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증인이 되라
사도행전 1:5-8
사도행전 1:5-8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여러 날이 지나지 않아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라고 하셨다.
1:6 사도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예수께 질문하여 말하기를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이때입니까?" 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신 때와 시기는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
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1:6 사도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예수께 질문하여 말하기를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이때입니까?" 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신 때와 시기는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
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1.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람
본문 6절에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눅 19:11). 누가복음 24:21-22에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자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형제는 어머니를 내세워 “주의 나라에서 내 아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할 줄로 안 것을 보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바라보는 신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하면서 아직도 ‘이스라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구원 운동이 이스라엘 중심이라는 것, 또 예수님의 구원 운동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적인 나라와 혼돈하고 있습니다. 즉 영적 하늘나라를 바라보지 않고, 지상적인 하늘나라와 이스라엘 중심의 하늘나라, 이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신령한 나라와 세상 나라를 혼돈하고, 영적인 구원과 육체적인 구원을 혼돈하고, 자기들 중심 즉 아브라함 자손 중심의 생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늘나라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세상 나라 운동만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하늘나라가 당장에 임할 줄 알았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은 천국 운동을 믿고 있지만 세상 나라와 혼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새도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믿고 구원을 믿지만 그것들과 이 세상 나라를 갈라놓지 못하고 서로 혼돈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유브라데강이 말랐기 때문에 하늘나라 운동과 세상 운동을 혼돈하고 있고, 영적 운동을 육적 운동과 혼돈하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늘나라를 자기네 중심의 하늘나라로 만들려고 합니다. 즉, 아브라함의 자손들끼리 또 유대 사람들끼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 편협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면 인정을 잘 안 해줍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스라엘 사람이어야만 인정을 해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난 이방 사람이다”하면 낮추어 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같이 먹다 할례자들이 들어오니 슬그머니 돌아앉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을 구별하는, 즉 아직도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구원 역사에 참여하였지만 아직도 자기 중심의 하늘나라, 자기 교파 중심의 구원 운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이면 한국 중심의 구원 운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운동을 하는데 세상 나라의 그것과 혼동하고 있는, 그러한 신앙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의 운동과 육의 운동을 혼돈하고 있고 천국 운동과 세상 운동을 혼동하고 있는,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이 제자들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2. 하늘나라의 운동은 하나님의 권한에 두셨음
본문 7절에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고 하였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다’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의 운동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 알게 해준 바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4:36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날, 재림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한이고 아들도 알게 해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또 아들도 모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날, 그것은 예수님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한에만 속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혼동해서 물어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른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믿긴 믿으나, 세상적인 것, 육체적인 것, 이스라엘적인 것, 이러한 것들도 믿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신령한 나라인 하늘나라, 이스라엘 중심이 아닌 영적 나라에 대하여 답변해 주셨습니다. 또 그것의 기한과 때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므로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전에도 제자들이 잘못 질문할 때가 더러 있었는데, 그때 예수님의 답변은 잘못된 것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참된 답변, 참된 세계에 대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요한의 형제가 자기 어머니를 내세워 예수님께 “주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내 아들을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주시고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것은 사실 잘못 구한 것입니다. 잘못 구했을 때,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해서 예비하셨든지 그 사람이 앉을 것이다”라고 참된 세계에 대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검 두 자루가 있나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제자들이 잘못 깨닫고 답변한 말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족하니라”고 참된 세계의 답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검’을 사라고 하신 것은 진리로 무장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실제로 ‘검’, 즉 ‘칼’을 사라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여기서 족하다는 것은 오늘은 이만큼 알아도 족하다는 말입니다. 이 다음에 깨달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26에 모세가 아바림산(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된 상황이 나옵니다. 그리고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감으로 족한 것이 아니고 바라만 보아도 족하다는 것입니다.
3. 내 증인이 되라
본문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어 주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성경 말씀을 그저 읽으면서 내려갔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곡조를 넣어서 읽으셨습니다. 어떻게 했는가하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강대상을 ‘쿵’하고 한번 침)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하시면서 내려갔습니다. 그러면 온 교인이 은혜를 받습니다. 사람이 설교를 아무리 잘 해도 예수님만큼 못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설교이므로, 사람이 아무리 설교를 잘 한다 해도 예수님만큼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제일 좋은 설교라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깊은 설교는 그렇게 안 하셨지만 아주 은혜가 많았습니다. 능력이 있었습니다. 권능이 그 속에서 역사했습니다. 그러면 그 권능과 영권(靈權)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마태복음 강해서 서론에도 있지만 이기선 목사님이 7, 8년 동안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들어가 진리를 지키시고, 또 오랫동안 기도를 많이 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권능의 역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사람의 귀에 맞추어서 인기를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쳐야 교인들의 신앙이 말씀에 서게 되고, 그 사람 속에서 힘을 쓰게 됩니다. 진리가 너희 속에서 힘쓴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받으면 말씀이 속에서 힘이 됩니다.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그대로 받아야 하며 또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언제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것은 알 바가 아니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증인 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
도의 증인이 되는 일은 너희가 할 바,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와 예루살렘 회복이 임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즉 할 바가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증인 되는 일만 하면 하늘나라는 반드시 올 것이고, 또 증인되는 일을 한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그만큼 하늘나라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지 않고, 즉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그 나라만 구한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일은 하지 아니하고 열매만 구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즉, 일은 하지 않고 좋은 결과만 바라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농사하지 않는 사람은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을이 올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할 일, 즉 증인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바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증인 되는 일은 무엇으로 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제 힘으로 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며 제자들이 물었는데, 이것은 신령한 하늘나라를 믿으면서도 인간적인 것, 지상적인 것, 인위적인 것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맡겨라,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권한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게 되어 있다, 하늘나라가 임하게 되어 있는데 너희는 그 나라를 위해서 너희가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증인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 생활은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전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증인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증인은 우리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0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해진다면 만족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원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자기 몸에서 존귀해지는 생활이 그리스도의 증인 되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해지시겠습니까?
마태복음 5:14-16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증인된 생활입니다. 즉, 예수 믿는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15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
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하였습니다. 말로 전하고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해지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증인 된 생활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해지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도록 하면 그 사람은 금생과 내세에 복을 받습니다. 그리스도만 자꾸 높이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또 오는 세상에서도 많은 복을 받습니다.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리스도가 자기 몸에서 존귀해지는 생활은 자기가 만들어지는 생활이며,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 되는 생활입니다.
빌립보서 3:8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내가 가지고 유익을 보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기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하는 생활이 바울의 생활입니다. 그리스도를 얻은 것만큼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얻은 것만큼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만큼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지 못하고 마귀의 냄새를 피우던 것,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못하고 썩어진 냄새를 피우던 것, 그리스도가 존귀해지지 못하고, 그리스도에게 나를 통해서 욕이 돌아가던 것, 그리스도가 낮아진 것 등 모든 것을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으면 그만큼 하나님의 복을 못 받고 하나님의 복에서 떠나게 됩니다. 로마서 2:23-24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모독을 받게 한 것만큼 하나님의 복이 떠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고 자기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하고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이 돌아가게 하면 그만큼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잘되며, 오는 세상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열 므나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고, 다섯 므나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지 못한 것만큼 하나님의 복에서 점점 떠나게 되고 저주와 앙화(殃禍)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에서와 같이 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있었지만, 자기 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 하지 않고 팥죽 한 그릇을 위해 그 명분을 팔았습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축복이 야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증인 생활을 하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증인 생활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어디를 가나 우리 자신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증인 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집사들이 몇 사람 모였는데, 그 중에 아는 분도 있었습니다. 자기네들끼리 저분은 집사이고 저분은 장로이고 하면서 하는 말이 나일론 집사, 나일론 장로라는 것입니다. 나일론 집사이고 나일론 장로이고, 서로 다 나일론이라고 합니다. 집사들은 그 장로보고 나일론 장로라고 하고 또 장로는 집사들 보고 나일론 집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 앞에서 나일론 집사, 나일론 장로는 이제 한번 혼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집사가 자기는 술을 마시기 때문에 나일론 집사라는 것입니다. 또 나일론 장로는 이따금 예배당에 한번씩 빠진다는 것입니다. 나일론 집사에게 술은 잡수지 말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였더니 “내가 집사 안 하겠다고 했는데 자꾸 목사가 하라고 해서 집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이러한 것을 안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참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술 마시는 사람을 집사 시키고 주일을 이따금 빠지는 사람을 장로 시키고, 이것은 목사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썩어져서 술 먹는 사람을 집사 내고, 주일 잘 안 지키는 사람을 장로 내는데 그것은 교회가 타락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떠난 사람을 집사 시키고 장로 시켰으니, 하나님의 복음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인본주의로 교회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돈 좀 있으면 장로 내고 집사 내서, 예배당 크게 짓고 교인들을 많이 모이게 하려고 하는데 그것 모이면 무엇 합니까? 또 예배당 지어서 무엇 합니까? 교인 많은 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숫자 자랑이나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숫자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몇 사람이 모여도 바른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교회를 세워야 세상의 빛이 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바로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증거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가 바로 증거 되는 것이 목적인데, 왜 그리스도가 증거 되지 못하도록 세상에 악 영향을 끼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어지게 만듭니까? 교회 나가는 방침이 벌써 틀렸습니다. 방침이 벌써 인본주의로 해서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진리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증인 노릇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저 교인 많이 모아 놓고 잘 먹고 잘해 나가자는, 이것입니다. 교회가 물질주의, 세상주의, 육체주의입니다. 복음의 빛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교회가 부패되었는지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또 교회를 세우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큰 교파에서 2층에 세를 얻어 교회를 하나 세웠습니다. 그런데 며칠 안 가서 그곳 2층에 세를 얻어 또 다른 목사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한 교파입니다. 서로 전도하면서 “저 교회 나쁘니 우리 교회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것은 악한 일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교회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바른 증인이 되려고 한다고 하면, 교회 없는 데에 가서 교회를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증인의 정신이 없고 그저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 구멍가게 하나 차려놓고 잘 해먹겠다는 것입니다. 삯군들이고 배[腹]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 생활을 바로 해야 하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거나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거나 또 무슨 일을 하거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고, 이 복음의 광채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도록 해 나가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 생활에, 즉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을 예수 믿게 하는 일에 손해가 난다고 하면 그것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에 유익이 된다고 하면 해야 합니다.
증인 된 생활은 성령의 권능으로 함
증인 되는 생활은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라고 하였습니다. 증인 되는 생활은 사람의 힘, 또는 인간의 조직이나 운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사람의 수단과 방법, 인본주의로 교회를 해 나가려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떠난 것입니다.
요새 교회들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귀에 즐거운 말을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 일을 해 주어서 교회를 크게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떠난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사람들의 귀에 즐거운 말을 해주라고 했습니까? 또 성경 어디에 사람을 높이고 사람을 위해 주어서, 사람들을 많이 오게 하라고 되어 있습니까?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 말씀을 믿으면 되는 것이고, 안 믿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으로 어떻게
하든지 교인을 많이 모아다 놓고 물질로 매수 하려고 하고 육의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권능으로 교회가 이루어져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할 뿐 아니라, 권능으로 해야 합니다. 성령과 권능으로 교회가 이루어져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처음으로 교역자가 된 사람들, 즉 목사․전도사․조사가 된 사람들이 나가서 교회를 하려고 하면 권능이 없으므로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며 인본주의 수단을 쓰려고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다른 교회에서는 먹여서 교인들을 모은다, 청년들을 먹여라”하며, 일 년에 교인들 먹여주는 것에 대한 예산을 몇천만원을 쓴다고 합니다. 그렇게 안 하면 교회가 안 될까요? 안 되는 것은 자기가 자라나지 못하고, 영권이 없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영권으로 교인들의 생명이 살아나면 그 교회는 반드시 됩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교회가 되고, 생명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영권과 능력으로 교인들의 영혼을 살려서 교회가 될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은 안 하고 수단으로 교회할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말씀을 지키며 기도 생활 할 때에 성령의 권능이 입혀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를 힘써서 하면 권능이 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입혀집니다. 그러면 그 권능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모든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러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말씀이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으므로 떠나지 말라고 한 그 말씀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자체가 말씀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떠나라 하면 떠나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떠나지 말라고 할 때에는 떠나지 않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으므로 그때는 안 떠나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떠나라 할 때는 떠나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예루살렘에 있기 힘들 때에는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좋을 때에는 안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여기며 자기 유익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갔다 붙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엄연히 있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 하면 떠나기 싫어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예루살렘에 있으면 힘이 들고 죽을 것 같아도 ‘떠나지 말아라’하시면 안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떠나기 싫어도 떠나라 할 때에는 다 버리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야 합니다.
자기 중심과 자기 욕심으로 여기 있는 것이 좋으므로 ‘난 여기서 떠나지 않는다, 또 괴로울 때에는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평안과 자기 유익과 자기 출세를 위하는 것은 다 악한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이름을 도적질하는 악한 일들입니다. 그런 악한 일들에 빠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실 때에는 아무리 여기 있는 것이 좋아도 떠나고, 하나님이 떠나지 말라고 하실 때에는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면 성령의 권능이 점점 입혀집니다. 지킬 수 없는 말씀을 지키면서 권능을 기다리면 권능이 옵니다. 또 증인 된 생활을 하면서 권능을 기다리면 권능이 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이 입혀지도록 기도하라”는 이 명령을 우리는 귀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이미 오순절 날 임했습니다. 지금도 그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성령이 지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 박히신 후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보이시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후 첫째 오순절 날, 보혜사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 보혜사 성령이 우리를 믿게 하고, 그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내주(內住)해 계시고 우리에게 인을 치시고, 또 계속해서 감동을 시키고 계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셨는데, 왜 그 능력을 우리가 믿지 못합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를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순서를 통과하여야만 능력이 입혀지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아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순절 성령님은 이미 오셔서 우리에게 계시지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려야만 능력이 입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능력을 입혀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먼저 “능력을 입혀줄 것이니 너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능력이 입혀집니다. “왜 예루살렘을 떠나려고 하느냐? 떠나지 말고 사모해라, 그러면 입혀준다”는 것입니다. 입혀 주시려고 애를 쓰시는 성령이십니다.
또 성령이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빌립보서 2:13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3:16에“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성령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 1서 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 계시고 우리를 떠나지 아니 하시고 계속해서 감동을 시키시고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능력이 입혀지는 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그 순서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순서를 통과하지 않으면 능력이 입혀지지 않습니다.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성령이여 오시옵소서’한다고 해서 성령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성령을 받는다고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라고 열심히 말하는데, 그것은 외부적으로 오는 어떠한 감동을 조금 얻는 것입니다. 감정적인 감동입니다. 즉, 감정적인 힘입니다. 영혼이 자라서 얻는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진다는 것은 영혼이 자라나면서 능력이 입혀지는 것이고, 또 능력이 입혀지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자라나면서 능력이 입히어지는 것, 그것이 자기의 영권이 되는 것입니다.
4. 성령세례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지는 것
마태복음 3:11과 누가복음 3:16에 요한이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첫째,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지는 것을 뜻합니다. 누가복음 24:49에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
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
지는 일, 그것이 성령의 세례입니다.
말씀대로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
둘째는 말씀대로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운동입니다. 말씀대로 점점 깨끗해져 나가는 일이 성령 세례입니다. 세례는 ‘깨끗해진다, 씻는다’ 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란 성령이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케, 정결케 만들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
셋째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너희가 정결함을 입는다는 말입니다. 즉,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리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령의 사람이 될 것이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정결함을 입어 나가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면 이렇게 될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