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함
시편 13:1-6
1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시편 13:1-6
1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1.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음
본문 1절에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환난이 심한 때에 하나님께서 돌봐주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원수가 쳐들어왔는데, 그들은 지금 자긍하며 교만해 있습니다. 그리고 원수들이 와서 핍박을 하므로 성도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큰 고난을 당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께서는 돌봐주지 않으시고 가만히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잊어버리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잊어버리신 것처럼 이렇게 돌봐주지 아니하시고 권고해주지 않으신다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나에게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숨으셔서 나타나지 아니하시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또 나타나 권고하지도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어버리신 것처럼 느끼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마치 성도를 잊어버리신 것처럼, 성도의 얼굴을 가리신 것처럼, 또 숨으신 것처럼, 그렇게 성도를 내버려 두시는 것과 같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가 때때로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난을 당하여 부르짖으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이 여겨지는 것입니다. 여전히 고통은 계속되고 원수는 강합니다. 원수는 계속하여 조롱하고 자긍합니다. 그와 같은 때가 가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기도가 중요합니다. 낙심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도록까지 계속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정 성도를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 당할 것은 다 당한 다음에, 연단 받을 것은 다 연단 받은 다음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권고해 주시고 붙들어주십니다.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가다가 기도하는 것을 중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끝까지 해야 할 일을 해나가야만 되겠습니다. 기도하는 일을 끝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2. 원수를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
본문 2절에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에 ‘어느 때까지’가 4번 나왔습니다. 본문 1절에 ‘어느 때까지니이까’하는 말이 처음에 있었고,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에도 ‘언제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2절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또 2절 마지막에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4번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어느 때까지, 어느 때까지, 어느 때까지, 하는 것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어느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얼굴을 나에게 숨기시기를 언제까지 하겠습니까’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여간 ‘어느 때까지’라고 하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본문 2절에 ‘어느 때까지’는 좀 다릅니다. 본문 2절에는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한다’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경영하는 것 같습니다. 영혼에 경영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기를 경영하고, 하나님의 능력 받기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이루어드리기를 경영하고, 하나님의 의와 그 나라를 이루기를 경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영했지만 그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잘 믿어보려고 영혼에 경영을 했는데,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되니까 어느 때까지 종일토록 근심하고 있어야 되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극심하고 자신은 연약하기 때문에, 아무리 경영을 하나님 앞에 바로 하려고 해도 안 되어 안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려고 경영하지만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종일 마음에 근심하며 애를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려고 안타까워하는 그
런 태도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또 언제까지, 어느 때까지,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하고 탄식합니다. 원수가 성도를 쳐서 자기들이 자랑을 합니다. 이겼다고 자랑합니다. ‘원수가 나를 치고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는 것은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는 것은 잘 안 되고 악한 자들은 득세해나가는데, 언제까지 그런 일이 계속 되겠느냐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세워져나가는 일이 성공이 되어야겠는데, 그것은 오히려 안 되고, 악한 자들만 득세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까지 그런 일이 계속 되겠느냐고 하며,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3. 심령의 눈을 밝혀달라는 기도
본문 3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생각해달라’는 것은 돌보아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펴주시고 하감해주셔서, 이 사정을 좀 알아주시고 응답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하는 것은 심령의 눈을 밝게 해달라는 것이고,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라고 하는 것은 심령이 잠들어서 죽은 믿음이 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너무 심하면 심령이 잠들기 쉽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행위가 죽어지기 쉽습니다. 믿음 지키기가 힘듭니다. 또 너무 환난이 심할 때에 거기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쓰러지는 수가 있고, 사망의 잠을 자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심령이 잠들면, 그만 아무것도 모릅니다. 흑암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하는 것은 흑암을 만나지 아니하도록 항상 눈을 밝혀달라는 것입니다. 이미 말한대로 너무 환난이 심할 때에는 심령이 잠이 들고 신앙의 잠이 들어서, 눈이 어두워져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 역사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쓰러지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눈을 밝히소서, 사망의 잠을 잘까 하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하여간 심령이 잠이 들면 흑암을 만나서 눈이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그러면 다 모르게 됩니다. ‘눈을 밝혀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게 해달라는 것, 또 신령한 세계를 밝히 보게 해달라는 것,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심령의 눈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때에 그가 하늘 문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또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심령의 눈이 밝아지면, 아무리 환난이 많아도 그 환난 가운데서 잘 이길 수가 있습니다. 하늘문이 열린 것을 보고,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또 하나님께서 돌봐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영이 사는 길이 환하게 열린 것을 봅니다. 그러면 그 어떠한 환난이 와도 잘 이길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자기와 같이 하는 것을 보고, 먼 장래를 보고,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을 것을 보고, 악한 자들의 결과와 그 악한 자가 심판 받을 것을 봅니다. 심령의 눈이 밝아지면 다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악한 자는 참 불쌍합니다. 지금은 성도를 핍박하지만, 조금 있으면 다 망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심령의 눈이 밝아지면 환난 받는 가운데서도 새 힘을 얻을 수가 있고, 핍박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고, 사망의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잠을 자지 않고 늘 깨어서 생명 있는 신앙의 길을 걸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의 눈,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심령의 눈이 밝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본다고 하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원수도 다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 결과를 볼 수 있기에 모든 것을 승리
적으로 통과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될까봐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렵건대’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잘 안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두렵건대’라는 말이 여기 몇 번 나와 있습니까? 본문 3절에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나이다’라는 말이 있고, 본문 4절에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렵건대’라는 말이 여기 두 번 있습니다. 늘 이것을 두려워해야 되겠습니다. ‘두렵건대 내가 신앙의 잠이 들까 합니다. 내 심령의 눈이 어두워질까 두렵습니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자신의 신앙이 잠들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심령의 눈이 어두워서 볼 것을 밝히 보지 못할까봐 늘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늘 경성하고, 깨어 있는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늘 깨어서 밝히 바라보고, 밝은 눈으로 보는 믿음, 신앙이 잠들지 않으려고 늘 힘써 두려워하면서 떨림으로 나가는 믿음, 그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성도가 요동하면 원수들이 기뻐함
본문 4절에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이기었다 할까봐, 대적들이 기뻐할까봐, 그래서 원수가 이기고 성도는 그만 신앙을 잘 지키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요동될 때에’라는 것은 ‘신앙을 양보할 때에’라는 뜻입니다.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지켜 나가다가 신앙을 양보할 때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기뻐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이기었다 할까봐, 대적들이 기뻐할까봐, 그래서 원수가 이기고 성도는 그만 신앙을 잘 지키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요동될 때에’라는 것은 ‘신앙을 양보할 때에’라는 뜻입니다.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지켜 나가다가 신앙을 양보할 때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기뻐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하던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진리가 무너지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세워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만 진리를 양보하고 요동되면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가 다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진리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진리를 반대하다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바른 진리를 반대하며 바로 믿으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멀리 하려고 한 것도, 바른 진리를 반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가 믿는 사람이지만 바른 진리를 반대하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요동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진리를 세워나가다가 요동해서 그 진리를 양보하면, 대적들이 기뻐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 세워나가는 것이 다 무너지고, 생명의 역사는 끊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 운동은 그만 잘못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할례 문제 때문에 반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많이 반대한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도 예수를 믿고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바울은 할례에 대한 입장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할례는 안받아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할례를 꼭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진리를 지켜나갔습니다. 만일 그때에 바울이 동요해서 그 진리를 양보했다고 하면, 그 진리가 다 무너지고, 하나님의 참 교회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지켜나가다가 요동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요동되면 원수가 기뻐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리고 원수가 기뻐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일이 다 안 됩니다. 진리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 실패합니다. 구원 운동이 잘못되어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위해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5.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고 구원을 확신함
본문 5절에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나왔습니다. 이 믿음은 무엇입니까?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하는 믿음이 나왔습니다. ‘인자하심’은 사랑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습니다. 사랑으로 성도를 권고해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내가 의뢰합니다’라고 할 때에 새 힘이 나왔습니다. ‘인자하심을 의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구원, 사랑의 구속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한 것을 보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멸망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구원을 의뢰하고 나갈 때에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게 되고, 힘을 얻게 되고, 모든 어려운 가운데서 용기가 나오게 됩니다.
마귀는 성도가 잘못한 것을 가지고 와서 늘 참소(讒訴)하고 정죄합니다. ‘네까짓 게 뭐냐? 네 잘못이 한, 둘이 아니어서 무슨 죄, 또 무슨 죄가 많이 있는데, 너 같은 것은 죽어야 마땅하다’고 마귀는 우리의 잘못한 것을 들고 와서 늘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고 나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믿습니다. 사랑의 구원을 믿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권고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사랑의 구속을 의뢰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뢰하고 나갈 때에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에 마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성경을 번역하고 정정(訂正)을 해 나가는데 마귀가 나타나 수첩을 펴 보이면서 ‘너한테 이와 같은 죄가 가득한데, 너 같은 것이 무슨 종교 개혁을 하려고 하느냐’고 하더랍니다. 마귀가 루터가 죄 지은 것을 적어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루터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낱낱이 적어놓은 것을 볼 때에 정신이 아뜩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성경을 번역하면서 정정하느라 놓았던 붉은 잉크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루터가 붉은 잉크를 찍어서 마귀의 수첩에다 십자가를 그려줬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것이 하얗게 되더랍니다. 죄 지은 것, 잘못한 것을 적어놓은 것이 전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달아났습니다. ‘십자가를 의지합니다’라고 하자 마귀가 달아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잘못한 것, 부족한 것, 연약한 것, 어리석은 것, 되지 못한 것, 우리의 범죄한 것을 다 가지고 와서 우리를 참소합니다. 우리를 정죄합니다. 또 우리를 해하려고 합니다. 그때에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고 나갑니다’라고 하면서, 주님의 사랑의 구속을 의뢰하고 나가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잘못한 것을 다 용서해주시고, 새 힘을 주시며,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주십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고 나가는 믿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라고 하였는데, 구원을 믿었습니다. 인자하심을 의뢰할 뿐만 아니라 주의 구원을 믿고, 벌써 받은 것을 믿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갈 때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느 때까지 나를 잊으셨나이까? 얼굴을 가리시겠나이까? 언제까지 숨으시겠나이까?’라고 하면서 근심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승리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처음에 근심거리를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주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주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역사가 임하게 되고, 그의 세계를 발견하게 될 때에는 주의 구원을 기뻐하는 자리에까지 나가게 됩니다.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근심하면서 기도하러 갔다가 기뻐하면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근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갔다가 즐거움으로 돌아오는 이와 같은 승리의 신앙, 이것이 우리 믿는 성도의 신앙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고 구원을 기뻐하는 믿음, 그 믿음을 우리가 늘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6절에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찬송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기뻐할 뿐만 아니라 찬송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고 기뻐하다가 너무 즐거워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큰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첫째는 인자하심을 의뢰한 것입니다. 그러면 승리합니다. 둘째는 주의 구원을 마음으로 믿고 기뻐한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송할 때에 더욱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많은 은사를 주신 것을 깨닫고 더욱 감사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믿음의 전진, 승리의 전진을 해나가는 믿음, 신앙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잠들까봐 늘 염려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눈이 어두어질까봐, 사망의 잠이 들까봐, 늘 두려워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눈이 밝아지며, 심령이 깨어서 산 신앙의 길로 걸어가려고 힘쓰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요동되면 다른 성도도 요동되어 진리를 양보하고 신앙 양심을 양보하여, 원수가 이기었다 자랑할까봐, 대적이 기뻐할까봐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양보하면 진리는 다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대적들이 승리했다고 기뻐할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양보하고 대적에게 승리를 주면, 자신의 심령부터 죽습니다. 그러면 진리 세워나가던 것이 다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도 다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나가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요동되지 말고, 항상 그 진리를 지켜서 생명 길을 끝까지 걸어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뢰하며, 마음으로 주의 구원을 기뻐하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나가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후대하신 것을 감사하는 믿음으로 힘 있게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