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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2일 화요일

학개 2:8-23 성전 건축을 잘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전 건축을 잘하라
학개 2:8-23

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0다리오 왕 이 년 구월 이십사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1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13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14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 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16그때에는 이십 석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뿐이었었느니라 17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18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 월 이십사 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19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20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1너는 유다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정결함과 부정함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라

본문 8-9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란 천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시 24:1), 성전 건축을 잘해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은과 금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은과 금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면 다 동원시켜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 호주머니의 은과 금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떡 5
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바구니가 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것’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자신의 것은 내놓지 않고 다른 곳에서 얻어다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게 있는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서 달라고 하실 때에 드리지 않아서 사용하지 못한다면 죄가 됩니다. 또 그것은 구멍 뚫린 전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불어버리십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고 하
였는데, 성전을 건축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영광도 주시고 평강도 주십니다. 성도가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지 못하면 고통과 불안이 옵니다. 그러나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면 그 속에 평강이 강같이 넘쳐 흐릅니다. 우리가 순종만 하면 성전은 하나님께서 지으십니다.

정결함과 부정함에 대한 문답

본문 10-14절에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이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에게 제사장들에게 율법에 대해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제사장들은 아니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식물이나 기름이나 국이나 떡에 닿으면 성물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싼
것은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성전은 짓지 않은 채 열심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거룩한 의식을 행한 것으로 그들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이 성경대로 대답을 잘한 것입니다. 거룩한 의식을 하나님께 드리고 의식에 참여한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상징하는 거룩한 고기에 참여하여야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다니며, 이적을 행한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해야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는 의식에 참여한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해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영이 날마다 살아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거룩해지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수박의 겉을 핥는 것이 아니라 갈라서 속을 먹어야 하듯이, 예수님의 생명의 떡을 먹어야 생명이 살아나고, 영이 배부르고, 만족하게 됩니다. 충만해지고, 생명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옷자락에 닿고만 가서는 안 됩니다.

또 두 번째 질문은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진 자가 만일 떡, 국, 포도주, 기름,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부정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제사장들은 부정해진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이것도 성경대로 대답을 잘한 것입니다.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진 자가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를 만지면 부정해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죽은 믿음은 다른 무엇을 해도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죽은 믿음은 그 자체가 죽었기 때문에 그 행하는 바 모든 것이 부정해집니다. 산 믿음이 되고, 생명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하며, 영이 살아서 새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 죽은 믿음을 가지고 전도하고, 심방을 하고, 교회 일을 한다면 다 더러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이 사는 것이 첫째입니다. 영이 살지 못한 상태에서 무엇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죽었다면 모든 것이 다 정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2. 성전 짓기 전의 일을 추억해보라

하나님께서 성전 지대를 쌓기 시작한 때부터 복을 주심

본문 15-17절에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그때에는 이십 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뿐이었었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짓기 전의 일들을 추억해보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짓기 전에는 모든 일에 폭풍, 곰팡이, 우박 등의 징계를 받았으며, 모든 일이 기대에 어긋났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영적 성전을 잘 지으라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망합니다(호 4:14).

본문 18-19절에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 월 이 십사 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지대를 쌓기 시작한 때부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짓기 전에는 흉년이 들고, 폭풍과 우박의 징계가 오고, 하늘의 이슬이 그치며, 땅에 산물이 그쳤고,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돈을 벌어 와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어 다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도 거룩한 성물이 되지 못하였고, 손으로 하는 모든 산업도 다 하나님 앞에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전 지대를 쌓기 시작한 날부터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진리와 영감으로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여 영적 생명이 자라나면, 하나님께서 그날부터 성도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면 영적면이 풍성해지고, 땅의 열매도 많이 맺힙니다.

3. 심판과 구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예정

본문 20-22절에 “그 달 이십사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지대를 놓은 날에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에게 다시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전 짓는 일을 방해하는 열방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또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세상 열국을 심판하실 때에(계 19:17-18), 세상 나라는 다 멸망하고 하나님의 교회만 영영히 남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진동되고 만국이 다 멸망 합니다. 그러나 진리와 영감으로 세워진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영영히 섭니다.

하나님의 도장

본문 23절에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은 도장입니다. 성전을 짓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취하셔서 하나님의 도장으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의 도장이 참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찍는 도장입니다. 예전에 왕들의 도장인 옥새는 왕들이 반지에 새겨서 늘 손에 하고 있었습니다. 하여간 성전 건축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인으로 삼아서 가는 곳마다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주십니다.

예레미야 15장 19절에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취하면 하나님의 입이 되는 것인데, 이것이 참 귀한 것입니다. ‘천한 것’은 인본주의, 의식주의를 의미하고, ‘귀한 것’은 신본주의, 신령과 진정, 영이 사는 일을 의미합니다. 인본주의와 의식주의, 사업주의에서 떠나 영이 사는 길로 가면 하나님의 입이 되고, 하나님의 도장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알아주시고, 붙드시며, 인도해주십니다.

학개 2:3-9 진동치 않을 것과 진동할 것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진동치 않을 것과 진동할 것
학개 2:3-9

3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4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찌어다 6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진동할 것

본문 3절에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솔
로몬 성전은 어마어마하게 크게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다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 70년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돈도 없고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에 성전을 크게 지어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진동’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만국을 다 진동시키신다고 하였는데, 반대로 진동치 않을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진동치 아니할 것을 이루어나가는 중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7-29절에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진동 한다는 것은 다 변하고 없어지며, 하나님께서 전부 옮겨놓으셔서 새롭게 만드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의 것은 전부 진동하게 되는
데, 세상도 가고 정욕도 가고 모든 영광도 가고 육체도 갑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다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사람의 영광도 얼마 가지 않아서 다 떨어집니다. 모든 육체가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지고 마릅니다. 아무리 건강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때가 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인삼과 백두산 산삼이 몸에 좋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북의 김일성이나 중국의 모택동도 백두산 산삼을 많이 먹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래 살지 못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아서 생성하고 소멸합니다. 보이는 것은 진동되고 쇠해지며 멸하는데,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2. 진동하지 않을 것

그러나 진동되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적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데, 그것은 영원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중생한 영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자신을 잘 만드는 것도 영원히 진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에 ‘순종해 드린다’고 하는 사람이 몇 있는데, 그런 말은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순종을 한다고 해야지, 우리가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에게 삽을 좀 가져오라고 하면 그저 “예”라고 하면 되지, “삽 가져 오라는 말씀을 순종해 드립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순종해드린다는 말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동치 않을 것은 중생한 영이 능력 있게 되는 것, 거룩하게 되는 것, 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우리의 마음을 이용하면 선한 마음이 되고, 또 그 마음은 우리의 육체를 이용하여 육체로 의의 병기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이용하게 되면 악한 마음이 됩니다. 성령께서 중생한 영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이용하실 때에는 선한 마음이 되고,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이용할 때에는 악한 마음이 되어 육체도 악을 행하는 불의의 병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의의 병기, 성령의 인도를 받는 마음과 몸은 진동치 않을 것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순종하며 바치는 일도 진동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순종하는 일들은 다 진동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일, 생명을 구원하는 일들은 진동치 않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한국에 선교하러 왔다가 대동강에서 상륙하지 못하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때 그 몸은 그곳에서 죽었지만 그가 순교하며 보여준 믿음
은 진동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것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삽니다. 성경에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루어나가는 사람은 영원한 것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것은 전부 진동하는 것입니다.

3. 진동치 않는 성전 건축

본문 4절에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스룹바벨’은 정치적 지도자를 가리키고 ‘여호수아’는 종교적 지도자를 가리키는데,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건 건축을 하라’고 명령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은 자신을 말씀대로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만들어나가라. 의롭게 만들어나가라. 진실하게 만들어나가라. 능력 있게 만들어나가라. 지혜있게 만들어나가라.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나가라’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 전도하는 일, 교회를 이루어나가는 일들도 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제주도 입당 예배를 하고 왔습니다. 그 교회가 오랫동안 연단을 많이 받아서 힘들었는데, 이번에 가보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당을 잘 지어놨습니다. 여러 교회에서도 힘쓰고 목사님들도 많이 일해주어서 잘되었는데, 이것도 성전 건축에 포함됩니다. 또 성경을 번역하는 일, 강해서를 번역하여 전파하는 일, 방송 선교하는 일, 순종하는 일들이 성전 건축에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시면 일어나는 것이 성전 건축이고, ‘가라’고 하시면 가는 것이 성전 건축입니다. ‘오라’고 하시면 오는 것이 성전 건축이고, ‘바치라’고 하시면 바치는 것, ‘가져 오라’고 하시면 가지고 오는 것이 성전 건축입니다. 이렇게 성전 건축은 여러 면에서 해나가는 것인데,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자라나고 지혜가 자라나고 거룩이 자라나고 사랑이 자라나고 능력이 자라나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실 때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같이 해주십니다.
우리가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생명을 바치면서 나가야 합니다. 보잘 것 없어도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나가면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만국을 진동시켜 주십니다.

4. 영적 성전 건축을 시키시는 이유

본문 5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신이 그 일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순종을 해본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깨달은 만큼 자라납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순종해보지 않은 사람은 초신자와 다름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성전 건축을 시키시는 이유는 성도로 하여금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5. 진동의 의미

본문 6-7절에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에 필요하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와 만국을 진동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진동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모든 하늘과 땅과 육지와 만국을 진동시켜 유리하게 해주신다는 뜻과 대적하는 자들을 진동시켜 심판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무리 바벨론과 같은 큰 나라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한 번 치시면 망하고 맙니다. 왕도 때에 따라서는 고레스 왕 같은 사람을 세워서 백성들을 돌아오게도 하시고, 때로는 느부갓네살 왕처럼 악한 왕을 세워서 유다 백성을 괴롭게도 하십니다. 이것들은 전부 하나님께서 진동시키시는 것입니다.

왕을 세우고 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만 믿고 나가면 됩니다. 진동시키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믿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만약 믿는 일에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만국을 진동시켜 주실 것이고, 믿는 일에 방해가 되면 하나님의 진동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며, 세력을 주기도 하시고, 빼앗기게도 하십니다.

6. 성도의 선택

하여간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잘 짓게 하시려고 세상 나라를 진동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회개하고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를 좋게 진동시켜 주실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악하게 진동시켜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제 회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도 여기에 달렸습니다. 6자 회담, 세계 정세, 한미 관계, 이북과의 관계, 국내 정세 등도 교회가 회개를 잘하면 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것들을 진동시켜서 잘되게 해주실 것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험하게 진동시켜 주실 것입니다.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먼저 바로 서서 책임을 져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한국이 세계 선교를 하는 것에 대해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공산권, 이슬람, 이라크, 터키,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등 선교하는 일을 위해 인도하실 것입니다.

7. 성전 건축을 잘해나간 결과

성전 건축을 잘해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8-9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의 모든 금과 은은 하나님의 것인데, 성전 건축을 잘하면 은도 주시고 금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은과 금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성전 건축을 하는 데에 이용해야 합니다. 성전 건축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럽고, 순종을 하면 깨끗해집니다.
이 세상은 다 없어지며 진동되고 말지만 믿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 구원 역사를 위해서 받들어나가는 일 등은 진동되지 않고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것을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학개 2:1-9 새 성전의 영광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새 성전의 영광
학개 2:1-9

1칠 월 곧 그 달 이십일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 3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4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찌어다 6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성전 건축을 시작함

성전 재건

유다 백성들이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친 후에 본국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있었던 솔로몬 성전은 그들의 범죄로 다 무너져 없어졌습니다.

본문 1절에 “칠 월 곧 그 달 이십일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학개 1장 1절에 “다리오 왕 이 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다리오 왕 이 년 유월경에 여호와의 말씀이 처음 임하였고, 칠 월 이십 일 일에 학개 선지자에게 또 임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고 하였습니다. ‘스룹바벨’은 정치적 지도자이고,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으로 종교적 지도자입니다. 본문의 여호수아는 모세 때의 여호수아가 아니라, 포로 생활 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직분을 맡은 여호수아를 가리킵니다. 모세 때 있었던 여호수아는 주전 1,400여 년경의 사람이고, 본문의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주전 500
여 년경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와 포로 생활 후 남은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 예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하면 스룹바벨 성전은 크기도 작고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요한 나라였고,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 당시에 금과 은이 많아서 그것들을 뽕나무같이 흔하게 썼다고 하였습니다. 또 세계 열방에서 많은 은과 금을 가져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은 풍부한 은과 금, 그리고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크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포로 생활을 끝마치고 돌아오니, 돈도 없고 마땅한 재료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은 지금의 성전이 너무 보잘 것이 없어서 성전을 지을 때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에스라 3장 12-13절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70년 전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그 영광을 보았던 여러 노인들은 작은 스룹바벨 성전을 보고 통곡했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전에 있던 성전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없던 것을 지었으므로 대단히 기뻐하여 즐거이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교회를 하나 짓게 되었을 때, 볼품이 없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작은 성전이라고 해서 통곡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아도 하나님께서 크게 만들어주십니다.

새 성전의 영광

본문 9절에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작지만 이 성전의 영광이 예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크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작은 성전으로 건축되지만 조금 있으면 점점 더 커져서 이전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의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처음에 작게 시작되어도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큰 성전이 되고, 큰 영광이 됩니다. 겨자씨가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점점 커져서 나무가 됩니다. 나무가 되어서 새가 깃든다고 하였습니다. 작다고 멸시할 것이 아닙니다.

스가랴 4장 10절에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고 하였는데, 개척교회도 시작은 작지만 점점 커집니다. 부도덕한 일이 나타나지 않고, 말씀에 바로 서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를 받으면 점점 커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개척 교회를 섬기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교역자 스스로가 바로 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대로 행하며, 교인들을 멸시한다면 개척 교회는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개척 교회를 세워가려면 첫째는 영권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영권이 있고 능력이 있는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사람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바로 되지 못하면 처음에는 교인들이 몇 명 나오더라도 곧 다 달아납니다. 인간성이 못되고 욕심을 부리고 자기를 위한다면, 교인들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욕심이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이 나타나고, 이기주의가 가득하며, 자기를 위해서만 살고, 돈을 많이 얻으려 하면 교인들이 시험에 들어 다 떨어지게 됩니다.

어떤 시골 교회에서 추수감사절 때 쌀을 가져 오지 말고 벼로 가져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담임 교역자가 섬유질이 풍부한 현미로 밥을 해서 먹고 싶은데, 쌀로 가져 오면 그렇게 못 먹으니까 그렇게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옳은 행동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목사님이 먹는 것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어떤 것이나 하나님께 감사로 드려야 하는데, 자기가 먹으려고 현미를 가져 오라고 하였으니, 교회가 안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희생적이고, 또 특별한 욕심과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겠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에 큰 흠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어느 교역자가 어떤 교회를 맡게 되었는데, 부임해보
니 교회 건물이 낡아서 비 새는 것이 일수였습니다. 비가 오면 으레 그릇을 놓아서 빗물을 받으며 몇 년을 버텼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전임 교역자가 그 교회를 사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후임 교역자는 부임하자마자 비가 새는 지붕부터 고쳤습니다. 또 교인들을 돌아보며 열심히 심방을 했다고 합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교인들도 힘을 내게 되었고, 교회도 힘이 있게 되었습니다. 두 교역자의 예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비가 새면 그릇만 갖다놓고, 풀 하나 뽑지 않고, 대접 받기만을 염두에 둔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고, 또 힘을 내어 교회 생활을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가 일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기도원에 교역자들이 모일 때나 일반 집회 때에 봉사를 한 시간씩 하는데, 그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일을 배운 사람이 일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야 스스로 자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그래야 예배당 지붕이 샐 때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믿음이 좋았다가 타락이 되어서 다시 회복할 때에 갑자기 커질 수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자라나게 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셨는데, 그것을 잘 건사하지 못하여 다 잃어버린 후, 회복 하려면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시작할 때에 작다고 해서 멸시하면 안 됩니다. 작은 것이 점점 자라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학개 1:1-15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함
학개 1:1-15

1다리오 왕 이 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4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5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 6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 8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10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12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14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15때는 다리오 왕 이 년 유월 이십사 일이었더라

1. 성전 건축할 것을 권면함

먼저 중생한 영이 사는 영적 성전을 건축해야 함

본문 1절에 “다리오 왕 이 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
사대”라고 하였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유다백성이 성전 건축을 중단한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건축을 계속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학개는 스가랴, 에스라와 동 시대 선지자로, 스가랴보다 두 달 먼저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유다 나라로 돌아와 다시 성전 건축을 하려고 하는 시대의 일입니다.

솔로몬 시대의 성전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주전 606년에 훼파하고 불살라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고, 주전 4세기경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의 성전을 다시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에 환난과 핍박이 많아서 성전 짓는 일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짓는 일을 중단하고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을 지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백성은 아직 성전 지을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여러 해 동안 성전을 짓지 않고 지연시켰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가 왜 성전을 짓지 않느냐? 너희가 성전 지을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 전이 황무했는데, 너희는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라고 경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 즉 하나님의 일하는 것을 장차 해야겠다고 하며 미루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전 짓는 일은 영적 성전 건축을 가리키는데, 우리의 중생한 영이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이 새 생명을 얻어서 점점 자라나고, 새 힘을 얻어나가고, 창성해나가고, 소생해 올라가며, 영의 역사가 날마다 이루어져나가는 일을 가리켜서 영적 성전을 짓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역사가 없는 것은 성전건축을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영의 일, 중생한 영이 자라나고, 새 힘을 얻어 달음박질하고, 소생해 올라가고, 점점 능력 있게 되는 것은 성전을 잘 짓는 일입니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이 영적인 일은 하지 않고 판벽한 집에 거하는 일, 즉 육신의 집만 꾸미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 생활을 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보다 자기를 위하는 일, 곧 육신의 향락주의, 사치와 방탕, 안일주의, 이기주의, 세상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거기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 일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믿는 일에 힘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안 되었다. 믿는 일은 장차 잘할 것이고, 현재는 내 일부
터 먼저 해야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 자기 집 짓는 일, 세상 일, 우상 섬기는 일들을 하나님의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우상입니다.

성도는 늘 자기 소위를 살펴야 함

우리의 영이 사는 일이 첫째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세계를 좀 더 찾아 깊이 들어가서 영이 사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등한이 하고, 육신의 일만 첫째로 하며 자기 집 짓는 것에만 급급하였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하는데 마음과 힘을 다 기울이는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책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 5절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 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것은 군대의 여호와라는 것인데, 악한 자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내 집은 황무했는데, 너희가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소위를 한 번 살펴 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6-7절에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소위를 살펴보라’는 말씀이 본문인 1장에 두 번 나와 있습니다. 5절과 7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의 소위를 살펴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소위를 살펴보라고 하셨으니, 내 소위가 어떠한가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이 첫째인가, 자기 집을 짓는 것이 첫째인가?를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믿는 일하는 것이 첫째인가, 자기를 위해서 세상 일하는 것이 첫째인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집 준비하는 것이 첫째인가, 믿는 일하는 것이 첫째인가?’도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한 가지 또 살펴보아야 할 것은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라고 하였는데, 수입이 적지 않았는가를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또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라고 하였는데, 많이 먹었지만 배부르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라고 하였는데, 내가 많이 마심으로 흡족하였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을 입었지만 따뜻한지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하였는데, 전대에 구멍이 안 뚫렸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너희 소위를 한 번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뿌리기는 많이 뿌렸는데, 곧 일을 많이 벌여놓고 자본 투자를 많이 했는데 수입이 적었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일, 믿는 일은 하지 않고 세상 일에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일을 많이 벌려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일이 안 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수익이 적게 하십니다. 그리고 많이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를 복중에 채우고 충족해보려고 하지만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마셔보고 저것도 마셔보지만 결국 흡족하지 못합니다. 많이 먹고 마셨다는 것은 자기 소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워보려고 여러 가지를 해보았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를 차지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보는 등, 여러 가지를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만족도 없고, 배도 부르지 못하고, 흡족하지도 않고, 위안도 없고, 행복도 없으며, 즐거움도 없었습니다. 눈은 보는데 족함이 없고, 귀는 듣는데 만족함이 없고, 육신은 모든 것을 다 차지하였는데 거기에 만족이 없습니다. 영적 일이 잘되어야 만족함이 있습니다. 영이 자라나서 영적 성전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리스도를 모셔야 만족함이 있습니다. 거기가 낙원입니다. 그러나 영적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모시지 못할 때에는 아무 만족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위안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무엇을 하나 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해보면 그것도 별 것이 아닙니다. 또 무엇을 좀 만들어서 먹어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것도 별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좀 구경해보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구경을 해보지만 그것도 별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별 만족이 없습니다. 위안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얼마 전에 일본과 축구를 해서 이겼는데, 오늘 오후에 경기를 하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한국이 이겼다고 만족해서 손뼉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손뼉을 치면 뭐합니까? 그렇다고 큰 행복이 옵니까? 위로가 옵니까? 속이 시원합니까? 잠시 기분이 좀 좋을지 모르지만, 무슨 만족이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다 해봐도 거기에 즐거움이 없습니다. 세상 것으로는 심령에 만족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목이 마를 때에 소금을 먹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소금물을 마시면 계속 목이 마릅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한 것입니다. 별 것을 다 가져다 입어 봐도 따뜻함이 없습니다. 곧 세상 권
세의 옷을 입어도, 명예 영광의 옷을 입어도 따뜻한 것이 없습니다.
석, 박사의 지위를 받고, 노벨상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행복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입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고관직을 차지했다고 할지라도 직분에 무슨 만족함이 있겠습니까? 밤낮으로 직분을 행사하려면 골치 아픈 일만 많을 뿐이고, 거기에 만족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하였는데, 아무리 많이 벌어도 구멍 뚫린 전대에 넣은 것과 같습니다. 별의 별 일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 돈이 항상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멍을 뚫어놓으시면 결국은 다 새나가서 마침내는 아무것도 없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구멍이 뚫어진다는 것은 부도 수표가 나는 것, 병원에 돈이 나가는 것, 사기를 당하는 것, 사업이 잘 안 되는 것, 자녀들이 돈을 없애는 것, 돈을 잘리는 것(떼이는 것) 등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구멍 뚫어진 전대입니다. 아무리 전대에다 많이 벌어서 넣었어도 구멍이 뚫어져 있으면, 생각지도 않은 데에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씩이 들어
갑니다.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생겨서 몇 억 원이 뚝 떨어져나가니 안 무너질 수가 없습니다. 사업이 잘되던 사람도 구멍이 두 번만 뚫어지면 부도가 나서 망하게 됩니다. 한 번 구멍이 뚫어지면 수억씩 빠져나갑니다. 5억씩 두 번만 빠져나가면 10억이 빠져나가는데, 웬만한 중소기업은 두 번만 빠져나가면 하루아침에 다 망합니다. 어디가 뚫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소위를 한 번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심령의 만족함이 없고, 속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솟아 올라오는 것이 없다면, 세상의 별 것을 다 해도 그것은 아무 만족이 없고 충족도 없습니다. 믿는 일을 잘못하면서 아무리 세상 것을 많이 거두어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놓아도 구멍이 뚫어지면 다 나갑니다. 하루아침에 다 나갑니다. 가슴을 발로 차며 나갑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를 한 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소위를 늘 살펴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성전 건축이 중단된 때의 생활 상태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한재가 내려 모두 마르게 됨

본문 9-11절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집, 성전은 황무했는데, 너희들은 각각 자기 집에 빨랐다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라고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에는 산물이 그쳤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곡식과 밭에 한재가 임해 가물어서 바짝 말라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고갈되고, 모든 일을 하는데 모자라게 됩니다. 말라 들어갑니다.

믿는 일을 잘할 때는 이와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윤택하고 충족하게 해주십니다. 넘쳐나게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믿는 일을 못하면 전부 다 말라갑니다. 영적인 면만 메마른 것이 아니고 육신도 마르고, 물질도 마르고, 사업도 말라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소위를 한 번 살펴볼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한 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자기 소위를 살펴보고 회개하며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지금부터 시작해야 함

그러면 이제 어떻게 돌이켜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자기 집보다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을 더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집 짓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짓는 것입니다. 자기 집보다 하나님의 것, 곧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냐, 하나님의 것이 먼저냐?’라고 할 때에 하나님의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몸을 죽여 피 흘려주시고 희생해주셨는데, 우리도 우리 몸보다 예수님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주셨으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집을 짓는 것보다 성전 짓는 일을 먼저하고,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믿는 일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잘 믿어야 되겠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 지을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지 말고, 오늘 잘 믿어야 합니다. 오늘 믿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힘써 믿겠다고 하면서 오늘 힘쓰지 않는 믿음 생활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오늘 믿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늘 힘을 써야 합니다. 세상 일하는 것에만 마음을 써서 힘을 기울이지 말고, 먼저 믿는 일하는 데 마음을 두고 몸을 바치고 힘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에 하겠다고 하고, 자기 일만 하면 합당치 않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이 시간부터 믿는 일을 하고자, 일어서고자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작정을 하고 일어서며,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 짓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고, 그 일을 먼저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적 성전을 먼저 건축하기 위해서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지금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지금 해야 합니다. 오늘 해야 합니다. 이 시간부터 해야 합니다. 이 다음으로 연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에 할 것은 오늘에 하고, 이 시간부터 믿는 일을 하고, 이 시간부터 힘을 쓰고 일어서야 합니다. 이 시간에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바로 이 시간부터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전도서 11장 4절에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저것 사정을 보다가 사정이 좋아진 다음에 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바람이 불든지, 비가 오든지 안 오든지 오늘 뿌려야 할 씨는 오늘 뿌려야 합니다. 오늘 해야 할 주의 일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연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할 것은 오늘 하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오늘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믿는 일할 것은 오늘 해야지, 이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기도하고, 오늘부터 성경말씀에 순종하고, 오늘부터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일어서야 합니다. 결심을 해야 합니다. 말세가 되었는데, 이 다음에 잘 믿겠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쉽게 믿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오늘부터 달라붙어서 믿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오후 예배도 빠지지 말고 오늘부터 참여하고, 새벽 기도도 오늘부터 참여하고, 수요 예배도 오늘부터 참여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여야 함

본문 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산에 올라가는 생활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산 아래에서만 살지 말고, 시온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와 성전 짓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는 생활이라는 것은 신령한 시온 산, 영적 세계로 올라가라는 뜻입니다. 좀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는 것,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세계로 올라가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올라가는 생활을 하려면 세상 것을 다 떼 내버려야 합니다. 자기 집 짓던 것을 내버리고, 자기 중심으로 살던 것을 내버리고, 자기 욕심대로 살던 것을 내버리고, 세상에 얽매었던 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올라가자!’하고 올라가야 합니다.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 기도의 동산으로,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좀 더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올라가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사모하고, 이 세상 것을 먼저 다 떼버리며,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까이 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단 교역자들이 용인에 있는 산에 기도하러 갔었는데, 약 육십 명이 갔습니다. 호남과 영남 지방 교역자는 멀어서 못 왔습니다. 각자 개인 천막을 치고 고요한 가운데 시온 산에 올라가는 생활을 하려고 힘을 썼습니다. 만나서 첫째 이야기하지 말고, 개인 천막에 엎드려서 하나님만 사모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라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들이 기도하고 내려오면서 이번처럼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참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생활, 기도하는 생활, 좀 더 힘을 기울여서 믿는 일을 하는 생활, 좀 더 위엣 것을 사모하는 생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생활, 전적으로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생활이 산에 올라가는 생활입니다. 언제나 새벽 미명에 일어나서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심령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올라가고,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시온산에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교통하는 생활, 산에 올라가는 생활을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내려가는 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는 기도 생활을 했는데, 요즘에는 세상과 점점 가까워짐으로 내려가는 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세상 생활을 끊어버리고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시온 산을 향해서 올라가는 생활을 하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올라가서 무엇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까? 나무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나무는 성전을 짓는 재료입니다. 옛날에는 성전을 나무로 지었습니다. 신령한 성전을 짓는 재료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령한 영적 세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와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던 말씀을 깨닫고, 알지 못하던 말씀을 배우며, 좀 더 깊은 진리의 세계를 깨닫고 그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자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영이 말씀 속에 들어가고, 그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 되고, 그 말씀 안에서 살고, 그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영적 성전을 짓는 생활입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있고 자기는 자기대로 있으면 안됩니다. 또 늘 알고 있는 말씀만 가지고 가면 안 됩니다. 좀 더 깊은 세계에 들어가서 좀 더 진리의 말씀을 받아 깨닫지 못하던 길, 알지 못하던 세계, 신령한 세계의 것을 받아 양식으로 삼아나가야 합니다. 말씀대로 만들어져서 자기의 실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짓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다음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3.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함

하나님의 말씀과 종의 말에 순종하라

본문 12절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해서 영적 성전을 지으려고 힘을 쓰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힘을 쓰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일하던 것을 중지하고 자기 일만 하던 과거 생활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생활로 바꿔야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자기 집 짓는 것에만 열심을 내고 쓰고 저축하였는데, 이제는 자기 집 짓는 것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자기 집을 지어야 합니다. 바꾸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자기를 위해서만 모든 것을 사용했는데, 이제는 믿는 일에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주를 위해서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십니다.

성전을 건축하면 하나님께서 만사에 형통하게 해주심

본문 13절에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성전을 지으려고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마음을 흥분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4-15절에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때는 다리오 왕 이 년 유월 이십 사 일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명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적성전을 지으려고 일어서는 사람에게 성령이 감동을 주셔서 마음을 흥분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일으켜 세워놓았습니다.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믿는 일을 하려고 일어서려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도 일어서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복을 못 받습니다. 일어설 때에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의 일이 그대로 이루어져나가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성전을 짓기 시작할 때에 소위를 한 번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을 짓기 시작하면 이전과는 반대로 구멍 뚫어진 전대는 하나님께서 막아주시고, 가뭄이 든 곳에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십니다. 마른 곳은 윤택하게 만들어주십니다. 배부르지 못했던 것은 영적으로 배부르게 만들어주시고, 만족하고 충만하며 자족하게 만들어주십니다. 또 따뜻하게 해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전 짓는 자에게 제일 귀한 것을 주시고, 가장 행복스러운 것을 주시고, 하늘의 위로와 평강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심령이 점점 살아나서 올라가게 만들어주시고, 또 다른 것들도 붙들어주십니다. 원수도 막아주시고, 구멍 뚫어진 것도 막아주시고, 이슬을 흡족하게 내려주셔서 모든 면에 윤택하고 형통하도록 앞길을 열어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또 믿는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다른 것도 다 해주십니다. 믿는 일을 하지 않고 세상 일만 하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시고, 가물게 만드시고, 구멍이 뚫어지게 만드셨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다놓아도 하나님께서 배부르지 않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믿는 일을 할 때에는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소위를 한 번 살펴보면서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요새 가물고 메마른 상태가 아닌가? 배부르지 못하고 흡족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전대에 구멍이 뚫어지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지 않으셨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다놓아도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소위를 잘 살펴봅시다. ‘요새 성전 건축을 잘하고 있는가? 믿는 일을 잘하는가? 영이 자라나서 소생해 올라가고 있는 중인가, 아닌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영이 소생해서 올라가지 못하면 성전 건축을 제대로 못한 것입니다. 자기 일에만 급급해서 자기 중심으로 과거에 머물고, 자기가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불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서 내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시온 산에 올라가는 생활, 나무를 가져다 신령한 세계의 말씀을 받아서 깨닫고 자기 생명으로 삼는 일을 첫째로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첫째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을 하고, 자기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잘해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