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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마태복음 28:16-20 갈릴리에서 하신 분부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갈릴리에서 하신 분부
마태복음 28:16-20

16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
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주심

본문 16-17절에,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열 한 제자가 예수님의 명하시던 산에 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만나서 예수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믿어지는 것이 큰 보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이 큰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믿지 못합니다. 이것은 은혜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본문 18-19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너희에게 주셨으니”, 즉, 예수님의 부활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습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권세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이긴 능력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은, 그러한 부활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모든 것을 다 이긴, 그러한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예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에베소서 1:20-22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고 하셨는데, ‘그 능력’ 이란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 사망을 이기신 능력이고, ‘자기의 오른편’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는 영광스러운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에베소서 1:21에는 ‘모든 정사’ 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치, 정치하는 사람. 모든 정사, 모든 권세, 세상에 권세, 다 많지만 모든 권세를 이긴 능력입니다. 주관하는 자, 마귀도 이긴 능력입니다. 또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의 모든 것들도 다 이긴 능력입니다. 만물을 전부, 발아래 복종시킨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으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권세를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서 다 이기시고 받으시고, 그 권세를 성도에게 주셔서 그 권세를 가지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순종하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고 하셨는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가서 복음을 전하면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나가서 모든 백성을 다 복음으로 정복할 수가 있고, 복음으로 인도할 수가 있고, 복음을 막는 세력을 이길 수 있고, 모든 백성을 다 건져낼 수 있습니다.

“가서 모든 백성을 제자 삼아라”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디든지 가서 이 복음 전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능력으로 됩니까? 예수님이 주신 그 능력으로 됩니다. 그것이 무슨 능력입니까?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이긴 능력입니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받은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능력으로 나가서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백성을 이 능력으로 정복할 수가 있고, 막는
세력을 다 이길 수가 있고, 모든 족속을 사로잡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가면 다 됩니다. 어디든지 이 복음 가지고 나가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들을 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전하지 않으면 그 능력이 안 나타납니다. 전할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하는 것을 힘써 전하면 그 능력이 나타날 것이고, 전하지 않으면 안 나타납니다. 전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전하는 사람에게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힘써 전도하는 것을 계속하십시오. 모든 족속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금년에 소련에 교회 하나 세우려고 하는데, 소련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중국에도 전해야합니다. 모든 백성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리비아에 가있는 오춘석 선교사가 거기 가서 전도하는데, 중국에서 일하러 나와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여러 사람, 태국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 많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여러 각국에서 온 노무자들이 많은 모양인데,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많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리비아에 한 사람 보냈는데, 또 한 사람 더 보내야 되겠습니다. 보낼 곳이 많습니다. 이제 필리핀에 또 한 사람 보내려고 합니다.

모든 백성으로 제자 삼으라고 하셨으니까 모든 백성에게 이 복음 전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아 ...” 가서 무엇 하라고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완전한 교인이 됩니다.

2.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전도하는 자와 예수님이 함께 하심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같이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같이 있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같이 계셔서 이 일을 예수님이 같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전도하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일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에, 예수님이 같이 계셔 주시고 같이 인도해 주십니다. 사람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고 이렇게 믿음으로 나가면, 예수님이 반드시 같이 하셔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다 건져내는 것입니다.

전도 안 하는 사람은 열매가 없습니다. 심어야 곡식이 나고 열매가 맺히지, 심지 않으면 열매를 못 거둡니다. 심어야 됩니다. 요새 종자 심을 때가 되었는데, 나와서 심으면 됩니다. 교인들이 기도원에 호박 심으러 간다고 하는데, 호박 심을 때가 되었나봅니다. 호박 심으면 나옵니다. 기술자가 종자를 심어야만 열매가 나옵니까? 아닙니다. 아무나 나가서 종자를 심으면 나옵니다. 유명한 학교 졸업장 받은 사람만 나와서 심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 한 자 몰라도, 나가서 심으면 나옵니다. 건강한 사람만 나와서 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건강치 못해도, 나와서 심으면 나옵니다. 유명하게 잘 생긴 사람만 나와서 심는 것이 아니고, 아주 변변치 못하게 생겼어도 나와서 심으면 나옵니다. 이렇게 ‘나는 할 줄 모른다’ 하지 마세요. ‘나는 말할 줄 모른다’, ‘나는 뭘 모른다’ 하지 말고, 나와서 심으면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꽝!(강대상 두들김)’ 지금 조는 겁니까? 예배당 나와서 조는 것을 보니까 마귀한테 속은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날 새벽 찬미 다닌다고 돌아다니다가 나중엔 잡니다. 그것 마귀한테 속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가르치는 시간에 자니까, 이것이 얼마나 손해입니까? 지난 저녁에 자고서라도 말씀 잘 받아야지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나님 말씀 가지고 전하는 사람에겐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능력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하나님과 같이 일하게 되고, 모든 백성으로 제자 삼을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예수 믿을 것 같은가, 안 믿을 것 같은가?’ 생각하지 마십시오. 믿을 것 같지 않아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사람이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을 것 같아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믿을 것 같지 않아도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사람들이 정복이 되어서 하나님 앞으로 오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전도해야 합니다. 전해서 이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십시오. 또 가르쳐서 세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한 이 복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힘써야 합니다. 여기서 배운 것을 가르치십시오. 자기만 가지고 있지 마십시오. 그 하나님의 말씀을 혼자 먹으라고 하셨습니까? 나누어 먹으라고 그러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것을 혼자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과 같이 계속 나누어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다 먹어 치우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만일 내가 전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화를 받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전하지 않으면 화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
을 것임이로라” 라고 했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도리를 전해야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습니다.

금년이 벌써 3월 달 다 지나갔는데 전도해서 한 사람이라도 데려온 사람 있습니까? 전도 몇 사람이나 했습니까? 전도해서 한 사람이라도교회로 인도한 사람 손 쳐들어 보십시오. 조금 있는데, 다른 사람은 왜 전도 안 했습니까? 전도 안하는 것은 무슨 개라고 했습니까? 벙어리 개. 전도 안한 사람은 벙어리 개입니다. 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 안하면 하나님이 주신 권세도 하나도 못쓰고,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다 주셨다고 했는데,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을 하나도 못 씁니다. 힘없는 성도가 됩니다. 또 예수님이 같이 가주시면서 역사해 주신다고 했는데, 물론 전도 안하는 사람에게도 예수님이 같이 하시긴 같이 하십니다. 하지만, 같이 하시면서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을 전도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전도하면 예수님께서 같이 하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제부터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그러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마태복음 28:1-20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세와 사역,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세와 사역
마태복음 28:1-20

1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9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여자들이 갈 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12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14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6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세

본문 18-19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권세를 다 받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권세라는 것은, 죄와 마귀와 이 세상 모든 정사와 정권과 권세들과 능력들을 다 주관하는 능력과 권세, 그리고 사망을 주관하는 권세입니다. 왜냐하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님께서 가지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24-26에,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 세상의 모든 능력, 천사를 심판하고 마귀를 심판하는 이런 권세와 능력을 가지시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을 정복하는 권세를 가지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나는 산자’ 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살아 생명을 가지는 권세, 그 다음 생명을 주는 권세, 죽은 사람을 살리는권세, 이 살리는 권세도 예수님이 가지고 오셨습니다. 또 천국에 데려가는 권세 즉, 예수를 믿는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을 살려내고 내 하나님이 네 하나님, 내 아버지는 네 아버지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의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으로 이루어 주는 권세, 모든 죽은 사람들을 살리는 권세, 죽은 영혼을 먼저 살리고, 이 다음에 재림할 때에는 예수 믿고 죽은 성도를 전부 살려내는 권세, 그 권세를 예수님이 갖고 오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도 예수님이 가지고 오셨는데 심판 권세를 또 예수님이 가지고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만능의 권세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모든 세상을 심판하고, 악한 자를 심판하고, 죄와 마귀를 심판하는, 심판의 권세를 예수님이 가지고 부활해서 오셨습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가?

하나님 우편에, 우리 안에, 우리 밖에 계심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디계시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례문답 할 때에 ‘예수님이 누구 죄 때문에 죽었습니까?’ 하니까, ‘내 죄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다. 자기 죄 때문에 죽었답니다. ‘죽었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니까 살아났답니다. 그다음에 ‘어디 계십니까?’ 하니까, ‘하나님 우편에 승천해서 계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맞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예수님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니깐 ‘우편국(郵便局)에 계십니다’라고 그래요. 자기 자녀들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 하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여러 번 배워주었는데, 그것을 잘 기억을 못하고 와서, 우편국에 계신다고 답변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릴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또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성전이 되고, 우리 안에 계셔서 예수님은 역사하십니다. 또 우리 밖에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해 주시고, 우리와 동거해 주시고, 동거, 동행, 동락, 동사(同居, 同行, 同樂, 同事), 우리와 같이 일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주에 초월해 계시고 우주 안에 계시고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을 붙드시고 계시고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골로새서 1:17에,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하시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3에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십니다.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을 붙드시고 계시고, 만물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면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릴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우리 구원을 인도해 주시는 주님이 맞습니다. 또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도 맞습니다.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또 우리 밖에 계셔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를 인도해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것처럼 보호해주시며 우리와 같이 일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6:1에서도 사도 바울이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동거, 동행, 동락, 동사하시는 예수님이시고, 또 만물을 초월해 계시고,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을 붙드시고 계시고, 만물과 함께 계십니다. 

만물에 충만하신 예수님 

그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무소부재, 무소불능 하십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라는 건 ‘안 계신 곳이 없다’하는 뜻입니다. 또 무소불능(無所不能)은 ‘못하시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능입니다. 또한 ‘만물에 충만한 예수님’이시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떠나 계시면 만물이 일시에 다 멸망하고 소멸하고 맙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충만입니다. 
또 교회 안에 계시고 성도의 구주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고 성도를 보호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성찬 예식 할 때에도 부활하신 주님은 믿음으로 참여하는 성도에게 영으로 임하십니다. 믿음으로 참여하는 성도에게 영으로 임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게 해주십니다. 영으로 참여하게 해주십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이고 상징적인 표로서 성찬예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를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또 우리의 부활의 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다음에 부활하고, 영원한 생명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영생을 그리스도와 같이 얻게 됩니다.

3.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시는 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

본문 18-19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본문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시는데,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한상동 목사님이 신사참배 거절문제로 감옥에 갇혀서 여러 해 있었는데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같이 있으리라”는 이 성경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감옥에서 고난이 많지만 세상 끝날까지 항상 나와 같이 계셔 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새 힘을 얻고, 또 이기고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우리가 믿고 어떠한 고난이 와도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세상 끝날까지 항상 나와 같이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외롭고, 낙심 나고, 좋지 않은 환경을 당해도, 세상 끝날까지 항상 나와 함께 예수님이 계시니,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예수님이 같이 가면 괜찮고, 사자굴과 표범산과 험한 산길이라도 예수님이 함께 가시면 거기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가시면 외롭지 않고 예수님이 함께 가시면 겁 없고 예수님이 함께 가시면 담대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인줄 알고, 오늘 부활절을 당해서 예수님을 영접해야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기도해 주시고, 또 우리 안에 계시고, 또 우리 밖에서, 항상 세상 끝날 까지 같이 계셔 주시며 동거, 동락, 동행, 동사하시는 줄 알고 늘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신앙, 동거하는 신앙, 동락하는 신앙, 같이 즐거워하는 신앙,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도구로 삼아 일하시는 예수님

그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에게 말씀만 하시고 자기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붙드시고 또 이용하셔서 성도를 도구로 삼으시고 이렇게 하십니다.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는 일은, 믿는 사람이 자기 제자 삼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 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도구요, 일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도구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고, 성도는 도구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하는 것은, 모든 족속에게 예수님이 다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이 직접 제자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무엇입니까? 도구입니다, 도구. 예수님이 쓰는 그릇, 심부름꾼입니다.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그리스도, 우리는 마이크와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그 말씀이 마이크나 스피커를 통해서 나갑니다. 마이크나 스피커를 통해서 말이 나가도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말이 나가지, 마이크나 스피커가 아무리 좋아도 스스로 한마디도 못합니다. 나가는 건 전부 예수님이 하시는 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잖습니까? 교회도 지금 스피커가 여러 개고 마이크도 두 개고 저 뒤에도 나가고 다 나가지만, 여기 목사가 말하는 대로 나가지 이것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가 말 한마디도 못합니다. 우리는 마이크와 같고 또 스피커와 같습니다.
또 다른 비유로 말하면 “하나님의 입이라, 입이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예레미야에게 “너는 내 입이다.” 하나님의 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입이 자기 마음대로 말합니까? 우리가 입으로 말하죠? 입으로 말하지만 입술만 나불대는 것이지, 입이 자기대로 말합니까? 그렇지 않죠? 마음의 생각하는 대로 그대로 내 입을 통해서 말을 하는 것이고 입만 떼 놓으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마음에서 나오고, 생각에서 나오고, ‘내가 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에 입을 이용해서 말을 하는 겁니다. 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고 생각이 중요하고 사상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것이 중요하지, 입은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그저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는 것은, ‘내가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니까, 너희도 나가서 내 입이 되고 마이크가 되고 스피커가 되서, 내가 하는 대로, 내가, “아~”하면 너도 “아~”하고 내가 “가~”하면 너도 “가~”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하는 대로 나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가라하면 가고 이 말 하라면 이 말 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너는 말할 줄 모른다 하지 말고 또 어린아이라 하지 말고, 그가 가라하면 너는 가기만 하면 되고 또 이 말 하라 하면 내가 말하는 대로 말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말할 줄 모릅니다. 나는 힘이 없습니다’ 하는데 누가 뭐, 말 잘 하라고 그럽니까? “아~” 하라면 “아~” 하기만 하라는 겁니다. 말 잘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
서 “아~” 하면 자기도 “아~”하면 됩니다. “야~”하면 “야~” 하면 되고 “예~” 하면 “예~” 하면 되고, “가” 하면 “가” 하면 되고. 자기가 말 잘 하라는 것 아닙니다. 순종만 잘하면 됩니다. 제 생각 제 뜻은 버리고 그저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일은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는 대로 갑니까? 또 하나님께서 이말 하라는 대로 그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대로 가고 또 하나님께서 이 말을 하라 하면, 그 말을 하십시오. 예배시간 늦어지고 오후예배시간 삼일예배 빠지는 것은 마귀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참여하라는 거지, 빠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은, 도무지 정신들 안 차리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전도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입이 되어서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건지는 것도 하나님이 그 사람 불러내서 하나님 백성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내가 전도하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나님이 그 사람 부르는 대로, 하나님을 힘입어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불러서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놓았으니, 기도 많이 하고 성령으로 하나님을 힘입어서 전도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능력으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사람을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전도를, 무슨 광고 돌리고 다니는 사람처럼, “이거 좋습니다. 이거 좋습니다” 하지 말고, 하나님이 능력으로 사람을 부르시는 줄로 믿고 순종해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인데, 그러면 그 사람이 교회 나올 수 있습니다. 그걸 믿고 하십시오. 최권능 목사가 ‘예수천당! 불신지옥!’ 두 마디를 해도 교회 일흔 다섯 개를 세웠다고 안 그럽니까? 하나님을 순종해서 하면 능력이 나갑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부릅니다. 그러면 교회 나오게 됩니다.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아’ 하는 것은 ‘모든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는 뜻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 집 식구부터, 가까운데 있는 사람부터 전해서 그다음에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 복음 전하라” 하는 이것이 주의 명령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세례를 주시는 예수님

그다음에는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세례의 뜻은 정결케 한다, 씻는다, 죄를 씻어서 정결케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서 사람을 건져내서 정결케 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라 그 말씀입니다. 세례를 주라는 것은, 죄를 정결케 하는 일, 죄인을 죄 가운데서 건져서 정결케 하는 일, 이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건져서 그 사람을 죄에서 정결케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건져내 놓고 가만 뇌두지 말고 그 사람이 죄에서 점점 정결케 만들어 지도록, 깨끗한 데로 나오도록 인도해야 됩니다. 자신도 죄에서 점점 나오고, 하나님 앞에 점점 깨끗한 몸으로 바치고, 언제나 제물이 되도록 항상 힘쓰고, 다른 사람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돌려야 됩니다. 그것이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시는 예수님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신 것은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이 말씀을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르치지 않는 건 벙어리 개입니다. 하여간 이 성경말씀을 “예수 가라사대”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고 자꾸 가르치십시오. 아이들 모아놓고 가르치고, 식구들에게 가르치고, 친구들에게 가르치고, 성경말씀을 자꾸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 받는 얘기하면 가만있지 말고 성경에 팔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십시오. 제일 좋은 복인 팔복이 있다고 그러면 그 사람들이 팔복이 뭔가 모를 것 아니겠습니까? 하늘나라 가는 영원한 복이라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가르칠 것 얼마나 많습니까?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고 하였으니 가르치는 사람이 이깁니다.
우리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신학교 협력하고 후원회를 들어서 후원하고, 신학교 학생들을 가르쳐서 하나님 일꾼을 양성하는 것이,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아서 하나님으로 인도하는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가르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 여기까지 나온게 아니겠습니까? 나도 여러 훌륭한 선생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가르침 받은 것이 속에 있으면,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가르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명 감당하려고 신학교도 하고 후원회도 들고, 후원해서 가르치는 중에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나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 속에 말씀이 가득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찬송가에 어머니에게 배웠다는 거 있지요? 어머니 무릎 아래에 앉아서 뭘 배웠다고 했습니까? 성경말씀, 다니엘, 엘리야 승천한 거, 다윗이 용맹한 거, 가르침을 받았으니 아이들의 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가르치지 않는 건 벙어리 개입니다. 그건 아무 생명이 없습니다. 돌덩어리 같은 것입니다. 가르쳐 놓으면 생명이 전달이 됩니다. 말씀이 속에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가르침 받은 사람이 그 말씀대로 인도를 받습니다. 인도받아 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인도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하시는 일, 모든 백성에게 복음전하는 일, 세례 주는 일, 죄에서 정결케 하는 일,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일입니다.
일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항상 함께 있습니다.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역사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입이 되고 지체가 되고 도구가 되어서 주님이 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일하시며, 우리와 동행, 동거, 동락, 동사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에 우리가 모든 걸 다 바쳐서 생명 전체를 바쳐놓고 충성하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마태복음 28:1-15 예수님의 부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의 부활
마태복음 28:1-15

1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9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여자들이 갈 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12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14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예수님

본문 1절에,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라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미명에’, 안식 후 첫날은 주일날입니다.
새벽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처음으로 갔고, 다른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간 것은 두 번째 간 것 같습니다. 무덤을 보기 위해 예수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인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었는데, 장사한지 삼일,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무덤을 보려고 찾아갔습니다.

본문 2-3절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부활할 때 큰 지진이 났습니다. 또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무덤을 막았던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천사의 형상이 번개 같이 번쩍번쩍하고 그 옷은 눈같이 희었습니다. 이렇게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그 형상은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과 같이 희다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수직하던 군사들이 있었는데, 너무 무서워 다 뒤로 나가 넘어져 죽은 사람같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너무 무서워서 죽은 사람과 같이 다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본문 5-6절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하십니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십시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살았다는 천사의 전한 말씀을 여자들이 받았습니다. 여기 무덤 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으니, 와서 그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하여 가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없고 빈 무덤이고 예수님을 쌌던 의복만 남아있습니다. 쏙 빠져나갔습니다. 

본문 7절에,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8절에,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라고 했는데, 여자들이 무섭지 않겠어요? 천사들이 나와서 얼굴이 번개와 같이 번쩍번쩍하는데 수비하던 군대들이 다 뒤로 넘어져 기절하여 죽은 사람같이 되었는데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래도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하니까 무섭지만 큰 기쁨으로 빨리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고 달음질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그 여자들과 만났습니다.

본문 9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여자들에게 나타나서 ‘평안하뇨’ 하고 그 여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자들이 나아가서 그 발을 붙잡고 너무 기뻐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경배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죽었던 예수님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죽어서 오래 되어 썩어진 시체라 해도 하나님의 능력은 다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될 수 있습니다.

2.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님의 부활체

살아나신 예수님은 여자들에게 나타나서 “평안하뇨?” ‘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내가 살아났다고 가서 말하라. 그리고 갈릴리에 가서 만난다고 전하라’ 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체는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시고 또 갑자기 안 보이기도 하시고, 문을 닫아놓은 다음에 열지 않고도 들어가기도 하시고 또 나가기도 하시고, 또 음식을 잡수기도 하시고 또 안 잡수시기도 하시고, 사람이 만져볼 수도 있고 만져볼 수 없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24:39-43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라고 했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고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고 영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할 때에 예수님께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부활한 나를 믿으라’ 고 하셨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니 만질 수가 있었습니다. 영은 사람이 만질 수가 없습니다. 또 영은 먹지 못하지만 “너희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셔서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시고 그 앞에서 잡수셨다는 말씀입니다. 영은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잡수셨습니다. 또 영은 살과 뼈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과 뼈가 있습니다. 만져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신령한 몸이요,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43-44에,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몸은 신령한 몸이고 영광스러운 몸이고 강한 몸이고 썩지 않는 몸이고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는데 다시 죽지 않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예수님의 부활체입니다. “어디 가겠다” 하면 가지는 겁니다.
오겠다 하면 와지는 겁니다. 또 나타나 보일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려면 보이고, 또 나타났다가도 안 보이려면 안 보이고, 가시려면 가시고, 이런 예수님의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한 성도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인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해서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4:25에,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 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우리 범죄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대신 걸머지고 우리 죽을 대신 죽으셨고 살아난 것도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
가와 부활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부활의 생명을 받게 됩니다. 우리에게 부활한 새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부활하심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예수님의 새 생명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연합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로마서 6:3-5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라고 하십니다.

성도가 예수님과 연합이 되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성도가 죽었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부활의 생명과 연합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연합해서 죽었고 예수님과 연합해서 살아났고 예수님과 연합해서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나라 내 나라,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한번 해봅시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당 내 천당!”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런 큰 선물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건 다른 종교에 없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좋은 일 해서 극락세계 간다고 하는데, 좋은 일 아무리 해도 이미 지은 죄는 어떻게 합니까? 지은 죄를 사함 받을 길이 그 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지은 죄 때문에 지옥 갑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일 해도 하나님의 표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좋은 일이지, 사람 보기에 좋고 선한 일이지, 하나님의 표준에는 맞지 않습니다. 즉 어떤 것이 안 맞느냐 하면 우상에게 제사하지 말라는 것 같은 것, 주일날 지키라는 말씀, 우상 섬기지 말라는 말씀, 그것들이 하나님 명령인데 불교에서는 다 우상 섬기고 제사하고 돌아가잖습니까? 죄 사함 받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죄 사함 받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와 같이 죽었고, 예수와 같이 살았고,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에게 있고 이제 예수님이 가신 천당에 우리도 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 큰 복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산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예수께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 20).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제는 예수와 같이 죽었고, 예수와 같이 살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생명
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부활함

또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을 우리가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잠자는 자’라는 것은 예수를 믿고 죽은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첫 열매라 그랬습니다. 첫 열매라는 것은 이제 앞으로 성도가 다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성도의 부활의 원동력이 되고, 표본이 되고 우리 부활의 가능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부활하는데 예수님의 몸과 같이 부활합니다. 신령한 몸으로, 썩지 않는 몸으로, 예수님 몸과 같은 죽지 않는 몸으로 성도가 부활합니다. 예수 믿고 죽은 성도가 장례지내서 땅속에 묻혀 썩어졌든지, 화장해서 다 연기가 됐든지, 물에 빠져 죽어서 다 풀어졌든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원소가 다 이 세상에 다 남아있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부활시키는데 성도가 부활할 때에 예수님 몸과 같은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린도전서 15:42-44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현재의 몸은 썩을 것인데, 이제 부활할 때는 썩지 않을 것으로 삽니다. 현재의 몸은 욕된 몸이지만 이제 부활할 때에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삽니다. 현재 우리 몸은 약한 몸이지만 부활할 때에는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 현재 우리 몸은 육의 몸이지만 부활할 때에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성도가 죽어서 장사지냈지만 예수님이 재림할 때는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은 그런 신령한 몸, 영광스러운 몸, 죽지 않는 몸, 강한 몸, 신령한 몸, 이런 몸으로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 재림할 때 살아남아 있는 사람도 다 부활체와 같이 변화되어서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다시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죽을까봐 걱정인데 다시 죽지 않는 몸입니다. 안 먹어도 괜찮으니까 먹을 게 없어도 걱정 하지 않습니다. 또 너무 안 먹으면 먹고 싶을까봐 먹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부활한 다음에는 문 열지 않고 나갑니다. 어디든 가겠다면 가집니다. 오겠다면 와지는 것입니다. 요새는 미국을 한번 갈려고 해도 비행기타고 10시간 이상 걸려야 됩니다. 올
때는 12시간 이상 걸려야 되고. 그 10시간 이상 비행기 안에 앉아 있으려면 고생이 많은데, 그때는 “미국에 가겠다” 하면 가지고 “오겠다” 하면 와지는 것입니다.

또 인공위성으로 달나라 가는데 한 주간 걸린다, 금성에 가는데 석 달 걸린다 하지만, 그때는 “달나라 가겠다”고 하면 가지는 것입니다. 또 “금성에 가겠다”고 하면 가지는 것입니다. 그때는 비행기, 인공위성 다 쓸데없습니다. 먹을 것 걱정 없습니다. 또 죽을 염려 없습니다. 또 너무 안 먹으면 섭섭할까봐 먹어도 괜찮습니다. 또 육신을 갖고 있습니다. 또 신령한 몸입니다. 육신을 갖고 있는 신령한 몸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몸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몸으로 부활하셨기 때
문에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은 그런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이다음에 부활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생명을 주셔서 그 생명이 우리 속에 역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고 우주에 충만하시고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살아계셔서 우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생명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는 그 교주가 다 죽어서 없어졌습니다. 암만 좋은 종교라 해도 죽어서 없어진 것입니다. 공자교라면 공자는 다 죽어서 없어진 것입니다. 또 불교라 하면 석가모니가 다 죽어서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살아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고, 교회 가운데 계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고, 하늘나라로 데려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속에도 계시고, 우주에 충만하시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아있는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있는 예수입니다. 우리 속에도 살아있습니다. 그 생명이 지금 믿는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다 예수님 부활체와 같은 그런,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부활과 꼭 같이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 부활의 생명이 우리 속에 와서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생명을 가지고, 영생 길을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태복음 27:55-66 예수님의 장사 (葬事)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의 장사 (葬事)
마태복음 27:55-66

55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57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59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60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62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63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65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6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1.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바라본 여자들

본문 55-56절에,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여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누가 있었습니까? 본문 56절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막달라 마리아입니다(눅 8:2).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부활한 다음에도 제일 처음으로 갔습니다(막 16:9). 또 누가 있었습니까?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5:40에,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라고 했는데, 살로메는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입니다.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기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멀리서 십자가까지 바라봤습니다. 제자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제자들은 다 달아났고, 사도 요한 한 사람만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갔습니다. 

2. 한몫 쓸 때 나섰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본문 57-60절에,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라고 했는데, 저물었을 때에 누가 왔습니까? 아리마대 요셉이 왔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다음에 또 누가 왔습니까? 니고데모가 왔습니다. 요한복음 19:39-40에,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라고 했는데, 니고데모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하기 위해서 니고데모가 나와서 무엇을 가지고 왔습니까?
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 근쯤 가지고 왔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려고 몰약, 백 근쯤 되는 많은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붓고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는 들지 않습니다. 열 두 제자는 아닌데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관원이라는 것은 요새로 말하면 국회의원과 같습니다. 국회의원과 같은 70인 공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고 학자인데, 전에 밤에 와서 예수님에게 중생의 도리를 한 번 들은 적이 있고, 그 다음엔 예수님을 위해 변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할 때에 니고데모가 나와서 변명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요한복음 7:50-52)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죽이려고 하니까, 니고데모가 나와서 ‘우리 율법에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일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그 사람 말을 듣고 그 행한 일을 알아본 다음에야 판결해야지 본인의 말도 안 들어보고 또 행하는 것을 알아보지도 아니하고 이렇게 판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하고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제 예수님을 장사할 때에 니고데모가 나타났습니다. 열 두제자는 예수님 장사할 때에 다 도망쳤는데 니고데모가 그때 나서서 예수님을 장사하려고 몰약, 침향 섞은 것, 향품, 세마포를 가지고 나와서 싸서 장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가 유대인의 관원이므로 나와서 장사하는 것을 그대로 가만 내버려 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서 장사하려고 했으면 아마 허락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빌라도가 유대인의 관원으로서 나와서 하니까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가만 둬 둔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의 직분을 이때에 한번 쓸 때가 된 것이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변명할 때도 한 번 썼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몫 쓸 때 한몫 쓰는 것입니다. 자기 지위나 권세나, 또 자기의 힘이나 물질이나 봉사나, 자기가 마땅히 한몫 쓸 때가 있는데 그때 한몫 쓰면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되고, 자기 구원도 되고, 하나님도 잘 되어 나가고, 다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한몫 쓸 때에 쓰지 않으면 그건 다 썩어지고 맙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서 한몫 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학자는 그 학(學)도 한몫 쓸 때가 있고, 지위를 가진 사람은 그 지위를 한몫 쓸 때가 있고, 또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하는 것으로 한몫 쓸 수 있고, 또 관리 법관에 가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도 한몫 쓸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 달라고 그랬지요? 누가 달라고 했습니까? 아리마대 요셉이 그랬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또 어떤 사람입니까? 부자고,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또 어디 있나 보십시오. 누가복음 23:50-51에, “공회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라고 했는데, 이 사람도 공회의원입니다. 이 사람 니고데모도 국회의원입니다. 아리마대 요셉도 국회의원이란 말씀입니다. 또 부자입니다. 그 부자도 한몫 썼습니다.

여기서 한몫 쓸 때에 나서야 됩니다. 니고데모하고 아리마대 요셉하고 안 나섰다면 예수님 장사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장사하겠습니까. 그 때에는 장사하러 가도 허락도 안할 것입니다. 공회의원이 갔으니깐 허락을 해 준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면 허락을 안 할 것입니다,
또 만나 주지도 안습니다. 또 장사 하겠다 해도 그 말이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만 내버려 뒀다가 그 다음엔 그 강도들 죽은 다음에 한꺼번에 치우도록 어디 시체를 가져다가 치울 것입니다. 장사를 별도로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공회의원으로서 나섰다는 말씀입니다. 말하니까 허락을 했던 것입니다. 나설 수 있을 때에 나서야 합니다. 나설 수 있을 때에, 자기가 나서서 한 몫 쓰임 받을 때에 나서야만 됩니다. 안 나서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니고데모
나 아리마대 요셉이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나서지 않았으면 예수님 장사는 잘 못 되었을 것이고, 강도와 같이 어디 한 곳에 갔다가 치워 놨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때 안 나섰다면 하나님 앞에 저주받고 관둡니다. 하나님이 그때를 위해서 한 몫 쓰려고 공회의원도 되게 하고 재산도 줘서 부자가 되게 했는데, 이때 만약 안 나서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 앞에 저주 받습니다.

에스더 4:4에,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했는데, 이것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거는 이때 한몫 쓸려고 하나님이 왕후가 되게 만들어 놨다는 말씀입니다. 이때에 왕후밖에는 왕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왕 앞에 들어가 말해야 되겠는데, 너 밖에 들어갈 사람이 없는데, 네가 만일 이때에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와 네 아비 집은 어떻게 되겠느냐?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때 한몫 쓸려고 왕후가 되게 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한다’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와 네 집은 멸망 한다” 는 것입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나섰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몫 쓰임 받아 나서야 할 때에 나서지 않으면 ‘너와 네 집은 멸망’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하게 하십니다.

니고데모가 나서고 아리마대 요셉이 나서고, 이것은 생명 내놓고 나서는 겁니다. 이때 나서서 예수님 장사하게 되면 그들을 ‘예수파’ 로 몰아서 앞으로 공회의원 떨어질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설령 공회의원에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예수파 공회의원 말을 사람들이 듣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주목해서 큰 핍박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서 이때 안 나설 수 없었습니다. 공회의원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때 나서서 한몫 자기 몫을 감당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가 쓰려고 파놓은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하려고, 빌라도에게 나가서 시체를 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본문 58-61절에,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고 했습니다. 요셉이 빌라도에게 나아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내어주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공회원이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직접 나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이 빌라도에게 나가겠다고 하면 총독이 만나주겠습니까? 공회원이 오니까 만나준 것 같습니다. 그 총독이 유대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데, 요새로 말하면 보통사람이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하면 만나 주겠습니까? 그러나 국회의원이 무슨 특별한 일이 있다고 만나러 가면 보통은 만나 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자기 유대인의 공회원의 지위를 한몫 썼다는 말씀입니다. 가서 빌라도를 만났습니다. 시신을 내달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다 죽었다고 하니까 빌라도가 알아보고 그 다음에 내 주라고 그랬습니다.

3. 자기의 무덤을 예수님께 바친 아리마대 요셉

본문 59-60절에,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를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라고 했는데, 자기 새 무덤을 바위 속에 팠다는 말씀입니다. 부자니까 아마 바위를 쪼아내서 무덤을 만든 모양입니다. 상당히 돈이 많이 먹었을 것 같습니다. 바위를 쪼아내서 무덤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장사하고 바위를 굴려다가 거기다 막을, 그렇게 할 무덤이었습니다.

요새도 바위 속에 판 무덤 있습니까? 무덤자리가 어떤 것이 좋은 무덤자리입니까? 모래 섞은 것 비슷한 그 바위 섞은 그런 흙 석벽도 있고, 하여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흙이, 그런데 어떤 흙이 좋은가? 다 마찬가지로 봅니다. 무엇이든지 썩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까짓 것 뭐, 아무데나 썩어지면 어떻습니까? 돌 쪼아내서 무덤 만든다는데 돌 쪼아내서 무덤 만들면 뭐합니까? 요새 석관을 만든다는데, 석관은 돌 관입니다. 돌을 톱으로 켜가지고 그 돌로 관을 짜서 거기다 넣는 것입니다. 상당히 비쌀 것 같습니다. 몇 백 만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석관에 장사하면 또 뭐합니까? 거기 넣어도 썩어질 것인데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관을 짤 때, 보통 한 치(한 치는 3.33 cm) 두께로 하는데 화장할 거면 오 푼 반(약 1.83cm, 한 푼은 한 치
의 1/10) 두께로 하고, 어떤 사람은 칠 푼 반(약 2.5cm) 두께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보다 더 두껍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치(6.66cm)짜리도 있답니다. 두 치 하면 얼마나 두껍습니까? 두 치면 아주 두꺼운 건데 그런 판자로 관을 짤게 무엇입니까? 이것도 썩어질 것인데, 괜히 관 두개 만들 것을 하나 밖에 못 만들고, 남의 관도 못 만들게 만들고, 그 사람만 다 해가지고 가면 되겠습니까? 통나무 쪼아내 가지고 속을 파가지고 만든 통과무 관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천당 가는 것이 중요하지, 영혼이 천당 가는 것이 중요하지, 시체 썩어질 것 아무데에서나 썩어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거기에다 무슨 돈을 많이 들입니까. 많이 들일 필요 없습니다. 
우리 수원에 신학교 땅자리에 있는 무덤을 파는데 약 두 치 두께의 관쯤 될 것 같은데, 두꺼운 판자로 관을 짜 넣은 관 여러 개 있었는데 파보면 다 썩어지고 없었습니다. 뼈다귀 조금 있는 것, 머리뼈 조금 있는 것, 다 없어진 것 등, 하나도 없고 두 치 관에 들어가도 다 썩어지고 없어진 것입니다. 관도 다 썩어지고 마찬가지입니다.또 무슨 지관(地官)이라고 와 가지고 나침반을 놓고 방향 보느라고 와서 그럽니다. 방향 보면 무엇 합니까? 아무 방향이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괜히 쓸데없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돈 좀 벌어먹느라고 지관들이 그러는 것입니다. 그거 지관하기 쉽습니다. 책 한 권 사다놓고 조그만 책하나 사다보고 그것을 한 달쯤 공부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괜히 그런 사람 데려다가 돈 줄 필요 없습니다. 천당 가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고 무덤은 아무데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요셉은 바위 속에 판 자기 무덤, 돈을 상당히 많이 들인 것 같습니다. 바위를 정으로 쪼아내 가지고 무덤을 시체 들어갈 만치만 해가지고 이다음에 자기가 장사하려고 그랬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몇 천만 원 들였을 것입니다. 
6천만 원, 어떤 사람은 6억을 들여서 자기 무덤 해 놓은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 말입니다. 6억을 들여서 잘 해 놓고 관은 무슨 관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무덤 환경을 잘 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빨리 죽어야 되겠어요. 아니, 6억 가지고 나라건설을 위해서 쓰고 하나님 위해서 써야지, 하나님 모르는 사람 같으면 나라 국가를 위해서 썼으면 나라가 얼마나 잘 되겠냐는 말씀입니다. 나라가 잘 되어야 자기 자신도 잘 되지, 나라 망하면 자기도 그 무덤도 그것으로 되겠습니까?

무덤자리는 어떤 무덤자리가 좋으냐 하면 이 다음에 개간할 수 없는 데가 좋습니다. 이전에 어떤 목사가 좋은 곳에 무덤을 했다고 해서 가보니까 좋지 않았습니다. 평평한데 조그만 어느 산 위에다 묘를 썼는데, 그런 곳은 이 다음에 반드시 개간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말 해주려다가 좀 파기 전에 했어야 되겠는데 가니까 다 파 놓았습니다. 언제 뭐 옮길 수 있겠습니까? 이 다음에 개간하게 되면 파낼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무덤자리는 이 다음에 거기다 밭을 해먹던지 집을 짓던지 무엇을 하지 못할 데, 경사가 좀 급한 데가 좋습니다. 아예 그런데는 해 먹을 수 없잖습니까? 그런데 갖다 해야 됩니다. 그래야 어디 개간하게 되면 몇 백 년 후에 개간하게 되어 뼈다귀 나오게 되면 ‘여기 뼈다구 하나 있다’ 하면서, 개 뼈다귀 내버리듯 구덩이에다 내다 버릴 것입니다. 이제 개간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옛날 미아리 공동묘지 있었는데. 제가 장례하러 미아리 여러 번 갔습니다. 명륜 교인들 장례하러 여러 번 갔는데 요새 가 보면 전부 동네가 되었습니다. 집이 가득합니다. 무덤 다 어디 갔습니까. 무덤 수백 개, 수천 개 있었는데 다 어디 갔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집 지으려고 파면 뼈가 더러 나온다고 합니다. 나오면 집어 내 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넣고 하는 것입니다. 미아리 공동묘지 좋았었습니다. 자리가 편평하고 또 산이 조금 있고 좋았습니다. 그러한 곳
은 집짓기 좋은 데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곳에 장사 지내도 이 다음에 개간하여 집 다 짓게 되면, 뼈다귀 다 집어 내버릴 날이 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가 들어가려고 돌을 쪼아서 무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니, 상당히 정성을 들였고 돈도 많이 들였고 또 애착심도 많았을 것입니다. 자기 살았을 때 있는 곳과 같이 거기 죽어서 간다고 애착심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돈을 들였을 것인데, 그것을 아낌없이 주를 위해서 바치는 일, 이것은 귀한 것입니다. 아마 집 한 채 값이나 들여야 그 무덤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이다음에 자기 들어가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다음에 자기 들어가려고 이렇게 돈을 많이 들이고 좋은 자리에다 애착심을 들여서 잘해 놨는데 이것을 예수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바치는 것, 사실 이것이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서 상당히 귀한 일입니다. 이것이 귀한 것입니다. 이다음에 자기가 사용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집과 같습니다. 자기 집, 자기 사용할 것. 자기를 위해서 많은 돈 들이고 애착심을 가지고 있었을 테고, 아마 자리도 좋은데 잡았을 것 같습니다. 그땐 뭐 좋은 자리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좋은 자리 잡았겠지 안 잡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주를 위해서 필요할 때에는 아낌없이 바쳤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필요하실 때는 아낌없이 바치는 것, 이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그 무덤 하나밖에 없지만 그것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이 다음에 죽으면 무덤 또 생기겠지 안 생기겠습니까? 

주께 필요할 때에는 아낌없이 바치는 생활, 무덤이 자기 집과 같은데, 집도 아낌없이 주가 필요할 때는 바치는 생활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자기 집도 주를 위해서 아낌없이 바치는 사람 많습니다. 나귀 바친 사람 있죠? 예수님 예루살렘에 타고 올라가실 때에 나귀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그거 하나님께 상달된 것입니다. 나귀도 하나님께 상달된 거고 이 무덤도 하나님 앞에 상달된 겁니다. 하늘나라 가면 이것에 대해 복 받습니다. 상급이 될 겁니다. 하늘에 쌓
아 둔 것입니다. 자기가 들어갔다면 다 썩어지고 말건데 예수님에게 사용됐기 때문에 하늘나라에까지 상달이 됐습니다. 그 다음에 큰 돌을 굴려다가 무덤 문에 놓고 갔습니다.

4.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게 함 

본문 61절에,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고 했는데,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해서 앉았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위하는 신앙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고 그러니까 십자가 못 박힐 때에도 멀리서 바라보고, 장사한 다음에도 무덤을 향해서 앉았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62-64절에,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라고 했는데,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입니다. 예수님이 금요일 못 박혀서, 토요일 안식일(동시에 유월절), 그리고 다음날 주일날 부활하십니다. 따라서 금요일 날은 예비일이고 그 예비일 이튿날은 토요일 안식일 날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수비대를 보내서 왜 지키라고 했습니까?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고 살아났다고 할까봐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속에는 무슨 생각이 좀 더 있었겠습니까? 제자들이 도적질 할까봐 지키라고 그랬는데 속에 또 다른 생각이 좀 더 있었을까요? 이것이 전부일까요? 다른 생각이 좀 더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생각이겠습니까? ‘진짜 살아나면 어떻하겠나?’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짜 살아나시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빌라도에게 할 수는 없고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살아난다’ 그랬으니까, 수비대를 보내서 지키게 해달라고 그랬던 것입니다. 하여튼 겁나는 것이 있어요. 살아날까봐 겁나는 것이 좀 있습니다.

본문 65-66절에,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고 했습니다.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고, 파수꾼이 그 무덤 밖에서 지켰습니다. 그 파수꾼이 무덤을 지키는 일, 예수님 부활하면 안 되겠으니까 부활 못하게 하려고, 만일 살아나면 다시 죽이라고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돌에다가도 인봉을 했습니다. 인지를 갖다가 붙였습니다. 돌을 떼기만 해도 알도록 한 것입니다.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인봉 떼면 처벌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되었겠습니까? 부활하는데 지장이 되었겠습니까? 파수꾼이 지키고 있는 일, 또 부활하면 다시 죽이려는 세력, 로마 정권의 힘을 가지고 인봉한 일, 그거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지장이 되었습니까? 지장이 못 되었습니다. 도리어 유익이 되었습니다. 왜 유익이 됐느냐? 그 파수꾼들이 예수님 부활할 때 뒤로 나가 자빠지지 않았습니까? 없던 것 보다 낫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서 무엇이라고 증거 했을 것 같습니까? “아! 진짜 살아났다고, 우리가 다 봤다고, 우리가 다 죽을 뻔 하였다”고 증거 했을 것입니다. 그 인봉한 것, 로마 정권의 권세를 가지고 인봉한 것, 그 인봉 다 떼 치우고 돌을 다 굴려 놨으니까, 인봉한 것이 오히려 돌을 굴려 낸 확실한 증거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 막는 일은 하나님이 하는 일에 오히려 이용당해서 하나님의 일을 더 확실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막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막는 일, 사람이 방해하는 일이 있을 때, 믿음으로 나가면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또 하나님의 일에 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25-46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과 가상칠언 (架上七言)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과 가상칠언 (架上七言)
마태복음 27:25-46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7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그의 옷을 벗기고 홍
포를 입히며 29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35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거기 앉아 지키더라 37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43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45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46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많은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 말씀한 것이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본문 26절에,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채찍질 했다고 했는데 우리 주님께서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죄를 인해서 우리가 맞을 채찍을 예수님이 대신 맞으셨습니다. 이 주간에 오늘부터 고난주간인데 이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고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27-29절에,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홍포를 입혔다는 것은 죄수의 옷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가시면류관을 엮어서 예수님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 가시면류관이 예수님 머리를 찔러서 가시가 찌른 자리에서 피가 나왔는데, 우리를 위해서 그 가시면류관을 썼습니다. 우리가 머리로 지은 죄를 인해서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쓰시고 머리를 찔러서 머리에서 피가 나오는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본문 30절에,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고 했는데, 예수님에게 침 뱉고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얼마나 멸시와 수모를 당했습니까? 우리를 위해 다 당하셨습니다. 또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쳤다고 했습니다. 머리에 또 매를 맞으셨습니다. 

본문 31절에,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32절에,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데 너무 연약해서 나가다 쓰러지고, 쓰러지고 하니, 군병들이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대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여, 예수님 못 박힐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나갔습니다. 

본문 33-35절에,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라고 했습니다. 쓸개 탄 포도주는 마취제입니다. 사형당하는 사람들에게 마취제를 좀 먹여서 고난을 좀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 모양인데 예수님은 마취제 안 하셨습니다. 고난을 다 당해야 되겠는데 마취제를 마시고 고난을 다 당하지 못하면 우리 죄를 다 대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똑똑한 정신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시려고 쓸개 탄 포도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양쪽 손에다 못을 박고 또 발에다 못을 박고 이렇게 손과 발에 못을 박고 매달아 놓았습니다. 거기서 피가 흘러서, 손과 발에서 피가 흘러서, 뚝뚝 피가 다 떨어져, 온몸에 있던 피가, 심장에 있던 피가, 다 흐르게 되었습니다.

본문 36-42절에,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고 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다 지고 통과해야만 우리 죄를 다 대속하기 때문에 내려오시지 않습니다.

본문 43-44절에,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서기관들은 모두 예수님을 이렇게 욕하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한 사람은 회개했습니다. 누가복음 23:40-43에 보면,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되어있습니다. 한사람은 회개했습니다.

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본문 45-46절에,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했다고 했습니다. 
육시는 유대시간에 여섯 시간을 더해야 우리 시간이 됩니다. 그러면 제 6시는 12시, 제 9시는 오후 3시가 됩니다. 열 두 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태양이 빛을 낼 수가 없어서 태양 빛이 다 어두워지고 온 땅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리고, 제 구 시 즈음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22편 1절에 있는 말씀인데, 시편 22편을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면서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황소들이 모여서 이렇게 찌르고 또 옷을 제비 뽑고 그 밑에서 예수님이 고난을 당한 것이 기록이 됐는데, 그러다가 이 고난을 인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고 또 온 세계가 다 구원 받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시편 21장이 다 이루어질 것을 믿고 이스라엘이 구원받고 온 세계가 구원받는 대 승리를 예수님이 믿음으로 내다보시고,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원망과 불평의 부르짖음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감사합니까? 시편 22장 마지막 절에 승리가 있으니까 십자가를 승리케 해주는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는 버릴 수 없는 독생자까지 버리시면서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버릴 수 없는 독생자까지 버리시면서 이렇게 택한 백성을 건져 주십니까’ 감사하는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릴 수 없는 아들을 버리시면서 까지 이렇게 택한 백성을 구원해 주십니까?” 라는 이런 승리의 찬송과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아파서 부르짖으며 마지못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마지못해서 바치는 것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고 울고 부르짖으면서 가져오는 것도 안 받으십니다. 기쁨이 없이 부르짖으면서 울면서 갖다 바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감사함으로 갖다 바치는 거 받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은 감사함으로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버렸지만 십자가에서 독생자 예수님은 도로 갖다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두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된 것을 보고 끊어버렸습니다.
끊어버리는 동시에 예수님은 의를 완성해서 도로 연결시켰습니다. 끊어버리면서 연결, 아버지는 끊어버리면서 아들은 연결시켜 놓았다는 말씀입니다. 의는 죽지 않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은 의의 완성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면서 의를 완성시켜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구속을 감사함으로 완성하게 됐습니다.

3. 가상칠언 (架上七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가상칠언이 있는데, 첫째는 용서, 둘째는 낙원, 셋째는 어머니 부탁, 넷째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다섯째는 목마르다, 여섯째는 다 이루었다, 일곱째는 영혼 부탁한 것, 일곱 마디입니다. 이 일곱 마디를 한 글자씩 따서 외우면 쉽습니다. 용, 낙, 모, 기, 갈, 성, 탁(容, 樂, 母, 棄, 渴, 成, 託). 용서해 달라는 것은 용. 낙원에 있으리라, 낙. 모, 어머니 부탁. 기, 어찌하여 버리셨나이까. 갈, 목마르다. 성, 다 이루었다. 영혼 부탁한 것, 탁. 일곱 마디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첫째, 용서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23:34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 새” 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을 사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희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망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먹었는데 그때도 예수께서 차라리 나지 않았더면 저에게 좋을 뻔 했다고 했습니다. 못 박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니까 그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용서해달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둘째는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3:4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우편 강도가 회개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히시면서 낙원에 갈 것을 바라보고 나가십니다. 또 회개하는 강도에게도 “너도 나와 같이 낙원에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낙원으로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셋째,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9:26-27에,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섯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이 효성이 지극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갖은 고통을 다 당하면서 못 박혔는데 죽어가면서 어떻게 어머니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고난 중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한 효도를 다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으면서도 이렇게 효도했는데 어머니를 돌봤는데 우리도 부모를 잘 돌보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엘리 엘리 사박다니”

넷째, 그 다음은 ‘엘리 엘리 사박다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다섯째는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28에,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라고 했는데, 십자가상에서 피를 다 흘렸기 때문에 심히 목이 말랐습니다. 피가 흐르면 목이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다 흘렸는데 얼마나 목이 마르겠습니까? “내가 목마르다”, 피가 다 흘렀다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여섯째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고 했는데, “다 이루었다”, 구속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십자가에 죽음으로서 완성하셨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일곱 번째, 마지막 마디는 하나님께 영혼 부탁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3:46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라고 했는데,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라도 원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잊지 않았고, 낙원에 갈 것을 바라보면서 나갔고, 어머니 부탁하고, ‘하나님이 버릴 수 없는 독생자를 어떻게 이렇게 버리시면서 까지 구속 사업을 완성하십니까?’ 하는 감사 찬송 드리고,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내가 목마르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며 구속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고 운명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인데 예수님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신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특별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신 주간인데 우리는 방탕하고 자유 방종하고 육신의 정욕대로 나가고,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고난당하신 것을 깊이 생각하고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을 다 가져야 합니다. 고난주간은 특별히 금식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전에 이북에 운산동 교회라고 있었는데 운산동 교회 옆에 칠악산이라고 있었습니다. 고난주간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올라가서 기도하곤 했는데 이북에서 신앙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했는지 산에 하얗게 올라갔습니다. 우리도 이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기도하고 또 금식할 사람은 금식하고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날은 부활절인데 이번에 예수님의 고난을 이 주간에 깊이 참여하고 다음 주일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4.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 춘분 지난 보름

예수님이 쓰리고 아픈 십자가상에서라도 이렇게 어머니를 생각하고, 못 박는 사람 불쌍히 여겨서 기도해 주고, 십자가에 같이 못 박힌 회개하는 강도에게 낙원에 같이 가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버릴 수 없는 독생자까지 버리시면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주십니까’하시며 감사하고, 목마르다고 하시고, 구원을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 다음에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했는데 주일날 새벽에 살아나셨습니다.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유월절 다음날 새벽에 살아났습니다.

요한복음 19:14에,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 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라 유월절 전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유월절 전날 예수님이 잡히시고 끌려 다니면서 재판을 받으시고 그날 십자가 못 박혔습니다. 유대나라는 하루가 전날 저녁부터 시작합니다. 유월절 전날 잡혀가지고 밤새도록 재판을 여섯 번 받으시고 낮에 못 박혔습니다. 유월절 전날, 낮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요한복음 19:31에,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라고 했는데, 이날은 예비일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예비일이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날이 예비일이었고, 그 예비일 다음날이 큰 날, 유월절이고 또 동시에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둔 채 그 명절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전날 다리를 꺾어서 다 장사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다음날 살아났습니다. 유월절 전날에 예수님이 못 박혀 죽었는데 그날 장사를 지내고 유월절 하루는 예수님이 무덤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다음날 새벽에 살아났습니다. 유월절이 14일이므로 살아난 날은 15일이 분명하잖습니까? 14일이 유월절이므로 14일 전날(예비일) 못 박혔다가 14일 날 다음날 살아났단 말씀입니다. 즉, 15일 날 살아난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나라 성력은 춘분 있는 달을 정월로 잡고 춘분 있는 그 달 ‘춘분 지나서 15일 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날이 주일날입니다. 13일 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15일 날 부활했단 말씀입니다. 그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날이 주일날이 아닐 수 있습니다. 15일 날이 월요일일수도 있고 화요일이나 수요일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예수님이 주일날 부활했으니까, 15일 지난 그 다음 주일날을 부활절로 지킵니다. 그리고 15일이 주일날인 경우에는 그날 지키는 게 옳고 그날이 주일날 아니면 그 다음 주일날 지키는 게 옳습니다. 15일 날 부활한 것은 분명한데, 춘분 지나서 다음 주일날이 15일이면 그날 지키는 게 옳은 것입니다. 그 다음 주일날 지키는 건 옳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
15일 날 살아났는데 그 다음 주일날 가서 오늘 아침에 살아났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춘분 지나서 그 다음 주일날이 15일이면 음력으로 15일, 유대나라 달력도 달을 표준한 달력이니까 춘분 지나서 그 다음 주일날이 15일이면 음력으로 그날 살아난 게 분명하고, 그날이 주일날 아니면 그 다음 주일날 지키면 됩니다. 보통은 그 다음 주일날로 지키는데 우리는 그날 지킵니다. 15일 날 살아났으니까 15일 날 지키는 게 옳다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로 지키느라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몇 십 년 전부터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양력은 태양을 표준해서 한 것이고, 우리나라 음력이나 성경의 성력은 달을 표준해서 한 것입니다. 만월을 보름날로 정해서 표준해서 하는 것입니다. 제일 달이 큰 때가 15일 날이 될 거 아니겠습니까? 차차 커나가다가 제일 큰 것이 15일, 그 다음 차차 작아질 때는 16일부터 내려가는 것입니다. 15일이 만월 맞는데, 그래서 15일로 지키는 것이 옳다고 우리가 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고난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흘려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셨는데 여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감격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죽어주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겠습니까? 예수님이 고난 받지 않았으면 우리는 죄 값으로 영영히 형벌 받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우리가 항상 감사하고 거기에 참여 하는 신앙을 늘 가져야겠습니다.


마태복음 27:1-26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판결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판결함
마태복음 27:1-26

1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 하고 7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11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15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그 때에 바라바라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9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20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21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22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본문 1-2절에,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고 했습니다. 27장은 십자가 장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유대사람의 두목들인데 자기들은 사람을 죽일 권이 없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아야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박을 해서 빌라도에게 넘겨줬습니다.

1. 가룟 유다의 뉘우침과 죽음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가룟 유다

본문 3-4절에,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얼마에 팔았습니까? 은 30입니다. 은 30은 종 한사람의 값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결박을 당하시고 빌라도에게 끌려가 정죄 받으시고 죽으시게 되는 것을 알고 스스로 뉘우쳤습니다. 가룟 유다가 뉘우치긴 뉘우쳤습니다. 가룟 유다가 뉘우치고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 라고 생각을 했고, 가서 죄를 범하였다고 하면서 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을 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것은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회개할 기회가 다 지나갔는데 이제 와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돈을 도로 갖다 주든지 성전에 갖다 던지든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기회가 이미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지, 일단 예수님을 팔아 넘겨졌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이젠 예수님께서 끌려가서 정죄를 받게 되는데 회개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회개하면 예수님을 다시 놔줘야 되겠는데 팔 때에는 자기가 예수님을 팔아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 놔줄 수 없었습니다.

또 회개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놔줄 리가 없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다 지나갔습니다. 모든 것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에서도 회개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16-17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시는데, 히브리서에 보면 에서가 회개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단 말입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회개 했어야 되는데 다 팔아먹고 이제 기회가 다 지나갔기 때문에 회개할 수 없습니다. 에서도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고 난 다음에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을 다 해주었습니다. 이제 와서 회개한다고 해도 그 축복 걷을 수 없습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울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는 죽이라고 하셨는데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잡아 왔습니다. 결국 사무엘이 아각 왕을 죽였습니다. 아각 왕이 살았을 때까지는 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말렉 왕 아각을 사무엘이 죽인 다음에는 사울 왕은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기회가 다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아무것이든 기회는 있습니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가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회개할 바를 회개해야 되고 바로 세울 바를 바로 세워야 되고, 또 재정문제에 대해서도 기회 지나가기 전에 줄 것을 줘야 되고, 양심대로 기회 지나가기 전에 모든 것을 바로 해야 됩니다. 기회 지나가면 하려고 해도 못 합니다. 만사가 다 기회 지나기 전에 해야 됩니다.

가룟 유다의 죽음

본문 5절에,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고 했는데, 유다가 너무 괴로우니까 그 은을 성소에 갖다 던지고 물러가서 목매어 죽었습니다. 죄 값은 이렇게 고통이 옵니다.
예수를 판 죄로 인해 너무 고통이 오기 때문에 이렇게 은을 성소에 갖다 던져놓고 가서 목매어 죽었습니다. 죄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주야로 손으로 내리 누른다”라고 했습니다(시 32:4). 예수님께서 가책을 시키시고 고통을 주시고, 죽을 지경에 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견딜 수 없어서 은을 성소에 갖다 던지고 목매어 달렸다가, 끈이 끊어져서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와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6-7절에,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성전에 은을 갖다 던지고 죽었는데 “이것을 성전에 넣어 두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자기네들이 의논하고 나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를 장사하는 장지를 삼았습니다. 

본문 8-10절에,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고 했고, 또 스가랴 11:12-13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라고 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가랴가 예레미야가 한 말을 기록을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은 30을 달아줬다” 라는 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2.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 줌

빌라도의 심문

본문 11절에,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라고 했는데, 총독이 빌라도인데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대 나라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로마에는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에는 총독을 세웠으므로 빌라도 총독이 유대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왜정 때에 일본이 한국에 총독부를 세워서 통치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중앙청이 총독부였습니다. 그리고 총독이 중앙청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일본 통치하에 있었으면 어떻게 될 뻔 했습니까? 아직도 일본 통치하에 있었다면 일본 총독이 중앙청에 아직도 앉아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총독 내 쫓을 수 있습니까? 3.1 운동 때, 총독 내쫓으려고 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고 감옥에 갇히고 한국 사람이 얼마나 희생 많이 당했습니까? 또 교회적으로 나와서 삼일 운동하다가 불타진 교회가 있습니다. 재암교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일본 통치하에 있었다면 지금쯤 한반도에는 일본 사람이 대부분 다 나와서 살고 한국 사람은 만주로 다 쫓겨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 때에 정책이 그것이었으니까 말입니다. 만주, 서간도, 연변, 그쪽으로 한국 사람들 지금도 몇 백만 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왜정 때 한국 사람들 다 북방으로 들여보내려고 했는데 몇 년만, 한 몇 십 년만 더 있었으면 다 들어갈 뻔 했습니다. 여기서 있으면 자꾸 못살게 만들고 거기 만주로 가면 잘해주고 하니까 자꾸 그쪽으로 갔던 것입니다. 안 갈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자꾸 박대를 하고 거기가면 또 잘해주고 하니깐 다 이사 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서간도에 다 가서 살 뻔 했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이 독립된 것이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고, 둘째는 미국의 은혜입니다. 미국이 한국에 독립을 줬기 때문에 독립이 된 것입니다. 미국이 그때 대동아 전쟁을 이겨서 한국독립을 안 해주었다면 아직도 식민지 그대로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새 반미 운동하는 사람들은 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아니, 미국이 한국독립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반미운동 하냐는 것입니다. 
또 6․25 사변 때 안 도와주었더라면 전부다 공산통일 될 뻔 했는데, 미군이 와서 도와준 덕분에 분단은 되었어도 공산통일 안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반미운동 하느냐 말입니다.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 당연한데 말입니다. 우리가 근본을 알아야 합니다. 조그만 문제 가지고 괜히 반대운동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 주신 것이고, 그 다음엔 미국사람들이 이렇게 독립을 줘서 일본사람 총독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이 된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감사합니까?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 사람들의 고소하는 조건이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즉, 내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면 반역자로 몰아서 죽이려는 것입니다. 로마식민지 통치하에서 식민지나라에서 지금 왕이 하나 났다고 하면 로마를 거역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식민지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왕’ 이라는 명칭을 붙여서 고소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총독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고 물어보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라고 했습니까? “네 말이 옳다. 내가 왕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37-38에,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내가 이를 위해서 났으며 이를 위해서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니까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시고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다고 하시는데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빌라도가 물었던 것입니다. 진리가 뭔지 빌라도가 몰랐습니다. 진리가 뭔지도 모르니까 예수님께서 왕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본문 12-14절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라고 했는데, 무리가 여러 가지 증거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또한 많은 증거로 고소 당하고 있었을 때, ‘고소하는 것을 듣지 못하느냐?’ 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왕이라’ 고 한마디 해 놓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 마디 맞는 말이라 해도, 말 같지 않는 것에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언불청 도불행(言不聽 道不行)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 같지 않는 것은 듣지 않고 길이 아닌 것은 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말 같지 않은 것은 대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본문 15-18절에,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고 했습니다. 명절을 당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당했는데 빌라도는 이 때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대제사
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의 시기로 잡아 온 줄 알고 또한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줄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살인강도로 살인하다 잡힌 바나바라는 사람을 하나 앞에 두고 그 옆에 예수님을 세운 가운데 “둘 가운데 누구 놓아 달라느냐? 바나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면서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무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본문 19절에,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고 했는데, 총독의 아내가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 사람을 보내서 오늘 꿈에 예수님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으니 예수님께 아무 상관도 하지 말아 달라고 전했습니다. 꿈에 애를 많이 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아내가 자기 남편인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은 옳은 사람이니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옳은 사람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깨닫게 하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본문 22-24절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줄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18:38에,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라는 빌라도의 말은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달라고 자꾸 아우성을 치니까, 그리고 민란이 나려 하는 것을 보고서는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에 빌라도가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지고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죄 없는 사람을 내 줄 수가 없기에 물을 떠다가 손을 씻으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손을 씻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그 죄를 누가 당해야 되느냐?” 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씻으면서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아무 죄가 없다. 그러니깐 너희가 당하라”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백성이 말한 대로 피 값을 당함

그 손 씻으면서 “자기는 죄 당하지 않는다”하면 안 당하겠습니까? 빌라도가 손을 씻으면서 나는 깨끗하다. 죄 안 당한다. 그러면 안 당합니까? 손 씻는 것이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손 씻는다고 해도 그 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건 괜히 헛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줄을 알면 무죄석방을 해야지 죽는 데에 내어주면서 손 씻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말입니다. 빌라도가 “너희가 당하라” 하니까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 그랬는데, 이 사람들 말대로 예수님의 피를 그 유대백성과 유대백성의 자손이 다 당했습니다. 말한 대로 당한 것입니다. 또 그런 말 안 해도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인 그 죄 값을 그 사람들이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자손도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백성이 예수님을 잡아 죽인 죄 값으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다 불타지고 성전이 다 헐리고 유대사람이 다 쫓겼습니다. 유대인들이 주후 70년에 유대나라에서 쫓겨나서 세계 각국으로 퍼져 망명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나라 없는 생활을 오늘까지 계속해 내려왔습니다. 주후 70년에서 1948년이니까 1900여년, 약 20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 본토에서 쫓겨나서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서 생활을 했습니다. 망명생활을 한 것입니다. 얼마나 죄 값이 무서운 것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 값으로 백성들이 다 본토에서 쫓겨나서 1900여 년 동안을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비참한 생활을 한 것입니다. 나라 없는 생활, 망명 피난생활, 이런 생활을 한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말세에 가서 유대사람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예언대로 지금은 돌아와서 이스라엘이 독립 했습니다. 1948년도에 독립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에는 지금 세계에 흩어졌었던 백성들이 점점 돌아오고 있습니다. 현재 유대백성이 몇 명이라고 합니까? 한 사백만정도 된다 합니다. 유대의 전국 국민이 한 사백만 밖에 안 됩니다. 사백만이면 서울의 절반도 안 됩니다. 다 해도 서울시민의 절반도 안 됩니다. 부산이 얼마입니까? 부산 480만 입니다. 유대 전국 백성 다해도 부산 시민만 하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얼마 안 됩니다. 군대를 다 합해도 한 12만 명인가 그렇게 된답니다. 군대도 몇 명 안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유대사람들에게 권세를 줬기 때문에 작은 백성이지만 아주 강합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나려고 하니까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사람들이 점점 돌아온다고 합니다. 가서 전쟁하여야겠다고 하면서 돌아온다고 합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나라가 이라크에 침략 당하려고 하니까 ‘다 가서 우리나라를 지켜야 되겠다’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백성들이 살다가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 날까봐 슬슬 도망치는데 얼마나 정신이 좋습니까? 다른 나라는 전쟁나면 도망쳐버립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쟁나면 돌아오는 것입니다. 유대사람들은 돌아와서 나라 지키려고 하는데, 그 참 아주 정신이 좋습니다. 좋은 정신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돌리라. 그 죄를 당하겠다” 라고 말한 그대로 죄를 당했습니다. 말한 대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할 때에 그 말하는 것을 허투로 말 안해야 합니다. 말한 대로 되는 것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망해라’, ‘자빠져라’, ‘어떻게 되어라’, 막 욕하면 안 됩니다. 말한 대로 되는 일이 많이 있으니 말씀입니다.

어떤 목사가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가서 교회 일을 보지 못하고 늘 왔다갔다만 하니까, 그 사모님이 돈을 벌어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너무 속이 상하니까 “한국 나가서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둘 가운데 하나 하라” 고 그랬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목사님이 한국에 왔습니다. 그 사모님이 한국에 가서 유능한 목사가 되고 나서 미국에 돌아와 교회를 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하나 하라고 했는데 그만 한국 나와서 죽었다고 합니다. 유능한 목사가 갑자기 될 수 있겠습니까? 유능한 목사 못 될 바에는 죽어야 한다고 말한 그 사모님은 아마 지금까지 상당히 후회할 것입니다. ‘왜 내가 그런 말 해가지고……’ 하면서 상당히 후회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대로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말한 대로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을 허투로 안 해야겠습니다. 

본문 26절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라고 했습니다. 살인하고 난리를 꾸미던 바나바는 놔주고 예수님은 채찍질 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이렇게 정죄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넘겨졌습니다.

마태복음 26:47-68 고난주간에 당한 예수님의 고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고난주간에 당한 예수님의 고난
마태복음 26:47-68

47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49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53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55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7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59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되 63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66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고난주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마지막 한 주간에 성경을 다 이루시고 고난을 제일 많이 받으셨습니다.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에 다시 살아나십니다.

1. 고난주간에 있던 일

고난주간 제일 첫째 날(오늘의 주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타고 올라가셔서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마 21:1-17). 부활하시기 전 주일인 오늘부터 고난주간인데 오늘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둘째 날은 월요일인데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셋째 날은 화요일인데 바리새인들이 와서 “누가 네게 이런 권세를 주어서 이런 일들을 하느냐?”하며 교권문제 때문에 다투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농부비유, 혼인잔치 비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문제, 부활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시고, 또 칠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일곱 가지 화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25장에는 말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날 수요일은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했습니다. 다섯째 날 목요일에 제자들이 유월절을 예비하였고(마 26:17-19), 날이 저물 때 제자들과 함께 잡수셨습니다. 이 시간이 성력으로는 금요일 시작입니다. 성력으로 여섯째 날 금요일은 성찬예식을 거행하시고, 잡히시고, 여섯 번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금요일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냈습니다. 토요일은 무덤 속에서 하루 지냈습니다. 군인들이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 다음날 주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고난당한 주간의 일입니다. 부활주일 전 주일날인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잡히심

본문 47-50절에,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잡으러 올 때에 환도와 몽치를 가진 무리를 데리고 맨 앞서 와서 “자기가 입 맞추는 사람이 예수니까 잡으라” 하고 미리부터 암호를 짜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하셨고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았다고 했습니다. 환도와 몽치를 가진 무리들은 예수님이 누군지 잘 모르니까, 가룟 유다는 “내가 입을 맞추는 자가 예수니 잡으라” 라고 했고, 환도와 몽치가진 무리들이 예수님을 잡아서 결박하여 끌고 갔습니다.

심문 받으심

요한복음 18:13에,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고 했는데, 제일 처음으로 예수님을 끌고 간 곳이 안나스의 집입니다. 안나스는 전에 대제사장을 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가야바의 장인이라고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끌고 간 데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갔습니다. 본문 57절에,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고 했습니다. 가야바에게로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그 다음은 공회의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66에,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이어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공회의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공회로 끌어 들여서 예수님을 심문하고 정죄하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5:1에,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라고 했습니다. 네 번째는 빌라도에게 끌려 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줬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고는 죄가 없다고 선언했지만 백성들이 다 죽여 달라고 아우성치기 때문에 놔주지 못하고, 다섯 번째로 헤롯에게로 돌려서 예수님은 헤롯에게로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23:7-8에,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라고 했습니다. 

헤롯에게로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다음 여섯 번째 심문은 빌라도에게 다시 끌려가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23:11에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라고 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지만 예수님을 죽이는 정죄하는 일에 대해서는 서로 합해서 친구가 됐다고 했습니다. 헤롯에게로 갔다가 헤롯이 심문을 하고 그 다음에 빌라도에게 다시 보냈습니다. 그 다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다고 선언하고도 백성들이 ‘죽여야 된다,’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때문에 빌라도는 재판을 바로 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주었습니다.

2. 우리 대신 고난 받으시고 대신 의를 행하심

마태복음 27:27-30에 보면,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갔는데 “예수를 때리고 또 의복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 손에 들리고 희롱하고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고 주먹으로 치고” 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이런 모든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또 우리 죄 때문에 우리가 받을 능욕, 우리가 받을 멸시, 우리가 받을 고난을 예수님께서 다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해서 이렇게 고난을 받아야 되고 멸시를 받아야 되고 하나님께 버림 받아야 되는 자리에 있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셔서 대신 해서 그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4-25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 대신 채찍에 맞고 고난을 다 받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전에는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다 잃었었는데 이제는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습니다.

희롱을 다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다 예수님께서 걸머지셨습니다. 우리 모든 만대의 택한 백성들의 죄 가 전부 예수님에게 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다 걸머지시고 고난을 대신 다 받으셨습니다. 대신 고난 받으신 예수님, 대신 형벌 받으신 예수님, 그리고 살아나실 때에도 우리 대신 살아나셨습니다.

대형대행(代刑代行)인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신해서 형벌 받으신 것 절반이고, 그 다음에는 우리 의를 위해서 고난 받으신 것이 절반입니다. 의를 위해서 끝까지 죽도록 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까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대형대행이 되고 우리 대신 형벌 받으시고 우리 대신 의를 행하신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시고 우리는 사형 받게 되어있는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아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죽은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로 인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인하여 고난 받으시고 여러 가지 형벌 받으시고 여러 가지 고통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위해서 이렇게 고난을 받으신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의를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예수님께서 의를 이루어 놓으셨는데 그 의를 인하여 살아났습니다. 죄사의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죄사, 부활은 의생입니다.

3. 십자가에 못 박히심

십자가를 깊이 깨닫지 못한 사람은 참 신자라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형벌 내리시는 것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완전무결한 의를 이루어놓으시고 우리를 살려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같이 우리도 죽었고 부활체와 같이 우리도 살아났습니다. 우리 영혼이 산 영이 되었습니다.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12시까지 3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습니다. 피를 다 흘리시고 고난당하시고 낮 12시부터는 온 땅이 캄캄해졌습니다. 조물주가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시는데, 피조물 되는 해가 그 빛을 제대로 비출 수가 없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캄캄해졌다”라고 했습니다.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은 온 땅이 캄캄해진 상태로 있다가, 3시에 가서 3시쯤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고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34에,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고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했습니다. 한 군인이 와서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니 물과 피가 다 나왔다고 그랬습니다. 옆구리를 찔러서 심장까지 올려 찌르니 심장에 있는 피가 다 나왔습니다. 이렇게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시고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러신 뒤에 예수님께서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영혼이 떠나서 낙원으로 가셨는데, 그 때에 군인이 와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물과 피가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온몸 전체가 다 십자가에 못을 박히시고, 창으로 찔리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머리에서도 피가 나오고, 손과 발에서 피가 나고, 옆구리에서 피가 나오고, 여섯 시간 십자가에서 심한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에는 운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대신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죽어야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히시고 보내셔서, 우리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4.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자

이번 주 금요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인줄 알고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고난주간이니까 금식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느라고 힘을 많이 씁니다. 그렇게 참여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알고, 그 은혜에 감격해서 찬송가에 있는 말과 같이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고 몸 바치는 생활해야 합니다. 몸 바쳐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몸인데 우리 몸이 우리 것이 아니고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몸 입니다. 몸 바쳐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으니까, 내 죄를 위해서 죽으셨으니까 다시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다시 짓는 그 죄는 예수님께서 죽어주신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나의 죄, 사형 받을 죄입니다. 죄 값은 사망인데 우리 죄는 무슨 죄든지 다 사형 받을 죄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 사형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아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해서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저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해야 예수님의 생명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고난주간에 깊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다음 주일, 부활절 날에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부활의 생명을 받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주간 동안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고, 기도 많이 하고, 부활의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됩니다. 예수와 같이 우리가 죽고 예수와 같이 살아야 됩니다. 옛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죽고 새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사는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다음 주일은 살아나는 주일입니다. 살아나는 주일, 살려주는 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려주신데 대하여 감사해서 부활절 연보를 준비했다가, 힘써 저희 힘대로 준비했다가 부활주일 연보를 다음 주일날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해야 합니다. 고난에도 참여하고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는 저희가 돼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합니다. 저희 몸은 저희 것이 아니라 피로 값 주고 산몸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몸이니까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고 예수님과 같이 살아야 됩니다. 옛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죽어야 됩니다. 새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살아야 됩니다. 죽는 것이 없으면 사는 것도 없습니다. 내가 죽은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죽음, 예수님의 장사는 내 장사,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 예수님 승천은 내 승천, 예수님 천당은 내 천당’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죽은 것은 누구 죽은 것입니까? 내 죽음입니다. 예수님 장사는 누구 장사입니까? 내 장사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누구 부활
입니까? 내 부활입니다. 예수님 승천은 누구 승천입니까? 내 승천입니다. 예수님 천당은 누구 천당입니까? 내 천당입니다. 그런 신앙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는 저희들이 다 되고, 부활에 참여하는 저희들이 다 되어야겠습니다.

마태복음 26:36-46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
마태복음 26:36-46

36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44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6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히브리서 5:7-10 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1.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심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심

예수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죽음의 고난에서 능히 구원할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히 5:7- 8).
마태복음 26:36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승리적으로 질만한 능력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왔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질 때는 그 능력으로 찬송하면서 나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때 마음을 아픈데 빼앗기고 얼굴을 찡그리고 고통 가운데 빠졌다면 흠있는 제사가 되며 구속에 흠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39에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평소에도 늘 이산에 기도하러 가셨으며 이번에는 가장 중요한 십자가의 문제를 앞에 놓고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창세 이후로 세상 끝날 때까지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한꺼번에 지시고 죽음의 고난을 다 당하시며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나가시는 예수님의 고난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앞의 고난이 너무 크므로 이 고난을 어떻게 이길까? 하며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기도하심

히브리서 5:7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다 받으시면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기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질 때 아픈데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승리적으로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경외하심으로 들으심을 얻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속 사업이 승리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순종해 나가려면 십자가의 고난이 오는데 그때 기도로써 통과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승리적으로 진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오는데 그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므로 승리적으로 통과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힘도 주시고, 원수도 막아주시기도 하시고, 구렁텅이에서 건져주기도 하시고, 앞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공경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즉 살아계셔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기도의 모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이와 같은 신앙으로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앞길을 열어 주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 모든 전체를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아픈 것, 병 낫는 것, 어려운 일, 여러 가지 마귀 역사, 시험 등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였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만능으로 모든 것을 해 주실 것을 믿고 하는 기도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것을 믿고 그 앞에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권으로 사역하시는 줄 알고 하나님이 해 주면 되고, 안 해주면 안 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걱정이다”하지 말고 말씀 한마디로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하신 하나님이 해 주시면 다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심

마태복음 26:39에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첫마디의 기도의 내용은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것은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오셨고, 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육신의 생명이 죽는 것이 너무 애석해서 죽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는 메시야로서 적당하지 않은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잔이 지나가게 하옵소서란 십자가의 고난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잔은 고난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택한 백성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너무 크므로 이 고난을 면케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으로는 하나님과 같고 인성으로는 우리와 똑같은 육체이기 때문에 그 고난을 승리적으로 통과하려면,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고통스러워서 마음이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 큰 고통을 인하여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면 하나님 앞에 흠 있는 제사가 됩니다. 단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시며 마지못해서 바치는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힘을 도와 주심

누가복음 22:42-43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힘을 도와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에게 사자를 보내서 힘을 도와주신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넉넉히 이길만한 힘을 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말할 수 없는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위하여 물과 피를 다 흘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죄 값으로 피 흘려 죽어야 할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피흘려 주시고, 대신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장사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시고 장사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죄 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됩니다.

예수님이 나 위해서 죽으셨으므로 나도 예수님과 같이 죽은 것이며, 예수님이 산 것은 내가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죽는 고난도 못 견디겠는데 억만 사람의 죽는 큰 고난을 우리 위해서 당해 주신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깨달아 그 고난에 참여하여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기도하는 자리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다 당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십자가를 승리적으로 통과하였습니다. 우리도 모든 고난을 기도의 장소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세상에 나가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힘써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의 장소에서 이겨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힘도 주시고, 사자를 보내서 모든 것을 다 이기게 해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원수도 막아 주시고 물리쳐 주십니다. 하나님이 한 번 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이 돌려놓으면 다 돌아갑니다. 완악하고 강퍅해도 하나님이 돌려놓으시면 다 돌아갑니다. 사람이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2. 순종을 배우며 기도하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해달라고 기도하심

단 마음으로 흠 없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앞으로 올 십자가의 고난을 다 받은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고난을 면하여 주시는 문제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다 받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다 받겠다고 하는 순종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순종을 배우며 기도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순종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으로 영접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순종 잘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게 됩니다.

순종을 배워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아들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순종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제 뜻대로만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순종하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순종하지 않으므로 일이 안됩니다. 즉, 내가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순종한다고 말로만 하고 실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고 모든 것을 바쳐 놓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오늘에 주를 위해서 죽는다고 하면 “예”하고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생명 내놓고 순교당하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바쳐 놓고 이제는 "순종하고자 합니다,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지고, 아골 골짜기로 가라하면 가겠습니다"하는 순종하는 믿음이 하나님 앞에 귀한 것입니다.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심

누가복음 22:44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서 전심전력으로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떨어졌습니다. 땀에 피가 섞였다는 것이 아니고 땀 흘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모든 정력과 심혈과 생명 전체를 다 기울여 하신 기도이며 그 때에 흘리신 땀은 보통 흘리는 땀이 아니고 핏방울 같이 귀중한 땀입니다.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시간을 많이 들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모든 염려는 다 주께 맡기고 전심전력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방심으로 하는 기도는 하면 안 됩니다.

이북 운산 교회에 어떤 장로님 한 분이 계셨는데 예배당에 와서 기도할 때 닭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닭을 내보내고 기도하려고 “훠훠” 하고 날려 보냈다는데 참으로 기도를 깊이 하면 닭이 들어오는 것도 모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과만 교통하는데 어떻게 닭이 들어오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힘써 기도하여야 합니다.

3. 예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심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심

예수님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5:8-9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순종함으로 온전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죄가 있거나 불완전한데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연약한 것과 시험 받는 것에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라남으로 온전하게 되었다는 뜻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52에 예수님의 지혜가 자라났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지혜가 자라난 것은 자라기 전보다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어린이가 완전한 사람이지만 점점 자라나서 어른이 되고, 어린 나무가 완전하지만 점점 자라나서 열매 맺는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 무슨 결함이나 죄가 없지만 자라나심으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우리를 온전케 만들려고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도 십자가를 통과시키시므로 온전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점점 온전케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께 합당한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구속을 완성하시고 구원의 근원이 되심 

베드로전서 2:21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 하며,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케 된 것이 우리 믿는 성도에게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근원이 되고 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사 본을 끼쳐 우리로 하여금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습니다. 성도는 고난을 받으면서 그리스도를 배우기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과 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달게 받으면서 순종을 배워나가며 죄에서 떠나 자신이 점점 온전케 되어 나가면서 몸 바쳐 놓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큰 고난당하신 예수님, 순종하므로 온전케 되신 예수님, 하나님을 경외한 예수님을 잊지 말고,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본받아서 따라가야겠습니다.

마태복음 26:1-29 성찬 예식을 시설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성찬 예식을 시설함
마태복음 26:1-29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3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4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6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9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1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14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17무교절의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19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20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23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함 (1-5)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다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마음의 작정을 하고 있는 때인데,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입니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본문 3-5절에,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고 했습니다. 어떤 수단이든 거짓된 계획을 세워서라도 예수를 잡아 죽여야겠다고 서로 의논을 했습니다. 유월절에 많이 사람이 모였을 때 하면 백성들의 반발이 심할 염려가 있으니까 명절에는 말자고 했습니다.

2.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을 부음 (6-13)

본문 6-9절에,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으로 문둥병이 나은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였습니다. 한 여자가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그 여자를 향해서 분히 여기면서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했습니다.

요한복음 12:2-6에,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고 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어치의 나드 한 근이었다고 했습니다. 요즘 돈으로 (장정 하루 일한 값이 한 데나리온) 하루에 10만원을 번다고 하면 3000만원어치의 향유입니다. 그게 얼마나 많은 돈입니까? 제자들이 볼 때에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서 발까지 내려갔는데 제자들이 볼 때에는 그것을 허비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분하게 여겼습니다. 아까운 돈을 허비한다고 분히 여기며 여자를 책망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 머리에 부었다고 했는데 요한복음에는 발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머리에 부은 것이 발까지 내려갔으리라 봅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머리털로 발을 씻어드렸다고 했습니다(요 12:3). 제일 먼저 불평한 사람은 가룟 유다였습니다. 

요한복음 12:4에,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고 했습니다. 불평은 언제나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 시작을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번져나갑니다. 마귀의 종이 먼저 불평을 합니다. 믿음이 없고 도적질하는 심리가 있고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그런 사람이
먼저 불평을 하고 그 불평이 다른 사람에게 번져나갑니다. 어느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고 마귀 종노릇하는 사람에게서 먼저 불평이 시작이 되고 이것이 점점 다른 사람에게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말했지만, 구제 사업으로 가져오면 자기가 빼돌리려고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도적질 하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려고 이런 악한 말을 했습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0절에,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허비한다며 분히 여기고 그 여자를 책망했습니다. 다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좋은 일한 것을 잘못했다고 하고, 신앙으로 볼 때에는 여자가 좋은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보는 관점하고 믿음 있는 사람이 보는 관점하고 다른 것입니다. 하는 일이 다 다릅니다. 

예수님하고 제자들하고 신앙의 정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제자들의 신앙은 아직도 육에 속했고, 물질에 속했고, 세상에 속했고, 가난한 사람 구제하자고 하는 사업주의의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신앙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도 알고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자기의 가장 귀중한 머리털로 발을 닦는데까지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 예수님을 위해서 바치는 일, 사랑하는 일을 마리아는 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 구제하는 일, 기독교 사업주의를 첫째로 두고 그것이 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신앙은 예수를 위해서 바치는 것이 큰 줄 알았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 앞에 충성하고 희생봉사 하는 것을 큰 것으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신앙이 귀중한 줄을 아시고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회가 항상 있지 아니하니라

본문 11절에,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없는 시대가 없습니다. 천지가 있는 한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지만 예수님을 위하여 바치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기회 지나가면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게 되면 예수님을 위해서 기름 부을 수 있습니까? 기회가 있을 때 예수님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기회 지나가면 못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주를 위하여 바치는 기회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기회도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을 열어 주었을 때 전도하고 문이 닫히면 못합니다. 여기 공산권을 전도하는 것도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 열어 주었을 때 해야 합니다. 소련이나 중국에 교회를 세우는 것도 하나님이 모처럼 70여년 만에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열어주셨을 때에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위해서 바칠 기회, 봉사할 기회, 충성할 기회를 주셨을 때 해야 합니다. 병나면 못합니다. 하나님이 건강 늘 주는 거 아닙니다. 얼마 안 있으면 다 데려가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하나님이 건강 주셨을 때에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좀 있으면 못할 날이 옵니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못할 날이 옵니다. 병났을 때는 낫기만 하면 주를 위해서 충성하겠다고 하지만, 데려간 다음에는 못하는 것입니다. 최유선 목사님이 병났을 때에 낫기만 하면 주를 위해 충성하겠다고 몇 번이나 맹세 하다시피 했는데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이 데려가려고 작정하시면,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회 주셨을 때, 문이 열릴 때, 재산 좀 주셨을 때, 경제적인 힘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다 없어지고 나면 할 수 없습니다. 늘 있는 거 아닙니다. 물질도 늘 있는 거 아니고, 얼마 있으면 다 걷어갈 날이 옵니다. 환경도 하나님께서 얼마 있으면 다 바꾸어 놓습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우리가 주를 위해서 충성하고 바칠 바를 바치고 봉사할 바를 봉사해야겠습니다.

십자가 구속에 대한 합당한 예물

요한복음 11:5에,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마르다와 함께 나사로(동생인지 오라비인지 알 수 없음, 동생으로 추정)를 데리고 셋이서 살았는데, 마리아가 삼백 데나리온어치의 향유를 구하려고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을 것 같습니다. 여자가 삼백 데나리온을 어디 가서 구하겠습니까? 요새로 말하면 3000만원인데 뭐든 팔 것을 팔고, 꾸어준 것 받을 건 받고 여러 방면으로 애써서 삼백 데나리온어치의 나드 한 근을 샀을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 머리에 갔다가 부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정성을 아십니다. 믿음도 알고 그 정성도 알고 왜 부었는지 그 목적도 아십니다.

왜 부었지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며칠 있으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겠는데 ‘무엇을 갖다 바쳐야 합당한 것일까?’ 생각하면서 많이 기도하면서 준비한 것 같습니다. 며칠 있으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겠는데, 십자가 죽음에 대한 합당한 예물이 무엇일까? 죽음을 위해서 합당한 예물은 향유가 아니겠는가? 십자가 죽음에 대한 합당한 예물을 준비하느라고 많이 준비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붓는 기름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영접하고 존귀한 것을 바치고 희생 봉사하는 마리아의 행위입니다.

본문 12절에,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미리 알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에 감사해서 거기에 합당한 예물을 갖다 부은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여자의 일을 말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영존하고 존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영존했습니다. 기름 부은 일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합당한 희생 봉사하는 일이었습니다
.
3. 예수님을 은 삼십에 매매함 (14-16)

본문 14-16절에,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은 삼십은 당시 종 한사람의 값입니다. 예수님은 종 한사람의 값으로 제자에게 팔렸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 다녔는데 스승을 종 한 사람의 값으로 팔았습니다. 얼마나 악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게 됩니다.

4. 유월절 잔치 (17-25)

유월절 준비

본문 17절에, “무교절의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무교절의 첫 날은 14일입니다. 유월절이 14일이 유월절입니다. 그 전날이어야겠는데, 예수님은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전날이어야 맞습니다. 무교절은 그 전날부터 지켰나봅니다. 제자들이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본문 18-19절에, “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내 때가 가까웠으니’는 십자가의 구속할 때가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라고 아무에게나 가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락방을 하나 내주었다고 했는데, 이것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입니다. 그 다락방에 유월절 지킬 예비를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 예고

본문 20-21절에,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신 것은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자기를 가리킴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본문 22-23절에,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하십니다. 여러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면서 “내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 하시며 다시 한 번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두 번째 기회에도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24절에,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가시지만, 인자를 파는 가룟 유다에겐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지만 예수님은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지심은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만 예수를 팔아먹고 악한 마음을 품고 돈에 탐심이 나서 비참한 죄를 지으니 그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다시 한 번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26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라고 했고, 본문 25절에,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결국 그는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5. 성찬 예식을 시설함 (26-29)

본문 26-28절에,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찬예식의 떡과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주시는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 영적으로 예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해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살과 피가 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공재설(共在說), 즉, 떡과 포도주에 살과 피가 같이 있다고 주장하는 루터파가 있는데, 같이 있다고 하면 안 믿는 사람이 참여해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 성찬예식에 참여해서 먹게 되면 주의 살과 피의 효과가 나타나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안믿는 사람이 참여해서 먹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닙니다. 효과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효과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살과 피가 떡과 포도주에 같이 있다고 주장하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무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성찬예식을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 성령이 함께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합당치 않게 성찬예식을 먹고 마시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됩니다.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는 말과 ‘나의 피’라고 하신 말씀을 들어서 진짜 살과 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신자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는데 신자가 진짜로 소금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상징하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본문 29절에,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나라’는 신령한 나라를 가르칩니다. ‘새 것으로’라는 것도 신령한 포도주인데, 이것은 구속의 은혜와 영적 생명운동을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9:17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되느니라”고 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새 생명의 역사, 새 생명 운동입니다. 새 생명의 역사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참여하십니다. 다시는 물질적인 포도주를 먹지 아니하시고 영적인 새 생명의 포도주를 같이 나누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2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라고 하십니다. 포도주를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상징했습니다. ‘구속의 은혜’ 가 포도주이고,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새로운 생명의 은혜에 너희와 같이 참여할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담배 피우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담배는 양식이 아니고 배부르게 못할 것인데 그것을 사려고 은을 달아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31-46 최후 심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최후 심판
마태복음 25:31-46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1.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본문 31-33절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고 하시는데, 최후 심판이 백보좌(白寶座) 심판(계시록 20장)입니다. 최후에는 예수님께서 공중에서 백보좌를 베풀어 놓으시고 최후심판을 하십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이 부활한 뒤 천년 왕국이 다 지나간 다음에는 불신자들도 다 부활합니다. 최
후의 심판 때에, 양은 믿는 사람인데 오른편에, 염소는 불신자인데 왼편에 다 모으십니다.

본문 34절에,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고 하십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예비 된 나라” 를 상속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입니다. 상속하라는 것을 보니까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계승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창세로부터 예비해 놓으신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셨는데(요 14:1 -2), 그것이 하늘나라를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때의 ‘처소’는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어서 구속의 세계를 이루신다는 뜻이고 천국은 창세 전에 이미 다 예비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돌아본 자

본문 35-36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른편 사람들에게 ‘내가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너희가 나를 돌아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37-39절에,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라고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돌보았다’ 하실 때에 그 사람들이 ‘언제 우리가 그랬습니까?’ 하며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의인들’ 이라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입니다.

본문 40절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 도와주느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도와
준 것입니다. 믿는 일 한 것이 예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닙니까? 믿는 일 하다가 감옥에 가고, 믿는 일 하다가 굶고, 믿는 일 하다가 헐벗고, 믿는 일 하다가 목마르고…. 이런 것들이 예수님의 하는 일을 순종 하다가 헐벗고 목마르고 갇힌 것입니다. 그렇게 된 사람들을 돌봐주는 것은 예수님을 돌봐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는 일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으니까 그런 사람을 돌봐주는 것이 예수님을 돌봐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나를 돌봐준 것이니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감옥에 가고, 굶고, 헐벗고, 목마른 사람을 돕는 것이 예수님을 도와준 것이면, 직접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를 위해서 목말랐다, 예수를 위해서 매 맞고 병들었다, 예수를 위해서 입을 것이 없이 헐벗었다, 예수를 위해서 감옥에 갇혔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더 복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위해서 매 맞아 봤습니까? 예수를 위해서 감옥에 갇혀 봤습니까? 예수를 위해서 목말라 봤습니까? 예수를 위해서 굶어봤습니까? 그런 사람을 도와준 사람도 복을 받는데, 그 일을 겪은 사람은 얼마나 더 복을 받겠습니까?

교회 하다가 먹을 것이 없으면 굶는 것입니다. 교역자들 월급 올려달라고 하지 말고 교회 하다가 굶으면 그것은 예수를 위해서 굶는 것입니다. 그런 교역자도 복을 받지만 그를 돕는 사람도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교회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 실력이 없는 사람이 개척교회 한다고 나가서 셋집 조그만 것 하나 얻어가지고 구멍가게 차려놓듯 차려놓고 교인을 한 명이나 두 명 모아놓고 교회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원조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 것을 원조해 주어야 될까요? 그런 것은 원조 안 해줘야 됩니다. 그 사람은 교회 안 해야 됩니다. 안 해야 될 사람이 가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교회가 할 사람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안 해야 될 사람은 교회 안 됩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안 됩니다. 일 년 가도 안 되고 여러 해 가도 안 됩니다. 괜히 고생만 하고 교인들도 고생시키고 교회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 생활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 안 될 사람은 하지 말고 가서 일해 먹어야 합니다. 할 사람은 할 때 도와줍니다. 그렇다고, 안 될 사람이 개척교회 한다고 하는 데마다 일일이 따라 다니면서 말리지 못합니다. 그저 가만히 두고 봅니다. 그러다 보면 이 사람이 교회 할 사람인지 아닌지 지내는 것을 보면 압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를 들어 20명 이상 모아 놓으면 그 사람을 교회 할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도움 받는 사람은,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으로, 도움 받는 모습이 되면 안 됩니다. 진리를 세우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도움 받는 것입니다.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고 그럴 때에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일하기 싫어서 굶는 것은 도와주면 안 됩니다. 도와주지 말고 그 사람은 일해서 먹어야 됩니다.

여기서 ‘굶고 헐벗고 목말랐다’고 하는데 바른 진리를 세우면서 굶고, 하나님의 시키는 일을 하면서 굶어야 되고, 하나님의 시키는 일을 하면서 목말라야 되고 하나님의 시키는 일을 하다가 매를 맞아야 되고 감옥에 갇혀야 됩니다. 바른 진리를 세우다가 고난당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이것이 예수님 도와준 것입니다.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다 목마르고 배고프고,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다 곤란 당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예수님 도와주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고난당하는 사람이 예수를 위해서 그런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41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라고 하십니다. 바른 진리를 지키다가 고난당한다,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다 굶게 됐다,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다 목말랐다, 조금 지나면 유지할 수 없겠다, 그럴 때에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 때에 도와주는 것이 예수님을 도와준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도 바른 진리 세우다 보니 고난이 많습니다. 우리 신학교가 사리사욕 채우려고 해나가지 않습니다. 외부 강사는 월급을 주지만 내부의 강사는 월급 주지 않습니다. 무료로 가르칩니다. 학생들도 전액 장학금으로 운영합니다. 그러니 많은 운영비가 들어갑니다. 기숙사 건축비도 역시 많이 들어갔습니다. 주님의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인데, 이 일을 하다가 목마르고 갈급증이 나고 모자라지고 그렇습니다. 이럴 때에 도와주는 것이 예수님을 돕는 것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도 바른 진리 세워나가려고 힘쓰는 것인데, 여기에 가서 목마르고 헐벗고 감옥에 갇히고 매 맞는,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예수님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와줄 줄을 알아야합니다. 심판대에 가서 도와주었는지 물어보십니다. ‘너희 교회만 잘 해먹었느냐?’ 이것을 물어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끼리 연보해서 예배당 잘 짓고 잘 해먹었는지 묻지 않으십니다. 예수를 위해서 일하다가 고난을 당하는데, 그것을 도와주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예수를 위해서 믿음 지키다가 굶는데, 그것을 도와주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예수를 위해서 일하다가 목말라서 쩔쩔매는데, 그때 물 좀 주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를 위해서 일 하다가 매 맞아서 병들었는데, 네가 그것을 돌보아주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를 위해서 감옥에 갇혔는데 그것을 돌보아주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것을 돌봐준 것이 예수님 돌봐드린 것입니다. ‘도와준 사람’과 ‘도움 받은 사람’ 둘 다 예수님의 일을 한 것이고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어보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했느냐?’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세우다가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얼마나 목말랐느냐? 얼마나 매 맞았느냐? 얼마나 감옥에 갇혔느냐? 얼마나 굶주렸느냐? 그리고 그런 사람을 도와주었느냐? 주께서 물어보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들 게을러서 안하고, 하기 싫어서 안하고, 이기주의로 나가다가 안하고, 안일주의 때문에 안합니다. 얼마든지 주를 위해 나가다가 고난 받을 길이 많이 있습니다.

포도원에 보내진 종들이 매 맞을 것을 알고도 갔습니다. 보낼 때마다 갔습니다. 가면 그 종들을 때리고 치고 죽였습니다. 포도원에 가서 진리를 위해 매 맞고 죽임당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다 알아주시고 상 주실 것입니다. 그 종들을 도와준 것이 예수님을 도와준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 심판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에 반드시 심판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다 심판대 앞에 섭니다. 지금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봐주시지만 앞으로 심판대 앞에 섭니다. 디모데후서 4:1, “하
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주께서 엄격하게 심판대를 두고 명하십니다. 재림과 심판대와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은 임합니다. 이 다음에 심판에 앞에서 진리를 세워나가다가 고난당했는지 물어보십니다. 고난당하는 사람을 도와주었는지 물어보십니다.

그리스도를 돌아보지 않은 자

본문 41-45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 믿음 지키다가 고난을 받은 자,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대접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들입니다.

2.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본문 46절에,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에 왼편 염소들은 영벌에 오른편의 성도들은 영생에 들어갔습니다. 최후심판입니다. 천년왕국 다 지나갔습니다. 오른쪽에는 양들, 모든 성도들이 다 옵니다.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다 오는 것입니다. 왼편에는 염소들, 불택자들, 불신자들이 다 옵니다. 아마 굉장히 많이 섰을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살아났습니다. 공중에서 심판을 하시니 장소가 넓습니다.

예수님께서 판결을 하셨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올라갑니다. 찬송가 394장에서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천국에까지 올라갑니다. 올라가, 올라가..., 천국에까지. 올라가면 천사들이 나와 영접합니다.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겐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하십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지옥에 까지 내려갑니다. 내려가면 지옥 불이 너무나 뜨거워서 펄쩍펄쩍 뛴다고 합니다. 요즘 댄스 하는 사람들 거기 들어갈 준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번 내려가면 이젠 끝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위해 고난 받은 사람, 도와준 사람들은 상을 받습니다. 얼마나 고난을 당했는지 물으시고 상을 주십니다. 영원토록 상을 주십니다. 영원한 하늘나라, 영영한 지옥, 이렇게 최후의 심판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