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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9일 목요일

신명기 24:1-22성도의 생활 (3)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도의 생활 (3)
신명기 24:1-22

1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2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난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4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렵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찌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찌니라 5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찌니라 6사람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만이나 전집하지 말찌니 이는 그 생명을 전집함이니라 7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르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를 죽일찌니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 8너는 문둥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네가 힘써 다 행하되 곧 내가그들에게 명한 대로 너희는 주의하여 행하라 9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
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찌니라 10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 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11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12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라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14곤궁하고 빈한한 품군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16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7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18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19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리라 20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고 21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22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1. 이혼에 대하여

본장에서는 이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치 되는 일이 발견 되었을 때 이혼을 할 수 있는데 이혼 증서를 써주고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오용하여 “수치되는 일”이라는 조건을 빼버리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 증서만 써주고 이혼하면 된다고 잘못 가르쳤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의 근본 내용과 의미를 바르게 알려주시고자 마태복음 5:31-32절에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치되는 일”은 음행한 것을 뜻하는데, 음행함이 없는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서 내보내는 것은 말씀에 합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이혼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음행한 연고이고, 
둘째는 남편이 죽은 경우이고, 
셋째는 예수를 믿는다고 내쫓기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15절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고 하였는데 예수 믿는다고 내쫓으면 이혼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을 떠나 교회나 관원의 힘으로 합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서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아무리 합하려고 해도 합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예레미야 29장4-6절부터 있습니다. 그것 이외에는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음행한 연고로 한 번 이혼 당했던 여인이 다시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어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 여인의 전 남편도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살다가 다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둘 다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합할 수 있습니까? 말씀에서는 다시
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옛정이 그리워 다시 산다고 해도 살다보면 옛날에 못된 버릇들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건설적인 것이 아니라 부덕한 일이기 때문에 다시 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하는 것이 그다지 큰 것이 아닙니다. 또한 부부간에 함께 사는 것도 그다지 큰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결혼하게 해 주시면 하는 것이고, 또 살게 해주시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일에 하나님의 영광 중심이여야 하고,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하고 덕이 되게 해야 합니다. 결혼한다고 해서 무슨 큰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해서 큰 것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선생님, 제가 결혼을 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더니 “하려면 해 보라”고 했답니다. 그 다음에 생각해 보니까 그만
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찾아가 “선생님, 제가 결혼을 안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했더니 “안 하려면 그만 두라. 괜찮다”, “결혼해도 신통한 것이 없고 안 해도 신통한 것이 없느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혼해도 별 것이 없고 안 해도 별 것 없습니다. 결혼하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지만 그저 그런 것입니다. 또 안 한다고 해도 신통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말고, 또 이혼을 중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십자가는 다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잘 참고 나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는데 제일 좋은 팔자는 어떤 것입니까? 혼
자 사는 것이 제일 좋은 팔자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편안할 것입니다. 오줌을 싸겠습니까? 똥을 싸겠습니까? 돈 달라고 하겠습니까? 속 썩이는 일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자식 있으면 오줌 싸고 똥 싸고, 또 기를 때에 속 썩이고 얼마나 많은 일이 있습니까? 밤낮 십자가입니다. 그저 부부간에 자식 없이 사는 것이 제일 상팔자입니다. 또 부부간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상팔자입니다. 부부(夫婦)간에 서로 눈치 안보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날은 십자가를 지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러 가는 것이지 특별한 것이 있는 줄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날은 십자가 지는 날이고, 며느리 얻어오는 날은 구속 받는 날입니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어떻습니까? 웃옷을 벗고 있다가 며느리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디 옷을 벗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무서운 것이 며느리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아이 낳는 날부터 종살이 하는 날인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똥 치우라고 하면 똥을 치워야 되고, 바깥에 나가자고 하면 나가야 하고, 먹고 싶다고 하면 만들어주어야 하니 모든 일이 종살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이 별 것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지상에서 십자가를 많이 지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려면 결혼해야합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것이 낫습니다. 사방에서 두드리니까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망치로 치는 데 어떻게 안 만들어질 수 있겠습니까? 시아버지 망치, 시어머니 망치, 시누이 망치가 여기저기에서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넙적해지는 것입니다.

2. 새로 결혼한 자에 대하여

본문 5절에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새로 결혼 하게 되면 군대에 내보내지 말고 집에서 일 년 동안 그 아내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에게 구실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말씀입니까? 신명기 20장 5-7절에 “유사들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
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전쟁하러 나갈 때에 이 세 가지 종류에 해당하는 사람은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곧,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못한 사람은 군대로 뽑지 말고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만일 전사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 집에 거하면 되겠습니까? 두 번째로 포도원을 만들고 과실을 먹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전쟁 시에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 과실을 다른 사람이 먹을까봐 얼마나 속에 염려가 많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여자와 약혼하고 취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전쟁 마당에 나가다가도 도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여자를 취하면 되겠습니까? 이 말씀들이 본문 5절과 같은 맥락의 뜻인데 만일 전쟁에 나가지 않기 위해 매 해 포도원에 포도만 심고 늘 집만 지으면서 평생 전쟁에 나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7장 29-31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하
였습니다. 이것이 성경말씀입니다. 아내 있는 자는 아내 없는 자 같이 하라는 것은 신약 성경의 말씀인데 아내 있다고 해서 전쟁 안 나가면 그것이 아내 없는 자 같이 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의 뜻은 아내에게 마음이 다 가있고 빠져서 아내 생각만 하고 있는 사람은 전쟁 마당에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딴 데 다 가있는데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여호와의 전쟁에 그런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기드온 삼백 명의 용사도 물 먹을 때에도 손으로 떠서 핥아먹으면서 자기 사명에 일심정력을 하는 사람을 데리고 나갔지 뒤를 돌아보는 비겁한 사람을 데리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세상에 쏟아져 있는 사람은 전쟁에 나갈 수 없으며 데리고 나가지도 않습니다. 자기 아내에게 마음이 다 가있고 거기 빠져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신령한 전쟁에 참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육신에 속해서 아내의 종살이나 해야지 믿는 일도 못하고 하나님의 일도 못합니다. 또 집을 지어놓거나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마음이 다 가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쟁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러한 자들은 다 고향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쓰일 수가 없는 자 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생을 가도 믿는 일을 못할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도 “아내 자랑하는 것은 온 바보, 아들 자랑하는 것은 반 바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아내에게 향해있고 거기에 빠져있는 사람은 믿는 일을 못합니다. 아내가 우상이라 하나님의 일과 믿는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도 아내 생각이 나면 훌쩍 뛰어서 집으로 갑니다. 믿는 일을 아내 때문에 못하고, 봉사도 아내 생각에 못하는데, 언제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실컷 아내에게 종살이만 하다가 생명이 다하면 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포도원에 마음이 다 가있는 사람도 가서 실컷 포도나 따먹으라고 군사로 부르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쟁에 쓰일만한 사람은 포도원이 있어도 없는 자와 같이 하고, 집을 지었어도 없는 자와 같이 하고, 아내가 있어도 없는 자와 같이 하며 전쟁에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 운동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나갑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며 이기고 나가야 하늘나라가 커지고, 자기 영혼이 자라며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내놓고 나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셔서 하나님 나라 건설 운동을 하십니다. 

선한싸움을 싸워서 이겨야 하늘나라가 커지고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실력이 늘지 안 싸우는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육신에 빠져서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필요합니까? 그 사람 때문에 하늘나라가 늘어나갑니까? 영혼이 자라납니까? 육신에 속해 있는데 영적 실력이 자라납니까? 그래서 육신에 속한 자들은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신에 속한 자가 되지 말고 세상에 얽매이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것이 있어도 없는 자 같이 하고 용맹스럽게 선한 싸움을 싸우러 나가야합니다. 나가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생명 내놓고 ‘죽어도 좋다’는 결사각오를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가장 귀하게 사용하시고, 또 그런 사람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그렇지 못했을 때는 다 돌려보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맷돌을 전집(典執)하지 말 것

본문 6절에 “사람이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만이나 전집하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집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전집 한다’는 것은 물건을 전당 잡고 돈을 얼마 떼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을 전당 잡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사람들은 맷돌
에 갈아진 가루로 음식을 해먹었는데 맷돌이 없으면 전혀 음식을 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이 해 될 만한 것은 잡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살려 나가면서 돈을 빌려줘야지 사람의 생명을 못살도록 해놓고 돈을 꿔주면 얼마나 잔인합니
까? 만일, 돈을 빌려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해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 절의 말씀과 같이 돈을 빌려줄 때라든지 또한 다른 무언가를 빌려줄 때에 빌려간 사람이 돈을 못 갚음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데 까지 나가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4. 사람을 후린 자는 죽일 것

본문 7절에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
니까? 죽이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사람을 후려다가 파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강제로 납치해서 파는 자들, 또한 직장에 취직시켜준다고 데려다가 섬에 고기 잡는 곳에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에게 좋은 직장을 취직시켜준다고 해놓고 목포로 데려가서
섬에 판다고합니다. 한 사람당 오십 만원씩 받고 사람들을 팔고, 팔린 사람들은 섬에서 고기 잡는데 쓰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집으로 오려고 해도 못 나옵니다. 빚을 졌으니까 오십만 원 물어주고 가라는 것입니다. 만일, 나오려고 시도하면 매를 심하게 때려서 나올 수 없게 만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섬에서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또한 여자들도 봉고차로 납치하여 이백 만원씩 받고 팔아먹는다고 합니다. ‘여자 한명에 이백만 원이라니!’ 참 험악한 세상입니다. 

어느 동네에서 봉고차가 와서 화장지를 아주 싸게 팔았는데 너무 싸서 동이 났다고 합니다. 싸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동네 여자들에게 공장에 가면 더 싸게 많이 살 수 있다고 가자고 했답니다. 여자들은 봉고차에 타고 갔는데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걸어가고 있는 학생들을 납치해서 팔아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험악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다 잡아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사형을 시켜야 합니다. 사람 납치하고 꾀어서 팔아먹는 자는 사형시켜야합니다. 성경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안 하니까 지금 이러한 일들이 범람하는 것입니다. 몇 사람만 죽이면 싹 다 없어질 것입니다. 잡아가라고 해도 안 잡아갈 것입니다.
또한 본 절 말씀의 신령한 뜻은 우리 신앙을 미혹시키게 하는 자들, 곧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혹시켜 이단으로 끌고 가고 해방 신학으로끌고 가고 사이비한 것으로 끌고 가서 신앙을 타락시키게 하는 자들은 모두 잡아서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인들을 후려다가
잘못된 데로 끌고 가는 자들을 영적으로 사형시키는 것과 같은 처벌을 하여야 됩니다. 교회에서 죽이지는 못하지만 그런 자들을 아주 죽인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사람을 후려다가 잘못된 길로 걷게 하고, 성도들을 꾀어가는 자들은 아주 악한 것으로 취급을 하여 사형 받은
자로 엄격하게 대해야합니다. 이렇게 하여 교인들이 사이비한 사상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5. 문둥병자의 할 일

본문 8절에 “너는 문둥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네가 힘써 다 행하되 곧 내가 그들에게 명한대로 너희는 주의하여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문둥병이 걸리면 제사장에게 가서 인도하는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특별히 죄로
말미암아 썩어져 들어가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심령에 독한 죄가 들어와 점점 썩어져가고 점점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이 문둥병 들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노름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곧 썩어져 가는 죄, 타락하는 죄가 들어왔다
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술집에 다니고 춤추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죄가 들어오면 몸이 점점 썩는 문둥병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 가지고 있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가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한 구렁텅이에 빠졌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말하고 교역자가 인도해주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교역자는 어떻게 인도를 해주어야 되겠습니까? 첫째는 거기서 나오라고 해야 합니다. 못된 짓을 끊어버리고 죄짓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또한 음행하는 죄를 지고 있다면 피하라고 해야 합니다. 음행하는 죄를 피해서 이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죄를 짓게 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약입니다. 그런 자들을 절대 만나지 말고 어두운 환경에서 나오라고 알려 주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해야 합니다. 교회 또는 기도
원에서 기도함으로 경건생활을 해야 합니다. 셋째로 다른 환경으로 바꾸라고 해야 합니다. 죄 된 환경에서 나와 빛의 환경을 찾아가야합니다. 교역자의 바른 인도를 받아야 죄악된 환경을 끊어버리고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생 라합도 나왔는데 왜 못나오겠습니까? 자신의 부족한 힘으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앞이 캄캄하여 묘책도 없습니다. 심령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밝은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역자의 인도를 받아서 순종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죄 된 환경을 끊고 죄짓는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기도하며 환경을 바꿔야합니다. 이렇게 하면 죄의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혼자 고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혼자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교역자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거기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해야 됩니다. 괜히 혼자서 문둥병을 고치려고 조용히 약이나 사다 바른다고 고쳐지는
병이 아닙니다. 다 내놓고 “나 이런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라고 하면 교역자가 “이렇게 해라.”고 할 때 “예"하고 순종하면 문둥병이 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힘 있게 구렁텅이에서 나오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9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미리암이 모세의 누이였지만 모세를 비방하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민수기 12장 1절에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스 여자를 취했다고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에게 하나님께서 문둥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여쭐 때 “성 밖에 나가 칠일 동안 있다가 들어오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한 미리암은 병이 나았습니다. 문둥병은 자칫 잘못하면 걸릴 수 있는 병입니다. 교역자를 원망하고 비방하다가 썩어져 들어가는 문둥병과 같은 죄는, 교역자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을 수가 있습니다.

6. 전집물에 대한 규례

본문 10-13절에 “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 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 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에게 어떤 물건을 전당 잡고 꾸어줄 경우 그 집 안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돈이 없어서 돈을 조금 꾸려고 하는데, 자신의 집에 들어가서 값진 것을 가지고 나가면 속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따라서 전당을 잡아도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그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또 손해주거나 억울하지 않도록 우리가 언제나 주의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의복 같은 것을 담보 잡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담보 잡았다가도 해질 때에 돌려보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의복이나 이부자리를 잡으면 밤에 무엇을 입고 자고 무엇을 덥고 자겠습니까? 그러므로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었어도 밤에 입고 덮고 잘 수 있도록 돌려보내주어야 합니다. 돈을 빌린 사람이 돌려보내 준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평생에 신세를 잊지 못하고 갚으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돈보다 사람이 더 귀중한 것이니 생명에 해가 가지 않도록 그 사람을 도와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잘 됩니다.

7.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고 품삯을 당일에 줄 것

본문 14-15절에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
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
고 해 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학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꾼을 학대하면 어떻게 망한다고 했습니까? 당일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꾼을 학대하면 누가 일을 하겠습니까? 또한 일꾼이 자기네 일을 도와주는 사람인데 왜 학대합니까? 잘 대접하고 일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대우해야합니다. 일꾼들에게도 못된 버릇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기술자의 구새’(‘나쁜버릇’이라는 뜻의 사투리, 사전에는 없음)라는 것인데 주인의 말을 잘 안 듣고 제 고집대로만 하는 ‘구새’가 하나씩은 있다는 것입니다. 고 목사님은 이것이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말 안 듣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말 들으면 그것이 정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을 시킬 때 말 안 들을 줄 알고 시켜야 합니다. 말 안들을 때 어떻게 시켜야 합니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하라고 말을 해주어야 듣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말하면 말을 안 듣습니다. 고치라고 하면 죽어도 말 안 듣고 달아나기까지 합니다. 일꾼들은 말 안 듣는 못된 버릇이 하나씩 다 있다고 했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일꾼이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 고칠 것은 고쳐야합니다. 못된 버릇을 가지고 나가면 무엇 하겠습니까? 

또한 주인의 입장에서 일꾼을 학대하지 말고 언제든지 귀히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잘 대접해야 복을 받습니다. 여러 해 전에 건축업이 한창 성할 때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지어서 팔았습니다. 그 때는 일꾼이 모자라던 시기였는데 어떤 집은 일꾼이 모여들어 남아 도는데, 다른 집에는 일꾼이 없어서 집을 짓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일꾼이 모여든 집은 안주인이 일꾼을 잘 대접하고 잘 챙겨주어 그 곳에서 일을 하려고 모여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안주인은 집을 짓고 팔고, 또 짓고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니 일꾼을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학대하지 말고 품값은 당일에 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이고 믿음의 행동입니다. 돈을 주지 않고 질질 끄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꾼의 품값을 질질 끌면서 다른 데 이용하기도 합니다. 줄 수 있는데도 안 주고 다른 데 이용해 돈을 불리거나 이자 조금 늘리려고 은행에 두고 안 주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 죄짓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4절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날 일을 한 일꾼에게 그 날 삯을 줄 것이고 만일 줄 것이 없으면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씩 품삯을 줄 때도 날짜를 어기지 말고 정확히 주라는 것입니다. 품값을 당일에 주고 일꾼을 학대하지 말고 잘 대접하여 일꾼들이 마음이 즐거워서 일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8. 부모의 죄로 자녀를 벌하지 말 것

분문 16절에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아니하고 자식들은 아비를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죄 때문에 아들을 죽이지 말아야하고, 아들 죄 때문에 아버지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에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시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아들이 신 포도를 먹었으면 아버지의 이가 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포도 먹은 사람만 이가 시지 아버지가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왜 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면 아버지가 벌 받는 것이 마땅하고 아들이 죄를 지었으면 아들이 벌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잘못해도 아들까지 벌하고 사돈의 팔촌까지 죄다 몰살을 시키는 옛날의 한국의 법은 악법입니다. 아버지가 잘못했어도 아들을 아버지와 같이 취급하면 안 됩니다. 아버지가 도적이라도 아들은 도적 아닐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또 아들이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 때문에 아버지를 벌 하지 말고, 아버지의 죄 때문에 자녀를 벌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아들의 죄를 아버지가 질 수 없으며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오직 각자 자기 죄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 왕 때에 흉년이 들었을 때 사울왕의 자손들 일곱을 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이것이 잘 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사울왕의 죄 때문에 아들 들을 죽인 것은 합당치 않다는 해석이 하나 있습니다. 또 사울왕의 죄 때문에 아들 죽인 것은 잘 했다 하는 학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비추어서 보면 그것은 합당치 않다고 봐야 합니다. 다윗왕 때 연부년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다가 “너희가 어떻게 하여야 우리에게 복을 빌어서 비가 오게 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왕에게 피해를 많이 본 사람이기 때문에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내어주어 원수를 갚게 하면 당신들을 위해서 복을 빌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잡아 죽였고 그들을 나무에 달았더니 비가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행한 일이었습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고 그들을 잡아 죽인 것이고,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들을 잡아 죽여도 된다는 것이 성경에 없었지만 잡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들을 죽인 후에 비를 왜 주셨을까요? 그것은 일곱 명을 죽인 것이 하나님의 노가 풀려서 비를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합니다. 곧, 그 시대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죄 값으로 다 죽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의 아들들을 대표적으로 심판하셔서 진노를 푸시고 비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을 죽인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 시대의 죄 값으로 그 사람들이 심판 받은 것이며 하나님께 물어서 한 것이 아니므로 내어주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심판을 하셨을 것입니다.

9.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지 말 것

본문 17-18절에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했습니다.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고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전에 애굽의 종 되었던 자들이었고 나그네 생활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거지가 돈을 모으면 동냥을 안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거지 시절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도 올챙이 시절을 생각지 못하고 올챙이를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종살이 하던 자가 돈을 모아서 부유해졌을 때 교만해져서 종살이 하는 사람이나 나그네 생활하는 사람을 아주 멸시합니다. 그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교역자들도 자기가 과거에 그 자리에 있던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제가 고려파에 있을 때에 전도부장을 했는데 미조직 교회에서 목사안수 받으려 하면 전도부장이 청원해 주어야 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전도부장이 도장을 찍어서 어떤 목사를 안수해달라고 청원해 주어야
만 노회에서 통과시켜서 목사 안수를 했습니다. 그때에 지금도 고려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안양에 신일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우리 동창인 조사 한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해엔가 사역하던 교회의 대표 집사를 데리고 와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청원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조사 분은 목사를 해도 될만큼 덕이 있었고, 또 강도사 고시에 합격했기 때문에 제가 청원해주어서 그 해에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가 목사가 되어 일 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목사가 일어서서 말하기를 “전도부장이 왜 마음대로 청원을 하느냐”고 말하며 눈을 똑바로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어서서 “목사님, 작년에 집사하고 와서 나한테 청원해 달라고 말했던 것 생각 안 납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쏙 들어가고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일 년도 못 가서 일 년 전의 일을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작년에 목사 안수 해달라고 집사 데리고 와서 저에게 싹싹 빌다시피 하면서 청원해 달라고 했었는데, 목사가 되어 일 년 정도 되었다고 저와 싸우자고 했는데, 작년의 일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니 쏙 들어간 것입니다.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종살이 하던 것도 일 년만 종살이 안 하면 종살이했던 것을 잊고 오히려 멸시합니다. 또 농사짓던 사람들이 농사안 하고 형편이 나아지면 자기가 일했던 옛 자리를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종살이 하던 것이 어저께 같은데 왜 남이 종살이 하는 것을 무
시합니까? 왜 남 종살이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남을 학대합니까? 자기도 얻어먹던 사람인데 왜 얻어먹는 사람을 무시합니까? 자기도 농사했던 사람인데 왜 농사꾼을 무시해서 다리가 썩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또한 싹싹 빌면서 청원해서 목사 안수 받았는데 왜 일년도 못되어 생각지 못하는 것입니까? 생각을 해 보십시오. 과거에 종살이 하지 않았습니까? 얻어먹지 않았습니까? 남의 집에 가서 일해먹지 않았습니까? 과거에 다 비참한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어깨를 곧게 세우고, 남을 무시하면서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합니까? 돈을 조금 벌었으면 어떻게 벌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어떤 영감님은 교민 노인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돈을 조금 벌었다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교민들이 보기 싫어서 미국 사람들이 있는 노인회에 나간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조금만 나아지면 전에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전에 어떻게 자랐습니까? 전에 어떻게 자랐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달에 얼마 가지고 살고 무엇을 해 먹고 살았는지, 의복은 어떤 것을 입고 살고, 집은 어떤 곳에 살았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과거 판잣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뭐가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습니다. 우리 기도원이 뭐가 나쁩니까? 옛날에 얼마나 잘 살았던 사람들이 오늘 여기 와서 앉아 있습니까?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꼭 “민퉁이(‘여치’의 방언(평북))가 쑥대(쑥의 줄기)에 올라간 것” 같습니다. ‘칙칙’하고 소리를 내는 민퉁이라는 벌레가 있는데 풀 속에 있다가 쑥대에 올라간 것을 말합니다. 쑥대에 올라가면 1m 나 올라갔겠습니까? 한 2m나 올라갔습니까? 그것만 해도 꽤 올라간 것 것이겠지만 요새 한국 사람들을 볼 때 민퉁이가 쑥대 올라간 것과 같아 보입니다.

자기기 예전에 있던 그 비참한 자리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전에 ‘꿀꿀이죽’이 있었습니다. 이 음식은 미군 부대에서 미국사람들이 먹다가 남긴 것을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좋은 것만 골라 국을 끓여 먹던 것입니다. 부산 신학교 시절에는 그 고깃국을 한 사발 먹으면 얼마나 힘이 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 시절에 귀한 손님이 한 분 오셨는데 무엇을 대접할까 생각하다 꿀꿀이죽을 생각하고 남포시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분은 잘 사는 분이라 그런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는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잘 사는 사람이 그것을 먹겠습니까? 우리처럼 피난민들은 그것을 먹는 것도 얼마나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열여덟 살 쯤 되었을 때 만주를 갔었는데 바나나 모양과 비슷한 떡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인절미 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집에 선물을 사가지고 갈 때 제일 맛있는 떡인 바나나 떡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든 집 주인이 말하기
를 옥수수 가루로 만든 떡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게는 이 떡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렇게 맛있었는 줄 아십니까? 만주에서는 배급 제도이기 때문에 쌀 한 그릇을 가지고 하루종일 먹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저에겐 그 옥수수 떡이 꿀떡보다 또 인절미 보다 더 맛이 있었습니다. 제가 선물로 들고 갔던 그 집주인은 잘 살았기 때문에 옥수수떡을 좋아했을 리가 없습니다. 만주에 가서 바나나 떡 먹던 것도 생각을 해야 되고, 부산에서 꿀꿀이죽 먹던 것도 생각을 해야 되고, 또 집 한 칸도 없이 명륜동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도 생각해야합니다.
명륜교회를 안집사님 집에서 개척을 했었는데, 안집사와 그의 어머니와 그리고 제가 집에 누우면 하늘이 다 보여서 하늘 문이 열렸다고 하며 자던 집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함석 일을 하던 분이었는데 저도 옆에서 일하는 것을 많이 보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 얼마나 감사합니까? 기도원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합니까? 누추하기는 얼마나 누추했었습니까? 과거를 생각하면 이것이 다 천양지차입니다.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아십니까? 굴속에 들어가서 비를 맞으면서 기도하던 생각을 하면 기도원이 있어서 비를 맞지 않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밤새도록 의복이 다 젖고 꽁꽁 얼어서 추웠지만 지금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과거에 형편없던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것을 왜 생각 안 합니까? 우리도 과거의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과거에 마귀 종살이 하고 진리를 모르고 흑암에 쌓여서 살았는데 진리를 알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진리 한 말씀을
감사히 여기고 또 과거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나그네와 종살이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10. 추수 때에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도와 줄 것

본문 19-22절에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밭에서 곡식 벨 때에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추수할 때 다 거두지 말고 이삭 줍는 사람들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룻기서에 보면 룻이 이삭 주울 때에도 곡식을 떨어뜨려 두라고 했는데 이는 고아와 과부가 주
워서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남겨 놓을 줄 알아야합니다. 손님으로 가서 차려준 음식을 다 먹지 말고 남겨서 그 집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다 잡곡밥을 먹어서 쌀밥 먹는 것이 상당히 힘들던 시절이었는데 어떤 집에 손님 두 명이 왔다고 합니다. 그 집의 아이들은 두 명의 손님을 각각 한 명씩 정해놨다고 합니다. ‘윗쪽 손님이 남긴 것은 내가 먹는다.’, ‘아래쪽 손님이 남긴 것은 내가 먹는다’고 정해놓고, 손님들의 쌀밥이 남으면 먹으려고, 장지문 틈에서 입맛을 다시며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손님이 밥을 다 먹으려고 했는지 밥그릇에 물을 붓더랍니다. 그 손님을 정해놓고 기다리던 아이가 “내 손님이 밥에 물을 붓는다”하고 “악”소리를 내며 뒤로 떨어지더랍니다. 물을 밥그릇에 부으면 남기지 않을 것이니 아이가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밥을 먹다 아이 소리에 놀란 손님이 나가서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내가 잘못했다. 이거 너희들이 다 먹어라.”하고 밥을 줬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오랜만에 쌀밥 좀 먹으려고 기대했던 아이들은 손
님이 사정도 모르고 물을 부으니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주라는 것입니다. 밥도 남겨주어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이삭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며 남의 종살이 하는 사람도 생각해 주어야합니다. 자기도 종살이 했었는데 왜 종살이 하는 사람을 생각해 주시 못합니까? 남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포도를 거둘 때에도 처음에 거두고 후에는 다시 따러 다니지 말고 과수원의 열매를 딸 때에도 미쳐 다 따지 못한 것은 고아나 과부나 종살이 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었고 그 곳에서 얻어먹으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옛날에 전쟁과 가난 속에서 다 얻어먹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우리들이니까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주라는 말씀입니다. 옛날을 생각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주고 도와주며 합심하여 하나님의 일을 잘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꾸어줄 때에도 그 사람의 생명에 해가 가지 않도록 소유를 전당 잡아야하고, 품삯은 당일에 주면서 하나님 일에 합심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교회 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믿는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
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과 이스라엘 구원운동을 하는 일이 잘 되어가도록 축복해주십니다.

신명기 23:9-25 성도의 생활 (2)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도의 생활 (2)
신명기 23:9-25

9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10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11해질 때에 목욕하고 해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12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13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14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15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16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17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 18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19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20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21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22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23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 24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25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1. 진영을 정결케 할 것

본문 9-11절에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꿈에 정욕으로 범죄를 한 경우에 더러워진 줄 알고 목욕을 하고 해가 질 때에 진에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꿈에라도 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박인선 목사는 꿈에서 죄를 지은 것을 가지고 회개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꿈에서 죄를 질 수 있습니다. 꿈에서 죄
를 지은 것을 가지고도 회개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항상 근신해야 합니다. 경건과 근신을 생명으로 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데는 경건하고 근신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전쟁을 할 때에는 항상 경건, 근신하면서 여호와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가는 저희가 되어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정성을 들일 때는 목욕재개를 하지 않습니까? 목욕재개(沐浴再改)라는 것이 근신입니다. 굿을 하는 사람들도 굿을 하기 위해서 정성을 많이 들입니다. 며칠 전부터 목욕재개하고 우물을 발로 덮어놓고 며칠 동안 외부인이 먹지 않게 하며 정성을 많이 들이며 굿을 하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가 가서 보니 어떤 사람이 굿을 하려고 말을 맷돌에 메어 돌려서 떡방아를 짓더랍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 ‘예수’라고 갑자기 했더니 말이 와당탕 뛰는 바람에 다 뒤집혀 엎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굿을 하려 했던 사람들이 ‘이 영감 잡아 죽여라’하며 따라 오
더랍니다. 굿을 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어떤 예수쟁이 영감이 와서 산통 다 깨트렸다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도 그냥 달아나니 잡을 수가 없었답니다. 잘 뛰었나 봅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최권능 목사가 그 부근의 어느 교회를 갔는데 한 사람이 인사를 하더랍니다. 목사님 대단히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며 인사하더랍니다. 무엇을 잘못했냐고 하니 자기가 떡방아를 했던 사람이랍니다. 목사님이 와서 “예수!”하는 바람에 다 뒤집혀 엎어져서 제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뒤집혀 엎어진 것을 가지고 제사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다 집어 치우고 다음부터 예수님을 믿어서 오늘날에 이만치 됐다고 그러더랍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도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정성이 깨지면 다 그만 둡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경건하고 근신하고 정성을 들여서 하나님을 섬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근신하고 경건할 줄 알아야 됩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남 비방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언제나 근신하고 경건하게 하나님께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예배시간에 와서 다 깨뜨려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항상 우리는 몽매간에라도, 꿈속에라도, 밤에 잘 때라도 죄 짓지 않도록 하고 언제나 경건한 생활을, 근신하는 생활을 항상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2-13절에 “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너의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쟁하러 나가서 진치고 있다가 대변을 볼 때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대변을 잘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삽을 가지고 가서 땅을 파고 거기다 대변을 보고 그 다음에 돌아서서 묻으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성도의 진이 이정도로 깨끗한 진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데로 가서 소변보고, 아무데로 가서 대변보고, 가다가 밤에 또 밟고, 자기가 대변보고 자기가 밟고 이렇게 되면 얼마나 더럽습니까? 하나님은 더러운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첫째는 심령이 깨끗해야 되겠고, 둘째는 외부적으로도 모든 단체생활에 있어서 성결을 지킬 줄 알아야 됩니다. 질서를 유지할 줄 알고, 머리를 순종할 줄 알고, 시키는 사람을 순종해야 합니다. 

사경회 기간 중 기도원에 모일 때에, 자동차 주차도 인도하는 대로 순종을 해야 됩니다.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습니다. 방송 나오는 것을 보니 ‘몇 호차 빼주세요’하는데 한참 있다 보니 또 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안 빼는 것입니다. 몇 번을 방송해도 안 뺍니다. 그것은 믿음을 못 지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배우고 ‘주여 주여’를 해도 그것도 못 하는 자가 무슨 믿음을 지키는 자입니까? 윗사람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지도자를 모르는 것입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하
였습니다. 윗사람을 순종할 줄 알고, 질서를 지키고,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남의 물건을 돌려줄 줄 알고 아무리 내버려도 누가 안가지고 가야됩니다. 시계를 내버려도 안 가져가고, 돈 가방을 내버려도 안 가져가고 찾아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데나 대변보고, 소변보고, 지린내가 사방에 나도록 만들고, ‘밤에 누가 보겠냐 하며 시커먼 곳 아무데나 가서 봐라’하며 대변 하나를 변변히 못 가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역자들도 소변 잘 못 보는 교역자 많습니다. 교역자들 망신 좀 시켜야겠습니다. 저 아래 교역자들 기숙사가 있습니다. 그 기숙사의 쪽방이 뒤로 일곱 개, 앞으로 일곱 개가 있습니다. 요새는 모르겠고 이전에 그 방들에 교역자들이 밤에 일어나서 소변을 어디에 보느냐 하면, 문 앞 넉자 난간 밖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 아래 보면 소변에 다 젖어서 냄새가 나고 그럽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로 할 게 아니다. 난간을 막아라’ ‘얼마나 막아야 되겠습니까?’ ‘소변을 보지 못할 만큼 막아라’ 난간에 올라서면 떨어지니 소변을 보지 못할 만큼 만 막아 놨습니다. 또 구멍을 뚫으면 그 구멍으로 보면 안 되니 구멍도 뚫지 않고 난간만 막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소변을 문 앞 난간에서 안 봅니다. 안 보는지, 못 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대소변 보는 것부터 잘 보고 성도의 진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어디든 깨끗하게 하고서 다니는 버릇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다르다’ ‘참 하나님 공경하는 사람들이 다르다’ 하며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도 가져가지 말고 다 돌려주고 깨끗하게 만들고 자기의 천막 쳤던 자리를 종이 하나, 비닐끈 하나 안 떨어지게 만들어 누가 봐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산에 기도를 하려고 자리 하나를 닦아 놓으면 거기에서 사람들이 술을 먹고 놀다가 갈 때는 거기에 대변을 보고 갑니다. 자기는 다음에 다시 안 올 생각인 것입니다. 민주주의, 선진국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니 믿는 사람들이 자기 있는 장소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제대로 할 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신령한 교훈이 있는데 대변을 통한다는 것은 속에 부패한 것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믿는 사람 속에 부패성이 다 있는데 그 부패성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나온다고 하면 즉시로 다 땅에 파서 묻어 버리라는 말입니다. 혈기, 욕심, 남을 미워하는 마음,시기, 원망, 불평, 음란한 마음, 탐심 다 부패성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패성이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분한 마음이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되고 만일 나오면 즉시 처분해 치워야 합니다. 만일 나오면 해가 지기 전에, 그 날이 다 가기 전에 땅에 묻는 것처럼 완전히 없애 치우고 그 다음날은 새 사람으로 아무것도 없는, 시기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보기 싫은 것도 없고, 원수도 없고, 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어제는 내가 속상한 마음이 들어왔지만 내일 아침엔 속상한 마음이 있으면 안 됩니다. 어제는 시기했지만, 분한 마음이 생겼지만, 하룻밤을 잔 다음에는 다 없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땅에 묻지 못하고, 둘둘 굴리고, 어제 싼 것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고, 한 주간을 가고, 한 달을 가고, 두 달을 가고, 일 년을 갑니다. 이것이 무슨 믿는 것입니까? 마귀의 종이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해지기 전에 다 풀어야 합니다. 인간이니 섭섭한 마음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억울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학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지기 전에 다 풀어야 합니다. 과거에 잘 해준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못한 것은 생각하지 말고 잘해 준 것을 생각해서 미워하지 말고 다 풀고 또 부패성이 나온 것이 있으면 해지기 전에 땅에 다 묻고,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 놓고, 없애 치워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 거룩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진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여호와의 진입니다. 여호와의 진을 치고 여호와의 전쟁을 하는 마당인데 여기에 더러운 것이 있으면 어떻게 전쟁을 하겠습니까? 여호와의 진은 거룩하게 하고, 서로 화평하고, 사랑하고, 단결하고, 하나가 되어서 여호와의 전쟁을 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변을 잘 보고 보이지 않게 땅에 묻어 치워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산에 천막을 치러 갔었습니다. 가면 반드시 삽으로 화장실 하나를 파 놓았다가 안 보이게 다 묻어 놓고 옵니다. 그 다음에 끈 같은 것이나 휴지 한 장도 없이 다 가져다가 두 번 세 번 돌아가면서 확인을 해서 다 묻어놓고 깨끗하게 해놓고 옵니다. 누가 봐도 아주 깨끗합니다. ‘누가 왔다 갔나 이병규목사가 왔다 갔다’ 이름을 보지 않아도 다 압니다. 그런데 옆에 똥 싸 놓고 오고 종이, 깡통, 병 깨진 것이 있으면, ‘이거 누가 왔드랬나 이병규 목사? 이게 무슨 예수 믿는 자냐
그 딴것도 목사라고’ 이러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못하고 또 우리가 진리 운동을 하는데 그 진리가 바로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이 전하는 것이 뭐 바로 전하겠는가’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 성도가 있는 장소도 깨끗하게 할 줄 알고, 대 소변도 다 묻을 줄 알고, 꿈에라도 죄짓지 않도록 하며, 꿈에서 죄를 진 것도 회개 하여, 항상 경건하고 근신하는 태도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육신의 부패성 속에 있는 부패성 나오는 것을 완전히 다 묻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더 두고 나오면 안 됩니다. 해 지기 전에 묻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됩니다. 어제의 그 사람이 날 죽이려 했지만 오늘에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화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이고, 성도고, 또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같이합니다. 화목해야 같이 합니다. 똥덩이를 늘 놔두고서 늘 그것을 보면서 ‘네가 쌌니 네가 쌌지 네가 더럽니 네가 더럽다’하고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떠납니다. 

본문 14절에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대변을 잘 묻어야 하나님께서 그 진중에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안 묻으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한 사람이 대변을 보면 다른 사람도 옆에다 대변을 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하나 보니 누가 먼저 쌌나를 가지고 싸움이 납니다. ‘너 왜 여기에 봤느냐? 네가 먼저 봤으니 봤다, 네가 본게 더 많다’ 또 ‘네 똥이 냄새가 더 난다’ 이렇게 해서 그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참 한심합니다. 둘 다 묻어 치웠으면 깨끗할 것을 가지고, 서로 먼저 대변을 봤다, 많이 봤다, 냄새가 더 난다, 색깔이 시커매서 보기 싫다, 그런 것 가지고 싸울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 부패성들, 누가 부패성을 먼저 빼든지 똥 덩어리입니다. 그것은 누가 많이 나왔던 같은 똥 덩어리 입니다.
이것을 다 묻어 치우고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같이 계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이 더러운 것을 묻지 않으면, 부패성을 묻지 않고 그냥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묻어야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그 가운데 계십니다. 진중에 계셔서 선한 싸움을 잘 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에 승리하려면 더러운 것을 묻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을 묻어야 선한 싸움에 승리 할 수 있습니다. 몇 번 까지 용서 해주어야 합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이십니다. 우리는 몇 번을 용서 해줬습니까? 

2. 도망하여 온 종에 대한 대우

본문 15-16절에 “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망명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이 성경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망명을 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받아주어야 합니다. 월남 피난민들을 우리 한국이 받아주는 것은 이 성경대로 한 것입니다. 받아 주는 것은 잘 한 것입니다. 도망쳐 왔는데 그들을 왜 돌려보냅니까? 받아줘
야 합니다. 또 이북에서 온 피난민들을 대한민국에서 받아줬기 때문에이북 사람들이 왔습니다. 받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종이 도망쳐 오면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말고 그를 영접해서 너의 성읍 중에 그 원하는 곳에 살게 만들어주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교훈은 종살이하던 곳에서 나오겠다는 사람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 죄악의 종, 마귀와 죄와 이 세상에서 종살이하던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와 영의 자유를 얻으려고 도망쳐 나오면 잘 영접하고 도와줘서 그들로 하여금 영의 자유와 생명의 세계로 와서 살도록 만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믿도록 만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신앙을 못 지키는 사람들이 나오겠다면 나오도록 만들어주고 어떤 면으로든 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직장도 알선해 주고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또 마귀의 종살이하다가 생명의 길을 찾아 나오는 사람은 우리가 전력을 다해서 도와주어 사람을 살리는 일, 자유와 생명의 세계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바른 진리를 믿겠다는 사람이 많고, 교회를 세워 달라는 곳이 많고, 신앙을 지키지 못해서 안 되겠다는 사람이 많고, 자기 있는 곳은 바른 교회가 없으니 교회를 세워 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가 그런 곳에 연보를 해서 개척 교회를 세우고, 교역자 보내서 그 사람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를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빌레몬에서 종살이하다가 돈을 훔쳐서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가 감옥에 들어와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 와서 바울을 통해 전도를 받아 영의 자유와 생명을 얻어 벌써 마
귀의 종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아무 곳에 가도 그 사람은 종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려 보낸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신앙을 못 지킬 것 같으면 돌려보내면 안되지만 빌레몬의 집에 가면 신앙을 더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돌려 보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영의 자유와생명의 세계에서 살고 다른 사람을 건질 줄 모르면, 도망쳐 나오려고 하는 데 안 도와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의 자유와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도로 돌려보내지 말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영의 자유와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인데 거기서 나오겠다는 사람을 도와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이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3. 창기의 번 돈은 여호와께 가증함

본문 17절에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는 음행하는 여자, 몸 팔아먹는 여자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미동은 남자 창기를 말하는데 이스라엘 가운데는 남자 창기도 있을 수 없단 말입니다. 

본문 18절에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관에 여러 여자들이 있는데 남자 손님이 하나 들어오면 자기끼리 ‘야, 네가 들어가라
이번에 네가 들어가라’ 서로 남자손님이 오면 여자들이 하나씩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그런 여자들은 무슨 여자입니까? 창기, 개와 같은 여자들입니다. 이 남자하고 음행하고 저 남자하고 음행하고 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번 돈은 아무 선한 일에도 쓰지 못하고 네 하나님 전에 가져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둘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그런 장소에 가면 안 됩니다. 그런 곳에 취직하면 안 됩니다. 여관에 취직해서 그런 못된 짓을 하고 또 자기의 몸을 파는 곳은 여관 뿐 아니라 스텐드 바같은데도 술 먹고 춤을 춘 답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여자가 술 먹고 춤추면 다 창기입니다. 다른 것 있습니까? 남자도 그런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정조를 지키지 못하는 곳에 가 있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께 개와 같은 자이고 가증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번 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에 신령한 뜻은 신앙의 정조를 팔아서 번 돈, 자기의 몸을 팔아서 번 돈, 자기 몸을 죄에 팔아서 번 돈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믿음을 팔아서 번 돈은 합당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돈을 못 벌어도 믿음을 지키는 것을 기뻐하시지 신앙을 양보하고 믿음을 팔아 번 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또 음행은 하지 않았어도 성경을 어기고, 주일을 안 지키고, 신앙 양심을 어기고 번 돈은 다 신앙의 정조를 팔아 번 돈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 첫째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세상에서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하고 호사생활을 해도 믿음을 안 지키면 그것은 다 창기의 생활입니다. 믿음을 안 지키고 생활하는 것은 창기의 생활, 그 돈은 창기의 번 돈입니다. 

야고보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되는 사람은 간음하는 여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
지 아니하고, 말씀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세상 따라가고 돈 따라가는 세상의 벗이 되는 사람은 간음하는 여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성경 따라 가는 것, 또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지 말라는 것, 자기의 직분 지키는 것보다는 먼저 세상 따라가고, 돈 따라가고, 잘 되는 것을
따라가고, 좋은 집을 따라 가고, 좋은 직장을 따라가서 돈 많이 벌고 좋은 자동차 사고, 좋은 집 사고, 호사스럽게 살면서, 연보 많이 해서예배당을 지어도 그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입니다. 창기의 번 돈입니다. 창기 노릇을 안 했어도 믿음의 창기입니다. 믿음의 창기 노릇을 해서 번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의 직분을, 자기 자리를 못 지켰습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따라 갔습니다. 돈을 따라 갔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창기이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은 창기가 번 돈입니다. 아무리 예배당을 지어도 하나님께 불합격입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가증하게 여기시고 서원을 한다든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돈을 못 벌어도 믿음을 지키는 것을 제일 첫째로 해야 합니다. 아무데나 가서 일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암만 돈을 못 벌어도, 직장이 떨어져도 아무데나 가서 일 하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일해서 먹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좀 잘 사느냐 못 사느냐 차이지 잘 살면 의복을 좀 좋은 것을 입느냐 좀 좋지 않은 것을 입느냐 이거지 그저 일하면 다 먹고 살게되어 있습니다. 어디가나 동서양을 물론하고 다 먹고 삽니다. 의복을 좋은 것 입으면 또 무엇을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알아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마지막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을 잡는 거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십자가를 지고, 믿는 일을 하고,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고, 영이 살면 이것은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을 파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창기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어볼 것이 하나 있을 거 같습니다. 비행기장 부근에 창기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교회에 나옵니다. 나와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거기서 일을 하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연보도 많이 냅니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물어 볼 것 같습니다. 연보를 받아야겠습니까? 받지 말아야겠습니까? 또 술집 여자도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창광교회도 혹시 그 앞에 술집이 많기 때문에 더러 나올 것 같습니다. 술집 여자들이 새벽기도 때 술 냄새를 풀풀 날리며 이따금 나옵니다. 밤새도록 남자에게 술을 팔다가 새벽기도 나옵니다. 그것을 받아줘야겠습니까? 받아주지 말아야겠습니까? 연보하는데 가만히 지키고 있다가 ‘넌 연보하지 말아라’ 그래야겠습니까? 그것은 받아줘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 때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옵니다. 회개하는 마음
으로 머리를 푹 숙이고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보기도 부끄럽고 하나님 보기도 부끄럽고 그래도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줬습니까? 안 받아줬습니까? 누가복음 18장 10-13절에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받아주셨습니까? 세리도 그 창기와 같은 것입니다. 과거에 창기 노릇을 했어도, 세리 노릇을 했어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받아 주십니다. 또 연보도 받아 주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으로 나오면 받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기 노릇을 하지 않았어도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몇 가지 잘한 것을 가지고 나오면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자기는 죄인 가운데 가장 괴수인 줄 알고 자복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십니다.

4. 형제에게 이식을 받지 말고 꾸어 줄 것

본문 19절에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형제에게 돈을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는 것은 이자놀이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의 이자도 받지 말고 또 곡식의 이자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곡식의 이자는 어떻게 받습니까? 봄에 쌀 한 가마니 꾸어 주고 가을에 가서 한 가마니하고 두말을 받습니다. 꾸어주는 사
람은 먹고 남아서 꾸어 주고, 이자를 내는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서 꾸어 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본전 물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자로 두말을 더 갚아야 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국인이나 외부사람에게는 우리가
이자를 받아도 되지만,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끼리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한테는 이자를 받아도 됩니다. 어떤 믿는 사람은 형제에게는 꾸어 주지 않고 안 믿는 사람에게만 꾸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형제에게서는 이자를 못 받게 하니 안 믿는 사람만 꾸어주고 이자를 받는 것입니다. ‘이자 받을 수 있으니 안 믿는 사람 꾸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형제에게는 안 꾸어 주고 안 믿는 사람에게 꾸어 주는 사람은 돈만 아는 사람이고 형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과 의무와 도와주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복 받겠습니까? 돈만 알고, 하나님께 대한 사명도 모르고, 형제 우애도 없고,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복을 받겠습니까? 돈 보다도 형제가 귀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서 피로 값 주고 산 형제인데, 피로 값 주고 산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돈만 알고 안 믿는 사람에게만 꾸어주려고 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시골에서 곡식 꾸어주고 이자를 받는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이자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줄 믿고 다시는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를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것을 긁어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겠다면 그것이 형제된 도리입니까? 이자를 받지 말고 꾸어주어야 합니다. 이자를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 성경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에 이자도 넣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끼리 이자를 안 받고 꾸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자를 안 받고 꾸어주는 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이것 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개가 이자를 안 받고 돈을 꾸어줬다’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은행에 저금해서 있는 것을 꾸어주는 경우에는 은행이자 정도 부담 시키는 것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안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안 받고 그저 무이자로 꾸어주는 것이 제일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일입니다. 무이자로 꾸어주는 사람 때문에 일이 잘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자를 물 수 없는 형편에 이자가 없으니 부담이 안됩니다. 그것으로 이제 차차 빚을 갚아 나가면 쉬운 것입니다. 예배당 짓는 것도 이자가 없이 꾸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예배당을 짓기 아주 쉽습니다. 이자가 있으면 이자를 무는 것 때문에 일이 안됩니다. 이자가 없으면 한 2,3년 동안 교회에 연보하는 대로 물어나가면 됩니다. 또 꾸어준 사람은 몇 년 동안에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이자는 불어나가지 못하지만 원금은 손해나지 않고 남아있지 않습니까? 이자 안 받는 것을 여기서 배워야 합니다. 잘 사는 것은 이자를 받아서 잘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시면 이자를 받지 않아도 바른 곳에서 잘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농사가 잘 되게 만들어 주시고, 사업이 잘 되게 만들어 주시고, 건강하도록 해주시고 이렇게 해서 이자를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잘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자를 암만 받아도 구멍이 떨어져 나가면, 이자를 백만원씩 받으면 이백만원씩 뚫어지고 구멍이 뚫어져서 이자를 오백만원씩 받으면 천만원씩 구멍이 뚫어져 나가면 이자를 받은 것 몇 배가 나가서 이자를 받다가 망합니다. 구멍이 병원으로 뚫어지고, 부도수표로 뚫어지고, 아들이 돈 없애서 뚫어지고, 가정에 식구들이 돈 없애고, 또 뚫어지고 여러 곳으로 뚫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적이 와서 도적질을 해가고, 사기횡령을 당하고, 안 되는 것만 사게 되고 하나님께서 안 되게 해주시면 안 되는 것만 돌아가는 것입니다. 호박씨를 까서 한입에 다 넣는 것처럼 이자를 좀 받아도 한꺼번에 본전까지 다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셔야지 이자를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리대금을 해서 먹는 것은 피를 빨아 먹는 빈대와 같은 자라고 했는데 고리대금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정당한 사업을 해서 이익을 취하는 것은 좋습니다. 정당한 사업을 해서 이익이 남으면 그 이익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돈을 왜 주신다고 했습니까? 김현봉 목사님의 말씀은 먹고 살기 위해서 주셨다고 그랬고 둘째는 그것으로 믿는 일을 하라고 주셨다고 하
셨습니다. 쌓아 놓고 수전노를 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지키는 종노릇을 하는 자는 수전노입니다. 돈을 지키다가 자기도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돈 때문에 싸움을 하고 서로 싸우고 다투다가 그 다음에는 그 돈을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수
전노 노릇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돈을 좀 벌게 되면 자기 먹을 만큼만 해 놓으면 좋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좀 많이 벌게 되면 한 절반은 뚝 잘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령 2억을 벌게 해주셨다고 하면 십일조를 떼고 그 다음에 절반
을 뚝 잘라서 한 1억만 자기 소유로 하고 다른 것 내고 남은 것을 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보도 하고, 구제도 하고, 다른 사람 도와주는 일도 하고, 개척교회도 세우고, 수해 연보도 좀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하고, 하나
님의 일에 많이 쓰고 한 절반 뚝 잘라서 해보면 그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얼마가 남습니까? 1억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번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벌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절반을 뚝 떼는 정신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삭개오가 자기 재산의 얼마로 구제 하겠다고 했습니까? 절반입니다. 삭개오가 잘한 것 같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절반을 뚝 떼서 아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연보도 하고, 구제도 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믿는 사람을 특별히 좀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번에 창광교회에서 수해연보를 했는데 교단에 수해를 당한 사람 있나 사방에 전화를 해보니 한 두 교회에서 수해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일부를 보내고 전부다 방송국
으로 보내서 수해민을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물질을 가지고 우리가 먹고 살고, 하나님의 믿는 일을 하고, 구원운동에 사용하고, 구제 사업에 사용하고, 사회사업에 사용하고, 절반 뚝 떼서 하면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공산주의가 발을 못 붙입니다. 우리 한국에 재벌가들이,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자기 사업이익 가운데서 절반 뚝 잘라서 하나님의 일과 사회사업을 해 나가면 공산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부 자기가 다 챙기고 하나도 안 도와주면 공산주의
가 자꾸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반을 뚝 떼서 쓰는 것이 자기가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절반은 자기 것입니다. 4천만원을 번 사람은 2천만원을 번 줄 알면 됩니다. 아예 자기의 것이 아닌 줄 알면 됩니다. 믿는 일에 사용하고, 구제사업하고 이렇게 나가면 장구하게 잘 되는 것입니다. 물질 가지고 하나님께 바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2천만원번 사람은 천만원만 번 줄 알면 됩니다. 천만원 가지고 십일조 떼고 다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믿는 일도 잘 되고 우리 믿는 사람도 먼저 도와주니 아주 기뻐하고 교회도 잘 되나가고 개척 교회도 많이 되고 사회사업도 하니 사회도 잘 되나갑니다. 

돈을 모아서 쌓아 놓는데 급급하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원수가 많이 생기고, 믿음은 둘째고, 때려 부수려고 하고, 원한을 품고, 칼을 갈고, 시기만 오면 들고 일어섭니다. 돈을 벌면 사회로 돌려야 합니다. 돈을 한 절반 돌리는 것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
나님의 일에 쓰고 또 사회로 돌리고 안 믿는 사람은 사회로 다 돌리고 이것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자본주의 입니다. 다른 사람보고 못 한다 하지 말고 우리부터 먹고 살 만큼만 먹고 살고 그 다음에 버는 것은 십일조 바치고 당연히 절반 바치고 이자는 받지 말
아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빌린 사람은 갚아야 합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고 하였는데 할 수 없이 돈을 꾸었을 때는 어떻게 하든지 갚아야 바로 서는 것입니다. 돈을 빌려 쓰고 안 갚으면 양심을 잘못 쓰는 것입니다. 돈을 빌려 쓰고 없어서 못 갚는 것은 어쩔 수 없
지만 자기 쓸 것은 다 쓰고, 양복 사 입고, 여자들은 옷 사 입고 구두도 몇 켤레씩 사 신고 하면서 왜 안 갚습니까? 자기 할 거 다 하면서 왜 안 물어 주느냐 말입니다.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원리 원칙인데 자기 살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고 할 거 다 하면서 빚을 안 갚는 것
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 짓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인이 집을 팔았는데 그 옆 교회에 목사가 와서 돈을 빌려 달라 하더랍니다. 예배당을 짓다가 돈이 모자랐는데 200만원만 빌려 달라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갚는다고 하며 몇 달이면 돈이 나오니 그동안만 빌려달라고 계속 사정을 하여 그 교인이 집을 판돈에서 2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예배당을 짓고 자동차를 사고 할 것을 다하며 돈을 안 갚더랍니다. 돈을 달라고 하면 ‘자꾸 와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몇 번을 가서 이야기를 해봐도 핀잔만 받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와서 ‘어떻게 할까요?’ 합니다. 뭘 어떻게 합니까? 뻔한 것입니다. 그 목사가 돈을 물어주게 생겼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 목사는 양심 바로 쓰지 않은 목사입니다. 자동차를 사고, 자기 할 것을 다 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꾼 돈을 물어주겠습니까? 돈 달라고 하면 미안해서 ‘조금만 참아 달
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날도둑놈입니다. 날도둑놈 보고 돈을 달라고 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예 돈을 빌려 준 것이 잘못됐습니다. 목사가 뚝뚝 잘라먹고 교회가 뚝뚝 잘라먹는 것입니다. 악하게 남의 돈을 잘라먹으면서 그래도 ‘주
여 주여‘하면서 철야기도하고 새벽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 합니다. 

물질에 대해서 바로 못하면 다른 데서도 바로 못합니다. 물질이 첫 번째 계단 입니다. 첫 번째 계단에서 바로 못하는 사람이 두 번째 세 번째 계단에서 어떻게 바로 하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첫 번째 계단에서 바로 해서 남의 돈을 빌린 것은 갚고 또 불쌍한 사람은
빌려 주고 또 형제에게 빌려주면 이자를 받지 말고 도와주고 이렇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것도, 믿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결혼할 때 빚을 많이 지고 결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빚을 지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있는 대로 하면 됩니다. 결혼할 때 창광교회 집사 하나는 800원 가지고 했습니다. 그 때 800원이면 냉면을 친척들이 모여서 먹는 값이랍니다. 결혼하는 것을 굉장히 크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입고 있던 것을 내복이라도 깨끗이 빨아 입고 세탁소 가서 세탁 한번 해 입으면 됩니다. 그 다음에 신랑 신부만 있으면 결혼 할 수 있습니다. 돈이 하나도 없어도 신랑 신부가 와서 하나님께 둘 다 서약을 하고 목사가 공포해주면 결혼식은 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 둘이면 결혼식 할 수 있습니다. 목사하고 셋이서 또 부모가 오게 되면 오는 거고 안 와도 괜찮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오래 끌다가 사고가 나고 아이 낳으면 이것이 무슨 결혼식이냐 말입니다. 결혼은 돈 빚지지 말고 간단히 해야 합니다. 생활비를 버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한국에서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생활비 한 달에 얼마면 됩니까? 쌀 두말이면 되지요? 쌀 두말에 얼마입니까? 20,000원 연탄 값 10,000원 소금 한 두 되 하면 만원 하고 25,000원 35,000원 채소 값 한 광주리 500원이면 됩니다. 500원 그것을
가지면 한 주간을 먹습니다. 떡잎 시퍼런 것이 영양이 더 많습니다. 전세 한 달에 얼마입니까? 싼 걸로 얻으면 삯 월세 한 달에 50,000원이랍니다. 50,000원에다 35,000원에 한 달에 90,000원이면 안 굶어 죽습니다. 채소만 먹기 때문에 혈압 안 올라갑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이 올라갑니다. 최저 생활 하는 데 있어서는 돈이 얼마 안 들어갑니다. 괜히 고급으로 하려고, 잘 하려고 하니 돈이 많이 들지 최저로 내려가면 얼마 안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시면 많이 가지고 살고, 더 많이 주면 더 많이 가지고 살 수 있고, 더 많이 주면 얼마를 떼라고 하였습니까? 50% 뚝 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데 사용하고 50% 만 가져도 부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 낮아질 때는
극도로 낮아 질 줄도 알고 높아질 때는 높아져서 그것을 가지고 바로 할 줄 아는 사도바울과 같이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함에 처할 줄도 아는 그런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5. 여호와께 서원한 것은 갚아야 함

본문 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빨리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원한 것을 반드시 요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서원한 것을 더디 갚으면 죄입니다.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서원했기 때문에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원하는 것이 좋은가, 안 하는 것이 좋은가 부터 얘기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에 성도가 하나님께 서원하는 일이 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바치려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이대로 해야 하겠다’라고 결심하는 것입니
다. 이렇게 서원하는 일이 비교적 많이 있습니다. 몸 바치기를 서원하는 사람, 물질 바치기를 서원하는 사람, 성전 짓기를 서원하는 사람 등이 있습니다. 또 십일조 바치기를 서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십의 이조나 십의 삼조를 바치기로 서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에는 십의 구조를 바치기로 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그 사람이 큰 부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 서원하는 사람과 서원하지 않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낫습니까? 서원하는 사람이 낫습니다. 왜 서원하는 사람이 나은가 하면 성령께서 감동을 시키실 때에 그대로 작정해서 서원을 하면 이 다음에 그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서원해 놓았으니 그대로 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성령께서 감동시키실 때에 서원하고 나중에 그대로 다 하면 하나님께 큰 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며 자신이 은혜 가운데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원하는 것이 좋습니다.
야곱이 몇 가지 서원을 했습니까? 세 가지를 했습니다. 벧엘에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와 하나님께서 앉으신 것과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세 가지 서원을 했습니다. 
첫째는 십일조 드리기로 서원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시기를 서원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셋째로 성전 짓기를 서원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서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셨을 때에 서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동이 있을 때 서원을 하지 않으면, 그 감동이 일시적 감동으로 그치고 맙니다. 감동이 잠시 왔다가 떠납니다. 그 다음에는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소멸하는 죄가 됩니다. 감동이 왔을 때에 서원을 하면 일단 작정했으니까 결국 하게 될 것이 아닙니까? 즉 하나님의 감동을 소멸하지 않고 실행하게 되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하지 않고, 단지 ‘앞으로 해야 되겠다’하고만 생
각하면 안 됩니다. 조금 가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없어집니다. 없어지면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정을 하면 그 마음이 없어져도 하게 됩니다. 작정을 했으므로 작정 때문에 하게 됩니다. 서원을 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서원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연보하기로 하나님께 작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 연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원해서 행하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동 시키셔서 얼마를 바쳐야 하겠다고 작정하고 그대로 하면, 은혜를 계속 유지해 나가게 되고 은혜가 커지는 것입니다. 또 믿음을 쓰는 것이고 영혼이 자라나는 것이 됩니다.
만약에 작정 하지 않고 다음에 생기는 대로 해야 하겠다고 하면,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음에 돈 나올 때가 있으니 그때에 서원해야 하겠다’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서원하고 작정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없어지고 나중에 돈이 나오면 다른 데에 쓸 곳이 생깁니다. 반드시 쓸 곳이 생기고 이전에 연보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아예 작정을 해야 합니다. 작정을 해 놓으면 다른 데에 쓸 데가 있어도 쓰지 못하고 하나님께 바치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받은 감동을 순종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럴 때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연보 작정을 하지 않고 생기는 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기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작정한다고 되어 있으니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생기는 대로 하겠다고 하면 생겼을 때에 다른 데에 쓸 데가 또한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또 지금은 할 마음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성도가 교회에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꿔 주었답니다. 교회에 당장 급한 일이 있었는데 그 바람에 다 해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교회에서 그 사람에게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했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교회의 문제가 다 풀려 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술술 다 풀려 나갔다고 합니다. 급할 때는 몇 백만 원을 구하기 어렵지만, 이다음에 몇 백만 원을 갚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돈만 알고 하나님의 일은 모르거나 또 다른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모르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돈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이자 없이 꿔 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하나님 앞에 바로 쓰는 것이 큰 것입니다. 그 성도가 참 잘 하였습니다. 복 받을 것 같습니다. 아니, 벌써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물질 면에서 믿음 지키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또한 작정하는 것은 결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제단에 아들 이삭을 드릴 때에 결박해서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삭이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지려고 했는데, 왜 결박을 했습니까? 자원해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바쳐지려고 했지만 정작 칼로 푹 찔러 죽일 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본능이 나와서 칼을 붙들고 안 죽으려 발버둥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땅에 떨어지거나 하면 하나님께 흠 있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에 결박해야 합니다. 결박해 놓으면 바치지 않으려고 해도 별 수 없는 것입니다. 푹 찔러도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박해서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해서 작정한대로 기어코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 완전한 제물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 작정한 일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야곱이 세 가지를 서원한 것 이 외에 사무엘의 어머니도 작정을 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가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삼상 1:11). 그런데 아들을 낳은 다음에는 바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 바치려는 마음은 시험입니다. 그러나 작정했기 때문에 안 바치겠다는 마음, 곧 시험이 들어와도 그것을 잘 이기고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당나귀를 바치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있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 나귀를 바치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후에 예수님께서 쓰려고 하신다고 했을 때 기꺼이 내 놓았습니다(눅 19:28-35). 또 마가 요한이 무엇을 작정했습니까? 자기 다락방이 있었는데 그 다락방을 예수님을 위하여 바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주님을 위하여 예비한 다락방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당시에 마가 요한의 어머니가 물동이를 이고 갔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제자들이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하시더라”라고 하니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여주었다고 하였습니다(눅 22:7-13). 이렇게다 작정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예수님의 제자 120명이 기도할 때에도 그 다락방에 가서 기도했습니다(행 1:12-15). 성령이 강림하신 것도 마가 요한의 다락방입니다. 

요즘도 자기 집이나 다락방을 예배당으로 바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서원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복 받습니다. 서원하면 복 받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원한 다음에는 실행을 해야 합니다. 서원해 놓고 실행을 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서원
하지 않은 사람보다 서원한 사람이 낫고, 한 다음에는 실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서원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인데, 일단 서원한 것은 빨리 실행을 해서 갚기를 힘 써야 합니다.

6. 포도원과 밭 추수 때에 이웃에게 베풀 혜택

본문 24-25절에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이
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좋으나 그릇에 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이삭을 잘라 먹어도 좋으나 낫을 대고 집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과수원이나 곡식 밭에 가서 양껏 먹어도 좋다는 것입
니다. 그러나 집으로 가져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에도 남의 과수원에 가서 열매 따먹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남의 과수원에 가서 주인 허락 없이 따 먹으면 안 됩니다.

본문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바로 과수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대접하라는 뜻입니다. 다 먹게 만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먹어야 얼마나 먹겠습니까? 조금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얼마
나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아, 아무개 때문에 우리가 사과를 양껏 먹었다. 그 집 과수원이 잘되어야 하겠다’ 하고, 마음으로 얼마나 축복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눠 주라는 것입니다. 나눠 주어도, 동네 사람들이 먹어야 얼마나 먹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는 나눠 주는 분량의 몇 백 배가 있습니다. 또 자기 재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후한 인심이 돌아오고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발은 부자인데, 다윗이 그를 잘 지켜 주고 선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다윗이 한 번 대접해 달라고 했는데 나발이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수욕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나발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켜 나아갔는데 나발의 부인이 지혜롭게 처신하였습니다. 이 부인이 지혜가 있어서 말로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하고 잘 대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시므로 나발은 얼마 후에 죽었습니다(삼상25장). 나발이 자신이 가진 것을 주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주지 않고 있었어도 자기는 한 열흘 후에 죽었으니 결국 그 주지 않은 것이 제 것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줄 것은 주어야 합니다. 안 준다고 제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업하는 사람들은 돈 벌면 다른 사람들을 먹여야 합니다. 돈 벌면 일 년에 몇 번씩 먹이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부터 먹여야 하는가 하면 교회 교역자들부터입니다. 교역자들과 전도부인들에게 무엇을 조금 사다가 잘 대접하고, 그 다음에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전부 다 한 번 먹이고, 또 동네 사람들을 전부 다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대접하는 것은 얼마 안 가지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접해도 몇 십만 원이면 됩니다. 혹시 백만 원이 든다고 합시다. 잘 벌어서 교회 교역자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백만 원 정도 쓰면 어떻습니까? 일 년에 수 천 만원 벌었으면 괜찮습니다. 그리고 일 년 중 어느 날 먹이면 좋겠는가 생각해 보았는데, 성탄절에 먹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교회 돈으로 해도 좋지만, 아예 교회 돈으로 하지 말고, 교회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조금 내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한 몫 쓰는 것입니다.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씩 내서 소 한 마리를 사서 잡으면, 성탄절에 온 교회가 잘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을 청해서 잘 먹이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또 온 교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이제 우리 교회에서 그렇게 합시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일년에 몇 번씩 대접하도록 하십시다. 그러면 복 받습니다. 대접하는 사람은 복 받고, 대접을 받는 사람은 잘 먹습니다.

그런데 잘 먹는 것이 큽니까, 복 받는 것이 큽니까? 대접을 받는 사람보다 대접하는 사람이 복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 밖에 모르고 살면 돈 벌어서 남한테 욕을 먹고 인심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망하면 주위에서 기뻐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살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도와주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돈 벌게 해 주시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일에 한 몫씩 쓰는 것입니다. 돈 버는 사람은 50%는 바칠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즉 교회의 일과
전도하는 일, 또 사회에 돌려주는 일과 구제하는 일 등에 한 50% 쓸 예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잘 되는 법입니다.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쌓아 놓기만 하면 망합니다. 얼마 가다가 한 절반 써야 안 망합니다. 다 쌓아만 놓으면 공산당이 일어나서 때려 부술 날이 옵
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는 것이 상책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얻어먹는 사람은 주인이 줄 때 먹어야 합니다. 주인이 허락 하지 않았는데 과수원에 가서 열매 따먹고 다니다가 매 맞지 말고, 주인이 줄 때 먹으라는 것입니다. 줄 때 먹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주지 않을 때는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017년 1월 18일 수요일

신명기 22:1-30 성도의 생활 (1)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도의 생활 (1)
신명기 22:1-30

1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네가 혹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릴지니 3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4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지니라 5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6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8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
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 흐른 죄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9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다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10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1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12입는 겉옷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13누구든지 아내를 취하여 그와 동침한 후에 그를 미워하여 14비방거리를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가로되 내가 이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15그 처녀의 부모가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 가지고 그 성읍 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16처녀의 아비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17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인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18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19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 씌움을 인하여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비에게 주고 그 여자로 그 남자의 평생에 버리지 못할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20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거든 21처녀를 그 아비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22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23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24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25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거든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26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치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 죽인 것과 일반이라 27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약혼한 처녀가 소리 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음이니라 28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통간하는 중 그 두 사람이 발견되거든 29그 통간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비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로 아내를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30사람이 그 아비의 후실을 취하여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지 말지니라

1.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이나 넘어진 것을 도와주라

본문 1-3절에 “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네가 혹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릴지니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형제의 소나 양이 길을 잃어버렸을 때에 잃어버린 길을 찾아주라는 말씀입니다. 길을 잃어버린 가축에게 길을 찾아주고 주인을 잃어버린 가축에게 주인을 찾아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길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일을 배우고, 또 주인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주인을 찾아서 인도하는 일을 배우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짐승이라도 바른 길로 인도해주고 주인을 찾아주는 것처럼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갈 길을 알지 못하고 곁길로 나가 바른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주인을 잃어버리고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바로 인도해주는 일을 우리가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4절에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넘어지고, 쓰러져 있는 것을 일으켜 세워주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먼저 일어서야 됩니다. 그리
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일, 전도하는 일, 심방하는일, 권면하는 일, 길을 잃어버린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 주인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주인을 찾게 해 주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이 일을 우리로 하여금 잘하게 하기 위해서 짐승에게 먼저 행하면서 배워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주인에게로 인도하며, 쓰러진 것을 일으켜 세워주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또 물건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잘 돌려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돌려주지 않으면 그것은 도적입니다. 특별히 모인 때에 남의 물건을 잘 돌려줘야 됩니다. 기도원의 물건을 차지하지 말고 사용했으면 빨리 돌려줘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남의 물건을 구별할
줄 알고, 돌려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사람을 주인에게로 돌리고, 길 잃어버린 것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일을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잘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소나 양 길 잃어버린 것 만나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주인을 찾아주라고 했습니다. 남의 것을 돌려보내는 정신! 자기 것이 아니면 가지지 말고, 남의 것을 돌려보내는 정신을 가져야만 하나님 앞에 영광이 돌아가고 자신도 바로 섭니다. 남의 것을 돌려보내지 않는 사람
은 성경대로 하는 사람이 못되고, 하나님께 죄 짓는 것입니다. 양심을 비뚤게 쓰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얻어 썼으면 돌려보내고, 길에서 남의 물건을 얻었으면 주인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기도원 물건도 쓰면 반드시 그 자리에 갖다놓아야 합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은 돌려보내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또 그래야 사람이 바로 됩니다. 남의 것이나, 교회, 기도원에 있는 것을 갖다가 자기가 내내 사용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죄 짓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신주머니 하나 만들어놓으면 웬만하면 다 없어집니다. 너무 없어져서 페인트로 창광교회라고 썼는데 쓴 그대로 갖다가 다들 기워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창광교회라는 글자가 다 있는데, 그러면 어디로 가든지 창광교회 것인 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되었습니까? 와서 말을 해서 좀 달라고 하면 신주머니만한 것 하나 안 주겠습니까? 신주머니나 바가지나 자기 것 아닌 것을 가져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무슨 도구 같은 것도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합니다. 다 잃어버립니다. 교회 것이 어디에 가져갔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남이 잃어버린 것은 주운 사람은 주인을 찾아주고, 교회 것은 교회로 돌려보내고, 기도원 것은 기도원으로 돌려보내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번에 기도원에 망치를 한 20개 이상 사왔는데 지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다 어디 갔다고 합니다. 20개가 아니라 100개 사도 다 없어집니다. 하나씩 갖다가 기도원 사경회 기간 중에 산에다가 무슨 천막 친다고 뚝딱하고 거기 놔두는 것입니다. 낫, 톱, 삽도 몇 십 개 사왔는데 몇 개 안 남았습니다. 산에 가보니까 땅에 파 묻어놓고, 한 절반은 흙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다 내버리고 돌아간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려면 그런 것을 바로 해야 합니다. 기도원 물건을 가지고 산에 갔으면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지, 무엇 때문에 사방에 내버리고 돌아갑니까? 그러면 다음에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부터 바로 서십시오. 

2.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라

본문 5절에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외식하지 말라

외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과 겉이 다른 것이 외식입니다. 속은여자인데 의복은 남자이면 이것이 외식 아닙니까? 여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어야 되고, 남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어야 됩니다. 요새는 비슷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구별이 되도록 여자는 여자같이 하고 다녀야 하고 남자는 남자같이 하고 다니라는 말씀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라는 말씀은 여자의 위치를 지키고, 여자의 행위를 하고, 여자의 직무를 다하고, 여자의 행동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자가 남자로 나타나면 외식입니다. 여자는 여자로 나타나야지, 왜 남자로 나타납니까?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됐어도 여자는 여자로 나타나야지, 여자가 남자로 나타나면 되겠습니까? 또 남자가 여자로 나타나고 그것은 다 성경에 보면 가증하다 하였습니다. 여자는 여자이고 남자는 남자이고, 외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속과 겉이 다른 것이 외식입니다. 속과 겉이 다르지 않고 그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속이 여자이면 여자로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속이 남자이면 남자로 나타내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자로 냈으면 남자로 나타내야 되고, 여자로 냈으면 여자로 나타내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외식하면 안 됩니다. 속에 있는 대로 나타나야 됩니다. 속에 딴 생각을 가지고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르게 나타나고 이런 것은 다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여자가 남자 의복을 입고, 남자가 여자 의복을 입는 것은 가증한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나 진실해야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진실이고, 둘째도 진실이고, 셋째도 진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속에 있는 그대로 우리는 나타나고, 속이 잘못됐으면 회개하고 바로 서서 바로 선 그대로 나타나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위치와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라

또 남녀를 무론하고 각자가 자기 위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3절에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다 머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머리가 있고 머리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머리가 다 있습니다. 제 윗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 의복을 입고, 여자가 남자 의복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바라는 것입니다. 제 윗사람이 없는 것처럼 교만하고 안하무인격으로 나가고 윗사람을 무시하고 자기 위치를 안 지키는 것은 다 머리를 무시하는 죄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사람, 머리를 잘 받드는 사람, 자기 직무를 잘 감당하는 사람, 여자는 여자의 직무를 잘 감당하고, 남자는 남자의 직무를 잘 감당하는 사람,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는 사람, 이런 성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진리 문제에 있어서도 외식하지 말고 진실하게 하고, 자기의 직무를 감당하고 위치를 지키고 머리를 잘 받들고, 질서를 유지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 이 성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이대로 못 한 것은 회개하고 이제부터 이대로 하기를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첫째는 외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여자로 나타나고, 남자는 남자로 나타나야지, 여자인데 남자인 체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속과 겉이 다른 것은 외식입니다. 그런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위치와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자기머리를 알아야 합니다. 윗사람을 알아야 하고,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하
고, 자기 본분을 다 할 줄 아는 성도가 합당합니다. 

3. 어미 새와 그 알이나 그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라

본문 6-7절에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새를 잡아먹을 때 어미 새와 새끼 새 그리고 알을 다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알이나 새끼를 먹을 때는 어미는 놓아주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말살을 시키는 정도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를 잡을 때에 새와 새끼와 알을 다 잡아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어미 새는 놓아주고 알이나 새끼를 잡아먹으라는 것입니다. 다 잡아먹으면 멸종이 되어서 그 다음에는 새가 다 없어질 것이 아닙니까? 우리도 이런 법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
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이런 법이 있다고 합니다. 작은 고기는 못 잡아먹도록, 몇 센티 이하는 못 잡아먹도록 한다고 합니다. 잡아도 도로 놓아주어야 된답니다. 전복도 큰 것만 따다 먹고 작은 것은 못 따온다고 합니다. 표준치가 있다고 하는데 표준치 이하를 잡아오면 경찰한테 잡혀서 벌금을 문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해변으로 나갔는데 전복이 많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무조건 잡아 가지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식입니다. 모조리 씨종을 말려서 잡아 들여오는 것입니다. 들어와서 경찰한테 잡혀서 작은 것은 도로 다 놓아주고는 벌금을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큰 것은 잡아먹어도 작은 것은 자라나서 늘 계속 씨종이 남아있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조금 있으면 아마 그런 법이 생길지 모릅니다. 또 무슨 물고기 같은 것이 알을 가진 때에 안 잡아먹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을 가질 때는 조금 두었다가 알을 다 낳은 다음에 잡아먹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명태나 조기 같은 것의 알을 보면 한 마리가 아니고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수 만 마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수 만 마리를 낳을 것인데 잡아서 먹으면 수 만 마리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미도 없어지고 알도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두었다가 수 만 마리의 알을 낳은 다음에 잡아먹으면 수 만 마리가 내내 남아 있을 것 아닙니까? 알 가질 때 못 잡는 법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새를 잡아먹어도 무자비하게, 잔인하게 잡아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씨종을 남겨두고 잡아먹으라는 것입니다. 자비와 긍휼을 언제나 떠나지 않게 하고 앞날의 소망, 물고기까지라도 앞날의 소망을, 씨종이 멸망하지 않도록 새 같은 것도
앞날을 생각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모든 일에 있어서 앞날의 길을 열어주면서 아주 멸종시키는 정도로 무자비하게 하지 말고 길을 열어주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전쟁을 해도 도망칠 길을 열어주면서 전쟁을 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씨종을 멸망시키는 전쟁은 그것은 아주 무자비한 전쟁입니다. 대동아 전쟁 때에 미군 함대가 일본을 공격할 때에도 뒤로 도망칠 길을 열어놓고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뒤로 도망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뒤는 아예 함대가 없고 앞에서만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도망칠 길을 열어놓고 공격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삥 둘러 포위하고 몰살을 하여 씨종을 다 멸망시켜놓으면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이 전쟁을 하지만 도망칠 길을 열어놓고 하는 것입니다. 앞길을 열어주면서, 때려도 앞길을 열어주면서 때리란 말입니다. 때려도 앞길을 열어주면서, 장래를 위해주면서, 자비를 베풀면서 그렇게 하면서 때리는 것입니다. 때릴 일이 생겨서 부득불 때려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때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앞길을 좀 생각해주면서, 열어주면서 때리란 말입니다. ‘어미는 놓아주라’는 것은 앞길을 열어주라는 것이 아닙니까? 잡아먹지만 앞에 소망, 번식할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때려도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면서 때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을 때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면서 장래를 잘되게 하면서 때리는 것입니다. 또 어른을 때려도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면서 때리는 것이고, 전쟁을 해도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면서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대하든지 긍휼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하고 아무리 잡아먹는 짐승에 대해서라도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면서 잡아먹는 것처럼 우리가 모든 일에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원수에게도, 원수라고 해도 원수를 때린다할지라도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면서 해나가는 일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때려도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면서 때리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한
다’는 말입니다. 장수라는 것은 잘된다는 뜻입니다. 내내 잘된다는 것입니다. 왜 잘 안되겠습니까? 잡아먹어도 긍휼과 앞길을 열어주면서 잡아먹으니 내내 잘 될 것 아닙니까? 오늘 다 잡아먹으면 내일 무엇을 먹고 살겠냐는 말입니다. 내일 잡아먹을 것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오늘만 생각하지 말고 내일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잡아먹는 것만, 오늘 먹고 싶은 생각만 하지 말고, 배고픈 생각만 하지 말고, 내일도 살 궁리를 하라는 것입니다. 내일의 소망도 가지고 오늘 잡아먹으란 것입니다. 그것이 장수하는 법입니다. 복 받고 장래에 잘되는 법입니다. 언제나 긍휼을 가지고 하고 앞길을 열어주면서 모든 일을 하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복 받고 잘됩니다.

4. 집을 건축할 때 난간을 만들라

본문 8절에 “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 흐른 죄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집을 건축할 때에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난간이라는 것은 사람이 안 떨어지게 막는 것입니다. 사람이 안 떨어지게 막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늘 조심하고 안 떨어지게 미리 예방을 하면서 모든 일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면서, 손해 보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잘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데 그 난간 하나 안 만들어서 그리로 사람이 떨어져 죽으면 얼마나 손해입니까? 그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언제나 만사를 견고하게
하고 사람의 생명이 다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매사를 견고하게 하면 사람 생명을 많이 구할 수 있습니다.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서 대한 항공기가 추락해서 한 80-90명 죽었는데, 그것도 사실은 난간을 잘 못 만들어서 죽었습니다. 난간을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먼저 리비아의 항공탑에서 기계 고장이 생긴 것이 몇 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개가 짙은 날인데 항공탑에서 연락이 잘 안되고, 또 조종사가 안개 짙은 날은 돌아와야 되는데 돌아오라는 소리를 리비아에서 안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견고하게 되어 있지 못한 증거입니다. 아마 조종사도 부주의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난간을 견고하게 만들어서 사람이 안 떨어지게 하라는 것은 아주 틀림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안개가 끼면 몇 바퀴에서 자동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고, 제대로 했으면 사람이 많이 안 죽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비가 조금만 오면 사람이 죽는다고 소문이 들썩하고 나는데, 그것도 사람이 난간을 잘못 만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침수구역에 집을 못 짓게 만들고, 높은 곳에 올려 집을 짓게 만들고, 하수도를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수도를 좁게 만들고, 강을 좁혀 논으로
만들어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미처 못 내려가서 침수가 됩니다. 강을 널찍하게 해 놓으면 될 것인데, 그러한 것도 난간을 잘못 만든 것입니다. 안양은 언젠가는 또 물에 잠길 것 같습니다. 안양에 있는 사람들은 물에 잠길 것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있어야 합니다. 난간을 잘못 만들었습니다. 김포 공항 나가는데 인공폭포 다음에 안양천교 다리가 있습니다. 병목처럼 좁게 만들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어떻게 내려가겠습니까? 여기서 온 비, 안양에서 온 비, 시흥에서 온 비 전부 다 그리로 내려가야 되는데 너무 좁기 때문에 안양은 언젠가는 또 잠깁니다. 한 14년 전에 잠기지 않았습니까?

‘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최악의 경우에도 사람이 상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모든 것을 견고하게 하고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겨서 그만큼 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도 그렇지만 믿는 일에
있어서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사전에 방지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타락이 안 되도록, 떨어지지 않도록, 미혹을 안 받도록, 미리 난간을 만들어 떨어져 죽을 곳은 아예 못 떨어지게 만들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사상적인 난간을, 제도적인 난간을 잘 쳐서 악한 사상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에 못 빠지도록 하고, ‘이리로 가면 죽는다’하고 안 된다고 막아놓으라는 것입니다. 제도적으로 막아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되어 죽음의 길로 가지 못하도록 난간을 잘 만들어 놓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특별히 우리 중․고등부, 청년부 학생들은 떨어져 죽기 쉬운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간을 만들어 놓으려고 7월달에도 중고등 학생부, 청년부들을 모아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릇된 사상에 대해서 알려주고 거기에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사이비한 종교를 가르쳐 주고,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는 이러한 일들이 난간을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난간을 잘 만들어 놓으면 안 떨어집니다. 실수해도 난간에 걸려서 안 떨어집니다. 난간에 걸리도록 만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집을 지을 때는 난간을 잘 만들라는 것입니다. 든든하게, 떨어지려고 해도 못 떨어지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요새 하는 것을 보면 참 한심합니다. 2층을 올라가는데 계단의 옆을 널찍하게 하나씩 막아놨습니다. 한 장에 하나씩, 널찍하게 막아놨으니 아이들이 그리로 쑥쑥 들어갔다 나갔다 합니다. 아이들이 그 안에 쑥 들어갔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 어리석습니다. 난간을 할 때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머리를 대보고 해야 합니다. 창광교회는 늘 그렇게 하곤 합니다. ‘아이들 데려오라’하면 데려옵니다. 둘을 세워 놓습니다. 난간 세워놓고 여기에 한번 머리를 대보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쏙 들어가면 안 됩니다. ‘조금 더 좁혀라’하고 좁히니 머리가 안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난간할 때에 아이들 머리 대보고 하도록 하고, 머리 안 들어가도록 하고, 다음에는 옆으로 건너는 것 없이 사다리를 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난간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널찍하게 해서 그대로 쑥 나가게 만들어 놓고, 또 난간에 올라가도록 만들면 못 씁니다. 난간을 해도 아이들이 올라가지 못하게 만들고, 들어가지도 못하게 만들고 철저하게 만들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신앙의 난간을 잘 만들라는 것입니다. 가려고 해도 못 가게 만들고 가면 죽는다고 못 가게 난간을 잘 만들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난간이 없으니 쑥 나갔다가 쑥 들어왔다 쑥 떨어지고 맙니다. 난간을 잘 만드는 생활, 아이들에게 특별히 난간을 잘 만들어서 기르고 또 노인들 난간에 안 떨어지도록 만들고 우리가 초신자들 난간에 안 떨어지도록 난간을 잘 만들어서 보호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집을 지을 때 난간을 만들어놓으라고 했습니다. 난관 안 만들었다가 다른 사람 떨어져죽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 짓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가지 않도록 난관을 잘 만들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에 대한 신령한 뜻은 다른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미리 사전에 방지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타락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고, 또 신앙 사상이 탈선되지 않도록 사전에 사상 교육, 교리 교육을 잘 시켜서 위험한 곳에 떨어져서 신앙이 타락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5. 혼직(混織)하지 말고 옷에 술을 만들라

본문 9-10절에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다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두 종자를 섞어 심지 말고 하나만 심으라는 말입니다. 포도원 할 때 두 종자 심지 말라고 했습니다. 포도원에는 포도만 심고 다른 것은 심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섞어 심지 말라는 것입니다. 밭에 씨를 뿌릴 때 두 씨를 섞어서 심지 말고 하나만 심으라는 것입니다. 옥수수면 옥수수, 포도면 포도, 배면 배, 보리면 보리, 밀이면 밀 하나만 심어야지 둘을 섞어서 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혼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비 진리를 갖다 섞지 말고, 신본주의에 인본주의를 갖다가 섞지 말아야 합니다. 가루에 누룩을 넣어 혼합하면 둘 다 썩습니다. 따라서 진리는 진리대로 다른 것 섞지 말고 순수한 진리를 그대로 보수해나가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섞거나 양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성경 가르칠 때에도, 인본주의, 세상을 가르치지 말고 말씀만 전해야지 다른 것을 섞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튼 소리를 섞지 말라는 말입니다. 성경만 가르쳐야 됩니다. 성경을 가르치다가 다른 것을 섞어 놓으면 포도원에 다른 종자를 심는 것과 같은데 그렇게 하면 둘 다 빼앗긴다고 하였습니다. “소산이 다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전하다가 비 진리를 섞어 놓으면 둘 다 망치게 됩니다. 가루하고 누룩하고 섞어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가루하고 누룩하고 섞어 놓으면 누룩이 가루를 다 썩히고 맙니다. 그것은 실패합니다. 가루는 가루대로 해야지, 누룩에다 섞어 놓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은 섞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라

또 밭 갈 때는 소와 나귀하고 같이 멍에를 매어서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는 소와 나귀를 같은 멍에를 메우고 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소하고 나귀하고는 같이 멍에를 멜 수 없습니다. 종류가 달라서 소는 소대로 갈고 나귀는 나귀대로
갈아야지 둘을 같이 멍에를 메워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멍에 메는 것 어떻게 멥니까? 두 마리를 놓고서 막대기를 두 마리가 메고 나가는 것입니다. 가운데 연장을 하나 가지고 논이나 밭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쪽에 소 한 쪽에 나귀가 멍에를 메면 종류가 다르니 한 쪽은
빠르게 마련입니다. 한 쪽이 빠르면 어떻게 갈아지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러니 같은 종류끼리 멍에를 메야지, 종류가 같지 않으면 멍에를 멜 수 없고, 같이 멍에를 메면 실패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하면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하나는 빨리 가는데 하나는 천천히 가면 안 되고, 하나는 앞으로 가는데 뒤로 가면 안 됩니다. 둘은 사정이 다르니까 방향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맞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종류가 다르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하고 믿지 않는 사람하고는 종류가 다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멍에를 같이 메고 나갈 수 있습니까? 하나는 빨리 가고 하나는 안 가고, 하나는
주저앉고 하나는 일어서고, 하나는 뛰고 하나는 뒷걸음 치고, 믿지 않은 사람하고 믿는 사람하고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일이 안 됩니다. 둘 다 안 됩니다. 또 신앙이 같지 않은 자와 멍에를 같이 멜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깨달은 진리가 다릅니다. 깨달은 진리가 다른 사람과 멍에를 같이 메어 놓으면 같이 나갈수가 없습니다. 깨달은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이렇게 하고 나는 저렇게 하자고 하는데, 공동보조를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신앙이 같지 않은, 깨달은 진리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멍에를 메고 공동보조를 취해 나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소와 나귀에게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같이 하면 반드시 안 맞습니다. 같이 하면 반드시 그 멍에가 부러지고 다음은 실패하고 관둡니다. 안 되게 됩니다.

혼직하지 말라

본문 11절에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섞지 말라는 것입니다. 양털과 베실을 섞어 짜는 것, 진리와 비 진리를 혼잡하게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대로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겉옷 네 귀에 술을 만들라

본문 12절에 “입는 겉옷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15장 38-40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
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옷단에 술을 달아 술을 볼 때마다 계명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그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옷을 입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입고, 옷을 벗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벗고, 옷을 입고 다닐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알고 감사하고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주를 위해서 살기를 결심하면서 옷을 입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입던지, 안 입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면서 모든 것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중심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중심으로 살고, 말씀중심으로 의복을 입고, 의복을 입을 때나 벗을 때나 볼 때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면서 모든 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6. 아내에게 누명을 씌우지 말라

본문 13-19절에 “누구든지 아내를 취하여 그와 동침한 후에 그를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가로되 내가 이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그 처녀의 부모가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 가지고 그 성읍 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처녀의 아비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인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 씌움을 인하여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비에게 주고 그 여자로 그 남자의 평생에 버리지 못할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결혼해서 살다가 아내에게 누명을 씌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누명을 씌우면 안됩니다. 성읍문 장로에게 가서 재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재판을 받아서 부모는 처녀인 것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처녀가 확실하면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서 많이 때리란 말입니다. 때리고는 벌금을 일백 세겔을 받아서 여자의 아비에게 주고 평생 동안 그 여자를 버리지 못한단 말입니다. 일백 세겔이란 돈은 상당히 많은 돈입니다. 예수님께서 몇 세겔에 팔렸습니까? 은 삼십 세겔에 팔렸으니 상당히 많은 돈입니다. 예수님의 3배 값입니다. 일생동안 종살이 하는 종이 삼십 세겔에 팔렸는데 세 사람 이상의 종 값입니다. 많은 돈을 받아서 아버지에게 주고 일평생 그 여자를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0-21절에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거든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
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일이 참되면, 그 처녀인 표적을 얻지 못하면 처녀의 아비 집에서 끌어내다가 돌로 쳐서 죽이란 말입니다. 간음한 여자는 당장 죽이라는 것입니다. 

7. 남녀가 통간한 죄에 대한 처벌법

본문 22절에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둘 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둘 다 죽여서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3-27절에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
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거든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치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 죽인 것과 일반이라 남
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약혼한 처녀가 소리 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다른 남자와 간통을 하면 둘 다 잡아 죽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여자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남자만 죽이고 여자는 아무 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들에서 소리를 쳐도 말려주는 사람이 없어 당했기 때문에 처녀는 아무 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읍에서 소리 지르지 않고 당했으면 그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둘 다 죽입니다.

본문 28-29절에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통간하는 중 그 두 사람이 발견되거든 그 통간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비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로 아내를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벌금을 내란 말입니다. 대가를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처녀와 결혼하고 일평생을 버리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십 세겔은 돈이 얼마 입니까? 종 한 사람이 삼십 세겔이니 일생동안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한 사람분하고 이십 세겔을 더 내야 됩니다. 상당히
많은 돈입니다.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통간했으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합의가 되면 결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벌을 받아야 되고,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사람이 그 아비의 후실을 취하여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비가 죽은 다음에도 아비의 후실을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면 죄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20장 11절에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둘 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간음하는 죄에 대해서 철저히 하나님께서 이렇게 벌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간음하는 죄가 하나님께 상당히 무서운 죄인 줄 알고 유부녀이던지, 처녀이던지, 약혼한 사람이던지 간음하는 것은 다 죄입니다. 상당한 대가를 다 물어야 됩니다. 또 아내에게 누명을 씌우지 말고 욕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항상 7계명에 빠지지 않도록 믿는 사람이 늘 힘을 써야 됩니다. 결혼을 해도 처녀나 총각이나 정당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이성문제에 대해서 바로 해야만 하나님 앞에 믿음도 바로 지키고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와 같은 시대에, 노아 시대 같은 시대에 우리가 7계명에 대해서 늘 두렵고 떨림으로 이러한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항상 힘을 쓰고, 만일 이런 죄 가운데 빠진 사람이 있으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바로 서야 됩니다. 또 거기서 나와야 됩니다. 바로 서서 믿음에 서 나가도록 해야만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