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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6일 토요일

이사야 53:1-12 메시야의 고난 당하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메시야의 고난 당하심
이사야 53:1-12

1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 모양과 풍채가 없으신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멸시함

본문 1절에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롬 10:16). 그리고 이 말씀은 많은 종들이 그
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나 사람들이 믿지 않고 배척할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의 팔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하셨으나 많은 사람들이 거역하고 물러갔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순’은 새롭게 나오는 싹으로 새 생명을 상징하며, ‘줄기’는 싹이라는 뜻입니다. 싹이 새롭게 나오고 가지가 새롭게 자라날 때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며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생명 운동은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굉장한 위용을 나타내시면서 오실 수 있지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이 아무 보잘 것 없이 오셨습니다. 봄철이 되면 땅에서 순이 나오는데, 그 순은 아무 볼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순순하게 나타나셨습니다. 보통 사람 같이 옷을 입으시고, 보통 사람이 먹는 대로 잡수시면서 조용히 생명의 역사를 해나가셨습니다(마 12:19). 생명이 살아나고 자라나는 것은 모양이나 풍채가 없습니다. 곡식 종자도 그대로 심어야 그 종자에서 새싹이 나옵니다. 보리는 보리 그대로 심어야 하고, 벼는 벼 그대로 심어야 하고, 조는 조 그대로 심어야 거기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와 같이 진리 그대로 순수하게 증거하고, 진리 그대로 세워나가야 생명이 있습니다. 참된 생명의 역사는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또 순과 새싹은 뻣뻣하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였습니다(마 11:29). 온유해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본문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고(요 1:11, 46:8, 46:49),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문벌과 학벌도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어서 사람들이 멸시하였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죄를 책망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모든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가 되셨습니다. ‘간고(艱苦)를 많이 겪었으며’란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슬픈 일을 많이 겪으신 것을 가리킵니다. ‘질고를 아는 자라’란 예수님께서 질병과 고통,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친히 담당해주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체휼하시고 담당하시기 위해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마 8:17;히 4:15).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얼굴을 가리고 예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배척과 모욕을 당하시고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동시에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가리키는데(요 1:10-11), 성도들도 예수님을 배반 하는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고난과 징벌을 담당하심

본문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 우리의 고난을 우리가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 값으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가 찔림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찔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은 모든 택한 백성을 대신하여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허리를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그 찔린 것과 못 박힌 상처는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찔리심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늘 생각하며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예수님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하시는 것인 줄 알고 죄에서 멀리 떠나야 합니다. 하여간 우리가 받을 징계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엡 2:15-17), 우리는 심령에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채찍에 맞는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의 상처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제 갈 길을 잘 모르는 양처럼 우리도 각기 자기의 길, 죄악의 길로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시편 14편 3절에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이 갈 길을 알지 못하고 그릇된 길로 걸어 가다가 악한 짐승에게 잡혀 먹히고 구렁텅이에 빠져서 망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친히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 죽을 곳으로 끌려가실 때에 잠잠하심

본문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다 담당하시고, 또 우리가 받을 곤욕을 대신 다 짊어 지시고 도수장으로 나가는 양과 같이 나가셨다고 하였습니다(요1:29).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을 곳을 향해서 나가셨습니다.
도수장은 양을 잡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바쳐진 어린 양으로서(고전 5:7),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잠잠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가 사형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대신 도수장과 같은 사형장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그래도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잘 참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이 세상에서 곤욕을 당하셨으나, 변명하지 않으시고 위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죄 없는 예수님을 정죄하고, 누명을 씌우고, 거짓 증거를 하고, 능욕을 하고, 핍박을 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잠잠히 구속을 이루어나가신 것입니다.

본문 8절에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택한 백성의 죄와 허물을 지시고 곤욕과 심문을 당하시며 죽을 곳으로 끌리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 사람들 중에서 그것을 깨닫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택한 백성도 믿기 전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많은 택한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몰라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실제로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일로 인하여 구원 받는 사람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끌려 다니시면서 여섯 번 심문을 받으셨는데, 
처음에는 안나스에게 끌려가시어 심문을 받으셨습니다(요 18:13). 
두 번째는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려 가셔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마 26:57).
세 번째는 공의회에 끌려 가셔서 심문 받으셨습니다(눅 22:66). 
네 번째는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셨습니다(막 15:1). 
다섯 번째는 헤롯에게 가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눅 23:7-8). 
여섯 번째, 다시 빌라도에게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눅 23:11).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죄 때문인 것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는데,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을 두고 깊이 생각하여야겠습니다. 우리가 받을 사형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받으셨습니다. 여섯 번 심문을 받으시면서 도수장에 끌려 가는 양과 같이 잠잠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4. 그리스도께서 대속(代贖)의 제물이 되심

본문 10절에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인해서 자기 영혼을 속건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육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영혼의 고뇌도 당하셨던 것입니다. 속건제는 속죄제의 한 유형이며, 배상의 문제가 제기됩니다(레5:6, 15-19). 그리스도께서 영혼을 속건제로 드린 결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영적 후손이 끊이지 않으므로 그의 날이 길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시어 제물로 드림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은 그날이 깁니다. 주기도문에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거기에 참여해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사도신경에도 마지막에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몸이 다시 살며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삽니다.

이제 다음 주일은 부활절인데,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본문 11절에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만 수고하며 고난당하신 것이 아니라, 영혼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영혼이 죄로 인해서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혼이 우리 죄를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육신도 우리의 죄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택한 백성의 구속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예수님께서 만족히 여기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의로운 종’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순종하시어 하나님의 의를 완성시켰으므로 의로운 종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의로운 종으로 죄인을 구속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대속(代贖), 대행(代行), 대형((代刑)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속하셨고, 예수님께서 의를 행해주셨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 구약 성경을 다 지키시고 죽기까지 완전 복종하셨기 때문에 완전한 의를 이루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를 믿는 사람에게 거저 주셨습니다.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 값을 물어주셨는데, 그것을 대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어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인이 되었어도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에게 육신의 부패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육체의 부패성을 점점 제거해야 합니다. 육체의 부패성, 옛 사람을 점점 죽이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어떤 목사는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입었으니까,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또 의를 입었는데 왜 죄인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육신의 부패성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사함 받았습니다. 또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행한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이루어놓으신 의를 믿음으로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의인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육체의 부패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점점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천상천하(天上天下)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며 그리스도를 높여주셨다는 것입니다(빌2:9).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란 하나님께서 승리자의 소득을 예수님에게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리로 모든 것을 정복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권세와 로마 구권과 죄와 마귀, 사망과 세상을 정복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승리하시므로 하늘의 권세와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으셨는데(마 28:18), 그 모든 소득을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과 함께 나누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었으며, 그 둘이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성은 안 죽는데 인성만 죽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는 것인 동시에,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를 끊어버릴 수 있으시겠는가 하는 것이 또 문제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의를 죽이실 수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지만, 의의 값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시나 의를 볼 때에는 다시 연결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 지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죄를 보시고 끊어버리시는 동시에, 예수님께서 의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다시 연결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은 끊어버리고 의인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 모든 사람의 죄가 전가된 것을 보시고 예수님을 하나님과 끊어버리시는 동시에,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이루시는 완전무결한 의로 인하여 다시 하나님과 연결시키신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끊어버리시는 동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완전한 하나님의 의와 신성으로 다시 하나님과 연결시키신 것입니다.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셨고, 부활 승천 후에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롬 8:3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셨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내놓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 때문에 많은 고난을 받으신 것을 우리가 고난 주간에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여야겠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부활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