아이들한테 들어와서 병을 주었다고 하면 할아버지를 내쫓아야 됩니다. 그런데 진짜 할아버지가 왔으면 대접을 해야지, 할아버지를 내쫓는 데가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전부가 다 마귀놀음입니다. 사람이 일백이십 년 살게 되었다는 말은 일백이십 년 있다가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또 노아방주는 몇 년 동안 지었습니까? 노아방주는 한 칠십년 동안 지었다고 봅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셔서 방주를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가서 함과 셈과 야벳을 낳았던 것입니다. ‘일백이십 년 있다 심판하리라’한 명령 다음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아서 며느리를 데려왔던 것입니다. 육백 세 까지 방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방주를 지은 기한을 한 칠십년간으로 잡아야 되겠습니다. 일백이십 년 동안 노아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백이십 년 살게 되었다는 것은 일백이십 년 있다 심판한다는 것이지 노아방주를 지은 기한이 아닙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심
본문 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후회하시고, 근심하시고 다 멸망시킨다 하셨습니다. 관영했다는 말은, 노아시대의 죄악이 관영했다는 것입니다. 관영이라는 건 가득 찬 것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가득 찬 게 관영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노아시대의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가득 찼다 이것입니다. 가득 찼으니까 이제 처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3. 노아의 신앙과 그 시대의 죄악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함
본문 9절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노아는 의인이고 당세에 완전한 자고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고 하였는데 우리도 노아와 같이 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의가 아니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의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세우려고 불의를 미워하셔서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치 못한 걸 고쳐서 완전한 자가 되어서 노아와 같이 늘 깨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함
본문 11절에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라고 했는데 그 당시에는 패괴함과 강포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것이 막대기라고 하면, 여기에 뭘 끼웁니다. 요샌 떡도 끼우는 것 같은데 막대기에 하나씩 둘씩 끼워가지고 끝까지 차면 그걸 관영이라고 합니다. 죄가 이렇게 끝까지, 꼭대기까지 찼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패괴함이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패괴라는 것은 ‘부패’, ‘썩어진 것’ 등의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태복은 24:37-39절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도 노아의 때와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때의 죄악은 두 가지로 말했는데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대표적인 죄입니다. 즉, 패괴함이 대표적인 죄입니다. 온 세계가 먹고 마시는 대로, 시집가고 장가가는 대로 기울어 집니다. 그래서 죄악이 가득해집니다.
오늘날에 ‘인자의 임함 때도 그러하리라’ 한 것을 보면 마지막 때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노아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데만 다 치우치고 열중하고, 또 시집가고 장가가는데만 열중합니다. 이것은 정상적으로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음란, 방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지금 노아시대와 같이되었다 하는 것을 지금 어디를 보나 실감이 납니다. 어디를 보나 다 썩었고 어디를 보나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의가 없습니다. 공의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부패가 가득하고 말았습니다. 한국도 얼마나 부패해졌습니까? 관리들은 얼마나 부패합니까? 요새 신문에 매일 나는 것을 보면 도적질 하고, 도적과 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지경에 빠졌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돈을 횡령했습니까? 스물여섯 살 난 사람이 천억을 해 먹었답니다. 천만 원 해먹었어도 큰 건데 천억을 해먹었단 말입니다. 지금. 전부 다 부패해 졌습니다. 물론 깨끗한 사람도 있습니다.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있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부패한 사람이 많이 있고, 또 백성들은 방탕합니다.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먹고 마시십니다. 또 요즘은 음란, 방탕 한 사업이 돈 잘 번다고 해서 곳곳마다 러브호텔이 있습니다. 가는 데마다 술집과 노래방 없는 데가 없습니다. 술도 한국 술만 먹는 게 아닙니다. 포도주 한 병에 삼십만 원 짜리인 비싼 것을 먹고 방탕하고, 또 없는 사람은 없어서 굶고, 이거 한심하게 되었습니다.
말세에도 노아의 때와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때의 죄악은 두 가지로 말했는데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대표적인 죄입니다. 즉, 패괴함이 대표적인 죄입니다. 온 세계가 먹고 마시는 대로, 시집가고 장가가는 대로 기울어 집니다. 그래서 죄악이 가득해집니다.
오늘날에 ‘인자의 임함 때도 그러하리라’ 한 것을 보면 마지막 때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노아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데만 다 치우치고 열중하고, 또 시집가고 장가가는데만 열중합니다. 이것은 정상적으로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음란, 방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지금 노아시대와 같이되었다 하는 것을 지금 어디를 보나 실감이 납니다. 어디를 보나 다 썩었고 어디를 보나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의가 없습니다. 공의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부패가 가득하고 말았습니다. 한국도 얼마나 부패해졌습니까? 관리들은 얼마나 부패합니까? 요새 신문에 매일 나는 것을 보면 도적질 하고, 도적과 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지경에 빠졌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돈을 횡령했습니까? 스물여섯 살 난 사람이 천억을 해 먹었답니다. 천만 원 해먹었어도 큰 건데 천억을 해먹었단 말입니다. 지금. 전부 다 부패해 졌습니다. 물론 깨끗한 사람도 있습니다.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있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부패한 사람이 많이 있고, 또 백성들은 방탕합니다.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먹고 마시십니다. 또 요즘은 음란, 방탕 한 사업이 돈 잘 번다고 해서 곳곳마다 러브호텔이 있습니다. 가는 데마다 술집과 노래방 없는 데가 없습니다. 술도 한국 술만 먹는 게 아닙니다. 포도주 한 병에 삼십만 원 짜리인 비싼 것을 먹고 방탕하고, 또 없는 사람은 없어서 굶고, 이거 한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죄악이 관영했다고 했습니다. ‘가득 찼다’ 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악하고 의인만 방주를 타게 되어 있습니다. 남색, 여색, 동성연애 등이 만연합니다. 이들은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사귀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마약이 많이 들어와서 술집에 가면 술에다 마약을 타서 준답니다. 요새는 마약 탄 술이 이름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하여간 그 술을 달라고 하면 준다고 합니다. 말세가 다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5:7-8절에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지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배부르고 살찌게 해주셨는데 배부르게 해주니까 음행하고, 살찌게 해주니까 밖의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었습니다. 가정부인들도 지금 호텔에 가서 음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여튼 죄악이 관영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탄식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께서 탄식을 하십니다.
예레미야 5:7-8절에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지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배부르고 살찌게 해주셨는데 배부르게 해주니까 음행하고, 살찌게 해주니까 밖의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었습니다. 가정부인들도 지금 호텔에 가서 음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여튼 죄악이 관영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탄식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께서 탄식을 하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심판하심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떻게 결혼했습니까? 자기 눈의 아름다운 것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패괴함이 가득하고, 또 강포가 가득하여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가 없어지는 것을 그대로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공의가 굽어지면 어느 한도까지 있다가 그 다음에 심판 하십니다. 공의를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도까지 참아주시는지는 모르지만 참을 때 까지 참아주시다가 그 다음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는 것입니다. 손을 대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이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이때가 어느 때인 줄을 바로 알고, 시대를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자다가 마땅히 깰 때입니다. 잠자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을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4. 방주 제조 명령
방주 만드는 준비를 잘 해야 함
본문 14절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어서 그 간을 막고 역청으로 안팎을 칠하고 방주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방주를 만들어야 됩니다. 방주는 요새 말로 말하면 영적 성전건축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오겠는데 영적 성전건축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잠자고 있다가는 홍수와 같은 환난이 올 때에 다 빠져 죽습니다. 또 홍수와 같은 환난이 와도 그 환난에 빠지지 않도록, 환난을 이길 수 있도록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방주 제조 방법
1)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야 함
무엇으로 건축을 해야 됩니까?
잣나무로 건축하라고 하였는데 학개서 1: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잣나무를 갖다 하라는 것은 ‘잣나무는 사시불변 언제나 청청한, 절개가 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생명 있는 말씀, 생명 있는 진리의 말씀을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방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잣나무로 건축하라고 하였는데 학개서 1: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잣나무를 갖다 하라는 것은 ‘잣나무는 사시불변 언제나 청청한, 절개가 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가 생명 있는 말씀, 생명 있는 진리의 말씀을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방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2) 진리와 영감으로 지어야 함
학개 때의 성전건축이나 노아 때 방주건축이나 방주 짓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금은보석으로 짓는 것이 있고 나무, 풀로 짓는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2절에서 금은보석으로 지은 것은 불이 타지 않고 나무나 풀로 지은 것은 불이 타서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4: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도 신령과 진정으로 성전건축을 해야 합니다. 성전건축도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참된 진리를 받아가지고 영적으로 진리와 영감이 같이 하는 영적 성전을 건축해 나가는 것이 방주준비입니다.
말씀대로 지어나가야 합니다. 성전은 말씀대로 지어져야 됩니다. 참 교회, 참 성전, 신령한 교회, 신령한 성전을 지어 나가야 됩니다. 또 우리는 여러 곳에 참 진리의 교회, 신령한 교회, 생명력 있는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지어나가야 합니다. 성전은 말씀대로 지어져야 됩니다. 참 교회, 참 성전, 신령한 교회, 신령한 성전을 지어 나가야 됩니다. 또 우리는 여러 곳에 참 진리의 교회, 신령한 교회, 생명력 있는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3) 먼저 자기 자신부터 만들어야 함
고린도전서 3: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였는데 방주 짓는 건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신령한 성전으로, 진리의 성전으로 먼저 지어나가야 됩니다. 자신을 만들지 못하면 그 다음에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망하는데 다른 것 많이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방주를 지을 땐 먼저 자기부터 지어야 합니다. 자기 인격건설. 자기 영의 성장. 자기 심령이 만들어지는 거, 이거부터 먼저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썩어진 것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음란, 방탕, 또 먹고 마시고, 술 취하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불쌍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이냐, 이 시대에 방주 짓는 거다, 우리 자신의 영적 성전건축이다. 성전건축 하는데 나부터 먼저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자기부터 말씀대로 만들어져야 하고, 또 중생한 영이 자라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인격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9:27절에 사도 바울이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많이 전파했지만 자기가 버림받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기 몸을 쳐서 복종을 시키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서, 자기 자신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을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하나씩 받아다가 자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썩어진 재목이 있으면 썩어진 것은 잘라 내버리고 새 나무를 갖다 붙이며 만들어야 됩니다.
4) 능력, 힘, 지혜, 도덕적인 면으로 만들어져야 함
만들어지는 건 네 가지 부분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첫째, 영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결을 이길 수 있는 능력, 아무리 바람이 세도 홍수가 와도 환난이 와도 다 이길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럼 능력은 어디서 옵니까? 시험을 이기는데서 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는데서 능력이 생깁니다. 환난, 풍파,여러 가지 시험, 참고 견디고는 데서 능력이 생깁니다.
둘째, 방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없으면 방주가 가다가 파도에 다 부셔지게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 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 되지 않은 것을 이겨야 됩니다. 성경대로 순종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면 힘이 생깁니다.
셋째는 지혜 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되고, 영의 눈이 밝아져야 되고, 지혜가 생겨야 됩니다. 지혜는 어디서 옵니까? 순종하는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순종해보면 지혜가 생깁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지혜가 나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예수 믿는 사람이 도덕 면에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더러운 것은 다 제거시키고 의로운 옷, 의로운 세마포, 진실, 거룩함으로 도덕 면을 잘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또 교회도 그렇게 만들어가야 됩니다. 진리의 교회로, 영적 생명 있는 교회로, 능력과 지혜와 도덕이 이루어지는 교회로 세워야 됩니다.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와 생명 있는 영적인 교회를 사방에 세워야 되고, 또 선교사 보내서 외국에까지 세워야 됩니다. 이게 방주 짓는 일입니다. 자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 지방에 만들어야 됩니다. 또 여러 나라에 방주를 짓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전부 방주 짓는 데 기울여야 함
이 시대에는 방주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쓸데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홍수가 나겠는데 홍수 나면 다 떠내려 갈 것 아니겠습니까? 다 없어집니다. 방주 짓는 일 하나가 유일한 목표, 최고의 목표인 것입니다. 재산 나두었다 뭘 하겠습니까? 이제 홍수나면 세상 다 떠내려 갈 거 아닙니까? 홍수로 죽을 건데 재산이 무슨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노아는 모든 재산을 팔아, 방주 짓는데 전부를 투자한 것이 분명합니다. 방주 짓는 일만 전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것만이 구원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모든 재산을 다 정리해가지고 사람을 많이 붙여 산에 가서 나무를 찍어 오게 만든 것입니다. 방주를 크게 지으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붙여야겠습니까? 나무 찍어오는 사람, 나무 자르는 사람, 대패 미는 사람, 또 배다 맞추는 사람,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어서 방주를 지을 게 분명합니다. 그 때 노아 며느리들은 뭘 했겠습니까? 점심해서 먹이는 것을 했을 것 같습니다. 방주 짓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데 그 사람들 점심을 해 먹여야 됩니다. 매일 노아 며느리들은 점심을 했을 것입니다. 셋이서 백 명씩 매일 점심하려면 상당히 힘들 것 같습니다. 셋이서 백 명 점심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답니다.
매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하고 그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아들들은 뭘 했겠습니까? 아들들은 감독을 하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나무 찍어서 가지고 오는 것, 나무 자르는 일, 대패 미는 것 등의 일하는 것을 감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매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하지 않습니다. 노아는 총감독, 총지휘관입니다. 노아 부인은 아마 집 봐주고 며느리들과 같이 점심을 해주었겠지요. ‘모든 재산을 전부 방주 짓는 데에 투자한다. 모든 시간을 방주 짓는 것에다가 사용한다. 모든 인력을 방주 짓는 것에다가 이용한다’고만 생각하면 방주가 잘 될 것 아니겠습니까?
또, 한 칠십 년 일 하는 중에 20~30년 전부터 밑에서 썩은 데가 있으면 썩은 것은 빼내버리고, 새 나무를 갖다 대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것을 전부 방주 짓는 것에 기울어야 됩니다. 세상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오고 예수님의 재림이 올 때는 다 없어지고 말 것인데 세상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