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생활 (2)
신명기 23:9-25
9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10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11해질 때에 목욕하고 해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12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13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14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15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16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17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 18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19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20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21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22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23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 24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25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신명기 23:9-25
9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10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11해질 때에 목욕하고 해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12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13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14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15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16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17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 18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19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20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21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22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23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 24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25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1. 진영을 정결케 할 것
본문 9-11절에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꿈에 정욕으로 범죄를 한 경우에 더러워진 줄 알고 목욕을 하고 해가 질 때에 진에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꿈에라도 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박인선 목사는 꿈에서 죄를 지은 것을 가지고 회개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꿈에서 죄를 질 수 있습니다. 꿈에서 죄
를 지은 것을 가지고도 회개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항상 근신해야 합니다. 경건과 근신을 생명으로 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데는 경건하고 근신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전쟁을 할 때에는 항상 경건, 근신하면서 여호와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가는 저희가 되어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정성을 들일 때는 목욕재개를 하지 않습니까? 목욕재개(沐浴再改)라는 것이 근신입니다. 굿을 하는 사람들도 굿을 하기 위해서 정성을 많이 들입니다. 며칠 전부터 목욕재개하고 우물을 발로 덮어놓고 며칠 동안 외부인이 먹지 않게 하며 정성을 많이 들이며 굿을 하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가 가서 보니 어떤 사람이 굿을 하려고 말을 맷돌에 메어 돌려서 떡방아를 짓더랍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 ‘예수’라고 갑자기 했더니 말이 와당탕 뛰는 바람에 다 뒤집혀 엎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굿을 하려 했던 사람들이 ‘이 영감 잡아 죽여라’하며 따라 오
더랍니다. 굿을 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어떤 예수쟁이 영감이 와서 산통 다 깨트렸다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도 그냥 달아나니 잡을 수가 없었답니다. 잘 뛰었나 봅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최권능 목사가 그 부근의 어느 교회를 갔는데 한 사람이 인사를 하더랍니다. 목사님 대단히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며 인사하더랍니다. 무엇을 잘못했냐고 하니 자기가 떡방아를 했던 사람이랍니다. 목사님이 와서 “예수!”하는 바람에 다 뒤집혀 엎어져서 제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뒤집혀 엎어진 것을 가지고 제사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다 집어 치우고 다음부터 예수님을 믿어서 오늘날에 이만치 됐다고 그러더랍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도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정성이 깨지면 다 그만 둡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경건하고 근신하고 정성을 들여서 하나님을 섬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근신하고 경건할 줄 알아야 됩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남 비방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언제나 근신하고 경건하게 하나님께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예배시간에 와서 다 깨뜨려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항상 우리는 몽매간에라도, 꿈속에라도, 밤에 잘 때라도 죄 짓지 않도록 하고 언제나 경건한 생활을, 근신하는 생활을 항상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2-13절에 “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너의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쟁하러 나가서 진치고 있다가 대변을 볼 때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대변을 잘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삽을 가지고 가서 땅을 파고 거기다 대변을 보고 그 다음에 돌아서서 묻으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성도의 진이 이정도로 깨끗한 진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데로 가서 소변보고, 아무데로 가서 대변보고, 가다가 밤에 또 밟고, 자기가 대변보고 자기가 밟고 이렇게 되면 얼마나 더럽습니까? 하나님은 더러운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첫째는 심령이 깨끗해야 되겠고, 둘째는 외부적으로도 모든 단체생활에 있어서 성결을 지킬 줄 알아야 됩니다. 질서를 유지할 줄 알고, 머리를 순종할 줄 알고, 시키는 사람을 순종해야 합니다.
사경회 기간 중 기도원에 모일 때에, 자동차 주차도 인도하는 대로 순종을 해야 됩니다.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습니다. 방송 나오는 것을 보니 ‘몇 호차 빼주세요’하는데 한참 있다 보니 또 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안 빼는 것입니다. 몇 번을 방송해도 안 뺍니다. 그것은 믿음을 못 지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배우고 ‘주여 주여’를 해도 그것도 못 하는 자가 무슨 믿음을 지키는 자입니까? 윗사람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지도자를 모르는 것입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하
였습니다. 윗사람을 순종할 줄 알고, 질서를 지키고,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남의 물건을 돌려줄 줄 알고 아무리 내버려도 누가 안가지고 가야됩니다. 시계를 내버려도 안 가져가고, 돈 가방을 내버려도 안 가져가고 찾아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데나 대변보고, 소변보고, 지린내가 사방에 나도록 만들고, ‘밤에 누가 보겠냐 하며 시커먼 곳 아무데나 가서 봐라’하며 대변 하나를 변변히 못 가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역자들도 소변 잘 못 보는 교역자 많습니다. 교역자들 망신 좀 시켜야겠습니다. 저 아래 교역자들 기숙사가 있습니다. 그 기숙사의 쪽방이 뒤로 일곱 개, 앞으로 일곱 개가 있습니다. 요새는 모르겠고 이전에 그 방들에 교역자들이 밤에 일어나서 소변을 어디에 보느냐 하면, 문 앞 넉자 난간 밖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 아래 보면 소변에 다 젖어서 냄새가 나고 그럽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로 할 게 아니다. 난간을 막아라’ ‘얼마나 막아야 되겠습니까?’ ‘소변을 보지 못할 만큼 막아라’ 난간에 올라서면 떨어지니 소변을 보지 못할 만큼 만 막아 놨습니다. 또 구멍을 뚫으면 그 구멍으로 보면 안 되니 구멍도 뚫지 않고 난간만 막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소변을 문 앞 난간에서 안 봅니다. 안 보는지, 못 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대소변 보는 것부터 잘 보고 성도의 진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어디든 깨끗하게 하고서 다니는 버릇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다르다’ ‘참 하나님 공경하는 사람들이 다르다’ 하며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도 가져가지 말고 다 돌려주고 깨끗하게 만들고 자기의 천막 쳤던 자리를 종이 하나, 비닐끈 하나 안 떨어지게 만들어 누가 봐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산에 기도를 하려고 자리 하나를 닦아 놓으면 거기에서 사람들이 술을 먹고 놀다가 갈 때는 거기에 대변을 보고 갑니다. 자기는 다음에 다시 안 올 생각인 것입니다. 민주주의, 선진국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니 믿는 사람들이 자기 있는 장소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제대로 할 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신령한 교훈이 있는데 대변을 통한다는 것은 속에 부패한 것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믿는 사람 속에 부패성이 다 있는데 그 부패성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나온다고 하면 즉시로 다 땅에 파서 묻어 버리라는 말입니다. 혈기, 욕심, 남을 미워하는 마음,시기, 원망, 불평, 음란한 마음, 탐심 다 부패성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패성이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분한 마음이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되고 만일 나오면 즉시 처분해 치워야 합니다. 만일 나오면 해가 지기 전에, 그 날이 다 가기 전에 땅에 묻는 것처럼 완전히 없애 치우고 그 다음날은 새 사람으로 아무것도 없는, 시기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보기 싫은 것도 없고, 원수도 없고, 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어제는 내가 속상한 마음이 들어왔지만 내일 아침엔 속상한 마음이 있으면 안 됩니다. 어제는 시기했지만, 분한 마음이 생겼지만, 하룻밤을 잔 다음에는 다 없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땅에 묻지 못하고, 둘둘 굴리고, 어제 싼 것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고, 한 주간을 가고, 한 달을 가고, 두 달을 가고, 일 년을 갑니다. 이것이 무슨 믿는 것입니까? 마귀의 종이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해지기 전에 다 풀어야 합니다. 인간이니 섭섭한 마음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억울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학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지기 전에 다 풀어야 합니다. 과거에 잘 해준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못한 것은 생각하지 말고 잘해 준 것을 생각해서 미워하지 말고 다 풀고 또 부패성이 나온 것이 있으면 해지기 전에 땅에 다 묻고,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 놓고, 없애 치워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 거룩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진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여호와의 진입니다. 여호와의 진을 치고 여호와의 전쟁을 하는 마당인데 여기에 더러운 것이 있으면 어떻게 전쟁을 하겠습니까? 여호와의 진은 거룩하게 하고, 서로 화평하고, 사랑하고, 단결하고, 하나가 되어서 여호와의 전쟁을 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변을 잘 보고 보이지 않게 땅에 묻어 치워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산에 천막을 치러 갔었습니다. 가면 반드시 삽으로 화장실 하나를 파 놓았다가 안 보이게 다 묻어 놓고 옵니다. 그 다음에 끈 같은 것이나 휴지 한 장도 없이 다 가져다가 두 번 세 번 돌아가면서 확인을 해서 다 묻어놓고 깨끗하게 해놓고 옵니다. 누가 봐도 아주 깨끗합니다. ‘누가 왔다 갔나 이병규목사가 왔다 갔다’ 이름을 보지 않아도 다 압니다. 그런데 옆에 똥 싸 놓고 오고 종이, 깡통, 병 깨진 것이 있으면, ‘이거 누가 왔드랬나 이병규 목사? 이게 무슨 예수 믿는 자냐
그 딴것도 목사라고’ 이러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못하고 또 우리가 진리 운동을 하는데 그 진리가 바로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이 전하는 것이 뭐 바로 전하겠는가’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 성도가 있는 장소도 깨끗하게 할 줄 알고, 대 소변도 다 묻을 줄 알고, 꿈에라도 죄짓지 않도록 하며, 꿈에서 죄를 진 것도 회개 하여, 항상 경건하고 근신하는 태도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육신의 부패성 속에 있는 부패성 나오는 것을 완전히 다 묻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더 두고 나오면 안 됩니다. 해 지기 전에 묻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됩니다. 어제의 그 사람이 날 죽이려 했지만 오늘에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화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이고, 성도고, 또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같이합니다. 화목해야 같이 합니다. 똥덩이를 늘 놔두고서 늘 그것을 보면서 ‘네가 쌌니 네가 쌌지 네가 더럽니 네가 더럽다’하고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떠납니다.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더 두고 나오면 안 됩니다. 해 지기 전에 묻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됩니다. 어제의 그 사람이 날 죽이려 했지만 오늘에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화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이고, 성도고, 또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같이합니다. 화목해야 같이 합니다. 똥덩이를 늘 놔두고서 늘 그것을 보면서 ‘네가 쌌니 네가 쌌지 네가 더럽니 네가 더럽다’하고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떠납니다.
본문 14절에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대변을 잘 묻어야 하나님께서 그 진중에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안 묻으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한 사람이 대변을 보면 다른 사람도 옆에다 대변을 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하나 보니 누가 먼저 쌌나를 가지고 싸움이 납니다. ‘너 왜 여기에 봤느냐? 네가 먼저 봤으니 봤다, 네가 본게 더 많다’ 또 ‘네 똥이 냄새가 더 난다’ 이렇게 해서 그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참 한심합니다. 둘 다 묻어 치웠으면 깨끗할 것을 가지고, 서로 먼저 대변을 봤다, 많이 봤다, 냄새가 더 난다, 색깔이 시커매서 보기 싫다, 그런 것 가지고 싸울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 부패성들, 누가 부패성을 먼저 빼든지 똥 덩어리입니다. 그것은 누가 많이 나왔던 같은 똥 덩어리 입니다.
이것을 다 묻어 치우고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같이 계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이 더러운 것을 묻지 않으면, 부패성을 묻지 않고 그냥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묻어야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그 가운데 계십니다. 진중에 계셔서 선한 싸움을 잘 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에 승리하려면 더러운 것을 묻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을 묻어야 선한 싸움에 승리 할 수 있습니다. 몇 번 까지 용서 해주어야 합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이십니다. 우리는 몇 번을 용서 해줬습니까?
2. 도망하여 온 종에 대한 대우
본문 15-16절에 “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망명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이 성경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망명을 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받아주어야 합니다. 월남 피난민들을 우리 한국이 받아주는 것은 이 성경대로 한 것입니다. 받아 주는 것은 잘 한 것입니다. 도망쳐 왔는데 그들을 왜 돌려보냅니까? 받아줘
야 합니다. 또 이북에서 온 피난민들을 대한민국에서 받아줬기 때문에이북 사람들이 왔습니다. 받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종이 도망쳐 오면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말고 그를 영접해서 너의 성읍 중에 그 원하는 곳에 살게 만들어주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교훈은 종살이하던 곳에서 나오겠다는 사람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 죄악의 종, 마귀와 죄와 이 세상에서 종살이하던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와 영의 자유를 얻으려고 도망쳐 나오면 잘 영접하고 도와줘서 그들로 하여금 영의 자유와 생명의 세계로 와서 살도록 만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믿도록 만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신앙을 못 지키는 사람들이 나오겠다면 나오도록 만들어주고 어떤 면으로든 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직장도 알선해 주고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또 마귀의 종살이하다가 생명의 길을 찾아 나오는 사람은 우리가 전력을 다해서 도와주어 사람을 살리는 일, 자유와 생명의 세계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바른 진리를 믿겠다는 사람이 많고, 교회를 세워 달라는 곳이 많고, 신앙을 지키지 못해서 안 되겠다는 사람이 많고, 자기 있는 곳은 바른 교회가 없으니 교회를 세워 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가 그런 곳에 연보를 해서 개척 교회를 세우고, 교역자 보내서 그 사람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를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빌레몬에서 종살이하다가 돈을 훔쳐서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가 감옥에 들어와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 와서 바울을 통해 전도를 받아 영의 자유와 생명을 얻어 벌써 마
귀의 종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아무 곳에 가도 그 사람은 종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려 보낸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신앙을 못 지킬 것 같으면 돌려보내면 안되지만 빌레몬의 집에 가면 신앙을 더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돌려 보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영의 자유와생명의 세계에서 살고 다른 사람을 건질 줄 모르면, 도망쳐 나오려고 하는 데 안 도와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의 자유와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도로 돌려보내지 말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영의 자유와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인데 거기서 나오겠다는 사람을 도와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이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귀의 종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아무 곳에 가도 그 사람은 종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려 보낸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신앙을 못 지킬 것 같으면 돌려보내면 안되지만 빌레몬의 집에 가면 신앙을 더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돌려 보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영의 자유와생명의 세계에서 살고 다른 사람을 건질 줄 모르면, 도망쳐 나오려고 하는 데 안 도와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의 자유와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도로 돌려보내지 말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영의 자유와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인데 거기서 나오겠다는 사람을 도와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이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3. 창기의 번 돈은 여호와께 가증함
본문 17절에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는 음행하는 여자, 몸 팔아먹는 여자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미동은 남자 창기를 말하는데 이스라엘 가운데는 남자 창기도 있을 수 없단 말입니다.
본문 18절에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관에 여러 여자들이 있는데 남자 손님이 하나 들어오면 자기끼리 ‘야, 네가 들어가라
이번에 네가 들어가라’ 서로 남자손님이 오면 여자들이 하나씩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그런 여자들은 무슨 여자입니까? 창기, 개와 같은 여자들입니다. 이 남자하고 음행하고 저 남자하고 음행하고 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번 돈은 아무 선한 일에도 쓰지 못하고 네 하나님 전에 가져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둘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그런 장소에 가면 안 됩니다. 그런 곳에 취직하면 안 됩니다. 여관에 취직해서 그런 못된 짓을 하고 또 자기의 몸을 파는 곳은 여관 뿐 아니라 스텐드 바같은데도 술 먹고 춤을 춘 답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여자가 술 먹고 춤추면 다 창기입니다. 다른 것 있습니까? 남자도 그런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정조를 지키지 못하는 곳에 가 있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께 개와 같은 자이고 가증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번 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에 신령한 뜻은 신앙의 정조를 팔아서 번 돈, 자기의 몸을 팔아서 번 돈, 자기 몸을 죄에 팔아서 번 돈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믿음을 팔아서 번 돈은 합당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돈을 못 벌어도 믿음을 지키는 것을 기뻐하시지 신앙을 양보하고 믿음을 팔아 번 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또 음행은 하지 않았어도 성경을 어기고, 주일을 안 지키고, 신앙 양심을 어기고 번 돈은 다 신앙의 정조를 팔아 번 돈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 첫째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세상에서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하고 호사생활을 해도 믿음을 안 지키면 그것은 다 창기의 생활입니다. 믿음을 안 지키고 생활하는 것은 창기의 생활, 그 돈은 창기의 번 돈입니다.
야고보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되는 사람은 간음하는 여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
지 아니하고, 말씀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세상 따라가고 돈 따라가는 세상의 벗이 되는 사람은 간음하는 여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성경 따라 가는 것, 또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지 말라는 것, 자기의 직분 지키는 것보다는 먼저 세상 따라가고, 돈 따라가고, 잘 되는 것을
따라가고, 좋은 집을 따라 가고, 좋은 직장을 따라가서 돈 많이 벌고 좋은 자동차 사고, 좋은 집 사고, 호사스럽게 살면서, 연보 많이 해서예배당을 지어도 그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입니다. 창기의 번 돈입니다. 창기 노릇을 안 했어도 믿음의 창기입니다. 믿음의 창기 노릇을 해서 번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의 직분을, 자기 자리를 못 지켰습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따라 갔습니다. 돈을 따라 갔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창기이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은 창기가 번 돈입니다. 아무리 예배당을 지어도 하나님께 불합격입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가증하게 여기시고 서원을 한다든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돈을 못 벌어도 믿음을 지키는 것을 제일 첫째로 해야 합니다. 아무데나 가서 일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암만 돈을 못 벌어도, 직장이 떨어져도 아무데나 가서 일 하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일해서 먹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좀 잘 사느냐 못 사느냐 차이지 잘 살면 의복을 좀 좋은 것을 입느냐 좀 좋지 않은 것을 입느냐 이거지 그저 일하면 다 먹고 살게되어 있습니다. 어디가나 동서양을 물론하고 다 먹고 삽니다. 의복을 좋은 것 입으면 또 무엇을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알아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마지막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을 잡는 거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십자가를 지고, 믿는 일을 하고,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고, 영이 살면 이것은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을 파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창기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어볼 것이 하나 있을 거 같습니다. 비행기장 부근에 창기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교회에 나옵니다. 나와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거기서 일을 하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연보도 많이 냅니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물어 볼 것 같습니다. 연보를 받아야겠습니까? 받지 말아야겠습니까? 또 술집 여자도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창광교회도 혹시 그 앞에 술집이 많기 때문에 더러 나올 것 같습니다. 술집 여자들이 새벽기도 때 술 냄새를 풀풀 날리며 이따금 나옵니다. 밤새도록 남자에게 술을 팔다가 새벽기도 나옵니다. 그것을 받아줘야겠습니까? 받아주지 말아야겠습니까? 연보하는데 가만히 지키고 있다가 ‘넌 연보하지 말아라’ 그래야겠습니까? 그것은 받아줘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 때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옵니다. 회개하는 마음
으로 머리를 푹 숙이고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보기도 부끄럽고 하나님 보기도 부끄럽고 그래도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줬습니까? 안 받아줬습니까? 누가복음 18장 10-13절에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받아주셨습니까? 세리도 그 창기와 같은 것입니다. 과거에 창기 노릇을 했어도, 세리 노릇을 했어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받아 주십니다. 또 연보도 받아 주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으로 나오면 받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기 노릇을 하지 않았어도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몇 가지 잘한 것을 가지고 나오면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자기는 죄인 가운데 가장 괴수인 줄 알고 자복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십니다.
4. 형제에게 이식을 받지 말고 꾸어 줄 것
본문 19절에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형제에게 돈을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는 것은 이자놀이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의 이자도 받지 말고 또 곡식의 이자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곡식의 이자는 어떻게 받습니까? 봄에 쌀 한 가마니 꾸어 주고 가을에 가서 한 가마니하고 두말을 받습니다. 꾸어주는 사
람은 먹고 남아서 꾸어 주고, 이자를 내는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서 꾸어 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본전 물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자로 두말을 더 갚아야 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국인이나 외부사람에게는 우리가
이자를 받아도 되지만,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끼리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한테는 이자를 받아도 됩니다. 어떤 믿는 사람은 형제에게는 꾸어 주지 않고 안 믿는 사람에게만 꾸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형제에게서는 이자를 못 받게 하니 안 믿는 사람만 꾸어주고 이자를 받는 것입니다. ‘이자 받을 수 있으니 안 믿는 사람 꾸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형제에게는 안 꾸어 주고 안 믿는 사람에게 꾸어 주는 사람은 돈만 아는 사람이고 형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과 의무와 도와주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복 받겠습니까? 돈만 알고, 하나님께 대한 사명도 모르고, 형제 우애도 없고,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복을 받겠습니까? 돈 보다도 형제가 귀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서 피로 값 주고 산 형제인데, 피로 값 주고 산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돈만 알고 안 믿는 사람에게만 꾸어주려고 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시골에서 곡식 꾸어주고 이자를 받는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이자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줄 믿고 다시는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를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것을 긁어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겠다면 그것이 형제된 도리입니까? 이자를 받지 말고 꾸어주어야 합니다. 이자를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 성경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에 이자도 넣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끼리 이자를 안 받고 꾸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자를 안 받고 꾸어주는 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이것 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개가 이자를 안 받고 돈을 꾸어줬다’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은행에 저금해서 있는 것을 꾸어주는 경우에는 은행이자 정도 부담 시키는 것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안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안 받고 그저 무이자로 꾸어주는 것이 제일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일입니다. 무이자로 꾸어주는 사람 때문에 일이 잘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자를 물 수 없는 형편에 이자가 없으니 부담이 안됩니다. 그것으로 이제 차차 빚을 갚아 나가면 쉬운 것입니다. 예배당 짓는 것도 이자가 없이 꾸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예배당을 짓기 아주 쉽습니다. 이자가 있으면 이자를 무는 것 때문에 일이 안됩니다. 이자가 없으면 한 2,3년 동안 교회에 연보하는 대로 물어나가면 됩니다. 또 꾸어준 사람은 몇 년 동안에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이자는 불어나가지 못하지만 원금은 손해나지 않고 남아있지 않습니까? 이자 안 받는 것을 여기서 배워야 합니다. 잘 사는 것은 이자를 받아서 잘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시면 이자를 받지 않아도 바른 곳에서 잘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농사가 잘 되게 만들어 주시고, 사업이 잘 되게 만들어 주시고, 건강하도록 해주시고 이렇게 해서 이자를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잘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자를 암만 받아도 구멍이 떨어져 나가면, 이자를 백만원씩 받으면 이백만원씩 뚫어지고 구멍이 뚫어져서 이자를 오백만원씩 받으면 천만원씩 구멍이 뚫어져 나가면 이자를 받은 것 몇 배가 나가서 이자를 받다가 망합니다. 구멍이 병원으로 뚫어지고, 부도수표로 뚫어지고, 아들이 돈 없애서 뚫어지고, 가정에 식구들이 돈 없애고, 또 뚫어지고 여러 곳으로 뚫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적이 와서 도적질을 해가고, 사기횡령을 당하고, 안 되는 것만 사게 되고 하나님께서 안 되게 해주시면 안 되는 것만 돌아가는 것입니다. 호박씨를 까서 한입에 다 넣는 것처럼 이자를 좀 받아도 한꺼번에 본전까지 다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셔야지 이자를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리대금을 해서 먹는 것은 피를 빨아 먹는 빈대와 같은 자라고 했는데 고리대금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정당한 사업을 해서 이익을 취하는 것은 좋습니다. 정당한 사업을 해서 이익이 남으면 그 이익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돈을 왜 주신다고 했습니까? 김현봉 목사님의 말씀은 먹고 살기 위해서 주셨다고 그랬고 둘째는 그것으로 믿는 일을 하라고 주셨다고 하
셨습니다. 쌓아 놓고 수전노를 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지키는 종노릇을 하는 자는 수전노입니다. 돈을 지키다가 자기도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돈 때문에 싸움을 하고 서로 싸우고 다투다가 그 다음에는 그 돈을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수
전노 노릇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돈을 좀 벌게 되면 자기 먹을 만큼만 해 놓으면 좋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좀 많이 벌게 되면 한 절반은 뚝 잘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령 2억을 벌게 해주셨다고 하면 십일조를 떼고 그 다음에 절반
을 뚝 잘라서 한 1억만 자기 소유로 하고 다른 것 내고 남은 것을 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보도 하고, 구제도 하고, 다른 사람 도와주는 일도 하고, 개척교회도 세우고, 수해 연보도 좀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하고, 하나
님의 일에 많이 쓰고 한 절반 뚝 잘라서 해보면 그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얼마가 남습니까? 1억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번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벌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절반을 뚝 떼는 정신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삭개오가 자기 재산의 얼마로 구제 하겠다고 했습니까? 절반입니다. 삭개오가 잘한 것 같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절반을 뚝 떼서 아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연보도 하고, 구제도 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믿는 사람을 특별히 좀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번에 창광교회에서 수해연보를 했는데 교단에 수해를 당한 사람 있나 사방에 전화를 해보니 한 두 교회에서 수해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일부를 보내고 전부다 방송국
으로 보내서 수해민을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물질을 가지고 우리가 먹고 살고, 하나님의 믿는 일을 하고, 구원운동에 사용하고, 구제 사업에 사용하고, 사회사업에 사용하고, 절반 뚝 떼서 하면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공산주의가 발을 못 붙입니다. 우리 한국에 재벌가들이,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자기 사업이익 가운데서 절반 뚝 잘라서 하나님의 일과 사회사업을 해 나가면 공산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부 자기가 다 챙기고 하나도 안 도와주면 공산주의
가 자꾸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반을 뚝 떼서 쓰는 것이 자기가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절반은 자기 것입니다. 4천만원을 번 사람은 2천만원을 번 줄 알면 됩니다. 아예 자기의 것이 아닌 줄 알면 됩니다. 믿는 일에 사용하고, 구제사업하고 이렇게 나가면 장구하게 잘 되는 것입니다. 물질 가지고 하나님께 바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2천만원번 사람은 천만원만 번 줄 알면 됩니다. 천만원 가지고 십일조 떼고 다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믿는 일도 잘 되고 우리 믿는 사람도 먼저 도와주니 아주 기뻐하고 교회도 잘 되나가고 개척 교회도 많이 되고 사회사업도 하니 사회도 잘 되나갑니다.
돈을 모아서 쌓아 놓는데 급급하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원수가 많이 생기고, 믿음은 둘째고, 때려 부수려고 하고, 원한을 품고, 칼을 갈고, 시기만 오면 들고 일어섭니다. 돈을 벌면 사회로 돌려야 합니다. 돈을 한 절반 돌리는 것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
나님의 일에 쓰고 또 사회로 돌리고 안 믿는 사람은 사회로 다 돌리고 이것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자본주의 입니다. 다른 사람보고 못 한다 하지 말고 우리부터 먹고 살 만큼만 먹고 살고 그 다음에 버는 것은 십일조 바치고 당연히 절반 바치고 이자는 받지 말
아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빌린 사람은 갚아야 합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고 하였는데 할 수 없이 돈을 꾸었을 때는 어떻게 하든지 갚아야 바로 서는 것입니다. 돈을 빌려 쓰고 안 갚으면 양심을 잘못 쓰는 것입니다. 돈을 빌려 쓰고 없어서 못 갚는 것은 어쩔 수 없
지만 자기 쓸 것은 다 쓰고, 양복 사 입고, 여자들은 옷 사 입고 구두도 몇 켤레씩 사 신고 하면서 왜 안 갚습니까? 자기 할 거 다 하면서 왜 안 물어 주느냐 말입니다.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원리 원칙인데 자기 살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고 할 거 다 하면서 빚을 안 갚는 것
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 짓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인이 집을 팔았는데 그 옆 교회에 목사가 와서 돈을 빌려 달라 하더랍니다. 예배당을 짓다가 돈이 모자랐는데 200만원만 빌려 달라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갚는다고 하며 몇 달이면 돈이 나오니 그동안만 빌려달라고 계속 사정을 하여 그 교인이 집을 판돈에서 2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예배당을 짓고 자동차를 사고 할 것을 다하며 돈을 안 갚더랍니다. 돈을 달라고 하면 ‘자꾸 와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몇 번을 가서 이야기를 해봐도 핀잔만 받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와서 ‘어떻게 할까요?’ 합니다. 뭘 어떻게 합니까? 뻔한 것입니다. 그 목사가 돈을 물어주게 생겼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 목사는 양심 바로 쓰지 않은 목사입니다. 자동차를 사고, 자기 할 것을 다 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꾼 돈을 물어주겠습니까? 돈 달라고 하면 미안해서 ‘조금만 참아 달
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날도둑놈입니다. 날도둑놈 보고 돈을 달라고 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예 돈을 빌려 준 것이 잘못됐습니다. 목사가 뚝뚝 잘라먹고 교회가 뚝뚝 잘라먹는 것입니다. 악하게 남의 돈을 잘라먹으면서 그래도 ‘주
여 주여‘하면서 철야기도하고 새벽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 합니다.
물질에 대해서 바로 못하면 다른 데서도 바로 못합니다. 물질이 첫 번째 계단 입니다. 첫 번째 계단에서 바로 못하는 사람이 두 번째 세 번째 계단에서 어떻게 바로 하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첫 번째 계단에서 바로 해서 남의 돈을 빌린 것은 갚고 또 불쌍한 사람은
빌려 주고 또 형제에게 빌려주면 이자를 받지 말고 도와주고 이렇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것도, 믿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결혼할 때 빚을 많이 지고 결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빚을 지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있는 대로 하면 됩니다. 결혼할 때 창광교회 집사 하나는 800원 가지고 했습니다. 그 때 800원이면 냉면을 친척들이 모여서 먹는 값이랍니다. 결혼하는 것을 굉장히 크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입고 있던 것을 내복이라도 깨끗이 빨아 입고 세탁소 가서 세탁 한번 해 입으면 됩니다. 그 다음에 신랑 신부만 있으면 결혼 할 수 있습니다. 돈이 하나도 없어도 신랑 신부가 와서 하나님께 둘 다 서약을 하고 목사가 공포해주면 결혼식은 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 둘이면 결혼식 할 수 있습니다. 목사하고 셋이서 또 부모가 오게 되면 오는 거고 안 와도 괜찮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오래 끌다가 사고가 나고 아이 낳으면 이것이 무슨 결혼식이냐 말입니다. 결혼은 돈 빚지지 말고 간단히 해야 합니다. 생활비를 버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한국에서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생활비 한 달에 얼마면 됩니까? 쌀 두말이면 되지요? 쌀 두말에 얼마입니까? 20,000원 연탄 값 10,000원 소금 한 두 되 하면 만원 하고 25,000원 35,000원 채소 값 한 광주리 500원이면 됩니다. 500원 그것을
가지면 한 주간을 먹습니다. 떡잎 시퍼런 것이 영양이 더 많습니다. 전세 한 달에 얼마입니까? 싼 걸로 얻으면 삯 월세 한 달에 50,000원이랍니다. 50,000원에다 35,000원에 한 달에 90,000원이면 안 굶어 죽습니다. 채소만 먹기 때문에 혈압 안 올라갑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이 올라갑니다. 최저 생활 하는 데 있어서는 돈이 얼마 안 들어갑니다. 괜히 고급으로 하려고, 잘 하려고 하니 돈이 많이 들지 최저로 내려가면 얼마 안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시면 많이 가지고 살고, 더 많이 주면 더 많이 가지고 살 수 있고, 더 많이 주면 얼마를 떼라고 하였습니까? 50% 뚝 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데 사용하고 50% 만 가져도 부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습니까? 낮아질 때는
극도로 낮아 질 줄도 알고 높아질 때는 높아져서 그것을 가지고 바로 할 줄 아는 사도바울과 같이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함에 처할 줄도 아는 그런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5. 여호와께 서원한 것은 갚아야 함
본문 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빨리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원한 것을 반드시 요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서원한 것을 더디 갚으면 죄입니다.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서원했기 때문에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빨리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원한 것을 반드시 요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서원한 것을 더디 갚으면 죄입니다.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서원했기 때문에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원하는 것이 좋은가, 안 하는 것이 좋은가 부터 얘기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에 성도가 하나님께 서원하는 일이 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바치려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이대로 해야 하겠다’라고 결심하는 것입니
다. 이렇게 서원하는 일이 비교적 많이 있습니다. 몸 바치기를 서원하는 사람, 물질 바치기를 서원하는 사람, 성전 짓기를 서원하는 사람 등이 있습니다. 또 십일조 바치기를 서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십의 이조나 십의 삼조를 바치기로 서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에는 십의 구조를 바치기로 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그 사람이 큰 부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 서원하는 사람과 서원하지 않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낫습니까? 서원하는 사람이 낫습니다. 왜 서원하는 사람이 나은가 하면 성령께서 감동을 시키실 때에 그대로 작정해서 서원을 하면 이 다음에 그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서원해 놓았으니 그대로 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성령께서 감동시키실 때에 서원하고 나중에 그대로 다 하면 하나님께 큰 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며 자신이 은혜 가운데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원하는 것이 좋습니다.
야곱이 몇 가지 서원을 했습니까? 세 가지를 했습니다. 벧엘에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와 하나님께서 앉으신 것과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세 가지 서원을 했습니다.
첫째는 십일조 드리기로 서원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시기를 서원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셋째로 성전 짓기를 서원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서원입니까?
셋째로 성전 짓기를 서원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서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셨을 때에 서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동이 있을 때 서원을 하지 않으면, 그 감동이 일시적 감동으로 그치고 맙니다. 감동이 잠시 왔다가 떠납니다. 그 다음에는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소멸하는 죄가 됩니다. 감동이 왔을 때에 서원을 하면 일단 작정했으니까 결국 하게 될 것이 아닙니까? 즉 하나님의 감동을 소멸하지 않고 실행하게 되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하지 않고, 단지 ‘앞으로 해야 되겠다’하고만 생
각하면 안 됩니다. 조금 가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없어집니다. 없어지면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정을 하면 그 마음이 없어져도 하게 됩니다. 작정을 했으므로 작정 때문에 하게 됩니다. 서원을 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서원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연보하기로 하나님께 작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 연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원해서 행하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동 시키셔서 얼마를 바쳐야 하겠다고 작정하고 그대로 하면, 은혜를 계속 유지해 나가게 되고 은혜가 커지는 것입니다. 또 믿음을 쓰는 것이고 영혼이 자라나는 것이 됩니다.
만약에 작정 하지 않고 다음에 생기는 대로 해야 하겠다고 하면,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음에 돈 나올 때가 있으니 그때에 서원해야 하겠다’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서원하고 작정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없어지고 나중에 돈이 나오면 다른 데에 쓸 곳이 생깁니다. 반드시 쓸 곳이 생기고 이전에 연보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아예 작정을 해야 합니다. 작정을 해 놓으면 다른 데에 쓸 데가 있어도 쓰지 못하고 하나님께 바치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받은 감동을 순종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럴 때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연보 작정을 하지 않고 생기는 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기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작정한다고 되어 있으니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생기는 대로 하겠다고 하면 생겼을 때에 다른 데에 쓸 데가 또한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또 지금은 할 마음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생기는 대로 하겠다고 하면 생겼을 때에 다른 데에 쓸 데가 또한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또 지금은 할 마음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성도가 교회에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꿔 주었답니다. 교회에 당장 급한 일이 있었는데 그 바람에 다 해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교회에서 그 사람에게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했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교회의 문제가 다 풀려 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술술 다 풀려 나갔다고 합니다. 급할 때는 몇 백만 원을 구하기 어렵지만, 이다음에 몇 백만 원을 갚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돈만 알고 하나님의 일은 모르거나 또 다른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모르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돈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이자 없이 꿔 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하나님 앞에 바로 쓰는 것이 큰 것입니다. 그 성도가 참 잘 하였습니다. 복 받을 것 같습니다. 아니, 벌써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물질 면에서 믿음 지키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또한 작정하는 것은 결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제단에 아들 이삭을 드릴 때에 결박해서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삭이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지려고 했는데, 왜 결박을 했습니까? 자원해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바쳐지려고 했지만 정작 칼로 푹 찔러 죽일 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본능이 나와서 칼을 붙들고 안 죽으려 발버둥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땅에 떨어지거나 하면 하나님께 흠 있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에 결박해야 합니다. 결박해 놓으면 바치지 않으려고 해도 별 수 없는 것입니다. 푹 찔러도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박해서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해서 작정한대로 기어코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 완전한 제물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 작정한 일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야곱이 세 가지를 서원한 것 이 외에 사무엘의 어머니도 작정을 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가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삼상 1:11). 그런데 아들을 낳은 다음에는 바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 바치려는 마음은 시험입니다. 그러나 작정했기 때문에 안 바치겠다는 마음, 곧 시험이 들어와도 그것을 잘 이기고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당나귀를 바치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있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 나귀를 바치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후에 예수님께서 쓰려고 하신다고 했을 때 기꺼이 내 놓았습니다(눅 19:28-35). 또 마가 요한이 무엇을 작정했습니까? 자기 다락방이 있었는데 그 다락방을 예수님을 위하여 바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주님을 위하여 예비한 다락방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당시에 마가 요한의 어머니가 물동이를 이고 갔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제자들이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하시더라”라고 하니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여주었다고 하였습니다(눅 22:7-13). 이렇게다 작정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예수님의 제자 120명이 기도할 때에도 그 다락방에 가서 기도했습니다(행 1:12-15). 성령이 강림하신 것도 마가 요한의 다락방입니다.
요즘도 자기 집이나 다락방을 예배당으로 바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서원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복 받습니다. 서원하면 복 받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원한 다음에는 실행을 해야 합니다. 서원해 놓고 실행을 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서원
하지 않은 사람보다 서원한 사람이 낫고, 한 다음에는 실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서원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인데, 일단 서원한 것은 빨리 실행을 해서 갚기를 힘 써야 합니다.
6. 포도원과 밭 추수 때에 이웃에게 베풀 혜택
본문 24-25절에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이
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좋으나 그릇에 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이삭을 잘라 먹어도 좋으나 낫을 대고 집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과수원이나 곡식 밭에 가서 양껏 먹어도 좋다는 것입
니다. 그러나 집으로 가져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에도 남의 과수원에 가서 열매 따먹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남의 과수원에 가서 주인 허락 없이 따 먹으면 안 됩니다.
본문 24-25절에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이
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좋으나 그릇에 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이삭을 잘라 먹어도 좋으나 낫을 대고 집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과수원이나 곡식 밭에 가서 양껏 먹어도 좋다는 것입
니다. 그러나 집으로 가져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에도 남의 과수원에 가서 열매 따먹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남의 과수원에 가서 주인 허락 없이 따 먹으면 안 됩니다.
본문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바로 과수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대접하라는 뜻입니다. 다 먹게 만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먹어야 얼마나 먹겠습니까? 조금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얼마
나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아, 아무개 때문에 우리가 사과를 양껏 먹었다. 그 집 과수원이 잘되어야 하겠다’ 하고, 마음으로 얼마나 축복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눠 주라는 것입니다. 나눠 주어도, 동네 사람들이 먹어야 얼마나 먹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는 나눠 주는 분량의 몇 백 배가 있습니다. 또 자기 재산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후한 인심이 돌아오고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발은 부자인데, 다윗이 그를 잘 지켜 주고 선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다윗이 한 번 대접해 달라고 했는데 나발이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수욕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나발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켜 나아갔는데 나발의 부인이 지혜롭게 처신하였습니다. 이 부인이 지혜가 있어서 말로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하고 잘 대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시므로 나발은 얼마 후에 죽었습니다(삼상25장). 나발이 자신이 가진 것을 주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주지 않고 있었어도 자기는 한 열흘 후에 죽었으니 결국 그 주지 않은 것이 제 것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줄 것은 주어야 합니다. 안 준다고 제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업하는 사람들은 돈 벌면 다른 사람들을 먹여야 합니다. 돈 벌면 일 년에 몇 번씩 먹이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부터 먹여야 하는가 하면 교회 교역자들부터입니다. 교역자들과 전도부인들에게 무엇을 조금 사다가 잘 대접하고, 그 다음에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전부 다 한 번 먹이고, 또 동네 사람들을 전부 다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대접하는 것은 얼마 안 가지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접해도 몇 십만 원이면 됩니다. 혹시 백만 원이 든다고 합시다. 잘 벌어서 교회 교역자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백만 원 정도 쓰면 어떻습니까? 일 년에 수 천 만원 벌었으면 괜찮습니다. 그리고 일 년 중 어느 날 먹이면 좋겠는가 생각해 보았는데, 성탄절에 먹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교회 돈으로 해도 좋지만, 아예 교회 돈으로 하지 말고, 교회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조금 내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한 몫 쓰는 것입니다.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씩 내서 소 한 마리를 사서 잡으면, 성탄절에 온 교회가 잘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을 청해서 잘 먹이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또 온 교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이제 우리 교회에서 그렇게 합시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일년에 몇 번씩 대접하도록 하십시다. 그러면 복 받습니다. 대접하는 사람은 복 받고, 대접을 받는 사람은 잘 먹습니다.
그런데 잘 먹는 것이 큽니까, 복 받는 것이 큽니까? 대접을 받는 사람보다 대접하는 사람이 복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 밖에 모르고 살면 돈 벌어서 남한테 욕을 먹고 인심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망하면 주위에서 기뻐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살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도와주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돈 벌게 해 주시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일에 한 몫씩 쓰는 것입니다. 돈 버는 사람은 50%는 바칠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즉 교회의 일과
전도하는 일, 또 사회에 돌려주는 일과 구제하는 일 등에 한 50% 쓸 예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잘 되는 법입니다.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쌓아 놓기만 하면 망합니다. 얼마 가다가 한 절반 써야 안 망합니다. 다 쌓아만 놓으면 공산당이 일어나서 때려 부술 날이 옵
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는 것이 상책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얻어먹는 사람은 주인이 줄 때 먹어야 합니다. 주인이 허락
하지 않았는데 과수원에 가서 열매 따먹고 다니다가 매 맞지 말고, 주인이 줄 때 먹으라는 것입니다. 줄 때 먹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주지 않을 때는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