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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9일 일요일

욥기 42:1-17 욥의 회개와 받은 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욥의 회개와 받은 복
욥기 42:1-17

1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7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8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9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12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13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14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15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16그 후에 욥이 일백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1. 욥의 회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영적으로 발견하고 회개하게 됨

본문 1-3절에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 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여러 가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욥기 40장과 41장을 거쳐 여러 가지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욥기 3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욥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경우를 드시면서, 여러 상황 속에서 욥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욥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친히 만나보고 또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듣고 욥이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무소불능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능치 못하신 것이 없으신, 만능의 하나님이신 줄을 욥이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또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신 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기 41장에서는 악어에 대해서 말하시고, 욥기 40장에서는 하마에 대해서 말하시며, 39장에서는 타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러 가지 경우를 드심으로 욥에게 하나님의 만능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위대성과 능력, 그것을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욥이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는 자기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고 보니 자기가 지금까지 말한 것이 다 자신의 무지함에 기초한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너무나 무지한 것들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치를 가리는 말을 많이 하였음을 욥이 여기서 깨달았습니다. 또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말도 많이 하고, 스스로 헤아릴 수 없는 일도 많이 말한 욥이었습니다. 그것을 욥이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발견하고 보면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이나 잘못한 것, 자신의 어리석은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4절에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듣기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순종만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만 하겠사오니, 말씀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기가 안다고 했지만, 실은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깨달은 것 같아도 깨달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그저 주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듣기만 하고, 시키시는 대로 순종만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옳은 줄 알고 그대로 받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낮아진 태도입니다. 

본문 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는데, 이제는 실제로 눈으로 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신데, 욥은 그런 하나님을 눈으로 뵈었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욥이 주를 뵈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봤다는 말입니다. 체험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루어나가시는 그 뜻도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체험하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한한다는 것은 자신을 없이 여긴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없이 여기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속 깊은 곳에 자리한 부패성을 두고 진정한 회개를 함

그런데 욥기 전체에 걸쳐서 회개한다는 말은 본문 6절,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 욥은 계속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하며 자신이 깨끗하다고 하였는데, 이제 맨 나중에 와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하며 진정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무슨 특별한 죄가 있어서 회개 시키시려고 환난을 당하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욥을 연단시키시려고, 하나님께서 욥으로 하여금 환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욥이 ‘회개하나이다’라고 한 것은 욥의 깊은 속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부패성이 있었는데, 그 부패성을 하나님께서 나오게 만드심으로 회개시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연단을 시키시려고 고난을 주셨습니다. 특별한 죄가 없는데 고난을 주신 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상급을 주시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또 한 가지 뜻은 욥의 깊은 속에 들어 박혀 있는 부패성을 나오게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부패성이 나옵니다. 그러한 부패성이 좀처럼 없는 것 같고 그전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환난과 연단 가운데서 그 부패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욥이 그것을 회개하였습니다. 만약 욥이 환난을 안 당하였다면 자기 속의 부패성을
알지 못할 뻔 했는데, 환난을 당했기 때문에 그 부패성이 나왔고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즉, 욥이 환난을 안 당하였다면 자기 속에 그러한 부패성이 없는 줄 알고 회개하지 못
하고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러므로 속에 있는 부패성이 다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다 나오게 만들어서 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가만히 놔두면 내내 그냥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오게 만들어서 회개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나오게 해서 회개하는 것은 그것을 빼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빼내버리지 못하고 그냥 놔두고 없거니 하고 나아가면, 실제로 속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환난 없이 평안히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환난을 당해서 속에 있는 부패성이 다 나오고 그것을 회개해야 좋은 것입니다.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다 나와서 그것들을 전부 회개한 다음에야 깨끗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법으로 욥을 깨끗하게 하신 다음에 데려가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여러 가지 환난을 주신 것입니다.

하여간 욥은 여기서 진정으로 회개를 하였습니다. 자기를 없이 여기면서 회개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티끌과 재 가운데서’라는 것은 자신을 낮추면서, 부인하면서 회개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 있다는 것은 자신을 아주 낮추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태도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을 없이 여겨야 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욥의 회개는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하는 회개입니다. 욥의 죄는 나가서 도둑질을 했다든지, 혈기를 부렸다든지, 싸웠다든지, 십계명을 범하였다든지 하는 그런 죄가 아닙니다. 욥은 의인입니다. 순전한 사람 입니다. 정직하여 아무 허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속에 부패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회개시키시려고 지금까지 여러 가지의 환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에 가서야 나왔습니다. 여러 가지 환난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발견하고 하나님의 밝은 빛 가운데 자기가 비추어질 때에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이 발견될 때에 자기의 무능함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그 지식의 무한한 것이 발견될 때에 자기의 무지함과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하는 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멸시하면서, 없이 여기면서 티끌과 재 가운데서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심

하나님 앞에 바로 하려고 애쓴 욥을 정당하게 봐주신 하나님

본문 7절에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어느 정도 진리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말한 내용은 전부 욥이 고난 받는 것은 죄가 있어 받는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받는 것은 죄 값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욥의 말과 같이 그들의 말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욥의 친구들은 진리를 말해도 사건과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한 것입니다. 사실 욥은 죄 값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닌데, 친구들은 계속하여 그렇다고 한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연단을 시키시려고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 깊은 속에 있는 부패성을 빼어 내버리게 하시려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자기의 무능을 깨달으며 자기의 부족을 깨닫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 친구는 인과관계만 말하였습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이니 회개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이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판결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말을 정당한 말로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의 말은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보시고 노하신 것입니다. 진리를 말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수가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앞서 말한 대로 진리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초보적인 진리, 보편적인 진리, 얕은 진리를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좀 더 높은 진리의 세계에서 말하였습니다. 좀 더 깊은 진리에서 말한 것입니다. 또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은 욥이 당한 사건과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옳은 말들이어도, 욥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해당이 안되는 그런 이치를 말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친구들의 말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의 말이 정당하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욥의 말이 정당한 것입니까? 욥은 좀 더 바른 것을 찾으려 애를 썼습니다. 자신이 특별한 죄 범한 것은 생각나지 않는데 왜 이런 고난이 왔을까 하며 바른 진리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욥이 무조건 죄를 지었으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즉, 친구들은 바로 말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요즘 우리 보통 사람들은 고난당할 때에 자기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죄가 다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욥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욥은 바른 진리를 찾으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또 자신이 당하는 사건, 사실에 대해서 바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알아보려 했습니다. 왜 고난을 당하는가 알아보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또 좀 더 깊은 진리의 세계에서 좀 더 깊은 진리를 깨달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옳게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욥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을 말했다고 하였고, 헤아릴 수 없는 말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욥도 완전하게 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왜 욥을 정당하게 보셨습니까? 바른 것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정당하게 보신 것입니다. 욥이 신앙 양심을 써서 바른 진리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이 고난당하는 일을 두고 좀 더 바로 하려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바로 해결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에게는 왜 노하셨다고 했습니까? 욥의 친구들도 진리를 가지고 와서 말을 했지만, 그것이 욥에게는 해당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욥을 정죄하고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또 좀더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얕은 진리를 가지고서 좀 더 깊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정죄하고 나갔습니다. 욥을 훼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남을 헤아리고, 그것이 다인줄 알면 안 됩니다. 무슨 사건을 당할 때에 좀 더 깊은 진리를 깨닫고 바로 하려는 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욥은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께 바로 하려고 신앙 양심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 하고 좀 더 깊은 진리의 세계에서 깨달으려 하며, 배우려고 했습니다. 찾으려 애쓰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되는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은 욥의 친구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초보적인 것을 조금 안다고 해서 되는대로 판단하며 나가려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이 아는 지식을 표준으로 다른 것을 일률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바로 욥의 친구와 같은 사람입니다. 몇 가지를 알긴 알아도, 그것만으로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상이 있는 것을 모르고 몇 가지 초보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욥이 다 정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을 정당하게 봐주셨습니다. 욥이 바로 하려고, 바로 서려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고, 바로 발견하려고, 바로 순종해드리려고 애쓴 것을 좋게 보신 것입니다. 그러한 점들이 욥에게 있었기 때문에, 욥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말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정당하게 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으로 하여금 친구들을 위하여 번제와 기도를 드리게 하심

본문 8절에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너희의 우매한 대로 갚지 않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송아지와 양을 각각 일곱 마리씩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온전한 제사로 받으시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짐승 한 마리를 가지고 와서 제사드리는 것도 큰 일인데, 일곱 마리로 드리라는 것은 온전한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물들을 바칠 때에 욥을 통해서 제사를 드리고 욥을 통해서 기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세 친구는 욥에게 붙여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욥의 수하에 복종시키시는 것입니다. 욥을 통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해줘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을 볼 때에, 욥은 제사장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제사장의 위치에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욥을 통해 제사를 드리고 기도해야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욥의 친구들이 아무리 자기들이 무엇을 잘 안다고 하며 욥을 여러 가지로 책망했어도, 결과적으로 욥이 친구들보다 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나 진리적으로 깨달은 면이나 그 외 모든 면에서 욥이 그들보다 나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은 사람에게 그보다 못한 사람을 소속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나은 사람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줘야 하고 제사도 드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세 친구에 대해서 교역자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세 친구를 가르쳐주고 대신 제사를 드려주고 기도를 해주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일하십니다. 본인이 직접 기도할 수 있지만, 선지자를 통해 제사를 드리고 기도도 하게 하십니다. 인도를 받게 하십니다. 지도를 받고 교육을 받으며 소속되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소속되어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제사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제사도 드려주고 기도도 하여서, 모든 질서를 바로 세워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구원 운동을 해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배워야 하고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드려야 받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큰 섭리가 있습니다. 

본문 7절 하반절에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고 하였는데, 너희들은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끼리 놔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가만히 내버려두면 정당하지 못한 대로 내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욥에게 소속이 되어야만 정당하지 못한 것을 시정시켜 나가고, 정당한 것을 배워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욥의 인도를 받아야만 너희가 탈선이 안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욥의 인도를 받을 때에 친구들이 탈선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 교역자의 인도를 잘 받아야 함

우리도 바른 교역자의 인도를 받을 때에 탈선이 안 되고 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론이 말을 잘하고 모든 일을 잘하였지만, 모세에게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아론의 동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세가 더 낫습니다. 진리 면이나 신앙 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면에서 모세가 더 낫습니다. 아론이 하는 것은 모세만큼 정당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론으로 하여금 언제나 모세에게 소속이 되어서 그의 인도를 받아 모든 일을 하게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아론이 모세의 인도를 안 받았습니다. 당시에 아론이 앞장서서 모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론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원망하다가 문둥병에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즉, 모세의 인도를 받을 때에 아론이 바로 섰습니다.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바른 이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 아는 사람에게 소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인도를 받을 때에 비로소 정당치 못한 것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배워서 실수하지 않을수 있고, 미련한 말도 앞으로 안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 제사를 드렸고 욥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와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고 하였습니다.

3. 여호와께서 욥의 고난을 거두시고 이웃을 통하여 위로해주심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실 때에 사람들도 도와줌

본문 10-11절에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고난을 거두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고난을 거두시니까 욥의 병이 다 나아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의 고난을 거두시고 건강을 주시며 복 주시기를 시작 하니까 여러 형제, 자매가 다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병이 다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친구들이 와서 음식을 먹고 욥이 재앙 받았던 것을 인해서 슬퍼하고 위로하며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을 주고 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돌봐주셔야 합니다.하나님께서 돌봐주시면 사람들도 와서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 돌봐주시면 사람들이 와서 도와줄 수 없습니다. 욥이 이제껏 고난을 당할 때에 와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욥에게 형제와 자매가 많은 것 같은데, 욥이 고난을 당할 때에 그 형제, 자매가
왔다는 말이 없습니다. 또 ‘전에 알았던 자들이 다 와서’라고 하는 것을 보니 욥이 전에 알았던 자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고난을 당할 때에 세 친구와 또 한 사람밖에는 왔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았다고 하니 많이 모여와서 위로해주고 금도 한 조각씩 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면 사람들도 도와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안 붙들어주시면 사람들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친구들도 도와주러 왔지만 도리어 괴롭게만 하였습니다. 좋은 진리를 말하려고 하였지만, 전부 욥에게 맞지 않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사람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와준다고 해도 도움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를 안 도와준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 나았다고 하니까 형제, 자매가 금 한 조각씩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웬만한 사람 같으면 고난을 당할 때는 찾아오지 않고 이제서야 왔다고 하며 그들을 쫓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욥처럼 우리가 받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주신 줄로 알고, 형제와 자매, 친구들이 와서 안 돌봐주었다고 해도 섭섭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안 돌봐주었다고 섭섭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도움이 중요한 것임

‘오늘 추석인데, 아들, 딸이 오지 않았다. 섭섭하다’라고 하는 부모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예 올 것을 기다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사람도 와서 도와주게 돼 있고,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사람들도 못 도와줍니다. 오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와도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실 때에는 그들이 와서 고통만 줍니다. 가까운 사람이 와도 고통만 주고 짐만 됩니다. 설상가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밖에는 나를 도와줄 이가 없다고 믿고 나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고 섭섭해 하는 것은 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 모든 도움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다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만 바로 서야 합니다. 잘 참고,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께만 바로 서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형제, 자매들이 아무도 안 도와줘도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면 다 옵니다. 하나님께서 권고하실 때 그들이 다 오는 것입니다. 다 내버리고 갔다가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 다 옵니다. 선물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위로와 도움이 중요한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심

본문 12-13절에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재산을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양이 칠천이었는데 일만 사천이 되었습니다. 약대도 삼천이었는데 육천이 되었습니다. 소와 나귀도 처음에는 오백 겨리였는데 일천 겨리씩이 되었습니다. 갑절을 주셨습니다.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재산은 다 갑절을 주셨는데, 아들과 딸은 처음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갑절입니다. 왜냐하면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죽어서 없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 천당에 있습니다. 천당에 있는 자녀와 새로 낳은 자녀를 합쳐서 갑절인 것입니다. 소나 양은 다 없어진 것이므로 갑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들과 딸은 없어진 것이 아니므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다시 주심으로 합하여 갑절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갑절로 주신 것입니다. 

천당 간 자녀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보내놓은 것입니다. 이민 보내놓은 것입니다. 다 살아 있습니다. 아들을 낳아서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았어도 아들이 둘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는 이미 더 좋은 곳으로 이민 보내놓은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14-15절에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전국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을 정도로, 아리따운 딸들을 주셨습니다. 셋 다 일등감입니다. 처음의 딸들은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지금의 딸들은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상당히 아리따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너무 잘생겨서 그 잘생긴 것을 따라 이름을 지은 듯합니다. ‘여미마’라 하는 이름은 낮이라는 뜻입니다. 밤이 아니고 낮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낮처럼 환하게 보인 듯합니다. ‘긋시아’라 하는 뜻은 향나무라는 것입니다. 향나무처럼 아름다운 향기가 풍기듯 아름다웠던 모양입니다. ‘게렌합북’이라 하는 이름은 뿔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뿔에 좋은 것을 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딸 셋을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웠던 듯합니다. 잠언 11장 22절에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돼지 코에 금고리를 끼우면 뭐가 좋겠습니까?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언 31장 30절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그 마음이 아름다워야 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을 숨겼다고 했는데, 아름다운 아이라는 것은 성령의 은혜가 그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그 속에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고 은혜가 속에서 뛰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아름다운 가치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얼굴이 아름답게 생겼다고 해도 삼가지 아니하면 돼지 코에 금고리와 같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5. 욥이 장수함

본문 16-17절에 “그후에 욥이 일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시험을 받은 후에 욥이 일백 사십 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러면 시험 받기 전에 몇 년이나 살았겠습니까? 그것을 자세히 알 수는 없는데, 70인 역에 따르면 욥이 이백 사십 년을 살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세에 시험을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다고 한 것을 보면, 욥이 나이 많은 뒤에 시험을 받은 것 같습니다. 자녀 열을 낳으려면 아무리 젊어서 낳으려고 해도 6, 70 이상 되었어야 할 듯합니다. 아무튼 욥이 시험을 받고 일백 사십 년을 더 살았는데, 일백 사십에 육십을 더하면 이백 세 이상은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믿음 잘 지키면 장수하는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장수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시면 장수하는 복도 주십니다. 믿음을 잘 지킬 때에 장수하는 복이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