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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시편 27:1-14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 바라고 나가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 바라고 나가라
시편 27:1-14

1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2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넘어졌도다 3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4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5여호와께서 환난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6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10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12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14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1. 여호와를 믿고 두려워하지 않음

본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구원이 되시고 빛이 되시고 생명의 능력이 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적과 원수가 내 살을 먹으려고 왔다가 여호와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실족해서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군대가 일어나서 대적하여 진을 칠지라도 내 마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믿음입니다.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전쟁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안연히 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고 생명이시고 능력이시고 빛이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2. 한 가지 중요한 기도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함

본문 4절에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을 위해서 늘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한 가지만 구하라고 하면 뭘 구할 것 같습니까? 장난감, 돈, 의복 등을 두고 잘 생각해본 다음 제일 요긴한 것을 구할 것 같습니다. 다윗도 한 가지 청했던 요긴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였는데, 그것은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두 살 났을 때에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다윗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을 늘 소원하며 청하였습니다. 지금도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찬송가에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시내산 가시덤불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내가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구경 가운데 제일 좋은 구경은 무슨 구경입니까? 하나님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구경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 좋다, 어디가 좋다”고 해서 가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랜드캐넌이 좋다고 해도 그저 땅이 20~30m 쑥 들어간 것 밖에는 별 것 없습니다. 또 금강산은 못 가봤지만 가봐도 설악산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설악산을 남자라고 하면 금강산은 여자에 비유하는데, 남자를 봤으면 여자도 알 수 있습니다. 또 제주도가 좋다고 하는데, 바다도 있고 한라산도 있고 만장굴도 있다 해도 별 볼 것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외도에는 못 가봤지만, 그 역시 가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떤 분이 중국에 구경할 것이 많다고 가 본다고 하여, 내가 가봐야 볼 것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양, 하얼빈, 상해도 차를 타고 몇 시간 씩 가도 산은 하나 없이 허허벌판이고 집들이 몇 채 있는 것뿐입니다. 만리장성이 좋다고 해도 그저 돌 갖다가 성을 쌓아 놓은 것입니다. 또 일본 니꼬를 보기 전에는 게꼬가 좋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여, 나는 니꼬가 굉장한 줄 알고 가보았는데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공연히 동경에서 두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고생만 잔뜩 하였고 설악산 만도 못하다 생각되었습니다. 또 부소산이 좋다고 하여 꼭대기까지는 다 못 올라가고 거의 다 올라갔는데, 나무도 없고 민둥산이었습니다. 하와이도 좋다고 하지만, 해운대 해수욕장과 비슷할 것입니다. 세상에 뭐가 좋다고 해도 좋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유럽은 안 가봤지만 파리가 좋다, 로마가 좋다, 별 소릴 다 해도 어디가나 마찬가지로, 가보면 그저 잔잔한 집들이 있고 다운타운이라는 중심가에 그저 높은 집 몇 개가 있는 것입니다. 뉴욕에 엠파이어스테이트 103층 건물이 좋다고 올라가 봐도 우리 63빌딩에 올라간 것과 별 차이 없습니다. 시내가 다 보이는 것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여간 세상에는 좋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백마강 낙화암이라 해도, 또 논산에 미륵불이 좋다고 해도, 큰 바위 두드려서 사람 형상을 만들어놓은 것뿐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이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닌 줄 알면 됩니다. 거기에도 그저 탄식, 한숨, 근심, 걱정이 가득 찼습니다. 뭐가 좋겠습니까?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 구경입니다. 또 여호와의 집에 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어느 나라가 좋다고 해서 가보면 다 비슷합니다. 일 하느라 손에 굳은살이 박혀 있고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매일 일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빵 하나에 우유 한 컵씩 먹고 나가서 하루 종일 일 하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하루가 대개 다 비슷합니다. 그것이 뭐가 좋습니까? 그러니까 좋은 것이 세상에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베드로가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한 것처럼, 예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가 제일 좋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한 가지 소원을 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하나님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생전에 한 가지 구하는 것으로, 여호와의 집에 거하고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 사모하는 것을 구했습니다. 생전에 구하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전에 무엇을 구합니까?아이 낳는 것, 손자 보는 것, 돈 많이 버는 썩어지는 세상 일을 구합니다. 그러나 생전에 구할 것은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여호와의 집에서 하나님 사모하는 것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알고, 그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도와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부모가 나를 도와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부모가 안 도와준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안 도와주셔도 좋다고 해야 합니다. ‘부모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는가? 시집갈 때 장롱 해줬는가, 의복을 해줬는가, 자동차를 사줬는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낳아서 밥 먹여 길러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원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안 도와줘도 좋다, 이제는 내가 도와드려야겠다. 부모가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남편은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자녀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라고 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의 전에 거하며 여호와를 앙망하고 그 전에서 사모하는 생활을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산 자의 땅에서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고 바라보며, 계속 힘써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라면서 나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3. 환난 날에 지켜주심

본문 5절에 “여호와께서 환난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환난 날에 다 망해서 멸망할 뻔 했는데, 하나님께서 초막 속에서 비밀히 지켜주셔서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인 은밀한 곳에 나를 숨겨주심으로 악한 자들이 찾지 못한 것입니다.

6 25 사변 때에 하나님께서 각자의 나를 초막 속에 은밀히 숨겨주셔서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지켜주셨으면 다 발각되어 벌써 죽었을 뻔 했는데, 하나님께서 장막에, 초막 속에, 산에, 또는 짚더미 속에 숨겨주셔서 발각되지 않게 해주셨
습니다. 6 25 사변 때 국군이 들어온 다음 또 인민군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그때 숨어있다 나온 사람들을 다 잡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10월 22일인데 벼를 다 베서 볏단들을 쌓아놓은 때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볏단을 초막처럼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숨었었는데, 그것이 진짜 초막보다는 못하였지만 인민군대와 패잔병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속에 숨겨놓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환난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숨길 때는 숨겨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바위 위에 들어 “나의 사랑하는 자가 여기 있다”하고 높이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6절에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 위에 나를 높이 들어 원수들로 하여금 우러러 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4. 말씀을 순종하며 도움을 구함

본문 7절에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반드시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본문 8절에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찾으라고 하시면 ‘예, 내가 주의 얼굴을 찾겠습니다’하고 결심하며 달려 붙어서 힘을 써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나를 버리지 마시고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해주실 줄을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5. 사람이 버릴 때에 여호와는 영접해주심

사람에게 버림을 받아도 여호와께서 영접해주시면 참된 위로와 평강, 만족이 있음

본문 10절에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어린아이들만 있는 집에 가서 이 성경말씀을 가르쳐주면 됩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가 세상을 떠나 상당히 슬퍼하며 낙망하고 있을 것인데, 그때에 ‘부모는 나를 버리고 떠났지만 여호와는 나를 영접해주시므로 여호와 한 분으로 만족한다. 부모보다 여호와가 낫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또 ‘남편은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아들은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며느리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동생들은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직장에서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친구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자신을 버렸다고 억울해서 고춧가루 먹은 사람처럼 열받지 말고, ‘친구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배신당했다고 불평하고, 낙망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여호와가 친구만 못하겠습니까? 또 남편만 못하겠습니까? 아내만 못하겠습니까? 여호와가 형제만 못하겠습니까? 자녀만 못하겠습니까? 자녀가 버릴 때에는 ‘자녀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하면 됩니다. 

자녀보다 여호와가 더 낫습니다. 성경에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고자는 결혼 불가능한 사람, 결혼할 수 없는 불구자인데, 그래도 자신을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언약을 지키면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결혼도 못하고 자녀도 없지만, 여호와를 영접하면 자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버림당하는 것이 그다지 슬퍼할 것도, 또 낙망할 것도 못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영접해주시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여호와께서 영접을 안 해주시면 슬퍼할 바이지만, 다른 사람이 다 버렸어도 여호와께서 나를 영접하시기 때문에 참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보다 나은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언제나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접해 주셨으니 이제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로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위증자와 악을 행하는 자, 즉 거짓말로 증거하는 자와 악을 행하는 자의 손에서 내 생명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산 자의 땅에서, 끝까지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라라

본문 13절에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산 자의 땅’은 생명 있는 세계인데, 그 생명의 세계에 있으니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산 자의 땅에 사는 것이 중요하고, 생명 있는 세계에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습니다’라고 한 다음에는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안 되도 조금 있다 해주실 줄을 알고,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라봐야 합니다. 또 기다렸는데 안되도 조금 더 있다가 해주실 줄 알고,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라봐야 합니다. 또 그때 안 되도 그 다음에 좀 더 있다가 해주실 줄 알고,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라봐야 합니다. 얼마가 걸려도 하여간 여호와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라봐야 합니다.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 된다. 아무리 바라봐도 안 된다. 그만 두자. 산 자의 땅에서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고 있다가는 잘 안된다’고 하거나, ‘몇 십 년을 기다려도 안 됐는데, 이제 뭘 되겠느냐? 그만 두자. 이제 희망이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산 자의 땅에 거하는 자에게 은혜 베풀어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믿고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까?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강하고 담대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언제까지 바라봅니까? 은혜 베풀어주실 그때까지 바라보는 것입니다. 1년에 안 되면 10년, 10년에 안 되면 20년, 그냥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바라보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하나님께서 70년 있다가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셨습니까? 50년에 안 되면 60년, 60년에 안 되면 7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400년의 시간을 보내게 하신 뒤에 구원해주셨습니다. 바라보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바라봐야 합니다. 

무슨 땅에 거하면서 바라봐야 합니까? 산 자의 땅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죽은 자의 땅에 거하는 사람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산 자의 땅, 생명 있는 산에서 신앙을 가지고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바라봐야 합니다. 바라보다가 잘 안 돼도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바라고 계속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실 날이 옵니다.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권고해주시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당장 잘 안 된다고 할지라도, 산 자의 땅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여 끝까지 여호와를 바라보면서 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반드시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해주시는 분이심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버림당했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영접해 주시니, 여호와께서 더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