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보암의 대답
열왕기상 12:1-15
1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중에 3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4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7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9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11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 12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
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열왕기상 12:1-15
1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중에 3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4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7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9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11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 12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
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1.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에게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함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온 회중이 르호보암에게 고함
본문 1절에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세겜이라는 곳에 온 이스라엘이 모여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려고 그를 불렀습니다. 열왕기상 11장 43절에 “솔로몬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부친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벌써 왕이 되었습니다. 이제 온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모여 세겜으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자기들이 왕을 삼는 대관식을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이 세겜으로갔습니다.
본문 2-3절에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중에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대표가 모여서 여로보암을 불렀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고 선지자 아히야가 옷을 찢어서 열 조각을 준 사람이 바로 여로보암입니다. 여로보암이 도망쳐 애굽에 있다가 솔로몬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사람을 불러서 그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과 함께 온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나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건을 들어주면 르호보암으로 왕을 삼을 것이고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왕을 삼지 않을 작정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이나 여러 사람들의 속셈은 르호보암이 왕 되는 것을 반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와서 내거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불평하는 백성들
본문 4절에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에 대한 불평, 불만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없어서 말을 못하다가 솔로몬 왕이 죽은 다음에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려고 하자 그 불만을 지금 다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불만을 쏟는 것이 옳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솔로몬 왕 때처럼 잘 살 때가 없었습니다. 솔로몬 왕 때처럼 백성이 평안하고 부유하고 태평하고 세계 일등 국가가 되고 금과 은을 흔하게 쓴 때가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곡식이 풍성하며 태평한 세월을 만들었지만그럼에도 백성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열왕기상 10장 27절에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은이 얼마나 풍부했으면 돌같이 흔했겠습니까? 또한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0장 21절에도 “솔로몬 왕의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정금이라 은 기물이 없으니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아니함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유한 시대에 태평을 누리고 잘 살았는데도 백성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솔로몬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또한 멍에를 무겁게 했다고 했지만, 솔로몬 시대에 그다지 멍에를 무겁게 한 적이 없습니다.
열왕기상 10장 22절에는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일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왔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시스에 배를 보내서 거기서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왔습니다. 또 열왕기상 10장 23절에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고 하였습니다.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컸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10장 24-25절에 “천하가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 얼굴을 보기 원하여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정한 수가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솔로몬 왕이 백성에게 세금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물질이 그렇게 흔하게 된 것이 아니고, 세계 열방에서 다 예물로 가져오고 또 장사해서 이익을 많이 얻음으로써 부유하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역을 많이 시켰다고 하지만 성전 짓거나 왕궁 지을 때에 그 일은 종들이 많이 했습니다. 백성들도 물론 했지만 그래도 종들이 더 많이 했습니다. 이방나라 사람을 종으로 부려서 그 종들이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열왕기상 5장 13-14절에 “이에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에서 역군을 불러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 만이라 솔로몬이 저희들을 한 달에 일만 인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매 저희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삼만 명인데 한 달은 가서 일하고 두 달은 집에 있었습니다. 그다지 힘든 것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5장 15절에는 “솔로몬에게 또 담군이 칠만 인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 인이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이방 사람들입니다. 그 이방 사람들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많이 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 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 멍에가 무겁다고 생각을 하여 솔로몬에 대한 불만을 품고 속으로 솔로몬의 아들이 왕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족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해주어도,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났다 해도 거기에 불만이 있고, 또 불평이 있습니다. 불만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기지 못할 때에는 아무리 좋게 해주고 잘 먹이고, 잘 입혀주고, 부유하게 만들어주고 평안하게 해주고 강하게 만들어주어도 그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의 아들이 왕 되는 것을 속으로 반대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을 데려온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딴 궁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선지자 아히야가 의복을 찢어 여로보암에게 열 분깃을 주었다 하는 소문이 나라에 돌아 다녔는지 모릅니다. ‘여로보암은 과연 왕이 될 만하다’고 해서 불러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다른 공작을 하면서 ‘이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세겜으로 오라고 하고 다 모여서 조건부를 들이대자’라고 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 조건은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오너라”고 르호보암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삼 일 동안 기회를 준 것이 잘못입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솔로몬 왕 때에 죽이려고 했던 여로보암을 불러서 자기들의 인도자로 세워 왔는데, 이것은 마귀 시험입니다. 다른 속셈이 있는 이들에게 삼 일 동안 있다가 오라고 한 것은 아주 잘못한 것입니다. 삼 일 동안에 공작을 많이할 것입니다. 마귀 시험 든 사람들이 삼 일 동안에 여간 치밀한 계략을 세우지 않을 리가 없는데 그런 마귀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마귀에게 기회를 준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기회를 주지 말아야할 것은 안줘야 하는데 주고 말았습니다.
2.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들의 말을 들음
본문 6-11절에 “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삼 일 후에 다시 오라 하고 르호보암 왕은 자기 부친 때 함께 했던 노인들과 일을 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를 물었을 때 노인들은 백성의 종이 되어 섬기고 좋은 말로 하면 그 백성이 영영히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 멍에를 가볍게 해준다, 내가 너희 종이 된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인들이 시킨 대로 했으면 됐겠습니까? 노인들이 시키는 대로 해도 안 됩니다. 조금은 나을지 모르지만 노인들이 말한 대로 하는 것도 사실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멍에를 가볍게 해준다는 것 자체가 바로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소년들이 시키는 대로 무겁게 한다는 것도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가볍게 해달라는 것의 표준은 이기주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위해서 평안하게 잘 해달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그러한 이기주의를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 바로된 지도자가 아닙니다. 또 소년들이 시키는 대로 가혹하게 해서 조금 더 무겁게 하겠다는 것도 인간의 혈기와 인간의 기분에 따라 완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의 뜻을 표준으로 삼고 나가야 함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나가려면 바르게 된 표준을 세워야 합니다. 표준을 바로 세워야지 표준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비뚤어집니다. 노인들이 하라는 대로 백성들에게 잘하는 것도 비뚤어진 것입니다. 백성들이 좋아할 수단을 써서 그들을 사로잡으려는 것입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소년들과 의논한 대로 부친보다 멍에를 더 무겁게 할 것이라면서 자기 새끼손가락이 아버지 허리보다 굵고, 또 아버지는 채찍으로 징계했지만 자기는 전갈로 징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아버지보다 자기가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사람의 허리만하다고 하면 내 새끼손가락이 그것보다 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보다 자신이 백배 낫다는 것입니다. 교만입니다. 르호보암은 교만하여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과신했습니다. 자기 아버지 시대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천하의 제일 가는 지혜를 가진 왕인 자기 아버지의 지혜를 자신은 백분의 일도 못 따라갈 텐데, 미련하게도 자기 아버지보다 백배 낫다고 한 것입니다. 또한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징계했지만 자신은 전갈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교만하고 무자비하여 백성을 학대하는 폭군 같은 대답을 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간구, 노인들의 교도, 소년들의 교도 다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로 하는 것입니까? 목표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표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표준 없는 간구, 표준 없는 독촉, 목표 없는 왕의 측근들, 목표 없는 백성의 간구, 다 잘못된 것입니다. 대답도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으로, 믿음으로 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나라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겠는가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푯대를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말씀대로 바로 되겠는가를 생각하며 이 말씀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했다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그런 이기적인 간구를 안 했을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잘되겠는가,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 백성이 되겠는가에 기준을 두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백성들에게서도 보이지 않고, 왕에게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불만을 품고 솔로몬 왕에게 항거했는데 사실 솔로몬 왕이 무거운 멍에를 메웠다는 것, 그것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보다는 무거운 멍에가 아닙니다. 솔로몬 왕이 무슨 일을 시켰다고 해도 다른 나라보다 많이 시키지 않았습니다. 세금을 메웠다고 해도 다른 나라만큼 세금을 메웠겠습니까? 솔로몬 왕 때 그렇게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데 백성에게 세금을 많이 받았겠습니까? 이방나라에서 온 것, 장사한 것만 해도 물산이 넘쳤을 것입니다. 또 왕의 종들이 칠만, 팔만이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일을 한다고 했어도 힘든 고역을 많이 했겠습니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고 오히려 솔로몬 왕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 섬긴 것을 지적했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잘못한 것 아닙니까? 솔로몬 왕이 우상을 섬겨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힘들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백성이 말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진리 문제, 하나님께 바로 서는 문제, 이런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자기들의 평안만 요구했습니다. 자기들은 평안하지만 조금 더 안락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더 안락하게 살도록 조금 더 자기들을 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입니다. 평안하게 해주었지만 더 평안하게 해달라고, 잘살게 해주었지만 더 잘살게 해달라고, 부유하게 해주었지만 더 부유하게 해달라는 것이 백성들의 심리입니다.
4. 하나님 앞에 마땅한 대답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전부 이기주의로 기울어지고 안일주의로 빠지고 방탕으로 빠지면 이런 간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증거입니다. 자기를 조금 더 평안하게 하고, 조금 더 잘되게 하고, 조금 더 부유하게 하고, 조금 더 잘되게 해달라는 것, 이것은 벌써 타락한 증거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도 없고, 전부 자기를 위하겠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간구를 백성들이 했으며, 또한 르호보암 왕의 대답도 잘못되었습니다. 대답의 표준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말씀과 영광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우리 아버지가 멍에를 무겁게 했다고 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이스라엘을 얼마나 잘되게 했습니까? 우리 아버지 솔로몬 때에 세계 일등 국가가 됐고, 세계 열방에서 금과 은과 여러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당신들은 다른 나라보다 세금을 훨씬 적게 내지 않았습니까? 또 일이야 종들이 많이 했고, 일을 했어도 두 달은 놀고 한 달만 일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것은 잘한 일이며 여러분들이 수고한 것을 압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서 당신들이 일한 것은 잘한 것으로 복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했어야 합니다. 또 “나보고 앞으로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하지만, 나는 여러분들에게 가볍게 해주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일을 해야 복 받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일을 안 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일을 안 해야될 것 같으면, 내가 일을 시킬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까? 하나님께 충성할 생각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하고, 아무리 무거운 멍에라도 우리가 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안 시키시면 멍에 메울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괜히 앞으로 무겁게 할까봐 겁내지 말고, 또 가볍게 하기를 원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은 어떠한 고난이라도 달게 받자고 생각하십시오. 십자가라도 달게 받고 나갑시다. 또 하나님께서 안 시키시면 안 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아, 참 그렇다. 우리가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 잘못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들인데 앞으로 더 힘든 일이라고 해도 해야겠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안해도 될 것 같은 것은 안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르호보암 왕이 멍에를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해야 한다. 내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 힘든 것이라도 해야겠다. 또 하나님께서 시키셔서 세금을 좀 더 많이 내야한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해야겠다”라고 하고 여길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전부 이기주의로 기울어지고 안일주의로 빠지고 방탕으로 빠지면 이런 간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증거입니다. 자기를 조금 더 평안하게 하고, 조금 더 잘되게 하고, 조금 더 부유하게 하고, 조금 더 잘되게 해달라는 것, 이것은 벌써 타락한 증거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도 없고, 전부 자기를 위하겠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간구를 백성들이 했으며, 또한 르호보암 왕의 대답도 잘못되었습니다. 대답의 표준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말씀과 영광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우리 아버지가 멍에를 무겁게 했다고 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이스라엘을 얼마나 잘되게 했습니까? 우리 아버지 솔로몬 때에 세계 일등 국가가 됐고, 세계 열방에서 금과 은과 여러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당신들은 다른 나라보다 세금을 훨씬 적게 내지 않았습니까? 또 일이야 종들이 많이 했고, 일을 했어도 두 달은 놀고 한 달만 일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것은 잘한 일이며 여러분들이 수고한 것을 압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서 당신들이 일한 것은 잘한 것으로 복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했어야 합니다. 또 “나보고 앞으로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하지만, 나는 여러분들에게 가볍게 해주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일을 해야 복 받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일을 안 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일을 안 해야될 것 같으면, 내가 일을 시킬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까? 하나님께 충성할 생각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하고, 아무리 무거운 멍에라도 우리가 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안 시키시면 멍에 메울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괜히 앞으로 무겁게 할까봐 겁내지 말고, 또 가볍게 하기를 원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은 어떠한 고난이라도 달게 받자고 생각하십시오. 십자가라도 달게 받고 나갑시다. 또 하나님께서 안 시키시면 안 해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아, 참 그렇다. 우리가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 잘못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들인데 앞으로 더 힘든 일이라고 해도 해야겠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안해도 될 것 같은 것은 안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르호보암 왕이 멍에를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해야 한다. 내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 힘든 것이라도 해야겠다. 또 하나님께서 시키셔서 세금을 좀 더 많이 내야한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해야겠다”라고 하고 여길 것입니다.
여기서 대답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인들의 조언은 무조건 백성에게 잘해준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가볍게 해준다고만 하라는 것입니다. 소년들은 배짱이 좋아서 오기를 부리며 더 강하게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어떤 대답이 있습니까? ‘무겁게 한다, 가볍게 한다고 임의대로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앞으로 더 큰 일도 해야겠고, 또 안 시키신다면 해서 뭐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잘된다고 하면, 앞으로 조금 더 힘써서 우리가 달려가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잘되지 않겠느냐. 또 안 해도 될 것 같으면 우리가 해서 뭐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죽든지 살든지, 괴롭든지 즐겁든지, 평안하든지, 십자가를 지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나가자.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노인들의 대답, 소년들의 대답, 또 마지막 대답, 그 중에 어느 것이 옳습니까?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어느 편에도 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재판해야 합니다. 누구 봐주면 안 됩니다.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왕의 편에 서도 안 되고, 백성의 편에서도 안 되고, 또 젊은 사람 편에 서도 안 되고, 늙은 사람 편에 서도 안 되고, 목사 편에 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과 그 말씀에 근거하여 옳은 편에 서야합니다. 갈라지고 안 갈라지고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선 대답은 바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지고 안 갈라지고는 내가 할 바가 아니고, 우선 내가 하나님께 대답을 바로 해야 합니다.
5. 회개하는 것이 믿음임
그 다음에는 르호보암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삼 일 후에 답변한다고 하지 말고, 온 백성과 더불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얼마 동안 서로 가지면서 우리 아버지 솔로몬이 우상 섬긴 것이나, 하나님을 떠난 죄 값으로 백성들이 전부 믿음에 서지 못하게 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자고 하면서 전체가 다 회개하는 기간을 가지고, 니느웨 사람처럼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릎 쓰고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을 떠났고, 우상을 섬기고, 또 그러니까 이 백성들이 믿음에 서지 못하고, 다 이렇게 되었으니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하며 통회하는 기간을 며칠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안 갈라지게 해주시고, 용서해주실 것 같습니다. 갈라지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안 갈라지겠느냐고 사람들이 생각할지 몰라도, 니느웨 사람들도 모두 죽겠다고 했지만 회개하자 안 죽지 않았습니까? 또 히스기야 왕도 회개할 때에, 죽는다고 했다가 안 죽지 않았습니까. 르호보암이 그때에 참으로 회개하고 이스라엘 온 백성도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혹시 뜻을 돌이키셨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나누려고 하셨다가 ‘아, 회개하는구나. 이 백성이 희망이 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솔로몬 왕이 죄를 짓고, 또 백성은 다 타락이 되면 나라가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르호보암도 회개하고, 백성도 회개하고, 다 회개하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왜 가르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갈라지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뭐가 좋으시겠습니까?
그러나 르호보암 왕이 여기서 믿음으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왕이 말을 안 들어주면 따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우리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자’는 공작을 하도록 빌미만 제공한 셈입니다. ‘나는 전갈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니 반항이 일어나고 그 백성들이 순종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미 신앙을 멀리 떠나 교만함과 오만불순한 태도만 남았습니다. ‘조건을 들어주면 당신을 왕으로 섬기고, 우리 조건을 안 들어주면 왕으로 안 섬긴다’고 하는 것이 벌써 오만불순한 태도입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평안하고, 부유하고, 자유스럽게 살고, 또 세계 일등 국가노릇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자만심이 가득해졌습니다. 부유하기 때문에 사기가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 왕이 내리 누르려고 해도 눌러지지 않습니다. 솔로몬 왕 때가 제일 좋은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일 황금시대인데, 그것이 오히려 폐단이 되고, 화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부유한 생활로써 교만해졌다는 말입니다. 부유하고, 평안하고, 세계에서 우러러볼 만해지니, 자만심이 생기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 앞에 와서도 조건을 들이댈 만큼 겸손이 없습니다. 오만불손해진 그런 사람들을 왕이 아무리 내리 누른다 해도 눌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6. 백성들의 잘못된 태도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자. 북쪽에 가서 열 지파를 모아 나라를 세우자’고 했는데, 그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어긋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2장 5절에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택하신 곳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어기고 자기들의 교만, 오만 불순한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지 않고, 상한 심령을 가지지 아니하고, 완고한 고집과 강한 자아라는 것에 지배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북쪽 벧엘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건설하고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이후에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빠졌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자. 북쪽에 가서 열 지파를 모아 나라를 세우자’고 했는데, 그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어긋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2장 5절에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택하신 곳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어기고 자기들의 교만, 오만 불순한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지 않고, 상한 심령을 가지지 아니하고, 완고한 고집과 강한 자아라는 것에 지배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북쪽 벧엘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건설하고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이후에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빠졌습니까?
또 이들이 왕에게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했는데,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왕을 구할 때에 ‘왕을 세워 놓으면 왕이 너희에게 멍에를 메워놓는다’고 말해주셨습니다. 너희가 왕의 종이 되며, 왕의 멍에를 메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안 메겠다는 것은 성경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멍에를 메게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8장 10-11절에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 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노
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 양 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왕을 세우면 반드시 왕이 너희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키고, 무거운 멍에를 메울 뿐만 아니라 너희가 왕의 종이 된다’고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멍에를 안 메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의 멍에가 무겁다고 북쪽으로 가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멍에가 더 무거운 것입니다. 자기네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서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세웠지만, 여로보암의 멍에는 더 무거운 것입니다. 멍에는 메게 되어 있습니다. 죄 지은 백성,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은 백성은 멍에를 메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 처음에 왕 세울 때에 하나님께서는 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기 위해서 왕을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를 안 받으니 하나님께서 왕 세우는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왕을 세우지 않고 직접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는 것인데 백성들에게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신앙이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신앙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왕을 세워서 다스리게 하여 탈선 안 되게 어느 정도 유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왕을 세워 놓은 다음에는 왕의 멍에를 메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안 메겠다고 하는 것이 벌써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왕을 세운다면 더 큰 멍에를 메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 하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주의, 목표가 없는 생활, 자기 중심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참된 겸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일이 중심, 하나님 말씀이 중심, 하나님의 영광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어떠한 무거운 멍에라도 메야 합니다. 세금 더 많이 내라고 하면 더 많이 내야 하고, 또 무거운 노동을 하라고 하면 마땅히 해야 합니다. 안 하겠다고 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표준이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표준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야 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것이라도 메야 된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언제나 목표를 하나님의 나라와 의와 그 말씀과 그 영광에 두어야 합니다. 멍에와 십자가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백성들에게 무겁게 한 것은 사실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히 있어야 될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으라고 한 것이지, 뭐 다른 것이 있습니까? 또 솔로몬 왕궁 짓는 일이 있었지만, 왕궁 지을 때에는 다 삯을 주고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언제나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또 멍에도 멜 각오를 해야 합니다. 노력이나 경제적 부담이나 하나님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떠한 것이라도 단 마음으로 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내가 고생스럽다. 내가 더 편안히 살아야 되겠다. 내가 좀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을 다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또 백성은 왕의 종, 왕은 백성의 종, 이렇게 서로 종살이 해야합니다. 또 일단 왕을 세워 놓으면 그 멍에를 메게 되어 있습니다. 안 메겠다는 정신이 벌써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르호보암 왕이 대답을 잘못했습니다. 믿음으로 대답을 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 말씀에 바로 대답을 했다면, 또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르호보암 왕이 하나님의 뜻대로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왕은 백성의 종살이를 해야 하고, 백성은 왕의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맞습니다. 성경에 맞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서로 종살이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 종살이하는 세상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이용해 먹었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됐다고 하면 좋은 것입니다. 바로 된 것인데 어찌 탓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됐다고 하면 좋은 것입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됐다고 하면 좋은 것입니다.
피차간에 종살이하며 그 결과가 어떻게든 하나님의 일이 잘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백성도 겸손해야 하고, 왕도 겸손해야 합니다. 왕도 백성에게 강폭한 말로 하지 말고, 온유한 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하고, 백성도 자기들을 위해서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당신이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다 타파하세요. 당신의 아버지가 들여온 이방나라의 첩을 다 내쫓으세요. 우상 다 타파하세요”라고 했더라면 참 잘될 뻔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진전입니다. 그래서 왕이 “아, 당신네 말들이 옳소. 이제는 우리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타파합시다. 그리고 이방 첩들은 다 내쫓으시오”라고 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잘될 뻔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시원하시겠습니까? 그 백성도 복을 받고, 왕도 복을 받고 다 복 받을 뻔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중심으로 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해야 잘되겠느냐,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해야 잘되겠느냐, 어떻게 해야 말씀에 우리가 바로 서겠느냐’고 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수고하고 안 하고, 또 무거운 짐을 지고 안 지고, 그러한 것들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세금을 많이 내거나 안 내거나 노동을 많이 하거나 안 하거나에 표준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만 잘된다면 얼마든지 무거운 짐도 지고, 얼마든지 수고도 하고, 얼마든지 바치기도 하고, 얼마든지 희생하려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면 그 자자손손이 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 중심으로 돌아서서 ‘어떻게 하면 나를 평안하게 할까, 내가 누구인줄 알고 이러느냐,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느냐, 날마다 내리 누르려고 하느냐, 우리는 눌릴 사람들이 아니다’, 이렇게 하고 반항하면 결국에는 무거운 멍에를 메게 됩니다. 금송아지를 섬기게 되고, 말씀에서 떠나게 되고, 마지막에는 비참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남북이 250년간 나라가 나뉘어 서로 대적이 되었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둘 다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중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습니까? 우리는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바로 서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