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로마서 8:1-17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사는 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사는 생활
로마서 8:1-17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8:3 율법이 육체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으니, 곧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 속죄 제물로 삼으셔서, 그 육체 안에서 죄를 심판하신 것이다. 

8:4 이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다. 

8:5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육체의 일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 

8:6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나,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8:7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께 원수가 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다. 

8:8 육체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8: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 너희는 육체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산 것이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이다.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도록 육체에게 빚을 진 자가 아니다. 

8:13 너희가 육체를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8:14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8:15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그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 짖는다. 

8:16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이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음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정죄함이 없습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신령한 뜻은 ‘우리의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더불어 살기 때문에 아무 가책이 없다’는 뜻입니다.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로 힘입어서 그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정죄함에 없다는 말은, 즉 중생한 영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그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 앞에 가책되거나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음

본문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그리스도 밖의 죄와 사망의 법’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이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권세, 세력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다 해방시켜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을 이기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함

본문 3-4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육신은 강하고 율법은 연약하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우리 육신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지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육신이 강하여 율법을 다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보다 강하면 육신으로 하여금 율법을 다 지키도록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율법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인하여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예수님에게 죄를 정하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친히 못 박으심으로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죄를 정하셨습니까? 우리 모든 택한 백성들의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시켜 다 담당하게 하심으로서 예수님에게 죄를 정하셨습니다. 그 죄 값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와 같은 죄 있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육신에 죄를 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를 전부 다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 값으로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대속 혹은 속량이라고 합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대신 속해주었다는 뜻이고,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주고 샀다는 뜻입니다. 종이 얼마에 팔려갔는데 다시 종이 팔려간 값을 주고 그 종을 사온 것이 속량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 죄인의 육신의 모양으로 도성인신하게 하셔서 예수님에게 죄를 정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속량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보내 주시고, 속량해 주신 복음, 그 복음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은 강한 성령이십니다. 구약시대의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 약하게 역사했습니다. 즉 율법을 가지고 역사하는 성령은 약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가지고 역사하는 성령은 강하게 역사합니다. 성령은 구약시대의 성령이나 신약시대의 성령은 한 성령인데, 구약시대에는 율법이 약합니다. 율법이 약하므로 아무리 강한 성령이 역사해도 약하게 밖에 일을 못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복음은 강합니다. 강하므로 강한 성령의 역사가 다 나타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성령은 한 성령이지만 약하게 역사했고, 신약시대의 성령은 강하게 역사했습니다. 

예를 들면, 세계 일등(일류) 비행사가 비행기를 좋은 것을 타지 못하면 빨리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세계 일류 비행사라도 정찰기 같은 옛날 비행기를 타면 기술이 좋아도 빨리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형제트기를 타면 같은 비행사라도 훨씬 빨리 날아갑니다. 이와 같이 구약시대의 역사하던 성령도 강한 성령이지만 구약의 율법이 약하고 육신은 강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인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죄를 정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얼마나 강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보냈다”하는 것만 해도 강하지 않습니까? 또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하는 것도 얼마나 강합니까? 또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전가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속량해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강합니까? 강한 이 복음을 성령께서 가지고 역사하실 때에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나가시는 성령이십니다. 즉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나가는 복음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떻게 이루어 나가시는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육신을 가지시고 율법을 다 이루어 놓으셨으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육신을 좇아 살지 않고 영을 좇아 살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나갑니다. 과거에는 이루어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복음이 강하고, 성령의 역사도 강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면 다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복음을 참으로 받은 사람은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습니다”하고 몸 바쳐놓고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러면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이길 수 없던 것을 이길 수 있고, 올라갈 수 없던 것을 올라갈 수 있고, 가지 못하던 곳을 갈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증거입니다.

2.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함

본문 5-9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그 영적 능력으로 다 할 수 있습니다.

3. 독생자의 영과 양자의 영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 영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이시고, 또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은 성령이 예수 믿는 사람 속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시는지, 안 거하시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양자의 영

본문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생명과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왜 아버지라고 합니까? 아버지의 생명과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고, 아들도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고, 손자도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는데, 무슨 촌수가 그런 촌수가 있느냐?고 합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보고“아버지”라고 하였으면, 아들은 하나님을 보고 “할아버지”라고 하여야 겠는데, 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촌수는 합법적입니다. 할아버지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고, 아버지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고, 아들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고, 손자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여야 되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생명과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합니다. 손자도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바 아버지”라는 말은 누구에게 배워서 하는 말이 아니고 본능적으로 나오는 말입니다. 본능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바 아버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며 통사정을 해야 됩니다. “아버지라고 하기가 좀 미안하다, 어떻게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고 하겠느냐?”는 사람은 좀 위험한 사람이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 하고 중생한 영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아버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느냐? 또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느냐?는 것은 무엇을 보고 압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압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아버지가가 왜 안 들으시겠습니까? 다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리스도 영이 계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복음이 있고, 도성인신하신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령이 계시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고, 영으로 살기만 하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살면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을 굴복치 않게 되고,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살면 안 되고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으로 사느냐? 육신으로 사느냐? 이것이 믿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생활, 항상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영의 능력과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이겨나가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나가는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입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양자가 된 증거입니다.

독생자의 영

예수 그리스도는 독생자이고 우리는 다 양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독생자가 되었다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시는 성자의 영이, 예수님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의 육신과 영혼과 결합된 것이 독생자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과 우리와 똑같은 영혼이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예수님 속에 들어가서 결합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과 영혼이 있으며, 또 성자의 영이 있습니다. 육신과 영혼은 인성이며, 성자의 영은 신성입니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이 결합이 되어 한 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육신이 있고,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리스도 영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으므로 우리가 예수님과 같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도 육신이 있고, 영혼이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왔으므로 예수님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다, 또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지 말고 내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자기가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성경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신학을 하지 못하고 성경을 몰라서 잘못된 이단적인 요소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신학을 해야 합니다. 신학을 해야 허튼 소리가 안나옵니다. 

그러면 독생자의 영과 양자의 영은 무엇이 다른가? 독생자의 영은 예수님의 육신과 영혼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양자의 영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 영이 들어와 계시지만 그것은 결합이 아니고 연합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지만 “나는 나”이고, “예수님은 예수님”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아닙니다. 즉 내 육신과 영혼인 인성에 독생자의 영이 연합이 된 것이 양자의 영입니다. 독생자의 영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4. 하나님의 후사로서 받아야 할 고난의 유익

본문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후사란 하나님의 것을 물려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로 하나님의 기업을 다 물려받습니다. 양자가 되었는데, 그 양자는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즉 기업을 물려받을 자로서 하나님의 것을 다 물려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택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소유를 다 물려주시려고 후사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다 물려받으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세계1등 부자의 것을 물려받아도 굉장한데, 하나님의 것을 다 물려받으면 얼마나 많이 물려받겠습니까?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영광, 아버지의 권세 등 아버지의 것을 하늘나라에 가서 다 물려받습니다. 이 세상은 훈련장소로 훈련하려고 온 것입니다. 훈련을 다 마치면 제대해서 본향으로 갑니다. 본향에 가면 아버지가 영접해 주시고 후사로 삼아 주십니다. “너는 내 후사이다, 내 것을 너에게 물려준다”하십니다. 그런데 물려받을 자격이 중요합니다. 즉 물려받을 자격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격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으라”는 것은 자녀의 자격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후사로 삼아 놓았는데, 하나님의 것을 물려받아 그것을 사용할만한 자격과 실력을 길러 주시기 위해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면 다 망칠 것이 아닙니까? 옛날에도 왕위를 물려받을 자에게는 공부를 많이 시키며 훈련을 많이 시켰습니다. 중국 “자금성”에 가면 중국 왕들이 자기 후계자들에게 농사하는 것까지 배우게 했습니다. 왕이 되려면 농사하는 것까지 배우고,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까지 배워야 됩니다. 선생님들 앞에서 초달을 맞고, 책망을 받으면서 어떻게 하든지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유업을 받을 사람이고,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을 물려받을 자인데 문제는 자격이 문제입니다. 물려받을 자격이 없는데 물려받으면 나라를 다 망칠 것이 아닙니까? 자격 없는 사람이 나라를 맡으면 나라를 망칩니다. 

그러므로 자격을 만드시려고 이 세상에서 여러 면으로 훈련을 시키십니다. 훈련소에 가면 자격자로 만들게 하려고 고난을 많이 받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모든 고난은 연단을 시켜서 하늘나라의 기업을 주시려고 훈련시키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 훈련은 영원히 빛나는 훈련입니다. 이것은 금을 주고도 못삽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이 훈련받은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받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주어도 쓸데없습니다. 운전할 줄도 모르는데 자동차를 주면 무엇을 합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부릴 줄을 모르고 사용할 줄을 모르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합당한 후사가 되기 위해 여러 면으로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는 시험과 환란과 고난은 하나님이 그 나라에서 쓰시기에 합당한 자격자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심전력하여 마귀를 이기며 잘 참고, 달게 받아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가므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후사가 되는 복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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