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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4일 화요일

역대하 35:20-27 요시야 왕의 죽음에서 받을 교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요시야 왕의 죽음에서 받을 교훈
대하 35:20-27

20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 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21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22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그 신복이 저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예레미야
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26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27그 시종 행적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1. 지혜가 부족한 요시야 왕

본문 20-23절에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 온 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 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지혜는 뱀과 같이, 순결은 비둘기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아무리 믿음이 좋고 아무리 충성되이 일하며 모든 일을 다 잘했어도, 그만 마귀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생기고 맙니다. 그래서 마귀의 일을 해주고 싸우지 않을 사람과 싸우다가 죽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애굽 왕 바로느고가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가며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고 하였을 때에, 요시야 왕이 지혜가 없어서 바로느고와 마주 싸우러 나갔습니다. 요시야 왕은 ‘이 사람이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앗수르 왕과 싸우러 왔다고 해놓고 유다 나라를 통과한다고 하는데, 그냥 무사히 지나가겠는가? 다 지나간 다음에 싸우자고 덮쳐누르지는 않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요시야 왕은 애굽 군대가 유다 나라를 통과해 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들이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와서 덮쳐누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점령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미리 근접을 못하게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싸우러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어떻게 했어야 했습니까? 

2. 자신(自信) 있는 때가 사실 자신이 없는 것임

그래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인데, 이 일에 대하여 여선지 훌다에게 가서 물어보든지 대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물어보면 되었겠는데, 요시야 왕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야 왕이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제 생각, 제 뜻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하고 제 생각, 제 뜻대로 하면 실패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과거에는 이런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 물어보았었는데, 이번에는 왜 물어보지 않은 것입니까? 먼저 이번 전쟁을 하러 나갈 때에 그가 너무나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마음이 연하여 겸비하며 옷을 찢고 통회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없어졌습니다. 너무 자신이 있고 너무 담대해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자신이 있는 때가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약할 때가 강하다고, 과거에 약할 때에는 강했는데, 이제는 너무 강해져서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너무 강하면 안 되고, 너무 자신이 있으면 못 씁니다. 제가 다 할 것처럼 돌아가면서, 자기가 무엇을 하면
안 될 것이 없는 줄로 아는 사람은 언젠가는 함정에 빠집니다. 지금 요시야도 자신을 과신하다가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과신하면 안 됩니다. 요시야 왕도 과거에 무엇을 잘해서 성공했다고 해서, 지금 너무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성공한 다음에 자신 있게 나가다가 실패한 사람이 또 있는데, 바로 유다 나라의 왕 아마샤입니다. 아마샤가 세일 사람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큰 대군과 싸워 이겼기 때문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전쟁하러 나갈 때 그가 기도하기를, ‘나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옵나이다. 세일 사람 들의 많은 군대가 왔는데 우리는 능히 당할 수도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그가 하나님 앞에만 섰다고 하였습니다. 그저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도우셔서 세일 사람을 다 치고 이기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세일 사람들이 많이 왔지만 아마샤가 적은 군대를 가지고 다 이겼습니다. 그런데 한 번 이긴 후에 자신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제는 세일 사람을 이겼으므로 세일 군대보다 수가 적은 이스라엘 군대는 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샤 왕이 자신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싸우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왕이 “네가 세일 사람을 쳤다고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혼인하자고 하는 것과 같다. 짐승이 지나가다가 짓밟아 치울 것이다”라고 깨달을 수 있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아마샤 왕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마샤가 계속 싸우자고 하는 바람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군대가 와서 다 점령을 하고 예루살렘 성 사백 규빗을 다 헐어버리는 비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왕이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가면서 아마샤 왕을 놓아주었습니다. 다 죽게 된 것을 놓아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나 성공했다고 해서 자신 있게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실패합니다. 옛날에 윤 할머니가 자기는 졸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조는 것을 흉보다가 어느 날 자기가 졸다가 뒤로 ‘꽝’하고 넘어갔습니다. 자기가 안 조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조는 사람을 자꾸 멸시하고 공격하다가 하나님께서 뒤로 한 번 넘어가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 있는 것이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윤 할머니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 있는 것이 자신 없는 것이라고, 윤 할머니가 안 졸고 밤새도록 강대상 앞에서 기도를 하다가 너무 잘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방심하다가 뒤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알 것은 하나님 앞에 모든 충성을 다하다가 실수하
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똑바로 쓰고 바로 하려고 애를 쓰다가 보이는 결함은 고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양심을 안 쓰고 일심정력을 안 기울이는 사람은 안 고쳐주십니다. 역대하 30장 19-20절에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찌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결심하고 하나님께 바로 하려고 할 때에 결함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사해주시고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서 하나님께 바로 하려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3. 뱀 같이 지혜로우라

아무튼 요시야 왕의 연한 마음이 다 없어졌습니다. 요시야 왕이 이제는 겸비하지 않습니다. 그 연한 마음과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벌벌 떨면서 물어보던 신앙이 어디로 가버렸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생겨서 ‘내가 하면 된다. 내가 해야 되겠다’라고 하면서 제 생각, 제 뜻, 제 힘으로 하겠다는 생각이 속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왕 느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고 깨달을 만큼 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권면하는 것을 무시하였습니다. 이렇게 지혜가 부족하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가다가 실패합니다. 지혜가 문제입니다. 일 처리를 한 번 잘못해 놓으면 아주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5절에 “너희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지혜는 뱀 같이 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뱀의 지혜 같이 할까를 궁리해야 합니다. 뱀의 지혜는 자기의 지혜가 아니고, 외부에 있는 마귀에게서 받은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도 모든 일을 해나갈 때에 자기의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가지고 해야 실패가 없습니다. 자기의 지혜로 무엇을 하면 백 번이면 백 번, 만 번이면 만 번 다 실패합니다. 마귀의 지혜가 사람의 지혜보다 강하기 때문에 못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지혜대로 싸우면 이깁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세 번 다 하나님의 지혜인 성경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당신의 지혜로 이기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자기의 지혜로 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로 하셨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꼼짝도 못 합니다. 백이면 백, 만이면 만 다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싸워야 우리가 실패하지 않습니다. 

4. 성경대로만 하면 모든 경우에 이기며 나갈 수 있음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말씀이므로 ‘성경에 무엇이라고 했는가? 성경대로만 하자’하고 성경대로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하튼 이깁니다. 싸움하는 것도 성경대로만 하면 이깁니다. 이 다음에 싸움할 기회가 있으면 성경대로만 하십시오. 싸움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옳다. 성경대로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성경대로만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까? 왼뺨을 치는 자에게 오른뺨도 돌려대고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 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 리를 동행하는 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기는 법입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이깁니다. 마음이 편안치 않으면 벌써 그 사람은 진 것입니다. 왼뺨을 맞을 때에 속이 편안치 않으면 이미 마귀한테 진 것입니다. 왼뺨을 맞을 때에 속이 편안해서 “또 때리시오”하고 돌려대야 합니다. 내 속이 올라오면 안 됩니다. 돌려댈 때도 속이 편안치 못하면서 돌려대면 절반은
진 것입니다. 속이 편안해야 합니다. 왜 편안해야 되겠습니까? 나를 때리러 온 사람이 마귀의 종이 되어서 왔기 때문에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보고 “인자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자는 화가 있으리니 나지 않았더면 좋을 뻔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예정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는 사람만 화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 때문에 팔리신 것이 아니므로 속이 편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미워하면 안 됩니다.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를 맞으면서라도 ‘주여 믿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하면서 맞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성경에 대접하라고 했으므로 오히려 매 맞은 날에 가서 맛있는 것으로 잘 준비하여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이기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마귀가 꼼짝을 못합니다. 마귀도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그렇게 때렸는데도 이렇게 대접을 하다니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 예수가 다르기는 다르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핍박하던 그 사람이 이후에는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함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을 할 때에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이 집에서 내가 못 산다”, 이렇게 나가면 전부 마귀 역사가 됩니다. 그리고 둘 다 마귀 역사이면, 큰 마귀가 이기고 작은 마귀는 언제나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모든 것을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깁니다. 그러나 진리는 절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진리를 양보하면 하나님께서 손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죽습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받아도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그 진리를 계속 지키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성경대로 잘해나가면 반드시 이길 날이 옵니다. 

5. 좋은 말을 해주라

그리고 좋은 말만 해주고 나쁜 말을 해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의 노인들이 했던 교도(敎導)대로 해주어야 합니다.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젊은 사람들의 교도대로 하면 안 됩니다. 노인들의 교도는 열왕기상 12장 7절에 나와 있습니다. “대답하여 가로
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노인들은 왕이 백성의 종이 되어서 저희를 섬기며 그들에게 좋은 말로 대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어디를 가더라도 섬기러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섬겨야 합니다. 섬기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말만 해주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말이 문제입니다. 좋은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말입니다. “잘된다. 복 받는다”하고 듣기에 즐거운, 아부하는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악한 말들입니다. 그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주는 말입니다. 

가령 백성들이 와서 “멍에를 가볍게 하라”고 할 때에 “멍에를 가볍게 해준다고 약속한다”라고 하면 좋은 말입니까? 그것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백성들은 좋아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멍에를 무겁게 해준다고 하면, 그것이 좋은 말입니까? 그것도 좋은 말이 아닙니다. 무겁게도 하지 않고 가볍게도 하지 않고 중간으로 해준다고 해도 좋은 말이 아닙니다. 좋은 말은 “나는 여러분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어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겁게 메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어주시면 무거운 멍에를 메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 가볍게 메라고 하시면 우리는 가벼운 멍에를 메고 나가야 합니다. 나는 절대 무거운 멍에를 메어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메어주시는 대로 메어줄 각오를 가지고 나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으니 하나님의 멍에를 어떻게 메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볍게 해주시면 영영히 가볍게 해주셔서 좋은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면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말입니다. 여러분도 어디서든 그렇게 하면 합격입니다. 멍에를 안 메어준다고 해도 잘못된 것이고 무거운 멍에를 메어준다고 해도 잘못된 것이며 중간도 잘못된 것입니다. 무거운 멍에를 메울 마음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메어주시는 대로 멜 마음을 가지자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말이 좋은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백성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서 그들을 후대해야 합니다. 

6. 시집가서 잘 사는 법 - 섬기라

처녀들이 시집을 가서 잘 사는 법이 이것입니다. 섬기기 위해 여종으로 취직하러 가는 날이 시집가는 날입니다. “어디 갑니까?”, “여종으로 내일 취직하러 갑니다”, “어떻게 갑니까?”, “결혼식장에 갔다가 갑니다”,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결혼한 첫날부터 시집에 가서 그 집 식
구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남편이 자기만 못해도 남편을 우러러보고 섬겨야 합니다. 남편이 자기만 못하다고 해서 남편을 깔보면 집안이 망하고 자기도 망합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도 일단 남편이 머리이므로, 머리로서 우러러보면서 잘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집이 잘됩니다. 어떤 집은 여자가 남편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나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남편이 장로인데, 동네에서나 어디에서나 순경이 올 것 같으면 남편이 대문에 나갔다가 “조금 기다리시오”하고는 부인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부인을 내보내야 일 처리를 하지, 자기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집도 여자가 남편보다 나았다고 하는데, 여자가 더 나으므로 동네에서 일을 보러 오면 부인만 찾는 것입니다. 남편이 나와도 부인을 좀 내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인이 나가서 “가만히 좀 기다리시오. 우리 남편과 의논해보고 답변하겠습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의논해봐야 남편은 모르지만 다음에 이야기할 때 “우리 남편이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어떻게 할까요?”라고 하면 또 우리 남편한테 물어서 답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와서 남편한테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고 남편이 “당신 생각대로 알아서 하라”고 대답하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말한 후에 남편이 “그렇게 하면 좋겠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면 나가서 “우리 남편이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매사를 그렇게 처리하니까 그 동네 사람들이 그 집 주인이 굉장히 위대한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 부인이 훌륭한 사람인데, 부인이 매사를 남편한테 결재를 받아가지고 나오므로 부인보다 남편이 아주 훌륭한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런 영리한 부인을 결재해주는 남편이야 말로 얼마나 위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그 집 아이들이 어머니와 의논을 할 때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남편에게 “어떻게 할까요?”하고서 “아버지가 이렇게 하란다”라고 대답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면 일이 안 되며 아버지가 왕인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여자가 더 낫기 때문에 그 여자가 그 집의 왕인 것입니다. 그래도 그 집이 바로 되었습니다. 

어떤 집은 여자가 조금 낫다고 해서 남편을 업신여기고 ‘자기가 뭘 하겠는가?’하면서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아는데, 그런 집안은 망할 집안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는 뒤로 서고 남편을 우러러 섬겨야 집안이 잘됩니다. 자기가 남편보다 나아도 남편을 내세우고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남편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잘되는 법입니다. 이제는 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가정이 다 잘될 것입니다. 

7.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런데 본문의 요시야 왕은 전쟁에서 한 번 이겨 성공하고 나서 자기가 은혜를 받고 나라가 잘되고 교회가 잘되자, 교만해져버렸습니다. 자신감이 너무 생겨서 하나님께 여쭤볼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이 연해지지 않아 제 생각, 제 뜻대로 하려고 하다가 그만 실패한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자기 지혜가 부족하면 성경을 찾아보고, 성경을 잘 모르겠으면 자기 보다 조금 나은 사람한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물어보는 것이 제일입니다. 교역자에게 물어보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한테 물어보아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성경말씀대로 가르쳐주는 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성공하는 것입니다. 

나도 이전에 물어보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화천 사경회에 갔다가 김현봉 목사님한테 물어보아서 십일조 문제에 대해 문의해 온 사람에게 답변해주니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잘 모르겠으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한테 물어보아서 그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어보지도 않고 지도 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제가 하면 다 될 줄로 알고 나가면 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8.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말고 나가라

요시야 왕이 과거에 성전을 정결케 하고 우상을 다 타파하며 유월절을 성대하게 잘 지키긴 했지만, 그런 잘한 것들을 뒤로 하고 함정에 빠질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몇 번 잘된 것을 가지고 그것을 믿고 나가다가는 그 다음 번에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합
니다. 된 줄로 알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된 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13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러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루었다 함도 아니고 얻었다 함도 아니고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그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나가는 것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다 되었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약할 때에 강하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붙들고 늘 애통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한 것을 붙들고 나간 바울처럼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약한 것을 붙들고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조금 되었다고 해서 자기가 된 줄로 알고 나가면 가다가 함정에 빠집니다. 약한 것을 붙들고 되지 못한 것을 붙들고 자기의 연약한 것을 붙들고
혹여나 잘못할까봐 벌벌 떨면서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바로 할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좀 더 배워야 되겠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조금 배워서는 다 아는 것처럼 돌아가다가는 함정이 와서 죽을 고비에 빠집니다. 요시야 왕이 여 선지자인 훌다나 또 예레미야에게 물어보았으면 되었겠는데, 물어보지 않은 것이 잘못입니다. 너무 자신이 있어서 선지자에게 안 물어보았는데 그것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리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끌려갔으면 되었겠는데, 제가 하려고 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9. 교만하지 말고 돌이키는 것을 배우라

본문 22-23절에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전쟁하지 말자고 하는데, 왜 돌이키기를 싫어했다고 하였습니까? 자신만만한 것입니다. 게다가 과거에 재미를 본 것이 있습니다. 매도 한 번 맞으려다가 못 맞으면 섭섭하다고 하는데, ‘내가 전쟁하려고 나왔는데 이제 그만두면 말이 되겠느냐? 전쟁하려고 군사를 뽑아가지고 다 나왔는데 이제 그만 두면 우습지 않겠느냐? 군사들에게 그만 두자고 하면 군사들이 원망하고, 백성들은 싸우려고 했는데 돌아왔다고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면서 돌이키기를 싫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요시야 왕의 교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망하는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목이 곧은 것입니다. 아무리 전쟁을 하려고 다 준비해서
나왔다고 해도, 돌이킬 때에는 돌이켜야 합니다.

아마샤는 전쟁을 하려고 용병을 준비했다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고 북쪽 용병 십만 명을 돌이켰습니다. 그런데 용병을 돌려보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북쪽에 선금으로 돈 일백 달란트 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일백
달란트는 요새로 말하면 몇 억 대의 돈인데 그것이 손해가 났습니다. 또 언약을 어기는 것이며, 보복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의 사기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종이 “돌려보내라”고 하므로 “예”하고 손해를 보면서 돌려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십만 명을 돌려보내지 않고 다 데리고 나갔다면 지게 될 뻔했는데, 순종하고 돌려보낼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셔서 에돔과의 전쟁에 승리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손해가 나도 돌이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일을 다 작정했다가도 그만 두라고 하면 손해가 나도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만 두면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셔서 복을 받습니다. 한번 자기 고집을 돌이켜서 순종하는 재미를 안 사람은 앞으로도 더욱
즐겨 순종하게 됩니다. 아마샤 왕도 돌이키느라고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은 아먀샤 왕보다 유월절을 더 잘 지켰지만 돌이키지를 못해서 그만 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잘해도 돌이키지 못하면 망하고, 또 너무 자신 있게 나가도 안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샤 왕도 에돔과의 전쟁 이후에는 돌이키지 않아서 망했습니다. 안 돌이키면 어쨌든 망하는 것입니다. 온유해야 하며, 목이 곧으면 안 됩니다. 목이 뻣뻣하지 않고 온유하고 부드러운지 늘 확인하십시오. 자기가 뭘 하겠다고 오만하게 굴었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고 성경 말씀에 비추어 잘못된 줄을 뻔히 알면서도 목을 곧게 하고 나가면 결국 망한다는 것입니다. 벌써 영적으로 보면 실패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성경에 위반된 것을 돌이키라고 해도 그냥 나가는 사람은 벌써 실패한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다가 육신까지 실패할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나가는 사람은 별 도리 없이 망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4-27절에 “그 신복이 저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그 시종 행적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요시야 왕이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요시야 왕의 최후인 죽음을 통해 교훈을 얻어 항상 겸손하며 모든 일을 성경말씀대로만 해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