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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4일 화요일

에스겔 18:1-32 죄사의생(罪死義生)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죄사의생(罪死義生)
에스겔 18:1-32

1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3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5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법과 의를 따라 행하며 6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7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8변을 위하여 꾸이지 아니하며 이식을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악을 짓지 아니하며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 9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찐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
도 행치 아니하고 이 악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11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12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억탈하거나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13변을 위하여 꾸이거나이식을 받거나 할찐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정녕 죽을찌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14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5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 16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전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억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17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찐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 18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억탈하고 민간에 불선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으리라 19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20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21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
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23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25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26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27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28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29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30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 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31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

1. 아비가 신 포도를 먹어도 아들의 이가 시지 않음

자기 죄 값으로 자기가 당하고 자기가 의를 행한 것 때문에 그 대가를 받는 것임

본문 1-4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
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영혼이라는 말은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즉, 범죄하는 그 인생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는데,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신 포도를 먹었어도 아버지의 이가 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죄 책임을 아들이 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아버지가 지은 죄의 책임을 아들이 지지 않고, 또 아들이 지은 죄의 책임을 아버지가 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20장 5-6절에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죄가 삼사 대까지 간다는 것은 그 영향력이 삼사 대까지 간다는 것인데, 삼사 대까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든 것을 본받아 악을 행하기 때문에 삼사 대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죄를 자손이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본받고 손자도 본받고, 또 증손자도 본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사 대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가 악한 일을 행했는데 아들이 악한 일을 행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한 악한 일의 영향력이 삼사대까지 갑니다. 저주 받을 일 같은 것에는 아들도 영향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죄 값으로 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받은 그 벌이 삼사 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선을 행하면 아버지의 죄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살 수 있습니다.

또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아들이 그것을 본받아서 또 계명을 지키고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대대손손이 신앙의 가정이 계승되어 내려가기 때문에 아들이나 손자도 자기 신앙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또 조상의 영향력도 많이 내려가는 수도 있습니다.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 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조상이 청교도들인데, 오늘날 미국 사람들이 복을 많이 받는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자기 조상들의 믿음이 좋았기 때문에 좋은 환경과 좋은 땅, 분위기, 질서 속에서 잘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여간 영향력이 많이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수 천 대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신앙을 본받아서 신앙이 계승되어 내려간다는 뜻이 하나있고, 영향력도 오랫동안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유대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오늘날까지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밀하게 따지고 보면 자기 죄 값으로 자기가 당하고 자기가 의를 행한 것 때문에 그 대가를 받는 것이지, 조상들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여기는 개별적인 하나님의 역사, 즉 영향력이 내려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별적으로 아버지가 믿음을 지켰으면 복을 받고 아들이 죄를 지었으면 아들이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들이 믿음을 잘 지켰어도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면 아버지가 벌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4절을 다시 보면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나 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아들도 손자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모두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이 사람들은 다 같은 아들입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하였고, 영혼이라는 말이 인생이라고 했는데, 범죄하는 그 인생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그 죄 값을 받는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되겠습니다. 불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신자들이 죄를 지으면 신자라도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를 행하면 그 의 행한 것으로 인해서 영이 살고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아무리 의와 선을 행해도 그것이 의와 선이 아닙니다. 불신자는 본래 정죄되어 있고 영혼이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의를 행한다고 해도 불신자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은 것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의라는 것은 더러운 옷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3장에 보면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행함으로 의인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행함으로 의인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인된 사람이 의를 행하면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행위 계약은 선악과에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행위 계약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행위 계약이 완전히 폐지되었는가, 아니면 지금도 폐지되지 않고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알미니안 파는 행위 계약이 완전히 다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행위 계약은 지금도 효과가 있습니다. 어떤면에 효과가 있는가 하면 순종하면 복 받는다는 것에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행위 계약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증거입니다. 
폐지된 것은 그것을 지킴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행위 계약을 지킴으로 구원 받는다는 입장은 폐지되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면에 있어서는 아직도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은혜 계약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데,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말씀을 지키면 영적 생명이 삽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범하면 징벌을 받습니다. 또 영적 생명의 역사가 죽고 중단됩니다.

불신자의 선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복을 주시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불신자가 선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죄 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불신자가 선을 행하면 어느 정도 복 받는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망합니다. 그러나 구원문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성도가 선을 행하면 영이 살고, 범죄하면 심령의 역사가 죽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죽습니다. 또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의를 행하면 영이 살고 하나님께 복을 받고, 또 하나님의 나라에서 창성해나갑니다. 그러한 관계가 있습니다.

2. 의를 행하며 죄를 범치 않는 자는 생명을 얻게 됨

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라 살라

본문 5절에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법과 의를 따라 행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법’은 공평을 말합니다. 공평과 의를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성도가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요새는 성경말씀을 어기고 취한 것이 우상의 제물입니다. 성경을 어기고 따라간 것이 우상입니다. 그 다음에 우상 가운데 우리가 제일 가까이 있는 우상, 즉 자기가 우상이 됩니다. 자기 목숨이 우상이 됩니다. 자기 목숨을 죽는데 내어 주지 않는 자는 그 목숨이 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내 속에서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고 하면 자기 목숨을 즉시로 죽는 데까지 내어 주는 그 사람이 생명이 우상이 안 된 사람
입니다. 그러나 죽는 데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생명이 우상이 된 사람입니다. 우상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우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상이 크기 때문에 가다가 우상이 하나 나오면 거기서 중단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우상이고 자기 목숨이 우상이기 때문에 그 이상 진보가 될 수 없습니다. 믿는 일이 안 됩니다.

그 다음에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음행하는 일을 말하는데, 이런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아내라도 월경 중에 있을 때에는 가까이 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하에서 모든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제하는 일, 절제치 못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것은 죄입니다. 다른 사람을 학대함으로 자기 자신의 영적 생명의 역사가 중단됩니다. 언제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손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에 먼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손해를 보면서 사랑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언제나 손해를 안 보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마귀에게 속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재물에 대한 교훈입니다. 사람을 학대하지 않는 것은 인격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물질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게 박절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당을 잡고 빚을 줬는데 그 사람이 빚을 못 갚는다고 하면 그 사람의 전당물을 다시 돌려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입니다.

그 다음에 ‘억탈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억탈(抑奪)’은 빼앗는 것입니다. 억탈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권세가 있어서 억탈할 때는 억탈하지만, 권세는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요새 새마을 운동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신문에 여러 번 났는데, 그때 어떤 사람들이 권세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 것을 억탈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새 다 드러나서 얼마나 그것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이 만일 그 자리에 올라가면 그렇
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그보다 더 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말 한 마디면 척척 되는데 안 하겠습니까? 사람에게는 다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권세 있는 자리에 올라가면 그 권세를 안 쓸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대개 다 권세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억탈하지 아니하며, 물질에 대해서 권리가 있다고 해서 다 쓰지 않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물질에 대해서 희생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라고 하였는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는 사람,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돈을 잘라 먹지 말고 물어줄 것은 다 물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빚 잔치를 한 것이라고 해도 후에 다 물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재물에 대해서 어떻게 하든지 억지가 하나도 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연보에 대해서도 억지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자원해서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퇴직금에 대해서도 억지가 안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억지가 안 되도록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받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교역자들도 퇴직금을 안 주면 안 받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다음에 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적으로는 줄 것은 다 주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못 주면 이 다음에라도 주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받을 사람은 아예 안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이 좋고, 교회적으로는 다 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지금 없으면 이 다음에 10년 후에라도 주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재물에 대해서 억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언제나 바로 된 신앙입니다.
신명기 23장 20절에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고 하였고, 시편 15편 5절에는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25장 35-37절에는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식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식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식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은행에다 두었다가 받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행 이자 정도는 받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안 받을 사람에게는 안 받는 것이 좋고, 받아야 될 만한 곳은 은행 이자 정도로 받는 것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신자에게는 이자를 받는 것이 가하지만 형제에게는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자를 받으려고 안 믿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양심을 똑바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상대가 아무리 곤경에 빠졌어도 안 빌려주고, 불신자에게는 이자를 받으려고 빌려주면 신앙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신자를 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에 불신자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고리대금은 죄입니다. 피를 빨아먹는 죄이고, 빈대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변을 위하여 꾸이지 아니하며 이식을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악을 짓지 아니하며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악을 짓지 아니하며’라는 것은 언제나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려는 생활을 말합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언제나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생활을 해야만 자기 영이 살고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하고 바로 취급해야 합니다.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사람 사이에 판단을 바로 해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용서해줄 것은 용서해주고 책망할 것을 책망하며, 진실히 판단하고 진실한 관계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죄는 책망하고 사람은 사랑하며 바른 관계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죄를 책망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죄는 열 번 책망하더라도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며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본문 9절에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찐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고 규례를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대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모든 것에 법칙이 있는데, 그 법칙에 어긋나면 안 됩니다. 법도대로 질서를 지키고 윤리를 지키며, 모든 일에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율례와 법도는 공자의 삼강오륜(三綱五倫)보다 낫습니다. 공자가 삼강오륜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는 그것보다 썩 앞서 있습니다. 삼강오륜은 임금과 신하, 부자(父子), 부부간이 삼강이고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붕우유신, 장유유서의 오륜입니다. 이것이 공자의 삼강오륜입니다. 결국은 임금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부부 간의 관계를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친구와의 관계, 어른과 젊은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삼강오륜보다 우리 성경이 얼마나 앞섭니까? 성경 십계명만 해도 벌써 얼마나 앞섭니까? 하나님 앞에 바로 되는 일이니까 그것보다 썩 앞섭니다. 물론 자연과 사람에 대한 것도 다 있습니다. 그것이 있고, 또 하나님께 대한 신령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썩 앞선 것입니다. 아주 고상한 것입니다. 이런 윤리를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모든 도리를 잘 지켜나가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교역자들의 주의 사항

그런데 교역자가 교회에 나가서 실패하는 원인 중에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절반쯤 됩니다. 일 처리를 잘못하고, 성격꾼이어서 자기 성질을 부리고, 교인들을 멸시하고, 또 돈에 대해서 바로 하지 못하며 나가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은혜가 있다고 해도,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못하고 물질 처리를 바로 못하고 자기 성격을 부리며 나가면 실패합니다. 사람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물론 많이해야 되겠지만 우선 자기 성격을 안 부려야 합니다. 자기 성격을 부리다가 실패하는 것이 망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면이나옵니다. 모세도 자기 성격을 부리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물을 내랴”라고 하면서 두 번 쳤습니다. 성격 부리다가 실패합니다. 또 물질 면에서 잘못하면 실패입니다. 사례금을 주려고 할 때에 더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여간 교역자는 절대로 성격을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교인들 앞에서 혈기를 부린다든지, 교만한 자세가 나오면 안 됩니다. 인간의 면이 나오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공격하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집사나 교인들을 무조건 공격해대지 말아야 합니다. 교인들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교인들이 가만히 있을 때는 아무렇게나 해도 가만히 있지만 한 번 들고 일어서면 무섭습니다. 바다가 잔잔할 때는 괜찮지만 한 번 바람이 불어 일어설 때는 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무서운 줄 알고 교인들 앞에서 말을 허투루 하면 안 됩니다. 또 무슨 선물을 해주겠다고 할 때에 무조건 선물 받을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안 받을 것은 안 받아야 합니다. 언제나 교인들 앞에서는 짐을 안 지어주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대접을 안 받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죽을지언정 대접 안 받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그런 사람에게 자꾸 대접을 하겠다고 합니다. 안 받겠다고 하는데 대접을 합니다. 그래서 받으려고 하면 그 시간에는 해줍니다. 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안 해줍니까? 그러나 뒤에 가서 욕합니다. 수군수군하면서 뒤에 가서 욕하기 시작해서 열 사람, 스무 사람 퍼져 나가면 교역자가 믿음이 다 떨어지고 슬슬 피하면서 나가게 됩니다. 심방 가서 무엇을 보고 “나도 이런 것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도 하나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쭉 소문이 납니다. “목사가 심방 와서 우리 집에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것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러니 다음에는 다 감춰 놔라’하면서 다 감춰놓습니다. 거지새끼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강도가 되어서 빼앗으러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심방 가서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좋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부러워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벌써 그것은 ‘자기도 이런 것을 해달라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여간 죽을지언정 대접 받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또 절대 성격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을 섬기는 자리에 서고, 종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교인들을 명령하는 자리에 서지 말고, 교인들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겸손하고, 언제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 조심을 하지 않으면 그 말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교역자의 위신이 떨어집니다. 교역자가 하는 일, 사람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율례를 좇으며 규례를 지키고 진실히 행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3. 의인의 아들이라도 죄를 범하면 죽음

본문 10-13절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치 아니하고 이 악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억탈하거나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변을 위하여 꾸이거나 이식을 받거나 할찐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정녕 죽을찌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신앙이 좋아도 아들이 그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지으면 정녕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신앙을 잘 물려주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믿음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언제나 경성시켜 줘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부모가 신앙이 좋다 해도 자녀들이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다가 망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교역자 역시 교인들에게 성경말씀대로 행하도록 가르쳐주면서 좋은 신앙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교인들도 계속해서 가르치지 않으면 모릅니다. 해방 신학도 교인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주어야만 넘어가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가면 여러 개의 기독 단체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교인들을 미혹하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독 단체에서 학생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이것 저것을 먹이면서 가입부터 시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기독 단체 등에 가입을 한 후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단체에서 성경을 배운다고 하면서 졸업을 하고도 계속 그 단체에 출석을 합니다. 대표적인 단체가 네비게이토 선교회입니다. 이 단체를 가입한 초기에는 출석하던 교회에 나오지만 얼마 지나면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고 그 단체에 계속해서 출석하게 됩니다. 미국에 갔는데 그곳에도 있었습니다. 네비게이토는 성경 공부를 하면서 계속해서 모임을 가집니다. 그리고 십일조도 네비게이토에 내면서 현실의 교회를 부인합니다. 이 단체는 완전 다른 교파입니다. 현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인도하니까 목사님을 순종해야 하는데, 거기에 가면 다 같은 형제니까 자기들이 성찬 의식도 해보고 설교도 한 번씩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분도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연보를 받아서 운영자들이 학생들에게 밥도 먹이면서 이끌어나가며 기성 교회를 파괴합니다. 우리 청년들도 까딱하면 그런 곳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또 봉원동에 가면 대학생 성경 읽기회(UBF)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도 네비게이토와 비슷합니다. 원래 기성 교회에 다니던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그 단체에 가입하게 합니다. 그리고 일단 가입을 하게 되면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하여간 아이들이 대학교에 들어가면 UBF, 네비게이토, 형제 교단과 같이 교회의 제도를 부인하고 질서를 무시하며 자유롭게 성경을 배우도록 가르치는 단체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신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가르치는데, 그러한 곳에서 바른 진리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현실 교회를 부인하는 것은 불건전한 운동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녀들과 교회 청년들을 성경대로 가르치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신앙이 좋아도 아들이 신앙을 그대로 지키지 못하면 정녕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의하여 정신을 차리고 자녀들을 늘 살펴보며 많이 가르쳐야 합니다.

4. 악인의 아들이라도 의를 행하면 죽지 않음

본문 14-18절에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전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억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찐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억탈하고 민간에 불선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악할지라도 아들이 선을 행하면 아버지만 죽고 그 아들은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9-20절에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범죄하는 영혼만 죽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범죄하면 그 중생한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생명의 역사만 끊어지게 됩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은 인류의 대표가 범죄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다 범죄한 것이 됩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이 대표로 나가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같이 아담의 계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정죄가 임했고 유전 죄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원죄는 법적으로 정죄 받는 것과 부패성이 유전되어 내려오는 유전 죄로 구분됩니다. 따라서 아담이 대표로 나가서 지은 죄는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원죄가 유전되는 것입니다.

5. 악인이 의를 행하면 살고 의인이 악을 행하면 죽음

본문 21-22절에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의를 행하면 과거에 범죄하여 죄 지은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시며, 의를 위하여 살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과거에 지은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다 사하여주십니다. 그리고 의를 행하면 그 의로 인하여 살도록
해주십니다. 따라서 즉시로 회개하고 의를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에 내가 잘못한 것을 어떻게 할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만히 두시겠는가?’라고 하며 걱정하지 말고 회개하고 바로만 서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만 나가면 과거에 잘못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지금 바로 선 것만 보십니다. 현재만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믿음으로 바로 서서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시며 우리의 살 길도 인도해주십니다.

본문 23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죽이시지만 그것이 기뻐서 하시는 일은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악인도 회개하고 바로만 서면 하나님께서 과거의 악을 기억하지 아니하시고 살 길로 인도하십니다. 악에서 돌이키고 그 길을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본문 24절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의인이 그 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에 의를 행했다고 해서 봐주지 않으십니다. 그가 범한 죄와 허물로 인해서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전에 의를 행했다고 해도 현재 악행하는 것을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의인이라고 해도 오늘 범죄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6. 죄사의생(罪死義生)은 여호와의 공평한 섭리임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 바로 행하라

본문 25-29절에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한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 길이 어떻게 공평하지 않느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의로우십니다. 우리는 의로운 판단을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시편 51편 4절 말씀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셔서 징계하실 때에 마땅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다 의롭다고 생각해야 하고, 주께서 하시는 판단은 다 공의로운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공평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믿음이 바로 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범사에 다 공평하고, 자기가 받는 징계는 자기의 죄 값으로 인한 것으로 마땅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의인이라도 죄를 지으면 죽고, 아무리 죄인이라도 의를 행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죄사의생’은 하나님의 공평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의를 조금 행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징계 받았을 때에 ‘내가 의를 행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하면 안 됩니다. 또 ‘십일조를 드렸는데 왜 쌓을 것을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십일조를 바르게 드린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이 잘되지 않은 줄로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사람은 잘되고 십일조를 드린 사람이 왜 이렇게 됩니까?’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바로 믿으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됩니까?’라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바로 믿음 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불충성한 것이 있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믿는 일도 못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지도 않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잘되지 않은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는 일을 하느라 조금 노력한 것을 가지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성경도 바로 배우고 믿는 일도 힘써서 하고자 교회 생활도 바로 했는데 왜 이렇게 됩니까?’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일에 제대로 달음질하지도 못하고 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어 날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며 살아야 합니다.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고 했는데, 공중의 새가 날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까?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안 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릴 때 온전한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렸습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십분의 일만 드리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표본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께 생명까지 바쳐놓고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면 왜 일이 안 되겠습니까?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 종종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으시다고 말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길이 공평치 않다고 하는 것은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걷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 악한 사람이 잘되는가?’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이 다음에 지옥에 보내려고 잘되게 하시는 수도 있고, 한꺼번에 징계하려고 가만히 두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에 대해서도 한꺼번에 징계하시려고 현재 그냥 두고 계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행하시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징계가 오는 것, 일이 잘 안 되는 것, 환난과 핍박이 오는 것 등이 마땅하다고 믿어야 합니다. 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들이 내게 온 줄 알고, 회개할 것은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설 바는 바로 서야 합니다. 고쳐야 할 것은 찾아서 고치면서 자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려고 행하시는 공평입니다. 이를 믿고 바로 서서 부지런히 자기를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네가 의와 법을 행하면 그 영혼이 보전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바로 서지 않으면 지켜주지 않으십니다.

본문 28-30절에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국문한다는 것은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하며 모든 죄에서 떠나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기주의, 목숨이나 우상을 떠나서 언제나 말씀에 서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자기 자신이 살 수 있습니다.

본문 31절에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모든 죄악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은 영의 기반입니다. 마음이 영에게 이용되면 선한 마음이 되고, 부패성에게 이용당하면 악한 마음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인데, 선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고 악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중생한 마음에게 이용당할 때에 선한 마음이 나오는 것이고, 육신의 부패성에게 이용당할 때에는 악한 마음이 나오게 됩니다. 마음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습니다. 마음은 기관입니다. 어느 면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한 기관도 되고, 악한 기관도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고 하였으므로 육신으로 사용하던 육신 중심의 정욕, 물욕, 사욕, 자기 중심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영이 깨어서 영에게 이용되는 마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못한 죄, 하나님께 전심을 기울이지 못한 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우상을 버리지 못한 죄, 마음속에서 세상의 것을 버리지 못하고 지은 죄들도 전부 회개해야 합니다. 금식은 자기를 부인하고 바로 서서 하나님께 가까이 하여 자기의 목소리를 상달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식도 바로 하지 못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이 모든 죄들을 전부 회개하고 새 심령으로 힘을 얻어서 말씀의 세계로 날마다 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마음도 거기에 이용을 당해서 심령이 날마다 새롭게 되어나가는 생활을 해나가야겠습니다. 기도하는 모양만 내지 말고 실제로 심령이 새롭게 되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그 세계에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리고 몸도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도록 이용되어야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1장에 몸으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몸으로 그리스도가 존귀
하게 되도록, 죽음에 생명을 넘겨주는 데까지 이르도록 열심을 내야겠습니다.

그리고 들의 백합화와 같이, 또는 공중에 나는 새와 같이 부지런히 나가서 일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환난과 핍박, 그리고 곤고함도 주십니다. 곤고함도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도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 말씀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주신 것은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고난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인격이 구비하고 온전하여 부족한 것이 없이 나아가게 됩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함

우리는 부지런히 자기 자신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아, 내가 이런 점이 잘못되었으니 고쳐나가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나의 단점을 고치라고 지적해주면 그것이 큰 보배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잘못된 점을 모르고 행동하다가 다른 사람이 “이런 면은 고쳐라”고 말해주면 “감사합니다. 고치겠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끊어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 “담배를 끊어라”고 이야기해주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끊어야 합니다. 이것은 담배를 끊는 것이 더 이롭기 때문에 끊으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는 것은 금광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발견해서 그날로 고치면 아주 좋아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단점은 발견하지 못해서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발견해서 말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도오악자시오사(道吾惡者是吾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하고 악한 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자신의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고쳐야 할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선생입니다. 단점을 하나 말해줘서 그것을 고치면 고친만큼 자기가 올라가는 것인데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고칠 것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나 고칠 점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고칠 점을 듣고도 고치지 않으면 자기 잘난 맛에 살다가 그만 꺼꾸러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고치고 바로 서야 합니다. 자기가 비뚤어진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하여간 비뚤어진 것이 잘되는 법이 없기 때문에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전체를 진리로 다스리시는 철두철미한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의로 다스리시며 의에 어긋난 것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비뚤게 나가면 반드시 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치에 맞지 않게 행하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치에 맞게 해야만 거기에 대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합니다. 

본문 32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서서 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회개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또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율례와 법도에 비추어 볼 때 어디가 어긋났는지를 찾고, 어긋난 것을 고쳐서 바로 서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