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사역의 시작
열왕기하 2:15-22
15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
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
서 땅에 엎드리고 16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
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
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
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 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
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
냐 하였더라 19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
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
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
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
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
에 이르렀더라
열왕기하 2:15-22
15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
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
서 땅에 엎드리고 16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
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
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
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 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
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
냐 하였더라 19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
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
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
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
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
에 이르렀더라
1.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야를 찾아봄
하나님이 세우신 영감 강한 사람을 잘 받들어야 함
엘리야가 승천하였습니다. 불말과 불수레가 옹위하고 회리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생도 중 오십 명
이 엘리사에게 와서 당신의 선생이 하늘로 올라가다가 어디 떨어졌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떨어졌을 것 같으니 가서 좀 찾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감 강한 사람을 잘 받들어야 함
엘리야가 승천하였습니다. 불말과 불수레가 옹위하고 회리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생도 중 오십 명
이 엘리사에게 와서 당신의 선생이 하늘로 올라가다가 어디 떨어졌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떨어졌을 것 같으니 가서 좀 찾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15-16절에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
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
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
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선지
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엘리야에게 있던 영감이 엘리사
에게 온 것을 알고 그 발 앞에 와서 땅에 엎드렸습니다.
자기보다 영감이 강하니까 와서 엎드렸습니다.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영감이 왔으니 얼마나 강한 영권이 있었겠습니까? 생도들이 그것을 인
정하고 그 앞에 와서 끓어 엎드리며 그를 존경하고 그의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서로 시기하고 당파
를 짓고 남을 깎아 내리려 하고 자기가 올라가려고 하는 것은 세상 일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면 가서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내세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을 해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될 것 아닙니까?
엘리사는 엘리야에게서 배웠습니다. 또 선지자의 생도들도 엘리야에
게 배웠습니다. 만약 선지자의 생도들이 “당신도 엘리야에게 배우고 우
리도 엘리야에게 배웠으니까 당신과 우리는 같다. 그러니까 같이 다
동등으로 하자”고 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
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쓰시는 종을 내세워 받들어줘야만
일이 바로 됩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자기보다 영감이
나은 사람은 보면 압니다. 기도하는 것을 봐도 알고 말해 보면 압니다.
또 강도하는 것 몇 시간만 들어보면 압니다. ‘아, 영감이 크다! 진리가
있다’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존경하고 받들어 나가는 일
을 해야 합니다. 올라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받들려고 해야 합니다.
저보다 영감이 강하고, 저보다 많이 앞선 선배들 몇 사람이 있었습니
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을 다 떠났습니다. 저는 그분들만큼 할 수가 없
어서 그분들을 존경하고 배우려고 하고 받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나가는 신앙 노선과 기도하는 생활을 모방하려고 했습니다. 그
래서 오늘날까지 온 것입니다. 된 것은 없지만 이만큼이라도 된 것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존경하고 받들면서 은혜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
다. 또 그들의 기도하는 생활을 본받으려 하고 또 가르쳐준 교훈을 그
대로 순종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별로 이룬 것은 없지만 그런 것들로
말미암아 이만큼이라도 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게 배웠습니다. 만약 선지자의 생도들이 “당신도 엘리야에게 배우고 우
리도 엘리야에게 배웠으니까 당신과 우리는 같다. 그러니까 같이 다
동등으로 하자”고 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
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쓰시는 종을 내세워 받들어줘야만
일이 바로 됩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자기보다 영감이
나은 사람은 보면 압니다. 기도하는 것을 봐도 알고 말해 보면 압니다.
또 강도하는 것 몇 시간만 들어보면 압니다. ‘아, 영감이 크다! 진리가
있다’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존경하고 받들어 나가는 일
을 해야 합니다. 올라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받들려고 해야 합니다.
저보다 영감이 강하고, 저보다 많이 앞선 선배들 몇 사람이 있었습니
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을 다 떠났습니다. 저는 그분들만큼 할 수가 없
어서 그분들을 존경하고 배우려고 하고 받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나가는 신앙 노선과 기도하는 생활을 모방하려고 했습니다. 그
래서 오늘날까지 온 것입니다. 된 것은 없지만 이만큼이라도 된 것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존경하고 받들면서 은혜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
다. 또 그들의 기도하는 생활을 본받으려 하고 또 가르쳐준 교훈을 그
대로 순종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별로 이룬 것은 없지만 그런 것들로
말미암아 이만큼이라도 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한 사람은 된 것이 없습니다. 이북에서 이기선 목
사님께서 영감이 강하고 성경을 많이 연구하셨는데, 비방하는 목사들
은 “이기선 목사는 아무 것도 모른다. 저 평안북도 박천 시골에서 나서
돈이 많아도 셀 줄 모르는 그런 영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돈이 많다
고 왜 세겠습니까? 괜히 비방하느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기선
목사님께 배운 사람들은 “참 종이다. 여기서 배워야 한다. 이기선 목사
님께서 하는 구원운동이 참 운동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기선
목사님 계통을 이어 나왔습니다. 또 김현봉 목사님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그 중 같이 머리 빡빡 깎고 뭘 한다고 그러느냐? 아무 것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다니다가는 사람 버린다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과 같이 되면 사람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저한테도 친구들이 찾아와서 김현봉 목사님을 따라다니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사람 버린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
대로 할 것이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백영희 목사도 세상을
떠났지만 영감이 강했습니다. 영감이 강한 사람은 보면 압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께 배우려고 한 것입니다. 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은 김
현봉 목사님한테 배운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아현 교
회에 가보니까 목사님이 안 계셨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셨느냐”고 물
으니까 “삼각산에 가셨다”고 합니다. “뭐 하러 가셨냐”고 하니까 “기도
하러 가셨다”고 했습니다. 삼각산에 기도하러 가신다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가끔 가시냐”고 하니까 “매일 가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래서 ‘이상하다. 어떻게 매일 가실 수 있는가’라고 하면서 다음에 만나
서 물어봤는데 진짜였습니다. 그래서 영감이 강하셨습니다. 그리고 교
회 잘 하는 방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몇 마디로
가르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집회를 해야 다 가르쳐주지 여기서 몇
마디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몇 사람
만 모여도 가르쳐주시겠느냐”고 하니까, 가르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서,
너 사람이라도 되느냐고 하니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창인 황기
종 목사, 김순진 목사와 같이 갔습니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처음에는
삼각산 제일 기도원 아래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다 불을 때고 배웠습니
다. 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을 그때부터 배운 것입니다. 또 산에서 집회
하는 것도 김현봉 목사님을 모시고 우리가 시작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에 서, 너 사람이 시작해서 차차 커져 삼각산 제
일 기도원에서 하고, 관악산에서도 하면서 한 몇 십 년 동안 내려 왔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영감이 강한 사람을 내세워 일해야 합니다. 앞으로
도 그렇습니다. 십 년 후에도 그렇고 백 년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
감이 강한 사람을 내세워 받들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시해서
“네가 무엇이냐?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렇게 일대일로 나간다고 하
면 하나님의 일도 안 되고 자기 구원도 안 됩니다.
도 그렇습니다. 십 년 후에도 그렇고 백 년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
감이 강한 사람을 내세워 받들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시해서
“네가 무엇이냐?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렇게 일대일로 나간다고 하
면 하나님의 일도 안 되고 자기 구원도 안 됩니다.
엘리사가 생도들이 엘리야 찾는 것을 허락함
엘리야가 승천한 것을 안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하나님의 사람
이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졌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용사 오십 명이 있으니 보내서 좀 찾아보게 해달라는 것입니
다. 엘리사가 뭐라고 했습니까?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데
려가셨는데 떨어졌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떨어진 것이 아
니라 하늘나라로 데려가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엘리사가 부끄러울
만큼 그들이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라고 했습니다. 왜 가라고
했겠습니까? 엘리야가 올라가다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아는데
왜 가라고 했습니까? 말로 해서 안 되니까 가보고 오라는 것입니다.
갔다 와야 확실하게 알기 때문에 가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확
인을 해봐야 알 수 있는 믿음의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가라고 했습
니다. 하나님께서 들어 하늘나라로 올려갔지, 가다가 왜 떨어뜨렸겠습
니까? 이 사람들은 ‘회리바람 타고 올라갔으니까 회리바람이 그치면
떨어지지 않겠는가’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서 가서 보려는 것입니다. 회리바람으로 돌다가 올라갔으니 회리바람
이 그치면 떨어질 것 아닙니까?
회리바람이 무엇입니까? 돌아가는 돌개 바람이지요? 돌아가는 것이
회리바람입니까? 뺑뺑 돌아가면서 위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미국에
회리바람이 강하다고 합니다. 회리바람을 토네이도라고 하는데, 강하게
불면 자동차도 들어 올리고 웬만한 것을 많이 들린다고 합니다. 이 선지자의 생도들이 그렇게 회리 바람을 타고 올라가다가 회리바람이 그치면 내려질 것이 아닌가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사를 믿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만 해서 회리바람이 그치면 떨어질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오십 인이 돌아가면서 삼 일 동안 두루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정도가 약한 사람들
은 자기 생각대로만 생각하고 요구하는 것이 많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강제로 막지 말고 “한 번 해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렇게 해서 안 되면 ‘거봐라, 안 되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바로 인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8-40절에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
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
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
아가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골리앗과 더불어 싸우러 나가
겠다고 하니까 사울 왕이 “나가려면 내 군복을 입고 내 칼을 차고 나
가라”고 한 것입니다. 다윗이 입고 온 것은 군복이 아닙니다. 양 치던
목동의 의복입니다. 그리고 손에는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러니 골리앗 대장과 싸우러 나가려면 군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칼도 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갑옷과 칼이 소년 다윗
에게 맞겠습니까? 다윗은 군복을 입고 나가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막대기와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이길 승산이 있는데, 왕은 군복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또 칼을 차라는 것입니다. 또 왕의 투구를 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그것을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나 하는대로 두십시오. 나는 물매 가지고 나가서 이기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왕의 말을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왕이 하라고 하니까 안 될 줄 알면서도 맞지도 않는 사울의 투구와 의복과 칼을 입고 찬 것입니다. 의복을 입으니까 땅에 질질 끌리고, 투구를 쓰니까 쑥 내려와서 눈이 덮혔을 것이고, 검을 차니까 그 검이 얼마나 길었겠습니까? 땅에 질질 끌려 나갔을 것 아닙니까? 시험적으로 한참 걸어보면서 사울 왕도 보게 했습니다. 의복 입은 것을 보고, 투구 쓴 것을 보고, 칼 찬 것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걸어가는 것도 보게 하였습니다. 걸어가니까 갑옷이 질질 끌리고 칼도 끌렸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사울이 ‘내가 입으라고 했지만 안 되겠구나’라고 했을 것이고, 그때 다윗이 “내가 익숙치 못해서 벗고 나가야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매를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처음부터 왕의 갑옷을 못 입는다고 했으면 사울 왕의 마음이 상했을
것 아닙니까? ‘조그만 녀석이 말도 안 듣고 갑옷을 안 입는다고 하는
구나. 전쟁에 갑옷을 입고 나가야지, 네까짓 것이 뭘 가지고 하겠느냐?
그만 두어라’고 하게 되면 일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 왕
이 입어보라고 했을 때에 다윗이 입어 본 것입니다. 안 될 줄 알면서
도 투구를 쓰라고 하니까 써 본 것입니다. 칼을 차라고 하니까 차 본
것입니다. 안 될 줄 알면서도 왕이 하라고 하니까 해 본 것입니다. 해
보면 사울 왕이 안 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때에 다윗이 안 하겠다고
하면 사울 왕이 허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안 한다고 하
면 못 씁니다. 그러면 사울 왕의 마음이 상하고, 일이 다 틀어집니다.
일이 틀어지지 아니하고 잘되게 하려고 윗사람이 합당치 못한 것을 시
켜도 진리 문제가 아니면 그대로 순종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안 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가서 안 하겠다고 하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김정득 목사가 한 말이 있는데, 무슨 일을 할 때에 자기는 콩으로 메
주 쑨다는 의견이 옳은데 윗사람이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하면 싸우지 말고 팥으로 메주를 쑤라는 것입니다. 팥으로 메주를 쑤면 메주가 안 될 것 아닙니까? 안 된 다음에 윗사람이 보고 “이거 참 안 됐다. 아까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콩으로 메주를 쒀 봐라”고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연합을 해서 잘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하는 것도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을 시키면 잘 안 될 것 같아도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
서 안 된 다음에 윗사람이 모르겠습니까? 이것이 안 되었으면 ‘네 의
견대로 해 봐라. 네 의견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했으니까 아마 그것
이 옳을지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콩으로 메주를 쒀 보니 잘되
었습니다. 처음부터 “팥으로 메주를 쒀야 합니다, 콩으로 메주를 쒀야
합니다”, “팥으로 쒀야 한다, 콩으로 쒀야 한다”라고 하면서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의견이 충돌되어서 “팥이고 콩이고 다 집어 치워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이 다 결단되어 메주도 못 쑤고 장도
못 담가 먹습니다. 장을 못 담그면 살림살이를 할 수 있습니까? 그러
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일을 잘해나가는 것이 목적이지 자기 의견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의견을 세워도 팥으로 한 번 쒀보고 세
우라는 것입니다. 팥을 쒀서 손해가 나봐야 한 말밖에 더 나겠습니까?
그러나 싸우다가 갈라지고 파탄이 나면 팥 백 가마니보다 손해가 더
많습니다. 만 가마니보다 손해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김정득 목사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한 것을 확실히
압니다. 떨어지기는 왜 떨어졌겠습니까? 그런데 생도들의 신앙 정도가
가다가 떨어졌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꾸 가서 찾아오겠다는 것
입니다. 그것을 끝까지 반대하면 생도들의 마음이 다 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면 그대로 해봐라. 찾으러 한 번 가봐라”고 한 것
입니다. 실제로 가보니까 없었습니다. 없으니까 “내 말이 맞지 않았느
냐? 하나님께서 완전히 데리고 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자기 의견과 맞지 않아도 해 보라고 그러십시오. 안 될 것이 뻔하지만, 해 보고서 안 되면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다 이해가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괜히 싸워서 일이 다 틀어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
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
하였느냐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물 때에 그들
이 사흘 동안 찾아보고 돌아왔습니다. 엘리야는 없었습니다. 못 찾았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엘리사의 말이 참인 줄 알게 되었
습니다. 진짜 승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좋지 못한 물을 좋은 물로 만듦
엘리사가 좋지 못한 물을 좋은 물로 만듦
본문 19-22절에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
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
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
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
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읍은 아름다운데 물이 좋지 않다는 것입
니다. 좋지 않은 물로 농사하면 곡식이 안 됩니다. 토산이 익지 못합니
다. 또 물이 써서 사람이 마시기에도 합당치 못합니다. 그래서 엘리사
가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새 그릇에 소
금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헌 그릇에 가져오면 안 됩니다. 소금을 담아서 내게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새 그릇에다가 소금을 담아 가져왔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그 소금을 물 근원으로 가지고 올라가 그 가운데 던지며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물이 변하여 아주 좋은 물이 되었습니다. 그 지방이 본래는 살기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물 때문에 사람들이 제대로 살지 못했는데, 물을 고쳐놓으니 이제 제일 좋은 지방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 10-11절에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
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
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
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써서 많은 사
람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떨어진 별은 타락된 교역자를 말하는데, 물을
쓰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별이 떨어졌다는
것은 타락되었다는 것입니다. 별은 교역자입니다. 즉, 타락된 교역자가
물을 쓰게 만들어 사람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
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쓰게 만들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타
락된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생명의 양식으
로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에 쓴 물을 섞어 먹이고 결국 그것을 먹고 사
람들로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4-25절에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
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
실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무를 던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
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를 던지면
물이 달아집니다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던지니 쓴 물이 달게 됨
여기서 쓴 물을 달게 만든 일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달게 만드
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다가 물에 던지면 물이
달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건강해지
고 또 곡식이나 토지 소산도 잘 결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그릇은 무엇입니까? 새 그릇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소금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그런데 맛 잃은 소금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맛 잃은 소
금이 아니라, 소금의 맛을 제대로 내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제대로 짠
소금이라야 쓴 물에 녹아져도 단 물이 됩니다. 소금이 문제입니다. 맛
있는 소금을 가져다가 그 지방의 샘물에 부으면 그곳에 좋은 물이 납
니다. 좋은 세상이 됩니다. 그 지방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세상, 좋지
못한 물,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어도 거기에서 이제 새 그릇이 나와야
합니다. 심령이 새롭게 된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금 노릇을
하는 성도가 나와서 녹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물이 좋은 물이 되어
그곳이 좋은 곳이 됩니다. 그곳이 살기 좋아져서 떠날 생각이 없어지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그릇이 중요하고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 회
개하고 새롭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에는 맛을 내는 소금이
중요합니다. 즉, 소금의 역할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살리는 물이
됩니다. 과거에는 죽이는 물이었는데 이제는 살리는 물이 된다는 것입
니다. 그곳을 살리는 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살 수 없는 곳이 살
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소생해 올라오고 거
기가 낙원이 됩니다. 사막과 황무지가 단 물이 나오면 소생합니다. 얼
마나 좋습니까? 물 좋은 데 찾아다니려 하지 말고, 자기가 새 그릇이
되어, 즉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영적
생명으로 삼고 나가야 합니다. 소금처럼 녹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롭게 되어 그 물이 달아집니다. 이것은 신령한 물입니다. 그렇게 하면 신령한 물이 됩니다. 신령한 젖을 먹으면 달고 또 모든 사람이 살아납니다.
여기서 쓴 물을 달게 만든 일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달게 만드
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다가 물에 던지면 물이
달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건강해지
고 또 곡식이나 토지 소산도 잘 결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그릇은 무엇입니까? 새 그릇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소금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그런데 맛 잃은 소금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맛 잃은 소
금이 아니라, 소금의 맛을 제대로 내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제대로 짠
소금이라야 쓴 물에 녹아져도 단 물이 됩니다. 소금이 문제입니다. 맛
있는 소금을 가져다가 그 지방의 샘물에 부으면 그곳에 좋은 물이 납
니다. 좋은 세상이 됩니다. 그 지방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세상, 좋지
못한 물,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어도 거기에서 이제 새 그릇이 나와야
합니다. 심령이 새롭게 된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금 노릇을
하는 성도가 나와서 녹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물이 좋은 물이 되어
그곳이 좋은 곳이 됩니다. 그곳이 살기 좋아져서 떠날 생각이 없어지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그릇이 중요하고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 회
개하고 새롭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에는 맛을 내는 소금이
중요합니다. 즉, 소금의 역할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살리는 물이
됩니다. 과거에는 죽이는 물이었는데 이제는 살리는 물이 된다는 것입
니다. 그곳을 살리는 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살 수 없는 곳이 살
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소생해 올라오고 거
기가 낙원이 됩니다. 사막과 황무지가 단 물이 나오면 소생합니다. 얼
마나 좋습니까? 물 좋은 데 찾아다니려 하지 말고, 자기가 새 그릇이
되어, 즉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영적
생명으로 삼고 나가야 합니다. 소금처럼 녹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롭게 되어 그 물이 달아집니다. 이것은 신령한 물입니다. 그렇게 하면 신령한 물이 됩니다. 신령한 젖을 먹으면 달고 또 모든 사람이 살아납니다.
타락한 선지자는 단 물을 쓰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성경
이 원래 단 것인데, 타락된 교역자는 이것을 쓰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
들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쓰게 만든다는 것은 성경 한 절 읽어 놓고
세상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세상 이야기, 육신에 대한 것, 세상에 대한
것, 또 정치에 대한 것, 그저 성경 한 절 읽어놓고는 세상 이야기만 합
니다. 그러니까 그 물이 쓰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성경 이야기는 안
하고 성경을 떠나서 육신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 정치에
대한 이야기, 돈에 대한 이야기, 이것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이
쓰게 되어 사람들이 다 살 수 없게 됩니다. 인본주의가 나오고 독재가
나오고 이기주의가 나오고 돈만 자꾸 내라고 하면서 자기 호주머니만
채우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니 물이 다 써졌습니다. 쓴 물을 마셔보면
압니까? 어느 교회에 가서 척 마셔 보면 이것이 쓴 물인지, 단 물인지
압니까? 압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알고 내 음성 아닌 것도 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신령한 음성을 압니다. 신령한 음성
을 알고 또 단 물도 압니다. ‘이제야 살겠다’라고 하면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쓴 물은 들어 보면 하나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들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들어서 유익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기는
많이 하는데 영적 양식이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쓴
물인지 알고 다른 양식을 찾으려고 하면 위협을 해서 “이 교회 떠나면
저주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협하여 잡아놓는 것입니다. 쓴 물 먹
이면서 못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성의 본래 물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
어졌습니다. 이제 엘리사가 그 곳의 물 근원으로 가서 새 그릇에 소금
을 담아 던지자 안 좋았던 물이 좋은 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게 되었습니다.
소금의 역할 - 쓴 물을 단 물로 만듦
여기서 소금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
지하면서 말씀만 생명으로 삼고 절대 양보하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맛있는 소금이 됩니다. 소금은 대접을 잘 못 받습니다. 소금을
잘 대접합니까? 보통은 성글성글하게 질이 안 좋은 가마니가 소금 가
마니입니다. 소금을 사다가는 찌그러진 항아리나 깨진 항아리를 때운
것에 담아 놓습니다. 그리고 아랫목에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컴컴한
데, 그늘진 데에 가져다 놓습니다. 소금이 대접을 잘 못 받습니다. 게
다가 녹아져야 합니다. 녹아서 형체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물
이 맛을 냅니다. 그런 며느리가 시집을 가면 온 시집의 물이 맛이 나
고, 그런 사람이 교회에 몇 있으면 교회 전체가 변화합니다. 교회 전체가 신령한 교회가 됩니다.
쓴 물 먹일 때에 거기에 앉아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쓴 물을 먹고서
는 살 수가 없는데 왜 거기에 앉아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을 안 지키
는 것입니다. 쓴 물이 있으면 ‘쓴 물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못 된다’고
하며 그곳에서 나와 단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생명이 살아야
지, 생명이 살지 못하는데 무엇 하려고 거기에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과거에 맛 잃은 소금 노릇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맛 잃은 소금은 하나님께서는 내버리시고 자신 속에서도 신앙의 맛이
없어져 세상 사람들도 발로 밟는다고 하였습니다. 맛 잃은 소금은 자
신 속의 신앙의 맛부터 없어집니다. 기도하는 맛도 없고 성경 보는 맛
도 없고 예수님 믿는 맛이 없어져서 냉랭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서는 내버리시고, 세상 사람들은 “네가 예수를 믿어? 네가 천당에 가
면 나는 만당에 가겠다. 저 사람 때문에 나는 교회에 안 나간다”라고
하며 발로 밟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물 근원에 넣어서 그 물을 좋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서 물 근원에 부으면 한국도 점점 좋아집니다.
정치를 잘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이 없으면 안 되니까 새
그릇에 소금만 갖다 넣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본래는 좋지 못한 물
이었지만 쓴 것이 다 없어지고 좋은 것이 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
이 사모하고 ‘그 물이 좋다. 거기 가서 물을 먹어야 살겠다’라고 하면서
신령한 양식, 일용할 양식을 찾아서 모여 교회가 부흥이 됩니다. 살려
고 오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교회가 부흥이 될 것 아닙니까? 쓴 물을
먹여놓으니까 차츰 도망치는 것입니다. 심방을 아무리 다녀도 도망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도 먹을 것이 없는데 무엇 하러 오겠습니까?
그러므로 본래 세상 모든 것이 다 좋지 않은 물인데, 우리가 그곳에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다 부어서 좋은 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래서 사람도 살리고 토지 소산도 살리고 열매도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일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