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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6일 금요일

출애굽기 2:1-10 아이들을 위한 전쟁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출애굽기강해

아이들을 위한 전쟁
출애굽기 2:1-10

1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2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3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4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5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7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먹이게 하리이까 8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9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
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1. 모세의 출생과 아이들을 위한 전쟁

본문 1-2절에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족속 중에 한 사람이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준수함을 보고 석 달을 숨겼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장 22절에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고 한 것을 보면 모세를 낳았을 당시에도 남자를 낳으면 그 아이를 나일강에 빠뜨려 죽여야 했습니다. 만약 왕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으면 국가의 처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그 아이가 준수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0절에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였고 사람 보기에도 하나님께서 이 아이와 같이 하시는 것이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는 아이고, 하나님 은혜가 그 아이 위에 임한 것을 보고, 모세의 부모가 아이 죽이는 것을 두려워해서 숨겨서 석 달을 길렀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강에다 빠뜨려서 죽이겠느냐,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석달 동안 잘 숨겨서 길렀는데, 그 맏딸과 어머니가 매일 안아주고, 또 자기 아버지도 안아주면서 울지 않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모세에게 정성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통해서 앞으로 일 하시고자 하는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호하고 길러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컸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처벌을 받으면 아이도 부모도 죽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국가의 법령대로 강에다 던져 버려야 했던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서서 봤다고 하였습니다. 갈 상자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고 가져왔다고 하였습니다. 갈 상자를 가져다가 무엇을 칠했다고 하였습니까? 역청과 나무진입니다. 역청이라는 것은 요새 아스팔트 비슷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이 들어오지 않고 막을 수 있는 것, 아스팔트 비슷한 것
으로 땅에서 나는 골탄 같은 것을 칠하고, 또 나무진을 칠했다고 하였습니다. 나무진도 물이 안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갈 상자이지만, 역청으로 구멍 막아놓고 칠하고, 나무진도 칠했으니까 물이 안 들어옵니다. 물이 안 들어오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대밭 사이에다 두었습니다. 물 위에 띄워도 그 아이에게 물이 안 들어옵니다. 왜 안 들어옵니까? 갈 상자에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했기 때문에 물이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처럼 세상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물이 아이에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세상 물이 아이에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려면 역청과 나무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예수님의 구속의 피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또 세상을 이길만한 모든 것을 아이에게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구속의 신앙을 확실히 가져다 넣어주고, 아이들에게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문화가 지금 아이들 다 빼앗아 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진화론 사상과 컴퓨터, TV, 노래방, PC방 등의 세상 문화가 아이들을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그것에 도취가 되어 빠지고 있습니다. 빠지면 믿음을 못 지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안 빠지게 만들려면 아이들에게 믿음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확실히 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야 됩니다. 그럴 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가치관이 바로 되어 세상을 바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길 만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을 시켜주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확실한 신앙을 넣어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확실한 신앙, 세상을 이길만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구속의 신앙과 세상을 이길 만한 요절을 외우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유년 주일학교 다닐 때 외웠던 요
절 하나 생각나는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는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주일학교 때 외운 것입니다. 주일학교 때 외운 것을 지금까지도 안 잊어버리는 것을 보면 성경 외우게 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아이들 요절 다 외우게 하고, 아이들에게 믿음 넣어주면 주일학교 때 배운 것을 아이가 늙어죽도록 가지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요절 외우는 것이 요긴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신앙과 말씀으로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 교회도 아이들을 붙잡지 못하면 얼마 있으면 또 다 팔게 됩니다. 아이들이 다 나가면 노인들이 교회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부터는 정신 차려서, 아이들을 위한 전쟁에서 이겨야 되겠습니다. 자기도 아이인 줄 알아야 됩니다. 전쟁에
서 이기면 살고, 이기지 못하면 죽습니다.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기면 아이들 다 건져낼 수 있고, 못 이기면 아이들 다 마귀에게 빼앗깁니다. 그렇게 되면 먼 장래에는 미국 교회들 과 같이 노인들만 몇 명이 남았다가 다 팔게 됩니다. 팔려고 하면 그 다음엔 누가 사겠습니까?

정신 차려야 됩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여름 성경학교 하는 기간에 아이들을 다 데리고 나오십시오. 나와서 부모가 협력해야 합니다. 기도해주고, 자기네 아이들만 데리고 나올 뿐 아니라 집 아이들까지도 다 데리고 나오십시오. 아이들을 건져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
까? 나일 강에 다 빠졌는데, 이것을 건져내야 되겠습니다. 나일 강에 다 빠뜨려 놓았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진화론과 이 세상 풍속, 습관, 오락, 방탕 등이 전부 아이들을 강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건져내려면 확실한 신앙을 넣어주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중대한 일입니다.
또한 주일학교 아이들 가르치는 사람들도 기도 많이 하고, 확실한 신앙을 넣어주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를 마귀에게 빼앗기느냐, 안 빼앗기느냐, 하나님 편을 만드느냐, 마귀 편을 만드느냐”하는 것은 확실한 신앙으로 키우는데 달려있습니다. 지금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잘
못하다가 다 빼앗기면 그 다음에는 미국 교회처럼 됩니다. 미국 교회를 가보면, 젊은 사람들은 세상에 다 나가고 노인들만 몇 명이 모여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배당 하나 유지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유지하지 못하겠으니까 팝니다. 팔면 누가 사는가하면 한국 교회가 다. 삽니다. 요새는 한국 교회가 대부분 다 샀습니다. 많이 샀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전쟁이 중대한 일인데, 이 전쟁에서 지면 완전 실패가 됩니다. 교회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 교회가 왕성해집니다. 교회가 왕성해지면 자기도 살고, 후대도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계속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들을 믿음으로 잘 키워서 생명의 역사가 끊이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2. 물에서 건져낸 모세

본문 5-9절에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로의 딸이 여러 수종 드는 여자들을 데리고 나일강에 나갔습니다. 공주가 때때로 나오는 그런 강변인 모양입니다. 그곳에 갖다 놓았던 것입니다. 아무데나 갖다 놓은 것이 아닙니다. 거닐다가 그 갈 상자를 보고 가져오라고 해서 열어보니 아이였습니다. 모세를 물에서 건져 냈습니다. 모세라는 뜻도 ‘건져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보니까 보통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니까, 크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거기 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아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딸이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라고 말할 때에, 모세의 누이가 공주 앞에 나가서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누이도 보통여자가 아닙니다. 선지자입니다. 공주가 유모 하나를 데려오라고 하자 모세의 어미를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딸은 데려온 유모가 모세의 어미인 줄 모르고 이 여자가 젖이 잘 나오니까 유모로 채용하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3. 모세가 젖떼기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함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는 유모의 자격으로 모세를 데려다가 삯을 받으면서 젖을 뗄 때까지 양육했습니다. 그때는 성경책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부터 모세 때까지 내려온 2500년간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계속 가르쳐 주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2500년의 구원 역사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성령으로 알 수 있을 것이고, 아담 때부터 전해 내려온 유전과 구전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 정식으로 성경은 아니지만 어떤 책자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것부터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어서 쫓겨난 것, 그리고 아담의 맏아들 가인, 작은아들 아벨의 제사, 에녹의 승천이라든지, 또 노아 방주라든지, 또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 야곱의 아들들을 통해 번성해 나간 것들을 계속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 세 살 나서부터 가르쳐도 몇 년 동안 가르칠 수 있습니다. 4년이나 5년 가르칠 수 있습니다. 4년이나 5년 가르치면 다 가르칠 수 있습니다. 또 어렸을 때에는 기억력이 여간 좋지 않습니다. 한 번 들으면 안 잊어버립니다. 바로의 딸이 데려가기 전까지 완전한 하나님의 사
람, 완전한 이스라엘 사람, 완전한 신앙의 사람, 완전한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무데나 갖다 놓아도 틀림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진리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 약속을 믿는 사람으로 길러 낸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젖 땔 때만큼 자라나자 바로의 딸이 데려가서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학교 갈 나이가 되었을 때쯤 되자, 바로의 딸이 모세를 데려가서 공부 시켰습니다. 사도행전 7장 22 절에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한 것을 보면 모세가 40세까지 궁에 있으면서 왕자가 받는 최고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또 애굽의 교육을 받기 전에 신앙의 기초가 된 것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매우 탁월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4. 아이를 세상에 빠뜨려 죽이려는 마귀의 술책

바로의 정책은 남자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남자아이는 장차 이스라엘의 계승자들이므로 생명 있는 성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바로가 남자 아이를 죽여야만 이스라엘 백성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생명 있는 성도, 참된 성도를 죽이려고 합니다.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정책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 보면 강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5절에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고 하였는데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 즉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아이들을 세상에 빠뜨려 죽이려고 마귀의 역사가 여간 강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전보다 더욱 악해지고 점점 흉흉해졌습니다. 아이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여 죄악에 빠뜨려 죽이고, 오락에 빠뜨려 죽이고, 방탕에 빠뜨려 죽이고, 향락주의에 빠뜨려 죽이고, 세상주의에 다 빠뜨려 죽이려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아이들이 믿음 지키는 것이 아주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하더라도 세상에 빠질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옛날이 세상에 빠질 만한 것이 요즘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빠뜨려 죽이는 것이 예전보다 10배가 더 늘었습니다. 노래방, PC방, 오락실, 게임.... 등 등, 이런 것들은 아이들을 유혹하려고 마귀가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술집, 모텔 등도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음란방탕이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노아의 때, 소돔고모라 시대와 같은 때인지 모릅니다.

어느 시대나 아이들을 세상에 빠뜨려 죽이려는 것이 마귀의 술책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물에 안 내보낼 수가 없습니다. 왕의 명령인데 안 내보낼 수 있습니까? 그러나 내보내면 죽습니다. 그렇다고 안 내보낼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을 강물에 내보내면 빠져 죽고 결국 이스라엘이 다 소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역청과 나무진을 칠한 갈 상자를 준비하라

남자를 살리는 방법

남자는 생명 있는 성도라고 하였습니다. 나일강은 세상입니다. 바로는 나일강에 생명 있는 성도인 남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생명 있는 성도를 살리려면, 갈 상자에 강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과 나무진을 칠해서 못 들어오게 해놓아야 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세상인 강물에 보내야 하는데, 그냥 내 놓으면 물에 빠져 죽기 때문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갈 상자를 잘 만들어서 역청과 나무진을 칠해서 거기에 모세를 담아 강물에 띄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부모가 지혜롭게 잘한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그냥 내다 던져서 남자들을 다 죽이고 말았는데,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 아이에게 있는 줄 알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연구하는 가운데, ‘이 아이가 죽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갈 상자를 만들어서 역청과 나무진을 칠해 물이 들어오지 않게 하고 내다 놓으면 되겠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살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갈 상자를 잘 만들고, 칠을 해서 세상의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 세상의 물이 들어오면 죽기 때문입니다.

갈 상자

그러면 갈 상자는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골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
님의 말씀으로 갈 상자의 골격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하고 좋은 일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모세 오경을 달달 외우도록 전적으로 가르친다고 합니다. 유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모세 5경을 다 배웠기 때문에 일생 동안 유대교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바로 섬긴다고 합니다. 오늘날 장로교는 어떻게 합니까? 장로교는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소요리 문답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도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소요리 문답을 가르쳐서, 다 외우면 상도 주었습니다. 소요리 문답이 총 107문인데 그 질문과
답을 다 외우도록 가르쳤습니다. 그것을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다 외우면 아이 속에 뼈가 되고, 세상에 나가서 언제나 자기의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보다는 그냥 성경만 가르칩니다. 아이들에게 형식적으로 성경 몇 절을 그저 짧게 가르쳐주고 나서 먹자주의, 놀자주의로 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마저도 세상으로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을 보면 손목에 성경말씀을 매서 가르치고, 미간에 써서 붙이고 집안 곳곳에 기록하여 집에서도 자녀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서 성경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 부모들이 집에서 성경 가르치려고 힘을 쓰고 교회에 보내어 아이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배운 것이 자기의 지식이 됩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살아갈 때 그것이 발부리 앞에 등불이 되고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교할 때에도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학생들과 청년들이 2주간 외국에 나가서 단기선교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서 보여주기 위해 노래하고 춤추고 성경말씀은 그저 조금 가르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현지 사람들에게 물질 좀 갖다 주고, 같이 놀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보다는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가르쳐야 그들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성경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이들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면 그것이 다 뼈가 됩니다. 갈 상자와 같이 교리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뼈가 된다는 말입니다.

역청과 나무진

역청과 나무진은 오늘날 어떤 의미입니까? 은혜와 진리, 신령과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은혜와 진리라고 하였고,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라고 하였는데, 진정은 진리라는 뜻인데, 신령과 진리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5. 아이들에게 역청과 나무진을 칠해 놓으라

모세 어머니가 유모의 자격으로 모세를 돌보면서 월급을 받으면서 젖 땔 때까지 길렀는데, 아마 대여섯이나 일곱 살 무렵까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때까지 모세의 부모는 모세의 마음속에 갈 상자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해놓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의 마음속에 말씀의
체계를 세워놓고 어릴 때부터 젖 뗄 때까지 매일 가르쳐주었습니다.
신령한 은혜와 모든 것이 충만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모세가 젖을 뗄 때까지 모세의 부모는 모세 마음속에 이 역청과 나무진을 다 칠해 놓은 것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명령했다. 십계명이다.’ 이것을 다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부모 노릇 잘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정말로 부모 노릇 잘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부모는 모세의 부모처럼 아이들이 젖 뗄 때까지, 그 속에 진리의 확실한 체계를 세워 놓고, 은혜 가운데 강건하게 만들어 놓고, 어딜 가든지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어 놓
고, 바로의 궁전, 애굽의 궁전에 들어가도 끄떡 없이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책임이 이만큼 중요한 줄 알아야 합니다. 내일부터 주일학교가 여름 사경회를 하는데,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 모세의 부모처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힘을 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반사들도 그만큼 큰 사명을 가지고 ‘이 아이들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바다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물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내가 가르치지 않으면 빠져 죽는다’는 사명을 가지고 잘 가르쳐서 그 아이 속에 믿음의 방주가 완전히 이루어 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다음 한 주간 중 고등부 수련회 하는 기간 중에, 자기 아이에게 ‘너는 공부하고 거기 나가지 말라’고 한답니다. 공부하는 것이 우상이 돼서 하나님 앞에 말씀 배우고 기도하는데 못 나가게 하면 그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강에 빠뜨려 죽이려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공부가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리는 것입니다. 고원용 목사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말씀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일 많이 가진다”고 합니다. 학교 공부는 둘째이고, 가장 먼저 하나님 말씀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래도 노벨상을 탄 사람들 중에 유태인이 제일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일 공부해라 공부해라 해서 12시까지 하고 또 과외공부해도 노벨상은 유태인이 받았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될 때가 왔습니다.

또 아이들뿐만 아니고 마귀는 어른들도 빠뜨려 죽이려고 합니다. 아이만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5-17절에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용은 마귀입니다. 마귀가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여자는 교회입니다. 교인들입니다. 마귀는 물을 계속 토해서 교인들을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고 합니다. 물을 토한다는 것은 세상주의인데, 세상의 모든 것을 토해서 우리를 거기에 떠내려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향락주의, 방탕, 오락, 음란, 먹자주의, 쾌락주의 등을 자꾸 갖다 주고 풍성한 물질공세로 물에 빠뜨려서 전부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마귀가 우리를 떠내려가게 하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물질, 향락, 방탕공세로 잘 살게 해 주고, 잘 놀게 해주면서 세상에 빠지게 하는 모든 것을 줍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 떠내려가게 합니다. 계속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음 못 지키고 결국 떠내려갑니다. 계속 먹자주의, 놀자주의, 물질주의로 기울어지게 만들어서 떠내려가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는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 모든 것으로 공격해서 우리를 거기에 빠뜨려 죽이려고 합니다. 그것이 마귀역사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물에 안 떠내려가겠습니까?

6. 중생한 영을 써서 강물(세상)을 삼키라

요한계시록 12장 16절에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자꾸 마귀에게서 나와서 여자가 떠내려가게 됐는데,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켰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고 계속 강물을 토하는데 땅이 그 물을 다 삼켜서 그 여자가 안 떠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땅이 삼켰다는 것은 믿음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또한 요한일서 5장 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무장하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자들, 생명 있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이겨서 세상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또 요한일서 5장 5-8절에는 믿음 안에는 성령, 하나님의 말씀인 물,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 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로 인해서 믿음의 방주를 견고하게 만들어서,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도 세상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되겠습니다. 아무데나 갖다 놓아도 끄떡없게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도 믿음이 어린 사람은 다 아이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3장 7-12절에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땅의 일은 중생의 도리입니다. 중생한 영혼에 관한 것이 땅의 일입니다. 하늘의 일은 하늘나라 가서 신령한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땅이 입을 열었다’는 것은 중생한 영혼을 쓰는 것을 뜻합니다. 중생한 영혼을 쓰면 마귀의 강물을 다 삼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한
영혼이 신앙양심을 쓰면 강물을 삼킬 수 있습니다. 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다 빠져 죽습니다. 파선됐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강물을 토해서 우리를 빠뜨려 죽이려고 하는데 그것을 믿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 그리고 신앙양심으로 힘써 믿음을 써 나가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떠내려갑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으로 많이 떠내려갑니다. 우리가 물에 안 떠내려가기 위해서는 신앙양심 쓰고 중생한 영을 써서 ‘옳다, 아니다’ 하면서 중생한 영, 신앙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양심 안 쓰면 얼마 안 있으면 다 떠내려갑니다. 세상에 다 빠지고 죄악에 빠져 떠내려 갑니다. 마귀가 우선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고 그 다음에는 어른들도 죽이려고 강물을 토하는데, 갈 상자를 만들고 거기에 역청과 나무진을 칠해서 안 떠내려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가 어른들도 강물을 토해서 빠뜨려 내려가게 해서 죽이려고 할 때, 땅이 입을 벌려 강물을 삼키는 믿음의 삶, 믿음과 신앙양심을 쓰라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을 쓰면 다 이기고 안 떠내려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