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성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성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에스겔 40:1-49 성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전
에스겔 40:1-49

1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오 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사 년 정월 십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3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 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 4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하더라 5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
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 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 6그가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요 그 문 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 7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 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문이 있으며 8그가 또 안문의 현관을 척량하니 한 장대며 9안문의 현관을 또 척량하니 팔 척이요 그 문벽은 이 척이라 그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으며 10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그 셋이 각각 한 척수요 그 좌우편 벽도 다 한 척수며 11또 그 문통을 척량하니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십삼 척이며 12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이편 퇴도 일 척이요 저편 퇴도 일 척이며 그 방은 이편도 육 척이요 저편도 육 척이며 13그가 그 문간을 척량하니 이 방 지붕가에서 저 방 지붕 가까지 광이 이십오 척인데 방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 14그가 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이십 척이요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15바깥 문통에서부터 안문 현관 앞까지 오십 척이며 16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 안 좌우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 17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18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19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 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 척이며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 20그가 바깥뜰 북향한 문간의 장광을 척량하니 21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척량한 문간과 같으며 22그 창과 현관의 장광과 종려나무가 다 동향한 문간과 같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23안뜰에도 북편 문간과 동편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 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24그가 또 나를 이끌고 남으로 간 즉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척량하니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25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26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27안뜰에도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28그가 나를 데리고 그 남문으로 말미암아 안뜰에 들어가서 그 남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29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도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0그 사면 현관의 장은 이십오 척이요 광은 오 척이며 31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2그가 나를 데리고 안뜰 동편으로 가서 그 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33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4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5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에 이르러 척량하니 척수는 36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다 그러하여 그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7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8그 문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39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40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41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 42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일 척 반이요 광이 일 척 반이요 고가 일 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43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넒이 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 44안 문안 안 뜰에는 방 둘이 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으로 향하였더라 45그가 내게 이르되 남향한 이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 들의 쓸 것이요 46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 47그가 또 그 뜰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광
이 일백 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전 앞에 있더라 48그가 나를 데리고 전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척량하니 광이 이편도 오척이요 저편도 오 척이며 두께가 문 이편도 삼 척이요 문 저편도 삼척이며 49그 현관의 광은 이십 척이요 장은 십일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편에 있고 하나는 저편에 있더라

1. 이상 중에 성읍 형상 같은 것을 보여주심

본문 1절에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오 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사 년 정월 십 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십 오 년’은 에스겔이 바벨론에 제2차 포로로 잡혀간 때로부터 25년 뒤를 말합니다. 에스겔이 사로잡힌 지 11년 만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고, 그 후 14년이 지나서 정월 십 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라고 하였는데,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 있는 중에 이스라엘 땅으로 간 것은 영으로 간 것입니다. 마음으로 간 것이고, 몸은 바벨론에 있습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극히 높은 산’은 신령한 시온 산을 가리킵니다(욜 2:32; 히 12:22). 우리가 날마다 영적 시온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는 것은 시온성과 같은 교회라고 하였는데, 성도의 영적 생활, 교회 생활을 가리킵니다. 또 성전의 규모가 성읍같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과 신약시대에 교회와 신령한 이스라엘이 건설될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3절에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 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놋은 견고함과 공의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손에는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삼 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목수들이 건축할 때 쓰는 먹줄과 자와 같은 것들입니다. 삼 줄은 넓은 공간을 재기 위한 것이고, 장대는 짧은 공간을 재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4절에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그 확실한 진리를 모든 백성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령한 세계를 확실히 알고 전해야 합니다.

2. 성전 바깥뜰과 문 입구의 모든 것

본문 5절에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 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라고 하였습니다.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담입니다. 즉, 세상의 속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속된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혼합해나가면 신령한 성전이 건축되어 나갈 수 없습니다. 에스겔 42장 20절에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더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영적 생활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담을 쌓고 속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담을 다 무너뜨려서 속된 것이 성도 안에 들어오게 하면 안 됩니다.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담으로 막아놓고, 깨끗하고 신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장대가 얼마라고 하였습니까?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라고 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까지입니다(45cm). 그런데 여기는 손바닥 넓이를 더한 자입니다. 장대의 길이는 육 척(6규빗)입니다. 담의 두께와 고는 한 장대이므로, 6규빗이 됩니다. 또 고도 한 장대입니다. 즉, 담 두께가 여섯 자입니
다. 담을 이렇게 두껍게 쌓은 것은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성도가 은밀한 생활을 해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견고한 담을 쌓아서 더러운 것과 죄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은밀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령한 성전이고 이상적인 성전입니다. 또 이러한 생활을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가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요 그 문 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라고 하였습니다. ‘동향한 문’은 동문으로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문통’은 문지방으로 문 전체를 가리킵니다. 문통과 문 안통이 한 장대로 같습니다.

본문 7절에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 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문이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복도 좌우편에 세 개씩 문지기 방이 있습니다. 문지기 방들은 성전을 경비하는 레위인들이 거처하는 방들입니다. 문지기 방들의 척수는 장광이 한 장대씩이고, 매 방 사이 벽은 오 척씩입니다. 오척은 2.65m입니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을 오 척으로 두껍게 한 것은 그 방을 은밀하게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벽이 얇으면 서로 말이 통할 것 아닙니까?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문지기는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을 살피고, 성전 안팎을 청소하며, 악한 자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직책입니
다. 하나님의 문지기로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그가 또 안문의 현관을 척량하니 한 장대며 안문의 현관을 또 척량하니 팔 척이요 그 문벽은 이 척이라 그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안문의 현관의 치수가 8절과 9절이 서로 다른데, 8절은 현관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잰 길이이고, 9절에서 팔 척이라는 것은 바깥뜰로 들어가는 중간에 있는 안문 벽의 길이 2규빗을 합한 치수입니다. 그 문벽은 이 척이고,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그 셋이 각각 한 척수요 그 좌우편 벽도 다 한 척수며 또 그 문통을 척량하니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십삼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동문간’은 문통과 안 문통 사이를 가리킵니다. 그 사이 좌우편에 문지기 방이 셋씩 있고, 문지기는 6명입니다. ‘문통’은 문간의 통로로, 광(폭)이 10척으로 5.3m이고, 장(길이)가 13척으로 6.9m입니다. 이 문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요 10:1-18). 성도가 예수님을 통하여 신령한 영적 성전에 들어갈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12절에 “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이편 퇴도 일 척이요 저편 퇴도 일 척이며 그 방은 이편도 육 척이요 저편도 육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퇴’는 난간으로, 문지기가 감시하는 곳입니다.

본문 13절에 “그가 그 문간을 척량하니 이 방 지붕 가에서 저 방 지붕 가까지 광이 이십오 척인데 방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문간을 척량하니 광이 25척이라고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문간의 넓이가 25척인 것은 성도 간에 거리를 너무 가까이 해도 안 되고 너무 멀리 해도 안 되며, 척수에 맞추어 거리를 바로 두고 살아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또 방문은 서로 반대가 되게 했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 이야기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주 보고 있으면 이야기하느라 기도가 되겠습니까? 성도가 사랑은 해야 되겠지만,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 기도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의지하지 말고 반대되게 앉아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향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4-16절에 “그가 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이십 척이요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바깥 문통에서부터 안문 현관 앞까지 오십 척이며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 안 좌우편에 있는 벽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고 하였습니다. 문지기의 방들이 있는데, 거기에 창이 있습니다. 창은 빛을 받아들이는 곳인데, 교회는 성경으로 밝혀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와 영감으로 밝혀나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 빛인 성경말씀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간문벽’은 안문 벽을 가리키는데, 그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데, 신령한 성전은 승리함으로 써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벽 위에는 무엇을 새겼다고 했습니까? 종려나무를 새겼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승리의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본문 17-19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 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 척이며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천사가 에스겔에게 보여 준 이상적인 성전인 동시에 영적 성전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바깥뜰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박석 깔린 땅’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요새로 말하면 타일을 깔아놓은 것과 같습니다. 타일을 깔아놓으면 깨끗하고, 흙이 묻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성전 생활은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깨끗한 발걸음으로 해야 합니다. 즉,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발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더러운 것을 묻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박석 깔린 땅을 밟고 다니는 것처럼 더러운 것이 묻지 않는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전 바깥들에만 왔다 갔다 하는 성도가 있고,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전 밖 마당만 밟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멀찌감치 쳐다보며 돌아다니는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는 이방 사람들에게 내어주었
다고 하였습니다(계 11:1-2).

본문 20-22절에 “그가 바깥뜰 북향한 문간의 장광을 척량하니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척량한 문간과 같으며 그 창과 현관의 장, 광과 종려나무가 다 동향한 문간과 같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문간을 척량하니 장이 오십 척, 광은 이십 오 척입니다. 그 다음에 ‘창과 현관의 장, 광과 종려나무가 다 동향한 문간과 같으며’라고 하였는데, 척수가 다 같다는 것입니다. 이쪽으로 가나 저쪽으로 가나 문간이 같습니다. 동문간이나 북문간이나 척수가 다 같고, 문지기 방, 벽, 현관, 창의 척수가 같습니다. 척수가 모두 같다는 것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은 다 같다는 뜻입니다. 신령한 성전에서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다 같습니다. 척수가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 또 영적 성전 생활을 하는 길은 모두 척수가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같이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하고, 같은 신앙을 지켜야 하며,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종려나무를 새겼다고 하였는데, 종려나무는 승리 생활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항상 어디에 가나 죄와 싸워 이기는 승리의 생활, 마귀와 싸워 이기는 승리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층계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곱 층계’는 점점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즉, 일곱 층계는 신령한 영적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1계단에서 2계단으로, 2계단에서 3계단으로, 점점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의 계단이 점점 올라가야지, 늘 아래 계단에만 있으면 안 됩니다. 1계단에서 2계단으로 올라가야 하고, 2계단에서 3계단으로 올라가야 하고, 4계단에서 5계단으로, 5계단에서 6계단으로, 7계단에서 8계단으로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지 못하고, 항상 그 아래만 있으면 안됩니다.

본문 23-24절에 “안뜰에도 북편 문간과 동편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그가 또 나를 이끌고 남으로 간즉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척량하니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라고 하였습니다.
동편 문간, 남편 문간, 북편 문간 다 척수가 같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동서남북 어디서 섬기든지 같고, 어떤 방향으로 들어가든지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방향은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 오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창도 같습니다. 성전에 창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의 빛을 항상 비추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진리와 영감의 빛을 언제나 비추는 생활을 해야지, 캄캄한 흑암 속에서 살면 안됩니다.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진리와 영감의 빛이 우리의 심령 속에 항상 있어서 그 빛을 내보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층계가 있다는 것은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는 성도가 승리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을 뜻합니다.

3. 성전 안뜰과 문 입구의 모든 것

본문 27-31절에 “안뜰에도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남문으로 말미암아 안뜰에 들어가서 그 남 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 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도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사면 현관의 장은 이십 오 척이요 광은 오 척이며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안뜰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은 바깥문과 구조, 크기, 장식까지도 모두 같습니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서 사방에 있는 모든 인류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문으로 가려면 여덟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또 문 벽에 종려나무를 새겼습니다. 어디에 가나 종려나무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북쪽에서도 승리, 남쪽에서도 승리, 항상 승리 생활을 해야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문으로 가려면 여덟 계단을 올라서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일곱 계단보다 더 올라가는, 즉 더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총 계단의 수는 바깥뜰 7개와 안뜰 8개를 합하여 모두 15개입니다.

본문 32-37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안뜰 동편으로 가서 그 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방과 벽과 현관이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에 이르러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 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다 그러하여 그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동편 문간 척수와 북편 문간의 척수가 같고, 문지기의 방과 벽과 현관과 창의 척수도 같습니다. 또 언제나 창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성전에는 어디로 들어가든지 다 같은 방법과 진리로 들어가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항상 진리와 영감의 빛이 우리 속에 있어서 언제나 밝혀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또 이편, 저편 벽에도 종려나무를 그렸습니다. 언제나 승리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전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하는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찾아갈 때에 성전 밖 마당만 밟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승리의 생활을 하라는 것과 진리와 영감의 빛이 있어야 할 것을 늘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본문 38-39절에 “그 문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문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성문 저편에 상 둘이 있는데, 그 위는 번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을 잡는 곳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항상 속죄제와 번제와 속건제를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제물로 드린 소나 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제물이 되실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늘 감사하여야겠습니다.

본문 40-41절에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문 곁 한 편에 상 넷씩, 양편에 여덟 개의 상은 희생을 잡는 곳으로, 성막과 솔로몬 성전에는 없는 곳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성도들이 많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주신 희생이 고귀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남쪽에 상이 넷씩, 여덟 개가 있습니다.

본문 42절에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일 척 반이요 광이 일 척 반이요 고가 일 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번제에 쓰는 상의 길이가 일 척 반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척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에 손바닥 하나를 더한 길이로, 약 2자입니다.
그러므로 일 척 반은 약 3자 정도 됩니다. 번제에 쓰는 상이 넷이 있는데, 각 사방의 길이가 3자이고, 높이는 2자입니다. 또 다듬은 돌이 네 개 있는데, 그 위에는 제사하는 기구를 놓았습니다. 제사하는 기구도 거룩한 상에 놓았다가 사용하였습니다.

본문 43절에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갈고리는 희생제를 드리기 위하여 동물을 죽이거나 관련한 준비를 할 때에 그것을 매달아놓기 위한 것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실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44-46절에 “안 문안 안 뜰에는 방 둘이 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으로 향하였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남향한 이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요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안뜰에 방이 둘 있습니다. 남향한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이 쓰고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이 쓰는데, 특별히 사독의 자손이 사용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수종드는 일은 원래 아론의 후손들에게 맡겨진 것이었으나,
다윗 왕 때에 와서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 계열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 계열로 제사장의 직무가 양분되었습니다. 그 후에 솔로몬 왕은 아도니야를 도와 반역에 공모한 아비아달 제사장을 폐하고, 사독과 그 자손만이 제사장 직무를 담당케 하였습니다(왕상 1:7-8,2:26-27). 사독의 자손은 변절함이 없이 끝까지 충성한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로 제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제단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북향한 방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제단이 북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북쪽에 하나님의 제단이 있기 때문에 제단을 사용하는 방은 북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단을 볼 수있습니다. 우리가 성전과 제단을 잘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하고, 언제나 제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사독의 자손처럼 하나님께 끝까지 변함이 없이 충성하여야 합니다.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의 위치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의 위치가 서로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 사독의 자손을 특별히 기록한 것은 하늘나라에 가도 반열이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계 7:4-8). 신앙 생활을 잘하고 믿음을 지킨 반열대로입니다. 믿음 지킨 반열대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그 진리의 말씀을 지킨 그대로 하늘나라에 가면 각각 자기 반열이 있습니다.

본문 47절에 “그가 또 그 뜰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광이 일백 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전 앞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밖에 뜰이 있는데, 뜰의 장광은 일백 척으로 네모 반듯합니다. 제단은 마당에 있습니다. 여기서 희생의 제물을 태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고, 또 우리도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롬 12:1).

4. 성전 현관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

본문 48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척량하니 광이 이편도 오 척이요 저편도 오 척이며 두께가 문 이편도 삼 척이요 문 저편도 삼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현관벽을 척량하였는데, 광이 이편도 오 척 저편도 오 척이고, 두께는 이편도 삼 척 저편도 삼 척입니다. 상당히 두껍게 해놓았습니다. 삼척이면 1m 80cm 정도입니다. 보통 규빗은 팔꿈치부터 손끝까지인데 이를 50cm로 보고, 척은 규빗보다 손바닥 하나를 더한 것으로 한10cm를 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자는 60cm 정도 되는 것입니다.
벽을 두껍게 한 이유는 바깥과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얇으면 소리가 들려올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 소리가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소리가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 앞에 바른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시장이 왔다 갔다 하고, 집이 왔다 갔다 하고, 기도원도 왔다 갔다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벽을 두껍게 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은밀한 골방을 만들어서 세상 것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49절에 “그 현관의 광은 이십 척이요 장은 십 일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편에 있고 하나는 저편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현관의 장은 십 일 척이라고 하였는데,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요 10: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야만 신령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소에 올라가는 층계는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할 때에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문벽 곁에는 기둥 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7장 21-22절에 “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그 두 기둥 꼭대기에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역이 마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성전 앞에도 큰 기둥 둘을 세웠습니다. 큰 기둥 우편의 이름은 야긴, 좌편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성전의 두 개의 기둥은 신약시대 하나님의 교회에도 기둥이 될 만한 사람들이 있을 것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2장 9절에 보면 초대교회 때에는 야보고, 게바, 요한이 기둥입니다. 기둥은 신앙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건들건들하면서 성전을 넘어뜨리면 기둥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리 풍파가 오고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견고하게 서서 성전 기둥의 역할을 잘해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