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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9일 월요일

예레미야애가 5:1-22 시온이 황무하여 여우가 놀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시온이 황무하여 여우가 놀음
예레미야애가 5:1-22

1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2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 3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 4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 5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8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9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11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12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소년들이 맷돌을 지오며 아이들이 섶을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15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 16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17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 18시온 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19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20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버리시나이까 21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

1. 폐망한 유다의 슬픈 정형(情形)과 회개

폐망한 유다의 슬픈 정형

본문 1-2절에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죄를 자주 책망하셨지만 유다 백성이 회개치 않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멍에를 메라고 하셨는데, 시드기야 왕은 그 멍에를 메지 않고 바벨론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고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에게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하시고 성전을 불사르시며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때에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망하여 비참한 것을 보고 지었습니다.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라고 하였는데, ‘기업’은 유다의 모든 땅과 사업체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 외인에게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기업이 외인에게 돌아갔고, 둘째는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예전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땅과 집을 점령하고 빼앗은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본문 3절에 “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리에 있어서 도와줄 사람이 없고 의지할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라고 하였는데, 나라와 민족이 과부와 같이 도와줄 자도 의지할 곳도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라고 하였는데, 다섯째는 마음대로 물을 마실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은을 주어야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는 값을 주고 섶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산에서나 들에서 섶을 가져다가 불을 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원수의 수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값을 주어야만 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일곱째는 쫒는 자가 목을 눌러 압제를 당하게 된 것이고, 여덟째는 곤비하여 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의 죄를 회개하였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애굽과 앗수르와 더불어 연합했던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애굽과 앗수르가 도와줄 줄 알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헛된 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아홉째는 과거에 종 살이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을 관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8·15 해방 후에 공산당 정치가 수립되었을 때에 부자들은 숙청이 되고 부잣집에서 종 살이하던 사람들이 그 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종 살이하던 사람들이 주인이 되고 부자는 숙청을 당해 주인과 종이 바뀌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그때와 비슷한 형편입니다.

폐망한 유다의 슬픈 정형이 아홉 가지입니다. 첫째가 기업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고, 둘째는 집이 외인에게로 돌아갔고, 셋째는 아비가 없는 자식과 같이 되었고, 넷째는 나라와 민족이 과부와 같이 되었고, 다섯째는 은을 주고 물을 마시고, 여섯째는 값을 주고 섶을 얻고, 일곱째는 쫓아오는 자가 목을 눌렀고, 여덟째는 곤비하여 쉴 수가 없고, 아홉째는 종들이 우리를 관할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악과 열조의 범죄를 담당한 후대

본문 7절에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국가나 사회가 어른들의 지은 죄로 망하면 죄가 없는 자녀들까지 같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를 하지 않았으면 그 성 사람들의 죄 때문에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12만 명이 함께 망할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어른들의 죄 때문에 아이들까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와 반대가 되는 원리인데, 의인 한 사람이나 열 사람이 도시 하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경우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예레미야 5장 1절에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 한 사람을 찾으면 예루살렘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몇 사람만 있어도 그 도시가 멸망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른들이 지은 죄 때문에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아이들까지 망할 수가 있고, 의인 몇 사람 때문에 그 도시 전체가 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자기만 사는 것이 아니고 그 도시 사람과 그 나라 사람을 다 건져낼 수있습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는 자기의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레미야 16장 11-13절에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조상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도 있지만 자기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조상 죄에 자기의 죄가 더해져서 망했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도 아들의 이가 시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죄로 벌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 18장 2절에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망하지 않는 것은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음으로 아들의 이가 시지 않다고 했는데, 보통은 자기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하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

2. 적의 수중에 빠진 비참한 상태와 그에 대한 호소

본문 9절에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광야에 칼이 난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 당시에는 치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불량한 도적들과 유목민들과 강도들이 사람들을 많이 죽이며 물질을 빼앗아 갔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내놓고 나가야만 겨우 농사도 짓고 양도 칠 수 있었습니다.

본문 10절에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주려서 피부가 검은 아궁이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새도 말세가 되어 칼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방에 테러가 일어나고 강도들이 들끓는데 미국 같은 경우는 총기가 허용되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밤에 걸어 다니다가 누가 언제와서 죽일지 모르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 다니지도 못합니다.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은 괜찮지만 걸어 다니다가 깡패들을 만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광야에 칼이 난무하는 때가 이렇게 비참한 시대인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이 미국보다 특별히 좋은 것 하나
는 밤에 나가서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밤에 아무 곳이나 다녀도 누가 와서 죽이지 않습니다. 미국 같으면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와야지, 밤에 혼자 다니다가는 봉변을 당합니다. 또 밤에 다니려면 언제나 20불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권총을 들이대면 얼굴은 보지 말고 얼른 20불을 주고 달아나야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만큼 사나워진 말세가 되었습니다. 한국도 요즘 깡패들이 점점 많아져서 사고를 내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사장을 찔러 죽인 사건이 어
제 신문에 나왔는데, 이 모든 것이 죄 값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본문 11절에 “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녀들과 처녀들을 끌어다가 욕을 보인 것입니다. 전쟁 때에는 군인들이 여자들을 끌어다가 강간을 하고 욕을 보이는 비참한 일이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방백들을 죽여서 손을 나무에 매달아놓은 것입니다. 또 장로들은 나라의 지도자들인데, 지도자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패전(敗戰)을 하였기 때문에 원수의 수하에 들어가서 존경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문 13절에 “소년들이 맷돌을 지오며 아이들이 섶을 지다가 엎드러지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까지 나와서 강제 노동을 해야 할 지경이 되어 소년들은 맷돌을 지고 아이들은 섶을 지다가 엎드러졌습니다.

본문 14절에 “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노인은 성문에 앉아서 평안하게 지내야 하는데 자손들이 망하니까 성문에 앉아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또 소년들 역시 강제 노동에 끌려가서 돌을 지어 나르고 섶을 지어 나르느라 노래할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래하는 때가 좋을 때인데,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바로 하지 못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본문 15절에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희락이 그친 것은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망했는데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아이들을 잡아 죽이고 여자들은 끌려가서 욕을 당하며 얼굴은 굶어서 아궁이처럼 검어졌기 때문에 마음의 기쁨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무도(舞蹈)’라는 것은 춤을 추는 것인데, 과거에는 춤을 추며 기뻐 뛰놀았었는데 이제는 애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 값입니다.

본문 16절에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광스럽던 예루살렘이 망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훼파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세계 열방에 뛰어난 백성이었지만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면류관이 땅에 떨어진 것과 같이 영광이 하나도 없게 된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라고 하였는데, 마음이 피곤해지고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특별히 예레미야의 마음이 피곤한 것 같습니다. 또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겠습니까? 예레미야애가 3장 48-49절에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라고 하였습니다.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여 심령이 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의사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걱정을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밤낮으로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린 예레미야의 혈압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염려나 근심은 하지 말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예레미야는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었고, 또 밤낮으로 애통하며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오래 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레미야가 40년 혹은 60년간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워하고 애를 쓰면서 40년 이상을 예언한 후에 순교를 당하였는데, 주를 위해서 고생 하고 힘을 쓰며 고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 근심, 세상 애통은 혈압을 올라가게 합니다. 세상의 고통과 번민은 밤낮으로 평안치 않게 해서 사람의 애 간장을 태웁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을 위해 힘을 쓴 선지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주십니다. 예레미야 2장 11절에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라고 하였는데, 간이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붙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세상 일 때문에 간이 쏟아졌으면 죽었을 텐데, 주를 위해서 간이 쏟아진 자는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서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걱정은 하지 말고, 걱정을 하려면 주를 위한 걱정을 해야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세상 걱정과 주를 위해서 하는 걱정이 있는데 주를 위해서만 걱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걱정을 하면 점점 쇠잔해지지만 주를 위하는 걱정은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도리어 건강케 해주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시온 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산을 가리키는데, 그곳이 여우가 놀만큼 황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애달픈 일입니까? 이렇게 비참한 상태를 보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3. 회개와 광복을 위한 기도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께 호소하며 소망을 가짐

본문 19-20절에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절망 상태에 빠져서 애통하지만 믿음으로 나갈 때에는 오히려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땅만 보지 말고 영원히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
고, 세세토록 있는 보좌를 바라보며,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원한 보좌,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이스라엘의 폐망은 잠깐이면 지나가지만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약속으로 반드시 지키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와 영원한 약속이 있으시고, 또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의 나라를 영원히 세워나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는 반드시 세워져 나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와서 전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은 복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또 우리에게 영생을 주며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기 때문에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한 보좌,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 계획을 바라볼 때에 오히려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갖으며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 6절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하였는데, 성도를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므로 사랑을 줄 대상자가 필요하여 택한 백성을 예정하시고 영원한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지예정이 아니고 예정예지입니다. 예정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예지입니다. 사랑을 주시려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세에 있는 보좌,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실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낙심하지 아니하며 티끌 가운데서도 새롭게 일어나 새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시면 될 것을 믿고 주께로 돌아가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옛날의 신앙, 옛적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달라는 소망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가끔 옛날에 잘 살던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비참한 상태에 빠져서 종이 되고, 자녀들도 다 죽었지만 그것도 잠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2절에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라고 하였는데, 현재는 주가 우리를 버리시고 진노하심이 특심하여 비참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비참하게 되었고, 원수의 수하에 들어가 비참한 상태가 되었으나 영원하신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건져주실 것을 소망하며 믿는 것입니다. 오히려 소망이 있으므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비참한 상태는 잠깐이므로 믿음으로 살아야 함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해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데, 하박국 2장에 보면 비참한 상태에 있을 때 질문한 것과 그 답변이 나와 있습니다. 하박국 2장 1-4절에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는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
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답변이 내려왔습니다. 예루살렘이 비참한 상태에 빠졌는데 거기에서 원상 회복만 기다리지 말고 현재의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라는 것, 아무리 비참한 상태에 있어도 믿음을 쓰면 다 이겨나갈 수 있다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4장 7-8절에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버렸지만 큰 긍휼과 영원한 자비로 이끌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것은 잠시일 뿐이고 영원히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잠시 동안에도 큰 긍휼과 영원한 자비로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 값으로 망하게 하셨지만 그래도 잠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영원한 자비로 붙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말세 잠깐 동안의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함

그리고 이러한 비참한 상태가 언제까지인지 그 기한을 물어보면 다니엘 8장 13-14절에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이천삼백 주야까지라는 것입니다.
또 에스겔 39장 11-12절에 “그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편 사람의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것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장사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 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을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일곱 달 동안입니다. 또 에스겔 39장 9절에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한 자가 나가서 그 병기를 불 피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살과
몽둥이와 창을 취하여 칠 년 동안 불 피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천삼백 주야와 일곱 달, 또 칠 년이라고 하였는데, 이 숫자는 각각 말세 환난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말세 환난의 기간은 이천 오백 이십 일인데, 이것은 1260일을 두 번 더한 날수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도 1260일, 13장에도 1260일이라고 나왔는데 이것은 전반기 환난 1260일, 후반기 환난 1260일을 말하고, 이 둘을 합쳐서 2520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520일에서 2300주야를 떼면 220일이 남는데 220일의 십 배를 하면 6년 하고 조금 남으니까 년수로 계산하면 7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7년은 무기를 불사르고 지상을 정결케 하는 해입니다. 2300주야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세상이 끝나는 해입니다. 그리고 나서 7년이 남는데 이 시기가 무기를 불사르는 해로, 지상을 정결케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성도가 들려 올라갔다가 다시 지상 재림을 한 후에 천년 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심판하신 후 멸망시키시는 해인데, 이 기간이 2300주야입니다. 적 그리스도와 원수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여 학살을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핍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한이 2300주야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은 아마겟돈 전쟁까지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합니다. 그리고 그후에 지상을 정결케 하는 시간이 7년 걸립니다. 우리 성도들은 고난을 통과한 다음 공중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 재림하여 천
년 왕국을 건설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는 잠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영원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성도를 구원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축복이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원상 회복이 됩니다. 예루살렘 회복이 되는데, 예루살렘의 회복은 유다 나라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적 그리스도는 심판을 받아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승리하여 천년 왕국을 통과한 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해답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어떠한 환난과 징계가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참하게 되었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4장 7-8절에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고 앞으로의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나이다’ 라고 하였는데, 의인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현재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장차 베풀어주실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갈 것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믿음으로 통과 해야 하겠습니다.

2017년 6월 18일 일요일

예레미야애가 4:1-22 정금같이 존귀하던 시온이 질항아리 같이 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정금같이 존귀하던 시온이 질항아리 같이 됨
예레미야애가 4:1-22

1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 2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같도다 4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5진수를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움이여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운 자가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6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무너지더니 이제 처녀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중하도다 7전에는 존귀한 자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어 그 윤택함이 마광한 청옥 같더니 8이제는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같이 말랐으니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 9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10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11여호와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셨도다 12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 14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그 옷이 피에 더러웠으므로 사람이 만질 수 없도다 15사람이 저희에게 외쳐 이르기를 부정하다 가라, 가라,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저희가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이 이르기를 저희가 다시는 여기 거하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여호와께서 노하여 흩으시고 다시
권고치 아니하시리니 저희가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7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저희가 우리 자취를 엿보니 우리가 거리에 행할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 19우리를 쫓는 자가 공중의 독수리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에서도 쫓고 광야에도 매복하였도다 20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저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우스 땅에 거하는 처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잔이 네게도 이를찌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처녀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않게 하시리로다 처녀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
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1. 존귀하던 시온이 비참하게 됨

정금이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됨

본문 1-2절에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유다 백성은 포로로 잡혀가서 남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던 시온의 백성들을 정금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백성들이었지만 지금은 질항아리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한 것과 같이 성소의 돌들이 무너지고 거리에 쏟아져 굴러다닌다는 것입니다.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라고 하였는데,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가 빛을 잃어버리고 캄캄하며 천한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들개만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녀 내 백성’이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백성이고,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잔인해졌고 광야의 타조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타조는 무정한 동물이어서 사막에서 알을 낳고 자기 알이 아닌 것처럼 버리고 달아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뜨거운
사막의 날씨에 타조 알이 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조는 알을 낳아놓고 자기의 알이 아닌 것처럼 내버리고 달아나는 잔인한 동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타조와 같이 잔인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평안하고 좋을 때는 다 괜찮지만 곤고해질 때는 잔인해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워 광채가 났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게 됨

본문 4절에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른들의 죄 때문에 젖을 먹는 어린아이들까지도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5절에 “진수를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움이여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운 자가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수성찬으로 좋은 음식을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이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자랐는데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름더미를 안았다는 것은 거름더미와 같이 산다는 것이고 거름더미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본문 6-8절에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무너지더니 이제 처녀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중하도다 전에는 존귀한 자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어 그 윤택함이 마광한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같이 말랐으니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망하였는데, 내 백성의 죄는 이보다 더 중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던 백성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성전에 가보면 제사장과 선지자들, 바리새교인들과 서기관들이 관을 쓰고 예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서 찬송과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을 정금같이 귀하게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말씀을 순종할 때에 얼마나 귀하고 존귀했습니까? 윤택하고 희며 깨끗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니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은혜 가운데서 살때는 성도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고 윤택함은 마광한 청옥과 같이 아름다워 광채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범죄하니까 숯보다 검어지고 가죽에 뼈가 말라붙어서 막대기같이 되어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근이 너무 심해서 자기의 자녀들을 삶아 먹는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대적이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올 것은 열국의 왕도 생각지 못하고 예루살렘 백성, 유다의 백성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갑자기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입
술로는 존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났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면 이렇게 됩니다. 믿음을 잘 지킬 때는 얼마나 존귀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금보다 귀하고 산호보다 붉고 눈 같이 깨끗하고 마광한 청옥같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서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기고 안식일을 범하고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키지 못하니까 아주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토지의 소산이 끊어지므로 쇠약해짐

본문 9절에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낫다는 것은 토지의 소산이 끊어져 먹을 것이 없는 것보다 칼에 죽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까지 가게 되니 백성들이 광야의 타조같이 잔인해 습니다.

본문 10절에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잔인해졌는지 자기 아이를 잡아먹었다는 것입니다. 부녀가 자기 자녀를 삶아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합니까? 보통의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 자비하고 사랑이 있는데 죽을 고비에 빠지니까 아이를 삶아 먹는 부모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에는 잔인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보통은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면 이렇게 잔인해집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서운 줄 알아야 됩니다. 유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서 말씀을 불순종하며 우상을 섬기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부패하였는데도 그것을 좋게 여기다가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면 예루살렘도 망하고 유다백성도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 기명들까지도 전부 바벨론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범죄의 결과 하나님께서 시온에 불을 피워 지대를 사르심

본문 11절에 “여호와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죄만 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분을 발하셔서 맹렬한 노를 쏟으시고 시온에 불을 피워 사르셨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시온인데, 예루살렘 지대를 다 불사르셨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본문 12절에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은 대적이 쳐들어오지 못할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셔서 유다 나라가 세계의 강국이 되어 세계를 호령할 만한 나라, 세계가 부러워하고 흠모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적과 원수들이 쳐들어올 줄은 전혀 몰랐고 천하 만민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견고한 예루살렘,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도 하나님께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셔서 멸망시키십니다. 솔로몬 왕 시대의 이스라엘도 세계에서 제일 부유하고 강한 나라였지만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셔서 상상치 못할 패망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죄는 이렇게 스스로 패망을 초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망하게 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견고하게 예루살렘 성을 잘 쌓아놓고 부유하며 강하다고 해도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십니다. 상상치 못했던 멸망이 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고 죄를 멀리 떠나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바칠 바를 다 바쳐야 합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바치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 섬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며 주를 위해 희생하는 때가 제일 복 있는 때이며 잘되는 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시온이 멸망한 죄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죄악

본문 13절에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잘못 나갔기 때문에 의인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 30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고 하였는데,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 3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여 성경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있는 말로 사람을 미혹시켜서 잘못된 길로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요새 복음주의라는 것이 있는데, 아세아 연합 신학 같은 것이 복음주의입니다. 복음주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고백만 하면 다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주의입니다. 그래서 내가 “성경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도 해석을 잘못하면 각종 이단이 여기서부터 나올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해방 신학도 ‘예수님께서는 눌린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러 오셨다’고 주장하며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영적으로 눌린 자를 해방시켜 주러 오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해방 신학자들은 ‘사회적, 제도적으로 억압 받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성경적이다’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잘못 해석합니다. 우리는 영적 구원이고, 해방 신학자들은 사회 구원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방 신학을 하면서 각종 악을 다 저지르고 나갑니다.

또 신 신학자들은 ‘틀림없이 부활을 믿는다. 재림을 믿는다’고 하면서 몸의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적 재림을 믿고, 헌법을 고쳐서 정치를 바로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몸의 부활을 믿고, 또 그렇게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온 말씀으로 말합니다. 욥기서에서 하나님께서 꿈으로 가르쳐주셨다는 말씀을 주장하면서 꿈에서 지시하신 것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삼각산에서 만난 어떤 분이 몇 십 년 전에 순복음 교회 사경회를 갔는데 정신 이상이 있는 한 여자 분이 와서 기도를 해달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기도를 해줬지만 병이 낫지 않아 그 분과 정신 이상이 있는 여자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산에 기도를 하러 올라갔답니다. 그리고 올라가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목적지까지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정신 이상이 있는 여자 분과 어머니는 산 중간 쯤에 있는 굴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아침에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여자의 어머니와 이 남자가 좋은 꿈을 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꿈에 하나님께서 그 여자와 같이 살라고 하셨다고 하고, 그 여자의 어머니도 그 남자 분이 자기 딸과 함께 살라고 하는 꿈을 꿨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셨으니까 살아야 될 것 아니냐고 하면서 그날 그 굴에서 장가를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마귀에게 속았다고 하였더니 욥기서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꿈에 이치를 가르쳐 준다는 말씀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나보고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며 오히려 나에게 마귀에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마귀 들었다고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시 만났는데 신설동에 있는 무슨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1년도 못한 것 같은데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증명서를 가지고 와서는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여호와의 증인들도 성경을 가지고 나오지만 성경 해석을 잘못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산 개가 낫지, 사자가 죽으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서 죽으면 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의인은 땅에 거한다는 말씀을 가지고 땅에서 영원히 산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의 해석을 전부 잘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잘못하면서 나가기 때문에 각종 이단과 신비주의와 신 신학과 꿈을 믿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했다고 하면서 잘못된 해석을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악

그리고 참 선지자를 향해 잘못되었다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8장 18절에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합심해서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있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모략이 있으며 선지자에게는 말씀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 세 가지로 예레미야를 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정죄하고 거짓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따릅니다. 그리고 참 선지자를 핍박하고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 곧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리어 바로 가르치는 사람을 정죄하고 물리치며 마지막에는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새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가르치는 선지자를 따라가다가 멸망합니다. 참 선지자를 몰아쳐서 죽이고 바로 믿는 사람을 정죄하고 거짓선지자를 따라가면 결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도 예배를 합니다. 제사상에 십자가만 붙여놓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것이니 절은 해도 좋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히려 성도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하나님의 안식일은 내버리니까 망하게 되었습니다. 잘못 인도하는 사람과 또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을 높이지 않고 장로들을 대접하지 않은 죄악

본문 16절에 “여호와께서 노하여 흩으시고 다시 권고치 아니하시리니 저희가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른 지도자, 성경을 바로 가르쳐주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대접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가르쳐주고 인도해주는 인도자를 높이지 않고 따라가지 않으니까 결국은 가다가 쓰러질 것이 분명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을 잘 순종하고 공경하면 땅에서도 잘되고 장수하게 되는데,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2장 6-7절에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장수하리라’는 것은 땅에서 잘된다는 것입니다. 어미 새와 새끼를 한꺼번에 잡아먹으면 마지막에는 다 없어지는데 땅에서 무엇이 잘되겠습니까? 잡아먹어도 새끼는 놓아두고 어미를 잡아먹어야 계속해서 잡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말을 잘 들으면 가다가 실패하지 않고 잘되지만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나가면 반드시 꺼꾸러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단순하게 한 가지만 알고 경험이 없지만 부모님들은 수십 년 동안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파란곡절(波瀾曲折)도 겪고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보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신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척 보면 알고 어떻게 하면 망하겠다는 것도 압니다. 요새 감옥에 들어가고 실패하며 넘어지는 말썽꾸러기들은 대
부분 부모님 말씀을 안 들어서 그렇습니다. 부모님께서 그런 길을 가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셨을 텐데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결국은 함정에 빠지고 감옥에 들어가 큰 해를 보는 것입니다. 또 앞길이 막혀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국초국말(國初國末)을 지내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부모님들은 나라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를 지내보신 분들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8·15 해방이 되었는데 그때 부모님께서 나라가 이제 막 시작이니까 나가 다니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라가 시작될 때는 정말 복잡하고 정당도 많은데 멋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기독교 자유당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청
우당, 조선 민주당 등 여러 가지로 나가 돌아가다가 감옥에 들어간 사람도 많습니다. 이남에서도 8·15 해방 후 나라가 시작될 때 여러 가지로 어지러움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부모님은 오래 지내봐서 어떻게 하면 안 되는 것을 잘 압니다. 그때 부모님 말을 듣고 조심한 사람은 앞길이 열렸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제 멋대로 나가다가 감옥에 들어가 잡혀 죽었습니다. 장수한다는 말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바른 인도자를 순종하지 않은 죄악

또 바로 인도하는 인도자를 존경하며 순종하고 잘 받들면 큰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많은 은혜를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시는데, 교만한 사람들은 지도자를 무시합니다. ‘장로면 장로지, 무엇이냐? 제사장이면 제사장이지, 무엇이냐? 목사면 목사지, 무엇이냐? 우리대로 한다. 목사가 틀렸다’고 하면서 제 마음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결국에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인도하는 사람이 바로 인도하는지 바로 인도하지 못하는지를 첫째로 알고, 인본주인지, 말씀대로 인도하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말을 잘 순종하고 그 인도자를 존경하며 따라 가야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바른 인도자를 무시하고 대접도 하지 않으며, 잘못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잘못 인도하는 자들이 당장에 백성들에게 아부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니까 잘못된 인도자를 따라 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지도자를 따라가지 않고 잘못된 지도자를 따라가다가 예루살렘이 망한 것처럼, 어느 시대나 바른 지도자를 따라가지 않고 잘못된 지도자를 따라가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들은 달콤하게 아부하고 잘된다고만 하며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잘못된 길로 인도해서 어두워지는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4절에 “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그 옷이 피에 더러웠으므로 사람이 만질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한다는 것은 갈 길을 모르고 갈팡질팡하며 좌충우돌하는 것입니다. 갈팡질팡하면서 이리로 가야 될지, 저리로 가야 될지를 모르고 흑암에 싸여 소경같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니까 소경같이 되었고 바른 선지자를 무시하고 따라가지 않아서 소경같이 된 것입니다. 좌충우돌하다가 결국은 옷에 피가 묻어나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바른 지도자가 많이 나오고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살 길이 생깁니다.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사람들,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많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3. 헛된 도움의 소망

본문 17절에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나라를 바라봤던 것들은 다 헛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가야 하는데, 세상 나라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애굽이 도와주기를 바라보고 앗수르가 도와주기를 바라보지만, 결국은 하나님만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다 헛된 것인 줄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본문 18-19절에 “저희가 우리 자취를 엿보니 우리가 거리에 행할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 우리를 쫓는 자가 공중의 독수리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에서도 쫓고 광야에도 매복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가 쳐들어올 때에는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도 쫓고 공중의 독수리같이 날아도 광야에서 매복했다가 빨리 쫒아오니까 살 길이 하나도 없어서 끝이 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본문 20절에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저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콧김과 같이, 호흡과 같이 중하게 여기던 왕도 포로로 잡혀갔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히스기야 왕을 호흡과 같이 중요하게 여기고 왕의 그늘 아래서 살려고 하였는데, 왕이 포로로 잡혀가서 산통(算筒)이 깨진 것입니다. 요새가 함락되고 호흡과 같이 중요하게 여긴 왕도 포로로 잡혀가서 절망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4. 에돔은 평안하고 기뻐하나 잠시 후에 환난이 옴

본문 21절에 “우스 땅에 거하는 처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잔이 네게도 이를찌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있지만 그럴 날이 며칠이나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잔이 이르러 취하고 벌거벗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유다사람이 먼저 이 잔을 마시고 고난 받는 것을 보고 지금은 즐거워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이러한 수치가 네게도 온다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고난의 잔, 패망의 잔이 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처녀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않게 하시리로다 처녀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환난은 끝이 나게 되었고, 에돔은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을 받으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환난을 걷어 가십니다. 그리고 다시 축복과 복으로 내려 주시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원수들은 지금은 평안하지만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서 환난의 잔을 그 사람들에게 내리시고 심판으로 멸망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징계를 받으나 다시 구원을 받습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자들은 지금은 평안하고 기뻐하나 아주 멸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아주 멸망하여 다 없어집니다.

2017년 6월 17일 토요일

예레미야애가 3:42-66 성도의 구원과 원수에 대한 심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도의 구원과 원수에 대한 심판
예레미야애가 3:42-66

42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43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 우리를 군축하시며 살륙하사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44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 45우리를 열방 가운데서 진개와 폐물을 삼으셨으므로 46우리의 모든 대
적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47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48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
는도다 51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 52무고히 나의 대적이 된 자가 나를 새와 같이 심히 쫓도다 53저희가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54물이 내 머리에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55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57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58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을 펴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 59여호와여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 60저희가 내게 보수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감찰하셨나이다 61여호와여 저희가 나를 훼파하며 나를 모해하는 것 62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과 종일 모해하는 것을 들으셨나이다 63저희가 앉든지 서든지 나를 노래하는 것을 주여 보옵소서 64여호와여 주께서 저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하사 65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시며 66진노로 저희를 군축하사 여호와의 천하에서 멸하시리이다

1. 패망의 슬픈 상태를 호소함

본문 42-43절에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 우리를 군축하시며 살륙하사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의 죄 때문에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해진 것을 말합니다.

본문 44-45절에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고 우리를 열방 가운데서 진개와 폐물을 삼으셨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의 범죄로 기도를 해도 기도가 상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진개(塵芥)와 폐물(廢物)을 삼으셨으므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유다 백성을 티끌, 쓰레기와 같이 비천한 자리에 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46절에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유다 백성이 비참하게 된 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7절에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과 함정과 잔해와 멸망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징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애3:33). 하나님의 본심은 사랑이며 평안입니다(렘 29:11). 범죄하는 것을 그대로 두면 망하겠기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징계로 회개시켜서 바로 세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48절에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처녀 내 백성’은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처녀는 모든 일에 미숙하고 경험이 없으며 연약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장차 소망을 주심으로 잘 인도해주려고 하십니다. 하여간 처녀 내 백성인 유다 백성의 범죄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예레미야의 눈에서 눈물이 시내처럼 흘렀는데, 이것은 예레미야가 심히 애통한 것입니다.

본문 49-50절에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을 볼 때에 너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란 예루살렘의 비참함을 살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51절에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를 인하여 내 눈이 내 심령을 상하게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여자들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이 포로가 되거나 전쟁에서 죽고 여자들만 남아 원수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애 5:11), 또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먹는 것을 보고(애 4:10), 예레미야의 심령이 상하였습니다.

본문 52절에 “무고히 나의 대적이 된 자가 나를 새와 같이 심히 쫓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무자비하게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3절에 “저희가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라고 하였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건져달라고 하니까 발로 밟아서 아주 빠뜨려 죽이려는 것과 같이 원수들이 함정에 몰아넣고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4절에 “물이 내 머리에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물 있는 구덩이에 집어넣고 돌을 던지니 물이 머리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꼼짝 못하고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면 이렇게 무서운 재앙이 옵니다.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것이 본심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가 못되게 하면 때려야 합니다. 이처럼 징계가 올 때에는 왜 이렇게 고생하며 근심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권고해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2. 성도의 구원과 원수의 심판을 바라보며 간구함

본문 55절에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심히 깊은 구덩이에 빠졌어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소망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돌을 머리에 던지고 물이 머리 위에 있다고 할지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소망입니다.
‘주여’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부르짖는 음성을 들어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본문 56-57절에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더니, 그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두려워 말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실제로 구덩이에 갇혀서 고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렘 38:6). 여기서 예레미야가 깊은 구덩이에서 하나님을 불렀다
는 것은 큰 수욕과 고난 속에서 주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께 부르짖어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매를 때려서 고난당하게 하는 것이 본심이 아니시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에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31장 6절에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
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므로 절대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5-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58절에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을 펴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의 원통을 펴셨다는 것은 심령의 눌리는 일을 다 해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죄를 대속해주셨고 자유와 해방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속하셨나이다’란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할 줄 알았는데, 죄를 사해주시고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시면서도 이렇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징계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본문 59절에 “여호와여 나의 억울을 감찰하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신원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억울함을 감찰해주시고, 우리를 신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본문 60절에 “저희가 내게 보수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감찰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다 감찰하시고 신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61-62절에 “여호와여 저희가 나를 훼파하며 나를 모해하는 것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과 종일 모해하는 것을 들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종일 훼방하며 모해할 때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다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63절에 “저희가 앉든지 서든지 나를 노래하는 것을 주여 보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노래한다는 것은 예레미야에 대해 계속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것도 주님께서 보시고 신원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64-66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저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하사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시며 진노로 저희를 군축하사 여호와의 천하에서 멸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원수를 미워하여 앙심을 품고 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를 갚기 위한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해주실 것을 믿는 기도입니다. 원수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성도를 핍박하며 저주의 길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침내 진노하셔서 그 원수들을 쫓아내버리시고 멸절하실 것을 알고 예언적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바벨론은 멸망하였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했는데, 원수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멸망시키려 해도 하나님께서 감찰해주시고 보응해주십니다.

2017년 6월 14일 수요일

예레미야애가 3:19-41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고난 중에 소망을 가지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고난 중에소망을 가지라
예레미야애가 3:19-41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25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29입을 티끌에 댈찌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찌로다 30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찌어다 31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32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34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35지극히 높으신 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사람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은 다 주의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38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39살아 있는 사람은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40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1. 고난 중에 소망을 가지라

고난 중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

1)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

본문 19-21절에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이 담즙같이 쓰디쓰지만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끝이 없으므로 고난으로 진멸되지 않을 줄을 믿는 것입니다.

2) 주의 성실이 크심 

본문 23절에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무궁한 자비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하나님께서는 성실하시며 진실하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업이심

본문 24절에“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8편 1-2절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업, 방패, 산성이시므로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오히려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궁한 주의 자비와 긍휼을 생각하며 소망을 바라보고 주의 성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기업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이 있음을 본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기다리는 자에게 선을 베푸심 

본문 25-26절에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장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셔도 낙심하지 않고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선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오히려
소망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께서는 성실하시고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며 우리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에,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하여주십니다.

잠잠히 혼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음

본문 27-28절에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젊었을 때에 혼자 앉아 멍에를 메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메어주신 멍에는 좋은 멍에인데, 이 멍에를 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의 멍에는 젊었을때부터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은 안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성도에게는 전도할 직분이 있고, 하나님을 잘 섬길 직분이 있으며, 달란트 장사를 할 직분이 있습니다. 또 택한 백성들에게 양식을 나눠줄 직분이 있는데, 심방하는 멍에, 전도하는 멍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멍에, 교인들을 가르치는 멍에 등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책망을 받지 않도록,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게 멍에를 잘 메고 나가야겠습니다.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메우셨음이라’고 하였는데, 괜히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지 말고 자기의 멍에를 잠잠히 잘 메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시키면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맡겨라”고 하면서 자신의 멍에를 다른 사람에게 메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일을 하는데, 왜 자기에게 시킨 것을 하지 않고 남의 핑계를 대면서 떠넘기려고 합니까? 자기의 멍에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 본래 그 사람이 맡은 일은 하지 못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언제나 자기의 멍에는 자기가 메어야 합니다. 주께서 메도록 하셨으니까 잠잠하며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잘 메고 나가야 합니다.

겸손히 낮아지라

본문 29절에 “입을 티끌에 댈찌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찌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입을 티끌에 대라는 것은 겸손하고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티끌이 되어 밟히면서 나가면 오히려 소망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그러나 낮아지려고 하지 않고 높아지려고만 하면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입을 티끌에 댈 만큼 낮아지면 소망이 있는 줄을 알고 늘 겸손한 자리에 거하여야 하겠습니다.

본문 30절에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왼 뺨을 맞으면 오른 뺨도 돌려대면서 수욕을 많이 당하라는 것입니다. 수욕을 많이 당하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사무엘하 16장 11-12절에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서 피난까지 가는 것도 억울한데 시므이라는 사람이 와서 다윗을 저주하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겠다고 하였을 때에 다윗이 한 말입니다. 좀 더 많이 저주하도록 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욕으로 배불러지는 것입니다. 한 번만 저주를 받아도 부끄러운 일인데 좀 더 하도록 둬 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까닭에 하나님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수욕으로 배불러지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면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갖게 됨

본문 31절에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자비하심대로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본문 32절에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풍부하기 때문에 반드시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현재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죽을 고에 빠져서 길이 딱 막혔습니다. 사자와 곰이 와서 물어 찢어 뼈가 부러지며 형편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소망을 갖는 자가 진정한 신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소망을 갖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 소망이 생깁니다.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성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실히 지켜주실 것을 믿으면 소망이 생깁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영혼에게 선으로 베풀어주실 것을 믿으며 기도하고 기다리는 성도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근심케 하셨지만 그 풍부한 자비와 긍휼로 건져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낙망할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하나 없어도 건져주실 하나님을 알면 소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고 기다리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반드시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 줄 아는 것이 첫째이고,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둘째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낙심하지 않고 소망이 있으며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바울도 자기가 의뢰한 하나님을 본인이 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히 지켜주시고 건져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본심을 알면 또 소망이 생기니까 하나님의 본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매를 때리시고 노하시며 뼈를 꺾으시고 야단이 났어도,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압니까? 무엇입니까? 부모의 본심을 알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매를 맞아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때려도 사랑해서 좋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때리시는 줄 알고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간에도 서로의 본심을 알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 무슨 사건 때문에 한 남편이 군대 칼을 들고 아내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는데 부인이 헤헤 하며 웃어서 왜 웃느냐고 물어보니, 당신 마음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그 부인은 자기 남편이 자기를 죽
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방의 본심을 알고 나가야 합니다. 본심을 모르면 서로 오해하고 비뚤어지지만, 본심을 알면 ‘그럴 사람이 아니다. 사랑으로 그랬을 것이다. 사랑으로 때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본심을 잘 알았습니까? 때려서 회개시키시고 바로 세워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본심, 아픈 곳을 싸매주시고 상한 곳을 낫게 해주시는 주님의 본심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 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심도 잘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생각도 잘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왜 이렇게 고생하며 근심하고 재앙이 오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우리로 하여금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도리어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이것만 알면 아무리 큰 고난이 와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말씀을 순종하라

본문 34-36절에 “세상에 모든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과 지극히 높으신 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사람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것은 다 주의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7-38절에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되는 것입니다. 화와 복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순종하면 복이고, 불순종하면 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화, 복이 있는데, 말씀대로 하면 복, 그렇지 않으면 화라는 것입니다.

본문 39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고 하였습니다. 수고와 고난이 올 때에 자기 죄로 벌을 받는 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원망하면 더욱 더 심한 매를 맞기 때문에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라 

본문 40-41절에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행위를 저울로 달아 잘 조사해보라는 것입니다. 양심으로도 달아보고 말씀으로도 달아보며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도 하나님께 들고 손도 하나님께 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며 주님을 앙모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잘 조사해보고 마음과 손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어야 하겠습니다.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예레미야애가 3:1-28 고난 중의 예레미야가 소망을 가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고난 중의 예레미야가 소망을 가짐
예레미야애가 3:1-28

1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 2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3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4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5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10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 11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 12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13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 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버렸음이여 18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25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1. 예레미야의 고난과 탄식

본문 1절에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서 유다 백성이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가 불사른 바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하여 선지자가 제일 많이 고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멸망을 자기의 당함과 같이 생각하고 성전이 훼파된 것은 자기의 몸이 사라지는 것같이 생각하였습니다. 예레미야 개인으로 볼 때에는 바벨론의 침략에도 왕의 특명에 따라 포로로 잡혀감을 당하지 아니하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과 유다가 망하는 것을 볼 때에 자기가 망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제일 많이 고난을 당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로 행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광명한 빛 가운데 행하지 못하고 환난과 풍파, 고난 가운데로 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이렇게 되었고 예레미야도 이렇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의 고난은 
첫째로 여호와께 매를 맞은 것이고, 
둘째는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는 본문 3절에 나옵니다.
본문 3절에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자주 나를 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종일토록 자주자주 매를 맞은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힐 때도 있었고 매를 맞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유다 백성 전체로 볼 때에도 죄 값으로 자주자주 매를 맞은 것입니다.

본문 4-6절에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신 것이고, 
다섯째는 뼈를 꺾으신 것이며, 
여섯째는 담즙과 수고로 에워싸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가죽이 다 째지고 뼈가 다 꺾이는 고난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다 백성 전체도 살과 가죽이 쇠해진 것과 같고 뼈가 다 꺾인 것과 같습니다. 예레미야 자신도 살과 가죽이 쇠해지고 뼈가 꺾인 것과 같은 고통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쓴 고통의 수고로 에워싸셔서 평안의 길로 보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일곱째는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고, 여덟째는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신 것입니다. 예전에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사슬에 얽매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착고에 채워졌었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0장 2절에 “이에 바스홀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아홉째는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 안도와주신 것입니다. 쇠사슬에 얽매이고 사람에게 얽매어서 나가지 못하게 되고 쓴 것과 고통만이 계속되는데, 거기서 구해달라고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도와주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9절에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 번째는 내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다듬은 돌을 단단히 쌓아 나갈 틈이 없도록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가 나갈 수 없도록 앞길을 막으셨습니다. ‘첩경(捷徑)’은 지름길인데, 하여간 곧장 나가지 못하게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라고 하였습니다. 열한 번째는 원수들이 나를 집어 삼키려고 은밀한 곳에 엎으려 기다리는 것입니다. 원수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키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두 번째는 내 몸을 찢으시고 나로 적막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몸을 찢기는데도 하나님께서 안 돌보아주시고 내버려 두셨습니다.

본문 12-13절에 “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세 번째는 나로 과녁을 삼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과녁삼아 사방에서 예레미야를 향해 활을 쏘는 것입니다. 열네 번째는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신 것입니다. ‘허리’는 요긴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매로 이스라엘의 허리, 예루살렘의 허리가 맞은 바 되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예레미야가 자신이 맞은 것처럼 여기며 허리를 맞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 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다섯 번째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예레미야를 조롱하고 노랫거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를 노랫거리로 삼은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다가 망하기 전에도 예레미야를 조롱하였고 망한 후에도 예레미야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몰아쳤습니다. 예레미야 43장 2절에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라고 하며 예레미야를 비방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기 전에도 그러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바벨론왕에게 항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몰
아치며 조롱하였습니다.

어느 때에나 참 선지자를 몰아치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네들이 잘못한 것을 정당화시키려니 바로 하고 바로 가르치는 자를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선지자를 비방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을 미쳤다고 하였고, 예수님께는 귀신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자를 조롱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게도 귀신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8절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지를 귀신이 들
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지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가리키는 사람을 무조건 비방하는 것입니다. 비방하고 몰아쳐대는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15절에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열여섯 번째는 쓴 것으로 취하게 하신 것입니다. 고통에 취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일곱 번째는 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신 것이고, 열여덟 번째는 재로 나를 덮으신 것입니다. ‘조약돌’은 작은 돌인데, 그것으로 내 이를 꺾으셨다는 것은 작은 일, 작은 사건들로 선지자의 이를 꺾어 무엇을 먹지 못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시고 입에 상처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재로 덮으셨다는 것은 매장하였다는 뜻입니다. 재로 덮었으니, 형편없이 매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덮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선지자를 매장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작은 일로 선지자의 이를 꺾어서 말을 못하게 하시고, 재로 덮어서 매장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7-18절에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아홉 번째는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신 것이고, 스무 번째는 복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심령의 평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언제나 심령의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망하는 것을 볼 때에 예레미야의 심령이 많이 상한 것 같습니다. 신앙이 좋은 예레미야도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고 자기는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을 때에 심령의 평안이 없고 복을 다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세우려는 마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만 심령의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전에도 심령의 평안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15장 18-19절에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같으시리이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예
레미야가 심령의 상처를 받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물이 말라 속이는 시내와 같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는 네가 먼저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사업주의에서 골방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겠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천한 것’은 인본주의, 제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버리고 귀한 것을 취하라는 것입
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데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에 굳게 서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맡기지 못하고 제가 하겠다는 생각이 예레미야에게 있었습니다. 망한 다음에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니 너무 속상해 하면 안 되겠는데, 예레미야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너무 속상해 하는 것도 치우치는 것입니다.

2. 고난 중에서 주의 긍휼과 약속을 믿고 소망을 가짐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라

본문 19-23절에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가운데에서 절망에 빠져 소망이 없는 것 같지만 ‘소망이 있습니다’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낙심이 되어도 다시 올라오는 것입니다. ‘저의 상태는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과 비참함 가운데 있지만 믿음으로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고 하나님을 생각해보니까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의 무궁함을 생각해보니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절대로 버리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니까 소망이 생겼습니다. 진멸하지 않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러졌다가 일어서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나의 생명이시오, 나의 피난처시오, 나의 모든 것, 전체라는 뜻입니다.

본문 25절에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 간구하는 영혼에게 반드시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믿고 간구하는 자리, 기다리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을 베푸시고, 그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본문 26절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따라서 간구한 다음에 잠잠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니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이사야 30장 15-17절에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쫒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잠하고 안연하여 하나님만 신뢰하면 저희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잠잠하며 믿음을 써 나가면 하나님께서 살길을 열어 주십니다. ‘아, 이제 큰일 났다. 어떻게 할까, 도망쳐아 할까?’하니까 도망할 일이 생겼습니다. 도망칠 생각을 안 하면 도망칠 일이 안 생겼을 것인데, 도망할 생각을 하니까 도망할 일이 생깁니다. 빨리 가야겠다고 하니까 빨리 가는 사람보다 더 빠른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면 도리어 걱정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본주의로 힘을 쓰면 따라오는 사람이 더 빨리 따라옵니다.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아니하면 사람이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잠잠하여야만 모든 것을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잠잠히 그날그날 하나님께서 주신 일만 해나가는 것이 바로 서는 것이고 평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순종함으로 잘 메고 나가야 함

본문 27-28절에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일 학교를 맡은 자는 주일 학교 멍에를 메고 나가는 것이고, 심방을 맡은 자는 심방의 멍에를 메고 나가는 것입니다. 집사의 멍에, 장로의 멍에, 교역자의 멍에 등 멍에를 메고 잘 감당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젊었을 때는 놀다가 늙으면 믿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늙어서 멍에를 메야 얼마나 메겠습니까. 젊어서부터 메고 나가야 합니다. 멍에를 안 메겠다고 하면서 벗으려 하면 안 됩니다. 소가 멍에를 메고 나가다가 벗어버리고 달아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소는 팔아 치우고 잡아먹습니다. 우리는 멍에를 잘메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바벨론의 멍에를 메는 것은 바벨론의 환난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고난과 연단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아니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잔은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달게 마시면서 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멍에를 지는 자가 복이 있고, 젊었을 때부터 고난과 연단을 많이 받는 것이 좋습니다.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아니하고 편안한 사람들은 실력이 없습니다. 많은 고난과 연단을 받아야 영적인 깊이가 있고 귀한 보화가 되어 나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항상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부터 연단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고난을 많이 받고, 거기서 하나님을 잘 섬겨나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젊었을 때부터 멍에를 메고 고난을 받으며 믿는 것이 좋습니다. 연단을 많이 받는 것이 좋습니다. 말한 마디를 해도 몇 십 년 연단 받은 사람이 하는 것은 다릅니다. 오랫동안 연단을 많이 받은 사람은 말 한 마디 속에도 연단 받은 것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에 멍에 메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고 고난과 연단을 많이 받는 것이 좋습니다. 책망도 받아야 하고 멸시도 받아야 하고 천대도 받아봐야 합니다. 밥도 굶어봐야 하고 매도 맞아봐야 합니다. 여러가지 연단을 받아 쓴 것, 단 것을 다 맛봐야 조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멍에 메는 것이 순종입니다. 소가 가라 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고, 돌아라 하면 도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의 멍에를 메고 잘 순종해나가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인데, 잠잠히 메고 나가야 합니다. 못하겠다는 생각은 그만 둬야 합니다. 도망치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잘 메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2:11-22 패망한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패망한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
예레미야애가 2:11-22 

11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12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 13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14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15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17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18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찌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찌어다 19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찌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찌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찌어다 하였도다 20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륙을 당하오리이까 21노유는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살륙하셨나이다 22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에 무리를 부름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나이다 내 손에 받들어 기르는 자를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1. 패망한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

하나님의 심판으로 파괴된 예루살렘

본문 11절에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처녀 내 백성’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사랑스러운 내 백성, 또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를 예레미야가 보고 너무 울어서 눈이 상하고, 애가 타서 창자가 끓어올랐고, 간이 땅에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간이 땅에 쏟아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 애가 타면 “간이 녹는다”고들 하는데, 그와 같이 간이 녹아 없어질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어디 있느뇨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젖 먹는 어린 아이들이 기근으로 어미의 품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먹지 못하고 혼이 떠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에는 이렇게 비참합니다.

본문 13절에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라고 하였습니다. ‘처녀 예루살렘’이란 순수한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순수한 예루살렘이 너무 심하게 파손되어 그 처참함이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 때문에 유다가 망하게 됨

본문 14절에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죄 때문에 유다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돌이키게 해주는 것이 선지자의 의무인데, 거짓 선지자들은 죄를 범해도 “평안하다”하고 “복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이 바른 계시를 받지 못하고,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가르치면 백성들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잘되거나 망하는 것은 교역자에게 달렸습니다.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서 바로 전하면 백성이 바른 길을 걷고 살며, 교역자가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시대에는 거짓 선지자가 헛되고 어리석은 말,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말만 하여 백성들은 다 잠들고, 소경이 되고, 바른 길을 잃어버리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른 진리를 세우지 못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오게 되는데, 백성들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따라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바른교역자가 없으면 바른 진리를 세울 수 없으므로 우리가 신학교에서 바른 교역자를 길러내어 바른 진리를 전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지나가는 자와 원수의 비소(誹笑)

본문 15절에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자’는 열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유다와 상관없는 국가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을 보고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원수들은 성도가 망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망하는 것을 보면 자기들이 바라던 날이 왔다고 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경성하여 범죄하지 말고 말씀에 서고 믿음으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도가 생명 있는 신앙의 달음박질을 할 때에는 원수가 꼼짝을 못하나, 성도가 믿음을 지키지 않고 죄 중에 빠져서 타락하면 망하게 되고 원수들은 기뻐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부르짖으라고 하심

본문 17절에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범죄할 때에 하나님께서 징계하기로 작정하십니다. ‘옛날에 명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즉 모세 5경과 구약에 나타난 계명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명대로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생명과 복을 주시고, 말씀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로마서 2장 6-8절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다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 죄를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유다가 망하므로, 즉 성도가 범죄하므로 하나님께 벌을 받아 망하게 되면 원수들의 권세가 ‘뿔’처럼 솟아오르게 됩니다. 그들이 득세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니 대적이 기뻐하고 권세가 높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됩니다. 징계도 말씀대로 오고,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아주 두려운 일입니다. 말씀에 절대 복종하고, 회개하고, 바로 서서 나가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18-19절에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찌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찌어다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찌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찌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찌어다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비참한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와 심한 고난이 우연히 닥친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로 온 것인 줄을 깨닫고, 주를 향하여 눈물을 강처럼 흘리면서 회개하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짖으면서 회개하라고 하였습니까? 
첫째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리면서 기도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눈동자를 쉬게 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라는 것이고, 
셋째는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이고, 
넷째는 주님의 얼굴 앞에 마음을 물 쏟듯 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이고(삼상 7:5-6), 
다섯째는 주를 향하여 손을 들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손을 들라는 것은 자기 심령을 하나님께로 향하라는 뜻입니다. 심령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밤 초경에 부르짖고, 새벽에도 부르짖고, 쉬지 말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습니다. 이렇게 부르짖는 자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멸망시키시려는 것이 아니고 회개시켜 복 주시려는 것이므로, 성도는 어떠한 지경에 처했어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것으로 갚아주십니다(롬 8:28).

3. 참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비참하게 된 상태를 하나님께 호소함

본문 20절에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륙을 당하오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쟁 시의 기근으로 예루살렘 여인들이 자기 아이를 잡아먹고, 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멸망 시에 성전에서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이것은 이미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바벨론의 멍에를 메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듣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그대로 재앙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이와 같이 무서운 결과가 옵니다.

본문 21절에 “노유는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아니하시고 살륙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노유(老幼)’, 즉 노인과 어린 아이들은 예루살렘 멸망 시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길바닥에 기진하여 엎드러졌고, 처녀들과 소년들은 다 전쟁터에서 칼에 죽었습니다. 오늘날 젊은 남녀가 거짓 선지자의 사상에 빠져 마귀의 칼인 그릇된 사상과 철학에 미혹되어 엎드러지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주께서 진노하신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살륙하셨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다 죽이시고 살륙하셨다는 것입니다.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본문 22절에 “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에 무리를 부름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었나이다 내 손에 받들어 기르는 자를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유다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여든 것과 같이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로 원수가 이렇게 모여들어와 백성 중에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원수가 쳐들어 올 때에는 어린 아이들까지 다 죽입니다. 죄
의 결과가 이처럼 비참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러 차례 권고하였으나 회개하지 아니하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라 나간 백성들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지은 죄의 값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죄가 들어왔습니까? 선지자들이 바른 진리를 전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다 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교역자를 길러내고, 바른 교회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교역자를 길러서, 바른 교회를 세우고, 바른 진리를 전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또 바른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행하지 않고 듣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행하며, 죄에서 떠나는 신앙을 가져야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하심을 받습니다.

예레미야애가 2:1-10 하나님의 징계로 성소가 원수의 손에 넘어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징계로 성소가원수의 손에 넘어감
예레미야애가 2:1-10

1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 2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 3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오른손을 거두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사름같이 야곱을 사르셨도다 4원수같이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아름다운 모든 자를 살륙하셨음이여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모든 궁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훼파하사 처녀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6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공회 처소를 훼파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7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장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으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
를 절기 날과 같이 하였도다 8여호와께서 처녀 시온의 성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훼파함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 9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왕과 방백들이 율법 없는 열방 가운데 있으며 그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처녀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1. 하나님의 징벌

본문 1절에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처녀 시온’이란 사랑 받던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유다가 환난 가운데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심판을 받고 있는데,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살던 이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이 이제 땅에 내던져진 것처럼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라고 하였는데, ‘발등상’은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성전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다 내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거하시던 성전도 다 내어버리신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처녀 유다의 견고한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방백으로 욕되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의 집들을 다 불살라 거처가 없게 하셨으며, 유다의 모든 성은 무너지고 방백들은 욕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오른손을 거두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사름같이 야곱을 사르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뿔’은 권세를 의미하는데, 과거에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스라엘에게 권세가 있었으나 이제는 그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권세를 다 꺾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을 거두시고’라고 하였는데, ‘오른손’은 능력의 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지금껏 하나님께서 원수를 물리치시고 구원해주시던 손을 이제는 거두시고 도와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4절에 “원수같이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아름다운 모든 자를 살륙하셨음이여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눈동자같이 사랑하시지만, 그 백성이 범죄하면 그들에게 원수처럼 되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시켜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할 때에 오는 하나님의 심판은 사랑의 징계입니다.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시고 다시 붙들어주십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모든 궁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훼파하사 처녀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견고한 예루살렘 성이라도, 하나님께서 한 번 손을 드시면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고 맙니다.

본문 6절에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 버리시며 공회 처소를 훼파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 생활과 제사 의식을 다 폐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음을 지킬 때에는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떠나지 않으시고 임재해계셨으나,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니 하나님께서 성소를 초막같이 헐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와 안식일을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절기와 안식일을 다 잊어버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모이려고 해도 모여서 예배를 드릴수 없고,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지키려고 해도 못 지킵니다. 또 그렇게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다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킬 때가 복된 때요, 행복한 때인 줄 알고, 그 절기들을 감사와 즐거움으로 잘 지켜야 합니다. 또 주일 지키는 일, 새벽 기도하는 일, 수요 예배를 드리는 일 등이 복된 일이며 귀한 일인데, 이것을 짐으로 생각하여 마지못해 하면 안 되겠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 제거해버리십니다.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점점 더 많이 주시고, 모든 것을 잘되게 해주시는데, 그때에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절기 지키는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그 심령 상태가 비참하겠습니까? 또 국가와 민족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러므로 무엇이나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더 주시고, 더 잘되게 해주시고, 재능도 더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을 당할 때가 복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때가 제일 복된 때입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장을 원수의 손에 붙이셨으매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 날과 같이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라고 하였는데, 우상을 섬기며 회개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제사를 드리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의 제단과 성소를 하나님께서 버리셨습니다. ‘궁장(宮墻)’은 궁궐의 담장을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궁궐의 담장을 원수의 손에 붙여서 다 헐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 형식적으로만 ‘주여, 주여’하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원수들로 하여금 쳐들어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원수들이 탈취하고 훼파하느라 떠들어 대는 것이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서 훤화하기를 절기 날과 같이 하였도다’라고 하였는데, 옛날 유다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느라 소란할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원수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스라엘이 말로 다 할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께서 처녀 시온의 성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훼파함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가 예루살렘 성으로 쳐들어와 모두 훼파해버린 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의 범죄로 진노하셔서 그 성을 헐기로 결심하셨던 대로 그 성을 허무시는 것입니다. ‘줄을 띠고’란 측량줄을 띠었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대로 훼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들어와서 훼파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도까지만 훼파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는 더 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에 한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줄 밖, 한도 밖에 있는 것을 내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줄 밖의 것은 내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붙이신 것이므로, 그것까지 자기의 것인 줄 알면 속상하게 되고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줄 밖에 있는 것을 다 거두어 가셨어도 잘 참고 감사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이전에 가졌던 것보다 갑절을 더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안의 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본문 9절에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꺾여 훼파되고 왕과 방백들이 율법 없는 열방 가운데 있으며 그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선지자들’은 참 선지 예레미야를 대적하던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키고, 성문이 땅에 묻히고 빗장이 꺾였다는 것은 무방비 상태에 들어간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성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면 원수가 못 들어 왔으나 이제는 원수가 출입하며 성전과 백성들을 약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과 백성이
이방에 포로되어 갔고, 선지자는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교만하고 형식주의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또 선지자들이 신령한 영적 생활을 하지 못하므로 여호와의 묵시가 끊어진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처녀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2017년 6월 12일 월요일

예레미야애가 1:10-22 고난 중에 죄와 하나님의 의를 깨달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고난 중에 죄와하나님의 의를 깨달음
예레미야애가 1:10-22

10대적이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
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12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찌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13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고적하여 곤비케 하셨도다 14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케 하셨음이여 내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붙이셨도다 15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도다 16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17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 18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근심을 볼찌어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19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 20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21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주께서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 22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곤비하니이다

1. 고난 중에 자기들의 죄와 하나님의 의를 깨달음

본문 10절에 “대적이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군대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모든 금, 은, 보물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라고 하였는데, 본래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신 23:3; 느 13:1), 그런데 이방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와 보물들을 다 빼앗아 간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가장 마음 아픈 일입니다.

본문 11절에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물로 식물을 바꾸어 먹을 정도로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천하오니’란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대표하여 하는 말로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비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찌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자여’란 이방나라들을 가리킵니다.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란 유다가 심한 근심을 당할 때에 다른 나라도 이런 근심이 없는가 한 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이방 나라들에도 유다가 받는 고난과 근심이 있으며 그들에게도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13절에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고적하여 곤비케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골수에 불을 보내는 것처럼 뼛속까지 뜨겁게 아프도록 재앙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종일토록 고적하여 곤비케 하셨도다’란 그물에 걸린 새나 짐승처럼 더 갈 수도 없고, 물러갈 수도 없는 곤비를 당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 올 때에는 이와 같이 됩니다. 그물에 걸린 양이나 짐승, 노루, 사슴처럼 더 나갈 수 없는, 뒤로 물러 갈 수도 없는 가운데 빠집니다. 즉, 진퇴양난의 난관에 빠져서 어찌할 수 없게 됩니다.

본문 14절에 “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케 하셨음이여 내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붙이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죄악’은 유다의 죄악을 가리킵니다. 죄 때문에 이런 무거운 멍에가 왔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붙여서 원수의 멍에를 메고 나가게 하시고, 견딜 수 없을 만큼 곤란하게 하십니다. 원수의 멍에를 하나님께서 메워주시면 사람이 벗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원수의 멍에를 메기 전에 회개하고 바로 서야지, 일단 원수의 멍에를 메고 가게 되면 감당하기 힘듭니다.

본문 15절에 “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란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때에 군대가 있어도 아무 맥을 못춘다는 뜻입니다.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란 원수들이 예루살렘의 젊은 사람들을 다 쳐부순다는 것입니다.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도다’란 처녀같이 순진한 유다를 포도를 술틀에 넣고 발
로 밟는 것처럼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범죄하면 이렇게 비천한 가운데 빠집니다.

본문 16절에 “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에는 도와주는 자도, 위로해주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란 무엇을 붙잡고 어려운 가운데에서 나오려고 도움을 구하지만 도와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란 징계를 당할 때에 아무리 두 손을 펴서 무엇을 붙잡으려고 해도
붙잡을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 사면에 있는 모든 자로 하여금 대적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도와준 자가 다 대적이 됩니다.

본문 18절에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근심을 볼찌어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란 유다는 죄 값으로 징계 받는 것이 마땅하며,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4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징계 받을 때에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오는가, 다른 사람은 다 잘되는데 나는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깨닫지 못한 증거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선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로 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간섭하셔서 이러한 징계를 주시니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깨닫는 것이 바로 선 것입니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라고 하였는데, 유다의 많은 남, 녀 소년들이 적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불신 세계로 나아가 세상과 짝하고, 해방 신학이나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에 감염되어 기존 체제를 부인하며 나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바로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며, 교회는 영적구원 기관이지, 사회주의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바른진리에 서지 못하고 영적 생명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신자들이 미혹을 받아 잘못된 길로 나아갑니다. 해방 신학은 공산당과 똑같습니다. 해방 신학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사회를 구원해야 한다. 억압 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산당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 사상에 한 번 감염이 되면 좀처럼 나오기가 힘듭니다. 젊은이들이 바른 진리에 서지 못하고 영적 신앙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미혹을 받기 쉽습니다. 이론만 따라가고, 육신 중심, 세상 중심으로 나가면 마귀에게 다 넘어 갑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이 유다를 도와준다고 약속하였으나 유다가 위급하게 되었을 때에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도와주는 것도 잘될 때에 도와주는 것이지,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못 본체하고 달아납니다. 이때는 특별히 애굽 나라가 유다 나라를 도와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유다나라가 망하게 되니까 안 도와주었습니다. 사람이나 국가나 다 비슷합니다. ‘무엇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형편이 괜찮을 때에 도와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못 본체하고 슬슬 내빼는 것이 세상입니다.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란 제사장과 장로들이 식물을 구하며 돌아다니다가 식물이 없어서 기절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에 식물이 아주 핍절한 때를 당한 것이 분명합니다. 환난 당할 때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영적 양식이 다 끊어집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는 영을 소생시킬 수 있는 영적 양식이 있어서 언제나 백성들에게 나눠주어야겠는데, 그러한 양식이 없습니다. 말세에는 영적양식이 다 끊어집니다(암 8:11).

2. 성도의 구원과 원수의 멸망을 믿고 기도함

본문 20절에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큰 환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환난 때에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죄를 깊이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환난 때에 낙심하거나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며 원망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말씀대로 바로 서서 나가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본문 21절에 “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주께서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의 탄식 소리를 듣고 원수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유다의 재앙을 기뻐하던 원수들이 유다와 같이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잠 24:17-18). 예루살렘이 망할 때에 두로와 암몬 자손이 기뻐하다가 망했습니다(겔 25:3-7,26:1-6). 하나님의 백성이 망할 때에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본문 22절에 “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곤비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원수들도 죄값으로 유다가 망하는 것처럼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즉, 지금은 원수들이 하나님의 교회가 비참하게 되고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나 하나님께서 그 원수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후에 회개시켜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하지만 원수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의 교회가 비참하게 되고 쇠멸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교회를 사랑하고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교회는 안 되어도 자기 집만 잘되면 된다는 것은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들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 집이 잘 안되어도 교회가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먼저 세우고, 자기 집을 세워야 합니다. 자기 집보다 교회가 더 중요합니다. 교회를 세워야 자기 집도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우지 않고 자기 집만 세우겠다는 것은 이기주의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일만 생각하고, 자기 볼 일만 보려고 하면 어떻게 하나님께 복을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아끼고 자기 집에 있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먼저 갖다 드리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반드시 잘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자기 일은 둘째, 셋째로 하고 하나님의 일을 첫째로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2017년 6월 11일 일요일

예레미야애가 1:1-9 예레미야의 애곡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예레미야의 애곡
예레미야애가 1:1-9

1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2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3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 4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 5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저의 목백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 7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 9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 예루살렘 멸망의 비참한 상태를 슬퍼함

본문 1절에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이 바벨론에 점령당하여 다 불사름이 되고, 많은 백성이 죽고 포로로 잡혀 가는, 형편없이 비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비참한 상태를 슬퍼하며 애가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6·25 사변 때에 폐허가 되었던 서울시가와 같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라고 하였는데, 본래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큰 도시였고, 거민도 많았었습
니다. 특별히 솔로몬 왕 때에는 세계에서 제일 부요하고 칭송 받는 도시였습니다. 그때에는 금과 은을 돌과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습니다(대하 1:15, 9:27). 솔로몬 궁전은 세계에 자랑하던 아름다운 궁전이었으며, 솔로몬이 지은 성전도 세계에서 유일하고 존귀한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루살렘 거리가 적막해졌고 형편없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란 과거에 열국 중에 크던 예루살렘이 이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과부와 같이 고독해졌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도 알아주거나 위로해주는 사람 없이 홀로 적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라고 하였는데, 솔로몬 때에는 이스라엘이 열국의 조공을 받았습니다(대하 9:13). 공주와 같이 존귀히 여김을 받은 아름다운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열방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고, 바벨론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원수가 와서 다 짓밟고 불사르며, 또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는 자가 됩니다.

본문 2절에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밤새도록 애곡하니’란 너무나 슬퍼서 밤새도록 자지 않고 애곡하였다는 것입니다.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란 과거에는 다른 나라들과 서로 사랑하며 통상하면서 상부상조하였는데, 이제는 과거에 친했던 나라들이 배반하고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때에는 친구도 많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이 있으나, 하나님께 범죄하여 망한 다음에는 비참하게 됩니다. 친구는 떠나버리고, 위로해 주는 자나 도와주는 자가 아무도 없게 되며, 다 원수같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서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가 믿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다른 것은 다 쓸데없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한 다음에 누가 도와줍니까? 친구가 어디 있습니까? 위로해주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가 믿음에 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그것이 바로 되는 것이지, 죄만 짓고 나가다가 하나님의 도움을 못 받으면 결국 사람 중에서도 도와줄 자가 없습니다.

본문 3절에 “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손에 붙이시면 이리로 갈 길도 없고, 저리로 갈 길도 없습니다. 앞으로 나갈 길이 없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꼼짝 못하고 잡혀서 포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4절에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종교 생활이 비참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라고 하였는데,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전에는 시온의 도로가 절기를 지키러 가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다가 패망하여 절기를 지키러 올라가는 사람도 없고 내려가는 사람도 없이 시
온의 도로가 처량해졌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께 제사 드리느라 많은 사람들이 시온의 길에 왕래하며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치던 때가 가장 복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하고 교만하고 우상을 섬기고 의식적으로만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와 이제는 그 길이 다 황폐하여졌습니다. 요새도 교회에 나가는 일, 사경회에 참석하는 일, 기도하러 가는 일, 교회 봉사하는 일 때문에 여러 사람이 서로 가려고 하는 때가 복 있는 때
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해서 망하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다 끊어집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지도 못하고,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시간이 없고, 가서 기도할 곳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을 때에 기도하고, 봉사할 수 있을 때에 봉사하며, 믿는 일을 할 수 있을 때에 힘써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 제일 큰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새벽 기도 가는 것이 제일의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다음에 새벽 기도를 가려고 해도 못 갈 때가 옵니다. 또 기도원에 사경회 가는 것이 복 있는 때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다음에 사경회 못할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하나님을 위해서 좀 더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자기도 복을 받고, 자손도 복을 받고, 내세에 가서도 복 받는 법입니다. ‘제사장들이 탄식하며’란 성전이 불에 타고 제사하는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탄식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처녀들이 근심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많은 청년들이 죽고 마침내 그들도 곤고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는 근심입니다.

본문 5절에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이란 유다가 패망하매 대적되는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사람의 머리가 되었고 그 원수가 형통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에 와서 두목이 되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정치를 하므로 그들이 형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일제 시대 때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에 초등학교 교장은 거의 일본 사람이었습니다. 또 선생도 일본 사람이 많았습니다. 모든 기관의 기관장들이 다 일본 사람입니다. 우리 한국사람과 인격적으로 비교해보면 반 근짜리도 못되는 사람들을 세워놓고 한국 사람을 좌지우지하였습니다. 도지사, 군수 다 일본 사람입니다. 또 시장도 일본 사람입니다. 머리가 전부 일본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와서 머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원통합니까? 그 다음에는 그들이 한국 사람의 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한국 사람은 소작농만 하였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와서 다 머리가 되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라고 하였는데, 유다 백성이 죄 값으로 망할 때에 그들의 자녀들까지 끌려가 비참하게 종 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죄값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본문 6절에 “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저의 목백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처녀 시온’은 사랑 받고 귀히 여김 받으며 평안하게 지내던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하며 평안하던 예루살렘의 영광이 이제는 다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저의 목백’은 유다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꼴을 먹지 못하여 힘이 없는 사슴이 그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리는 것처럼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꼴을 먹지 못해서 배가고픈 사슴이 달아나기는 달아나는데 힘없이 비틀비틀하면서 달아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원수에게 점령당하여 환난과 궁핍을 당하여 곤고한 때에 과거에 어떻게 신앙 생활하였으며 어떻게 복되게 살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전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은혜와 복을 누리던 것을 추억해보면 지금 상태가 너무도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유다 백성들이 공주와 같은
존귀한 생활을 하였는데, 지금은 비참하게 되어 종 살이를 하고 죽을 지경에 빠져 있습니다. 옛날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너무 비참합니다.
옛날에는 하늘에서 살았다면 지금은 땅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 값은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 옵니다. 사람들이 대개 좋은 때가 지나고 환난과 곤고한 날이 와야만 전날의 좋은 때를 추억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을 주셨을 때에 감사하며 충성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좋은 환경을 연장시켜 주십니다. 요새 월남 사람들이 비참한 상태에 빠졌는데, 옛날에 망하기 전을 생각해보면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좋을 때에는 좋은 줄을 모릅니다. 좋은 때가 지나가고 환난과 곤고한 날이 와야만 전에 좋았다는 생각이 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좋게 해주셨을 때에 감사하고, 거기에
서 충성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향락주의로 나가고, 하나님께 대해서 불 충성으로 나가고, 이기주의로 나가다가 망한 다음에 후회해야 아무 쓸데없습니다.
저는 새벽에 봉원동 기도실에 갈 때에 참 감사합니다. 자유스럽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기도실로 걸어가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북 같으면 기도하러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북 같으면 기도하러 가지 못합니다. 또 갈 시간도 없습니다. 늘 강제 노동을 해야 하는데 언제 가겠습니까? 기도하러 자유스럽게 걸어가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또 건강을 주셔서 걸어가게 해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감사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망한 다음에 그 전이 좋았다고 해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라고 하였는데, 유다 백성들이 죄 값으로 대적의 손에 빠졌으나 그것을 보고도 도와주는 자가 없고, 그 대적들은 백성을 보고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전에 친구되었던 자는 배반하고 물러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도와줄 자가 없습니다.

본문 8절에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전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높이 받들었으나,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벌하실 때에 벌거벗은 적신이 되었고, 그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멸시하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니’란 음행 죄 범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육신의 음행 죄도 지었고(겔 33:26), 우상을 섬기고 세상과 벗되는 영적 음행도 많이 지었습니다(약 4:4).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란 음행할 때에 망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가 비참하게 될 줄 모르고 음행의 즐거움에 미혹되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과 짝하는 것이 다 음행하는 죄입니다. 그런 성도는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고 거침없이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음행하면 낮아지고, 비참하게 되며, 쫄딱 망하고, 원수가 조롱하며,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같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서 시온의 도로로 가는 것이 제일 큰 복인 줄 알고 믿음에 바로 서서 나가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