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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일 일요일

베드로후서 3:1-18 재림 준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재림 준비
베드로후서 3:1-18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3: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두 번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니 이것들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고, 

3:2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한 말씀들과 너희의 사도들이 전한 주님 되신 구주의 계명을 기억나게 하려 한다. 

3:3 너희는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신들의 정욕대로 행하고 조롱하며, 

3:4 말하기를 "그가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후로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이렇게 그대로 있다." 할 것이다. 

3:5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옛적부터 있었고 땅은 물에서 나와 물로 형성된 것과, 

3:6 그때 세상은 물이 넘쳐서 물로 망하였다는 것을 일부러 잊으려 한다. 

3:7 그러나 지금의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해 동일한 말씀으로 간수되어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된 것이다.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마라. 

3:9 약속의 주님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너희를 위하여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3:10 그러나 주님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이다. 그때에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서 풀어지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들이 드러날 것이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질 것이니,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여라. 그날에 하늘들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 버릴 것이다. 

3: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도록 힘써라. 

3:15 또한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겨라.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가 받은 지혜를 따라 이와 같이 너희에게 썼다. 

3:16 그가 모든 편지에서 이것들에 관하여 말하였는데,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이것들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있다. 

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미 알고 있으니, 불의한 자들의 속임수에 이끌려 너희의 견고함을 잃지않도록 조심하여라. 

3:18 오직 우리 주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분께 있을지어다. 아멘.


1. 예언기억

본문 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첫 번째 썼던 편지는 베드로전서이고 두 번째 쓴 편지는 오늘 본문인 베드로후서 입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곧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의 진실한 심령을 일깨워서 살려내고 하나님께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말씀을 기억할 것

본문 2절에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라고했습니다. 예언을 기억하라고 했는데 첫째는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한 말씀을 기억하는 것과 둘째는 사도들을 통해서 예언한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기억해야할 것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많은 예언을 했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서에 보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습니다. 다니엘7:13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라고 했습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11:1-4절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또한 미가서 4:1-2에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라고 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들의 꼭대기에 임하여 굳게 설 것’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세상 나라들 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예수님의 재림, 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한 것이 여러 선지서에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특별히 다니엘 2장은 사람이 손대지 않은 뜨인 돌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우상을 다 깨뜨리고 그 돌이 점점 커져 태산같아졌다가 천하에 가득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고 예언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수님의 재림, 하나님 나라 건설, 심판을 다 예언을 했는데 이 예언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말하고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시고 세상 나라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고 기억하고 나가야합니다.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할 것

두 번째로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것을 많이 예언을 했습니다. 특별히 바울선생과 베드로 같은 분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많이 예언을 했고, 사도요한 또한 요한계시록에 통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마태, 마가, 누가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과 말세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우리들은 사도들이 예언한 말씀을 언제나 기억해서 그 예언한 대로 될 것을 믿어야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는 것, 세상 나라가 심판 받는다는 것, 영원한 성도의 나라가 건설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의 사도들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 세상나라 심판, 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해 예언한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반드시 될 것을 믿고 나가야합니다.


2. 재림 기롱(再臨 欺弄)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많이 나옴

본문 3절에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알아야 될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많이 나오고 자기 정욕을 좇는 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정욕을 좇아 행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인본주의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 진리와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심판을 다 기롱한다 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믿지 않고 그런 것들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는 다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말세에는 많이 나오고 또 교회 안에서도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것도 기롱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또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 신학교 교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고 정욕에 휩싸여 인간의 생각과 지혜대로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러한 자들이 본문 말씀처럼 말세에 많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재림을 기롱하고 성경의 예언을 기롱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알아야합니다.

본문 4절에,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신학자들은 말씀처럼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창조를 믿기는 하지만 완전히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진화시켜서 지금의 모양을 갖추었다라고 믿는 유신진화론을 주장합니다. 또한 자연주의 신학도 자연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만들어서 됐다고 믿지만 그 중심에는 진화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목사들 가운데 많다는 것입니다.


3. 재림의 확실성

천지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됨

본문 5절에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땅이 물에서 나와서 물로 성립됐다는 말씀은 창조할 때 윗물과 아랫물을 나누어서 창조한 것을 가리킵니다. ‘물로 성립됐다’는 뜻은 헬라어 ‘디 휘다토스’라는 말로서 물을 통과해서 성립됐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물에서 땅이 나왔다, 물을 통과해서 땅이 성립됐다’는 의미로 물과 땅이 섞여 있던 것을 하나님께서 윗물과 아랫물을 갈라놨고 물을 통과해서 위에 있는 물은 구름이 되고 아래에 있는 물은 바다가 됨을 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땅이 드러나게 창조하신 것을 이 사람들은 잊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된 것을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땅이 물에서 나와서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물이 땅에 섞여있었지만 말씀으로 윗물은 위로 올라가고 아랫물은 아래로 모이고, 육지가 생기고 하늘에 구름이 생기고 바다가 생긴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권세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부러 잊어버리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물심판도 하나님 말씀으로 됨

본문 6절에,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라고 했습니다.
물이 넘침으로 세상이 멸망한 것은 노아의 홍수를 말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면 이 세상을 다 물에 잠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만능입니다. 그것을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신 것인데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얼마나 땅에 비가 왔기에 이 세상 산들이 다 잠겼느냐고 반문하며 안 믿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된 것이며 사도들의 예언대로 된 것이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창조되었고,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심판도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러한 것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말씀을 믿지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다 믿습니다. 말씀으로 노아 홍수가 임한 것도 믿고 이것이 심판이라는 것도 믿습니다. 성경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불 심판이 임함

본문 7절에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마지막 날까지 보존된다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불 심판이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는 물심판이 있었지만 세상 마지막에는 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초자연적인 불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한 것과 같이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져 내려와서 멸망시킬 수 있고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 놓은 핵무기들을 통해 이 세상을 심판 하실 수도 있지만 정확한 것은 불 심판은 반드시 임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핵무기가 제조되었고 부패한 인간들이 싸우다보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잿더미로 변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불 심판을 하실지 모르지만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4. 재림의 시기와 형편

회개하여 멸망 받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본문 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씀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를 기다리는 것처럼 천년만큼이나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은 심판을 참으시길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금년이 주후 2000년이 되는 해인데 2000년 참았으니 며칠 참으신 것입니까? 이틀 참으신 것입니다. ‘재림한다, 재림한다 하면서 왜 재림 안 하느냐?’, ‘심판한다, 심판한다 해 놓고 왜 심판 안 하느냐?’ 이런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을 예수님께서 이틀을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을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루를 천년과 같이 참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기다리는 것을 천년 기다리는 것처럼 이렇게 기다리는 계십니다. 좋은 일이 생길 때 하루를 열흘과 같이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하루를 한 달처럼 일 년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하루 기다리신다는 것은 천 년만큼 이때나 저때나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이나 간절히 사모함으로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우리가 다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하루가 천년 같이 기다리시고, 또 불경건한 자를 심판하기를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아주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끝이 있습니다. 내내 참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끝이 되면 심판의 불이 쏟아집니다. 연, 월, 일시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9:15에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라고 했습니다.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
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정해 놨다고 했습니다. 그 년 월 일 시는 하나님께서 예정한 날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해, 예정한 달, 예정한 시간이 되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때가 반드시 옵니다.

오래 참아주시는 하나님

본문 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는 게 분명합니다. 주의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니라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아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시려고 이렇게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아준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5절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래 참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까지 멸망하지 않고 이 구원에 이르게 됐습니다. 참아주지 않으시고 심판했다면 벌써 다 망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한 100년 전에 하나님이 심판했다면 우리는 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한 500년 전에 심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오래 참으면서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에 이른 줄을 알아야합니다. 그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고 가만히 놔둡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인데 아주 잘못 나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고 그냥 두실까요? 당장에 벌을 줘서 심판하면 못된 짓 안 할 텐데 왜 그냥 두는 것일까요? 우리가 괜찮아서 그냥 두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자 해도 좀 참아 주는 것입니다. ‘조금 있다하자, 조금 있다하자’하고 좀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잘못할 때 즉시 벌하신다면 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지금도 참아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합니다.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며 심판을 참고 계십니다.

심판은 반드시 임함

그러나 악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성경에 위반된 모든 일들, 믿는 일 안 하고 불신앙으로 나가는 일들, 또 교회 손해 주는 일들, 교역자에게 손해 주는 일들, 믿음을 떠나서 인본주의로 나가는 일들, 이 모든 것들은 100% 다 심판하십니다. 단지 심판하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장 오늘 심판 해야겠지만 조금 기다렸다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또 하루 종일 회개하기를 기다리셔서 천년과 같이 기다리십니다.
그러다가 그 년 월 일 시가 오면 하나님께서 심판 하십니다. 그래서 심판 받을 일을 한 사람들의 심판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잘 될 것 같아도 절대 잘되지 못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며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재림주다, 감람나무다, 사도다, 천사가 함께한다 등등 여러 말로 사람을 속입니다.

김기동씨처럼 모든 병은 다 귀신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귀신만 내쫓으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재록씨 같은 사람은 천사를 자기가 움직인다 하면서 ‘자기 피는 새 피를 받아 죄가 없다’, ‘천사를 동원시킬 수 있다’, ‘자기가 짠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다’ 는 등 사람을 미혹시키는 온갖 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을 속여도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년 월 일 시에 가서는 반드시 심판 받기 때문에 양심을 똑바로 써야 됩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바로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을 어긴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 뽑아내십니다. 가라지와 같이 넘어지게 하는 것, 불법적인 요소들을 다 뽑아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 의를 행한 그 의로운 자녀들만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 심판은 정해 놓은 것입니다. 지금 신복음주의, 신 신학, 빈야드 운동 등 잘못된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빈야드 운동이라는 것이 있는데 복음성가를 한참동안 열광적으로 부르다가 그 책임자가 나가서 손을 들면 사람들이 뒤로 넘어진다고 합니다. 뒤로 넘어지게되면 머리가 다칠 수 있으므로 머리 또 받쳐주는 사람이 있고 또 치마를 입은 여성들을 위해 넘어지면 담요를 갖고 나와 덮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넘어졌을 때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합니다.

이상한 세계에 가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돼지 소리, 승냥이 소리, 개소리, 미치광이처럼 웃는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신기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런 것에 이끌려 많은 사람이 모이고 연보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책임자가 다 재물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마귀의 장난인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 안에 별별 것들이 다 들어온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면 이런 것들은 다 없어지겠는데 하나님이 심판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 월 일 시에 가서는 이것들을 심판해서 다 치우십니다. 성경에 탈선된 운동들은 전부 심판이 정해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탈선된 모든 행동들은 전부 하나님의 심판에 정해놓은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양심을 쓰지 않고 성경을 어기고 나가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주일 안 지키는 것, 십일조 안 드리는 것, 믿음 안 쓰고 믿음을 배반하는 것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또한 우상에 제사 하는 것, 우상의 제물 먹고 추도 예배하는 것 모두 다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주고 교역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일 하는데 방해하고 하나님의 진리운동에 협조하지 않는 것들을 전부 가차 없이 심판하십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함

본문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과 같이 갑자기 옵니다. 주의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이고 하나님이 심판하는 날인데 도적과 같이 갑자기 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3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도적이 어떤 통지하고 옵니까?
예수님의 재림하는 날이 갑자기 도적과 같이 온다는 말입니다. 오늘이라도 올지 모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3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참 잘 표현된 말씀입니다. 잉태된 여자에게는 정해진 해산의 날짜가 있는데 해산의 고통이 갑자기 오는 것처럼 심판의 날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잉태된 여자가 해산할 생각을 안 하고 해산이 멀었다고 하면서 방심하고 길에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길에서 낳은 아기이름이 길동이인 것입니다. 또한 화장실에 가서 낳아서 보따리에 싸가지고 왔다고 해서 ‘보또리’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갑자기 오는 것입니다.

해산 고통이 임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갑자기 온다고 하셨는데 임산부들이 해산을 잘 할 수 있을까? 또 못 낳지는 않을까?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해산의 고통이 오면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느 때처럼 사는 것입니다. 해산하기 전에는 어떻게 아이를 낳을지 많은 걱정을 하지만 낳으면 아이가 태어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나가서 일하며 지내다가도 갑자기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가 나타나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는데 세상이 다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도적과 같이 갑자기 오고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이를 줄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미리 한 열흘 전에 통지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하다 든든하다 하다가 갑자기 해산 고통이 임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으로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또 자던 성도가 다 부활해서 올라가고 또 살아남았던 성도가 변화돼서 올라가고 공중에서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으로 올라갑니다. 마치 자석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5. 재림 준비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

본문 11-13절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온다고 했는데 그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은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할 날 준비는 거룩한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의로운 행실은 세마포라고 했습니다. 경건에 속하여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바로 사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하는 날 사모하기를 신부가 신랑을 영접할 날을 사모하는 것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보면 열 처녀가 신랑을 영접하려고 나가 사모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 재림도 이렇게 사모해야합니다.

의를 이루어 가는 생활

그런데 우리가 준비할 것 몇 가지가 있는데 본문 13절에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먼저 의를 준비해야합니다. 그 날에 의를 가지고 갑니다. 마태 13:41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재림할 때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어 교회를 넘어지게 하는 것, 불법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풀무불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교회에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자라도록 가만히 두다가 마지막 날 곧 심판날에 모두 다 풀무불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마태복음 13:43에 “그때 의인들은 자기 어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의를 이룬 사람은 그 때 해와 같이 빛납니다. 의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에 가는 것은 돈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금이나 은, 보석을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또 무슨 명예 ․영광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의’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할 때 의를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의를 이루어 간다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다 뽑아버리십니다. 성경대로 되지 않은 교회 생활, 성경대로 되지 않은 교회운동들 모두 뽑아서 버리십니다. 교회 운동이 성경대로 되었는지, 신앙생활이 성경대로 되었는지, 교회 설립이 성경대로 되었는지 다 심판 하시고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다 뽑아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의를 이루어 나간 것만 하늘나라에 가서 해와 같이 빛난다는 말입니다. 핍박을 받고 환난을 받아도 진리의 말씀을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의의 말씀을 지켜나간 것들이 하늘에 가면 해와 같이 빛납니다. 하늘나라 갈 때는 의를 가지고 갑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므나 비유가 있는데 한 므나씩 총 10명에게 다같이 나눠줬는데 한 사람은 한 므나 가지고 열 므나 남겼고 또 한 사람은 다섯 므나 남겼고 한 사람은 두 므나 남겼고 한 사람은 한 므나 그대로 가지고 주인 앞에 갔습니다. 그 때 주인이 열 므나 남긴 자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해라.”고 했습니다. 다섯 므나 남긴 자에게는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해라.”고 하셨고 한 므나 남긴 자에게는 하나에 “한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고 하셨습니다. 고을이라 하면 광주군이면 광주군, 시흥군, 양주군, 남양주군 등, 이 세상에서 말씀하나 지키고 의를 하나 이루어 나간 것이 하늘나라 가면 한 군이고, 한 고을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를 열 개 지키면 열 고을 권세이고, 다섯 개 지켰으면 다섯 고을 권세입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에 있어서 의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의를 지키는 것은 말씀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보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 하는 것도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신학교 기숙사 짓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떡하든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하늘나라 가면 의가 해와 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고 믿는 일을 하고 또 사명을 다하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일 하고 물질을 바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야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쌓은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겁니다. 의가 얼마나 이루어졌느냐가 문제이고 의를 얼마나 이루어 나갔느냐가 문제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자라나야합니다. 거룩에서 거룩으로 계속 자라나야합니다. 그렇게 자라나서 올라가야합니다. 세속이 근처도 못 오게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섬기면서 바로 살아야합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준비가 잘 됐습니까? 열 처녀가 신랑 오기를 사모하면서 기름 준비했던 것처럼 사모하는 것과 기름 준비하는 것 둘 다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재림을 사모하고 기름 준비를 잘 하는 신앙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것
본문 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말씀은 여러 곳에 있는데, 이사야 65장에도 있고 또 요한계시록에도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 나라가새로워지는 것을 말한 데가 많습니다. 이사야 65:17절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했고 이전 하늘과 이전 것은 다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고, 20절에서는 “거기는 수한이 차지 못하여 죽는 아이와 노인이 다시 없을 것이고 백세에 나서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라”라고 했으며, 25절에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이 세상을 뜻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고 해 놓고서는 뱀도 있고 사자도 있고 그 다음에 사람이 죽기도 하고 포도농사도 하는 것은 이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이냐 하면, 이전 하늘과 이전 땅이 없어졌다는 것으로, 곧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은 다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의로운 세상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땅덩이
는 어떻게 됐을까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풀어진다고 했는데,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이 다 없어지고 다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세력들이 떠나가고 풀어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 10절 말씀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 땅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땅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물질인데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불심판이 임할 때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져 내려와 이 세상이 다 타서 없어집니다. 그래도 땅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했지만 소돔 고모라 자리가 남아 있는 것을 통해 말세에 불과 유황불이 내려와서 심판할 것을 알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준비할 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거룩한 생활, 또 경건, 의를 이루어나가라고 했습니다. 불의한 것을 다 떠나야 됩니다. 하나님과 의로운 일이라 하면 생명 내어 놓고 달려들어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운동이 의로운 것입니다. 또 신학교 세우는 것이 의로운 일입니다. 또 하나님 일하는 것이 의로운 일입니다. 의를 이루어갈 때, 생명 내놓고 재산 아끼지 않고 연보도 해야 합니다. 의로운 일에 쓰는 것은 하늘나라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쌓아놓은 것은 남아있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의로운 일에 쓴 것은 영원히 의가 되어서 남아있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자기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점과 흠 없는 모습으로 기다릴 것

본문 14절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라고 했습니다. 주 앞에서 흠과 점 없이 생활해야합니다. 신부가 결혼식장에 나갈 때 얼굴에 새까맣게 먹칠을 했거나 어떤 흠과 점 있는 모습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부의 얼굴에 뭐가 묻어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다 닦아내야 됩니다. 신부가 얼굴에 흠과 점 없이 깨끗한 모습으로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흠과 점 없는 모습으로 신랑을
맞이해야겠습니다. 만일 닦지 않고 나갔을 때 신랑이 물어본다면 우리가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다 지워서 깨끗한 모습으로 나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갈 때에는 흠 없이, 점 없이 떳떳한 얼굴로 하나님께 서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제거해서 주님 앞에 서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미혹 받지 말 것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되어서 미혹이 많은데 미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힘써서 성경 아닌 것은 절대로 잘라내 버려야합니다.
성경이 아닌 것은 용납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 들어오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비성경적인 것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곧 마귀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어긋나는 것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미혹에 이끌려 떨어질까 삼가야겠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날 것

본문 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아는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곧 점점 바른 지식, 성경을 바로 이해한 지식, 성경을 바로 배운 지식, 바로 깨달은 지식에서 자라 가야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1-14 불 심판이 임박한 것을 보고 준비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불 심판이 임박한 것을 보고 준비하라
베드로후서 3:1-14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3: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두 번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니 이것들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고, 

3:2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한 말씀들과 너희의 사도들이 전한 주님 되신 구주의 계명을 기억나게 하려 한다. 

3:3 너희는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신들의 정욕대로 행하고 조롱하며, 

3:4 말하기를 "그가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후로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이렇게 그대로 있다." 할 것이다. 

3:5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옛적부터 있었고 땅은 물에서 나와 물로 형성된 것과, 

3:6 그때 세상은 물이 넘쳐서 물로 망하였다는 것을 일부러 잊으려 한다. 

3:7 그러나 지금의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해 동일한 말씀으로 간수되어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된 것이다.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마라. 

3:9 약속의 주님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너희를 위하여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3:10 그러나 주님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이다. 그때에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서 풀어지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들이 드러날 것이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질 것이니,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여라. 그날에 하늘들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 버릴 것이다. 

3: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도록 힘써라. 


1. 예언 기억과 재림 기롱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불심판을 예비해 두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말세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예언한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신약의 사도들이 예언한 말씀이 같습니다. 예언에 사람들이 정욕을 좇아 행하며 말세에는 기롱하는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3장에 보면 음란, 방탕, 호색, 시기, 술 취함, 이렇게 여섯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말세에서는 더욱 그런 죄가 많이 나타납니다.
오늘날의 시대를 바라보면 예언대로 시대가 타락이 되어 정욕대로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여자들이 극도로 사치하고 걸음걸이도 아기족거리며 음란한 눈과 음란한 마음으로 다닌다는 것을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기롱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 있고 예수님의 재림이 어디 있느냐면서 무시한다고 했습니다.


2. 재림의 확실성

본문 5-7절에,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였습니다. 기롱하는 자들은 여전히 부인하며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타락 되고 하나님을 다 떠나는 시대가 될 것을 예언해 놓았습니다. 또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말세에 가서는 그 보존해 둔 것을 하나씩, 하나씩 나타내어서, 그것으로 심판할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말세에 초자연적 불이 내려와서
심판할 수도 있고, 핵무기로 세상을 심판하려고 원자를 보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불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우주가운데 보존해 둔 핵무기인지 모릅니다. 핵을 사람들이 연구해서 하나씩 쌓아놓고있는데 그것으로 심판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 심판이 임박했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하나님께서 불 심판하려고 예비한 것이 이제 다 드러났습니다. 대기권 가운데 예비해 둔 불 심판의 재료가 현실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 여러 나라가 핵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나라가 핵을 준비해두고 있는데 전쟁이 터지면 세계는 다 망하고 맙니다. 멸망한다는 말이 베드로후서 3장에만 다섯 번 있습니다. 여러 나라가 핵을 준비해놓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 세상나라는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표범시대에서 열 뿔 가진 괴상한 짐승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넷째 짐승으로 넘어가는데, 세 번째 짐승인 표범은 아주 아름다운 짐승입니다. 표범에 날개가 넷이 있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를 뜻합니다. 그런데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큰 철 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철 이가 있다는 것은 핵 이가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핵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핵을 이로 삼아서 다른 나라들을 먹어 삼키려고 합니다. 다른 짐승은 철 이가 없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 시대는 지나가고 먹고 부스러뜨리는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3차 대전은 핵전쟁이 올 것입니다. 한번 터졌다 하면 큰일 날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를 스믈 한 번 멸망시킬 만한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이 오래 갈래야 오래 갈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오래 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잠꼬대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점점 타락해가고, 정욕대로 하고 악해지는데 하나님의 심판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오래 못 갑니다. 심판할 도구를 머리에 이고 사는데 어떻게 오래 살겠습니까? 그렇다고 전쟁 안하고 살 수도 없습니다. 부패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오래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하나님은 이런 시대에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3. 재림의 시기와 형편

본문 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하루 사랑하기를 천년 같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을 하루를 천 년만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기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하루가 천 년같이 사랑합니다. 하루 종일 사랑하는 것을 천년 동안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침에도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고, 최고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것은 심판 참아주기를 천년 참아주는 것인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흐릅니다. 하나님은 천년 사랑하는 만큼이나 하루 사랑하는데 다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심판하기를 참아주는 것을 천년 같이 참아줍니다.

본문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심판의 날도 도적같이 오고 예수님의 재림도 도적같이 옵니다. 넷째 짐승이 철 이로 부스러뜨리는 악한 세상이 되고 하나님께서 불 심판을 하실 텐데 그것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멀다 하여 세상에 도취되어 지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 도적같이 올 줄 알아야 합니다.

4. 재림의 준비
본문 11-12절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속이는 사람들은 “괜찮다. 괜찮다. 평안하다. 평안하다”하고 나가지만, 그런 것에 속는 사람이 되면 불쌍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이르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고 생명 길을 걸어 나가야 합니다.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13-14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흠이 있는 사람은 회개하고 고치고, 점 있는 사람은 제거해 버리십시오. 신앙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잘못되고 옳지 않은 것은 다 내어버려야 합니다.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죄짓는 행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흠과 점은 무엇입니까? 흠과 점은 큰 죄는 아니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의 술, 담배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술, 담배가 큰 죄라 할 수 없지만 흠과 점입니다. 또한 서로 남 얘기하고 미워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원망하는 것들이 흠과 점입니다. 그것을 다 고치십시오.
원망, 불평하고 바르지 않는 가르침에 속는 것도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속지 않고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로 판단하고 바른 길을 걸어 나가야 합니다. 경건한 생활, 거룩한 생활,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합시다.

2017년 12월 2일 토요일

베드로후서 2:19-22 도를 알고 저버리는 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도를 알고 저버리는 자
베드로후서 2:19-22

19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20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22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2: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약속하지만, 자신들이 바로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2:20 우리의 주님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이것들에 얽매이고 패배당하면, 그들의 마지막이 처음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2:21 의의 길을 알면서도 자신들에게 전해진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알지 못했던 것이 그들에게 더 나았을 것이다. 

2:22 참된 속담에 "개는 자기가 토한 것으로 되돌아가고, 돼지는 씻었다가 도로 진창 속에서 뒹군다." 라는 말이 그들에게 이루어졌다.


1. 영의 자유대로 살라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

본문 19절에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라고 하였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해방되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필요가 없으며 육체의 자유대로 살아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됩니다(롬 6:16). 베드로전서 2:16에는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5:13에는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후서 2:18에는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라고 하였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하였다고 하면서 육체의 정욕대로 음란으로써 진리를 떠나면 그것은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또 예배시간에도 자유를 준다고 하면서, 누구든지 나와서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찬양하고 싶으면 나와서 찬양하고, 의복도 자유롭게 아무거나 입어 경건치 못한 것은 결국은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신문에 어느 교회에서 율동하는 여자의 사진이 나왔는데, 가슴 한쪽은 다 내어 놓고, 아랫도리는 입긴 입었는데 넓적다리가 다 비추는 의복을 입었습니다. 그것이 자유입니까? 또 교회에서 젊은 남녀들이 노라리 하는 자유가 점점 늘어납니다. 의정부에 천막치고 기도하려고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 “딱따구리”라고 하는 수양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몇 년 전 만해도 사람들이 기도하러 많이 왔었는데 요새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 어디로 가느냐면 바닷가로 갑니다. 산골로 가면 재미가 없으니까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재미로 바닷가로 갑니다. 이성과 교제하는 것에 자유가 있어야 많이 모인다고 하여 자유를 주지만 결국은 점점 타락된 길로 가는데 이것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자유를 준다고 하며 거침없이 죄를 짓고 나가는 것은 결국 죄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유는 영의 자유이어야 합니다.
죄를 이기고 영의 자유를 누리자 자유가 둘입니다. 영의 자유와 육신의 자유입니다. 영의 자유는 진리 안에서 있고 또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영의 자유는 경건한 자유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교회가 타락이 되어 영의 자유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육신의 자유로 기울어집니다. 목사들이 수양관에 가는데, 장기판 40개를 싣고 갔다고 합니다. 이것은 노라리 하러 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면서 영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지, 육신의 자유와 영의 자유 둘 다 누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생각은 육신을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은 서로 대적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5:16-17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
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자유를 누리려면 영의 자유가 없습니다. 또 영의 자유를 누리려면 육신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가운데서 영의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7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진리 안에 있는 자유입니다. 육신의 자유와 반대입니다. 육신의 자유로 나가면 그것은 마귀에게 지는 것이고, 결국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자유로 나가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자유이냐, 육의 자유이냐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자고 할 때에 보디말의 아내와 동침하면 대접을 잘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의 자유이므로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육의 자유를 쓰지 않고 영의 자유를 써서 이겼습니다.

영의 자유, 즉 하나님의 자유를 쓰면 육신의 자유는 거절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자유, 즉 죄짓는 자유를 쓰면 마귀의 종이 되고 마지막에는 멸망합니다. 육신의 자유로 나가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점점 힘들어 집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영의 자유이냐, 육의 자유이냐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자유이고, 성령 안에 있는 자유입니다. 또한 얼마든지 올라가는 자유이고, 향상하고 전진하는 자유이고, 하늘에까지 도달하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자유는 당장 좋은 것 같지만 마귀에게 지는 자유이고, 마귀의 종이 되는 자유이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는 자유입니다. 무슨 자유이냐? 그것을 잘 분별해서 영의 자유대로 나가야겠습니다. 육신의 자유대로 나가면 자유를 준다고 하여도 그것은 마귀의 종이 되는 자유이고, 결국은 멸망하는 자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도를 알고 저버리는 자가 되지 말라

도를 저버리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함

본문 20절에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세상 더러운 것에서, 즉 죄에서 나왔다가 다시 죄 가운데 빠지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2:43-45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 속에 마귀가 들어가면 안 믿는 사람보다 7배나 더 악해집니다. 예수를 잘 믿고 말씀대로 나갈 때에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믿음에서 떠나서 마귀의 종이 되면 7배나 더 악해집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지면 안 됩니다.

마귀를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마귀를 못 이깁니다.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실 때에 세 번 다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마귀가 돌로 떡이 되게 해서 먹으라고 할 때에 무슨 말씀으로 이겼습니까? 신명기 8장에 있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또 천하만국을 보이면서 절하면 다 주겠다고 할 때에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신명기 6장의 말씀으로 또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말씀이 아니면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모르고 죄를 지은 사람보다 알고 죄를 지은 사람은 심판이 더 큼

본문 21-22절에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리라”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받은 후에 그것을 내어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의의 도를 안 후에 그 받은 거룩한 도를 저버리는 것은 그 죄가 더 큽니다. 알지 못하고 매 맞을 일을 행한 자보다 알고 맞을 일을 행한 자가 더 많이 맞는다고 했습니다. 즉, 모르고 지은 것도 죄이고, 알고 지은 것도 죄인데, 모르고 죄를 지은 사람보다 알고 죄를 지은 사람은 심판이 더 큽니다.

누가복음 12:47-48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나 또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즉 100% 순종해야 하는데 99% 순종했다면 그것이 죄입니다. 모르고 하나님의 법을 어겼어도 죄이고, 알고 하나님의 법을 어겼어도 죄입니다. 그러면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과 알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 중에 누가 더 매를 맞겠습니까? 죄인 줄 알고 맞을 일을 행한 사람이 더 매를 많이 맞습니다.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도 매를 맞긴 맞는데 그 사람은 적게 맞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의의 도를 일단 알았으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버리면 형벌이 큽니다. 히브리서 2:1-3에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습니까?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다는 것은 회개했다가 다시 죄가운데 빠지는 것입니다. 즉 토했다는 것은 술, 담배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은 술, 담배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가 다시 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다시는 무엇을 사지 않겠다고 토해 놓았는데, 다시 주일에 사는 것은 토했던 것을 먹는 것입니다. 세상의 오락과 방탕, 방종하는 생활을 다 끊어 버렸는데, 다시 또 살살 들어와 방탕, 방종하는 생활에 빠집니다. 슬롯머신, 카지노를 다 끊어 버렸는데 다시 또 살살 한 번씩 합니다. 화투하는 것도 다 끊어버렸는데, 다시 살살 한 번씩 합니다. 그것이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에 은혜를 받아서 결심하고 나갈 때에는 다 뚝뚝 끊어 버렸습니다. 즉 다 토했습니다. 그런데 또 얼마 안가서 슬슬 타락이 되어 조금씩 다시 합니다. 그것이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은 사람으로, 이런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버렸던 것을 다시 하면 안 됩니다.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고 했는데, 우리가 이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죄악된 것을 버린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돼지가 잘 씻어 깨끗해 졌습니다. 그러나 얼마쯤 나가다가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눕습니다. 죄를 회개하여 다 씻고 새 출발했는데, 다시 구렁텅이에 눕습니다. 즉 인본주의, 세상주의가 잘못된 줄 알면서 거기에 다시 들어갑니다.

성경에 다른 것을 섞으면 더러운 곳으로 돌아가는 것

성경만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성경이외의 것은 안하다가 다시 또 다른 것이 살살 들어옵니다. 성경 말씀 외에 다른 것을 섞는 것은, 즉 인본주의로 나가는 것은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말씀 외에는 절대 다른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가르치지 않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쳤다고 했습니다(고후 2:17).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던 것을 다 버렸는데, 살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이 들어 옵니다. 순수한 성경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가져다 섞었습니다. 그것이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목사가 우리 신학교에서 성경을 배워서 성경대로만 교회를 인도해 나갔습니다. 그 교회 교인수가 약 150-200명 쯤 되었는데, 그 교회가 강남으로 이사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파트 교인들을 잡으려고 성경대로 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섞어서 했습니다. 즉 인본주의를 썼습니다. 교회가 잘될 것 같습니까? 교회가 안 되었습니다. 인본주의를 하려면 아주 인본주의를 하든지, 신비주의를 하려면 아주 신비주의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舊)교인들은 “우리 목사님이 변질되었다”하고 다른 곳으로 떨어져 나갔고, 결국 교회가 잘 안되었습니다. 그 목사가 교회가 안 되니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이민가야 누가 교회를 맡겨 줍니까? 가서 설교가 너무하고 싶어서 “어디에 가서 주일 설교나 한 번 해볼까”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할 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으면 영적 면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일단 잘못된 줄 알고 내버렸으면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본주의와 신비주의를 끌어들이지 말고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인본주의를 쓰는 것은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입니다. 교회가 변질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증거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교회를 세워나가
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섞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섞으면 몇 사람은 모이겠지만 참된 교인은 다 압니다.

누웠던 자리를 집어 치워 다시 눕지 말라

그러므로 토했던 것을 다시 먹지 말고, 또 씻었다가 다시 구덩이에 눕지 말아야 합니다. 씻었다가 왜 다시 구렁텅이에 가서 눕습니까? 돼지가 씻었으면 깨끗하게 살아야지 왜 도로 구덩이로 가서 눕습니까?
거기에 가서 눕는 게 좋아서 눕는 것입니다. 돼지가 밥 먹을 때도 “더더덕”하며 먹는데, 입에 칠하지 않고 살살 먹으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므로 과거에 돼지 노릇하던 자리가 좋아서 다시 가서 눕는 것입니다. 돼지 자리가 좋다고 다시 가서 누우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그래서 38년 된 병자보고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병신 노릇하던 자리를 그냥두면 다시 가서 누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웠던 자리를 다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다시 누울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씻었다가 다시 구덩이에 누울 수 없도록 아예 구덩이를 없애 치워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지 않고, 돼지가 씻었다가 다시 구덩이에 눕지 않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성도가 믿고 회개하여 더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다가 이단으로 넘어가는 것은 씻었다가 다시 구덩이에 들어가고,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이기는 자가 되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입니다. 이겨야 됩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하나님은 이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다 이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자기 가축이 이기는 것을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 주인도 자기 개가 다른 집의 개와 싸워서 지면 이기라고 소고기를 사다 준다고 합니다. 또 닭도 다른 집의 닭하고 싸워서 이겨야 된다고 상당히 좋은 것을 사다 먹여 이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우리가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언제나 이기라고 하십니다. 언제나 승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일단 한번 토해 놓았던 것은 다시 먹지 말아야 합니다. 끊어 버렸던 것을 왜 다시 합니까? 주일에 왜 삽니까? 과거에 전심전력으로 주님만 따라갈 때에는 다 끊어 버리고 나갔는데, 왜 다시 옛날대로 합니까? 다시 계속 달음박질 하여야 합니다. 죄 된 길로 다시 돌아서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십일조 드리던 것을 왜 안 드립니까? 그것은 토했던 것을 다시 먹는 것이고, 씻었다가 다시 구렁텅이에 눕는 것입니다. 제사음식 안 먹다가 왜 다시 제사 음식을 먹습니까? 과거에 잘못된 줄 알고 다 하나씩 정리하고 끊어 버렸던 것인데, 다시 더러운 구렁텅이에 빠질 수 없습니다. 다시 구렁텅이에 눕는 것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베드로후서 2:1-19 거짓 선지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거짓 선지자
베드로후서 2:1-19

1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3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4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 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9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 키시며 10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 자를 훼방 하거니와 11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12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14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17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18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19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으니,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서도 거짓 선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멸망에 이르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이고, 자신을 값주고 사신 주님을 부인하여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불러들인다. 

2:2 많은 이들이 그들의 방탕을 따를 것이니, 그들 때문에 진리의 도가 모독을 받게 될 것이다. 

2:3 그들은 탐욕에 빠져 지어낸 말로 너희에게서 이득을 취할 것이니, 그들에 대한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되지 않았고 그들의 멸망은 잠자고 있지 않다. 

2:4 하나님께서 죄지은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움의 사슬에 묶어 심판 때까지 있게 하셨다. 

2:5 그분께서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세상을 홍수로 덮으실 때, 오직 의의 선포자인 노아의 여덟 식구만 지켜 주셨다. 

2:6 또 그분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성읍들을 심판하시되, 멸망 받아 재가 되게 하셔서, 장차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다. 

2:7 그러나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의로운 롯은 건지셨으니, 

2:8 이 의로운 자가 그들 가운데 살면서 날마다 보고 듣는 무법한 자들의 행위 때문에 그의 의로운 마음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2:9 주께서는 경건한 자들을 시험에서 건져 내시고, 불의한 자들을 심판의 날까지 형벌 아래 가두어 두실 것을 아시니, 

2: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으로 행하는 자들과 권위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하신다. 그들은 대담하고 거만하여 두려움없이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한다. 

2: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님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모욕하는 고발을 하지 않는다. 

2:12 그러나 이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알지 못하는 것들을 모독하다가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니, 

2:13 그들은 불의의 대가로 불의한 일을 당할 것이며, 대낮에 연회로 즐기는 것을 기뻐한다. 이들은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도 자신들의 속임수와 방탕을 즐기니, 오점과 흠이다. 

2:14 그들은 음란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죄 짓기를 쉬지 않으며,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단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받은 자식들이다. 

2:15 그들은 유혹을 받아 바른 길을 저버리고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발람은 불의의 품삯을 사랑하다가 

2:16 자신의 범죄 때문에 책망을 받았으니,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막았다. 

2:17 이들은 물 없는 샘이며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이니,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둠이 준비되어 있다. 

2:18 그들은 헛된 자랑의 말을 하여, 잘못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간신히 피해 나온 자들을 육체의 정욕, 곧 음란으로 유혹하며 

2: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약속하지만, 자신들이 바로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1. 거짓 선지자 출현

본문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지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민간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11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한다고 했고 마태복음 24:24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0:30-31절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흉악한 이리가 앞으로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들여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나오므로 조심하고, 그들이 택한 백성도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리가 들어와서 너희 양떼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또 예레미야나 이사야나 에스겔 같은 모든 선지자들도 거짓선지자가 나와서 많은 사람을 미혹해서 멸망으로 인도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도 특별히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서 너희를 멸망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인다’고 했는데 가만히 들어온다는 것은 이리가 양의 가죽을 쓰고 들어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비밀리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속은 이리인데 겉 모양은 양인 것입니다. 양의 가죽, 기독교이름, 예수의 이름으로 나옵니다. 목사의 이름, 신학교이름을 내세워서 단들을 많이 끌어 들인다고 했습니다.


2. 거짓 선지지의 특징

성경과 다른 어그러진 말을 함

본문 3절에,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너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무엇으로 분별해야 합니까? 거짓 선지자들이 간판을 내걸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분별합니까? 바로, 어그러진 말을 하느냐 안 하느냐, 또 성경을 떠난 지은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에 어그러진 말을 하면 거짓 선지자입니다. 성경에 맞는 말을 하면 거짓 선지자가 아닙니다. 사탄이 교회 안에 들어오고 에덴동산에 들어오는데 사탄을 어떻게 막아야 됩니까? 뱀으로 들어왔는데 에덴동산에서 무엇으로 막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막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했느냐?’고 뱀이 물었을때,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동산의 실과나무를 다 먹을 수 있으나 중앙의 나무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죽을까 하노라’ 이렇게 원래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고쳐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동산 중앙의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것이었는데 하와가 ‘먹지 말고 정녕 죽으리라’는 말은 빼 놓고 ‘죽을까 하노라’ 이렇게 말씀을 고쳤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시대에 여러 가지 종류의 이단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을 무엇으로 분별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성경에 맞느냐 안 맞느냐 이것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에 맞으면 괜찮고 성경에 안 맞게 어그러진 말을 하면 그것은 거짓선지자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겁니다. 성경 이외에 다른 것 가지고는 거짓선지자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또 성경을 고쳐서 ‘먹지 말라’ 하는 것을 ‘만지지도 말라’고 고치고, ‘정녕 죽으리라’는 것은 ‘죽을까 하노라’ 로 고쳐놓는 것도 거짓선지자입니다. 성경을 그대로 믿어야지 성경을 가감하고 바꾸는 것은 전부 거짓선지자입니다.

갈라디아서 1:6-8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변한 것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고 그것은 저주 받는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변하면 안됩니다. 여기 만 원짜리가 하나 있는데 인쇄된 인물이 누구입니까? 세종대왕입니다. 여기 세종대왕의 수염이 있는데 아마 몇 백 개는 될 것 같습니다. 이 수염 가운데 한 개만 없어도 이거 만 원 짜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개 없어도 뭐가 됩니까? 바로 위조지폐가 됩니다. 몇 백 개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구천 원에 쓸 수 없습니다. 천원에도 못 쓰는 가짜입니다. 가짜는 저주 받고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도합 1189장인데 그 가운데 많이도 말고 하나만 더하든지 덜하든지 하면 저주 받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를 더해도 안 되고 감해도 안 됩니다. 또한 성경을 가지고 분별해야 합니다. 다른 것 가지고는 못합니다. 성경이 진리이므로 성경이면 옳다, 성경이 아니면 거짓이다 하며 그것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거짓 선지자들은 성경을 변경시키고 변질시킵니다.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믿어야 됩니다.
가감 하지 말고 여기다 몇 만분의 일을 더해도 안 되고 덜 해도 안 되고 성경 그대로 믿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성경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잘못된 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 ”우리나 천사라도 너희에게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자신도 성경을 조금이라도 변경 시키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와서 성경보다 좀 다르게 해도 저주 받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성경이냐 아니냐, 성경이면 좋다, 성경 아니고 변경시키면 거짓이요 마귀다 하면서 우리가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하려면 성경 외에는 분별 할 수 없습니다. 잘라야 됩니다. 성경말씀이 자요, 막대기인데 자를 대고 딱 잘라서 거기에 더해도 안 되고, 덜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 잣대를 가지고 맞느냐? 맞으면 괜찮고, 더 나갔으면 잘라내야 합니다. 덜 나가도 안 됩니다.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 가야 되고 서라는 데서 서야 됩니다. 말세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와서 택한 백성을 할 수만 있으면 미혹 한다고 했습니다. 많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왜정시대 성경 배울 때, 말세에 가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 때 신사 참배는 우상 섬기는 죄였는데도 죄를 죄가 아니다 하는 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온통 죄가 아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 후, 해방 후의 신신학자들이 거짓선지자입니다. 온 세계에 가득 신신학자들이 나와서 보수신학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북장로교라 하면 연합장로교인데, 미국 장로교 같은 큰 교단들이 대부분 변질되었습니다. 프린스톤 신학이 신신학이 됐고, 유니언 신학이 신신학이 되었는데 거기서는 이제 바른 신학을 제대로 못 배웁니다. 성경이 정확무오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에 하나님 말씀도 있고 마귀의 말도 있고, 사람의 말도 있고, 오류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골라 먹어야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거짓 아닙니까? 성경은 일점일획이라도 오류가 없는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인데 이것을 오류가 있다, 또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다, 속죄를
부인한다, 재림을 부인한다, 내세를 부인한다, 하늘나라가 세상에 이루어진다, 또 예수님이 해방 신학자이므로 자본주의에서 해방해야 된다, 민족 억압, 제도적 억압에서 해방해야 된다는 해방신학 등, 성경을 뒤집어 놓는 거짓선지자들인 것입니다. 또 이성비판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모세 오경을 모세가 안 썼다, 베드로 후서를 베드로가 안 썼다, 요나서를 요나가 안 썼다, 그냥 우화적으로 쓴 것이다 하면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게 다 무엇입니까? 성경을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성경을 변질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거짓선지자입니다.
또한 기독교 사회주의자들, 현실주의자들, 기독교 사업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사업하는 것이 기독교인 줄 압니다. 기독교는 속죄, 영혼 구원하는 것이지, 기독교 이름 가지고 가난한 사람 구제만 하는 곳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렇게 온통 거짓선지자들이 판을 치는 시대가 됐습니다. 성경을 이성 비판하는 이성주의자들 또한 모두 거짓선지자들입니다. 말세에는 이렇게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예언한대로 지금은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나오는 말세가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의 특징으로 첫째로 어그러진 말 하는 것 외에 두 번째가 무엇입니까?

호색함
본문 2절에,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쫒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호색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입니다. 호색, 음란, 음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에 전도관에서 박태선이 자기 피는 다 소변으로 빠져 나가고 예수님의 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피갈음을 해서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예수의 피를 받아서 죄를 없애려면 박태선씨와 동침을 하면 죄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여자와 또 누가 동침을 하면 그 남자도 죄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 남자와 또 누가 동침을 하고, 이렇게 계속 동침을 하면 죄가 없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부 혼음을 하도록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통일교 문선명도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곧 자기가 예수라는 것입니다. 문선명이 무슨 예수입니까? 평안북도 정주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재림 예수이므로 자기와 동침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과 동침한 여자는 하나님 아들을 낳는 여자이므로 그 여자와 또 누가 동침하면 그 남자는 하나님 아들 낳는 남자가 되고 그 남자와 동침하면 하나님 아들 낳는 여자가 나오는 식으로 계속 동침하도록 해서 하나님 아들 많이 낳는다는 구실로 혼음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선지자들의 특징은 음행입니다. 간음이란 말입니다. 관악산에 예루살렘 기도원이 있었는데 남종과 여종이 짝을 이뤄서 조그만 천막 속에서 살고 전도하러 갈 때 같이 다닌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거기가면 짝을 만들어 줍니다. 남종과 여종이 같이 살면서 전도하러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부 음행입니다. 이제 음행죄가 타락된 교회에 물밀듯 들어오게 됩니다. 박태선, 문선명 파만 음행죄가 있는게 아니라 타락된 교회는 성경말씀만 절대 의지하지 않고, 말씀만 따라 나가지 않으면 계속 음행죄가 들어옵니다. 교회 안에 젊은 남녀를 통해서 음행죄가 가득히 들어오는 줄 알면 됩니다. 세상에도 음행죄가 가득하고, 교회 안에도 음행죄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특징입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음행죄로 갈수 밖에 없습니다.

탐심
거짓선지자의 세 번째 특징은 탐심 입니다.
본문 3절에 “너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진리를 떠났습니다. 너희로 이를 삼으니 심판은 지체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3.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
본문 4절에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한 천사는 마귀인데 에스겔 28:17절에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 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상에서 쫒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마귀도 처음엔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천사, 여기에 그룹이라 했는데 그룹이 천사입니다. 천사도 하나님이 지었는데, 천사 가운데 하나가 교만해서 하나님이 산에서 쫒아냈다고 했습니다. 천사였다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교만 했다가 하나님이 쫒아내서 마귀가 된 것입니다.
천사도 피조물입니다. 마귀도 피조물입니다. 본래는 천사였다가 교만해서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여 쫒겨나서 마귀가 된 것입니다. 거짓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과 언제나 같이 갑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 마귀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쫒아 냈다는 말입니다.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심판 때까지 두게 했다는 말입니다.
마귀를 지옥에 던졌다 함은 ‘달타로스’라는 말인데 ‘흑암이 깊은 곳에 던졌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흑암 속에 가두어서 빛 가운데 못 들어오게 만들어 심판 때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는데 이 거짓 선지자들이 나가는 길이 불경건입니다. 경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속화되어 안 믿는 사람과 비슷해집니다. 불경건 교회가 타락이 되면 불경건으로 기울어지고 물질탐심, 물질주의로 기울어지고 그 다음에 자기중심으로 기울어지고 결국 음란으로 기울어집니다.

본문 6절에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에 있었는데 소돔 고모라 사람들의 가득한 음란한 행실을 볼 때에 롯이 어떠했습니까? 음란한 행실이 의로운 심령을 상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볼 때 탄식이 나오고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롯의 경건한 마음과 경건한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죄 짓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상해야 합니다. 죄 짓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이 상해야 정상이지, 그거 재미있겠다, 재미있겠다 하면, 벌써 마음으로 죄 짓는 것입니다. 롯은 음란한 행실을 볼 때 심령이 상했습니다. 심령이 상하는 사람, 안 상하는 사람, 죄 짓기 좋아하는 사람, 죄 지으려도 못 짓는 사람이 있는데, 벌 받을까봐 심령이 상하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롯을 건져주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9절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면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법으로 나가는 자는 다 심판 했다는 말입니다. 불경건, 음란 다 심판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 심판합니다. 경건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건져주십니다. 경건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 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하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담대하고 고집하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고 하나님의 종들도 훼방하고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미가엘 천사도 주 앞에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4. 거짓 선지자의 형편
본문 12절에,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다고 했는데 짐승에게는 이성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습니다. 이성은 사리를 바로 판단하고 또 연구하고 바른 것을 찾는 것으로 짐승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짐승은 본능과 감각만 있습니다. 이성은 영혼이 아니고 영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 이성은 사람의 영이 아닙니다. 영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영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중생한 영은 이성을 사용해서 모든 것을 바로 찾아 가야 합니다.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다가 멸망 가운데서 멸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3절에,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고 하였습니다.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불의를 행한 자는 자기가 불의를 당한다는 말입니다. 남을 속인 자는 자기가 속은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자기가 벌써 불의를 당한 줄 알아야 합니다.
민수기 24:11에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발람이 불의를 행하다 불의를 당했습니다. 발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면 자기가 불의를 당합니다. 벌써 당한 것입니다. 불의 행한 것이 당한 것 아닙니까? 남을 속였으면 자기가 속은 것입니다. 남을 속여 양심 안 쓰고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했으므로 자기가 속은 것입니다. 절대 불의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면 자신이 벌써 불의를 당한 것입니다.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라고 했는데 낮에는 일하는 때에요 연락 하는 때가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13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점점 악해져서 남을 속이다가 자기가 속고 남을 죽이기도 하다가 자기가 먼저 죽고, 불의를 행하다 자기가 불의를 당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 7에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하였습니다. 잠자는 자는 밤에 잠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라는 말입니다. 낮에는 취할 때가 아닙니다. 낮에는 일해야지, 일 할때 일안하고 연락만 좋아하면 어떻합니까?

디모데전서 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일락주의자들, 연락주의자들, 노는 것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락주의자들, 연락주의자들이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하는 것인데 부자가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옷은 최고급 자색 옷을 입고 또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했다는 말입니다. 좋지 않겠습니까? 아 얼마나 좋습니까?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합니다. 연락주의자들입니다. 먹자주의, 놀자주의, 방탕주의. 이제 세 가지, 먹자주의, 놀자주의, 방탕주의로 다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으로도 이게 들어옵니다. 교회 안으로 먹자주의, 놀자주의, 방탕주의가 점점 들어옵니다. 연보한 돈으로 먹고, 방탕하고 연락하고 교회가 점점 방탕주의로 기울어집니다.

교회가 오락, 친교하는 인간의 친목 단체가 됩니다. 영적 면은 다 떠나고 연락(宴樂)주의가 다 됩니다. 끼리끼리 놀러 다닙니다. 자동차를 왜 사냐고 하니 교인들을 태우고 기분 돋우어 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집사들 태우고 동해바다로 가서 실컷 놀고 나면, 교회 와서 봉사를 잘한다고 합니다. 요새는 차 태워 가서 한판 잘 먹여 주고 잘 놀다오면 교회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하고 놀러가지도 않으면 재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련회도 버스 태워서 해수욕장 가서 먹여주고 놀아주면 많이 가는데 기도원에 가라고 하면 놀 것도, 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단을 사랑해서 지난 7월, 우리 중고등부, 청년부수련회를 기도원에서 했는데 889명이 모였습니다. 학생들을 많이 보내셨습니다. 여기 와서 해수욕을 합니까 무엇을 합니까? 그저 하루종일 앉아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쳐주니 속에 남아있게 됩니다. 놀면 뭐가 남아있습니까? 많이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탕주의, 먹자주의, 이렇게 하면 잘못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잘못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안 해야 합니다. 노는 것 안 해야 되고, 교회서 또 먹자주의 안 해야 되고, 방탕주의 안 해야 됩니다. 경건해야 합니다. 교회가 경건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점심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전부 각자 도시락을 준비해 와서 먹고 오후 2시 예배까지 드리고 갑니다. 점심을 주면 많이 오기 때문에 점심은 꼭 주어야 한다는 것은 방탕주입니다. 방탕, 물질주의, 오락주의, 연락주의입니다. 연락을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살았으나 죽었다고 했습니다. 심령이 죽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영으로 하나님과 통해야 하는데 육신으로 놀기 좋아하므로 영이 통하는 게 없지 않겠습니까? 일락을 사랑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것입니다.

음심과 탐욕으로 영혼을 유혹함

본문 14절에,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마음이 가득하여 어떤 눈으로 봅니까?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않고 정욕적인 눈을 가지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여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저주의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저주 받을 자식들은 다 간음죄에 내버린다고 했습니다. 잠언 22:14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여호와의 저주 받은 자는 음녀한테 빠진다고 했습니다. 음행 죄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음란을 버리는 것이다. 말세에 음란을 버리는 것이 큰 유익이고 큰 과제인데, 모두 거기에 빠지는 것입니다.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 들어갑니다. 많은 교역자들이 빠져 들어 갑니다. 교인들도 빠져 들어갑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음란죄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점점 교회가 아닙니다. 이방나라처럼 되었습니다.

본문 15절에,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 하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발람은 뇌물을 받고 불의의 길을 사랑하다가 나귀에게 책망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어도 결국 저주를 받았습니다. 발람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물질을 탐하여 물질을 따라 가다가 발람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선물을 준다고 하고, 물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게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분별했어야 했는데 물질 따라가고 돈 따라 가다가 발람이 망한 것입니다. 물질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 많이 모으는 것에 목적을 세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진리를 세우는데 목적을 두어야지 왜 사람 많이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까? 교회에 사람 많이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열린 예배를 한다, 먹자주의를 한다, 별거 다하는 것입니다. 또 율동을 한다, 또 누구나 아무나 다 와도 좋다, 다 와서 하고 싶은 것 다 해라 하면서 교회를 전부 세속화시켜놓는데, 이것은 잘못된 거짓 선지자들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런 길 걸어가면 안 됩니다.

본문 17절에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 되어 있나니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샘이 물이 있어야 하는데 물이 없다는 말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교회, 참된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생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나와서 생수를 받아먹고, 심령이 소생해서 살아나야 합니다. 이것이 참교회의 모습이며, 타락된 교회는 가 봐야 생수가 없습니다. 또 비 없는 구름이 떠돌아다닌다고 했는데 비가 올 것 같은데 비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샘에 물 먹으러 가는데 샘에 먹을 물이 없고, 또 구름이 떠돌아 비가 올 것 같은데 마른 구름일 뿐, 이렇게 사람만 속이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는 생수를 주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생수를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게는 생수가 있다, 생수를 네게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된 선지자, 참된 교회는 생수를 주고 또 반드시 비가 오는 구름장이어서 땅을 촉촉하게 적시고 모든 곡식을 잘 되게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항상 하늘의 은사와 하늘의 모든 것이 충만하게 채워주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꿈꾸는 사람들
유다서 8절에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꿈꾸는 사람들. 이 꿈꾸는 선지자들이 거짓선지자입니다. 이사야 56:10에 “그 파숫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 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파숫꾼들이 다 어떻습니까? 소경, 벙어리 개, 또 꿈꾸는 자,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 탐욕이 심한 자, 족한 줄을 알지 못한 자, 또 포도주를 잔뜩 먹고 다니는 자, 자기 이만 좋아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파숫꾼들은 소경이 되서 죄를 볼 줄 모릅니다. 죄를 볼 줄 모르고 의를 볼 줄 모르고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 하며 또 벙어리 개가 되서 죄가 들어올 때 짖지도 못합니다. 개는 도적이 오면 짖어야 되는데 벙어리가 되서 짖지를 못합니다. 참 선지자는 아, 도적이 온다, 잘못된 것이 들어온다, 죽이는 게 온다, 이리가 들어온다, 짖을 줄 알아야 되는데 짖지 못합니다. 가만히 있습니다. 벙어리, 꿈꾸는 자가 되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꿈을 꾸고는 꿈꾼 얘기들을 하는데, 꿈이 성경에 맞으면 괜찮고, 성경에 맞지 않으면 마귀에게서 오는 줄 알면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꿈은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또 꿈이 정확히 맞아도 꿈 따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3:1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꿈꾸는 사람 따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꿈 꾼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아무리 맞아도 그 사람 말 청종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나, 말씀을 따라가나 안 따라 가나 여부를 알려고 그렇게 둔다고 하셨습니다. 꿈꾼 것을 절대 따라 가면 안 됩니다. 꿈 꾸었다, 계시 받았다, 환상을 봤다, 음성 들었다, 전부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 전부,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 맞는 것은 어
떻게 해야 합니까? 꿈이든지, 환상이든지, 음성이든지 그런 것은 내용이 성경에 맞는다 해도 믿지 말고 그저 성경만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맞는 꿈 꾸었으니 성경만 믿으면 될 것 아닙니까? 성경에 맞는 음성 들었으니 성경 믿으면 될 것 아닙니까? 내가 성경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꿈에서 성경대로 하라고 가르쳐 주셨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꿈은 뒤에다 돌려놓는 것입니다. 아무리 꿈이 성경에 맞는다고 해도 꿈은 뒤로 돌려놓으라는 말입니다. 그저 성경만 따라 가야 합니다. 꿈을 따라 가면 안 됩니다. 성경에 맞아도 꿈 따라 가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꿈을 꾸고서 꿈꾼 얘기 하지 마십시오. 꿈이 아무리 딱 맞았다 해도 맞으면 맞았지, 성경 믿으라고 했지 어디 꿈 믿으라고 했습니까? 꿈은 성경에 맞지 않으면 마귀 꿈인 줄 알고, 성경에 맞으면 내가 성경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경 깨달으라고 주신 줄 알고 성경만 따라 가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강단에서 꿈꾼 얘기를 하는데, 꿈의 내용이 성경에 위반되는데도 꿈 얘기하면서 교회를 다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떠나 교회를 다 망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못됐습니까? 그것이 거짓선지자입니다. 꿈을 꾸고, 환상을 보았느니 또 무엇을 보았느니 하면서 그 내용이 성경에 맞지 않는데도 꿈 따라가게 하는 것이 거짓선지자입니다. 그거 모르면서 따라가면 어디로 갈지 모르게 됩니다. 확실하게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만 따라 가야합니다. 말씀에 맞느냐 안 맞느냐도 따져봐야 하지만, 설령 꿈이 성경에 맞다 해도, 그저 성경말씀 따라가면 되는 것이지 무슨 꿈이 또 필요하겠습니까? 안 맞는 것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렇게 알고 나가면 됩니다. 또 포도주 먹는 자라고 하였는데, 앞으로 더욱 술 많이 먹게 됩니다. 포도주 많이 먹게 되고 맥주 많이 먹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것 밖에 할 게 있습니까? 벙어리 개 노릇하고, 잠자기를 좋아하고, 자기 길로 돌아가고, 방탕하고 연락하고, 또 포도주 먹는다는 얘기입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 포도주 먹는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 만든 것은 포도주 마시라고 만든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예수님의 구원 운동을 가르쳐 주시려고 만든 것이며, 포도주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술 먹지 말라, 취하지 말라 하였고, 구약에는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 23:31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술은 한잔에서부터 취하는 줄 알아야 됩니다. 석 잔에서 취하는 줄 알면 안 됩니다. 한잔에서 한번도 안 취하면 두 잔에서도 백 잔에서도 안 취합니다. 한잔씩 올라가므로 한잔에서도 그만큼 취한 줄 알아야 합니다. 절대 술 먹으면 안됩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습니다. 술 먹으면 벌써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포도주를 잔뜩 먹자 하는 먹자주의자로 물 없는 샘, 광풍에 밀려가는 비 없는 구름이고 안개고, 캄캄한 어둠이 예기된 자들입니다.

멸망의 종들
본문 18-19절에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유를 준다 해도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자유다 뭐다, 잘 된다 하여도 성경에서 떠난 것은 전부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므로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성경을 떠난 것은 다 마귀에게 진 겁니다.

참 신자와 참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갑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또 참 선지자와 참 교회는 경건한 삶입니다. 그리고 샘에서 생수가 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비가 내리는 것처럼 하늘의 은사로 내려와서 흡족해 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신령한 영적 세계와 내세주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참선지입니다. 이 길을 우리가 걸어가야 합니다. 현세에는 고난을 당해도 내세에 잘 되는 길, 자기 영혼이 잘 되는 길, 영의 생명이 사는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영의 즐거움의 길
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이 아닌가 라고 했습니다. 영의 즐거운 길 가는 신자가 참된 신자입니다. 육신의 연락하는 길은 참된 신자의 길이 아닙니다. 주와 같이 길 가면서 영의 즐거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전도서를 보면 다 헛된 것입니다. 전부 다 헛된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 일 많이 했어도, 전부 다 헛된 것이고 자기 영의 즐거움의 길 걸어 가는 것만 영원 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솔로몬이 집을 13년간 짓고 과수원을 많이 만들어 과수도 많이 심고, 남녀 종들을 많이 두고, 노래하는 사람들, 아내가 700명, 첩은 300명을 두고, 자기 눈으로 원하는 다 해 보았고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막지 않고 전부 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백 살의 수명을 주어졌다 할찌라도,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찌라도 자기의 영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면 다 헛 것이라 했습니다. 심령의 낙을 누리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영의 낙,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영의 즐거움, 하나님으로 즐거움을 삼고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님을 모시고 즐거움으로 사는 영이 사는 생활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어 나갑시다.

베드로후서 1:12-21 예언의 확실성과 위험성.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언의 확실성과 위험성
베드로후서 1:12-21

12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13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19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20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1:12 그러므로 너희가 이런 것들을 알고 또 이미 받은 진리 안에서 있으나, 나는 너희들로 이것들을 항상 기억하게 하려한다. 

1:13 내가 이 장막에 사는 동안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보여 주신 것같이 내가 내 장막을 떠날 때가 임박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1:15 내가 떠난 후에도 너희가 항상 이것들을 생각나게 하려고 힘쓰고 있다. 

1:16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재림을 알게 한 것은, 우리가 교묘하게 만든 이야기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크신 위엄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다. 

1:17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그분에게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그를 기뻐한다."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 

1:18 우리가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있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이 음성을 들었다.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어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너희는 날이 새어 너희 마음 속에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이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1:20 너희는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곧 성경의 모든 예언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21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1. 진리로 경성케 함

본문 12-13절에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라는 뜻은 이미 진리에 서있지만 또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장막에 있을 동안에”에서 장막은 육체를 가리킵니다(고후 5:1). “너희를 일깨워”라고한 것은 베드로가 장막에 있을 동안에, 즉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 다른 사람을 일깨워야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는 요한복음 21:18에 기록된 대로 베드로가 순교당할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세상을 떠날 날이 임박 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세상에 사는 동안 성도들에게 필요한 진리를 일깨워 주려고 힘을 썼던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사는 동안에 다른 사람을 일깨워 줄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 남편, 부모, 시부모, 며느리, 딸 등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교인들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또 말씀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일깨워 줄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느날까지 살게 해주실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사는 날까지 일깨워 주는 일을 부지런히 하여야 합니다.

가족들 중에 뱀 노릇 하는 가족이 있으면, 꼬리를 잡고 놓지 말며,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꼬리를 잡는 것이란 마귀 노릇 하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말고, 늘 영향력을 끼치라는 것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르쳐 주고, 잘 지도해 주는 것이 꼬리를 잡는 것입니다. 안 들어도 자꾸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이사야 28:13에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는 것이 꼬리를 잡고 놓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나 세상 떠나는 날까지 다른 사람을 경성시킬 책임이 다 있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라”고 한 마디만 해주어도 됩니다. 즉 아이들에게 “너 믿음을 지키라. 믿음을 안 지키고 가다가 마귀의 시험에 든다. 교회에 잘 나와야 된다. 예배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고 하며 경성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며 너를 늘 떠나지 않으신다”라고 하는 것도 경성시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의 말씀을 늘 말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시편 1:1-6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을 한 마디 해주면 그 사람을 경성시켜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첫째라면, 둘째는 다른 사람을 경성시켜주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경성시켜주는 것을 하다가 하나님께 가면 복이 있습니다. 노인들도 집의 식구들에게 성경 한마디씩이라도 전해서 그들을 경성시켜 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에게는 언제나 자녀의 꼬리를 놓지 말고 경성시켜주는 일을 하는 것이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고, 이방 나라에 선교사도 보내어 사람들을 경성시키는 일을 많이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진리의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에서 늘 생각나서 믿음을 잘 지키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한소리 또 하고 한소리 또 하는 것은 경성시켜서 떠난 후에라도 계속 생각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이 들었으면 말한 사람이 떠난 다음에라도 생각이 납니다. 김현봉 목사님께 많이 들은 것이 있습니다. “양심을 똑바로
써라, 일심정력을 다해라, 삼가 조심하라”는 말씀이 늘 생각이 납니다.
그러므로 같은 말이라도 자꾸 해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이 생각나게 됩니다.  

2. 재림에 대한 증거

본문 16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큰 능력으로 재림하신다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쳤고, 예수님의 재림은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본 것을 말합니다(마 17:1-8).

본문 17-18절에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즉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지극히 큰 영광 중에 변화된 모습을 직접 보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와 같은 신령한 몸으로 재림하실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는 것을 친히 보고 증거 한 것입니다.

변화산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변화산에서 받은 은혜가 일평생 베드로를 인도하였고, 야고보에게도 변화산에서 받은 은혜가 일평생 그를 인도하였으며, 요한의 경우도 변화산에서 받은 은혜가 일평생 요한을 인도했습니다. 요한이 큰 은혜를 받아서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변화산에서 받은 은혜가 요한에게 큰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변화산에서 받은 은혜와 역사를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에 기록했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본 것과 들은 것을 말한다”고 했는데, 이 얼마나 좋습니까?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가 마지막에는 로마에서 교회를 인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교역자들이 듣기만 하지 말고, 친히 자기가 가서 보고 와야 힘이 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한테 듣고 와서 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는 말과 호랑이 가 나온 것을 직접 보고 온 사람의 말은 다릅니다.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와서 “뒷동산에 호랑이가 내려왔다”고 말하는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호랑이가 나온 것을 보고 와서 “뒷동산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은 눈을 보아도 다르고, 얼굴을 보아도 다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아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도 실제로 진리의 세계 들어가서 보고 그것을 전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생명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신령한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보고 전도하는 사람은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영적 세계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전도하여도 확신과 힘이 부족합니다. 그저 나가서 “예수나 믿으세요. 그러면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예수, 천당” 한마디만 해도 능력이 나와야지, “예수나 믿어 보세요”해서 전도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신이 직접 그 세계가 들어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친히 변화산에 올라가서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요새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즉 신령한 세미한 음성을 듣고 확실히 깨달고 나가서 전해야 힘이 있습니다.


3. 예언의 확실성과 위험성

순종하면 진리를 확실히 깨닫는다

본문 19절에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라고 하였는데,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본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은 더 확실한 예언입니다. 확실하기 때문에 이 예언의 말씀을 우리가 따라갑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라고 하였는데, 신령한 면에 대해서 어둡던 것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샛별이 떠올라야 날이 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날이 새어야만 샛별이 떠오릅니다. 날이 훤하게 새오면 그 다음에는 얼마 안 있다가 샛별이 떠올라 옵니다. 이것이 확실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즉 “샛별이 마음에 떠오른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정확한 깨달음을 말합니다. 날이 새어야 샛별이 떠올라 온다는 것은 신령한 면이 밝아져야 진리를 정확히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날이 샌다는 것은 심령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가리키고, 영의 눈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눈이 어떻게 할 때에 점점 밝아집니까? 예수님께서 침을 진흙에 이겨서 눈에 발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할 때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 졌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약입니까? 예수님의 침이 약입니까? 진흙이 약입니까? 실로암 못의 물이 약입니까? 예수님의 침이나 진흙, 실로암 물이 약이 아닙니다. 순종이 약입니다. 가서 씻으라고 할 때에 “예”하고 씻으니까 눈이 번
쩍 떠졌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면 눈이 떠집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른 것은 소경의 눈을 더 어둡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눈을 뜨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당하는 모든 현실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눈을 떠야 샛별이 떠오릅니다. 순종만 하면 눈이 떠집니다. 즉 날이 점점 새어 갑니다. 날이 샌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영안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점점 열리는 것이 날이 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샛별이 떠오릅니다. 즉 계속해서 순종을 해나가면 샛별이 떠올라 옵니다. 환하게 떠올라 옵니다. 샛별이 떠오른다는 것은 영이 자라나서 정확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진리를 깨닫는 것이 샛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합니다. 확실하니까 나가서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날이 새지 않습니까? 날이 새지 않는 것은 순종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어두운 가운데서 헤매는 것이며, 흑암 속에서 헤매면 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1계단에서 2계단으로, 2계단에서 3계단으로 점점 올라가면 “아, 이것이구나!”하고 번쩍 뜨여질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샛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동방박사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별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왕도 일어나서 그리스도를 찾았고, 제사장, 서기관, 백성들도 다 일어나서 그리스도를 찾느라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서기관이 미가 5:2의 말씀을 들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흑암 속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다가 성경말씀을 통해서 길을 찾았고, 그 말씀을 순종해서 베들레헴으로 향하여 갈 때에, 잃어버렸던 별이 문득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샛별이 떠올라 온 것입니다.

순종을 해야 샛별이 떠올라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영의 세계가 열리고 확실한 것이 깨달아지고, 보여집니다. 눈으로 본 것보다 더 확실합니다. 더 확실하기 때문에 생명을 내어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라납니다. 자라나면 샛별이 떠오릅니다. 아직도 예수를 믿어도 날이 새지 못한 사람이 많고, 또 어느 정도 많이 밝아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샛별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샛별이 떠올라야 합니다. 샛별이 떠오르면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샛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샛별이 떠오르기 전에는 모르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가 보다 하고, 옳다고 하니까 옳은 줄 알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샛별이 떠올라 오면 “이것이 틀림없다, 이것이다”하고 확실히 붙잡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샛별이 떠올라 온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도록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하였는데, 신령한 계단에 올라가야만 영이 열립니다. 영이 열려야만 영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영이 열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영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소경이 눈을 떠야만 색깔을 분별 할 수 있습니다. 소경이 눈을 떠야 “흰 것이다, 검정이다, 노랑이다”하며 알 수 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지 않고는 검정이고, 빨강이고, 청색이고 아무리 보아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도 신령한 영안의 눈이 떠져야 샛별이 떠올라 확실해 알 수 있습니다. 샛별이 떠오르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샛별이 떠올라 진리의 확신을 가지면 진리를 위해서 죽는 결심을 가지고 나가므로 환난과 핍박이 올지라도 다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사사로이 풀면 멸망함

본문 20-21절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을 사사로이 풀면 안 됩니다. 성경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뜻으로는 모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올라 와야 말씀을 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 성경을 억지로 풀면 멸망합니다.

베드로후서 3:15-16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자기의 사사로운 지혜를 가지고 억지로 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과 철학과 세상주의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죄만 짓는 것입니다. 또 신비주의자들은 사람의 감정에 느껴지는 대로, 꿈과 환상에 적용시켜 억지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 성경을 알려고 하고, 많은 학식과 지식으로 성경을 알려고 하지만 그것은 아직 샛별이 떠오르지 않은 어린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인간의 지식과 이성으로 해석하여 따라가면 안 됩니다.

베드로후서 1:3-11 신적 능력으로 이루어 가는 여덟가지 덕.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적 능력으로 이루어 가는 여덟가지 덕
베드로후서 1:3-11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8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10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11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 신기한 능력으로 이루어 가는 여덟가지 덕

환난 받는 자에게 안식과 위로로 갚아주심

본문 3절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신기한 능력이라는 것은 신적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신적 능력으로 우리에게 경건의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 그 신적 능력으로 이제는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해주셨습니다.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영광과 덕을 입혀 주려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이 여덟가지 덕, 하나님의 덕을 입혀 주시려고 역사하셔서 먼저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밑천을 받았습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생명도 받았고, 또 자라나는 능력도 받았고, 또 경건하게 살 능력도 받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갈 능력도 받았습니다. 이처럼 다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시고는 이제는 그것으로써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주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사용하여 여덟 가지 덕을 더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믿음
하나님이 하라고 했으므로 ‘예~!!’ 하고 순종하고 힘을 쓰면 신기한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 더하라고 하셨으므로 믿음을 더하려고 ‘예, 이제는 믿음을 더하겠습니다’ 하면서 하나님께 순종을 하려고 힘을 쓰면 신기한 능력으로 믿음이 점점 더해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평생 가도 믿음이 없습니다. 정말 몇 십년 믿어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은 지 오래되지 않았어도 그 믿음이 독실해지고 견고한 믿음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진 것이 믿음입니다. 받아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서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믿음이 됩니다. 말씀 따라서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면 믿음이 되는데, 이렇게 믿음 더하려고 힘을 쓰면 더해진다는 말입니다. 무슨 능력으로 더해집니까? 신기한 능력으로 더해집니다.
하나님의 신적 능력으로 그 사람에게 믿음이 더해집니다. 그래서 믿음이 독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 내놓고 이제는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덕(德)
두 번째는 무엇을 더하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5절에 덕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덕이 없는 사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또 자라나지도 못합니다. 믿음만 있고 덕이 없는 사람은 못 자라납니다. 내내 그 상태입니다. 자기는 혼자 잘 믿는다고는 하지만, 덕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은 몇 십 년 믿어도 자라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 주고, 맘 상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덕이 없이 돌아가는 그런 사람입니다. 말을 해도
꼭 덕이 없는 말을 하면서 다투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생각을 해도 자기중심적이며, 제가 다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은 다 못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자기중심으로 파악하여 다른 사람을 전부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덕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싸우기 잘하고 다른 사람하고 늘 껄끄럽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하고는 영 말도 안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미워하는 그런 사람들은 모두 덕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좋게 하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을 다 좋아 합니다.

지식
그 다음에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호세야 4:6에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그대로 순종을 하면 하나님이 신기한 능력으로 잘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르면서 그저 무조건 열심히 모든 걸 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은 피곤해집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1:8에,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만물의 피곤함이 말로 다 할 수 없는데 모든것이 다 피곤합니다. 또 사람들도 피곤해 합니다. 
피곤한 원인이 두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도와주니 이번에는 절제 하지 못하고 욕심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욕심대로 나가다보니 피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지식이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말씀을 많이 아는 지식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알아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가다가 곁길로 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바른 길로 갈 수 있고,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는데 하나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여 곁길로 나갑니다. 우리에게 곁길이야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신학자들이 가는 길도 곁길입니다. 또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이 가는 길도 곁길입니다. 잘못된 길입니다. 또 요즘 얼마나 많은 곁길이 나왔는지 모릅니다. 
열린 예배 또한 잘못된 길입니다. 또 신복음주의 역시 오류입니다. 잘못된 것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길인지 계속 가르쳐 나갑니다. 조영엽 목사나 이상철 목사가 늘 특강을 하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가르쳐서 많이 압니다. 그런데 보통은 잘못된 길을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고 갑니다. 이를테면 잘되는 길로 가는건지, 잘못되는 길로 가는건지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하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무당점 치듯, 물어보고 응답해준다는 기도원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좀 기다리라고 하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고 나와서는, 하나님이 거기에 대해 이렇게 하라고 하신다며 대답해 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잘못된 길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길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신학 박사도 신신학으로 나가는 사람
들이 있고, 이 사람들이 성경을 다 왜곡해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하면서 베드로후서도 베드로가 안 쓰고 다른 사람이 썼다고 하는 것입니다. 1장에 분명히 베드로가 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부인하고 베드로가 안썼다, 또 모세 5경도 모세가 안썼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 5경을 예수님이 ‘모세가 말하기를’ 이라고 했는데, 왜 모세가 안썼다고 합니까? 성경을 다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도 무식한 사람이 뒤집어 놓는게 아니라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뒤집어 놓았습니다.
지식이 없는것입니다. 바른 지식 , 곧 하나님의 뜻을 바로 나태내는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원어를 많이 아는 사람은 지식이 많을까요? 물론 원어에 대한 지식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창세기 1: 1-2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있으니라고 시작해서 끝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되어있는데,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신다는 그 말을 원어 잘 하는 사람이 바람이 수면에 분다라고 해석해 놓았습니다. 신이라고 해석되기도 하고 바람이라고도 해석되는 이 원어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니까 그저 바람이라고만 해석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했지 바람이 창조한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을 바로 안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으로라야 성경 말씀도 바로 알 수 있고 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고 했는데, 성령의 기운으로 뒤로 넘어가는 그런 무당의 굿과 같은 신앙은
모두 바른 지식이 없어서 전부 갈래 길로 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인본주의, 세상주의, 국수주의 등의 지식들도 다 바른 지식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기를 지금 지식이 없어서 망하게 되는 마당에, 이제 지식을 더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는데, 지식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지식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신적 능력으로 지식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결심을 하고, 성경을 바로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고 애를 쓰면 신적 능력으로 바른 지식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주십니다.

덕 없는 사람, 지식 없는 사람, 모두 두리뭉실이 되어서 지식 없는 사람은 갈길 모르고, 덕이 없는 사람은 자기는 잘 한다고는 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손해만 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교회에도 손해주고 자라나지 못하는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흡족하면 우리 주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점점 더 알아나간다, 또 열매를 많이 맺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은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다고 했는데, 이 여덟가지 덕이 없는 사람은 소경이라는 말입니다. 멀리 바라보지 못합니다. 발 부리 앞도 보지 못하고 그저 걸어가다가 저 구렁텅이에 빠지고 갈래 길로 들어서고야 맙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제
그러면 점점 더 예수님을 많이 알아 나가게 되고 이 지식에 무엇을 더하라고 했습니까?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위해 절제를 더해라. 하나님 일하는데 절제를 더하려고 힘을 쓰면 신기한 능력으로 절제를 하게 됩니다. 또 어떤 것을 이기려고 하면서 이겨야 되고, 절제 해야겠는데 실력이 없다 할 때, 하나님만 믿고 하려고 힘을 쓰면 신기한 능력으로 됩니다.
무엇을 끊어 버리려고 해도 힘이 없을 때라도 여전히 하나님 명령을 믿고 끊어 버리려고 힘을 쓰면 끊어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능력으로 이기려고 힘을 쓰면 이기게 됩니다. 신기한 능력으로 참으려고 힘을 쓰면 인내가 된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참지 못하는 사람이 믿음으로 이거 참아야 되겠다 해서 참으려고 힘을 쓰면, 신기한 능력으로 참게 만들어 주십니다. 참으로 다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성경에 하라고 하는 것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다 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힘을 안 쓰면 하나님께서 해주지 않으십니다. 잠이 많던 사람도 스스로 절제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잠은 잘 만큼만 자고 더 이상 안 자고 기도하고 모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여기고 힘을 쓰면, 잠꾸러기도 다 고칠 수 있
습니다. 게으른 것도 고칠 수 있습니다. 절제 할 줄 몰라서 낭비하고 한꺼번에 다 써버려서 막상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하는 사람도 절제하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이 절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신기한 능력입니다. 신기한 능력으로 꿀을 만나도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많이 먹지 않는 것입니다. 아, 꿀 그거 달콤한데 좀 더 먹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조금 먹고 안 먹겠다고 결심하면 안 먹고도 될 수 있습니다. 하나도 안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 이 신기한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 능력을 써서 이제는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인내
그 다음으로 인내입니다. 참지 못하면 마귀한테 넘어갑니다. 참아야 합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기독교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참고, 견디는 거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면 셋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면 세 번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첫째도 참고 견디는 것, 둘째도 참고 견디는 것, 셋째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참고 견딜 수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서 주의 명령대로 참고 견디고자 합니다 하면 그 다음에 무엇이 온다고 했습니까? 신적 능력이 와서 참고 견디도록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신기한 능력입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게 됐다는 말입니다.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경건, 형제우애, 사랑
인내 다음에는 경건인데, 경건은 무엇입니까?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입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고 힘을 쓰면 물들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적 능력으로, 또 하나님께 바로 살려고 말씀 받아서 힘을 쓰면 경건 생활 할 수 있습니다. 형제우애가 하나님의 뜻이므로 순종하고자 애를 쓰면 형제우애도 할 수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하려고, 순종하고 힘을 쓰면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신적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성자들이 이렇게 한 것입니다. 본래부터 결점 없던 사람이 성자된 게 아닙니다. 결점이 많고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그대로 순종하고자 한 것입니다. 힘을 써서 그대로 순종을 하니까 신적 능력으로 그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만 주 예수그리스도를 알기를 게으르지 않고 점점 더 알아 나가는 것입니다. 열매를 점점 맺혀 나가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것입이다.

본문 9절에, 이런 것, 이 여덟 가지가 있어야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멀리까지 볼 수 있습니다. 멀리 보고서 벌써 아, 저기 무엇이 온다, 또 저거 어떻게 된다 하면서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덟가지가 없으면 멀리 보지 못해서, 어떻게 될 것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있으면 멀리 보면서, 모든 것을 준비 할 수 있습니다. 또 그의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었다고 했는데 이 여덟 가지가 없으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덟 가
지가 더해지고, 더해지도록 힘을 써서 하나님의 신적 능력으로 이 여덟가지가 많아지고 더 이루어지면 죄에서 점점 벗어져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덟 가지가 없이, 죄 가운데 밤낮 살면서 어떻게 벗어나올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것도 죄고, 덕이 없어도 죄고, 지식이 없어도 삐뚤어지고, 절제 못해도, 참지 못해도 다 잘못 되어나가고, 사랑이 없고 경건이 없어도 다 틀어져 나가면서 여덟 가지가 없으면 자라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죄에서 벗어져 나오지를 못합니다.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2.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목적을 성취하라는 말입니다. 너희를 불러주시고 택해서 예수 믿게 해주신 그 목적을 성취하라. 굳게하라는 말은 성취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주시고 우리를 불러서 예수 믿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셨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까? 목적을 성취하라는 것입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여 언제든지 실족치 말라고 하십니다. 이 여덟가지가 있으면 언제든지 실족치 않습니다. 실족이라는 것은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입니다. 미끄러져 넘어가고 구렁텅이에 빠지고 떨어집니다. 요새 암벽 타다 죽은 사람 많지 않습니까? 실족해서 발이 미끄러져 죽는 것입니다. 히말라야 k2봉에 올라가다가 죽은 사람이 많은데 엄홍길씨가 정복하고 살아 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그 히말라야산 봉우리 몇 개를 정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여자도 거기 가려다가 죽었답니다. 정말 죽을 수 밖에 없겠더군요. 그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면 바람이 시속160미터로 분다고 합니다. 돌도 사람도 다 날라가는 위력입니다. 장사라도 별 수 없습니다. 또한 눈사태도 갑작스럽게 생겨서 집채 만한 것이 내려오는데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산에 정신이 다 뺏긴 사람들만이 가는 것입니다. 산사태가 났거나 엄청난 바람이 불었더라면 엄홍길씨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족하지 않으려 하거나, 안 죽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안 가면 됩니다. 그런데 왜 굳이 가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거기 갈 때는 생명 내놓고 가야 하고, 요행히 날이 좋으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히말리아산 K2봉 정복했다고 하면 명예와 자부심이 굉장하다고 합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기어코 올라가는 것입니다.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우리가 실족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여덟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 여덟가지가 없으면 실족합니다. 가다가 넘어집니다. 구렁텅이에 빠지고 마귀에게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그 여덟가지만 있으면 든든하게 사방을 다 막아놓는 것입니다. 마귀가 들어올 데가 없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덕, 덕에 지식 그 다음에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이것으로 방어선을 확보해 놓으면 마귀가 들어오려고 해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이기고 덕을 세워서 모든 사람들에게 덕망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서 하나님 뜻대로 바로 나가고, 모든 것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것을 가지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을 절제해서 잘 사용하
면 장구 할 것이고, 절제 못해서 한 군데 다 쏟아버리면 다른 데는 못쓰는 것입니다. 월급 받는 사람이 같은 월급을 받아도 한 사람은 절제 못해서 한꺼번에 다 써버리면 한달이 되기도 전에 돈이 모자랍니다.
다른 한 사람은 절제해서 한 달 동안 알맞게 맞춰 나가는데 절제 못하면 실족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인내입니다. 참지 못하면 마귀한테 넘어갑니다. 참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경건입니다. 경건하려고 애를 쓰면 경건 생활이 쉽지 않아도 그래도 신적 능력으로 경견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형제우애입니다. 형제우애를 하려고 힘을 쓰면 또 신적능력으로 형제 우애를 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가페 사랑, 곧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하려고 힘을 쓰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실족할 수 없지 않습니까? 마귀가 들어올 데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그곳으로 마귀가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참지 못해도 거기로 마귀가 들어오고, 절제 못해도 거기로 마귀가 들어오고, 형제우애 못해도 거기로 마귀가 들어오고, 사랑 못해도 거기로 마귀가 들어옵니다.


3. 여덟가지 덕으로 충만하라

이 여덟가지가 있으면 실족하지 않고, 또 멀리까지 바라보고 잘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끝까지 전하라고 하셨는데 이제 땅끝까지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것 같습니다. 땅끝까지 전할 사명을 가지고 좀 멀리 바라보면서 우리가 준비해야겠습니다. 땅 끝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복음 안 들어간 곳이 땅끝입니다. 복음 안 들어간 곳, 북한도 땅끝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어느결엔가 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운영해 가시면서 이제 땅끝까지 전할수 있는 그런 역사를 해 나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고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실족지 않는것입니다. 이 여덟가지가 있으면 죄에서 벗어져 나옵니다.

본문 11절에,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감을 너희에게 넉넉히 주리라, 이기도고 남는다는 말입니다. 넉넉히 이 여덟가지 덕을 구비하고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갈 때 넉넉히 들어가고도 남습니다. 또 즐거움으로 상급을 바라보면서 넉넉히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여덟가지부터 받아야겠습니다. 다른 것 보다도 밑천을 주셨는데, 신기한 능력으로 무슨 밑천을 주셨다고 했습니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밑천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말입니다. 다 받았습니다. 밑천 받았고, 본전 다 받았습니다. 본전, 장사할 밑천을 다 받아 놓았는데, 이것으로 이제 장사하면 됩니다. 장사할 밑천,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다 받아 놓았는데 이것으로 순종해서 장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장사하면 믿음으로 더해지고, 장사하면 덕을 세울 수 있고, 또 하려고 힘을 쓰면 됩니다. 순종하려고 힘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힘을 쓰면 신기한 능력으로 덕망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덕망이 있는 사람, 독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면 이 얼마나 좋습니까? 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합니다. 저 잘난 맛에 살지만 덕이 없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사실은 경멸합니다. 뒤로 가서 욕하는 것입니
다. 저 사람이 무슨 예수 믿는 사람인가, 저 사람이 천당에 가면 나는 만당에 간다는 식입니다. 어떤 시어머니가 덕이 없어서 며느리가 교회 안 나온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교회 나가자고 계속 강권하는데 왜 교회 안 나오느냐고 물으니, 죽을 때나 서로 갈라서려고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 때는 어차피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로 살아야 하는데, 죽을 때 시어머니가 교회 다녀서 천당에 간다는데, 자기가 교회 다녀서 천당에 가면 또 만나게 될 텐데 죽어서까지 같이 절대 못 간다는 것입니다. 죽어서까지 인연을 맺기는 싫다는 것이지요. 그 시어머니가 참 덕이 없는 모양입니다. 며느리 못 살게 하고, 괴롭게 하고 덕이 없으니까 전도가 안 되는 것입니다. 덕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심 다 잃어버리고, 남을 괴롭게 하고, 다른 사람 마음에 아주 염증이 나게 만들고 자기만 잘난 듯 콕콕 쏘고 바른말만 하면 안 됩니다. 안할 것은 안 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른 말이라고 해도 안할 때는 안 해야 합니다. 꼭 할 때 하는 것이 그게 절제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덕이 있는 사람, 지식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식은 무슨 지식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지식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찾고,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지식을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야 되고, 신앙 양심을 써서 찾아야 되고, 신앙 경험에서 찾아야 합니다.

만약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번에 절제에 대한 말씀을 받고 붙드십시오. 절제 하는 사람이 되서 돌아가세요. 자기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이 여덟가지를 보면 알지 않습니까? 내가 믿음이 부족한지, 덕이 부족한지 말입니다. 내가 지식이 부족하면 그것을 확실히 받고, 또 절제가 부족한가 싶으면 절제를 받고, 인내가 부족한가 하면 인내를 붙들라는 것입니다. 경건이 부족하면 경건을 형제 우애가 부족하면 형제우애를, 사랑이 부족하면 사랑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신 것을 붙들어 놓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 신적능력으로 되어갑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멀리 볼 수 있고, 실족하지 않고, 옛 죄에서 벗어나고 예수그리스도를 점점 더 알아나가고 자라가며, 열매를 많이 맺고, 부르시고 택해 주신 그 목적을 달성하여 천국에 들어갈 때는 넉넉히 하나님 앞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이 여덟가지를 알려주실 때 전부 붙드십시오. 여덟가지가 충만합니까? 우리는 여덟가지가 다 충만하지 못합니다. 받아야됩니다. 은혜 주시고 능력으로 자라나게 하실텐데, 예. 하면서 말씀 받으십시오. 그리고 말씀대로 그냥 순종을 해야 합니다. 받는 방법은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하고 힘을 쓰면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이루어 나갑니다.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리와 타조 같은 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나갑니다. 이리와 타조 같은 사람, 바로 우리도 사실 이방사람들인데 문득 하나님의 자녀가 되더니, 하나님을 점점 닮아가는 영광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원만한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자가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데, 순종으로 받아 나갑시다.

베드로후서 1:1-7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
베드로후서 1:1-7

1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우리와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 

1:3 그분의 신성의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신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분을 아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1:4 이로써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너희가 이것들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정욕으로 인하여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1:5 그러므로 너희는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여라. 


1. 보배로운 믿음

본문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스스로를 제자라고 하지 않고 종이라고 한 것은 좀 더 겸손한 자리에 자기를 둔 것입니다. 종은 자기의 주장대로 하지 못하고, 소유권이 없으며, 종일 주인을 위해서만 사는 자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살고 주인의 뜻대로만 살고 전부 다 주인의 것인 줄 알고 나가야겠습니다. 종의 위치에 언제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주인의 위치에 있으면 교만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무엇을 하라하면 하고, 먹든지 마시든지 다 주 예수의 명령대로 주님의 뜻대로 해야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동일하게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다섯 가지 보배

첫째, 그리스도가 보배
학개서 2:7에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국의 보배가 이른다’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 그것이 만국의 보배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보배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이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믿음 속에 있기 때문에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둘째, 예수의 피
베드로전서 1: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구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가 보배입니다.

셋째, 믿음이 보배
시편 19:9-10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배로운 말씀입니다. 금과 정금보다도 더 귀한 보배로운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넷째, 감추인 보배인 신령한 세계
마태복음 13:44-46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또 천국은 진주와 같습니다.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그 진주 하나를 만났는데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그 진주를 산 것과 같습니다.
‘감추인 보화’라는 것은 신령한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신령한 세계를 보화라고 한 것입니다. 진주는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요긴한 진리를 가리킵니다. 요긴한 진리가 보화입니다. ‘보배로운 믿음
을 너희가 받았다’하는 것은 믿음 속에 보배인 감추인 보화와 진주가 많이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다섯째, 믿음이 담긴 질그릇
고린도후서 4: 7에 보배로운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배는 것은 복음 전파의 뿌리를 가리킵니다. 복음 전파의 뿌리인 직무와 그 직분이 보배이고, 질그릇은 우리 인격과 인생을 가리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질그릇과 같은데 거기에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그릇 안에 담겨있는 보배가 모두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보배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넷째는 감추인 보화와 진주입니다. 신령한 세계와 요긴한 진리가 보배입니다. 
다섯째는 복음 전파의 뿌리가 보배입니다. 이렇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가 다 받았습니다.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보혈을 소유할 수 있고, 말씀을 소유할 수 있고, 신령한 세계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은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도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영적 평강이 더욱 너희에게 많기를 기원했습니다.


2.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함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 목적

본문 3절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서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그것을 우리가 다 받았습니다. 그러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서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서 우리를 불렀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덕으로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영광과 덕으로서 불러서 믿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우리가 믿으려고 해서 믿게 된 것이 아니고, 그의 영광과 덕으로서 우리를 부르셨기에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믿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에 “믿음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목적과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이 그 목적이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 삼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쏟아주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그저 그 사랑을 받으면 됩니다. 무제한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고 또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광이 되는 것을 해야 하겠습니다.

받은 것을 쓰면 신기한 능력으로 다 이루어 감

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중생한 영혼, 영적 생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며 자라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품, 형상을 닮아갈 수 있는 모든 은사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쓰면 됩니다. 생명이 자라나면 되고, 경건에 속한 것을 주셨으니 경건한 생활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기한 능력으로 그것이 다 이루어져갑니다.

본문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보배롭고 또 지극히 큰 약속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무슨 약속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입니까? 예수님과 같이 되는 약속입니다. 요한일서 3장에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안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는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보배롭습니까? 얼마나 지극히 큰 약속입니까? 우리들이 본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리와 타조와 같은 인간들이었습니다. 이사야 43:20- 21절에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이방사람들은 이리와 타조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리와 타조와 같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보좌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리와 타조와 같은 인간들에게 무슨 약속을 주었습니까? 너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 너를 하나님의 아들로 택했다,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다, 닮아갈 수 있는 능력을 네게 다 주었다고 하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약속,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약속, 이리와 타조와 같은 저희들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약속,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약속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다 반드시 이루어 놓으십니다. 이런 큰 약속을 지금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배롭고 큰 약속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겠습니다.

이런 약속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은 모두 세상에서 썩어질 것입니다. 이것들을 피해서 이제는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로 하여금 신의 성품에 참예하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쓰는 것입니다. 즉, 영적 생명을 쓰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주신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순종함으로 써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기한 능력으로 신의 성품에 점점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일, 중생한 영혼이 자라나고 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기도 하고, 세상의 정욕을 다 피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기도 하는 이것은 전부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순종만 하면 됩니다. 주신 것을 순종하여 쓰기만 하면 신기한 능력으로 다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것을 주셨는지 알아야겠습니다. 순종만 하면 그 신기한 능력이 나타나서 다 됩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서 경건생활을 하라고 하실 때, ‘예’하면서 썩어질 것을 피해서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고 또 경건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면, 신기한 능력으로 다 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순종만하면 다 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주어서 사랑의 사람들이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세상에서 썩어질 생활을 피하고, 하나님의 신의 성품에 참예하려고 순종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이루어져 나갑니다.
신기합니다. 이루어져 나가는 것도 신기합니다.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대한 것이 이루어져 나가고, 또 세상 썩어질 정욕대로 살았던 것을 피해서 신의 성품에 참예 하려고 할 때, 신의 성품에 참예 하는 것도 신기한 능력으로 점점 이루어집니다.


3. 구원성취의 여덟 가지 덕

본문 5-7에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몇 가지입니까? 여덟가지입니다.

첫째는 믿음인데, 믿음에다 무엇을 더 하라고 했습니까? 덕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지식을 더하라, 넷째는 절제를 더하라, 다섯째는 인내를 더하라, 여섯째는 경건을 더하라, 일곱째는 형제우애를 더하라, 여덟째는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그릇이라고 하지않았습니까? 믿음이 있어야 하고, 믿는 사람은 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믿음은 있는데 덕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덕은 있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이 믿음인데, 말씀을 받아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것이 첫째입니다.

그 다음에는 덕이 있어야 합니다. 덕이 없는 사람은 남에게 손해를 주고 또 자기도 손해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덕이 없는 사람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덕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덕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좋게 하는 덕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또 지식을 더하라고 했는데, 지식이라는 것은 성경에 대해 깨닫는 지식입니다. 호세아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지식에서 자라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18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했습니다.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성경에 대한 지식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바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바로 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바르게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는 지식, 깨닫는 지식이 자라나야 합니다. 지식이 자라나고 지혜가 자라나고 예수님의 영이 자라나고 지혜가
자란다고 했습니다. 지식이 자라나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몰라서 마귀에게 밤낮 속고, 마귀의 뜻을 따라가면서 마귀의 일만 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 진리를 바로 깨닫는 지식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바로 아는 지식을 몰라서 육신의 정욕과 육신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실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다음에 절제라는 것은 할 것은 하고 안할 것은 안하는 것입니다. 쓸 때는 쓰고 안 쓸 때는 안 쓰는 것이 절제입니다. 돈도 쓸 때는 쓰고 안 쓸 때는 안 쓰는 게 절제입니다. 무조건 안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무조건 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절제를 잘 해야겠습니다.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가다가 실패합니다. 무엇인가 할 것이 있으면 한꺼번에 다 써버리고, 정작 쓸 곳에는 못 쓰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월급 타오면 며칠 내로 다 써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돈 꾸러 다닙니다. 시간도 절제해야 합니다. 시간 절제 못 하는 사람은, 기도하느라 시간 많이 보내고 해가 낮이 되도록 기도하다가 집에 돌아 옵니다. 그러면 아이들 학교 늦어지고 남편 직장 늦어지고, 야단이 납니다. “학교 늦었다, 직장 늦었다” 아우성이면 “아, 나 기도하고 왔는데 마귀새끼들이 또 떠들어 대네”하면서 마귀가 자기를 방해한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마귀입니까? 바로 자기가 마귀입니다. 기도는 좀 일찍 가서 하고 들어와서 아이들 밥 해주고 또 남편 출근하도록 해줘야 하는데 절제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기도하고 또 살림할 시간에 살림하고, 출근할 시간에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보낼 시간에 보내야 합니다. 모든 일에 규모가 있고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절제가 안 되니까, 기도하면서 시간 다 보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이것은 바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를 해서 기도할 시간은 기도하고, 또 나가서 일할 시간은 일하고, 가정 살림할 시간은 살림하고, 또 돌볼 것은 돌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시간 절제가 중요합니다. 시간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생활도 못합니다. 또한, 마음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에 좋은 것만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싫은 일도 해야 할 때는 하는 것입니다. 절제 못하면 안 됩니다. 잠언에 보면 ‘꿀이 맛있어도 많이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꿀이 맛있다고 계속 먹으면 절제 못하다가 병이 납니다. 꿀이 맛있어도 조금만 먹고 아무리 달아도 이번에 더 먹으면 안된다, 하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제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심방할 시간, 기도할 시간, 성경 볼 시간, 또 나가서 일할 시간, 직장에 갈 시간 등등, 전부 절제해서 맞춰 나가야 합니다. 돈도 절제해서 여기에 쓸 것, 저기에 쓸 것을 배분하고, 또 규모 있게 절제할 줄 알아야 신앙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절제 못하여 월급 타면 한꺼번에 다 써버리고, 돈이나 꾸러 다니고, 밤낮 빚더미에 올라 앉아있으면 무슨 신앙생활이 되겠습니까? 절제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절제하여 정도껏 할 말을 하고 그만둬야 합니다. 절제 못하는 사람은 이야기 보따리 가지고 한 시간, 두 시간 이야기 해댑니다. 그러면 그 시간은 버려지고 다른 것을 하지 못합니다. 절제를 배워야겠습니다.

그 다음은 인내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인내를 이룰 때 능력이 생깁니다. 인내를 이룰 때, 참고 견딜 때 능력이 생깁니다. 힘이 생기고, 참고 견딜 때 자라납니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가다가 실패합니다. 모든 것은 참고 견디는데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의 승리도 누가 많이 참고 견디느냐에서 옵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 잘 참고 견디면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그것을 이기게 만드십니다. 이기게 만들어 놓으시면 그때는 능력이 생깁니다. 참고 견뎌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참고 견디면 신기한 능력이 오고, 신기한 능력으로 이기게 되어 자라나게 됩니다. 능력이 자라납니다. 인내에서 능력이 자라납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경건입니다. 경건은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입니다. 경건 생활하기로 작정하고 세속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바로 하는 것인데 생활 전체가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입니다. 말이나 마음이나 행동이나 전부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노래하는 것도 경건치 않은 노래하면 안 됩니다. 경건한 노래, 경건한 찬송을 해야 합니다. 말도 경건한 말을 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모이면 세상의 속된 말, 음담패설을 말하곤 합니다. 그것은 경건치 못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 경건한 언행심사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 형제우애라고 했습니다. 형제우애라는 것은 형제를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특별히 형제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형제입니다. 갈라디아서 6:9-10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형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형제니까 얼마나 귀합니까? 예수님을 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형제니까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제우애입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 이것은 아가페인데, 형제우애가 ‘필리아’ 라면, 이것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공명정대한 광대한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여덟 가지를 더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하셨는데 더할 수 있습니까? 덕 없는 사람이 덕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더하라 말씀하실때 ‘예’ 하고 더하려고 힘을 쓰면 그때 신기한 능력으로 덕을 세우는 사람이 됩니다. 덕 없는 사람, 믿음 없는 사람도 더욱 굳건한 믿음 가지려고 ‘예’하고 힘을 써나가면, 신기한 능력으로 믿음이 생기고, 덕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므로 ‘예, 이제부터 덕을 세워 가겠습니다’하고 순종하면, 신기한 능력으로 덕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