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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일 일요일

누가복음 23:44-56 예수님을 바위에 판 새 무덤에 장사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을 바위에 판 새 무덤에 장사함
누가복음 23:44-56

44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47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49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 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 52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이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56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해가 빛을 잃음

본문 44절에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5:25에는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제 삼시에 못 박히셨으며 육시부터 구시까지 해가 어두워졌고, 구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유대 나라 시간과 우리나라의 시간은 24시간은 같은데 시작이 다릅니다. 우리는 하루가 0시부터 시작 하고, 유대 나라에서는 오후 6시가 영시입니다. 즉 6시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해 질 때가 그 날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6시간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시간을 우리의 시간으로 알려면 6시간을 더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는데 삼시에 여섯 시간을 더하면 오전 9시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제 육시 쯤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워졌다고 하였는데 육시에 6시간을 더하면 12시입니다. 오전 9시에서부터 12시까지 못 박혔다가 12시에서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어두워졌습니다. 구시에 6시간을 더하면 오후 3시가 됩니다. 12시에서 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캄캄해졌습니다. 창조자께서 십
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데 피조물이 빛을 낼 수가 없습니다. 태양을 예수님이 만드셨는데 그 태양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빛을 잃은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

본문 45절에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지더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51-54에는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해가 어두워지고, 지진이 나고,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일어나고, 바위가 터졌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서 “예수님은 분명히 의인이다. 의인이 아니면 어떻게 해가 어두워지겠느냐? 또 바위가 왜 터지겠느냐? 무덤이 열리며 자던 사람이 왜 일어나겠느냐? 정녕 의인이었도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고 백부장이 증거를 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사람으로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는 “담이 없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성소의 절반은 휘장으로 막아 안쪽을 지성소라 하였고, 바깥쪽을 성소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는 보통 제사장이 들어가서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피 없이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또 죄인이 들어가면 죽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지성소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악의 담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 앞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막혔던 담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무너지므로 누구나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음

본문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용, 낙, 모, 기, 갈, 성, 탁”으로 용은 “저들을 용서해달라”는 것이며, 낙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것이며, 모는 “어머니 부탁”이며, 기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기도이며, 갈은 “목마르다”이며, 성은 “다 이루었다”이며, 탁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영혼과 육체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의 영, 즉 그리스도의 영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영혼과 육체가 있으며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신성이고, 육신과 영혼은 인성입니다. 예수님은 육신과 영혼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사람이시며 또 신성되는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이 결합이 되어 한 위가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양성 일위입니다. 인성과 신성이 결합이 되어서 하나가 된 것은 예수님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그리스도의 영이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육신과 영혼이 있습니다. 또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이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것이므로 나는 “나”이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는 인성과 신성이 결합이 되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또 예수님은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영이 있지만 연합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이것을 몰라서 어떤 사람은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고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모르고 마귀에게 속아서 멸망의 자리에 들어간 것입니다. 성경을 잘 모르면 멸망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알고, 말씀대로 바로 믿어야 합니다.조금만 선을 넘으면 적그리스도가 되고, 멸망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신성과 인성이 하나이므로 영혼이 떠나서 하늘나라
로 갔고, 예수님의 신성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즉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누구를 데리고 갔습니까? 회개한 우편 강도를 데리고 갔습니다. 베드로전서 3:19에 옥에 있는 영에게 전파했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다음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니고, 그것은 성령으로 전파한 것을 말합니다. “영으로”란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대승리를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알게 했다는 말입니다. 
거기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알게만 한 것입니다. “영으로”에서 “영”은 예수님의 영혼이 아닙니다. “영”은 헬라어로 “퓨뉴마”인데 성령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대승리, 즉 구원 완성을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지옥에 간 사람이 믿은 것은 아닙니다. 알고만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도 믿었더면 구원 받았을 것인데 믿지 않아서 지금 지옥에 와 있다”하는 것을 알고만 있는 것이지,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용문산 계통 나운봉씨는 “영옥”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지옥도 아니고, 연옥도 아닌 영옥이라는 것이 있는데 구약시대의 성도는 다 거기에 가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다음에 가서 알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 때에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구속을 이루기 전이므로 천당에 못 갔다는 것입니다. 구속을 이룬 다음에야 천당을 가지 이루기 전에 어떻게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합실과 같은 영옥에 가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므로 그 때에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 되었는가? 구약시대에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즉 앞으로 그리스도가 와서 구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구원 받아서 천당에 간 것이지, 대합실에 가서 몇 천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리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천국에 있으리라” 하는 말이 있고, 아브라함이 천국에 가 있다고 하였고, 살아있다고 하였습니다. “영옥”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에녹이 승천했는데, 에녹이 승천해서 하늘나라 갔지, 내려와서 영옥에 갔겠습니까?
또 영옥이 땅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땅 아래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면 사무엘을 불러 오는 것을 보면 사무엘이 땅 아래 있다 오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요새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거기에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4. 예수님을 바위에 판 새무덤에 장사함

본문 48-49절에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가고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슴을 두드리며, 멀리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갈릴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 또 구경하는 사람들이 가슴을 두드리면서 멀리서 이 일을 바라 보았습니다.

본문 50-51절에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라고 하였습니다. 공회의원은 요새 국회의원과 같은 것입니다. 유대 나라 국회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문 52-53절에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라는 국회의원 또 한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요한복음 19:39-40에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달라고 하였고, 니고데모가 와서 침향 백 근쯤을 갖다가 예수님의 시체에 부었습니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새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자기가 죽은 다음에 장사하려고 바위를 파서 무덤을 만들어 둔 것입니다. 상당히 돈이 많이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바위를 파서 무덤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돈이 많이 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운명하셨으므로 아낌없이 자기가 죽으면 장사하려고 예비해 놓았던
무덤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바위에 무덤을 파면 집 한 채 값의 돈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어떤 사장은 자기 무덤을 만들어 놓는데 6억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6억원이면 집 몇 채 값입니다. 여기에서 바위에 자기 무덤을 판 것도 요새로 말하면 몇 억원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낌없이 예수님에게 바쳤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 하면 무조건 바치는 것입니다. 이 무덤을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였습니까? 주님이 지금 운명하셨는데 뭘 쓰시겠다고 하였겠습니까? 안 바쳐도 누가 왜 안 바쳤느냐? 할 사람도 없는데 왜 바쳤습니까? 아리마대 요셉의 마음을 성령께서 감동 시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령으로 감동으로 아낌없이 자기 무덤을 바친 것 같습니다. 바침으로 영원히 아리마대 요셉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았습니다. 바침으로 영원히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된 것이고, 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다”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존귀합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면 상 받을 만한 일입니다. 안 바쳤다면 다 썩어질 것인데 바쳤기 때문에 상 받을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한 다음에 거기에 자기를 장사했을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미 하나님께 바친 것이므로 “어떻게 내가 장사할 수 있겠느냐?” 하며 다른데 장사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예수님 따라가느라고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죽음이다, 나도 죽어 들어가야 되겠다, 또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이다, 나도 거기에 있다가 부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거기에 장사했을 것 같기도 하는데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사실은 무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덤에 잠시 있다가 부활하면 다 내어 버릴 것인데 괜히 무덤 잘 해놓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노인들이 무덤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무덤에 장사해도 부활하면 다 내버리는 것입니다. 이 육신은 의복과 같습니다. 입고 있던 의복을 벗어 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혼은 천당 갔습니다. 

본문 54-56절에 “이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고 하였습니다.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이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많이 안 따라 다닌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대개 갈릴리 사람입니다. 갈릴리에서 열한 제자를 택했습니다. 가롯 유다 한 사람만 유다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여자들도 대개 갈릴리 사람입니다. 무덤에까지 간 것도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여자들이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려고 예비하였고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