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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4일 토요일

열왕기하 4:38-44 엘리사의 사역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엘리사의 사역
열왕기하 4:38-44

38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
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 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 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
지 못한지라 40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
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42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
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그 사환이 가
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
으리라 하셨느니라 44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
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1. 가루를 쳐서 국의 독을 제거함

들외로 만든 국에 독이 있음

길갈에 흉년이 들었는데, 엘리사가 사환을 시켜 큰 솥을 걸고 선지
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생도
는 요새로 말하면 신학생과 같습니다. 그때 신학생들이 기숙하면서 지
냈고 밥을 해 먹이면서 가르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으므
로 들에 채소를 캐러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들에 나가서 야
등 넝쿨을 만나 들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들에
있는 외를 옷자락에 싸가지고 와서 썰어 솥에다 국거리로 넣었습니다.
본문 40절에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
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떠다가 주었는데 생
도들이 먹다가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능히 먹을 수 없습니다”라
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가루의 의미

본문 41절에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망의 독이 있어 먹으면 죽는다고
하니까 엘리사가 가루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가루는 레위기 2
장 1절과 로마서 11장 16절에 나옵니다.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의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
져올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소제 드릴 때에는 가루를 가지고 가서 드
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가루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결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희생해 주신 것입니다. 즉, 가루를 솥에 던졌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먹으면 해독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해독(害毒)이 많은 세상이고 독사가 많은 세상입니다. 또 우리가 먹는 것에도 독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믿음으로 그것을 다 소화하면 해독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장 19-21절에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
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
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
이 없을찌니라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좋지 못해서 농
사할 수가 없는 땅이고 토지 소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땅인데, 엘
리사에게 말하니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
서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다가 엘리사에게 가져다주니 그가 물 근원에
붓고 이제 괜찮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새 그릇이라는 것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을 가리키고, 소금은 신자가 맛있는 소금의 역
할을 할 때에 좋지 못한 물이 좋아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해독이
있을 때에는 가루를 가져다가 넣으면 그 해독이 없어지는데, 가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새 그릇과 소금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섞여
있습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고, 또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
해서 성도가 짠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루를 가져다
가 사망의 독이 있는 데에 붓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하면 독이 없어지고, 쓴 물이 달아지고, 또
좋지 못한 물이 좋은 물이 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 좋지 못한 물이 많아서 독도 있고 독사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안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심령이 새롭게 되어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에나 교회에나 사회에 들어가서 녹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물이 되고 독도 없어지고 많은 사람이 좋아서 먹게
됩니다. 독이 있던 것이 다 없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이런 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
리스도를 영접하고 좋은 물, 독이 없는 물, 좋은 사람, 독이 없는 사람
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서 소금의 역할을 하면 과거에 어떤 상태에 있었
고 아무리 독사가 많았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독이 없어지고 좋은 세상
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독이 없어지고 달고 맛있게 변화되어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 독이 있
다고 해도 문제가 없고, 독사가 많다고 해도 문제가 없고, 좋지 못한
물이 많다고 해도 걱정이 없습니다. 이것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소금의 역할만 하면, 독사도 없어지고
쓴 물이 단 물이 되어 좋은 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데에
찾아가려고 하지 말고, 새 그릇에다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서 녹아지면
거기가 어떤 곳이든지 좋아집니다. 사람을 살리는 곳이든지 죽이는 곳이든지 좋아집니다. 


2.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를 백 명이 먹음

얼마 안 되어도 바치는 것이 중요함

본문 42-44절에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
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
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
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생도가 일백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다 여기 와서 기숙하면서 먹고 기도하고 공부하며 엘리사
에게 배우는데, 그들이 무엇을 먹고 삽니까? 영혼은 말씀을 먹고 살고
육신은 보리떡과 자루에 담은 채소를 먹었습니다. 여기 보리떡과 채소
는 바알 살리사 지방에 사는 어떤 성도가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그
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신학교를 하는데 요새 곤란할 것이다. 내가 많
은 것은 못 바치지만 내게 있는 정성과 힘을 다해서 조금 가져다가 바
쳐야 되겠다’는 감동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정성을 다해도 흉년
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리떡 스무 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
를 가지고 왔습니다. 채소를 자루에 담으면 한 자루에 열 통 쯤 되었
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아이가 점심으로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
고 왔는데, 여기 배추 열 통과 보리떡 스무 개는 얼마나 됩니까? 어땠
든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가져온 것을 엘리사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하니 그 사환이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러자 엘리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백 명이 다 먹고 남았다고 하
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친 것이 얼마 안 됩니
다. 또 보리떡은 좋은 떡도 아닙니다. 그러나 보리떡 스무 개과 채소
한 자루를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여기서 하나님의 선지자와
생도들을 위해서 바치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그 사람은 ‘생활이 곤란
하지 않을까? 무엇을 먹고 살까?’하고 바친 것입니다. 바친 것은 얼마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
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일백 명이 먹고도 남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가져온 것이 적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먹고도 남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면 해결이 되었습니까?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지 못한 물, 좋지 못
한 해독이 있는 음식은 어떻게 해야 해결이 됩니까? 가루를 거기에다
가 넣어야 합니다. 또 새 그릇에 소금을 가져다가 물에 부어 녹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좋은 물이 되고 해독도 없어지고 살 만한 물이
됩니다. 우리도 이렇게 나가야 합니다. “무엇이 틀렸다, 무엇이 틀렸다”
하지 말고 “누구 보기 싫어서 안 간다. 독사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시
누이가 독사다. 며느리가 독사다. 생긴 것을 봐라. 여우 새끼같이 생기
지 않았느냐? 시어머니가 호랑이 같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아무리 독
이 있다고 해도 가루를 가져다가 넣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새 그릇이 되고, 그리고 소금이 되어
서 녹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처럼 좋은 데가 없습니다. 제일 좋은 곳이 됩니다.

열왕기하 4:8-37 수넴 여인의 신앙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수넴 여인의 신앙
열왕기하 4:8-37

8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
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
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
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11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12자기 사환 게하시
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
라 13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
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
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14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
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15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
라 16엘리사가 가로되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
소서 하니라 17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돌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
로 아들을 낳았더라 18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
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19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21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22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23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24이
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
인이 있도다 26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
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
하다 하고 27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
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
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28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29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찌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30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
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31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
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32엘리
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
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36엘리사가 게
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37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4: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을 지나갔다. 그곳에 명망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를 강권하여 식사를 대접하므로, 그가 지나갈 때마다 거기 들러서 식사를 하곤 했다. 

4:9 그 여자가 자기 남편에게 말하기를 "보십시오, 저는 늘 우리에게 들르시는 그분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신 것을 압니다. 

4:10 우리가 벽 위에 작은 다락방을 만들고, 거기에 그분을 위해 침대와 책상과 의자와 등잔을 놓아 둡시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오실 때마다 거기서 머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4:11 하루는 엘리사가 그곳에 가서 다락방에 들어가 누웠다. 

4:12 그가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 수넴 여자를 불러와라." 하므로 그가 그 여자를 부르니 그 여자가 그 앞에 섰다. 

4:13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하기를 "너는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해라. '보십시오, 우리를 위한 당신의 배려가 지극하니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드리면 좋겠습니까? 당신을 위해 왕이나 군지휘관에게 부탁할 일이 있습니까?' " 하니, 그 여자가 대답하기를 "저는 제 백성들 사이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하였다. 

4:14 엘리사가 말하기를 "그 여자를 위해 무엇을 해 줄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기를 "사실 그 여자에게는 아들이 없고, 남편은 나이가 많습니다." 라고 하였다. 

4:15 엘리사가 말하기를 "그 여자를 다시 불러와라." 하였으므로 게하시가 그 여자를 부르니 그 여자가 문 안으로 들어섰다. 

4:16 엘리사가 말하기를 "내년 이맘때에 당신이 아들을 안게 될 것이오." 하니,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시여, 선생님의 여종에게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4:17 그러나 그 여자가 임신하여, 엘리사가 그 여자에게 말한 대로 다음해 같은 때에 아들을 낳았다. 

4:18 그 아이가 자라, 하루는 추수하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자기 아버지에게 갔다. 

4:19 그 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니, 그 아버지가 하인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를 자기 어머니에게 데려가라." 하였으므로, 

4:20 하인이 아이를 안아다가 그의 어머니에게 데려갔는데, 아이가 점심때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고 말았다. 

4:21 그 어머니가 올라가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의 침대에 눕힌 다음 문을 잠그고 나왔다. 

4:22 그 여자가 자기 남편을 불러 말하기를 "제게 일꾼 한 사람과 암나귀 한 마리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얼른 달려갔다 돌아오겠습니다." 하였다. 

4:23 남편이 말하기를 "초하루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왜 오늘 그분에게 가려고 하오?" 하니,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평안을 위해서입니다." 

4:24 그 여자가 암나귀에 안장을 얹으며 자기 일꾼에게 말했다. "계속해서 몰고 가라. 내가 네게 말하지 않는 한 내가 타고 가는 것을 늦추지 마라." 

4:25 그 여자가 가서 갈멜 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렀다.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 여자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말하기를 "보라, 저기 수넴 여자가 있으니, 

4:26 달려가 그 여자를 맞아 말하기를 '당신과 당신 남편과 당신 아들이 평안하십니까?' 하여라." 하니, 그 여자가 "평안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4:27 그 여자가 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러 그의 발을 꼭 껴안으므로, 게하시가 나서서 그 여자를 물리치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 여자를 그냥 놔둬라. 그 여자의 심정이 무척 괴로우나 여호와께서 내게 감추시고 알려 주지 않으셨다." 라고 하였다. 

4:28 그 여자가 말하기를 "제가 언제 아들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저를 속이지 마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니, 

4: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했다. "네 허리를 동여매고, 내 지팡이를 네 손에 들고 떠나라. 네가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고, 어떤 사람이 네게 인사해도 대답하지 마라. 그리고 가서 내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 위에 놓아라." 

4:30 그 아이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선생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저는 선생님을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니, 엘리사가 일어나 그 여자를 따라갔다. 

4:31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질러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 위에 놓았으나 아무 소리도, 아무 기척도 나지 않았으므로 그가 엘리사를 만나러 돌아가 그에게 말하기를 "아이가 깨어나지 않습니다." 하였다. 

4:32 엘리사가 집으로 들어가서 보니, 그 아이가 죽어 자기 침대에 뉘어 있었다. 

4:33 엘리사가 들어가 문을 닫으니 안에는 그들 둘뿐이었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한 후에, 

4:34 침대 위로 올라가 그 아이 위에 엎드렸는데,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의 눈을 그의 눈에, 그리고 자기의 손바닥을 그의 손바닥에 서로 마주 대고 그의 위에 엎드리니 그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4:35 엘리사가 내려가 집 안을 한 번 이리저리 거닐다가 다시 올라가 그의 위에 엎드리니, 그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떴다. 

4: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수넴 여자를 불러와라." 하므로, 게하시가 그 여자를 불렀다. 그 여자가 들어오자, 엘리사가 말하기를 "당신 아들을 데려가시오." 하니, 

4:37 그 여자가 들어와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자기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4:38 엘리사가 길갈로 돌아왔을 때,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의 앞에 앉았는데,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말하기를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해 국을 끓여라." 하였다. 

4:39 그때 한 사람이 나물을 캐려고 들로 나갔다가 들덩굴 풀을 발견하고 거기서 들호박을 그의 옷에 가득 담아 가지고 왔다. 그가 그것을 국솥에 썰어 넣었는데,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4:40 그들이 퍼다가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했더니, 사람들이 국을 떠먹다가 소리지르며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람이시여, 솥 안에 죽음의 독이 들어 있습니다." 하고 그들이 먹지 못하므로, 

4:41 엘리사가 말하기를 "밀가루를 가져와라." 하고, 그가 그것을 솥에 뿌리며 말하기를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해라." 하니 솥 안에서 독이 없어졌다. 

4: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는데, 그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햇곡식으로 만든 빵, 곧 보리 빵 이십 개와 채소를 자루에 담아 왔으므로 엘리사가 말하기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 먹게 해라." 하였다. 

4:43 그를 시중드는 자가 말하기를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나눠 줍니까?" 하였으나, 엘리사가 다시 말하기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 먹게 해라. 이는 여호와께서 '먹고 남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하므로, 

4:44 그가 그들에게 나눠 주어 먹게 했더니, 여호와의 말씀대로 음식이 남았다.


1. 수넴 여인의 신앙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을 알아봄

본문 8-10절에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
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
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
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를 잘 대접한 여인이 하나 있었는
데, 수넴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
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알았는데 어떻게 알았습니까? 보고
알았습니다. 벌써 지나가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고 하
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있고 하나님의 광채가 그에게 있어 거룩하였습
니다. 물어보지 않아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알았습니다. 하나
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이 어느 정도 나타나야 합
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인 줄을 안 것입
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그 남편에게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
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를 섬긴 수넴 여인에게 좋은 통이 생김

본문 11-13절에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
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
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
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지나가다가 그 방에 누웠는데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의 일을 하러 다니느라 피곤하고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며 어디서 먹
을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서 먹을 것을 늘 대접하고, 방도
준비해서 의자와 침상과 촛대를 다 진설해 놓은 것입니다. 가서 침상
에 누워 피곤한 것을 풀다가 보니 참 감사했습니다. ‘이 수넴 여인의
생각이 주밀하구나, 어떻게 방을 준비할 생각이 났을까? 또 책상과 의
자와 촛대를 진설할 생각이 났을까?’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이렇
게 정성껏 준비한 것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을
잘 대접했기 때문에 ‘이 집에다가 무슨 복을 줄까?’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대접한 것은 하나님을 대접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0
장 40절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했고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
로 엘리사가 이렇게 잘 영접 받을 때에 참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이
집에 복을 주어야겠는데 무슨 복을 주어야 되겠는가를 생각하다가 사
환을 보고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넴 여인이 문
앞에 와서 섰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사환에게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
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라고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왕과 군대 장관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나 군대 장관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할 것이 있는지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통이 생겼습니다. 왕에게 구하면 엘리사가 구하는 것은 웬만한 것은 다 들어줍니다.

그러면 무엇을 구하면 좋겠습니까? 고원영 목사가 그저께 와서 기도
하고, 대통령 부인을 만나러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나면 무슨 말을
해주면 좋겠느냐고 하길래, 내가 무슨 말을 해달라고 했을 것 같습니
까? 주일날 시험 보는 것을 안 보게 해주면 우리가 김영삼 대통령보다
존경하고, 그것 하나 못해주면 김대중이나 김영삼이나 꼭 같은 사람으
로 취급한다고 하였습니다. “주일날 시험 보는 것, 자격 시험, 공무원
시험, 순위 시험을 못 봐서 우리 학생들이 졸업 맞고도 곤란한데 주일
날 시험을 보는 것이 말이 되느냐? 장소가 없어서 주일날 학교에서 한
다면 공휴일에 시험을 치도록 해달라. 공휴일이 얼마나 많느냐?”고 말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꼭 가서 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김영삼 대통령보다 좀 나을 것 같으면 해줄 것이라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해 놓으면 그 사람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왜
주일날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 생각뿐이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 전체의 생각이므로 전체의 생각을 가서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지내보아야 되겠습니다. 지내봐서 주일날 시험을 안 보게 해주면
그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보다 조금 나은 사람으로 생각을 하고, 그것
을 못하면 꼭 같다고 취급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위대하지, 하나님을 위해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예 같이 취급을 할 것이라고 했
으니 가슴이 뜨끔할 것입니다. 또 그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 전체의 생각으로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목사들이 없
다고 하였습니다. 

또 군대 장관에게 구해서 해주겠다고 하였는데, 군대 장관에게 구하면 무엇을 해주겠습니까? 군대 장관은 군대를 위해서 좋은 것을 해줄 수가 있었습니다. 돈을 벌 길도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무슨 한 자리를 해달라고 하면 해줄 수도 있고 군대에 납품하게 해달라고 하면 납품하게 해줄 수도 있는데, 군대에 납품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습니
다. 좋은 통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왕이나 군대 장관
에게 구할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는데, 이 여인은 “나는 내 백성 중
에 거하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런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다녀야 믿는 일하는 데 손해만 나는 것이고, 돈이 많아야 먹고 살면
되지 뭘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는 말
은 백성 중에 거하면서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믿는 일 하는 것만 영원한 것이지 나가서 높은 자리에 있어도 조금
가다 없어집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일을 하는 데에 명예
와 재산 등이 유익이 안 되고 도리어 시간만 많이 빼앗기고 마음을 많
이 빼앗기고 정력을 많이 빼앗기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것을 다
빼앗깁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시간을 다 빼앗기고 믿는 일을
할 시간, 마음, 정성, 힘, 환경을 다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을 위해서 부요해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영원한 집을 지어 나가고 중생
한 영이 하나님을 모시고 즐거워하고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져 나가는 일을 하는 데
에는 백성 가운데 거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명예, 영광, 부
귀, 영화가 세상에서는 좋지만 믿는 일을 하는 데에는 도리어 방해가 됩니다. 

부자는 돈 때문에 믿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돈이 우상이 되어서 돈
이 첫째고 믿는 일은 둘째가 됩니다. 믿는 일이 첫째가 되어야지 둘째
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재산 부자, 명예 부자, 아들 부자, 권세 부자는 믿는 일 할 새가 없습니다. 시간을 거기에다 다 소비해야 되고 마음을 거기에다 다 소비해야 되고 일심정력을 거기에다가 다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믿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 정력, 마음, 환경을 다 기울여서 믿는 일을 해야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영원히 하늘나라에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져다가 세상에 기울이면 믿는 일은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로소이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수넴 여인의 믿음이 참 좋습니다. 이것뿐 아니라 더 좋은 믿음이 나옵니다.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본문 14-16절에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
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없는 것이 이 여자의 문제라고 엘리사의 수종 드
는 사람 게하시가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여인을 부르라고 해
서 여인이 문에 와서 섰을 때에 엘리사가 아들을 명년에 하나 낳게 된
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여인이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을 못 낳는 여
자들 중 아들 낳는 소원을 가진 사람이 몇 %이겠습니까? 아마 99.99%
쯤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는 소원을 가지지 않은 여인이 만
명에 한 명이 있든지 십만 명에 한 명이 있든지 백만 명에 한 명쯤 있
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아들을 못 낳기에 아들을 낳게 해주겠
다는데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속이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엘리사가 아들을 낳는다
고 속인다는 것입니까? 명년에 아들을 낳는다고 하니까 “속이지 마옵
소서. 낳긴 뭘 낳습니까? 또 속이지 마옵소서. 하도 많이 속아서 이제
는 당신의 말도 못 믿습니다.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여러 방법을 다
써봤는데 지금까지 못 낳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아들을 낳겠습니까?
속이지 마옵소서”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본문에서 속이지 말라는 것
은 아무래도 아들을 낳으면 아들한테 속아서 믿는 일을 잘 못할 것 같
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속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시간
과 환경과 모든 전체를 가져다가 기울여서 믿는 일을 해야 믿는 일이
성공이 되는데, 아들이 있으면 아들한테로 마음이 갈리므로 그것이 속
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체를 다 기울여서 믿는 일을 해나
가는 것이 제일 귀한 것이고, 제일 즐거운 일이고, 제일 보배로운 일이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인데, 그것을 버리고 아들
에게로 절반을 갈라놓겠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그것은
속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좋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생겨서 믿는 일하는 데에 마음과 시간을 빼앗
기니 얼마나 손해입니까? 100% 다 믿는 일하는 데에 기울일 수 있는
데, 아들이 있으면 아무래도 이것들을 빼앗기게 되지 않습니까? 군대
장관에게 구하든지 왕에게 구해서 높은 자리를 얻든지 아이를 얻든지
하면 믿는 일하는 것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수넴 여인이 “아니로소이다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한 것
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말대로 여인이 명년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런데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속아서 죽었습니다. 처음
에 이렇게 속지 않으려고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일단 아이를 낳아 놓
으니까 속았습니다. 속으니까 가만히 놔두면 수넴 여인이 아주 다 미
끄러져 내려가겠으므로 아이를 죽여서라도 속아서 넘어갔던 믿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그 아이를 죽이셨습니다. 잘 죽었습니까? 잘 죽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에 속아서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을 빼앗기는 바람에 하나님의 일이 낭패를 당했는데 가만히 두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들을 죽여서라도 그 사람을 돌이켜 전의 신앙을 회복시켜줘
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아
들이 왜 죽었습니까? 그래서 죽은 것입니다. 군대 장관에게나 왕에게
구해서 높은 자리를 얻었든지 아들을 낳든지 하면 대개는 다 속습니다.
까딱하면 속는 것입니다. 99.9999% 속는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도 속기를 원치 않아서 안 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넴 여인의 신앙을 되돌리기 위해 아들을 죽이심

본문 17-20절에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돌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
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
라 하매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
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조금 자라나니까 그 아이가 아
비에게 갔다가 “내 머리야 내 머리야”하며 머리가 아프다고 하였습니
다. 그래서 아이를 어미에게로 데리고 오니까 낮까지 그 무릎에 앉았
다가 죽었습니다. 속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이렇게 아들
을 죽이신 것입니다. 가만히 두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세상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을 이루는 사람이 이제는 세상 것으로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 것으로 만족하던 사람이 이제는 세상 것으로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
다. 그렇게 되면 안 되겠기에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지금 여인은 속아서 아이에게로 마음이 다 가 있습니다. 마음과 시간을 아들에게 빼앗겼으므로 아들을 죽여서라도 다시 돌이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속지 않으려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없으면 안 속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속지 않고 믿는 일 잘한 사람이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속이려고 해도 속일 것이 하나도 없고, 속으려
고 해도 속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귀영화는 물론 없고 돈도 없
고 아들도 없고 부인도 없고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과 뜻과 시간과 정력과 모든 환경과 몸 전체를 믿는 일에 밖에는
기울일 데가 없었습니다. 다른 데는 기울일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100% 전부 다 믿는 일에 기울여서 나사로가 믿는 일을 하다가 천국에
간 것 같습니다. 그가 아브라함 품에 가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은 믿
음의 조상인데,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간 것을 보면 그가 신자 가
운데 훌륭한 신자인 것으로 봐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100% 다 갖다
기울여 믿는 일을 한 사람으로 봐야 되겠습니다. 부자의 경우는 안 믿
었으니까 물론 지옥에 갔지만, 예수를 믿었다고 해도 100% 믿는 일을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부자가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마음과 뜻과 시간과
정성을 다 믿는 데에 기울일 수 있었겠습니까? 그 재산을 유지하려면
거기에다 시간과 마음을 얼마나 써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7장 29-31절
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
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없는
자같이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없었습니다. 너희도 없는 자와 같이
되면 믿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있어도 괜찮은 경우
가 있습니다. 욥이 동양의 일등 부자이고 아들 일곱에 딸이 셋이 있었습니다. 첫 번에는 속았지만 다음 번에는 안 속았습니다. 속지 아니하고 많은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속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있어도 안 속아야 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 수넴 여자가 가만히 보니까 성자입니다. 이런 믿음이 힘듭니다. 우리도 이 수넴 여자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엘리사에게로 나아간 수넴 여인

본문 20-25절에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
오리이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
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
니이다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
라 하고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
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수넴 여인이 아들이 죽은 다음에
갈멜 산의 엘리사에게로 갔습니다. 

본문 26-30절에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
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
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
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
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엘리사가 게하시에
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찌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수넴 여인
이 아이가 죽은 다음에 갈멜 산에 가서 엘리사를 만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라
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속은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이 여인이
“내가 아들을 구하지 않았고 속이지 말라고 했는데 아들을 주어서 내
가 속았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
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
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찌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가되 사람을 만나
도 인사하지 말고 사람이 네게 인사해도 인사 받지 말고 가라는 것입
니다. 왜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아이의 얼굴에 놓되 가면서 인사를 하
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고 하였습니까? 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게 되면
하나님께 마음을 모은 것이 흩어지기 쉽습니다. 아무래도 인사를 하게
되면 사람에게로 마음이 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만 마음을 기울이고
하나님만 사모하고 하나님만 위해서 가야겠는데, 인사를 하고 받게 되
면 마음이 아무래도 사람에게로 조금 가게 됩니다. 그러면 옹근 채로
하나님께 바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사하지 말고 인사 받지도 말
고 가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로 기울이라는 것
입니다. 그 다음에 인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예배드리는 순서가 변해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전에 먼저 인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악수하고 광고를 해
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반 시간을 하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되었습니까? 이 성경에 맞습니까? 성
경 위반입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정성을 기울여서 말씀을 받은 다음에 사람끼리 인사를 해야지 왜 인사부터 합니까? 왜 광고부터 먼저 합니까? 광고 들으러 왔습니까? 왜 다른 것을 먼저 합니까?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그것이 인본주의인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사람을 표준하는 것으로, 사람이 하나님
보다 먼저입니다. 먼저 할 것 다 하고 하나님은 나중에 만나는 것입니
다. 마지막에 설교 20분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말은 세상 것
은 먼저 다 하고 말씀을 직통으로 받아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말을 다
해 놓고 산심(散心)이 된 다음에 성경말씀을 받아가지고 직통으로 가
면 또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산심이 되어서 말씀이 들어갑니까? 병에
다 물을 먼저 부어야지, 온갖 잡탕이 다 들어간 다음에 물을 갖다 부
으면 들어갈 데가 있습니까? 그것이 인본주의입니다. 그것을 안 고치
면, 인본주의 목사입니다. 교회도 인본주의 교회인 줄로 알면 됩니다. 

본문 31-37절에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
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
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
을 안고 나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게하시를 먼저 보냈는데,
여인이 엘리사를 떠나지 않고 엘리사에게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여인을 따라갔습니다. 마침 죽은 아이를 여인이 가기 전에 엘리사의 침상에 뉘여 놓았는데 엘리사가 들어가서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올라가서 엎드려 자기의 입을 그
입에, 자기의 눈을 그 눈에, 자기의 손을 그 손에 대었더니 아이의 살
이 차차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내려와 집 안에서 한 번 이
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떠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엘리사가 왜 이렇게 했습니까? 아
이를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한 것입니다. 자기의 입을 죽은 아이의 입
에 대고 자기의 눈을 죽은 아이의 눈에 대고 자기의 손을 죽은 아이의
손에 가져다가 댄 것은 죽은 아이를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한 것입니
다. 자기가 죽은 것같이 생각하고 죽은 아이의 몸을 자기의 몸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가운데
서 그 아이의 죽은 것을 자기와 같이 생각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정
성을 다 기울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아이를 그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수넴 여자는 하나님
의 종을 잘 대접했기 때문에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