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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12:2-3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
로마서 12:2-3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 새사람이 될 것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면 새사람이 됨 

본문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어떻게 믿어야 되겠습니까?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에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말입니다.
세대를 본받으면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마음은 어떻게 새로워집니까? 새사람은 어떻게 새사람이 됩니까? 새사람, 새노래, 시온산에 올라가서 새 노래 부를 사람이 새사람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새롭게 되겠습니까? 새로운 결심을 해야 새롭게 되겠습니까? 영의 인도를 받는 우리의 중생한 영이 성령과 더불어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때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새사람은 영적으로 사는 사람이 새사람입니다. 영의 새로운 역사가 있는 사람이 새사람이고, 영의 새로운 역사를 따라가는 성령과 중생한 영이 합작을 해서 새로운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가게 되고,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운 영의 역사가 이루어졌으면 새사람이 되고 마음이 새것이 됩니다. 영의 인도를 받으니까 마음이 새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영의 인도만 받고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는 영의 인도만 따라가야 됩니다. 영의 인도만 따르고 다른 것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대는 본받지도 말고, 전부 떠나고, 집어치우고, 영의 인도만 따라 가는 것이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과거에 세대를 따라간 것을 회개하고, 다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영의 인도만 따라가야 합니다. 자기의 중생
한 영혼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영적인 인도를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변화운동이 일어남

마음을 새롭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 교통을 하여 영의 인도가 이루어지면, 마음이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변화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갈릴리 혼인 잔치 집에 변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무엇이 됐습니까? 포도주가 됐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변화의 운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변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물과 포도주는 아주 질이 다릅니다. 질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또한 맛이 다릅니다. 물은 심심한데 포도주는 달콤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변화를 받은 사람은 맛이 달라지는데, 사는 맛이 달라집니다. 예배드리는 맛이 달라지고, 기도하는 맛이 달라지고, 말씀의 맛이 달라지고, 그 다음엔 빛이 달라집니다. 낯빛을 숯처럼 새까맣게 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마음이 새로워지고 변화를 받으므로 얼굴빛이 환해집니다. 죽은 때가 다 벗겨지고 없어져 나갑니다. 죽은 때에다가 약 사다 바를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다니엘이 어떻게 됐습니까? 더욱 아름답고 윤택해졌다고 했습니다. 변화가 일어나 새로워 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위치가 변화됩니다. 물은 대문간에 둬 뒀는데, 포도주는 안방에 들여다 놓는 것입니다. 용도가 달라집니다. 물은 발 씻는 것인데 이제는 먹는 것이 됩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니까 변화의 운동이 일어나므로 얼굴도 변화되고, 마음도 변화되고, 생활도 변화되고, 다 변화가 됐습니다. 

그게 진짜 새사람입니다. 새사람은 새 생명, 새 역사, 새 마음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입니다.

2. 새사람의 할 일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것

본문 2절 하반부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는데 진리를 바로 찾아 가라는 말씀입니다. 일단 한번 변화 받은 다음에 좋다고 방심하다가는 다 빼앗깁니다. 언제 마귀에 끌려갈지 모릅니다. 갈래 길이 많은데 마귀가 갈래 길로 끌고 갑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자기 몸으로 산 제사 드리고 변화가 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자기가 어떻게 믿어야 되겠는지 어떤 길로 걸어가야 되겠는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은 성경에서 찾아야 되고, 자기 신앙 양심에서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되고, 신앙 경험에서 찾아야 되고, 성령의 감동에서 찾아야 되고, 자기보다 나은 신앙의 선진에게서 배우고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잘 찾아서, 분별하여 아닌 것은 아니다하며 떠나고, 하나님의 옳은 것은 그대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몸을 바쳐 놓고 아예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그대로 가는 것이 점점 산 제사를 드려 나가는 것입니다. 

산 제사는 점점 더 살아 나가는 역사가 커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 자라나는 것, 진보가 있는 것, 발전이 있는 것, 항상 있는 것입니다. 한번 살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산 제사로 드리는 사람은 변화가 됩니다. 마음이 새로워지게 됩니다. 변화가 됩니다.
변화가 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날마다 찾기에 힘쓰고, 그대로 따라가니까 점점 산 생명이 커지는 것입니다.
변화도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산 역사도 점점 커지는 것이고 이것이 점점 자라나는 것입니다. 

좀 더 높은 진리를 배워 나갈 것

죽은 것은 못 자라나는데, 산 것은 자라납니다. 산 제사 드리는 사람은 산 생명이고, 산 사람이고 산 역사가 있는 사람이니까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자라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우리는 산 제사를 하나님께 늘 드려서 자라나는 가운데 나가야 되겠습니다. 날마다 분별해야 되겠으므로 성경을 배워야 됩니다. 시험이 들어오고, 환난이 들어오고, 마귀가 사건을 일으켜 놓고, 더 높은 계단에 놓고 갈 때에는, 좀 더 높은 진리를 가지고 이것을 분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보계단의 것은 보통 분별 할 수 있는데, 좀 더 높은 계단에 오면 분별을 못합니다. 진리는 좀 더 높은 계단의 진리를 배우고 그 진리를 깨달아야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좀 더 높은 사이비한 시험이 옵니다. 마귀가 그렇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면 좀 더 높은 그 진리를 가져야 또한 분별 할 수 있고 산 제사를 바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다시 좀 더 높은 차원의 것을 가지고 와서 분별 못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다시 좀 더 높은 진리를 배워야 그것을 또한
분별하고 바로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시대에 주신 진리를 분별할 것

그 시대를 이기려면 그 시대에 합당한 진리를 알아 분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됩니다. 옛날 바울 시대는 율법에 대한 진리를 바로 분별해야 할 시대였고, 중세기에는 천주교 의식주의에 대한 것을 바로 분별해야할 시대였습니다. 그 때는 루터가 종교 개혁을 했습니다. 

지금 말세에는 신신학, 신비주의, 이런 세속화 운동이 사이비합니다. “축복합니다. 할렐루야!”하는데, 축복도 좋긴 좋지만 무슨 축복인가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축복인지 저것이 축복인지, 영이 잘되고 육이 잘 된다는 그것도 사이비 한다는 것입니다. 영이 잘되고 육이 잘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중심입니까? 말로는 영이 중점인 것 같은데, 실제로 는 어느 것을 중점으로 뒀는지, 육이 중점인지 세상 중점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려면 얼마나 많이 성경을 밝히 알아야 되고, 밝히 배워야 되겠습니까? 날마다 당하는 시험에서 해결할 만한 진리가 있어야 그것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결할 만한 진리가 없는데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또 마귀에 잡히고 흑암에 빠지는 것이라서 산 제사 못 드립니다. 

우리는 날마다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서, 산 제사를 드림으로 살아나고, 장성하고, 산 역사가 커져야 합니다. 또한 날마다 분별을 더해서 어떤 것이라도 다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꾸 고차원적이고, 좀 더 깊고, 좀 더 높은 진리를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서 바른 진리에서 걸어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분별할 것

어제 저녁에 어떤 청년이 물어본 것 가운데, 어떤 목사가 말하길 "기독교가 구원 운동을 하려면 가난한 사람을 구원해야 된다"고 가르치더랍니다. 가난한 사람 구원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하는 것이랍니다. 

가난한 사람 구제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말은 아니지만, 성경에 마리아가 기름 부을 때에 제자들이 ‘그것을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것인데 왜 허비합니까?’라고 했었는데,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잘했다’고 그러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 기름 부은 것이 허비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제하려는 사람에게 잘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그걸 분별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언제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제하려는 제자를 칭찬했는지, 기름 갖다 부은 마리아를 칭찬했는지,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이비한 것, 성경에 어느 정도 맞지만 알쏭달쏭하고 성경에 있는 것과 다르게 나온 것에 대해,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해결할 만한 진리가 있어야 그 시대를 분별해 나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국회의원을 많이 뽑아 헌법을 고치고, 국기를 고치고, 전체의 20%만 되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면서 기독교 전도를 자꾸해서 기독교인을 한국백성 20%를 만들어서, 그 다음에는 정부에 기독교인 50%~60% 만들고 기독교 국회의원 많이 내서 한국을 바로 세워야 되겠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맞습니까? 세상나라는 무슨 나라라 그랬습니까? 이방나라라고 그랬습니다. 유대나라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숫자 많이 낸 적
이 성경에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진리, 우리가 믿는 신앙은 그런 신앙 아닙니다. 

성경에는 왕을 위해서, 국가 원수를 위해서, 관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라는 말은 있습니다. 우리가 해줘야 됩니다. 협조해야 됩니다. 그러나 나라를 어떻게든 건지려는 운동을 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기독교는 국가 기관이 아닙니다. 국가 운동하는 기관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국가의 원수와 관리를 위해서 기도해주되, 나라를 바로세우고, 나라를 어떻게 만들고, 기독교 국가를 만드는 그런 것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위반 아닌 것은 받들어 나가면서 우리는 이 영적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운동 하는 것이 성경에 맞지, 세상나라 운동하라고 어디 있느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는 꼭 종이 한 장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종잇장 한 장의 옆만 보면 분별하기 힘듭니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부단히 힘을 써야 됩니다. 심령을 날카롭게 하고, 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옳은지 옳지 않은지 언제나 날카롭게 양심 써서 분별해 나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3. 자기 자리를 아는 지혜
마음과 눈이 높아지지 말 것

본문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에게 말하는데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높은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큰 것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이 높지 말라는 것입니다. 큰 것 바라보고 좋은 것 바라보고 높은 것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짚신은 무엇이 제일입니까? 제 날이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처녀들이 눈이 높아가지고 좋은 신랑 얻으려다가 나이만 많아져서, 그 뒤엔 곤란한 가운데 빠진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자기에게 맡는 신랑 갖다 줄 때에 안 한다고 다 내버렸습니다. 나 같은 위대한 사람이 그런 것 어떻게 하겠나 싶었는데, 나이 많아지고 나니까 전에 그런 거라도 할 걸 괜히 안 해 가지고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눈이 높습니다. 짚신은 제 날이 제일입니다. 자기가 짚신인데 무슨 더 나은 날을 구합니까? 그렇게 높은 마음을 품으면 안 됩니다. 그 이상의 생각을 언제나 품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 이상의 생각을 품는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없고, 교만해지고 자기만 다 손해 봅니다. 그 이상의 생각이 무슨 소용입니까? 자기가 짚신인가, 나무신인가, 고무신인가, 그걸 자기가 잘 알아야 됩니다.

자신의 위치를 알아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 것

자기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느 일시에 놓으셨는지, 자기가 설 자리가 어디인지, 자기가 어디 가서 앉아야 되겠는지 알아야 됩니다. 상좌에 가서 앉아야 되겠는지, 그 다음 자리에 앉아야 되겠는지, 다음 자리인지 맨 나중에 앉아야 되겠는지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가 그랬었습니다. 어느 자리에 군수,여러 사람 많이 있고, 군대 장군들 많이 청했는데, 한번은 동네사람들이 먼저 와서 높은 곳에 떡하니 앉아있었더랍니다. 좀 뒤에 군수가 들어오고, 별 장군이 들어오고, 경찰 소장이 들어오고, 군대 사단장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그 앉았던 동네사람에게 “좀 일어나 주십시오. 여기는 군수님 모셔야 되겠고, 여기는 서장 모셔야 되겠고...”라고 하기에 즐거운 인사조차 못하고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그 일은 성경대로 잘 된 것입니다. 그 자리 올라가 앉은 사람은 아마 그 동네에서 괜찮다하는 사람, 아마 동장쯤 되니까 첫 자리 앉았을것입니다. 동장이면 그 동네에서 제일 아닙니까? 그러나 동장 위에 면장이 있는지 알아야 되고, 그 위에 군수가 있는 줄 알아야 되고, 그 위에 도지사가 있는 줄 알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사단장이 있는 줄 알아야 되고, 서장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위에 뭐가 많은데 어떡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기 생각 이상의 생각은 품지 말라는 것
입니다. 일등병은 일등병 자리에 앉는 것이 제일이고, 이등병은 이등병 자리에 앉아야 제일입니다. 상병은 상병 자리에 앉는 것이고, 준장은 준장 자리에 앉고, 소위는 소위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소위가 장군자리 올라가 앉았으면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후루룩 떡하니 올라앉아서, 점잖은 개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것처럼, 그것이 말이 됩니까? 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직분을 높은 자리로 여기지 말 것

어떤 교회에서 장로 투표하는데 자기가 꼭 될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화가 잔뜩 나서 교회 안 나간다고 그럽니다. 이름 쓸 때 목사님이 연필 이렇게 돌리는 것을 보니까 자기 이름을 안 썼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자기 이름 안 썼다고 화가 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도 찾아가서 계속 나오라고 싹싹 빈 모양입니다. 저 같으면 안 빌었습니다. 뭘 빕니까? 겨우 빌어서 교회 갖다가 앉힌 모양입니다. 장로자격도 없습니다. 그런 일에 목사 연필 돌아가는 것을 봅니까? 한심합니다. 제 잘난 맛에 사느라고 자기를 잘 모릅니다. 그렇게 자기 것 이상의 생각은 품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봉사의 도입니다. 섬기는 도입니다. 어떤 직분에 있던지 섬기는 자리이지, 대접받고 높아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명예 영광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섬기라 하면 이 자리에서 섬기고, 저 자리에서 섬기라 하면 저 자리에서 섬겨야 하는 도입니다. 

여기 사경회 기간동안 기도원 와서도 섬기는 도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번에 조사직은 이청수 조사를 시켰습니다. 당번이라 계속 담당입니다. 교역자도 기도원 와서는 청소해야 됩니다. 목욕탕 담당은 이연암조사하고, 여자부에는 이경자 전도부인이 합니다. 변소 당번은 전도부인들 시켜야하는데, 만나야 시키지 만날 수가 없습니다. 권찰은 변소당번입니다. 변소 청소하려면 권찰들이 하는 겁니다. 봉사자들은 봉사하느라고 얼마나 좋습니까? 어제는 천막담당에 김종기 목사가 맡았습니다. 흙 날려도 목사도 봉사합니다. 인태교 목사가 오늘 쓰레기 치웁니다. 

봉사하려면 아무 때나 봉사하면 됩니다. 교회는 봉사하는 곳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누가 먼저 죽습니까? 환란 때는 누구 먼저 죽는다고 그랬습니까? 장로부터 죽습니다. 장로부터 먼저 죽는다고 에스겔 9장에 나와 있습니다. 장로가 되려면 먼저 죽을 각오하고 장로 돼야 합니다. 그렇게 목사, 장로부터 죽이고 그 다음엔 누구 죽이겠습니까? 집사 죽입니다. 권사, 전도부인 다 잡아 죽이고, 조사 다 잡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직분 높은 게 좋은 게 아닙니다. 먼저 죽는 것입니다. 대접받겠다고 하지 말고, 봉사는 더 많이 해야 되고, 죽기는 먼저 죽는 게 교회의 높은 직분입니다. 그러니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올라가라고 하시는데 안 올라가겠다고 뒤로 나가다가 자빠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올라가서 그 자리에서 봉사하라고 하시면 순종하고, 거기서 봉사하는 것 뿐 입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시키니까 그냥 하는 것이지 뭐가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말라’, 나눠주신 대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