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그 결과
이사야 61:1-11
이사야 61:1-11
1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4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7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8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9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1.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
본문 1절에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대한 예언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가 앞으로 오실 것이고, 그리스도께 여호와의 신인 성령이 임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고 하였는데, 기름을 붓는다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예수님께 기름을 부어 세우시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는데, 각주에는 비천한 자에게 복음(기쁜 소식)을 전파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요한 자, 고귀한 자들은 복음을 들어도 잘 믿지 않고, 비천한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잘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였는데, 낮아져야 복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자기를 다 부인할 때에 복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낮아지고 자기를 다 부인할 때에 복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보내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시고, 영적으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며,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2장 22절에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백성이 다 포로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적 탈취, 영
적으로 흑암에 갇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이어서 이사야 42장 24절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도적에게 붙이는 자, 탈취를 당하게 하시는 자는 여호와이십니다. 도적을 맞은 다음에는 이사야 42장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도적을 맞았고 탈취를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것은 영적으로 포로된 자에게 영의 자유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또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의 흑암 속에 갇힌 자에게 해방을 전파해주러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적으로 흑암에 갇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이어서 이사야 42장 24절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도적에게 붙이는 자, 탈취를 당하게 하시는 자는 여호와이십니다. 도적을 맞은 다음에는 이사야 42장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도적을 맞았고 탈취를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것은 영적으로 포로된 자에게 영의 자유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또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의 흑암 속에 갇힌 자에게 해방을 전파해주러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해방 신학자들의 오류
그런데 해방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육신과 세상적인 것에만 빗대어 생각하고 눌린 자, 억압 받은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인종, 자본주의자들, 제도적이며 정치적인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려면 단결하여 무자비하게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공산주의와 똑같은 성경신학이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해방 신학입니다. 해방 신학에서는 자본주의와 싸우고 부자들과 싸우고 제도, 정치, 정치가들과 싸우자고 합니다. 그래서 해방 신학자들은 노동자들 속에 들어가 데모를 충동하고 싸워서 기업주를 타도해야 한다고 이끕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하며 나갑니다. 따라서 이 해방 신학이 들어가는 곳에는 혼란이 일어나고, 데모와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요새도 공산주의자들과 해방신학주의자들이 합해서 데모도 하고 폭동도 일으키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신령한 영적 해방, 영적 자유를 세상의 제도적, 정치적 해방으로 바꾸어버리고, 다 쳐부수고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합니다. 월남에서 미군이 물러갈 때에 해방 신학자들은 월남에 이제야 천국이 왔다고 했다는데, 월남전에서 미군이 물러난 다음에 그곳에는 도리어 지옥이 왔습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다 물러가고 나니, 흑암밖에 올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하여간 해방신학자들이 성경을 육신적으로만 해석하고 세상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이 말세가 된 징조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영의 자유입니다. 영의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
본문 2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우리에게 전파하신다는 것입니다. 2절 상반절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초림(初臨)하셔서 ‘모든 은혜의 일’, 즉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며, 갇힌 자를 놔주시고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반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마지
막 날에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2절 상반절까지는 예수님의 초림 때에 전파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하반절에는 재림 때에 심판하실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반절과 하반절 사이에는 몇 천 년이라는 기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한 절에 두 내용을 다 넣었다고 해도, 그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 부분은 몇 천 년 전, 아래 부분은 몇 천 년 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 말씀을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16-19절에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신에 대한 것을 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셔서 이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하셨는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본문 1-2절의 상반절까지만 읽으시고, 하반절의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 부분은 읽지 않으셨습니다. 확실하게 초림 때에 될 것만 읽으시고, 몇 천 년 후 재림 때에 될 일은 읽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것도 성경에 공중 재림과 지상재림에 대한 것이 한꺼번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게 한꺼번에 기록이 되었다고 해도 그 사이에는 몇 천 년이라는 기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20-23절의 해석
누가복음 4장 20-23절에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말씀을 기이히 여겼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하였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사건건 트집만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의원아 너를 고치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한 이적을 고향에서부터 행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아무리 이적을 행하여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승리와 존귀, 영광을 주심
본문 3절에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은 영적 예루살렘, 즉 구원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전에는 근심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그리스도로 찬송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는 슬픔이 없어지고, 희락의 기름이 옵니다. 근심이 없어집니다. 찬송이 오며, 의의 나무가 되고,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여러 가지 큰 영광과 기쁨과 소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자들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해주심으로 영적 포로를 다 놓아주십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억압 받는 데에서 영의 자유와 해방을 주심으로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2. 그리스도로 인하여 열방이 복을 받게 됨
다시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유익을 줌
본문 4절에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산 믿음을 가진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은 것처럼, 황폐한 곳을 다시 건축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리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유익을 준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22절에 보면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나갈 때에는 어떤 것, 즉 바울, 아볼로, 게바, 또 생명, 사망, 또 선한 자와 악한 자까지 그 어떤 것이라도 다 그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됨
본문 6절에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창세기 23장 6절에 보면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어 장사
할 땅을 사자고 하니, 그 땅 주인인 이방 헷 족속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방백인 것을 알고 그를 존경하게 되어 자기들의 땅을 거저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잘 지키니까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 권위가 올라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제사장의 믿음을 잘 지켜서 이렇게 복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생명이 있는 믿음의 길을 걸어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우러러보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하나님도 높아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 사람도 높아지며 잘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봉사자라는 좋은 칭호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면 믿는 사람에게 열방의 재물을 아낌없이 다 주십니다.
또 세상 사람들(그들)의 영광도 믿는 사람들에게 주셔서 성도가 자랑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믿음을 못 지킬 때에는 세상 사람 앞에서 비방을 받고 멸시를 받으며 천대를 받습니다. “제 까짓 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냐? 제 까짓 게 천당을 가면 난 만당을 가겠다”라고 하면서 비방하는 것입니다.
배나 되는 분깃과 영영한 기쁨을 얻음
본문 7절에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고 수치를 당하였지만,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믿는 일을 잘하니, 하나님께서 수치 대신에 배나 더 존귀하게 만들어 주시고 능욕 대신에 분깃을 주시며 고토에서 배나 더 얻어 영영히 기쁨이 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때때로 핍박을 받는 수가 많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핍박과 멸시, 조롱과 능욕, 그리고 수욕을 받을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멸시 받는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믿음을 잘 지키면 됩니다. 복 받는 것은 믿음을 잘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의 길만 걸어가면 능욕하던 자들이 배나 더 존경할 날이 옵니다. 또 하나님께서 멸시하던 자들로 배나 더 우러러보게 만들어주십니다. 믿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만복이 전부 믿음을 잘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가 멸시한다. 또 부끄러움을 주고 나를 핍박한다’고 할 때가 믿음을 잘 지킬 때인 줄을 알고, ‘내가 여기서 믿음만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배나 더 존귀하게 해주실 것이다’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존귀하려고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잘 승리해나가면 배나 더 존귀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고토에서 영원히 배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꼭 이렇게 됩니다. 내가 지내본 경험으로 확실합니다.
나를 비방하고 멸시하며 능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러겠으면 그래라. 나는 믿음으로 나가봐야겠다’하고 나가니 변변히 잘한 것은 없지만 그 사람들이 요새는 쏙 다 들어가고 도리어 좋게 말해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문제는 믿음을 잘 지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자기가 믿음을 잘 지키면 그 사람은 벌써 복을 받은 것이고, 자기가 믿음을 잘 못 지키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위해줘도 벌써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멸시하고
수치를 당하게 만들어놓아도 믿음을 잘 지키는 것 자체가 벌써 존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믿음을 잘 지키는, 그런 길로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성도가 불의 당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약속을 세워주시는 하나님
본문 8절에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핍박을 당하고 불의를 당하고 강탈을 당하는 일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해서 당하는 일은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이지만,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런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히 다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
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너는 무엇을 하라고 하였습니까? 로마서 12장 19-21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히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공의를 사랑하시며 강탈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가 불의 당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갚아주시는 하나님께서)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믿음을 지키는 사람과 영영한 언약을 세우셔서 믿음 지킨 것에 대한 복을 받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손에게 복을 주어 만민으로 복 받은 자손임을 알게 하심
본문 9절에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즉 말하면 믿음으로 승리적으로 모든 것을 통과하면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고, 그 자손은 만민 중에 복을 받고 열방 중에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잘 지켜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또 자신이 믿음을 잘 지키고 자손이 믿음을 잘 지키도록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에 고향 교회 목사님은 아들 없이 딸만 둘이었는데, 그 딸들을 일본 유학까지 공부시켰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는 여자들이 초등학교도 못 다닌 때인데 일본 가서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요새 미국 가서 대학을 나온 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런데 맏딸은 일본 가서 유학하는 바람에 공산당이 되어 해방한 다음 공산당 도간부가 되었고, 작은 딸도 초등학교 선생인가 했는데 믿음을 다 팔아먹었습니다. 그 두 딸들은 공부를 해서 오히려 망한 것입니다. 부산 합동측 교회에 내가 사경회를 인도할 때에 어떤 권사의 딸이 공산당이 되었다는데,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반드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좋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돈을 많이 벌어주었다고 해서 자손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의 자식의 십중팔구(十中八九)는 방탕합니다. 그저 믿음을 물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첫째로 부모가 믿음을 잘 지키고, 그리고 그 자손들이 그 믿음을 물려받아놓으면 그 이상 더 복 받을 것이 없습니다. 만방이 다 우러러보고, 열방이 그 자손을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손이다 하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지 믿음으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아이들을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게 교회에 보내고, 성경을 보라고 하며, 믿음으로 인도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3. 믿는 자에게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을 입히심
영혼이 여호와로 인하여 기쁘고 즐거운, 산 믿음을 소유하게 됨
본문 10절에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믿음이 아닌 산 믿음을 지키는 사람, 믿음으로 승리의 길을 걷는 사람, 영적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그것이 영적 신앙에 선 증거가 됩니다. 내 영혼이 즐거워하나, 즐거움을 잃어버렸나 한 번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영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움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그것은 죽은 믿음으로, 영적신앙이 아니고 육에 속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이 항상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사람에게 입혀주시는 ‘구원의 옷’은 그 사람이 구원의 세계에서 사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의의 겉옷’은 세마포 옷을 입어나간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즐거워할 뿐 아니라 의로운 행실을 날마다 입어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의 겉옷을 입히셔서 신랑처럼 면류관, 제사장의 관처럼 아름다운 관, 영광의 관을 그 사람에게 씌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신부가 보물로 단장함 같이 그 사람
을 영적 보물로 단장시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심어나갈 때에 의와 찬송을 거두게 하심
본문 11절에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씨를 뿌려놓으면 필연적으로 싹이 나고 움이 돋게 되는 것처럼, 네가 생명 있는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거기에서 모든 것이 다 나오되, 하나님의 축복이 나오고 의와 찬송도 나오고 만국이 소생하는 것도 나오고 자손이 복을 받는 것도 나오고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도 나오고 면류관도 나오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참 좋은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이므로, 자꾸 심어놓으면 됩니다. ‘무엇이 없다. 무엇이 없다. 뭐 때문에 걱정이다’하지 말고 자꾸 심어놓으라는 것입니다. 심어놓으면 나오고, 나오면 풍성해집니다. 없어지지 않고 심으면 심은 대로 나오기 때문에 이 믿음으로 계속해서 심어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둘 때에는 기쁨으로 거두어서 돌아올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