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가 욥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방함
욥기 34:1-37
1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2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6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 7어느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훼방하기를 물 마시듯 하며 8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11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12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계를 정하였느냐 14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찐대 15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 16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7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치리하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자를 네가 정죄하겠느냐 18그는 왕에게라도 비루하다 하시며 귀인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19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20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21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22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23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24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25이와 같이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사이에 엎으신즉 멸망하나니 26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 27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히 여김이라 28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케 하며 환난받는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29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 주께서 자기 얼굴을 가리우실 때에 누가 감히 뵈올 수 있으랴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시니 30이는 사특한 자로 권세를 잡아 백성을 함해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31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겠나이다 32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 33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 대로 말하라 34총명한 자와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 있는 자가 필연 내게 이르기를 35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지혜 없다 하리라 36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욥기 34:1-37
1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2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6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 7어느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훼방하기를 물 마시듯 하며 8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11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12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계를 정하였느냐 14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찐대 15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 16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7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치리하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자를 네가 정죄하겠느냐 18그는 왕에게라도 비루하다 하시며 귀인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19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20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21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22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23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24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25이와 같이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사이에 엎으신즉 멸망하나니 26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 27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히 여김이라 28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케 하며 환난받는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29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 주께서 자기 얼굴을 가리우실 때에 누가 감히 뵈올 수 있으랴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시니 30이는 사특한 자로 권세를 잡아 백성을 함해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31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겠나이다 32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 33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 대로 말하라 34총명한 자와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 있는 자가 필연 내게 이르기를 35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지혜 없다 하리라 36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1. 엘리후가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을 택하자고 제안함
본문 1-2절에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가 욥의 세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다 듣고 기다리고 있다가 말한다고 하며, 지금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아첨하지 않으며 바로 판별하여 바른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욥의 세 친구와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과 지식 있는 자들과 함께 스스로 옳은 것과 선한 것을 알아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가 욥의 세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다 듣고 기다리고 있다가 말한다고 하며, 지금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아첨하지 않으며 바로 판별하여 바른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욥의 세 친구와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과 지식 있는 자들과 함께 스스로 옳은 것과 선한 것을 알아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는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입이 ‘맛이 있다, 없다, 짜다, 싱겁다’에 대해 분별하는 것처럼, 우리 귀가 말을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을 택하고 무엇이 선한지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엘리후는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으니 다른 데에서 알아볼 것 없이 우리끼리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요즘 여호와의 증인이 사람들을 많이 미혹시키는데, 사람들에게 성경공부를 시켜준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귀가 말을 분별할 수 있으니 가서 물어볼 것 없다”라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알아봐야 한다고 하며, 성경을 잘 모르는 교인들을 붙들고 여호와의 증인 교리만 자꾸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장로교나 다른 교파들은 여호와의 증인인 자기들을 다 훼방하므로 자기들끼리 알아보면 된다고 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미혹을 받은 자들이 다른 목사에게 가서 물어보지도 못하게 하고 성경을 바로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못하게 합니다. 오로지 자기네 말만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단설도 계속 들으면 옳게 들리게 됩니다. 또 성경을 인용하기 때문에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은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사람들은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는 비유를 가지고,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가르
칩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삼위일체(三位一體)도 부인하고 영혼도 부인합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구속을 부인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하여간 그 사람들처럼 우리끼리 알아보자고 말하면, 옳게 듣게 되어 미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알아보자는 말이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뭘 알아보겠습니까? 자기는 어린 줄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알 것 다 아니까 우리끼리 알아보고 어느 것이 옳은지를 분별하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못 듣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증인은 악독한 이단이므로 이런 이단과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이서 1장 10-11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단들이 집에 오면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들이지 않아도 집에 들어와서 얘기 좀 하자고 앉아버리는데, 마주 앉아도 안 됩니다.
또 알아보려면 우리끼리 알아보자고 하는 데에 넘어가지 말고, 성경을 바로 아는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고 목사에게 가서 물어봐야 합니다. 자신들은 바로 알만한 실력이 없는데, 어떻게 자기들끼리 알아볼 수 있습니까? 이미 말했듯이 이단설도 계속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것이 옳게 들립니다. 그 점을 이단들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 성경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지식이 제대로 없는 사람들끼리 알아봐야 뭘 알아보겠습니까? 자기들끼리 알아보면 잘못된 주장에 미혹되기 쉽습니다. 까딱하면 미혹되는 것입니다.
또 얕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 알아보면 얕은 것밖에는 모릅니다. 깊은 신앙, 높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물어봐야 똑바로 알 수 있습니다. 얕은 신앙에 있는 사람끼리 알아보면 바른 것을 알지 못합니다. 또 일부분만, 한 모퉁이만 아는 사람끼리 알아보면 바로 알지 못합니다. 전체를 아는 사람과 의논해야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한 쪽만 알면 다른 쪽을 무시하게 되고, 아는 것만 옳게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를 알면 그것이 잘못된 것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흉년 때 식량이 좀 생겼다고 하면, 아이들끼리 생각할 때는 자기들끼리 나눠먹는 것이 옳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 전체로 생각할 때에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이 다 있는데, 자기들끼리만 먹겠다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한 쪽만 생각하면 그것이 옳은데, 다른 면을 생각하면 그것이 옳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 면을 보아야 합니다. 좀 더 넓게,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각자 자기 교회만 생각하면 자기 교회에서 연보한 것을 가지고 자기 교회 운영을 잘하는 것이 옳
습니다. 그러나 전체를 생각하면 자기 교회만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약한 교회를 도와줘야 하고 선교도 해야 하며, 여러 가지로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자기들끼리 하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은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세 가지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님을 생각하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우리끼리 알아보자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전체를 생각하고, 높은 차원에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파리를 잡는 것이 옳다고 여기고 다른 아이 얼굴에 앉은 파리를 잡으려고 때리면, 넓은 의미에서는 옳지 않습니다. 한
전도 부인이 맹장 수술을 하다가 죽었는데 왜 그런가 하였더니 혈압이 높았는데 의사가 그것을 모른 채 그저 맹장 수술만 한 것입니다. 이 경우 혈압과 맹장 수술할 것을 함께 고려하여 생각하는 것이 옳듯이, 한 가지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한 가지만 생각한다고 언제나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면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엘리후가 욥의 깊은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방함
본문 5-6절에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13장 18-19절에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스스로 의로운 줄 아노라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욥 스스로 자신이 의로운 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그 말을 뒤집어서 욥이 하지 않은 말을 덧붙여 반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욥기 16장 17절에 보면 욥이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고 하였는데, 엘리후는 그 말에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가 되었고”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욥기 19장 6절에 욥이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엘리후는 이 말에도 다른 말을 보태서 말하며 욥이 잘못하였다고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또 욥기 27장
2-4절에서 욥이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면서 자신의 의를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엘리후는 본문 5-6절에서 욥이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고 말하였다고 하여 욥이 말한 대로 바로 이해하며 말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말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조금 근거는 있으나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본문 7-9절에 “어느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훼방하기를 물 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훼방하지 않았고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며 함께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후가 욥의 말을 듣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갖다 붙인 것입니다.
요즘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에 거짓을 보태서 정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침소봉대(針小棒大)라는 말이 있는데, 바늘을 보고 몽둥이를 봤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늘을 몽둥이와 같이 크다고 말하며, 하지 않은 말을 보태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악한 자가 욥의 옆에 섰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욥이 악한 자가 있는 곳으로 지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욥이 악한 자와 사귀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술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술 집에 들어갔다. 술 먹었다. 술 집 여자와 다녔다’라고 갖다 붙이는 것과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위의 엘리후가 한 말을 한 적이 없고 악한 자들과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교역자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슷한 것으로 보태고, 거짓말로 뒤집어 씌우며 훼방하는 것입니다. 하지 않은 일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악인과 함께 다녔다고 합니다. 욥이 악인과 함께 다녔다는 것은 완전히 상관없는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악인이 욥에게 와서 말 한 마디를 건넬 수도 있고 욥이 악인에게 좋은 말을 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근거를 삼아 욥이 잘못했다고 뒤집어씌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분별할 줄 모르면 안됩니다. 자꾸 욥이 잘못했다고 하고 거짓말을 했다고 하고 훼방했다고 하며 악한 사람과 다녔다고 하면, 듣는 사람은 ‘정말 악한 사람과 다녔나보다. 그렇게 말했나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목사를 훼방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훼방합니다. 비슷한 것을 보태서, 목사가 잘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남의 믿음에 손해를 주고 하나님의 일에 방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우리가 바로 알고 엘리후와 같이 훼방하는 말에 현혹되면 안 되겠습니다.
본문 9절에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이 이렇게 말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훼방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것이 하나 있으면 그것을 크게 만들어서 정죄합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도 근거 없는 말은 아닙니다. “세리와 같이 먹었다. 죄인의 친구다”라고 한 것도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들과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실제 세리의 집에 들어 가셔서 음식을 드시고, 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비방은 예수님께서 실제 행하신 일에 보태어 말하는 것이며, 비슷한 것으로 바꾸어서 예수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훼방하려면 다 할 수 있습니다. 마귀도 예수님을 훼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있는 훼방에 미혹을 받아서 안 좋은 쪽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훼방에 넘어가는 사람은 잘못된 것입니다. 훼방하는 사람은 마귀의 시험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세례 요한에게는 주위 사람들이 “네가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한다”라고 하며 귀신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훼방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배경에는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슷한 말, 악한 말로 꾸며 갖다 붙이는 훼방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에 굳게 서서 나가야겠습니다.
3. 엘리후가 하나님께서는 공의대로 판단하신다고 함
보편적인 하나님의 진리를 이야기함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공의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행치 아니하시고 불의를 행치 않으신 다는 말은 맞는 말씀입니다.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불의를 행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엘리후가 지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욥에게 재앙 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며 악을 행치 아니하십니다. 결국 욥의 환난은 하나님께서 공의대로 주신 환난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엘리후가 한 말도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합니다. “죄 때문에 환난 받는다. 죄 때문에 징계를 받는다”는 말은 보통 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초보적인 진리입니다. 욥이 환난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좀 더 연단을 시키셔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것입니다. 욥은 특별케이스인 것입니다. 죄 때문에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연단하심으로 욥을 정금과 같은 자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욥이 환난 받는 이유는 초보적인 진리에 따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욥이 죄로 인해 환난을 당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죄로 환난을 당하는 것은 맞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공의대로 심판하시는 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욥이 환난 당하는 것은 특별한 상황임
그러나 이렇게만 아는 것은 한 가지만 아는 것입니다. 특별 케이스는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특별 케이스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도 레위 지파에서 뽑히는 것이 보통이며, 그것이 진리이지만, 특별한 제사장도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멜기세덱입니다. 또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난 제사장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은 한 가지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또 “모든 병은 귀신 때문에 온다. 귀신만 나가면 다 낫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하여 또 다른 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귀신 들려서 병이 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시려고 병을 나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경우가 있는데, 한 가지만 알아가지고 그것을 모든 경우에 갖다 붙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한 가지로 갖다 붙이면 일이 잘못되어나갑니다.
본문 13-15절에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계를 정하였느냐 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찐대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땅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이시며, 온 세계는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땅을 맡긴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홀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한 번 기운을 거두시면 다 죽고 망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에 “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치리하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자를 네가 정죄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대로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욥이 환난을 받는 것도 바로 그 공의대로 받는 환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대로 심판 하시는 분이신데, 어떻게 네가 정죄를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본문 18-19절에 “그는 왕에게라도 비루하다 하시며 귀인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왕이라도 비천하다고 하시고, 귀인들도 악하다고 하시며, 왕족들도 외모로 봐주지 아니하시고,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지 않으십니다. 똑같이 취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이나 귀족, 부자나 가난한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십니다. 왕이라고 더 봐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저울에 달아, 근수가 나오는 대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맞긴 맞는 말인데, 욥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욥은 이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연단을 시키시기 위해 주신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후가 보편적인 진리를 욥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이 말씀이 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자라고 봐주시는 것이 아니고, 왕이나 귀족, 왕족이라고 봐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순식간에 다 제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제하실지 모릅니다. 왕이나 귀족이나 부자라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찾으면 네가 위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데려가실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1-22절에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고 살피십니다.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그늘이 없습니다. 악을 행한 자가 어디에 가서 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시며 주목하시고 살피십니다.
본문 23-24절에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때에 오래 생각할 것이 없으십니다. 다 알고 계시는데, 무엇을 오래 생각하시겠습니까? 조사할 것도 없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세력 있는 자를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세우십니다.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세력이 있는 왕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뜻이시면 꺾어버리시고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세우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세력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 꺾으시고 다시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세력은 얼마 못갑니다. 세무십년(勢無十年)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못가서 다 꺾으시고, 대신 다른 사람을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5-27절에 “이와 같이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엎으신즉 멸망하나니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히 여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의 행위를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행위를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그 악한 일들이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령 골수, 마음속으로 지은 죄까지도 다 아십니다. 일생동안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다 들여다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한 번 엎으시면 다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목전에서 치심은’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사람의 목전에서 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길을 무시하며 나아갈 때에 손을 들어 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 진리를 배반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치십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지금 이런 말씀을 욥에게 적용시켜 욥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징계를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지금 욥은 특별한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표준대로만 정죄하는 것입니다.
본문 28-29절에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케 하며 환난받는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 주께서 자기 얼굴을 가리우실 때에 누가 감히 뵈올 수 있으랴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 하나님의 길을 무관히 여기는 사람, 진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 상달케 하며 환난받는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는 것입니다. 보통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사람을 징계하시며, 그로 인한 부르짖음을 하나님께 상달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진리로 징계 받을 때에 회개해야 함
우리도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그에게 들으신 바가 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면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실 때에는 그 누구라도 감히 하나님께서 잘못하신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죄가 있으면 징계하시고, 회개하면 다시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그에게 들으신 바가 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면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실 때에는 그 누구라도 감히 하나님께서 잘못하신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죄가 있으면 징계하시고, 회개하면 다시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4. 욥이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것인데, 회개치 않는다고 함
엘리후가 욥에게 회개를 촉구함
본문 31-32절에 “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겠나이다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엘리후가 욥에게 징계를 받았으면 회개하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 하지 않겠다고 하면 되는데, 왜 회개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 대로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는 대로 다 말하면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느냐? 네 뜻대로 갚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데, 네가 왜 하나님의 뜻을 싫어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34-35절에 “총명한 자와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 있는 자가 필연 내게 이르기를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지혜 없다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욥을 보며 지혜가 없다고 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죄가 있어서 징계를 받는데 딴 소리를 하고 회개를 안 하니까 다른 사람이 너를 무식하다고 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36절에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끝까지 시험이나 받을 것이다. 네 대답은 악한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37절에 “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최후의 패역을 더한다는 것입니다. 손뼉을 치며 하나님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것입니까?
회개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 손뼉을 치며 친구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욥과 친구들은 서로 깨달은 진리의 세계가 다름
그런데 이것은 욥과 친구들 간에 그 속에 있는 진리가 맞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도 진리를 가지고 와서 욥의 상황을 그 진리에 맞추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의 상황은 그 진리와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욥은 욥이 가지고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은 자기들의 진리에 맞지 않는다고 하며 욥을 공격한 것입니다.
친구들은 ‘네가 죄가 있어서 징계를 받는다. 공의로운 하나님이 너를 징계하는 것을 보면 죄가 있기 때문에 징계를 받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은 봐주는 것이 없으신 분이시다. 왕이나 귀족이나 부자를 봐주시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과 똑같이 대하신다. 너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보편적인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라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보통은 죄로 인해서 징계가 온다는 것,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것, 또 하나님이 한 번 걷어 가시면 하루 저녁에라도 다 죽고 만다는 것, 아무리 세력이 있는 왕이라도 하나님은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대신 세우신다는 것, 징계를 통하여 부르짖는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케 하신다는 것들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욥은 깨달은 진리 면에서 친구들과 다르고 사는 세계가 다릅니다. 욥이 깨달은 면, 욥이 사는 세계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에게 간섭하시는 것이 다릅니다. 오늘 오전에 공부할 것인데, 젖으로 먹는 사람과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사람은 신앙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이 어린 사람과 신앙이 깊은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보편적인 진리에 다 갖다 맞추면 안 됩니다. 보통은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지만, 좀 더 깊은 세계에서 보면 주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국가에서 노인들에게 한 달에 얼마씩 줍니까? 한 17만원, 13만원 줍니까? 하여간 받았다고 좋다는 것입니다. 이따금씩 쌀도 주고 명절 때에는 참기름도 준다는데, 그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것은 좋은 것 같습니다. 집으로 와서 돌봐주고, 차가와서 목욕도 시켜주곤 합니다. 미국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받는 것보다 사실 주는 사람에게 더 복이 있습니다. 두 세계가 다른 것입니다. 주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면 다 받는 것이 됩니다. 선을 행하고도 안 받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다 받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받아놓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것이 없게 됩니다. 보통 사람은 구제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며 칭찬 받기를 좋아하고 높임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 사람에게 다 받는 사람은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세상에서 받지 않아야만 하늘나라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깨달은 진리의 세계가 다른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믿는 문제를 가지고 욥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 진리를 가지고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욥은 끝까지 잘 참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안 믿는 사람이 핍박하는 것보다 믿는 사람이 핍박하는 것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어떤 청년보고 주일날 직장에 나오라고 하니까, 그 청년이 안 나가겠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야, 나는 장로다. 네까짓 게 집사도 하나 못된 것이 뭘 안 나온다고 하느냐? 나는 장로라도 나온다”고 하면서 핍박을 하더랍니다. 믿는 사람이 더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욥과 같이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믿는 사람이 핍박을 해도 잘 이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