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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8:28-34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로마서 8:28-34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8:29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 

8:31 그러면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 

8:32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지 않으시겠느냐?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소하겠느냐? 의롭다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8:34 누가 정죄하겠느냐? 죽으셨을 뿐 아니라 살리심을 받으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하나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 주신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굶주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겠느냐? 

8:36 기록된 것과 같으니, "우리가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며, 도살될 양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하였다. 

8: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8:38 나는 확신한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력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다.


1.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본문 28절)고 하였습니다. 또한 구역(舊譯)성경에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되느니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음으로 그 사랑을 받아들여서 사랑의 세계에서 살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영의 소리입니다. 하
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소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아바아버지라 부르는 그런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해서 유익하게 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4:10-11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해서 유익하게 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간다, 믿는 일을 이루어 나간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즉 모든 것이 합동해서 믿음의 구원역사가 다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선을 이룸

‘이 모든 것이 합력한다’는 것은 좋은 것, 나쁜 것, 쓴 것, 단 것인 모든 것이 합력하는 것인데, 그렇게 선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선을 이룬다’는 것은 구약의 말씀대로 유익하게 된다는 뜻과,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나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한 것인데, 그 선함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닥치든지 그것이 유익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또 구원을 이루어나가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자를 예정하심

예정예지(豫定豫知)

본문 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이란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백성을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앞으로 태어나서 예수를 믿을 것을 하나님이 예지하시고 그 사람을 택한 “예지예정(豫知豫定)”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의 대상자로 먼저 예정해 놓고 예지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택해 놓으시고 예수 믿을 것을 아신 “예정예지”가 맞습니다. 

예지예정은 하나님의 주권이 무시되고, 구원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따라온 것이 됩니다. 알미니안주의는 이 다음에 세상에 사람이 나서 예수를 믿을 것을 알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택했다고 믿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을 것을 알고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택하여 놓으셨고, 그 다음에 알았다는 예정예지입니다.

예정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임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하였는데, 미리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3:2에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즉 유대 사람만 알았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다른 나라 사람은 하나님이 몰랐나? 애굽 사람이나 바벨론 사람이나 하나님이 몰랐을리가 있습니까? 너희만 알았다는 말은 너희만 알아주었다는 말로 즉 하나님의 백성만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알았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과 알아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실 때에 사랑해서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4:8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전체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누구에게 주어야 되겠으므로 그 사랑을 줄 대상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백성을 내어야 되겠다”하시고 택한 백성을 내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미리 아신 자를 택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그 사랑을 줄 대상자를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임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선택한 것은 무조건적 선택입니다. 그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 택한 것이 아닙니다. 또 이 다음에 예수를 믿을 줄 알고 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택한 백성을 내기로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택한 백성을 예정하셨습니다. 즉 선택 예정, 창조 예정, 타락 예정, 구속 예정입니다. 예정의 세계에서 다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언제부터 사랑하셨는가? 창제 전부터 사랑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4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창세 전에 성도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줄 대상자로서 택한 백성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내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미리 아신 자를 미리 예정했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자를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택한 백성입니다. 택한 백성이 아니면 예수를 믿지 못합니다.
 
본문 29절 하반절에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정을 했다는 뜻입니다.

부르신 이를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심

본문 30절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란 예정 된 사람, 즉 택한 백성을 불러서 예수를 믿게 했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믿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셔야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을 선물로 안 준 사람은 안 믿습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입혀서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하나님 앞에 의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까? 택한 백성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속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하면 그 한마디가 뿌리가 깊습니다. 거저 “믿습니다”가 아닙니다. “믿습니다” 할 때에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믿음을 주어서 믿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안 주고 그 사람에게 믿음을 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창세 전에 택하셨기 때문에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면 그 사람을 왜 하나님이 택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고,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예수를 지금 당장에 안 믿는다고 해서 불택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안 믿어도 내일 믿을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불택자입니다. 불택자는 지옥에 갑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즉 예수 믿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불택자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사죄와 칭의를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이며, 택한 백성이며, 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성도

본문 31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는데, 대적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주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도 주셨습니다. 또한 보호해 주시고, 또 의롭다 해주시고 자녀를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이기는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또한 대적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이기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고, 국가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고, 세상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므로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은사를 주심

본문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은 독생자인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시는 그 큰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아낌없이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란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하나님께서 왜 다른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으시겠느냐?는 말입니다. 즉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딸을 시집보낼 때에 좋은 것을 다 해주려는 생각이 있습니다. ‘없다, 없다’고 해도 딸 줄 것은 있고, 쥐 줄 것, 도적 줄 것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딸에게 좋은 것을 줄까?’하는 생각이 다 있습니다. 좀 넉넉히 사는 집의 딸이 시집갈 때에는 열쇠 세 개를 준다고 합니다. 자동차 열쇠, 아파트 열쇠, 금고 열쇠입니다. 딸을 사랑하므로 다 해줍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도 딸에게 아끼지 않고 다 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셨는데 무엇을 아끼시고 안 주시
겠습니까?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라는 말은 필요한 것은 다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쓴 것도 유익을 위해 주심

하나님은 아들까지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주십니다. 그런데, 단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쓴 것도 주십니다. 그런 것을 은사로 주시는 것입니다. 단 것, 쓴 것, 매운 것, 짠 것 모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모두를 영적으로 유익하고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은사로 다 주십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약을 주지 않겠습니까? 아이를 위해서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히고, 부모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을 모르고 병원에 가면 싫어하고, 주사 맞는다고 벌벌 떨고 큰 소리 칩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아이 위해서 주사도 놓아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십니다. 다 복된 것만 주시고 은혜가 아니면 주시지 아니하고, 제일 좋은 것으로골라 주십니다. 제일 필요한 것은 다 주십니다. 독생자까지도 주신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징계까지도, 여러 가지 시련까지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다 주십니까?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4. 택하신 자들을 정죄할 수 없음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판결 받은 성도

본문 33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했는데 누가 그것을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최고 판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국가로 말하면 대법원입니다. 최고 판결하 는데서 “의롭다, 의인이다” 하는데 누가 그 사람을 죄인으로 인정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판결하셨기 때문에 정죄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 법정은 지방법원, 고등법원, 그 다음에 대 법원이 있는데, 대법원까지 가서 거기서 판결나면 판결 난 대로 하는 것입니다. 대법원에서 판결 난 것은 더 이상 말 못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최고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의롭다하신 뒤에는 누가 능히 정죄하거나 송사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누가 우리를 죄인이라고 송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셨기 때문에 법적으로 정정당당한 것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늘 간구하심

본문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정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 정죄할 수 없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그곳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우리의 죄 값을 위해서 대신 죽어 주셨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여 주시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런 하나님의 큰 사랑을 우리가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야겠습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내려왔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이며 또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가 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날래야 벗어 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감사함으로 사는 것이며,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해서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뭘 하십니까?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세례 문답할 때에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뭘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어떤 사람은 놀고먹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놀고먹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가셔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무슨 염려 걱정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밤낮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계시기 때문에 마귀가 오더라도 손도 못 댑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연약하여 기도할 줄 몰라도,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려고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승리하도록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하고, 승리하고,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는 일 잘하도록, 좋은 믿음을 가지도록, 하나님 아들로써 합당한 좋은 아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못된 아들을 위해서는 그가 회개하고 좋은 사람, 믿음 잘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 잘 지키게 해달라고 누가 기도합니까?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우리 연약함을 도우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말씀 순종,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 믿는 일에 승리하게 하시기 위해서 기도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신다는 것, 지금도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늘 믿으십시오. 지금도 우리가 어디 거리에서든 차타고 갈 때에도 예수님께서 기도해주십니다. 시험이 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 이기라고 기도해주십니다. 환난이 올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이 환난 이기라고 지금도 기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설령 믿음 지키기 힘들 때에도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해주시는데 우리가 왜 못 이깁니까?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을 다 주십니다.

로마서 8:15-35 여호와께 감사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여호와께 감사하라
로마서 8:15-35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
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15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그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 짖는다. 

8:16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이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다.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8:19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니, 

8:20 피조물이 허무한 것에 굴복하게 된 것은, 자기 뜻이 아니라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 

8: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도 속으로 탄식하면서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8:24 우리는 이 소망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겠느냐?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8: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께서는 친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8:27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아시니, 이는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8:29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 

8:31 그러면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 

8:32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지 않으시겠느냐?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소하겠느냐? 의롭다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8:34 누가 정죄하겠느냐? 죽으셨을 뿐 아니라 살리심을 받으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하나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 주신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굶주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겠느냐? 

1. 일반 은총에 감사하라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절인데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한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출애굽기 23:16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수장절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를 크게 둘로 나누면 첫째는 일반 은총의 영역에 있어서 감사해야 하고, 둘째는 특수 은총의 영역에 있어서 감사해야겠습니다. 일반 은총은 농사하는 것이라든지, 건강이라든지, 일반 사람들이 누리는 것으로 그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1년 간 농사 잘되게 해준 일, 또 1년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 일, 우리가 이 세상 올 때에는 빈손으로 왔지만 1년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습니다. 또 건강을 지켜주시고, 건강치 못한 사람은 그보다 더 비참한 가운데 빠지지 않게 해주신 것을 감사해야 되고, 세상 떠나는 사람은 천당 가는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또 1년간 평안과 안정을 주셔서 가족들이 무사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2. 특수 은총에 감사하라
 
특별히 특수 은총 영역에 있어서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로마서 8장은 특수 은총으로 이것은 불신자에게 없는 신자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아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됨을 감사하라

본문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이방 사람이었고 마귀의 종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택해 주시고, 또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양자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려주시고, 하나님과 연합시켜 주셨습니다. 즉 우리의 중생한 영과 하나님의 영이 서로 연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양자의 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중생한 영이 산 영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부름에 응답해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고아와 같이 비참한 가운데 다니다가 멸망할 우리를 하나님이 불러서 아들로 삼아주시고 또 아들의 영을 주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육신의 아버지나 있지 영의 아버지는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마귀가 자기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참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해 주심을 감사하라

그 다음에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장차 하늘나라 기업을 물려받을 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장차 하늘나라의 유업을 전부 물려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후사의 자격을 만들게 하시려고 여러 가지 고난을 주셔서, 연단을 시키십니다. 거기에 대해서 감사해야겠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현재의 고난도 큰 것을 주시려고, 즉 그 고난을 통해 하늘나라의 후사로 삼으려고 연단시키시는 것이므로 거기에 대해서 감사해야겠습니다.

◉ 만물구속

본문 20-21절에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른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 짐승들, 초목, 공중의 새, 바다의 어족 등이 다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원하는 바는 하나님의 참 아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관계를 가져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다 가리워졌습니다.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고 있습니다. 죄에게 굴복하고, 마귀에 이용당하고, 불의한 일에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바라는 바는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바로 인도하고, 바로 이용당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즉 이 세상 만민이나 만물이 하나님의 바른 자녀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을 바로 인도하고, 바로 이용하고, 바로 세워나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사명이 큽니다. 즉 만물을 바로 인도하고 바로 세워나가는 사명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만물이 죄악에 이용당하고, 마귀에 이용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민과 만물을 바로 다스리고, 바로 세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이용당하도록 하여야겠습니다. 거기의 일환으로 우리가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나라에 대해서 하나님 뜻대로 바로 하여야 그 나라도 하나님께 바로 이용당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금년에 대통령 선거할 때에도 하나님 뜻대로 바로 다스릴 대통령을 선출해야 됩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다스리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바로 인도할 사람을 선택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사람, 불의한 길로 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선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이 나라를 세워나갈 사람, 이 나라를 통치할 사람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 몸의 구속

본문 23절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5절에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양자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여기는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15절에서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영을 받아서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아버지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양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양자될 것”이란 우리의 영은 양자가 되었는데, 우리의 육신이 즉 우리의 몸이 아직도 양자의 자격을 이루어 나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죄짓는 것은 양자의 자격이 아닙니다. 양자의 자격은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인도대로 살아야 양자의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방탕과 술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쟁투와 시기 등은 양자의 자격이 아닙니다. 양자의 자격을 만들라는 것은 죄를 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가 되었으니까 “양자의 생활을 하라, 양자의 인격을 건설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나?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 계명대로 순종했나? 순종하면 양자의 자격이 되고, 순종하지 않으면 양자의 자격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바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즉 진리를 순종 못한 것을 회개하고, 또 주일을 지키지 못한 것, 십일조를 드리지 못한 것,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의와 진리와 거룩을 입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양자의 자격입니다. 모든 죄를 다 끊어버리고 의와 진리와 진실, 거룩, 경건, 신앙양심을 쓰므로 양자의 자격을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심을 감사하라

본문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지 못한 것을 성령께서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죄 짓고 나가는 것은 성령님을 탄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날마다 탄식하면서 기도해 주십니다. 또 성령님만 기도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기도해주십니다. 

본문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사도신경에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또 스데반이 죽을 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일어서서 도와 주셨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보호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악할지라도 예수님이 만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심을 감사하라

본문 31-32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고 하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또 우리를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 주시고, 또 우리를 위해서 보호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인도해주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는데 다른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다른 것도 다 은사로 주십니다.
딸을 아끼지 않고 사위에게 준 부모가 딸이 시집 갈 때에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아끼지 않고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하고, 더 못해 주면 속이 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는데 무엇을 하나님이 아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을 다 은사로 주십니다. 이렇게 큰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폭포수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음을 감사하라

본문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끊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폭포수와 같이 계속 쏟아내려 부어 주시는 사랑이므로 끊을 수가 없습니다. 폭포수 물이 떨어지는데 그것을 어떻게 끊어 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폭포수와 같이 우리에게 계속 쏟아 내려 부어주시는 사랑이므로 그 사랑을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가 없고, 그 사랑을 버리고 어그러진 길로 갈지라도 다시 그 사랑 속으로 인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계속 따라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배반하고 달아나도 또 따라오며 계속 쏟아내려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칼로 죽인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죽여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며, 굶어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굶을 때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칼로 죽여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 지금 입을 것이 없어도 “그래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감사하라

본문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즉 합동해서 유익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당하는 일, 한 가지만 보면 유익이 안 될 것 같아도 다른 것과 합해 놓으면 하나님이 결국에는 반드시 유익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아니면 주지 아니하시고, 복이 아니면 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은혜로 주십니다. 고난도 연단을 시켜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3. 감사하는 방법

몸 바치는 생활로 감사하라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 되는가? 심령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찾아보며 감사하여야 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 우리에게 와 있나 생각해 보면, 측량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바칠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못 다 갚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을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바치며, 몸 바치는 생활을 하여야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물질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물질로 감사하라
 
출애굽기 23:15에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고 하였고, 신명기 16:16-17에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에 네게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신 사람은 자기 힘대로 하나님께 많이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적게 주신 사람은 적게 드려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힘대로 연보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또 자기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바쳐서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물질 면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힘대로 힘써서 하나님께 바쳐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진정한 감사생활을 하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8:1-24 죄와 사망을 이기는 비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죄와 사망을 이기는 비결
로마서 8:1-24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느니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게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
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8:3 율법이 육체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으니, 곧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 속죄 제물로 삼으셔서, 그 육체 안에서 죄를 심판하신 것이다. 

8:4 이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다. 

8:5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육체의 일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 

8:6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나,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8:7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께 원수가 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다. 

8:8 육체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8: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 너희는 육체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산 것이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다.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도록 육체에게 빚을 진 자가 아니다. 

8:13 너희가 육체를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8:14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8:15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그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 짖는다. 

8:16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이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다.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8:19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니, 

8:20 피조물이 허무한 것에 굴복하게 된 것은, 자기 뜻이 아니라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 

8: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도 속으로 탄식하면서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8:24 우리는 이 소망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겠느냐? 
 

1. 그리스도 안에서 삶으로 이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죄에서 해방되고 사망을 이김

죄와 사망이 모든 인류에게 다 임하였고, 인류를 정복하여 마지막에 사망으로 결론을 맺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왕도 이 사망을 면할 수 없고, 영웅, 호걸, 열사, 학 박사, 유명한 과학자들도 다 사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럼 이 사망과 죄를 이기는 비결은 무엇일까?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죄에서 해방되고 사망을 이깁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실제로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힘입어 영적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를 받아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

그 사람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정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정죄함이 없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가책이 없고, 부끄러울 것 없이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교통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살면 아무 가책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그 사람 속에 역사하고, 구속의 세계에서 감격한 신앙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정죄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의 피로 다 구속해 주셨으므로 ‘부족함이 없이 담대하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간다’고 성경이 말했습니다.

2. 예수 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김

예수 믿는 사람은 속에 생명의 능력(중생한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김

본문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법’이라는 말은 ‘권세와 능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권세와 능력이, 죄와 사망의 법과 권세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부터 7장까지 보면 사람이 죄를 안 지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고, 로마서 3장 12절에,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다 치우쳐 행하고 다 멸망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 사람은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안 지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고자 하나 악이 함께하고, 속사람은 선을 즐거워하지만 다른 법이 있어서 자신을 죄 가운데로 사로잡아 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7장에 가서 낸 결론인데,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 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마지막에 탄식을 하다가, 이제 7장 마지막 절에 가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이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안 지을 수 없고, 아무리 사람이 선을 행하려고 해도 행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선을 몇 가지 행한다고 하지만 그 다음에 또 죄를 짓고, 또 넘어가고, 마지막에는 사망의 권세에 삼켜지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율법대로 행하려고 해도 행해지지 않고 다 죄 아래 갇혀 있습니다.
이기는 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깁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다는 말하고 같은 말입니다. 죄와 사망을 이기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긴다는 말입니다. 이기려면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을 계속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을 받아서 우리는 중생했습니다. 중생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에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으로, 예수 믿기 전의 영혼은 다 죽었던 영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영혼은 중생한 영혼입니다. 산 영혼이란 말입니다. 살아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산 영혼, 중생한 영혼 그것이 생명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죽은 영혼하고는 다릅니다. 죽은 영혼은 아무 힘도 없고 동작도 없고 역사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중생한 사람들은 생명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 생명의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을 우리 중생한 영혼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중생한 영혼 속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외부에서도 감동을 시키시고 계십니다. 중생한 영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또한 외부에서 감동을 시키시는데 그 성령의 능력은 만능입니다. 그런 능력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 속에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 이 두 가지를 쥐어 주셨습니다. 이제 그 능력을 쓰기만 하면 모든 마귀를 다 이기고, 모든 권세를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주셨는데도 안 쓰고 육신대로 나가면, 그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죄에 집니다. 그러나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이깁니다. 그 능력과 그 권세가 무한하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이기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선을 행하려고 하고 무슨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것과, 예수 믿는 사람이 선을 행하려고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 차이는, 안 믿는 사람은 육신의 몸으로 하겠다는 것으로서 불가능한 것이고, 우리는 영의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기 때문에 하면 됩니다.

한 예화로, 우리 기도원 올라가는 길 중간 정도에 돌담 쌓은 별장이 하나 있습니다. 그 별장 앞길을 좀 넓혀야 되겠는데, 그 별장 주인 할머니가 못 넓히게 합니다. 개천은 쓰지도 않는 곳인데 괜히 그 길을 못 넓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전도부인을 먼저 보내고 난 다음에 제가 할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먼저 보낸 전도부인이 목사님 오신다고 전하니까 그 할머니가 마중을 나옵니다. 마중을 나오면서 그 할머니는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 손을 흔들며 나옵니다. 그래서 인사를 하면서 “저는 기도원에서 온 목사입니다”고 하니까 손 흔들던 폼이 없어졌습니다. 상대가 인사하는데 안 된다며 손을 흔들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인사를 하고, “언제 이렇게 이 별장을 지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10년 전에 지었다는 것입니다. “땅은 몇 평이나 됩니까?”하고 물으니 천 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원 때문에 폐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고 폐 끼치는 것에 대해 사과부터 했습니다. 그런 뒤에도 자기는 길을 못 넓힌다고 합니다. 조금도 안 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선을 좀 행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교회 나가시냐고 물으니까 절간에 간다고 합니다. 제가 “종교는 다 선을 행하자고 하는건데, 절간에 나가면 선을 행하라고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선을 행하면 다 복 받는다. 공자도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 갚아주고 악을 행하는 자는 화로 갚아준다고 그랬으니까, 불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그 할머니가 “아, 내가 왜 화 받느냐? 나는 악을 행한 거 하나도 없다. 내 땅 가지고 내가 안 준다는데 왜 화 받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공자가 그렇게 말했다는 말이다. 하여간 선을 좀 행하십시오. 선을 행하면 자손도 잘 되고, 아주머니도 잘 되고, 다 잘됩니다. 아주머니 보니까 나와 연령이 비슷한 것 같은데, 이제 얼마나 많이 사시겠습니까? 조금만 양보해주면 이 길로 다니는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다들 아주머니 축복해주고, 좋은 분이라고 할텐데, 양보 안하면 매일 다니면서 아주머니를 누가 좋다고 그러겠느냐? 이곳을 양보 안하면 얼마나 더 잘 살겠느냐?”하면서 생각해보라고 하고, 자꾸 선을 행하라고 따라다니면서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마지막에는, “그럼 두 자만 넓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부가 하나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앞으로 담을 칠 때는 도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담을 치기 전까지만 양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차가 다닐 수 있으면 되니까, “아, 좋다”고 했습니다. 담이야 언제 칠지 모릅니다. 담을 그 할머니 세상 떠날 때까지 못 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좋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허락을 받았는데, 그 사람이 이것저것을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자기 집 앞에 차가 빨리 다니니까, 차 빨리 못 가도록 시멘트로 턱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 해드린다고 했더니, 또 뭘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도 해드리고, 다 해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보니까 다른 말로 하면 안 되지만 ‘선을 행하라’고 하면 꼼짝 못합니다. 절간에 나가서 듣는 소리가 아무래도 선행하라는 것일 텐데, 아무 종교든지 선행하라고 하지 악을 행하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 믿는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안 짓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육의 사람으로 하는데 이것은 영혼의 힘이 없습니다. 또한 성령도 없습니다. 자기가 하려니까 그런 것이 되겠습니까? 안 되니까 뒤집어놓느냐 안 뒤집어놓느냐 그러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속에 생명의 능력, 중생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능력이 있으니까 우리는 해나가면 됩니다. 그 중생한 영혼을 쓰고 성령의 능력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말씀대로 역사하십니다. 진리의 성령이시기 때문에 진리대로 역사하십니다. 진리를 떠나서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데, 그대로 순종만 하면 만능입니다. 만능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는데, 죄와 사망을 다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사망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중생한 영혼은 절대 사망하지 않습니다. 영생합니다. 육신은 죽어도 영은 안 죽고 하늘나라에 갑니다. 사망의 세력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3. 예수 믿는 사람은 복음의 능력으로 이김

율법은 약하고 복음은 강하다

본문 3~4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이라고 하였는데, 율법은 연약하고 우리 육신은 강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연약하고 육신은 강한데 어떻게 율법대로 잘 행할 수 있겠습니까? 약한 율법의 역사가 강한 우리 육신의 힘과 상대하면 우리 육신이 율법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강하고 율법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육신보다 더 강한 복음이 와야 됩니다. 복음은 육신보다 더 강합니다. 성령의 역사도 율법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하고, 복음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하고는 아주 다릅니다. 율법은 연약하고 희미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완전하고 강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어 죄를 정하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심으로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니 복음이 얼마나 강한 것입니까? 복음이 강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도 그만큼 강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연약하기 때문에 그 성령의 역사도 그만큼 약하다는 말입니다. 

율법이 약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왜 율법은 약하고 복음은 강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율법이 연약하다는 것은, 그 율법 자체가 “이거 해라”, “하지 말아라”, “죄 짓지 말아라”, 또 “하나님을 잘 섬겨라”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것이 약하지 않습니까? 하라, 하지 말라는 것은 약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복음은 ‘죄 있는 자를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니 얼마나 강합니까? ‘나 때문에 독생자 예수께서 오셨고, 내 죄를 예수님께
서 다 짊어지셨다’는 것이 얼마나 강합니까? 또한 ‘대신 죽으셨다’, ‘나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합니까? 생각만 해도 아주 강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이 얼마나 강합니까? 율법은 ‘해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만, 복음은 아예 ‘피 흘려주시고, 건져내 주시고, 생명을 주셨다’라고 했으니 얼마나 강합니까? 그래서 율법은 연약해서 할 수 없지만 복음은 강하기 때문에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이 복음 안에서는 다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복음의 힘, 생명의 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가는 사람은 죄를 안 짓고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되면 죄를 절대 안 짓는다는 것이 아니고, 죄를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몇 가지 능력입니까? 생명의 능력, 성령의 능력, 강한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강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나갈 때에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죄를 못 이기는가 하면, 육신을 좇아 살기 때문에 못 이기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에 보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7~8절에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육신대로 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지 못합니다. 육신대로 살기 때문에 마귀와 죄도 이기지 못하고, 죄 가운데로 끌려갑니다. 육신의 죄악성이 강하니까, 육신대로 살면 죄 가운데 끌려가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무엇으로 살아야 이기느냐? 중생한 생명, 성령, 복음, 영으로 살 때에 그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으로 살아야 됩니다. 육신대로 살지 마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세상의 자랑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죄밖에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보면 열다섯 가지 죄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살펴보십시오. 음란, 호색, 방탕, 술 취함, 우상 숭배, 술수 등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술을 먹는가 하면, 육신의 생각으로 기울어진 사람들이 술을 먹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술 먹으면 안 됩니다. 술 먹고, 담배 피는 것은 육신 중심으로 나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귀를 못 이깁니다. 육신으로 빠지는데 어떻게 마귀를 이기겠습니까? 아예 술, 담배를 끊어야 됩니다. 이걸 끊고, 그리고 영으로 돌아서십시오. 전에는 육신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영으로 산다고 하면서, “이제는 중생한 영을 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인 복음 안에서 산다”, 나 위해서 피 흘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면, 이제는 죄를 이길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짐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그런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율법의 요구대로 하려고 해도 못 했습니다. 율법대로 하려고 해도 죄가 같이하고, 율법대로 하려고 하다가도 넘어가고, 율법은 연약하고 육신은 강하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생명과 성령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가니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져 나갑니다. 다 됩니다. 과거에는 안 되던 것인데, 이제는 그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니까 죄는 뚝뚝 떨어져 나가고, 죄는 보기도 싫어집니다. 성령의 요구가 이루어져 나가고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 때에는 죄는 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죄 짓는 게 좋아 보이면, 벌써 이건 생명의 세계와 성령에서 떠나서 육신으로 기울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육신의 것은 좋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방탕하고, 주색잡기하고,사치하고, 연락하는 것인데 그걸 생각만 해도 싫지 않습니까?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은 거룩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생명의 세계에서 살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고, 복음 안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천국입니다. 천국이고 만능입니다.
만능이 속에서 나옵니다. 율법을 다 이룰 수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과거에는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됐었는데, 이제는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사니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져서, 율법적으로도 죄가 없이 죄를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죄를 계속 지었었는데, 이제는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사니까 죄가 뚝뚝 떨어져 나갑니다. 죄는 보기도 싫고, 죄 짓는 건, 생각도 안 합니다. 성령으로 기뻐하는 생활만 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요즈음 휴가철인데, 신문에 어떤 사람들이 휴가 가려다가 ‘가뭄이 들어서 농민들이 다 고통 가운데 빠졌는데 어떻게 노라리 하러 가겠느냐’고 안 갔다고 했답니다. 불신자들도 좀 양심이 있는 모양입니다. 백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더위와 가뭄인데, 51년 만에 온 가뭄이고 더위는 백 년 만에 오는 더위랍니다. 우리가 잘 극복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회개하고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비를 내려주실 줄로 믿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방탕하는 것은 보기도 싫고, 술 먹는 것은 보기도 싫고, 술집 여자들 배꼽 다 내놓고 다니는 것 보기도 싫게 됩니다. 넓적다리가 더 보이도록 올려 자른 그런 것 입고 돌아다니고, 극도로 방탕하는 가운데로 나가는데, 그런 것이 보기도 싫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 보기 좋은 사람은 벌써 눈이 비뚤어진 사람입니다. 마귀가 눈방울을 비뚤어지게 해서 그런 것이 보기 좋은 것입니다. 눈방울을 하나님께서 바로 세워놓으셨다면 그런 것은 보기 싫어집니다. 탄식을 하게 됩니다. 저런 게 있기 때문에 세상이 망하겠다고 탄식이 나옵니다.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4. 성도는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

본문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 이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인 우리는 후사입니다.
후사라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와 그 하나님 나라의 그 전체를 물려받을 사람들입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것을 다 물려받았다는데, 그런 것 물려받아야 뭐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의 것을 물려받았지만,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것을 물려받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물려받으면 영원히 남습니다. 영원히 안 없어집니다. 세상 것은 물려받아야 몇 년 가겠습니까? 영원무궁토록 우리 아버지 나라와, 우리 아버지의 그 영광과, 우리 아버지의 그 모든 풍부함과 풍성함과, 우리 아버지의 그 충만함과, 그 모든 것을 이제 우리가 물려받게 됩니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

이렇게 후사로 삼아놓으셨는데, 우리가 후사의 자격이 없습니다. 자격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자격을 어떻게 해야 만들까? 본문 17절에 ‘고난도 받아야 된다’고 했는데, 후사의 자격을 만들어나가는 데에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고난 가운데서 후사를 만들어 나갑니다. 군인을 하나 제대로 만들려면 훈련소에 보내서 많은 고난가운데 훈련받게 하는데, 하나님의 후사의 자격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난과 연단이 많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연단 많이 시키시는 사람, 연단 많이 받는 사람, 고난이 많은 사람, 그리고 그 고난을 잘 이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많이 물려주시는 것입니다.
고난 없는 사람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본문 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고,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데려다가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맡겨주시려는데, 마땅한 자격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자격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격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환난도 주시고, 저런 환난도 주시고, 여러 가지 연단을 시켜나가시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고난이 많음

말씀대로 살려면 고난이 많이 옵니다. 생명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려면 고난이 많이 옵니다. 그것을 다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생명의 능력으로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복음의 능력으로 이기면 후사의 자격이 만들어집니다.
연단 받은 자격을 가지고 중생한 영혼이 자라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고난 가운데서 말씀을 지켜야 살아납니다. 고난을 이겨야 살아납니다. 살아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점점 이루어져 나갑니다. 실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고난을 이겨야 실력이 있습니다. 지는 사람이 무슨 실력이 있겠습니까? 씨름하는 것이나 권투하는 것이나 레슬링 하는 것이나, 다 적이 있고 서로 싸우다가 먼저 때려야 이기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 혼자만 있어서 잘 한다고 하며, 자기 혼자 나가서 세계 일등이라고 하면 누가 일등이라고 인정하겠습니까? 혼자서 금메달 하나 만들어놓고 달고 다니면 누가 금메달로 인정합니까? 상대가 있어서 상대와 싸워서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겨야 그 자격이, 금메달감도 되고 은 메달감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격이 만들어지려면 고난이 많습니다. 권투선수가 금메달 따려는데 자기는 한 대도 안 맞고 남만 때리고 이길 수 있습니까? 자기도 많이 맞습니다. 자기도 많이 맞고, 남도 많이 때리고 그러다가 겨우 이기는 것입니다. 겨우 이기는 것이지, 쉽게 이기는 사람은 그다지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금메달 주시려고 상대와 싸우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상대는 마귀입니다. 우리 상대는 시험이고, 우리 상대는 성경 말씀대로 못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하고 싸워서 이기고 말씀대로 나가면 실력이 늘고 자격이 만들어집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가지고 하나님 앞에 갈 때에 후사의 자격이 있습니다.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갈 것

몸의 구속을 또한 이루어나간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탄식하면서 뭘 기다립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 몸의 구속을 이루어나가서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몸의 구속’이라는 것은, 우리 몸이 죄 가운데 있었는데 점점 이 죄에서 구속해내서 죄를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죄를 점점 떠나게 만드는게 몸의 구속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죄, 또 말로 짓는 죄, 행동으로 짓는 죄를 점점 벗어버리고, 우리 영혼은 자라나고,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 몸의 구속입니다.
몸의 구속은 죄와 세상에 빠졌던 몸을 점점 건져내어서 신령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진실한 선한 데로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서, 영혼은 자라나서 실력 있는 영혼이 되고,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며 자라나는 것입니다 

만들어진 만큼 맡기시는 하나님

모든 걸 다 이기고 후사의 자격을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가면, 그 만든 것만큼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맡겨주십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주시고,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주십니다. 열 므나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를 주시고, 다섯 므나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영원히 자기 것이 됩니다.
짧은 세상에서 잠시 잠깐 고난당하면서 이 몸의 구속, 영적 장성을 해야 합니다. 중생한 영은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우리 몸의 구속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속해주셨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시고, 하늘나라에 데려가셔서 후사로 삼으시고 또 만들어진 만큼 큰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로마서 8:1-17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사는 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사는 생활
로마서 8:1-17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8:3 율법이 육체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으니, 곧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 속죄 제물로 삼으셔서, 그 육체 안에서 죄를 심판하신 것이다. 

8:4 이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다. 

8:5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육체의 일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 

8:6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나,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8:7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께 원수가 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다. 

8:8 육체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8: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 너희는 육체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산 것이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다.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도록 육체에게 빚을 진 자가 아니다. 

8:13 너희가 육체를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8:14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8:15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그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 짖는다. 

8:16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이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음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정죄함이 없습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신령한 뜻은 ‘우리의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더불어 살기 때문에 아무 가책이 없다’는 뜻입니다.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로 힘입어서 그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정죄함에 없다는 말은, 즉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그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 앞에 가책되거나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음

본문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그리스도 밖의 죄와 사망의 법’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이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권세, 세력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다 해방시켜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을 이기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함

본문 3-4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육신은 강하고 율법은 연약하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우리 육신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지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육신이 강하여 율법을 다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보다 강하면 육신으로 하여금 율법을 다 지키도록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율법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인하여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예수님에게 죄를 정하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친히 못 박으심으로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죄를 정하셨습니까? 우리 모든 택한 백성들의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시켜 다 담당하게 하심으로서 예수님에게 죄를 정하셨습니다. 그 죄 값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와 같은 죄 있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육신에 죄를 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를 전부 다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 값으로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대속 혹은 속량이라고 합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대신 속해주었다는 뜻이고,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주고 샀다는 뜻입니다. 종이 얼마에 팔려갔는데 다시 종이 팔려간 값을 주고 그 종을 사온 것이 속량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 죄인의 육신의 모양으로 도성인신하게 하셔서 예수님에게 죄를 정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속량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보내 주시고, 속량해 주신 복음, 그 복음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은 강한 성령이십니다. 구약시대의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 약하게 역사했습니다. 즉 율법을 가지고 역사하는 성령은 약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가지고 역사하는 성령은 강하게 역사합니다. 성령은 구약시대의 성령이나 신약시대의 성령은 한 성령인데, 구약시대에는 율법이 약합니다. 율법이 약하므로 아무리 강한 성령이 역사해도 약하게 밖에 일을 못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복음은 강합니다. 강하므로 강한 성령의 역사가 다 나타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성령은 한 성령이지만 약하게 역사했고, 신약시대의 성령은 강하게 역사했습니다. 

예를 들면, 세계 일등(일류) 비행사가 비행기를 좋은 것을 타지 못하면 빨리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세계 일류 비행사라도 정찰기 같은 옛날 비행기를 타면 기술이 좋아도 빨리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형제트기를 타면 같은 비행사라도 훨씬 빨리 날아갑니다.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역사하던 성령도 강한 성령이지만 구약의 율법이 약하고 육신은 강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인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죄를 정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얼마나 강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보냈다”하는 것만 해도 강하지 않습니까? 또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하는 것도 얼마나 강합니까? 또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전가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속량해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강합니까? 강한 이 복음을 성령께서 가지고 역사하실 때에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나가시는 성령이십니다. 즉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나가는 복음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떻게 이루어 나가시는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육신을 가지시고 율법을 다 이루어 놓으셨으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육신을 좇아 살지 않고 영을 좇아 살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나갑니다. 과거에는 이루어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복음이 강하고, 성령의 역사도 강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면 다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복음을 참으로 받은 사람은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습니다”하고 몸 바쳐놓고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러면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이길 수 없던 것을 이길 수 있고, 올라갈 수 없던 것을 올라갈 수 있고, 가지 못하던 곳을 갈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증거입니다.

2.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함

본문 5-9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그 영적 능력으로 다 할 수 있습니다.

3. 독생자의 영과 양자의 영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 영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이시고, 또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은 성령이 예수 믿는 사람 속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시는지, 안 거하시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양자의 영

본문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생명과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왜 아버지라고 합니까? 아버지의 생명과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고, 아들도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고, 손자도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는데, 무슨 촌수가 그런 촌수가 있느냐?고 합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보고“아버지”라고 하였으면, 아들은 하나님을 보고 “할아버지”라고 하여야 겠는데, 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촌수는 합법적입니다. 할아버지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고, 아버지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고, 아들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고, 손자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여야 되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생명과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합니다. 손자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바 아버지”라는 말은 누구에게 배워서 하는 말이 아니고 본능적으로 나오는 말입니다. 본능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바 아버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며 통사정을 해야 됩니다. “아버지라고 하기가 좀 미안하다, 어떻게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겠느냐?”는 사람은 좀 위험한 사람이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 하고 중생한 영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아버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느냐? 또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느냐?는 것은 무엇을 보고 압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압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아버지가가 왜 안 들으시겠습니까? 다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리스도 영이 계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복음이 있고, 도성인신하신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령이 계시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고, 영으로 살기만 하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살면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을 굴복치 않게 되고,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살면 안 되고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으로 사느냐? 육신으로 사느냐? 이것이 믿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생활, 항상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영의 능력과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이겨나가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나가는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입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양자가 된 증거입니다.

독생자의 영

예수 그리스도는 독생자이고 우리는 다 양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독생자가 되었다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시는 성자의 영이, 예수님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의 육신과 영혼과 결합된 것이 독생자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과 우리와 똑같은 영혼이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예수님 속에 들어가서 결합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과 영혼이 있으며, 또 성자의 영이 있습니다. 육신과 영혼은 인성이며, 성자의 영은 신성입니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이 결합이 되어 한 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육신이 있고,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리스도 영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으므로 우리가 예수님과 같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도 육신이 있고, 영혼이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왔으므로 예수님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다, 또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지 말고 내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자기가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성경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신학을 하지 못하고 성경을 몰라서 잘못된 이단적인 요소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신학을 해야 합니다. 신학을 해야 허튼 소리가 안나옵니다. 

그러면 독생자의 영과 양자의 영은 무엇이 다른가? 독생자의 영은 예수님의 육신과 영혼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양자의 영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 영이 들어와 계시지만 그것은 결합이 아니고 연합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지만 “나는 나”이고, “예수님은 예수님”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아닙니다. 즉 내 육신과 영혼인 인성에 독생자의 영이 연합이 된 것이 양자의 영입니다. 독생자의 영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4. 하나님의 후사로서 받아야 할 고난의 유익

본문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후사란 하나님의 것을 물려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로 하나님의 기업을 다 물려받습니다. 양자가 되었는데, 그 양자는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즉 기업을 물려받을 자로서 하나님의 것을 다 물려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택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소유를 다 물려주시려고 후사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다 물려받으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세계1등 부자의 것을 물려받아도 굉장한데, 하나님의 것을 다 물려받으면 얼마나 많이 물려받겠습니까?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영광, 아버지의 권세 등 아버지의 것을 하늘나라에 가서 다 물려받습니다. 이 세상은 훈련장소로 훈련하려고 온 것입니다. 훈련을 다 마치면 제대해서 본향으로 갑니다. 본향에 가면 아버지가 영접해 주시고 후사로 삼아 주십니다. “너는 내 후사이다, 내 것을 너에게 물려준다”하십니다. 그런데 물려받을 자격이 중요합니다. 즉 물려받을 자격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격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으라”는 것은 자녀의 자격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후사로 삼아 놓았는데, 하나님의 것을 물려받아 그것을 사용할만한 자격과 실력을 길러 주시기 위해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면 다 망칠 것이 아닙니까? 옛날에도 왕위를 물려받을 자에게는 공부를 많이 시키며 훈련을 많이 시켰습니다. 중국 “자금성”에 가면 중국 왕들이 자기 후계자들에게 농사하는 것까지 배우게 했습니다. 왕이 되려면 농사하는 것까지 배우고,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까지 배워야 됩니다. 선생님들 앞에서 초달을 맞고, 책망을 받으면서 어떻게 하든지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유업을 받을 사람이고,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을 물려받을 자인데 문제는 자격이 문제입니다. 물려받을 자격이 없는데 물려받으면 나라를 다 망칠 것이 아닙니까? 자격 없는 사람이 나라를 맡으면 나라를 망칩니다. 

그러므로 자격을 만드시려고 이 세상에서 여러 면으로 훈련을 시키십니다. 훈련소에 가면 자격자로 만들게 하려고 고난을 많이 받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모든 고난은 연단을 시켜서 하늘나라의 기업을 주시려고 훈련시키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 훈련은 영원히 빛나는 훈련입니다. 이것은 금을 주고도 못삽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이 훈련받은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받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주어도 쓸데없습니다. 운전할 줄도 모르는데 자동차를 주면 무엇을 합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부릴 줄을 모르고 사용할 줄을 모르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합당한 후사가 되기 위해 여러 면으로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는 시험과 환란과 고난은 하나님이 그 나라에서 쓰시기에 합당한 자격자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심전력하여 마귀를 이기며 잘 참고, 달게 받아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가므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후사가 되는 복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로마서 7:15-8:1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새사람으로 살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새사람으로 살라
로마서 7:15-8:1

7 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또는 행할 능은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7:15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알지못하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7:16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면,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7:17 그러나 지금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이다. 

7:18 나는 내 속, 곧 나의 육체 속에 선한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 

7: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 

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이다.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으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함께 있다는 것이다. 

7:22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7:23 내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나의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삼는 것을 본다. 

7: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주겠느냐?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1. 신자의 내적 투쟁

육체의 부패성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함

중생한 영혼은 새사람이고, 새생명입니다. 죄를 자꾸 지으려고 하는 것은 육신의 부패성, 즉 옛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습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선을 행하며, 선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선을 싫어하며 죄만 지으려고 합니다. 옛사람의 부패성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즉 믿는 사람 속에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은 새사람이며, 육체의 부패성에 이용당하는 사람은 옛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살려 놓을 때에 영혼을 살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아직 죄악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은 죄 때문에 죽었으나 중생한 영은 의를 인하여 살았다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혼만 산 것이지 몸은 아직도 죄 아래 있고 사망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전체 속에 중생한 영혼이 있고, 또 육체의 부패성이 있는 것입니다. 즉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선만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고 죄만 지으려고 합니다.
“나”라는 전체가 육체의 부패성을 따라 살면 그 때는 죄를 짓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죄를 반대합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왜 죄를 짓느냐?고 쿡쿡 찌르며 가책을 줍니다. 그것은 중생한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즉 알지 못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말로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가 지은 죄를 중생한 영혼이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같이 합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책임지시고, 고난당하신 것과 같고, 또 하나님 앞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성령이 우리의 죄를 책임지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중생한 영혼은 죄 짓는 것을 반대하지만 육체가 죄를 지으면 중생한 영혼도 책임을 지고 같이 하나님께 탄식하며 회개합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혼이 죄지은 것은 아닙니다. 8:23절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속으로 탄식 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육체의 죄를 이기기 위해서 속에서 탄식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양자 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는데, 몸의 구속이란 몸은 아직 죄 가운데 있으므로, 그 죄 가운데서 점점 건져 내는 것을 말합니다. 즉 몸은 아직 죄 가운데 있고 영혼만 하나님이 중생시켜 놓았기 때문에 중생한 영혼이 죄 가운데서 몸을 건져내려고 탄식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의 중생한 영혼이 속으로 탄식하며 몸을 죄 가운데서 건져내려고 탄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 3:21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양심은 중생한 영혼이 쓰는 양심입니다. 육체는아직도 죄 가운데 있고 영혼만 중생하여 그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육체의 죄를 벗어버리고 나가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중생한 영이 있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그 영혼은 죄를 지을 때에 왜 죄를 지었느냐? 하며 자꾸 책망을 하며 반대합니다. 즉 가책을 줍니다. 

영혼이 범죄했다면 가책하지 않고 좋다고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의 한 옆에는 육체의 강한 부패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려고 하는 욕심, 탐심 등의 죄악성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옛사람으로 우리 속에 있습니다. 옛사람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즉 옛사람과 새사람의 싸움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있습니다. 신자의 내적 투쟁이라는 것은 중생한 영과 즉 살아난 새생명과 육체의 부패성이 싸운다는 말입니다. “지체 속에 죄가 있다, 또 육신의 속에 죄가 있다, 또 육신의 소욕이다”라고 하였는데, 영혼에 부패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에 부패성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부패성이 영혼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죄악이 가득한 영혼을 다 살린 것이 아니고 한편 모퉁이만 살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혼의 주도적 성향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즉 하나님과 연결되었는데 하나님과 연결된 그것은 성령에 붙들려 있는 것이고 살아난 것으로, 살아난 새생명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 부분만 새생명이고 나머지 부분은 다 죽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을 산 부분과 죽은 부분으로 갈라놓는 것입니다. 즉 한 영혼이 산 부분과 죽은 부분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죄는 누가 짓느냐? 죽은 영혼이 죄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산 것은 절대 죄를 짓지 않고 죄 지을 가능성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영혼이 둘입니까? 죄 짓는 영혼이 하나 있고, 또 죄 안 짓는 영혼이 하나 있습니까? 한 영혼을 둘로 가를 수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한 영혼을 둘로 가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육체의 부패성을 영혼의 부패성이라고 하지 왜 육체의 죄,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 육체의 부패성이라고 하였습니까? 또 죄를 말할 때에 영혼의 생각이라고 하지 왜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였습니까? 

로마서 8: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갈라디아 5:19-20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말할 때에 육체의 일이라고 하였지, 영혼의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전서 2:11에도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정욕은 육체에 속한 것으로 영혼과 반대입니다. 즉 영혼이 아닙니다. 또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고 하였으며,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전부 육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육체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싹스”라고 하는데, 그 “싹스”라는 말은 우리의 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부패성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14의 육신(싹스)은 부패성이 아니고 육체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였는데,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몸을 “싹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몸을 “싹스”라고 하였으므로 그 “싹스”를 죄악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죄악의 덩어리로 세상에 왔다”는 해석이 됩니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도 “싹스”입니다. 부활하신 후 “내 몸을 만져 보아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싹스”입니다. “싹스”를 죄악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몸이 죄악의 덩어리로 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원어 “싹스”를 죄악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예수님을 죄악의 덩어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죄악의 덩어리로 만들면 일은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도 죄악의 덩어리가 됩니다. 예수님이 죄악의 몸으로 부활하시면 우리의 구주가 못됩니다. 근본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라는 말을 죄악으로 해석하지 말고 성경 이대로 해석 하여야 합니다. 즉 “싹스”라는 말이 육체라는 말이므로 우리의 육체인 몸, 살, 육, 이렇게 해석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육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지 죄악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육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로고스” 되시는 예수님이 육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지, 죄악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싹스”를 죄악으로 해석을 하면 예수님이 죄악의 몸을 입고 오셨다고 해석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육신이 가지고 있는 욕심, 육신이 가지고 있는 죄악성, 육신이 가지고 있는 부패성이 옛사람입니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함

본문 16-17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습니다.“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이란 “나”라는 전체가 중생했으므로 이제는 죄를 짓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누가 죄 짓기 원하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원치 않는 죄를 지으면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 중생한 영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를 지을 때에 속이 우리 속에 반대 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이 중생한 영혼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죄를 지을 때에 “죄 짓지 말라, 안된다, 죽는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자꾸 속에서 가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 라는 자가 중생한 영을 따라가지 않고 육신의 부패성을 따라가서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중생한 영혼이 또 가책을 시키는 것입니다.
“너 왜 죄를 지었는가?”하며 쿡쿡 찌르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이 “나”라는 전체를 붙들고 같이 회개하자고 자꾸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한 영혼이 성령과 같이 탄식을 하면서 회개를 시킵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란 부패성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18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하였습니다. 내 육체에 선한 것이 하나도 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면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로 그것은 부패성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옛사람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 부패입니다. 무슨 선한 것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썩어진 것으로 육신의 부패성 속에는 즉 옛사람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인간의 전적부패를 말하였습니다. 우리 옛사람은 전적부패 했기 때문에 선한 것이 그 속에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옛사람은 전부가 다 썩어진 것뿐입니다. 선을 털 끝 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사람을 보면 즉 중생한 영을 보면 깨끗하고, 거룩하고, 참된 것만 그 속에 있습니다. 털끝만큼도 거짓된 것이 없습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것이 믿는 사람 속에 있는데 그것이 새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 속에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어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체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옛사람을 가르치는 것으로, 육신의 부패성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 부패입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하였는데, 원함은 내게 있다는 것은 전체인 “나” 속의 중생한 영은 선을 행하는 마음이 있는데, 전적 부패한 육신의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여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자꾸 악이 행하여집니까? 속에 옛사람인 육신의 부패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이란 “내가 원치 아니하는 죄를 지으면”이라는 말입니다.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란 죄를 짓는 자가 중생한 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내가 원치 아니한 죄를 지으면 이것을 행하는 자가 중생한 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짓는다는 것은 “나”라는 전체가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나”라는 전체인 “나”가 중생한 영혼이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부패성이 원하는 죄만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란 부패성이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즉 옛사람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라는 것은 “나”라는 전체를 말합니다.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란 부패성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성도는 선을 행하기 원합니다.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에 성도가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육체의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악이 함께 있다는 말입니다. 즉 내 속에 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중생한 영이 있고, 또 악을 행하기 원하는 육체의 부패성이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는 것은 중생한 영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고, 육체의 부패성이 죄를 지은 것이므로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음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란 중생한 영혼입니다. 즉 중생한 영은 범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란 성령이 저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은 성령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씨는 말씀입니다. 즉 말씀으로 중생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범죄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있는데 어떻게 범죄하겠습니까?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했는데 말씀이 범죄합니까? 성령도 범죄합니까? 범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않는 것이고, 육체의 부패성이 범죄하는 것입니다.
 
독립문 성결교회 이명재 목사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명재 목사님 말이 요새 부흥사들이 대게 다 타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하다가 타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흥사들이 다니면서 “예수 잘못 믿으면 지옥에 가고, 예수 잘 믿으면 천당에 간다”고 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중생한 영은 즉 새사람은 죄를 안 짓고, 옛사람이 죄를 짓는다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명재 목사님은 우리한데 배우지 않았는데 중생한 영이 죄를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다는 것입니다. 이 면이 우리와 같습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은 성령과 합작을 해서 의를 행합니다.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다고 하면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중생한 영이 다시 죽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시 중생해야 하는데 중생도 두 번 합니까? 중생은 한 번 합니다. 중생한 영은 즉 산 새생명은 범죄하지 않고, 범죄 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도 범죄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제일 문제가 됩니까? 영혼을 둘로 갈라놓는 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살릴 때에 다 살리시지 왜 모퉁이
만 살리셨겠습니까? 다 살릴 능력이 없어서 모퉁이만 살리셨습니까?
그러면 이것이 산 영혼입니까? 죽은 영혼입니까? 죽었다 하면 이쪽이 살았습니다. 또 살았다 하면 이쪽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영혼입니까? 죽은 영혼입니까? 산 영혼입니까? 또 산사람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죽은 사람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산사람이라 하고 보니까 또 죽은 사람이고, 죽은 사람이라고 보니까 또 산 사람입니다. 그러면 산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살았다고 했습니까? 죽었다고 했습니까? “너희는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다 산 것입니다. 살려 놓을 때에 다 살려 놓았지 왜 일부만 살려 놓았겠습니까? 또 영혼이 단일 인격입니다. 인격이 둘이 아닙니다. 한 인격 속에 두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까? 즉 죽은 것과 산 것이 있습니까? 살면 다 산 것이고, 죽으면 다 죽은 것입니다.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산 영인데 부패성이 있으면 어떻게 산 것입니까?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의 영은 다 살았으며, 산 영이며, 산 생명입니다. 죽은 자가 아닙니다. 새생명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산 영혼이지 죽은 영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한쪽만 연합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와 전부 연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한쪽 모퉁이는 살고, 한쪽 모퉁이는 죽었다면 죽은 것도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죽은 것과는 연합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면 죽은 것은 떼어 놓고 산 것만 예수님께서 “너 왔으니 잘 했다”고 하겠습니까? 또 “산 것하고만 연합하자”고 하겠습니까? 산 것만 연합하면 죽은 것은 예수님이 달고 다니겠습니까? 아니면 떼어 놓고 다니겠습니까? 떼어 놓으면 오히려 큰 문제가 생깁니다.
영은 하나인데 어떻게 떼어 놓겠습니까?
영이 한쪽 부문만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죽은 한쪽 부분은 오랜 세월에 산 영혼이 조금씩 조금씩 죽은 것을 잡아먹으므로 살아 난다는 것입니다. 즉 산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새생명의 역사가 와서 조금씩 조금씩 죽은 것을 살려 나가고 정복을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 살리는 것이 목적인데 죽을 때 까지 조금씩 살려 나가다가 그 사람이 죽을 때에는 한꺼번에 다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꺼번에 다 살아난다면 뭐하려고 살려 나갈 필요가 있습니까? 가만히 두어도 죽을 때는 한꺼번에 살아나겠는데 뭐하려고 힘써서 성화 시키려고 애를 씁니까?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핍박과 환난을 받으며 살려 나갑니다. 그런데 죽을 때에 한꺼번에 살아난다면 이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살려 나가려고 힘쓰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부가 다 안 맞습니다.

중생한 영은 다 살아난 것입니다. 다 살아났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전부 연합하고, 그리스도 안에 영혼이 다 들어가 있고, 우리 영혼속에 그리스도를 모신 것입니다. 산 영혼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살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 하나가 잘못되면 이와 같이 다 맞지 않습니다. 
첫째 “싹스”란 말부터 안맞지 않습니까? 육체라는 말을 죄악성으로 해석을 해 놓았단 말입니다. 죄악성으로 해석을 하면 요한복음 1:4에 예수님이 “싹스”로 되었으므로 예수님이 죄악의 덩어리가 됩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은 “싹스”입니다.
“내 몸을 만져보아라” 하는 것도 “싹스”를 만져보라는 것입니다. 그 “싹스”를 죄악성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죄악성으로 부활하신 것으로 됩니다. 그러면 그 해석이 어떻게 바로 된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본문 22-25절에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은 중생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도 범죄한다는 사람들은 요한일서 3:9, 5:18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 하면 “실수해서는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면 상습적으로 죄를 안 짓고, 실수를 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죄가 아닙니까? 죄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됩니다. 요한일서에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왜 범죄 하지 않는가?하면 속에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죄를 안 짓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라고 하였는데, 중생한 영이 육체의 부패성과 싸워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란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란 육체의 부패성을 말합니다. 부패성은 지체 속이라고 하였지 영혼 속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언제나 죄악에 사로 잡혀서 죄를 짓곤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만 원하는 선은 행하여지지 않고 원치 않는 죄만 행하여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탄식이 나왔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하였는데, 아무리 선을 행하려고 해도 또 다시 죄를 짓고, 죄를 안 지으려 해도 또 죄 가운데 빠지므로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해결 방침이 하나 나왔습니다. 해결 방침이 무엇입니까? 해결 방침은 25절에 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함

본문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법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는 능력이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이길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내적 투쟁의 결론적 말로 내 자신이 마음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의 법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이라고 하였는데, 마음은 중생한 영혼이 쓰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영혼의 한 기관입니다. 우리 중생한 영이 마음을 이용해서 살 때에는 그 마음이 선한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패성이 마음을 이용하면 전적부패한 마음이 됩니다. 그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될 수 있고, 육체의 부패성에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될 때에는 선한 마음, 깨끗한 마음, 거룩한 마음, 털 끝 만큼도 더러움이 없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에게 마음이 이용될 때에는 악한 마음, 더러운 마음이 됩니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마음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는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선한 마음, 신령한 마음,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전적 부패한 것을 생각 할 때에는 속에 있는 것이 죄악만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는데, 악한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죄를 다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됩니다. 마음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는데, 옛사람에게 마음이 이용당할 때에는 선한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할 때에는 중생한 영이 사용되는 그 마음을 다해서 즉 선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중생한 영혼에게 사용되는 선한 마음을 하나님이 보십니다. 우리 마음이 부패성에게 이용당할 때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라”는 것은 부패성에게 이용된 마음을 다하라는 말이 아니고,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한 마음을 다 하라는 말입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긴다”는 것은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마음으로는 언제나 하나님의 법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는 것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죄의 법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결론입니다. 즉 성도가 영을 따라 살 때에는 하나님의 법을 섬겼고, 육을 따라 살 때에는 죄의 법을 섬겼습니다. 

4.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음

8: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해결 방침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이기는 길이 하나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7:25에 선한 싸움을 계속해 나오다가 즉 내적투쟁을 계속해 나오다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하는 고통 가운데 빠졌는데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에 이기는 길이 하나 있음을 깨닫고 감사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쑥 들어가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법적으로 하나님이 정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영이 예수님의 영 안에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이고, 예수
님을 힘입어 사는 것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정죄함이 없는, 가책함이 없는 승리하는 생활을 한다는 말입니다. 즉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 영이 그리스도의 영 안에 쑥 들어가 살 때에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안에 들어갔다가 나가서 육신으로 살 때에는 죄를 짓게 됩니다. 영 안에서 살 때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제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살리실 때에 다 살리신 것이 아니고 일부분만 살리셨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때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살려놓은 부분만 들어가야 합니까? 내 영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들어와 계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영혼이 하나로 전부 다 나인데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산 영혼 일부분만 들어간다는 것입니까? 산 영혼 일부분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면 남아 있는 일부분은 어떻게 합니까? 
 
또 우리 영혼이 하늘에 올라가 앉았다고 하였는데 일부분은 살았고 일부분은 아직도 죄의 성향이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에베소서 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죄도 하늘에 들어간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한 부분만 살았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즉 한 부분만 중생하였다고 하면 여러 가지가 안맞습니다. 우리 영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 갈 때에 일부분만 들어가고 일부분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실 때에도 다 모신 것이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때에도 다 들어간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다 살아난 것이지, 내 영혼이 일부만 산 것이 아닙니다. 일부만 살았다고 하면 성경 전체에 맞지 않습니다. 골로새 1:13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영이 하나인데 일부는 아들의 나라로, 일부는 마귀의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이 그리스도 안에 다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7:6-15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라
로마서 7:6-15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9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7:6 지금 우리는 우리를 얽어매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의식법 문자의 낡은 것으로 섬기지 않는다. 

7:7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았다면 나는 죄를 알지 못하였을 것이니, 율법이 "탐내지 마라."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7:8 그러나 죄가 계명으로 말미암아 기회를 타서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일으켰으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이다. 

7:9 전에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내가 살아 있었으나 계명이 이르자 죄는 살아나고 

7:10 나는 죽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 

7:11 죄가 계명으로 말미암아 기회를 타서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 

7:12 이렇게 보면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7:13 그러면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오히려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죄가 그 선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게 사망을 가져왔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가 더욱 죄 되게 하려는 것이다. 

7:14 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줄 알지만 나는 죄 아래 팔려 육신에 속해 있다. 

7:15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알지못하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1. 의문과 제도에서 벗어나라

우리 교회는 전체가 다 찬양대입니다. 찬양대원들이 몇 십 명 보다 몇 백 명이 나을 것이고, 몇 백 명 보다 교인 전체가 찬양대가 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육신의 음성 좋은 것으로 노래 부르는 것보다 신령한 새 노래로 부르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음성이 좋다고 하여 믿음이 없는 사람을 찬양대에 세워 놓으면 도리어 남에게 손해만 줍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새 노래를 기뻐하시지, 믿음 없이 목청이나 좋다고 해서 부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할머니들이 찬송을 부를 때에 곡조가 틀려도 믿음으로, 신령한 노래로 부르기만 하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청 좋은 사람일지라도 믿음 없이,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영으로 부르지 못하는 찬송은 하나님 앞에 상달이 못 됩니다. 영으로 부르는 찬송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노래가 됩니다. 그러므로 의문과 제도, 의식 등에 치우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강대상은 제단이 아닙니다. 강대상은 책을 놓고 보는 곳입니다. 그런데 강대상을 제단화 시켜 벌벌 떨면서 감히 올라오지도 못합니다. 강대상에 올라가 앉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책을 놓고 보는 곳인데 왜 못 올라갑니까? 강대상은 신성불가침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 제단을 쌓을 때에 돌을 갖다가 쌓은 후, 거기에다 제물을 갖다 올려놓고 제사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의문이라는 말입니다. 요새 제단이라고 하면 강대상이 제단이 아니고, 우리가 같이 모여서 찬송 부르고, 예배드리는 것이 제단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 영적 제단입니다.
그러므로 의문과 제도를 폐하여야 합니다. 거기에 얽매여서는 신앙이 바로 되지 못합니다. 또 요새 교회에서 각종 의문(儀文)을 붙여놓고 있습니다. 지나간 주일은 어머니 주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어머니 주일이 있습니까?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 주일은 다 집어치워야 됩니다. 또 꽃 주일, 어린이 주일 등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주일은 예수님 주일입니다. 예수님 주일이 일년에 쉰 두 번이 있는데, 어머니 주일, 꽃 주일, 어린이 주일 등이 다 빼앗아 갔습니다. 주일은 언제나 예수님의 날이지, 사람의 날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늘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날만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문과 제도에서 다 벗어나야 됩니다. 또 가운을 입고 예배시간에 나와 설교하여야 은혜가 됩니까? 가운을 입고 예배를 거창하게 드린다고 해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는 헛된 것입니다. 가운을 입지 않았어도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것, 의식적인 것은 다 버려야 합니다.

그저 의복이라는 것은 어떻게 입어야 되나? 다른 사람에게 실례가 안 되도록, 즉 예의가 되도록 보통으로 중쑬쑬하게 입어야 됩니다. 너무 두드러지게 입지 말고, 그렇다고 또 너무 뒤로 쳐지지도 말고, 파묻혀야 됩니다. 의복은 모든 사람에게 묻히어서 거기에 대해서 시선이 안 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고 말씀만 전하면 됩니다. 그저 너무 실례가 되지 않도록 예의나 어느 정도 차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운을 입어야만 강단에 선다는 것은합당치 않습니다. 물론, 세상 학교 같은 곳은 제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학교 졸업식에서 무슨 학위를 줄 때에라든지,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입을 수 있습니다.

2.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라

본문 6절에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옛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죽었고, 율법에서 해방이 되었는데, 이제는 어디로 갑니까?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에게로 갑니다.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영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영의 역사가 없는 예배는 죽은 예배임

영적인 역사가 없는 예배는 죽은 예배입니다. 또 영적인 역사가 없는 신자는 죽은 신자이며, 죽은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예배가 되느냐? 영적인 예배가 되지 못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산 제사는 영적인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기도할 때에도 처음에는 말로 기도하다가 그 다음에는 영적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즉 한 고개 넘어가야 됩니다. 영의 세계에서 영적인 주님과 교통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다른 곳에 가면 기도 할 때에 떠들썩하면서 기도하는데 그것은 영적인 기도가 되지 못합니다. 떠들어 대다가 한 고개 더 넘어가서, 주님과 영적인 교통하는 세계에 들어가야만 참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 졸음이 자꾸 오고 기도가 잘 안되면, 자기 귀에 들리게 만큼 조그마하게 음성을 내서 기도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크게 소리를 내야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 귀에 들릴 만큼 조그마하게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좀 더 깊은 기도에 들어가려면 음성을 안내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예배드릴 때에 영적인 역사가 있어야 하고, 영이 살아나야 되고, 영이 새 힘을 얻어야 됩니다.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하였는데, 영의 세계는 자유의 세계입니다. 
또 영의 세계는 진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우리가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새 힘을 얻어 자라나고, 점점 강해져야 합니다. 즉 영이 자라나야 됩니다. 우리의 영은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살아납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기도문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일용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이 밥만 먹으면 삽니까? 영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영이 먹고, 살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또 날마다 말씀 속에 자기 영이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 속에서 영이 새 힘을 얻어야 되고, 새 생명을 얻어야 됩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을 얼마나 사모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기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찾기 위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하여야 하고,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말씀을 사모해야 됩니다. 우리의 영이 날마다 가난한 심령이 되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소화를 시키고, 또 모자라서 또 말씀을 사모하고, 또 모자라서 말씀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영이 자라나야 됩니다.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올 때에 무엇이 하나 얻어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즉 주일에 예배드리고 올 때에 가슴에 뭉클한 영적인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영의 역사가 없는 교회는 예배드리러 갈 때에나, 예배드리고 올 때에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들을 때는 “잘한다, 참 그럴 듯하다”고 하지만 예배당 문을 나가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영적 예배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영적 예배는 말씀을 받을 때에 세밀하게는 모르지만 속에 무엇이 하나 생겼단 말입니다. 그러면 영에 배가 부르고, 든든하고 만족합니다. 이제는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고, “이것이면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예배를 드리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예배를 드리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되고, 영의 세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역자가 기도를 많이 하고, 영의 세계를 찾아서 거기서 양식을 먹고, 그 양식을 자기가 소화를 시켜서,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또 교인들도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영의 양식을 영으로 받아 영의 힘을 얻어서 돌아가야 됩니다. 또 돌아가서는 새김질을 잘 해야 됩니다. 말씀 받은 것을 새김질하여 영이 힘을 얻고, 영이 자라나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영의 생활을 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영의 새 것으로 하고, 의문의 묵은 것은 버려야 합니다. 영의 역사가 없으면 예배당에 와서 예배에 참여하고 돌아간다고 하여도 영이 살지 못합니다. 즉 영에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영이 날마다 살아 나가고, 영이 날마다 말씀의 양식을 받아먹어야 하고, 영이 자라나야 하고, 날마다 영의 새세계를 발견하여 들어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껍데기 밖에 안 남는 것입니다. 즉 껍데기 신앙이며, 껍데기 생활이며, 예배는 껍데기 예배이며, 그 예배는 죽은 제사와 같습니다.
이사야 1:11에 영적인 것이 없이 양의 피만 가지고 나왔으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안 받으셨습니다. 또 창세기에 아벨이 양의 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에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으나 양의 피가 없이 곡식으로만 제사 드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피를 가지고 나오라고 했으므로 아벨은 말씀대로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와 제사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당시 때의 사람들도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의 시대 때에나 이사야 시대의 때에나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온 것은 같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사야 당시 때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영적인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양의 피를
가져왔으나 껍데기만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면이 없이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6:3절에 영적인 면이 없이 나와서 제사하는 것에 대하여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면과 영적인 면이 언제나 합하여야 합니다. 시간을 많이 들여서 기도를 해야 영적인 세계가 발견이 됩니다. 시간을 안 들이면 안 됩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영이 자라남

그리고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영이 말씀을 순종하여 나갈 때에 영이 자라납니다. 영이 자라나면 영적인 실력이 생기고, 새 힘을 얻어 나갑니다. 즉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기름 준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했는데, 기름은 성령과 진리로 말미암아 영이 자라난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영이 성령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나서 영적 실력을 준비하여 나가는 것이 기름 준비입니다. 영적인 실력이 없는 사람은 기름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영이 자라나서 영적인 실력을 길러나간 사람은 기름 준비를 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말세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다 되었습니다. 남은 때가 얼마 없습니다. 어디를 보든지 말세가 다 된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기름 준비 하지 않고 외부적인 면, 즉 빈 등만 가지고 왔다, 갔다하면 안됩니다. 속에 내적인 영적인 생명의 역사가 있어 영이 자라나서 영의 실력을 길러 나가야만 기름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밤중에 오신다는 것은 환란 가운데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밤중에 등불을 켜고 나오라는 것은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면서 나오라는 말입니다. 등불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름이 있어야 등을 밝힐 수 있습니다. 즉 영적 실력이 없으면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킬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영적 실력을 잘 길러나가야만 환난이 닥쳤을 때에 그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쁨으로 나가서 영접할 수 있습니다. 

3. 율법과 범죄

본문 7절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탐내지 말라”고 율법이 하지 않았으면 속에 탐심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속에 탐심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음

본문 8절에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계명은 말하지 않고 특별히 탐심을 말했는데, 탐심은 모든 범죄의 동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죄의 근본 동기가 탐심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탐심 한 가지만 말해도 십계명 전체가 다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탐심을 알지 못한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탐심을 품고도 죄인 줄 알지 못했다는 뜻이 있고, 또 한 가지는 사람 속에 있는 탐심이 계명이 오기 전에는 나오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오므로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즉 탐심이 더 나왔다는 말입니다. 가만히 두었으면 탐심이 속에만 있고 나오지 않았을 것인데,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왔기 때문에 속에서 탐심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에 있는 탐심을 가만히 두지 왜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주어 탐심을 나오게 하였는가? 탐심이 나오지 않고 속에 가만히 있어도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탐심이 죄인 줄을 깨닫게 만들어 회개시켜서 속에 있는 탐심을 빼어 내버리도록 하시려고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나온다는 말은 계명을 주어서 “하지 말라”고 한, 그 기회를 타서, 죄가 더 많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이 안 해야 되겠는데, 도리어 반항심이 사람 속에 있기 때문에 “더 해보자, 더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겨 그만 탐심을 더 많이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속에 전적 부패한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한 계명이 오니까 더 바짝 할 마음이 생겨서 더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아이들에게 “콧구멍에 콩알
넣지 말라” 하고 나갔는데 갔다 오니까 다 넣고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도리어 죄를 더 많게 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는가? 그것은 죄가 속에 있으면서도 죄인 줄 모르므로 속에 있는 죄를 나오게 만들어야 죄인 줄 알고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목을 주어서 “너 이것 하지 말아라”는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계명은 율법에 요긴한 것으로 십계명입니다. 이런 계명을 주어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 속에서 죄가 더 많이 나왔습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죽었다는 것은 죄가 맥을 못 춘다는 말로 “아무 힘을 못 쓴다, 활동을 못 한다, 기운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법이 있어야만 죄가 기운을 쓰고, 세력을 써서 나를 사로잡아 끌고가 괴롭게 하고 죽입니다. 계명이 없을 때에는 죄가 나를 괴롭게 하지 못합니다. 즉 죄가 죽었으므로 세력을 못 씁니다. 그러나 계명이 오므로 죄가 나를 괴롭
게 하고, 내게 세력을 쓰고, 나를 내리 누르고,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죄 때문에 고민하지만, 바로 살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짓고도 편안합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은 남을 사기 해먹고 운이 좋다고 하며 죄 짓는 것을 당연한 줄 알고, 의기양양하게 나갑니다. 죄에 가책이 없이 평안히 잘 삽니다. 그것은 죄가 죽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를 지으면 죄가 나를 괴롭게 합니다. 죄의 가책을 받고, 죄가 세력을 쓰므로 나를 내리 누르고, 자꾸 찔러대고, 나를 죽을 고통에 빠지게 합니다. 그것은 죄가 세력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그만큼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려고 힘을 쓰는 것입니다. 즉 바로 살려고 하는 만큼 죄는 살아서 힘을 쓴다는 말입니다. 

또 되는대로 살려고 하는 만큼, 죄는 세력을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죄가 죽으면 좋겠습니까? 죄가 살아서 역사하여 나를 괴롭게 하고, 책망하고, 나를 내리 누르고, 찌르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느 것이 좋습니까? 현재는 죄가 죽어서, 아무 짓을 해도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지요. 별의 별 죄를 지어도 속이 편안하고 아무 가책이 없이 그저 뻔뻔하게 나가는 것이 좋지요. 그러나 죄가 아주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제 심판대 앞에 가서 서면 죄가 다 살아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
대 앞에 갈 때에는 죽었던 죄가 낱낱이 나와서 세력을 씁니다. 그 때에 가서는 내가 죽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죄가 세력을 써서 내가 죄 앞에 꼼짝 못하고, 죄의 찔림을 받아 거꾸러져서 회개하고 죄를 버리면, 이 다음에 심판대 앞에 가서는 그 죄가 나를 괴롭게 하지 못합니다. 즉 심판대 앞에 가서 그 죄가 죽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면 현재에는 죄가 죽지만 이 다음에 심판대 앞에 가서는 그 죄가 살아 나와서 나를 책망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조그마한 죄 하나를 짓고도 그 죄가 살아서 나를 자꾸 괴롭게 만들고, 찌르고, 고통을 주고, 내리 누르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만 하면 죄는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죄는 죽는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 가서도 힘을 못 씁니다. 죄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자기는 죽음

본문 9절에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계명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누가 살았습니까? 죄는 죽고, 내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계명이 이르므로 무엇이 살아났습니까?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반대입니다. 전에 계명이 없을 때에는 즉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습니다. 내가 살았다는 말은 죄를 짓고도 기운을 쓰고 정정당당하게 나갔다는 것입니다.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거침없이 이렇게 나갔다는 말입니다.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다 보고, 그저 못할 것이 없이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즉 계명을 받으므로 죄가 내게 세력을 쓰고, 책망을 하고, 나를 괴롭게 하므로 나는 이제 맥을 못 춥니다. 그것이 내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감히 “나”라고 와서 말할 수 없고, 내놓을 수 없고, 떳떳하게 머리를 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배당에 좀 다니다가 그만 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만 두었냐?고 하면 교회에 안 나가면 “교회에 왜 안 나왔냐? 교회에 나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안 나가면 이런 말, 저런 말 안 듣고 편한데 예배당에 나가니까 괴롭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는 살아나고 자기는 죽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죽고 자기가 살아나려고 하니까 그만 예배당에 나가는 것을 그만 두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여 놓고 죄가 살아나야 하는데 그만 거꾸로 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죄는 살아나고 자기는 죽어져야 합니다. 자기는 하나님 앞에 머리를 들 수 없는 자이고, 사람 앞에서도 머리를 들 수 없는 자이고, 자기는 아무 힘이 없는 자이고, 무엇을 마음대로도 할 수도 없는 자인 줄 알아야 그 때가 살아나는 때이고, 복 받는 때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방탕하고, 거짓말하고, 사기횡령하며, 거침없이 나가는 자는 죄는 죽고 자기는 산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이제 못된 짓은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없다,
괴로워서 못하겠다,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하며 죄를 끊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오면 살 것인데 그만 그것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우리 자신은 죽어지고, 죄는 살아나야 됩니다. 죄는 날마다 살아나서 그 죄를 날마다 회개하고 버려야 됩니다. 죄가 살아서 하나 나오면 또 버리고, 또 살아서 죄가 하나 나오면 또 내쫓아야 됩니다. 죄가 우리 속에 가득한데 죄가 나오질 않습니다. 나오게 만들어야 됩니다. 나오게 만드는 것은 계명이 이르러야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여야 죄가 나오고 발견됩니다. 죄가 발견이 되면 전부 다 내쫓아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살
아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계명이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이제는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나? 그것은 계명이 온 후로 자꾸 죄가 나오므로 나는 죽을 지경에 빠졌다는 말입니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는 것은 죽을 지경에 빠졌다는 말입니다.

본문 11절에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란 “하지 말라”고 한 기회를 타서 즉 계명을 준 기회를 타서 죄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계명대로 살려고 하니 도리어 죄가 더 많아져서 자기가 죽을 지경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함

본문 12절에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전체가 613가지입니다. 십계명은 율법의 요긴한 부분으로, 그것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는 말입니다.

본문 13절에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것은 계명과 율법이 선한데, 도리어 선한 그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죄가 죄로 드러난다”는 것은 속에 있는 죄가 선한 율법과 계명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깨닫지 못했는데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달았고, 율법에 대한 반발심으로 속에 있는 죄가 외부로 드러나게 되었고, 그 죄로 인해 죽을 지경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것은 깨닫지 못했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4절에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압니다. 그런데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내가 육신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는 것은 영에 속하지 아니하고 육신에 속하면 죄의 종이 되어 죄의 주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4. 신자의 내적투쟁
 
본문 15절에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만 행한다고 하였습니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고, 죄만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성도에게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함
 
7:22-23에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에 즐거워합니다.

겉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대적함

그러나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깨닫지도 못하고, 싫어합니다. 중생하지 못한 영혼은 죽은 영혼이므로, 죽은 영혼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법을 근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죽은 영혼은 죄만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성도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내적 투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