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예레미야애가 3:1-28 고난 중의 예레미야가 소망을 가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고난 중의 예레미야가 소망을 가짐
예레미야애가 3:1-28

1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 2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3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4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5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10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 11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 12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13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 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버렸음이여 18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25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1. 예레미야의 고난과 탄식

본문 1절에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서 유다 백성이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가 불사른 바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하여 선지자가 제일 많이 고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멸망을 자기의 당함과 같이 생각하고 성전이 훼파된 것은 자기의 몸이 사라지는 것같이 생각하였습니다. 예레미야 개인으로 볼 때에는 바벨론의 침략에도 왕의 특명에 따라 포로로 잡혀감을 당하지 아니하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과 유다가 망하는 것을 볼 때에 자기가 망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제일 많이 고난을 당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로 행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광명한 빛 가운데 행하지 못하고 환난과 풍파, 고난 가운데로 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이렇게 되었고 예레미야도 이렇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의 고난은 
첫째로 여호와께 매를 맞은 것이고, 
둘째는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는 본문 3절에 나옵니다.
본문 3절에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자주 나를 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종일토록 자주자주 매를 맞은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힐 때도 있었고 매를 맞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유다 백성 전체로 볼 때에도 죄 값으로 자주자주 매를 맞은 것입니다.

본문 4-6절에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신 것이고, 
다섯째는 뼈를 꺾으신 것이며, 
여섯째는 담즙과 수고로 에워싸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가죽이 다 째지고 뼈가 다 꺾이는 고난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다 백성 전체도 살과 가죽이 쇠해진 것과 같고 뼈가 다 꺾인 것과 같습니다. 예레미야 자신도 살과 가죽이 쇠해지고 뼈가 꺾인 것과 같은 고통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쓴 고통의 수고로 에워싸셔서 평안의 길로 보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일곱째는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고, 여덟째는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신 것입니다. 예전에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사슬에 얽매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착고에 채워졌었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0장 2절에 “이에 바스홀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아홉째는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 안도와주신 것입니다. 쇠사슬에 얽매이고 사람에게 얽매어서 나가지 못하게 되고 쓴 것과 고통만이 계속되는데, 거기서 구해달라고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도와주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9절에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 번째는 내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다듬은 돌을 단단히 쌓아 나갈 틈이 없도록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가 나갈 수 없도록 앞길을 막으셨습니다. ‘첩경(捷徑)’은 지름길인데, 하여간 곧장 나가지 못하게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라고 하였습니다. 열한 번째는 원수들이 나를 집어 삼키려고 은밀한 곳에 엎으려 기다리는 것입니다. 원수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키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두 번째는 내 몸을 찢으시고 나로 적막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몸을 찢기는데도 하나님께서 안 돌보아주시고 내버려 두셨습니다.

본문 12-13절에 “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세 번째는 나로 과녁을 삼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과녁삼아 사방에서 예레미야를 향해 활을 쏘는 것입니다. 열네 번째는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신 것입니다. ‘허리’는 요긴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매로 이스라엘의 허리, 예루살렘의 허리가 맞은 바 되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예레미야가 자신이 맞은 것처럼 여기며 허리를 맞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 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다섯 번째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예레미야를 조롱하고 노랫거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를 노랫거리로 삼은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다가 망하기 전에도 예레미야를 조롱하였고 망한 후에도 예레미야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몰아쳤습니다. 예레미야 43장 2절에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라고 하며 예레미야를 비방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기 전에도 그러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바벨론왕에게 항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몰
아치며 조롱하였습니다.

어느 때에나 참 선지자를 몰아치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네들이 잘못한 것을 정당화시키려니 바로 하고 바로 가르치는 자를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선지자를 비방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을 미쳤다고 하였고, 예수님께는 귀신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자를 조롱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게도 귀신이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8절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지를 귀신이 들
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지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가리키는 사람을 무조건 비방하는 것입니다. 비방하고 몰아쳐대는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15절에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열여섯 번째는 쓴 것으로 취하게 하신 것입니다. 고통에 취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일곱 번째는 조약돌로 내 이를 꺾으신 것이고, 열여덟 번째는 재로 나를 덮으신 것입니다. ‘조약돌’은 작은 돌인데, 그것으로 내 이를 꺾으셨다는 것은 작은 일, 작은 사건들로 선지자의 이를 꺾어 무엇을 먹지 못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시고 입에 상처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재로 덮으셨다는 것은 매장하였다는 뜻입니다. 재로 덮었으니, 형편없이 매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덮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선지자를 매장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작은 일로 선지자의 이를 꺾어서 말을 못하게 하시고, 재로 덮어서 매장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7-18절에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아홉 번째는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신 것이고, 스무 번째는 복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심령의 평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언제나 심령의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망하는 것을 볼 때에 예레미야의 심령이 많이 상한 것 같습니다. 신앙이 좋은 예레미야도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고 자기는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을 때에 심령의 평안이 없고 복을 다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세우려는 마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만 심령의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전에도 심령의 평안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15장 18-19절에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같으시리이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예
레미야가 심령의 상처를 받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물이 말라 속이는 시내와 같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는 네가 먼저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사업주의에서 골방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겠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천한 것’은 인본주의, 제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버리고 귀한 것을 취하라는 것입
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데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에 굳게 서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맡기지 못하고 제가 하겠다는 생각이 예레미야에게 있었습니다. 망한 다음에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니 너무 속상해 하면 안 되겠는데, 예레미야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너무 속상해 하는 것도 치우치는 것입니다.

2. 고난 중에서 주의 긍휼과 약속을 믿고 소망을 가짐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라

본문 19-23절에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가운데에서 절망에 빠져 소망이 없는 것 같지만 ‘소망이 있습니다’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낙심이 되어도 다시 올라오는 것입니다. ‘저의 상태는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과 비참함 가운데 있지만 믿음으로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고 하나님을 생각해보니까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의 무궁함을 생각해보니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절대로 버리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니까 소망이 생겼습니다. 진멸하지 않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러졌다가 일어서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나의 생명이시오, 나의 피난처시오, 나의 모든 것, 전체라는 뜻입니다.

본문 25절에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 간구하는 영혼에게 반드시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믿고 간구하는 자리, 기다리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을 베푸시고, 그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본문 26절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따라서 간구한 다음에 잠잠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니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이사야 30장 15-17절에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쫒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잠하고 안연하여 하나님만 신뢰하면 저희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잠잠하며 믿음을 써 나가면 하나님께서 살길을 열어 주십니다. ‘아, 이제 큰일 났다. 어떻게 할까, 도망쳐아 할까?’하니까 도망할 일이 생겼습니다. 도망칠 생각을 안 하면 도망칠 일이 안 생겼을 것인데, 도망할 생각을 하니까 도망할 일이 생깁니다. 빨리 가야겠다고 하니까 빨리 가는 사람보다 더 빠른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면 도리어 걱정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본주의로 힘을 쓰면 따라오는 사람이 더 빨리 따라옵니다.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아니하면 사람이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잠잠하여야만 모든 것을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잠잠히 그날그날 하나님께서 주신 일만 해나가는 것이 바로 서는 것이고 평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순종함으로 잘 메고 나가야 함

본문 27-28절에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일 학교를 맡은 자는 주일 학교 멍에를 메고 나가는 것이고, 심방을 맡은 자는 심방의 멍에를 메고 나가는 것입니다. 집사의 멍에, 장로의 멍에, 교역자의 멍에 등 멍에를 메고 잘 감당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젊었을 때는 놀다가 늙으면 믿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늙어서 멍에를 메야 얼마나 메겠습니까. 젊어서부터 메고 나가야 합니다. 멍에를 안 메겠다고 하면서 벗으려 하면 안 됩니다. 소가 멍에를 메고 나가다가 벗어버리고 달아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소는 팔아 치우고 잡아먹습니다. 우리는 멍에를 잘메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바벨론의 멍에를 메는 것은 바벨론의 환난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고난과 연단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아니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잔은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달게 마시면서 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멍에를 지는 자가 복이 있고, 젊었을 때부터 고난과 연단을 많이 받는 것이 좋습니다.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아니하고 편안한 사람들은 실력이 없습니다. 많은 고난과 연단을 받아야 영적인 깊이가 있고 귀한 보화가 되어 나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항상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부터 연단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고난을 많이 받고, 거기서 하나님을 잘 섬겨나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젊었을 때부터 멍에를 메고 고난을 받으며 믿는 것이 좋습니다. 연단을 많이 받는 것이 좋습니다. 말한 마디를 해도 몇 십 년 연단 받은 사람이 하는 것은 다릅니다. 오랫동안 연단을 많이 받은 사람은 말 한 마디 속에도 연단 받은 것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에 멍에 메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고 고난과 연단을 많이 받는 것이 좋습니다. 책망도 받아야 하고 멸시도 받아야 하고 천대도 받아봐야 합니다. 밥도 굶어봐야 하고 매도 맞아봐야 합니다. 여러가지 연단을 받아 쓴 것, 단 것을 다 맛봐야 조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멍에 메는 것이 순종입니다. 소가 가라 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고, 돌아라 하면 도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의 멍에를 메고 잘 순종해나가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인데, 잠잠히 메고 나가야 합니다. 못하겠다는 생각은 그만 둬야 합니다. 도망치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잘 메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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