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8일 수요일

신명기 23:1-8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
신명기 23:1-8

1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2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 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3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4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6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 7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었음이니라 8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1.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지 못할 자

신낭이 상한 자(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지 못한 자)

본문 1절에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고자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혼이 불가능한 자들에게는 신령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사야 56장 3-7절에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여호와께서는 연합한 이방사람이나, 육신적으로 고자, 또 과부나 고아라고 해도 ‘나는 마른 나무라’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6장 4절 말씀에서 고자라도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는 일을 택하고 여호와의 언약을 굳게 잡으면 하나님께서는 자녀보다 더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시며 그 이름이 끊치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디모데와 디도와 같은 더 나은 믿음의 아들도 주십니다. 자녀보다 더 나은 믿음의 아들이나 또한 모든 대접, 기념물, 위로 이 모든 것을 더 낫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내 이름을 주어 영영히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녀가 없어도 영영히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하십니다. 이사야 56장 6절 말씀에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연합하여 섬기고,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여호와의 종이 되어 안식일을 지키며 언약을 굳게 지키는 사람은 이방 사람이나 고자와 같이 육신적으로는 아무 소망이 없는 마른 나무와 같은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소망과 생명 그리고 후대가 있는 큰 위로를 주십니다.
또한 믿음을 잘 지키면 그 사람을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대접해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자녀보다 더 나은 모든 것을 해주십니다.

본문에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고자와 같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육신의 고자만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고 우
리는 신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지 못한 자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망이 없고, 외롭고, 도와줄 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나 신랑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육신이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따라서 언제나 여호와의 총회에서 만족할 수 있게 하시며 자녀보다 더 나은 것을 계속 그 사람에게 주십니다. 

고자는 육신으로 보면 마른 나무고, 하나님의 총회에도 들어올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자는 육신으로 볼 때 희망이 없고 마른 나무와 같은 자라도 여호와와 연합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언약을 굳게 잡고, 말씀대로 나가면 자식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자식도 주고, 기념물도 주고, 후대에 이름도 내내 내려가게 해주고, 또 위로와 모든 자식보다 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사생자

본문 2절에,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 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언제까지 못 들어옵니까? 아들, 손자, 증손자 이렇게 열 대가 내려가도록 까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사생자라는 것은 남편 없이 음행해서 나은 아들로써 정당하게 결혼해서 나은 아들이 아니고, 불법적으로 나은 아들들입니다. 이것의 신령한 의미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믿음을 양보하고, 떠나서 얻은 모든 것을 다 사생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나 물질이나 사업체나 하나님의 법대로 믿음으로 정당하게 얻은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공명정대하지 못하게 취해서 얻은 것은 전부 다 사생자입니다. 사람도 남자, 여자,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어떠한 사람이든지 정당하게 교제하지 못해서 얻은 사람은 사생자입니다. 또 직장도 하나님의 법대로 믿음을 지키면서 정당하게 얻은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정당하지 못하게 양심을 어기고 얻은 모든 것은 다 사생자입니다. 또 하나님의 것을 어기면서 정당하지 못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얻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유지하고 있는 것 전부 다 사생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하나님의 법대로, 신앙 양심을 써서 정당하게 해서 유지하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당하게 가려고 하는데 이미 있던 것이 달아나려고 한다면 그냥 달아나게 두어야 합니다. 달아나게 두어야지 그것을 취하려고 진리를 양보하고 원리에서 떠난다면 그것이 사생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미 정당하게 결혼해서 살던 부부간이라고 해도 한 편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신앙을 양보해야만 살고 신앙을 양보하지 않으면 못 산다고 하는 경우 신앙을 양보하고 살면 그 남편은 사생자 남편이 됩니다. 또한 이미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이라고 해도 신앙을 양보하지 않으면 다닐 수 없는 때가 되면 그때는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신앙을 양보하고 그 직장을 유지하면 그 직장은 무슨 직장입니까? 사생자가 됩니다. 또 정당한 아들이라고 해도 신앙을 양보하지 않으면 같이 살 수 없는 경우에 양보하고 같이 산다고 하면 그 아들이 무슨 아들입니까? 사생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하나님 앞에 바로 해서 현재 내게 있는 것이 유지가 되면 그것은 좋은 것이고, 바로 해서 유지가 안 되면 그것은 전부 사생자인 줄 알고 거기서 다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15절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오래 살던 부부간이라도 신앙 문제 때문에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직장, 돈, 또한 친구, 동창생, 고향 사람과 같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믿음을 지키면서 유지가 되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교제하다가 믿음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갈라져야 합니다. 불법적으로 진리를 어기고 취하는 모든 것은 사생자입니다. 원리원칙대로 하는데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해서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시는 것이고, 성경대로 해서 안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안 되게 하시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안 되는 것이 잘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까? 자녀보다 더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많이 주십니다. 더 좋은 믿음의 자녀도 주시고, 더 좋은 위로도 주시고, 더 좋은 복지도 주시고, 더 좋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이 쉬운 것 같아도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신을 베인자나 사생자는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이 말씀을 제가 여러 번 많이 읽었지만 이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내내 내려왔습니다. 지난 주간 용인에 가서 천막을 치고 기도하는 가운데서도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또 여러 가지 주석을 다 참고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신통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해석으로 불구자, 또 사생자라고 해놓고 관둔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깨달았습니다. 주일 날 저녁 기도원에서 기도를 하고, 어제 새벽에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깨닫게 하신 말씀이 많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그저 쉬운 줄 알고 듣지만 사실 쉬운 것이 아닌 줄만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양식을 나누어주시려고 깨닫게 해주신 것 같습니다. 사생자는 우리에게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자도 믿음을 지켜 안식일 지키고, 여호와와 연합하고, 언약을 굳게 잡으면 하나님께서 자녀보다 더 나은 것을 주시고, 좋은 기념물도 주시고, 후대도 잇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또 믿음의 자녀도 주시고 다른 모든 것들도 더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자녀가 없다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자녀가 없어도 마른 나무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는 사생자라고 했습니다. 사생자는 합법적으로 결혼해서 나은 아들이 아니고, 불법적으로, 몰래 음행해서 나은 아들입니다. 그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신령한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법으로
얻은 모든 것은 다 사생자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어기고 불법으로 돈 먹고, 집 사고, 불법으로 결혼하고, 불법으로 무슨 지위를 얻고, 성경 말씀을 어기고 얻은 모든 것 전부가 다 사생자인데 그것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한 자

본문 3절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암몬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들어오지 못합니까? 십
대 뿐 아니라 영영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 못 들어온다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영접하지 않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발람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너희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한 자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운동을 방해하는 자들의 죄는 이만큼 큽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해내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입니다. 즉 복음을 전해서 택한 백성들을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구원 운동입니다.
성도들의 영혼을 살려나가는 일에 있어서 방해하는 자들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중생한 사람이 방해했으면 천당은 가지만 이 세상에서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절대 방해하면 안 됩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면 상을 받게 되
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걸림돌이 되고 조금이라도 방해하면 하나님
께 그 사람도 저주를 받고, 그 자손도 십대까지 그리고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자들의 자손은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아버지에게 목사 비방하고, 욕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목사를 비방하고 욕하면 아들이 그 목사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목사에게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고, 목사가 보기 싫어서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됩니다. 부모가 교역자를 잘 존경하고 좋은 말을 하며 교회를 위해서 잘 충성하면 자손들이 그것을 배웁니다. ‘아, 목사님은 순종해야 되는가 보다.’ 또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이다. 잘 해야 된다.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하고 배워서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그 아이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그 후대가 많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집에서 불평과 원망이나 하고, 교역자를 욕하고, 교회에 대해서 좋지 않게 한 마디씩 하면 자기는 아무 생각 없이 버릇이 되어서 한 마디씩 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전부 받아들여서 그만 교회도 안 나오고, 목사도 무시하고, 교회와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협력해서 순종하려고 하고, 받들어나가려고 해야지 자기의 비위에 안 맞는다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기를 책망했다고 불평하면 자기 자손부터 망하게 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계획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반대하고, 구원 운동을 반대하고, 목사를 쫓아내려고 공론하는 이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벌을 받게 됩니다. 저주하는 말을 변하게 하여 복이 되게 하였는데 그러나 발람도 벌을
받았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었던 모압 나라도 벌을 받았습니다.

본문 6절에 “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비참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한 자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언제나 도와주어야 합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는 자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고, 방해한 자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2. 에돔 사람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본문 7절에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에돔 사람은 에서 족속인데 에서는 야곱의 형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지만 신앙적으로는 야곱과 맞지 않았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고, 팥죽 한 그릇으로 팔아먹으면서 물질 중심으로 나갔습니다. 또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댁에 가서 20년 있다가 왔습니다. 그렇지만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서나 야곱이나 한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한 형제이므로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맞지 않으면, 양보하지 말고 갈라져서 사는 것은 좋지만 형제는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앙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갈라져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교파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맞지 않아 갈라져도 한 형제인 줄 알고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 형제라고 하면서 신앙을 양보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을 잘 해야 합니다. 신앙 문제는 진리 문제이므로 날카롭게 생명을 내놓고 양보하지 말고 나가야 합니다.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이에서 지나면 악으로 좇아나므로’ 신앙을 양보하면 죽습니다. 진리를 지키려면 싸워야 합니다. 진리 문제 때문에 싸우고 갈라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갈라진 다음에 미워하지 말고 형제로 여겨야 합니다. 야곱과 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아들인데, 할아버지가 한 할아버지고, 아버지가 한 아버지이므로 언제나 형제인 줄 알고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신세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학대를 많이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를 다 죽여서 씨족을 없애 멸망시키려고 이스라엘 백성이 남자를 낳으면 산파에게 죽이라고 했습니다. 산파가 죽이지 않으니까 남자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뜨려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안 죽였지만 많은 남자들이 나일 강에 빠뜨려서 죽었을 것입니다. 또한 쇠잔해서 멸망시키려 짚은 안 주면서 벽돌 수효는 여전히 같이 구우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역을 시켰겠습니까? 그리고 열 가지 재앙이 내려올 때도 열 번이나 변해서 놔주겠다고 하고서는 안 놓아주고 장자가 죽은 다음에 할 수 없이 놓아주었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널 때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와 도로 잡아서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섬뜩합니까. 그렇지만 ‘신세진 것이 있지 않은가?’ 하시는 것입니다. 애굽 나라의 객이 되어서 400년 동안 신세진 것이 있지 않습니까? 흉년이 들어 다 망할 것인데 70명이 애굽에 들어가서 애굽에 신세 많이 지고, 400년 지나는 동안에 장정만 60만 명이 되어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섭섭한 것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섭섭하고 잘못해준 것만 생각하지 말고 신세진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섭섭하고 잘못해준 것만 생각할 때는 그저 다시 안 볼 생각을 하고, 아예 생각도 하기 싫고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세진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에 대해서도 과거에 신세진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미국에 반대하는가 말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잘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미국 사람이 개인 가운데는 한국 사람의 자존심을 무시하고, 미군이 주둔함으로 행패부리는 것도 있기는 하지
만 과거에 신세진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신세졌습니까? 6.25 사변 전에 8.15 해방된 것,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이 독립된 것이고, 둘째는 미국 사람의 은혜로 한국이 독립된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한국을 독립시켜주라고 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일본에 속해 있을 것입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기는 했지만 일본이 점령한 땅을 다 독립시켜 준 것은 아닙니다. 오키나와도 독립 국가였는데 일본이 패전한 다음에 독립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독립하려고 이따금씩 독립 운동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북해도도 독립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점령당해서 오늘날까지도 일본에 속해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독립 운동 아무리 해도 독립 될 수 있습니까? 

한국도 미국 사람들이 일본이 패전한 다음에 독립시켜주지 않았으면 아직도 일본에 속국으로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에 속국으로 있으면 어떻게 독립이 되겠습니까? 그 당시 일본의 정책은 한반도에는 한국 사람들을 못 살게 하고, 만주로 다 쫓아 보내는 것이었습니
다. 지금 한국이 일본에 속했다면 한반도에는 일본 사람들이 다 나와서 살고 우리는 전부 만주로 쫓겨났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을 만주로 쫓아내려고 한국 사람들보다 더 많이 돈을 주고 땅을 샀습니다. 호남 지방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 다 벌거벗고 나와서 한
국 여자들이 그 부근에 못 갔다고 합니다. 만주로 쫓아 보내려고 별의 별 수단을 다 쓴 것입니다. 만주로 들어가면 대우를 해주면서 잘해주고 한국에 있으면 점점 못살게 만들면서 압박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직장도 잃게 하여 여러 가지로 곤란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만주로 가면 잘되게 만들어주니 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일본에 독립이 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완전히 일본 땅이 되었을 것입니다. 

말은 또 어떻습니까? 한국말이 있었겠습니까? 한국말은 다 없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일본이 패전하기 전만 해도 일본말만 쓰게 만들어놓고 한국말을 잘 못쓰게 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일본말만 쓰게 하였습니다. 한국말을 쓰면 조선어를 썼다고 그 사람은 그 날 청소를 하고
벌을 서게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되었으면 한국말이 다 없어졌을 것 같습니다. 그때의 그 아이들 중에 제가 있었습니다. 전화할 때도 ‘여보세요.’라고 하지 못하고, ‘모시모시’해야 하고, 이름 부를 때도 ‘예’ 하면 안 됩니다. ‘하이’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대동아전쟁에서 승리할 때 한국을 독립시켜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일본하고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까? 일본하고 싸워서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3.1 운동 때도 싸워보았지요? 3.1 운동 때 전국이 다 일어났지만 일본 사람 총칼 앞에 전부 다 학살을 당하고 점령당한 거 아닙니까? 일시에 다 일어나도 안 됩니다. 한국 몇 천만이 다 일어나도 군대 몇 사단만 나와서 쏴치우면 다 없어집니다.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민중의 봉기라는 것은 맥을 못 추는 것입니다. 총칼 앞에 꼼짝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된 것이 얼마
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다음에 미국 사람의 덕택으로 해방이 된 것입니다. 

6.25사변 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6.25사변 때 다 떠밀려서 대구 낙동강까지 가고 목포를 돌아서 마산까지 왔는데 이제 낙동강에서 마산까지 가면 이것은 독 안에 든 쥐입니다. 부산 점령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때 미군이 상륙하지 않았으면 전부 공산당이 되었을 뻔했습니
다. 공산당이 다 되었으면 어떻게 될 뻔했겠습니까? 요새 이북에 교회가 있습니까? 교회가 있다고 해도 선전용으로 평양에 하나 만들어놓기는 한 모양인데 이전에 이북에 있던 많은 교인들은 다 어디에 갔습니까? 많은 교인들, 많은 목사들 다 어디로 갔습니까? 교회에 지금 모입니까? 이북의 각 곳에 교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선천 같은 곳은 주일에는 시장을 못 봤습니다. 전부 가게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시장에 뭘 사려고 가도 못 사왔습니다. 또 한 군에 노회가 있어서 사경회를 하면 전체가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그 교인들 다 어디로 갔습니까? 6.25사변 때 미군이 부산에 상륙해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며 이렇게 모여서 사경회를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북의 생활 상태는 어떻습니까? 말 한 마디 자유롭게 합니까? 김일성을 한 마디만 욕해도 그 다음날 다 없어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까? 데모도 세상이 좋으니까 하지 이북에서 데모하면 그날 밤 다 없어집니다. 말 한 마디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게 만들어주시고, 물질도 풍성하게 만들어서 마음대로 여기서 좋은 것 먹고 입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전에 이북 사람들이 회담하러 올 때 같이 온 예술단들이 소고기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더니 여자 한 명이 혼자서 다섯 근을 먹더랍니다. 그 다음에 쌀밥을 주니까 ‘야, 쌀밥이다!’하고 너무 좋아서 외치더랍니다. 거기서는 늘 잡곡밥만 먹었으니까. 이북이 얼마나 생활이 곤란한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북에서는 소련을 선진 국가라고 합니다. 소련을 조국으로 알고 있는데 소련이 지금 경제적으로 형편이 없습니다. 원자탄을 상당히 많이 만들어 쏘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우리 한국 경제를 상당히 부러워하고, 한국에게 원조해달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소련에 갔다가 온 사람 말을 들어보면 여기 자유주의 나라 사람들이 여행 오면 어떻게 하든지 뭘 팔려고 한다고 합니다. 청바지 하나를 구해 입으면 아주 출세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는 청바지 하나에 100불이라고 합니다. 공산주의를 70년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형편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해주셔서 배불리 먹게 해주셨습니다. 이북에서는 교통경찰들이 어떻게 교통 정리하는 줄 아십니까? 제가 이북에 있을 때는, 막대기 하나 가지고서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그때는 차가 얼마 없어서 그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얼마 전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보니까 요새도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되게 해주셨는데 무엇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미국을 반대하고, 반정부 운동만 하는가 말입니다. 정부를 도와주어야지 자꾸 반정부 운동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잘하는 정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월남에서 반정부 운동 밤낮 하다가 요새 어떻게 되었습니까? 천주교와 교회에서 반정부 운동 제일 앞장 서 나갔는데 요새 천주교와 교회가 월남에 있습니까? 몇 사람들이 있어도 그것은 선전용으로 공산주의의 앞잡이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 진짜 기독교는 없습니다. 월남 공산화 된 다음에 500만 명 죽었다고 하고, 요새도 피난민들이 배 타고 나오는 것 있지 않습니까? 배 타고 나오다가 많이 죽고, 죽다 나온 사람들이 이따금 다른 나라에 가는데 거기서도 못 들어오게 합니다, 가는 데마다 내쫓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도 내쫓지 않을까 벌벌 떨면서 왔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또 내쫓지 않겠나 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니까 호랑이를 본 아이들 같았습니다. 그래도 한국은 내쫓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이 그건 잘했습니다. 피난민을 왜 내쫓습니까. 

밤낮 반정부 운동 하다가 신세가 비참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무엇이 좋아서 밤낮 반정부 운동 하는가 말입니다. 대통령이 조금 잘 못해도 성경에 기도하라고 했으니 기도해주고, 앞으로 잘 하기를 조금 기다려야 합니다. 참다가 한 4년 기한이 되면 다른 사람으로 내세우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밤낮 반대만 하는가 말입니다.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라. 과거에 너희가 신세진 것이 있지 않는가.”하는 말입니다. 물론 애굽 사람들이 학대하고, 남자를 죽여서 씨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억울하게 한 것은 잊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애굽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번성하게 되었습니까? 처음에 애굽에 들어갈 때는 70명이 들어갔다가 몇 명이 나왔습니까? 장정 60만 명이 나왔습니다. 아이들과 여자들까지 하면 100만이 넘습니다. 이렇게 많이 번성하고, 잘 되어서 나왔는데,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도 있었지만 잘 한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문제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이 내게 억울하게 하고, 돈 손해주고, 학대하고, 죽이려고 하지만 과거에 신세진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신세진 것이 있지 않습니까? 신세져서 그 사람들 때문에 그만큼 되었는데, 왜 반대하고 왜 무시합니까? 미워하지 마십시오. 과거에
신세진 사람들을 무시하고 미워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성경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잘 못해주고, 욕하고, 핍박하고, 비방하고, 죽이려고 하고, 아예 못살게 만들어놓았다고 할지라도 과거에 신세진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잘한 것을 생각하십시오. 잘 한 것을 생각해서 미워하지 말고 잘 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본문 8절에 “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간다고 할 경우에 들어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사람들은 다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려는 사람들만 있지 않습니까? 모세 때에는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다 멸망시키려고 학대하고 군대를 추격해서 홍해 바다에서 다 잡아서 다시 데려다가 종으로 부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삼 대 후에 가면 이 시대는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시대 후손은 원하기만 하면 여호와의 총회에 다 들어오게 하고 그 후손은
돌봐주라는 것입니다. 신세진 사람들의 후손 아닙니까? 신세진 사람들의 후손에 대해서 삼 대 후에는 돌보아주어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에돔 사람은 네 형제이므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네가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으므로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인데 신앙은 다릅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제일 첫째로 여기고 내세주의고 영적주의인데, 에서는 물질주의이고 현실주
의이고 육체주의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팔아먹는 신앙입니다. 신앙이 다릅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는 다 이삭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입니다. 진리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싸워야 되고 갈라져야 합니다. 진리 문제 때문에 우리가 싸우고 갈라질 수 있으나 원수같이 여기지 말고 형제같이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진리 문제가 다른 사람들, 이 교훈을 순종치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데살로니가후서 3장 14절에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했습니다. 에돔 사람처럼 신앙이 현실주의이고, 물질만 따라가고 육체주의로 나가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경우에 그런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적으로 사귀지 말고 부끄럽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이 다른 사람, 즉 말하자면 인본주의 신앙들, 그 사람과 지목하여 사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신앙적으로 사귀면 안 됩니다. 그러나 원수같이 여기지 말고, 형제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교제하지 말고,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부끄럽게 하라고 했습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싸워야 합니다. 갈라지고. 그렇지만 원수와 같이 여기지 말고, 형제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또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 하고, 말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 잡아 죽이려고 남자를 낳으면 죽이라고 했습니다. 나일 강에 빠뜨려서 죽이고, 고역을 시키고, 또 해방을 시켜주었다가 다시 잡으러 나오고, 이스라엘 백성에 천추에 원수와 같이 아예 말살시키려고 한 애굽 사람이지만 그래도 과거에 400년 동안 신세진 것이 있지 않습니까? 흉년이 들어 다 망할 것인데 70명이 애굽에 들어가서 400년 지나는 동안에 장정만 60만 명이 되어서 나왔으니 그 얼마나 신세를 많이 졌습니까? 그러니까 억울하게 하고, 섭섭하게 하고, 학대하고, 말살시키려고 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과거에 신세진 것을 생각을 해서 언제나 미워하지 말고 잘 대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당사자들, 장본인이 죽은 다음에 삼 대에 가서는 원하면, 개종하는 경우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한번 원수지면 그것을 잘 못 풉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술 한 잔 먹고 다 푸는데 믿는 사람들은 눈알이 말똥말똥해서 못 풉니다.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합니다. 그래도 풀어야 합니다. 아무리 싸우고 다투었다고 해도 풀어야 합니다. 풀지 못하는 것은 악한 일입
니다. 사랑하고. 과거에 아무리 돈 잘라먹고, 아무리 손해를 많이 주고, 또 죽이려고 했다고 해도, 오늘은 다 풀고, 또 전에 잘해준 것과 전에 신세진 것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풀고, 다 사귀고, 삼 대 후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다 없어진 다음에는 다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게 해서 다시 한 형제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자세히 모르겠지만, 젊은 부부가 캐나다에 먼저 이민 가서 남편의 부모를 초청해 그 부모도 캐나다로 들어가서 교회 잘 나왔습니다. 젊은 부부도 잘 나오고, 남편의 부모도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그 부부의 부인도 자기 부모를 캐나다로 초청해서 사돈끼리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의 부모가 자기 며느리 부모가 캐나다로 들어오는 주일날부터 교회에 안 나옵니다. 아마 한국에 있는 동안에 서로 사돈 간에 크게 틀어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 며느리 부모는 자기 딸 따라서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 교회 목사가 남편의 부모에게 심방을 가서 교회에 왜 안 나오시냐고 하니까 사돈 보기 싫어서 안 나온다고 하더랍니다. 한국에서 서로 틀어졌는데, 7, 8년 후에 오래간만에 사돈이 같은 지방에 이민을 가는데 웬만한 사람 같으면 비행장에 마중 나가지않겠습니까? 아무리 그 안에 섭섭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기 며느리 부모 아니겠습니까. 며느리는 좋다고 하면서 며느리 부모는 왜 미워합니까? 비행장에 안 나가는 것은 그렇다 해도 예배당도 안 나오고 아예 인사도 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악독합니까? 해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는데, 한국에서부터 미워한 것이 몇 십 년 미워하는 모양입니다. 7, 8년이나 지난 일인데, 사돈이 들어온다고 하는데도 마중도 안나가고 교회도 안 나오고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런 악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싸웠다고 해도 그 다음엔 다 풀어야 합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고 해도 다 풀고 화목해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잘 대접하고 받아주지 않았습니까? 또한 압살롬에게 붙어서 군대를 동원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쳐들어오던 군대장관 군대 장관 아마사(요압의 이종사촌)를 압살롬이 죽은 다음에 다윗이 다 용서해주
고, 다시 자기의 군대 장관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참 신앙입니다. 아무리 압살롬의 편에 붙어서 군대를 동원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왔지만, 그래도 그 사람과 그 다음에는 화목하고 도리어 자기의 군대장관으로 세워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제는 이 사람을 죽이려고 했지만 오늘은 안 죽이려고 하면, 오늘은 화목하고, 과거의 것은 다 없는 것으로 하고 이제 잘 화목하고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애굽 사람을 너희는 미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순종해야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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