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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요일

사도행전 4:1-20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 앞에서 구주를 증거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 앞에서 구주를 증거함 (행 4:1-20)

4:1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인들이 다가와서 
4:2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을 내세워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음을 전도하는 것 때문에 그들이 격분하여, 
4:3 그들을 붙잡았으나, 이미 저녁이 되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어 두었다. 
4:4 그러나 말씀을 들은 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믿었으니, 남자의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4:5 이튿날 그들의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4: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도 다 참석하였다. 
4:7 그들이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질문하기를 "너희가 무슨 능력과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하였느냐?" 하니, 
4:8 그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들아, 
4:9 만일 오늘 우리가 이 병든 사람에게 행한 선한 일, 곧 그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에 대해 심문을 받는 것이라면, 
4:10 너희 모두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알아야 한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너희 앞에 건강하게서 있다. 
4:11 이 예수님은 '너희 건축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 이시다. 
4:12 다른 이에게서는 구원이 없으니, 천하에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히 말하는 것을 보고, 본래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들로 알았다가 놀랐으며,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4:14 또 병 나은 사람이 이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4:15 그러자 그들을 공회 밖으로 나가도록 명령하고 서로 의논하여, 
4:16 말하기를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행한 대단한 표적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잘 알려졌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4:17 그러나 그것이 백성들 가운데 더 퍼지지 않도록 그들을 위협하여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이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게 하자." 하고, 
4:18 그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다. 
4:19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하나님보다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인지 판단해 보아라.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새 “불교, 유교, 마호메트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며 “가는 길은 다르지만 최종 목적은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공자, 석가로는 구원을 못 얻습니다.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에는 속죄(贖罪)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구속해주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는 피 흘려 죄를 사해 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로는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주셨습니다. 우리는 피 흘려주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죄가 없으십니다.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代贖)해줄 수 있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죽어도 자기 죄 값으로 죽기 때문에 남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습니다. 공자도 원죄(原罪)가 있습니다.
또 성경대로 다 행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석가모니가 죄가 없습니까? 석가모니도 부정모혈(父精母血)로 태어났기 때문에 원죄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도 죄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망하게 만들었는데, 얼마나 죄가 큽니까? 윤회설(輪回說)은 허튼 소리입니다. 윤회설은 ‘사람이 선한 일을 하면 죽었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선한 일을 하지 못하면 짐승이나 벌레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자기 할아버지가 이로 다시 태어나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도 죽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를 잡아서 병에 넣어 둔다고 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를 병에 넣어 두고 굶겨 죽이면 그것은 죽이는 것이 아닙니까? 석가모니가 주장한 윤회설은 아주 허무맹랑한 얘기입니다.

1.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옥에 가두어 놓고 질문함

본문 1-2절에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전함을 싫어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예수 전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본문 3-4절에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를 잡아서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자가 약 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남자의 수가 5천명이니 여자까지 합하면 만 명이 넘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본문 5-7절에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문중이 다 참예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튿날 관원, 장로, 서기관,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모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일 때에 결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번에는 사도들을 죽이고자 모여 결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인 사람들이 여기 다 모인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감옥에서 잡아내어 가운데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제 이 사람들이 사도들을 죽이기로 결정만 하면 사도들은 죽습니다. 또 빌라도에게 가서 요청만 하면 죽일 수 있습니다. 대단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모임은 유대인 가운데 최고 기관의 성격을 띠므로 빌라도도 이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죽이자고 하면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자기네가 권세를 주었어야 인정이 되겠는데, 자신들이 권세를 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2. 예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증거함

본문 8-9절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생명을 내어 놓고 말한 것입니다. 생명을 내어 놓지 않으면 말 못합니다.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이란 착한 일을 왜 잘못했다고 하느냐는 뜻입니다. 병을 낫게 한 착한 일에 대해서 모든 백성들도 좋게 생각하는데 너희는 왜 잘못되었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담대히, 거침없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셨는데, 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죽이려고 하는데, 베드로는 생명을 내어 놓고 죽을 각오를 하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이면 죽을 것이고, 하나님이 안 죽이면 죽지 않는다, 너희들에게 죽일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기며,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확실하게 조금도 두려움 없이 베드로는 정정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본문 11절에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건축자’란 종교지도자를 가리킵니다. 즉,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란 종교 지도자들이 버린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버린 예수님이 가장 요긴한 기초인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베드로가 얼마나 담대히 말했습니까? 이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하겠습니까?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 인정할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겠습니까?
관원들, 산헤드린 공회원들, 장로, 서기관, 대제사장 등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세를 믿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름으로 구원 받을 수 없다, 천하 인간에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들이 믿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예수를 이단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4:5에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로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진리를 말할 때에 듣든지 안 듣든지 진리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전할 때에 사람들이 안 들어도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듣겠는가? 안 듣겠는가? 또 이단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바른 진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듣거나 안 듣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나에게는 전할 책임만이 있습니다.

3.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이상히 여김

본문 13절에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베드로를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으므로, 베드로가 말을 잘할 때에 이상히 여겼습니다. 구역 성경에는 불학무식(不學無識)한 사람으로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베드로는 공부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학무식한 사람도 예수를 믿고 성령을 힘입으면 말을 잘합니다. 하나님이 말을 잘하게 해주십니다.

이사야 50:4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학자의 혀를 주어서 여러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말하게해 주십니다. 즉, 믿음으로 성령을 힘입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말을 잘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 고향에 조수근 장로님이 계셨는데, 자기 혀가 나막신 같아서 말할 줄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모세보고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입을 지으신 이가 누구냐? 벙어리가 되게 한 자가 누구냐? 또 벙어리를 말하게 한 이가 누구냐? 내가 아니냐? 하나님께서 하시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말할 줄 모른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하도록 해주시고, 또 무슨 말을 할 것인지도 알게 해 주십니다. 복음을 듣고 담대히 전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말
도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전에 음산동 교회에 최동균 집사가 있었는데, 말을 더듬었습니다. 예로 “밥 먹었습니다”를 말하려면 ‘밥’자를 두 번 해야 합니다. 즉, “밥, 밥 먹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말이 둔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강단에 나와서 설교하면 말이 술술 나옵니다. 이처럼 말할 줄을 몰라도 성령을 힘입고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려 주시고 말도 잘 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도 말할 줄 모르는 불학무식한 자이었지
만, 학자들 앞에서 막힘없이 술술 말이 나왔습니다. 대제사장, 관원, 서기관들은 대단한 학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이 불학무식한 베드로가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할까 하고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저 사람이 공부한 적이 있느냐? 학교에 다녔느냐? 졸업장은 있느냐? 없단 말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말을 잘했습니다.

본문 14절에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바른 말을 담대히 말하고, 또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바로 옆에 있으므로 그들이 힐난(詰難)할 말이 없었습니다. 따질 말이 없었습니다.

본문 15-16절에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베드로가 고쳤습니다. 그 사실을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알고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데,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자기네들끼리 의논하였습니다.

4. 사도들이 결사 각오로 말씀을 증거함

본문 17절에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놓아 주자고 의논하였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불러 들여 도무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엄히 경계했습니다.

본문 19-20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답변했습니까?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생명을 내어 놓고 말한 것입니다. 죽어도 좋다는 결사각오(決死覺悟)의 자세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배워서 결사각오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죽을 때가 되어야 죽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데려갈 때가 되어야 죽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했다고 여기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결사각오’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