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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3일 월요일

잠언 27:13-27 양 떼를 부지런히 살피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양 떼를 부지런히 살피라
잠언 27:13-27

13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 잡힐찌니라 14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 15다투는 부녀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16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17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18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19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20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21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22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3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24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5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26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27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 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1. 보증인과 아침에 큰 소리로 축복하는 자

본문 13절에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 잡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는 옷을 빼앗기고, 그 몸도 볼모 잡힐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보증을 서지 않는 것이 원리 원칙이고, 성경적입니다(잠 6:1;
20:16; 22:26). 만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보증을 서려고 하면 자기가 물어줄 각오를 하고 서야 합니다. 물어주지 못할 것 같으면 서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진실한 사람이라고 해서 보증을 서주었어도, 사업이 안될 때에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해서 보증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이웃을 축복하면, 왜 저주같이 여깁니까? 이른 아침은 하나님과 사귀는 시간이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는 시간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지 않고 그 시간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무리 축복해주어도 그것이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또 축복도 때와 장소에 맞추어야 하고,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한테 축복해주어야 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고 축복 받지 못할 사람에게 축복해주면 축복을 저주로 여기고 서로 유익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른 아침에 남을 큰 소리로 축복해주는 것은 지나치게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어떠한 유익을 보려고 지나치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2. 다투는 부녀는 떨어지는 물방울 같음

본문 15절에 “다투는 부녀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하였습니다. 비오는 날에 집에 비가 새어 방에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면 아주 괴롭습니다. 이와 같이 다투는 여자는 계속 남을 괴롭게 합니다.
그러면 결혼할 때에 어떤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다투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투는 원인은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봉사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고, 자기의 주장대로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다투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자는 온유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무엇을 좀 잘하는 여자는 싸우려 들기 쉽습니다. 명륜동에 어떤 교인 집이 있는데, 여자는 서울대학을 나오고 남자는 삼류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심방을 가면 부부 간에 늘 싸웁니다. 왜 그렇게 싸웁니까? 여자가 서울대학을 나왔다고 남자를 한 단계 낮추어 보고, 멸시하며 나가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서울대학 나온 것은 좋지만 시집가서는 남편보다 아래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하여간 싸우지 않는 여자가 되어야 하고, 또 싸우지 않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싸우지 않는 방법은

첫째는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기를 기다리며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넷째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빌 2:5-8). 자기가 희생하며 상대방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된 영광과 권세와 보좌를 내놓으시고 지극히 낮아지셔서 종살이를 하셨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서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화목할 수 있습니다. 다투지 않습니다.

또 여자들은 심경을 건드리면 싸우려고 하니까, 남편은 부인의 심경을 건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부인이 무슨 소리를 해도 가만히 둡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마주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전에 기도를 많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여자가 싸우자고 하면, 절대 심경을 건드리지 말고, 맞장구치지 말고, 가만히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러다가 그만 둡니다. 또 부인은 언제나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불만을 품으면 한정이 없습니다. 욕심은 땅덩어리보다 더 크다고 하였는데, 세상에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남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편이 잘못해주어도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며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남편이 잘해준 것보다 못한 것만 생각하며 살다가, 남편이 죽은 다음에야 남편이 잘해준 것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죽은 다음에는 전부 잘한 것만 생각이 나고, 못해준 것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살았을 때에 언제나 자족을 배우고, 대접 받으려는 생각을 그만 두고 대접할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싸웁니다. 남편이 있으면 ‘내가 대접할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하면서 남편에게 대접 받으려는 생각은 그만두고, 남편을 잘 대접하면 싸우지 않습니다. 또 남편은 부인을 잘 대접해야 합니다. 피차간에 대접해야 합니다. 그래도 싸우자고 하면 예배당으로 가서 기도하고, 그래도 싸우자고 하면 산으로 가서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습니다.

본문 16절에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싸우자고 하는 여자를 제어하는 것은 바람을 제어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바람을 제어할 수있습니까? 또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다’고 하였는데, 손으로 기름을 움킬 수 있습니까? 움키면 쪽 빠져 나갑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든지 ‘다투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3. 무화과를 지키는 자는 그 실과를 먹음

본문 17절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철은 쇠인데, 쇠로 쇠를 깎아서 빛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친구도 서로 도와주고, 견책하며, 고칠 바를 말해 주어서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얼굴이 빛이 납니다. 좋은 친구는 친구의 잘못을 말해서 고치게 해줍니다. 서로 협력하고 돕습니다.

본문 18절에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심은 대로 거두고 일한 대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 무화과나무는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잘 받들고 봉사하면 신령한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을 잘 받들면 영화를 얻습니다. 또 하나님의 귀한 종을 잘 받들고 순종하면 영화를 얻습니다.

본문 19절에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에 자기의 얼굴이 비취이면 자기의 얼굴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자기의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에 반영됩니다.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의 태도를 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악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악하게 취급할 것이고, 내가 선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선하게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잘난 맛에 살면 안 됩니다. 진짜 잘났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잘난 것을 알아줍니다. 그러나 잘나지 못했는데 스스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4. 칭찬으로 사람을 시험함

본문 20절에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음부’는 죽음을 가리키고, ‘유명(幽冥)’은 멸망을 가리킵니다. 죽음과 멸망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창세 이후로 많은 사람이 죽어서 무덤에 내려갔는데, 아직도 죽음과 멸망은 차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욕심도 만족함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 또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눈은 작은 지체이지만, 그 안에 온 세계가 다 들어가고도 모자랍니다. 이와 같이 안목의 정욕은 끝이 없습니다.

본문 21절에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칭찬해 보면 사람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 수있습니다. 칭찬과 명예를 얻었을 때에 교만한 사람은 아직도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하고 잘해줄 때에 시험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고집과 마음대로 나가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잘못된 것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런 자는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 미련이 벗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련한 자는 희망이 없습니까? 미련한 자가 지혜로워지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지혜 있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미련한 자가 지혜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가 자기 마음대로 나가면 거꾸러지며 망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 순종하고, 또 말씀대로 바로 인도해주는 인도자를 잘 순종하면 지혜로운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지혜로운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고, 말씀대로 바로 인도해주는 지도자를 순종할 때에 지혜로운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지혜로운 길을 가다 보면, 점점 더 지혜로워집니다. 오랫동안 말씀의 길을 걸어 나가면 점점 지혜가 생깁니다. 그리고 말씀이 자기의 지혜가 됩니다.

5. 양 떼를 부지런히 살피라

무슨 일을 하든지 부지런히 살피고 그 일에 마음을 두어야 함

본문 23절에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고 하였습니다. 양 떼를 부지런히 살피면 양 떼가 잘되고, 부지런히 살피지 않으면 양 떼가 잘 안됩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마음을 두고 부지런히 살피면 잘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양을 먹인다 해도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며 연구하여 양 떼의 사정을 잘 알고 하는 사람은 잘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양 떼가 잘 안 됩니다. 돼지를 잘 먹이려면 돼지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즉, 돼지의 모든 정황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돼지가 추우면 자기도 추운 줄로 알아야 하고, 돼지가 사료를 잘 안 먹으면 자기가 잘 안 먹는 것으로 생각하여 부지런히 살피는 사람이 되어야, 돼지 먹이는 것이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지런히 살피지 않으면 돼지가 물을 안 먹었는지, 병이 났는지, 추운지 모르게 되고, 그러면 잘 못 먹인다는 것입니다. 양 떼도 마찬가지입니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또 소 떼에 마음을 두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둬서 잘 돌봐야 하겠습니다.

만사가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사업을 하든지 그것을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며 연구해야 합니다. 농사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도 그 사람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면서 인도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항상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형편을 살피지 못하고 내버려두면 병이 나고 이리가 다 물어 갑니다.

주일학교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을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고 늘 힘을 쓰면 아이들을 잘 인도할 수 있습니다. 또 시험이 들면 뒤에 가서 도와주고,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갓길로 나가면 바로 인도해주며, 부지런히 살피는 반장은 잘됩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살피지 않는 사람은 그냥 주일날에 나와서 가르치는 것으로 끝입니다. 안 오면 또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그런데 그러면 차차 줄어들어서 그만 점점 쇠퇴합니다. 안 오면 왜 안 왔을까, 시험에 왜 들었을까, 왜 늦었나 하며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늘 기도하면서 부지런히 살피는 반은 점점 부흥됩니다. 또 좀 더 힘써 하고, 부지런히 심방하며 살피고, 마음을 두면서 힘을 쓰면 잘됩니다.

전도 부인들과 권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구역에 있는 모든 교인들을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형편을 살피고 마음을 두며 늘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새로 전도해서 많은 사람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지런히 살피지 않고 항상 마음을 두지 않는 전도 부인은 교인이 이사를 해도 모르고 있습니다. 몇 주가 지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매일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소 떼에 마음을 두고 가야 잘됩니다. 세상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물과 권세는 영원하지 않음

본문 24절에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성경에서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였습니다. 또 오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늙어 죽도록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자의 재물은 사막에서 날아다니는 모래의 산처럼 옮겨진다고 하였습니다.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여기 있다가 얼마 후에 저쪽으로 날아갑니다. 사막의 산은 하룻밤을 자고 나면 옮겨갑니다. 바람이 불면 저리로 옮겨갔다가 바람이 불면 저리로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재물도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대대에 내려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재물이 있는 동안에 그 재물을 바로 써야 합니다. 쓰지 않으면 조금 있다가 날아갑니다.

또 면류관도 대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세무십년(勢無十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십년 가는 세도가 없고, 열흘 가는 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모든 영광은 잠깐이면 지나가고 맙니다. 오래가는 꽃이 있습니까? 백일홍이 백날을 갑니까? 아마도 오래 가는 꽃은 먼저 핀 꽃이 지고, 그 다음에 또 피고, 또 지고 피고 해서 오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가지고 구원 운동에 힘쓰라

본문 25절에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풀을 베면 새로 나옵니다. 그리고 풀을 베어서 가져다가 양의 양식으로 쓰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잘 베어서 먹이라는 것입니다. 즉, 쓸 때에 쓰면 다시 또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다시 또 주십니다. 필요한 곳에 쓰면 하나님께서 다시 주십니다. 그런데 안 쓰고 넣어두면 새로 돋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베어줘야 새로 나오는 것입니다. 자꾸 베어줘야 새로 나옵니다. 풀을 벤 후에 쓸 것을 쓰면 새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물의 물도 퍼서 먹으면 다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는 것을 붙잡고 있으려 하면 안 됩니다. 소경이 돈 자루를 붙잡고 있듯이, 무엇이 조금 생겼을 때에 그것만 붙잡고 있으려 하면 안 됩니다. 쓰면 하나님께서 다시 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필요할 때에 쓰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써서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먹여야 할 양 떼를 먹이고, 먹여야 할 소를 먹이는 것입니다. 합당할 때에 쓰면서 구원 운동에 사용해야 합니다. ‘양 떼를 먹인다’는 말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가지고 구원 운동에 사용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 운동에 사용을 하면 또 다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풀이 다시 나오는 것처럼,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구원 운동에 사용하지 않으면 계속 안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풀을 베어다 양을 먹이는 신앙, 구원운동에 사용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26-27절에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 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양의 털이 옷이 되며 염소를 잘 기르면 그 젖으로 식물을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 목축도 잘하면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한걸음 나아가서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복음을 위해서 일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7절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라고 하였고, 9-10절에는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양 떼를 기르는 사람은 양 떼의 젖을
먹습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는 망을 씌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먹을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양을 먹이는 사람, 또 곡식을 기르는 사람은 거기서 먹을 것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은 맡기신 그 일을 잘해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입을 것을 주시며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