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세워 나가라
갈라디아서 2:1-10
갈라디아서 2:1-10
1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2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4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6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8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
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2:1 그리고 십사 년 후에 나는 디도를 데리고 바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2:2 내가 계시 때문에 올라가서 이방인들 가운데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였는데, 유명한 자들에게는 따로 하였으니, 이는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디도는 비록 헬라인이지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
2:4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엿보다가 우리를 종으로 삼으려고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었다.
2:5 우리가 잠시도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너희와 함께 머물게 하려는 것이었다.
2:6 그 유명하다는 자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 그러한 자들이 어떤 이든지 내게는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 그 유명하다는 자들은 내게 더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2:7 오히려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다.
2:8 이는 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할례자의 사도가 되게 역사하신 분께서 나에게도 역사하셔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2:9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그 은혜를 알고서,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2:10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가난한 자를 생각하도록 부탁하였는데, 이것은 나 역시 힘써 하던 일이었다.
2:2 내가 계시 때문에 올라가서 이방인들 가운데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였는데, 유명한 자들에게는 따로 하였으니, 이는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디도는 비록 헬라인이지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
2:4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엿보다가 우리를 종으로 삼으려고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었다.
2:5 우리가 잠시도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너희와 함께 머물게 하려는 것이었다.
2:6 그 유명하다는 자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 그러한 자들이 어떤 이든지 내게는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 그 유명하다는 자들은 내게 더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2:7 오히려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다.
2:8 이는 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할례자의 사도가 되게 역사하신 분께서 나에게도 역사하셔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2:9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그 은혜를 알고서,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2:10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가난한 자를 생각하도록 부탁하였는데, 이것은 나 역시 힘써 하던 일이었다.
1. 바울의 예루살렘 공의회 참석
할례 문제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남
할례 문제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남
본문 1절에 “십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사년 후”란 제1차 예루살렘에 올라간 후 십사년이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1:18에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쌔”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삼년만에”란 바울이 회개하고 아라비아에 가서 3년 기도한 후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14년 만에 다시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
으로 올라갔습니다. 바울의 선교 근거지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안디옥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근거지로 선교를 하다가 14년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목적은 예루살렘 공의회를 하기 위해서 올라갔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예루살렘 공의회를 한 일이 있는데, 그때에 올라간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1-5에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이 유다로부터 안디옥에 내려와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형제 중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을 하고, 예루살렘에 보냈습니다.
바울이 계시를 인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감
본문 2절에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 공의회에 올라갔습니다. 즉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할례 문제를 해결하라는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에 공의회에 올라갔습니다. 공의회가 소집
된 것은 할례 문제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가? 그렇지 않으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가? 이 두 가지 문제입니다. 할례가 구원의 조건부가 되는가? 안 되는가?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할례를 안 받아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했는데, 이 문제가 통일이 안 되었습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할례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회가 통일이 되어야 하겠기에 사도와 장로들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공의회가 열렸는데 이것이 기독교 최초의 공의회입니다. 여기에서 할례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작정을 하고 나가야만 교회가 통일이 되겠기에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와 그 일행을 예루살렘에 파송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올라갔고, 공의회가 모이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공의회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이란 예루살렘 공의회가 모이기 전에 유명한 자 즉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같은 사람에게 사사로이 그 문제를 의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전에 모여서 의논을 했는가? 공의회가 모일 때에 유명한 자들 간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회의가 잘 안 되겠기 때문에, 미리 사전에 모여서 할례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며 예비회담을 한 것입니다. 할례가 구원의 조건부가 되는가? 안되는가? 그것을 통일 시켜서 나가야만 공의회 할 때에 아무 사고 없이 할 수 있습니다. 미리 예비회담이 없이 나가면, 공의회 할 때에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면 그 회의가 아주 난처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를 세워 나가는데 지장이 없게 하기 위해서 사전에 유명한 자들을 몇 사람 만나서 미리 말했습니다. “이제는 공의회가 모이겠는데, 할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습니까? 안받아도 구원받습니까?”하며 거기에 대해서 의논을 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뭐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까? 베드로는 욥바 피장 시몬의 집에서 지붕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부터 보자기가 내려왔는데, 거기에 네 발 가진 짐승, 각종 기는 것, 곤충 등이 보자기 안에 많이 있었으며, 그것들을 하나님이 잡아먹으라고 할 때에, 가증한 것, 깨끗하지 않은 것은 먹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더럽다 하지 말고 먹으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이 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주었다고 했습니다(행 10:1-48). 그러므로 이방 사람도 할례를 받지 않고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베드로가 증거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의 “예수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진리가 서로 맞았습니다. 사전에 의논한 결과가 일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다음날 공의회로 모일 때에 나가서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대한 문제는 사전에 몇몇 사람이 논의를 하는게 낫습니다. 사전에 이야기를 안하고 나가면 피차간 의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 모인 다음에 서로 반대 토론이 나오게 되면, 그 회의가 진행되지 못합니다.
바울이 달음질 하는 것, 달음질 한 것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달음질 한 것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달음질 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바울이 달음질 하는 것, 달음질 한 것이 헛된 데로 돌아갈까봐 사전에 사사로이 유명한 사람을 만나서 진리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달음질 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달음질 한 것이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
바울이 달음질 하는 것은 첫째는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 진리를 세워 나가는 것
둘째는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
셋째는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전하고, 진리를 세워 나가고, 그리스도에게 참여해 나가는 일이 바울이 달음질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달음질 하는 것도 이런 것이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전파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가 할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사명입니다. 이것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살려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하는 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다 바쳐서 전적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몸도 바치고, 마음도 바치고, 생명까지 바쳐서 복음 전파하는 일에 우리가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세우는 일을 우리가 전적으로 해야 합니다. 앞으로 이북에 복음의 문이 열리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이북에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앞으로 이북에 복음의 문이 열리면 열 교회 이상 교회를 세워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많이 세우려면 첫째 교역자가 많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신학교에서 교역자를 많이 양성해내야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려면 재정 뒷받침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 때에 가서는 총재산의 절반은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재산 절반내도 절대 굶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회 주실 때에 내야지 언제 냅니까? 절반 내도 안 굶어 죽습니다.
6.25 사변 때에 어땠습니까? 6.25 사변 때에는 빈 손 들고 서울에 다올라왔는데, 요새는 이사하려면 조그만 자동차 가지고 안 됩니다. 신학생들도 올 때는 빈손으로 옵니다. 그런데 졸업하고, 결혼하고, 얼마있다가 이사 가려면 한 트럭 싣고 갑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많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나에게 주신 줄 알고, 이제 이북에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시면 절반 하나님께 바치고 나가야 합니다. 안 바친다고 해서 그것 가지고 잘사는 것 아닙니다. 억 짜리 집이 있으면 팔아서 5천만 원 내고, 5천만 원짜리 셋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북에 복음을 전하면 많이 전할 수 있습니다. 재산 절반을 바친다고 못사는 것 아닙니다. 앞으로 더 잘 삽니다. 먼저 자기 영이 살고, 앞으로의 생활도 하나님이 잘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또 이북에 있는 교회들에게는 얼마나 큰 선물입니까? 이북에 있는 모든 성도의 생명 하나가 천하보다 귀한데, 그 생명들이 살아나면 얼마나 하나님께 큰 영광입니까? 또 하나님이 얼마나 칭찬 하시겠습니까? 세상에 쌓아놓고 가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달음박질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울이 달음박질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 갈라디아, 아가야, 마게도니아에 전하고, 그 다음에 로마에까지 가서 이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 것이 바울이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또 바울이 바른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이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할례 문제로 혼돈한 그 때에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3에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는 생명까지 바치고 나가는 것이 바울이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2. 바울이 진리를 양보하지 않음
디도에게 할례를 행치 않은 것은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진리를 세우기 위함
디도에게 할례를 행치 않은 것은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진리를 세우기 위함
본문 3절에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라고 하였는데, 디도에게 할례를 행치 않은 것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복종치 않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16:2-3에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의 모친은 유대인이며 부친은 헬라인입니다. 따라서 혈통으로 헬라인인 디모데를 데리고 전도하기 위해서 떠나려고 할 때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러면 왜 할례를 행했는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전도하려고 하면 유대 사람들이 안받아 줍니다. 유대 사람은 할례받지 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 게 그 때의 법입니다. 같이 먹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데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할례 안 받았다고 유대 사람이 상종을 안 하니까 복음 전하는데 지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고 데리고 다녔습니다.
할례를 행하고 데리고 다니니까 복음 전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유대사람한테도 가서 전도할 수 있고, 또 유대 사람과 같이 먹을 수도 있고, 전도하는데 편리합니다. 그러나 디도도 헬라인이지만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해도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왜 행하지 않았다고 했습니까?
본문 4절에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라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들어온 형제가 있기 때문에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들어왔다는 것은 정체를 밝히지 않고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인데, 할례를 주장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그저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속으로만 “할례를 받아야 옳다”고 하며 교회 생활을 합니다. 가만히 들어왔으므로 누가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속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 할례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그것을 가지고 들고 일어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나? 안 행하나? 보자하며 있는 것입니다.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그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봐라, 할례를 받아야 된다, 바울이 할례를 안 받아도 된다고 하지만 디도에게 할례를 행한 것을 보면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 것이다, 할례를 안 받으면 안 된다”고 하며 이것을 들고 일어서서 바울이 “할례를 안 받아도 된다”고 하는 교리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할 때는 그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할 때는 유대 사람들이 할례를 안 받은 사람하고는 상종을 안하니까, 전도하는데 편리하기 위해서 할례를 행했는데, 이번에는 문제가 다릅니다. 이번에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느냐? 안 받아도 구원을 받느냐? 에서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때에 디도에게 할례를 행했다고 하면, 할례파가 득세해서 “할례 받지 않으면 안 된다”하며 들고 일어섭니다. 그러면 바울이 전한 진리가 다 전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할례는 행해도 되고, 안 행해도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할례파들이 이것을 가지고 기회를 삼아서 복음을 변경시키려고 할 때에는 할례를 행하면 안 됩니다.
갈라디아 5:6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할례 받은 것도 아무 것도 아니고, 또 안 받은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 하나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구원 문제가 아니므로 디도에게 할례를 행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때 할례를 행하면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할례를 주장하여 모든 성도를 전부 다 할례 받게 만들고, 율법의 종으로 삼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비 진리에 일시라도 복종치 않음
본문 5절에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일시라도 복종치 않았습니다.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면 일시 복종하는 것아닙니까? 일시라도 복종을 하면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서 바울의 이신득구 진리를 뒤집어 엎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시라도 복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의 진리를 세워 나가기 위해서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한 번 진리를 양보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한 번 진리를 양보하면 그 다음에는 또 양보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들이 와서 누룹니다. “너는 할례를 행하면서 왜 남한테는 하지 말라고 하느냐?” 하며 바울이 전파하는 진리를 전부 전복시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일시라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신앙 양심을 한 번만 양보하면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양보하면 안 됩니다. 또 진리 문제에 있어서도 한 번만 양보하면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해도 양보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마귀가 예수님께 천하 영광을 다 보여주면서 한 번만 절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번만 절하면 천하 모든 영광을 다 준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한 번 절 하셨습니까? “한 번”도 안하셨습니다. “한 번” 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시며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므로 “한 번” 양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술 한 잔만 마셔라”고 하여, 한 잔 마시면 “한 잔 마셨는데, 두 잔 못 마시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은 석 잔까지는 괜찮다, 석 잔은 마셔라, 석 잔 먹으면 구주 예수니까 아홉 잔 마셔라” 이렇게 해서 술을 자꾸 마시게 하여 마지막에는 술에 빠지게 합니다. 아예, 한 잔부터 안 마셔야 합니다. 한 잔 마셔놓으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죄 짓는 것도 “한 번만 해봐라”하면서 마귀가 미혹할 때에 그 미혹에 빠지면 죄 가운데 빠져서 내내 끌려갑니다. 그러므로 신앙 양심도 일시라도 양보하지 말아야 하며, 또 진리도 한 번이라도 양보하지 말고 신앙의 정조를 지켜나가야 됩니다.
3. 바울이 복음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음
본문 6절에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라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이들이란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이 초대 교회의 사도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초대교회의 창설자로 유명한 자들입니다.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란 바울이 사도들을 통해서 이 복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사도직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에(갈 1:1,12) 유명한 어떤 사람들이 더하여 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4. 사도 사역의 분담
본문 7절에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함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이란 바울은 이방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맡았다는 것이고, 베드로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즉 유대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함
본문 8절에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시며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고, 또 “내가 너를 이방 사람에게로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사도로 택하셔서 유대인에게 보내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바울을 사도로 택하셔서 이방인에게 보내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베드로를 보내셨고, 또 직접 사도바울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보내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다 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역사가 늘 자기 심령 속에 역사해야 됩니다. 잠자는 심령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여야 하며 복음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고 힘을 쓰며,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려고 힘을 쓰며, 우리에게 주신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 잠잘 때는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집니다. 마음이 육에 속하고, 세상에 속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집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회개하고, 겸손하며,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야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있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됩니다. 늘 깨어 기도하며, 영적 세계에 살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됩니다.
5. 야고보, 게바, 요한은 초대교회의 기둥임
본문 9절에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앎으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라고 하였는데, 초대교회에 기둥과 같이 여기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초대 교회의 기둥이 누구입니까? 야고보, 게바, 요한입니다. 어디에나 기둥이 있지 않습니까? 기둥이 견고해야만 그 집이 견고합니다. 야고보는 주의 동생 야고보로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며,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입니다.
깨달은 바른 진리에 확실히 서 있는 자가 교회의 기둥이 됨
진리에 대해서 깊이 깨닫고 확실히 서 있는 믿음이 좋은 야고보입니다. 게바는 베드로입니다. 야고보, 게바, 요한 이런 분들이 초대 교회의 기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는 누가 흔들래야 흔들 수가 없었습니다. 기둥이 든든한데 누가 흔들겠습니까? 베드로가 흔들리겠습니까? 요한이 흔들리겠습니까? 야고보가 흔들리겠습니까? 바른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그 진리에 굳게 서서, 그 진리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기둥이 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2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전의 기둥이 된다고 하였습니까? 이기는 자가 성전의 기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자는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 3:8에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바로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힘써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진리에 대해서 바로 깨닫는 것이 확실해야 됩니다. 그것이 반석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깨닫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반석입니다.
바른 진리를 확실히 깨달으면 그것이 반석입니다. 그것은 견고합니다. 어떤 것이 와도 흔들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바른 진리를 확실히 깨달아야 됩니다.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다른데 가면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 하며 요동합니다. 알미니안주의에 가면 그것이 옳은 것 같고, 또 다른데 가면 그것이 또 옳은 것 같습니다.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반석이 될 수 없고 또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바른 진리에 대해서 확실히 깨달은 사람이 기둥이 될 수 있습니다. 확고불변하게 깨달아야 됩니다. 확고불변하게 깨닫지 못한 사람은 다른데 가서 들으면 또 “그런가?”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누가 말하면 “정말 귀신이 되나? 안되나?” 하며 의아해 합니다. 귀신은 마귀인데 사람이 죽으면 왜 귀신이 됩니까? 사람이 죽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은 즉시 천당에 가고, 예수 안 믿고 죽은 사람은 즉시 지옥에 가는 것이지,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게 아닙니다.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사람이 죽으면 천당에 가는 게 아니라 연옥에 간다고 누가 말하면 또 “그런가?” 합니다. 그러므로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기둥 재목이 못됩니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면 그게 무슨 기둥이 되겠습니까? 동으로 기울어졌다, 북으로 기울어졌다 하며 흔들흔들하면 집이 다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진리에 견고하게 서 있어야 됩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자라난다, 성경대로 바로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등 진리에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확실한 깨달음이 없으면 누가 주일에 결혼식 한다고 하면 갑니다. 진리에 확실한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정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해서 확신을 갖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그 진리를 지켜나가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 진리를 세워나가는 사람이어야만 기둥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기둥으로 쓰십니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초대 교회의 유명한 중견 인물들입니다. 그들이 진리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요새 교회로 말하면 장로들이 중견 아닙니까? 첫째 장로들이 진리에 굳게 서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진리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야 됩니다. 진리에 굳게서서, 이 진리를 붙잡고 진리 안에서 죽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기둥이 됩니다. 사실 직책상으로 보면 장로가 기둥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도 기둥이 되어야 됩니다. 직책만 기둥이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적으로도 굳건한 진리에 서서, 진리를 세워나가려고 결심을 하고 나가야 기둥이 됩니다. 또 교인들 중에도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을 하는 사람은 직분이 없어도 기둥입니다.
이북에서 1946년 주일에 선거를 했습니다. 이북 대의원 선거를 주일에 했는데, 그 때에 주일에 선거할 수 없다고 하던 사람들이 차차 다 넘어가고 몇 사람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주일을 생명 내놓고 지킨 사람을 하나님이 기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진리를 지키며 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반드시 기둥으로 세워주십니다. 평교인이라도 생명 내놓고 진리를 지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둥으로 세우십니다. 교역자로 세워서 기둥으로 쓰시든지, 교회 집사로 세워서 기둥으로 쓰시든지, 장로로 세워서 기둥으로 쓰시든지, 또 부인들 같으면 여집사로 세워서 기둥으로 쓰시든지 합니다. 기둥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교회가 서 나갑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에 기둥이 있는데, 우리도 기둥의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직분 가진 사람이 기둥 역할을 해야 됩니다. 직분 가진 사람이 기둥 역할을 못하면 큰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평교인도 기둥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둥 될 사람이 몇 명만 있으면 그 교회가 견고하게 서 나갑니다. 기둥 될 사람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어떤 교회는 개척 교회한지가 여러 해 되었는데도, 그 교회에 기둥 될 사람이 없어서 흔들흔들 하는 것입니다. 즉 교역자가 다른 교단으로 가겠다고 할 때 따라가는 것은 기둥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기둥 될 사람이 몇이 있으면 어떤 사람도 흔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둥과 같은 사람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첫째는 목사, 장로가 먼저 기둥 역할을 잘 해야 됩니다.
6.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함
본문 10절에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것”이란 구제하는 일을 말합니다. 당시 흉년으로 인하여 가난과 곤고가 심하므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울에게 구제를 부탁했는데, 바울도 그 일을 힘써 행하려고 작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가는 곳마다 연보를 거두어서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 주었습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구제했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