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를 알라
로마서 13:11-14
로마서 13:11-14
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
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 시기를 알라
본문 11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기를 알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16:2-3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는 분별할 줄 모르느냐?고 예수님께서 책망을 하셨습니다. 즉 시대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밤이 깊습니다.
본문 12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하였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운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제 좀 있으면 낮이 되는 시기로,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된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알고 이 시기에 대한 준비를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을날 갑자기 추워지는 때가 있는데, 갑자기 추워지기 전에 그 전날 무 같은 것은 다 뽑아야 합니다. 무를 뽑지 아니하면 다 얼어서 일 년 농사한 것이 다 헛된 데로 돌아갑니다.
노아가 앞으로 올 홍수의 시기를 알고 방주를 잘 준비했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방주를 준비하지 않고, 도리어 방주를 준비하는 노아를 비방하고 무시하며 나갔습니다. 찬송가370장에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지는 해 비낀 볕에 힘써 일하고 그 빛이 다하여서 어둡게 되어도 할 수만 있는 대로 힘써 일하라”고 하였는데, 요새가 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해가 거의 다 져갑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신랑 맞을 준비를 잘
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는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신랑이 올 때에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에 신랑이 온다고 하면, 신랑 맞을 준비를 잘한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리라고 하며 먹고, 마시며, 방탕하면 신랑이 알지 못하는 날 갑자기 올 때에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잘 아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말세의 징조가 이루어짐
여러 가지를 보아서 하나님이 시기를 알게끔 해놓으셨습니다. 말세의 여러 가지 징조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흰 말이 나오고, 붉은 말이 나오고, 검정말이 나오고, 청황색 말이 나오는 이것이 다 말세 된 증거입니다. 흰 말은 복음운동이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세계적으로 복음이 다 전파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4:14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이 온 세계에 다 전파되면 끝이 오리라고 하였는데,
흰말이 나와서 이기고 또 이겨서 세계적으로 이 복음이 다 들어갔습니다.
붉은 말도 옛날부터 나왔지만 말세에 가서는 더욱 더 붉은 말이 맹렬하게 나옵니다. 붉은 말은 마귀 역사로 붉은 사상, 붉은 용으로 세계적으로 나와서 권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세가 다 된 증거입니다. 또 검정말은 매매하는 것으로 이 시대가 지금 경제 전쟁, 원자재 전쟁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또 청황색 말은 사이비한 것, 즉 이단, 혼합주의 사상 등이 청황색 말인데, 이것도 지금 세계적으로 다 나왔습니다. 이단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혼합주의 사상이 얼마나많이 나오고, 신신학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모릅니다. 석가탄신 일에 절에 목사가 가서 축하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신신학 목사입니다. 불교는 마귀 역사인데, 마귀 역사 잘 되도록 축하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것이 청황색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다음에 이슬람교 같은 것도 청황색 말입니다.
2. 자다가 깰 때가 됨
이제는 끝이 다 된 줄을 알고 자다가 마땅히 깰 때가 되었습니다. 잘 때가 아닙니다. 자는 것은 무엇이 자는 것이냐? 하면 육신 중심, 세상중심으로 사는 것이 자는 것입니다. 깨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중생한 영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생활이 깨는 것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는 것은 죄악의 밤이 깊어졌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밤이 깊고”란 죄악의 밤이 깊었다는 것이고, “낮이 가까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밤이 깊어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다니엘 7장에 악한 자들이 나와서 기독교를 핍박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성전을 헐고, 성도들을 많이 잡아 죽이므로 성도는 환난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고 많이 순교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며,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면 즉 점점 죄악이 들이차면 밤이 깊은 줄로 알아야 합니다. 밤이 깊으면 악한 자들이 세상에서 득세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다 이기주의로 점점 악한 데로 나갑니다. 요새 산유국들이 전부 이기주의로 나가고 있으며, 또 나라마다 핵무기를 만들어 쌓아 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악해지는 증거입니다. 즉 밤이 깊어지는 증거입니다. 밤이 깊어지면 그 다음에는 샛별이 올라오고, 아침이 옵니다. 아침이 가까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는 것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라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 되겠습니까? 어두움의 일을 그냥 가지고 낮에 나갈 수 없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고 나가야 됩니다. 어두움의 일이란 죄악의 일을 말합니다. 빛의 갑옷은 의와 신실과 성결 등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으므로, 즉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으므로 어두움의 일을 다 벗어 놓아야 합니다. 이제는 낮이 가까
운 때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두움의 일은 죄악의 일이며, 빛의 갑옷은 영적 무장입니다. 즉 죄악의 일은 벗고, 영적 무장을 해서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모든 것을 이기고, 주님 앞에 서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본문 13절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모두여섯 가지로 방탕과 술 취하는 것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음란과 호색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쟁투와 시기를 하나로 묶어 놓았는데 이것을 하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거나 하나님의 심판이 오면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탕과 술 취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술은 조금만 먹어도 안 됩니다.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여, 석 잔은 괜찮다고
하지만 한 잔부터 취하는 것이므로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한 잔에도 취하지 않는다면 백 잔에도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는 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술 마시는 사람은 회개하여야겠습니다. 또 담배 피우는 것도 다 회개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또 이 세상에 취하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세상에 취하는 것이 술 취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 음녀의 포도주에 취했다고 하였는데, 음녀의 포도주가 이 세상주의입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컴퓨터에 취하여 자유방종, 노라리 하는데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됩니다. 온 세계가 지금 다 방탕과 술 취하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방탕과 술 취하는 것이 가득 들어왔습니다. 음란, 방탕에 도취가 되면 믿음은 껍데기만 남습니다. 이 세상의 방탕에 취하면 교회에 나와도 그것은 믿음은 다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나온 것입니다. 벌써 알맹이는 방탕과 술 취함에 다 가 있는데, 어떻게 믿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의 방탕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적 문제 즉 이성 문제입니다. 호색이라는 것은 이성 간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요새 어떤 국회의원이 술 마시다가 어떤 여자를 한 번 만져봤다고 해서 지금 망신을 당하는데, 다른 국회의원들은 여자를 한번도 안 만져보았을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서 치라고 하면 다 돌을 못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음란, 방탕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이 다 그런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방탕과 술 취하는 것, 음란과 호색하는 것에서 멀리 떠나라는 것입니다. 아예 이성 문제는 멀리 떠나서, 이성이 없는 것처럼 대하여야 합니다. 즉 이성 문제를 완전히 떠나야 됩니다. 그것을 떠나야만 깨어있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쟁투는 싸우지 말라는 말이며, 시기는 질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 잘 되는 것을 배가 아파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질투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어떤 남자는 자기 부인이 다른 남자하고 이야기하면, 그 날 밤에 질투해서 싸운다고 합니다. 또 어떤 여자는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면 또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죄짓는 것입니다. 이야기할 수도 있지 왜 이야기를 못합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질투하는 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을 입으라
본문 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입으면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옷을 입으면 성도의 의로운 행실이 나타납니다. 세마포는 성도의 의로운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의로운 행실과 사랑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여야 예수님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옷을 입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거룩한 것이 예수님의 옷이며,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그 다음에 진실한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언제나 성도는 양심을 똑바로 써야 됩니다. 즉 진실해야 됩니다. 거짓말 하고, 속이고, 진실하지 못한 것은 마귀의 옷입니다. 또 외식하는 것도 마귀의 옷입니다. 양심 안 쓰는 것도 마귀의 옷입니다. 신앙 양심을 쓰는 것은 예수님의 옷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진실하여야 하고, 의로워야 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용납, 긍휼, 자비 등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육신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그리스도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사는 자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빌립보 1:21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며, 주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사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영으로 살면서 영으로 항상 기뻐하는 생활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잘 될 때에만 감사하지 말고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감사해야 됩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환난과 핍박을 주시므로 감사해야 됩니다. 무엇을 또 더 많이 주시려고 하나님이 또 이렇게 주시는가? 하며 범사를 감사로 통과하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통과하면 그것은 마귀의 옷입니다. 또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무슨 시험이 닥쳤을 때에,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예수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많이 입어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옷을 많이 입으려고 힘을 써야 되고, 어두움을 일을 벗어 버리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옷을 입어 나가며, 예수님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다. 또 환난이 들어와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는데 예수님의 옷을 입고 나아가야 됩니다. 예수님의 옷을 잘 입고 하나님 앞에 가면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것은 야고보 4장에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4:13-17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습니다.세상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장사하여 돈 좀 생기면 은행에 넣을까? 증권을 살까? 또 무엇을 살까? 하는 사람이 세상 일을 도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는 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우리가 어디에 가서 진리의 말씀을 좀 배우고, 기도하여 은혜를 받고 우리의 영이 살아야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돈이 좀 생기면, 이것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로 쓸까? 하며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 일을 도모 하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디에 가서 진리의 말씀을 좀 더 배울 수 있을까? 바른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 데가 있다면 아무리 멀어도 “나는 따라간다”하는 것이 믿는 일을 도모하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진리의 말씀을 배우려고 몇 십리씩 걸어가서 배웠습니다. 저녁 먹고 한 십 오리의 거리를 한 시간 반, 또는 두 시간 걸려서 걸어가 사경회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십 오리쯤 걸어와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 또 가서 참여하곤 하였습니다.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걸어가서 예배 시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박천에서 사경회를 할 때에는 한 오십 리쯤의 거리인데 그곳은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어가서 기차를 타고, 내려서, 또 얼마를 걸어가서 또 박천 강
을 건너야 합니다. 박천 강을 건널 때에 얼음이 살얼음이었는데, 배도 못 다니고 걸어가려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발자국을 뗄 때마다 “빠짝, 빠짝” 합니다.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가는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는 왜정 말단에 덕소에 살았는데 거기서 칠십리를 걸어서 아현교회에 와서 김현봉 목사님께 은혜 받고 또 걸어가곤 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바르게 배우고, 어떻게 하여야만 내 영이 살겠는가? 하며 백사제지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일을 도모하는 사람이고, 그것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여야만 돈 좀 벌수 있을까? 어떻게 하여야만 좀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려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세가 다 되었는데, 즉 저녁 때가 다 되어 해가 조금씩 지는데, 해진 다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육신의 일은 해가 지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바로 알고,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즉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자는 것은 무엇이 자는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육신 중심으로 살고, 세상 중심으로 사는 것이 자는 것입니다. 깨는 것은 영적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생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사는 생활, 이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또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믿는 일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기를 잘 분별하여 믿는 일에 힘쓰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준비를 잘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