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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0일 토요일

누가복음 22:24-33 하늘나라에서 큰 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늘나라에서 큰 자
누가복음 22:24-33

24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29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1. 섬기는 자

본문 24-26절에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열 두 제자들 중에 누가 크냐? 서로 자기가 크다고 하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자기가 크다,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크다, 는 이러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5-27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개인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말입니다. 또, 너희
가운데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떤 자가 큰 자입니까? 많은 사람을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또, 어떤 자가 으뜸입니까? 봉사 많이 하는 사람이 으뜸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26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젊은 자라는 것은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젊은 사람이 섬기지 않습니까?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말입니다. 또, 두목은 어떤 자와 같다고 하였습니까? 이것도 섬기는 자와 같습니다. 봉사 많이 한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 많이 한 사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많이 섬긴 사람, 남이 안 하는 것을 많이 하고 종살이 많이 한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큰 사람이 됩니다.

본문 27절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로 계시다, 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섬기셨습니까? 당신의 몸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어도 족하니라, 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봉사 아닙니까? 발 씻어 주는 것도 그날 그날 죄 짓는 것을 회개할 때에 그 죄를 다 씻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깨끗하게 씻어 주시니까 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일 많이 섬기시고, 제일 많이 종살이 하시고, 제일 많이 봉사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가면 예수님이 제일 큰 자리에 앉습니다. 하나님 다음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섬기려고 오셨는데 무엇까지 다 바쳐서 섬기셨습니까? 목숨까지 다 바쳐서 섬기셨습니다. 피를 다 쏟아서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심으로 섬기셨습니다.

2. 봉사하는 자

할머니와 한 집에서 사는 아이들은 할머니를 제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왜 좋아합니까? 자기에게 가장 많이 봉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언제나 옆에 있어서 먹을 것을 주고 심부름도 다 해주지 않습니까? 아이들 보고 자기 집에서 누가 제일 크냐?, 고 하면 할머니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또, 그 할머니가 자손이 여럿이면 여러 집 손자들이 서로 자기 집으로 오라 합니다. 큰 아들 집에서는 큰 아들의 손자들이, 작은 아들 집에서는 작은 아들 손자들이 오라고 합니다. 가서 기도 많이 해주고 봉사 잘 해주면, 제일 좋아하고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가서 봉사하지 아니하고 대접만 받으려고 하면, 그 손자들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많은 사람을 잘 섬기고 어려운 일을 자기가 친히 다 하며 봉사 잘하는, 이런 사람이 아주 큽니다. 할 일이 있으면 바로 그 사람 찾으러 가게 됩니다. 아무개 어디 갔나?, 봉사 잘 하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늘나라에 가도 또,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운동을 위해서 제일 많이 수고 한 사람이 큰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 나라 일을 위하여, 구원
운동을 위하여 봉사를 많이 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 가서 큰 자가 됩니다. 주의 일을 위해서 봉사 많이 하고 남이 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자기가 하려고 하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또, 세상에서도 큰 자가 됩니다. 쉬운 것만 하려고 하면 큰 자가 못 됩니다. 힘 안 드는 일, 쉬운 일만 하려고 하면 큰 자가 못 되며 대접 받으려는 자도 큰 자가 못 됩니다. 우리는 대접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희생, 봉사, 대접하는 자가 큰 자입니다. 

목사들 가운데도 “광주 기도원에 봉사하러 가야 하겠는데 언제 가야 합니까?”하며 자꾸 물어보는 목사가 있습니다. “교인들을 다 데리고 봉사하러 가야 하겠는데 언제 갑니까?”라고 하기에 제가 조금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목사는 ‘봉사하러 오라고 하면 어떡하나?’하며 봉사하라고 하면 마지못해서 합니다. 어느 자가 큰 자 같죠? 봉사 많이 하겠다는 사람이 큰 자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기도원을 위해서 봉사를 많이 하고 또, 기도원 짓는 데에 물질로나 여러 면으로 힘을 많이 쓰며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위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큰 자입니다. 돈을 많이 주든 적게 주든, 하여간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큰 자가 됩니다. 다른 데 가서 돈을 많이 벌면 무엇 하겠습니까? 사람이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면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굶겨 죽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 가서 큰 자가 됩니다.

3. 자기를 만들어 가는 자

잠시 잠깐 있으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마치고 하늘나라에 갈 것인데, 그 때에 누가 큰 자가 됩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를 잘 만들어 간 사람이 영원히 큰 자가 됩니다. 자신을 잘 만들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작은 자가 됩니다.

4.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자

본문 28-30절에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열 두 제자는 항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다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늘나라를 위해서 봉사하느라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많이 받은 자들입니다. 이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라를 예수님께 맡기
신 것과 같이, 이제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 건설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 상에서 먹고 마심

본문 30절에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한 상에서 먹고 마신다고 하였습니다. 한 상에서 먹는 것을 겸상(兼床)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겸상해서 먹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많이 받으면서 그 가운데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킨 사람 또, 희생 봉사를 많이 한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라를 맡겨 주십니다. 그 심령 속에 항상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예수님과 한 상에서 먹고 마시게 됩니다. 

예수님과 한 상에서 먹고 마시면 얼마나 맛이 있을까요? 혼자 먹는 것이 나을까요? 예수님과 한 상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나을까요? 예수님과 같이 먹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술 마시는 사람도 같이 마시는 동무가 있어야, 한 잔 ‘크윽’하고 또, 저 사람이 한 잔 ‘크윽’하면서 마신다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 때도 혼자 먹는 것 보다 같이 먹는 사람이 있어야 많이 먹습니다. 혼자 먹으면 조금 먹다 안 먹습니다. 예수님과 한 상에서 먹으면, 그 상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넘쳐흐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쳐흐릅니다. 그러면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먹으면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높은 사람에게 대접을 잘 받은 다음에는 그 경험을 안 잊어버리게 됩니다. 

예전에 플로리다 주에 있는 기도원에 한 번 갔었는데, 그 기도원에서 제일 높으신 목사님 한 분이 음식을 미국식으로, 귀한 손님 대접하는 식으로 잘 차려 주셔서 대접을 잘 받고 왔었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그래서 그 분이 한국에 오시면 내가 한 번 대접을 잘 해야 하겠다고 생각 했는데 여태까지 오시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한 자리에서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겠습니까? 또, 한 번 먹고 마는 것입니까? 늘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많이 당하고 주님을 항상 따라 다님으로 예수님과 한 자리에서 먹고 마셔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한 보좌에 앉음

또, 예수님과 한 보좌에 앉습니다. 같은 보좌에 앉는데 물론 차이가 있긴 있겠지요. 그래도 예수님 옆에 앉는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림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당하면서 믿음으로 잘 참고 이기면 예수님과 한 자리에서 먹고, 예수님 옆에 앉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수 있는 그런 권세가 있게 됩니다.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주의 일을 잘 해나가는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말씀 잘 지키고 수고 많이 하고 고난을 많이 참고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 많이 하는, 이런 사람이 예수님과 한 자리에 가서 앉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합니다. 

요한계시록 3:20-21에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와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서 한 가지라도 더 수고하고 가야 합니다. 또 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고난 당하고 시험 당할 때에 믿음으로 잘 통과해야 합니다.

본문 31-32절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시몬은 베드로의 본 이름입니다. 22:7-8절에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시몬은 베드로가 예수 믿기 전에 불리던 이름으로, 육신에 속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신앙적인 이름입니다. 시몬을 부르시면서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시몬을 마귀가 밀 까부르듯 까부러서 떨어뜨리게 하려고 청구했습니다. 밀 까부르는 것은 키에 곡식을 두고 곡식알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알곡을 고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까부르는 것입니다. 키를 쳐서 알은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쭉정이는 아래로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알 전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와 같이 사람을 키질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얼마나 고통이 많겠습니까? 그런데 마귀가 이렇게 베드로를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밀 까부르듯 하는 시험, 이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사단이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해서 떨어뜨리려고 신앙을 타락 되게 하려고 청구하였다는 것입니다. 마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만 마귀도 시험합니다.

본문 32절에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시몬이 지금의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다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정도만 허락을 하시고 전부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말하자면 감해 주신 것입니다. 돌이킨 후에라는 것은 베드로가 일시적으로 실족하지만 회개하고 돌이키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본문 33절에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몬은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또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했다, 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해서 감옥에도 가고 죽는 데도 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26:33에도 “다른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는 베드로의 결심이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