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음
고린도전서 12:1-3
고린도전서 12:1-3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12: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12:2 너희가 아는 대로, 너희가 이방인이었을 때에는 말 못하는 우상들에게 이끌림을 받는 대로 끌려 다녔다.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는데,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이다." 라고 말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라고 말할 수 없다.
12:2 너희가 아는 대로, 너희가 이방인이었을 때에는 말 못하는 우상들에게 이끌림을 받는 대로 끌려 다녔다.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는데,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이다." 라고 말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라고 말할 수 없다.
1. 성령 받은 증거는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는 것임
본문 1-2절에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란 신령한 것에 대해서 알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신령한 것을 잘 모르면 믿는 일을 잘 못하고, 마귀의 시험에 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을 잘 배워서, 신령한 것을 잘 아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란 안 믿을 때에는 우상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본문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성령으로 믿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구주로 모실 수 없습니다. 즉 성령을 받지 못하면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성령 받은 증거는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지 않는 것은 성령을 못 받은 것이고,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2. 우리는 보혜사 성령을 받았음
우리가 받은 성령은 보혜사 성령
우리가 받은 성령은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입니다. 즉 보혜사 성령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신약 교회 시대에 내내 역사하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반복적이지 않음
성령은 왔다, 갔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신 다음에 다시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것은 단회적으로 받습니다. 반복적으로 받는다고 하는 것은 신비주의입니다. 신비주의에서는 성령을 받고 또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받았다가 다음에는 좀 더 많이 받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좀더 많이 받아 충만함을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즉 신비주의자들은 처음에 믿을 때에 성령을 조금 받았다고 합니다. 사이다로 말하면 처음에 사이다 병에 사이다가 밑에 조금 깔린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좀 더 받으면 3분지 1쯤 되고, 또 좀 더 받으면 사이다 병 한 절 반 찬 것과 같고, 그 다음에 좀 더 받으면 사이다 병 3분지의 2의 만큼 올라오고, 그 다음에 좀 더 받으면 사이다 병 끝까지 올라오고, 그 다음에 좀 더 받으면 철철 넘치는데 그것이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잘못 알고 성령을 매일 받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에 대해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령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조금 왔다, 많이 왔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물질이라면 “조금 왔다, 많이 왔다, 더 많이 왔다” 하겠지만 성령은 인격자입니다. 우리 사람도 인격이 있지 않습니까? 인격이 있는 사람이 조금 왔다, 많이 왔다, 더 많이 왔다, 짤짤 넘치게 왔다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왔으면 왔고, 안 왔으면 안 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오셨는데 “조금 더 오십시요. 좀 더 오십시요”하면 아버지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내가 왔는데 어떻게 좀 더 오라고 하느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가 오셨는데 어떻게 더 오시겠습니까? 성령은 인격체이므로 조금 오고, 좀 더 오고, 또 좀 더 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우주에 충만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조금 왔다, 더 왔다, 많이 왔다 합니까?
하나님의 영은 인격자이시므로 성령을 받는 것은 단회적인 성령의 역사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는 성령을 단번에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령 받는 것을 반복적으로 받는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오늘날 큰 문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데 그 다음에 오순절 성령을 또 받았다고 하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베드로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을 했는데, 성령으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베드로가 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었지만, 또 오순절 성령을 다시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더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하며 부르짖는 것입니다. 삼각산에 가서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하며,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부르짖다가 성령이 안 오니까 “하나님 깍쟁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성령을 보내 달라고 애를 쓰며 부르짖어도 성령을 안보내 주니까 하나님이 깍쟁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해서 바로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든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모르면 마귀의 시험에 듭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삼각산에 가서 성령 받으려고 오랫동안 애를 썼는데 성령이 오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지옥갈 바엔 집에 가서 편안히 있다 가자 하며 도로 내려 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반복적으로 받아야만 천당 가는 줄로 잘못 아는 것입니다.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든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모르면 마귀의 시험에 듭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삼각산에 가서 성령 받으려고 오랫동안 애를 썼는데 성령이 오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지옥갈 바엔 집에 가서 편안히 있다 가자 하며 도로 내려 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반복적으로 받아야만 천당 가는 줄로 잘못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데, 왜 오순절 성령을 또 받아야 되는가? 처음에 제자들이 예수를 믿을 때에 받은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은 언제 오신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이 가야만 보내준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6:7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떠나가야만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전에는 보혜사 성령이 없었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아닌 성령으로 예수를 믿게 했습니다.
보혜사는 대언자라는 뜻임
그러면 보혜사 성령이 무엇입니까? 보혜사는 대언자라는 뜻입니다. 즉 말씀을 대언해 주는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가야만 오는가? 간다는 것은 십자가, 부활, 승천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후에야 진리가 완성이 됩니다.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대언해 줄 성령이 보혜사 성령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십자가, 부활, 승천의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심
십자가 전에는 진리가 완성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완성된 진리를 대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전의 성령은 보혜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진리가 완성되면, 완성된 진리를 대언해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고, 믿게 할 분이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십자가 전에는 완성된 진리가 없으므로 보혜사 성령이 역사한 것이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이나, 그 이전에 온 성령이나, 구약시대의 성령은 다 한 성령입니다. 한 성령이지만, 진리가 없이는 성령이 대언을 안합니다.
그러므로 구속을 완성 한 다음에 보내 줄 성령이 대언자이신 보혜사 성령입니다. 오순절에 임한 보혜사 성령은 왔다가 다시 가지 않습니다. 완성된 진리를 대언할 보혜사로 오신 이상, 신약 교회 시대에 내내 계시면서 역사하십니다. 완성된 진리를 대언해 주시고, 예수를 믿게 하시고, 인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받은 성령은 보혜사 성령으로, 그 성령이 예수를 믿게 했습니다. 우리가 오순절 성령을 받았는데, 뭘 또 오순절 성령을 받겠다고 합니까?
예전에 제자들은 처음에 보혜사 성령을 못 받았으므로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성령을 자꾸 더 받으려고 하다가 그만 마귀의 시험에 듭니다. 성령은 더 받고, 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았는데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 하면 성령이 얼마나 근심하겠습니까? 아버지가 벌써 와 있는데 “아버지여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하면 아버지가 얼마나 근심하겠습니까? 얘가 돌았나?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성령이여 좀 더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오순절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령이 더 오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하면 안 됩니다. 왔는데 뭘 또 더 오겠습니까? 보혜사 성령이 이미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으라는 것임
그러면 성경에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 성령의 주장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성령을 주신다는 말도 “성령의 감동을 주신다,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 성령의 인도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것 같은 때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와 계신데,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기
때문에 성령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은 오른쪽으로 나를 인도하시는데 나는 왼쪽으로 갔다면 성령과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이 오른쪽으로 가자고 할 때에 “예, 오른쪽으로 갑시다” 하면 성령의 감동이 있고, 성령의 인도가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데, 성령을 거역하고 왼쪽으로 가니까 성령의 감동도 없고, 성령의 역사도 없고, 성령의 능력도 없습니다.
3.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심
그러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회개하고 돌이켜서 순종해야 됩니다. 왼쪽으로 가던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오른쪽으로 순종하면 그 때에 성령의 역사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32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진리를 거역하고 나가므로 성령의 감동도 없고, 성령의 인도도 없습니다. 성령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이 떠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떠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늘 같이 계셔서 나를 인도하시려고 하는데 내가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회개하고 돌이켜서 성령의 인도를 순종하면 성령의 감동이 오고, 성령의 능력이 옵니다. 또 모든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이시며,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회개하고 순종하여 진리가운데 바로 서 나가면 성령의 역사가 점점 강해집니다. 순종하므로 점점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감동이 커지는데 이것을 성령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령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늘 같이 계시는데 자기가 거역해서 성령의 감동을 못 받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켜 순종을 할 때에 성령의 감동도 받고, 인도도 받고, 능력도 받고, 역사도 받습니다. 이것은 없던 성령이 온 것이 아닙니다. 늘 나와 같이 계셔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4. 보혜사 성령은 구약 시대에 역사한 성령보다 강함
구약시대의 성도들도 성령으로 예수를 믿었고, 하나님을 공경하였습니다. 시편 51:11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하였는데, 구약시대에도 주의 성령으로 하나님을 공경하였고,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역사하신 성령과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다릅니다. 한 성령이시지만 역사가 다릅니다.
제일 강한 역사는 오순절에 임한 보혜사 성령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역사한 성령은 약합니다. 그러면 한 성령인데 왜 구약시대에 역사한 성령은 약하고, 보혜사 성령은 강하게 역사했는가? 그것은 성령은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진리가 강해야 성령도 강합니다. 진리가 약하면 성령도 약합니다. 구약시대의 진리가 희미하고 약합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긴 냈지만 의식적으로, 제도적으로, 또 그림자적으로 희미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구약시대에는 그 만큼 약하게 역사합니다. 예수님 오셔서 가르쳐주실 때에는,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그 만큼 진리를 많이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 만큼 성령이 강하게 역사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전에는 아직도 진리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혜사 성령보다 약합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임한 보혜사 성령은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아주 강력합니다.
예를 들면 세계 일등 가는 비행기 조종사라고 해도 구식 비행기를 가지고 조종하면 빨리 가려고 해도 빨리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식 비행기 가는 것 만큼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형 비행기를 가지고 빨리 가라고 하면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에 나타난 진리를 가지고 싸울 때에는 아무리 만능의 성령이지만 진리가 그러하므로 그 만큼 역사합니다. 십자가 전에는 예수님이 진리를 많이 가르쳐 주셨으므로 좀 강하게 역사합니다.
또 십자가, 부활, 승천 후에는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므로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이 강한 성령입니다.
또 십자가, 부활, 승천 후에는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므로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이 강한 성령입니다.
5. 성령 충만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에 오순절 성령을 단번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 성령의 주장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감동과 인도와 주장을 어떻게 받습니까? 회개하고 순종해야 받습니다. 회개하고 순종할 때에 능력을 입혀 주십니다. 사도행전 1:8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질 때가지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능력이 입혀집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면 능력이 입혀지지 않습니다. 일백 이십 명이 끝까지 순종할 때에 성령의 능력이 입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감동이 떠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성령이 늘 감동시켜도 내가 악한 마음으로 육신에 속하고, 세상에 속하기 때문에 늘 성령을 거역합니다.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말씀을 순종하면 성령의 감동도 오고, 인도도 오고, 역사도 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회개하고, 순종해야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성령께 맡겨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성령의 인도를 온전히 받으면서 신구약 성경을 다 지켜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하나만 거역해도 성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즉 신.구약 성경 가운데 하나만 거역해도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 충만이 아닙니다. 진리를 완전히 다 순종할 때에 성령 충만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 충만함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통 일시적 성령 충만입니다. 일시적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진리를 가르칠 때에 그 진리를 전적으로 순종하면 그것은 일시적 성령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의 주장대로 하지 않고, 정욕대 로 살지 않습니다. 욕심이 없고, 자기가 하는 것이 없고,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말씀대로 순종해 나갈 수 있고, 그 때에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되지 못한 자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려면 세상을 완전히 다 끊어 버리고, 나와 세상은 완전히 다 없어지고, 성령의 인도만 따라가야 되겠는데, 되지 못한 사람이 성령 충만하면 세상을 하나도 못 따라가겠으므로 속상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일시적 성령 충만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바로 알고 나가야겠습니다.
즉 신.구약 성경 가운데 하나만 거역해도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 충만이 아닙니다. 진리를 완전히 다 순종할 때에 성령 충만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 충만함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통 일시적 성령 충만입니다. 일시적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진리를 가르칠 때에 그 진리를 전적으로 순종하면 그것은 일시적 성령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의 주장대로 하지 않고, 정욕대 로 살지 않습니다. 욕심이 없고, 자기가 하는 것이 없고,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말씀대로 순종해 나갈 수 있고, 그 때에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되지 못한 자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려면 세상을 완전히 다 끊어 버리고, 나와 세상은 완전히 다 없어지고, 성령의 인도만 따라가야 되겠는데, 되지 못한 사람이 성령 충만하면 세상을 하나도 못 따라가겠으므로 속상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일시적 성령 충만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바로 알고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