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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골로새서 2:1-8 신앙 확립을 위한 노력.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앙 확립을 위한 노력
골로새서 2:1-8

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2:1 나는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2:2 이는 그들이 사랑 가운데 연합하여 마음에 위로를 얻고 깨달음에서 오는 넘치는 확신에 이르며,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 

2:3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2:4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2:5 내가 비록 육신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질서 있게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의 믿음이 굳건한 것을 보고 기뻐한다.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것처럼,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가라. 

2:7 너희는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입으며, 가르침을 받은대로 믿음 안에 굳게서서 감사가 넘치게 하여라. 

2:8 아무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적 원리들을 따른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다. 


1.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 힘을 쓴 바울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한 노력

본문 1절에,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라오디게아 교회와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은 얼굴도 보지 못했으나, 그들을 위해 힘을 많이 썼습니다.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하였는데, 사도바울은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한 여러 곳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신앙이 잘되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그들의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기도해주면서 힘을 씁니다. 우리가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국내에 있는 못 본 성도가 많지만, 특히 외국에 있는 성도들, 선교사들 가서 선교하는 지방에 있는 보지 못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들의 신앙을 위해서 힘쓰는 일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중국에 있는 성도들, 또 구소련에 있는 성도들, 일본에 있는 성도들, 미국에 있는 성도들, 또 호주에 있는 성도들, 우리가 선교사를 보내서, 보지 못한 성도들의 신앙을 길러나가는 중에 있는데,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위해서 힘을 많이 써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위안과 사랑의 연합을 위한 노력

본문 2절에,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는’이라고 하면서 이유를 말합니다. 보지 못한 성도를 위해서 힘쓰는 이유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하려 함입니다. 그리스도를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 보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해,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서 힘쓴다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을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피땀을 흘리고 거기에 진액을 짜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적으로 해야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위에서 세워지고, 교역자의 피땀과 진액 위에 서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이지 않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피땀을 흘렸습니다. 교인들이 위안을 받게 하는 것이 첫째라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환란 가운데 있더라도 은혜를 받으면 마음의 위로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깨달으면 위안이 오고, 은혜를 받으면 마음의 위로가 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은혜를 나눠주려고 바울이 갈 때에는 은혜의 보따리를 싸가지고 간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장 11-12절에,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고 했는데, 바울이 가서 너희에게 나눠주면 너희와 내가 함께 안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차 은혜의 보따리를 싸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성도가 서로 연결돼야만 큰 성전이 지어져나간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21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라고 했습니다. 사도신경에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구절이 있는데, 성도가 서로 연락되고 신앙의 교제를 하고 서로 연결됨으로 하나님의 큰 성전이 지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커지는 것만큼 멀리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합해야 멀리까지 진리가 전파돼 나간다는 말입니다. 연합이 되지 못하면 힘이 없습니다. 멀리까지 나가지 못합니다. 

진리 면에서 원만한 이해와 부요에 이르는 노력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신앙생활이라는 건 이면도 깨닫고, 다른 면도 깨닫고, 원만하게 모든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깨닫지 못한 게 있다고 하면 성격이 바로 되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18장 25-26절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한 자요 학문이 많은 사람으로서, 구약성경을 가지고 와서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들어보니까 열심히 가르치긴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볼로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대학자인 아볼로를 모셔서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알려드렸다는 말입니다. 실력은 아볼로에게 못 미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뒤에 아볼로는 원만한 이해가 됐습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브리스길라가 아볼로의 아랫사람이지만, 아볼로는 자기가 아직도 알지 못하던 내용을 브리스길라에게서 배워서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잘 전했습니다. 사도바울이 후에 아볼로를 동역자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여 예수를 믿는 진리 면에 있어서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도록 아직도 배우지 못한 면을 배워야 합니다. 깨닫지 못한 면을 깨달아야 하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던 면을 이해해야 하고, 아직도 개척하지 못한 진리를 개척해야 하고, 원만한 진리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로새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에 바울이 가지는 않았지만, 바울이 갖고 있는 진리를 가서 말해주어야겠다는 말입니다. 골로새교회가 에바브라에게 배웠는데, 물론 에바브라가 가진 진리가 바울이 가진 진리와 어느 정도 같습니다. 그래도 에바브라에게 없는 것이 바울에게 또한 있습니다. 좀 더 깊은 진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진리를 보충시켜줘야 원만한 진리에 대한 이해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이 진리를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고 애를 쓰고, 은혜를 전해주려고 바울이 항상 힘쓰고 수고하고 애썼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면이 아직도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것을 가서 나눠주고 보충을 시켜주면, 그 사람들이 원만한 지혜의 모든 이해에 이르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기독교 회의하는 곳을 참석해보면, 거기서도 물론 진리에 대하여 논의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못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려줘서 보충을 시켜주면 그 사람들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국제회의 같은데 혹시 참여하게 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그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까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것을 가르쳐준다고 대접이 달라집니다. 물론 그 즉시로 알아듣고 바로 서는 경우도 있지만 100% 효과 보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가서 진리에 대한 바른 것을 말해주면, 그들이 모르던 것을 좀 더 넓게 알게 됩니다. 

2.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지혜, 지식, 보화
영생의 지혜, 지식임

본문 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했는데, ‘그 안’은 그리스도 안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무엇이 감추어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도 있고, 지식도 있고, 보화가 감추어 있습니다. 

제가 소년 시절에 이 성경을 읽고, 예수 안에 지혜와 지식이 다 있으니깐 예수만 잘 믿으면 다른 건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영어공부 하다가 힘이 드니깐 공부하는 건 힘을 좀 안 썼습니다. “다 이거이 예수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 있으면 다 들어가니깐 영어 공부 할 필요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얼마동안 공부 안하다가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 지혜와 지식은 영적 지혜와 지식인데, 영적인 것을 모르고 육신의 지혜와 지식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할 필요 없다’이렇게 생각하고 잘못 깨닫고 공부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는 육신의 지혜와 지식이 있는 게 아니고, 영적지혜와 지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영적 지혜와 지식이 있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아는 지혜,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 또한 우리 사람의 영혼을 아는 지혜와 지식, 구원받는 지혜와 지식, 자라나는 지혜와 지식, 신령한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천당을 알고, 지옥을 알고, 성령의 역사도 알고, 마귀 역사도 알고, 모든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하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도 알게 되고, 성경도 알게 되고, 내세도 알게 되고, 천당과 지옥도 알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그 지혜와 지식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그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세도 모르고, 심판도 모르고, 천당과 지옥도 모르고, 자기 영도 모르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다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을 점 점 더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고, 성령을 알게 되고, 하늘나라, 지옥, 심판, 또 복 받는 길, 화 받는 길, 망하는 길, 영생 길, 다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영생 길이, 영생하는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궁무진한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만큼 소유하게 됨

보화와 지식이 감추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 보화와 지혜와 지식이 감추어 있는데 그걸 발견해서 자기 소유로 삼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 보화가 많이 있다는 말이고, 지식도 가득 있고, 또 지혜도 가득 있습니다. 광산에 금강석이 가득 나오는 것과 같이 캐면 나오고, 캐면 또 있고, 또 있고, 계속 캐 들어가면 또 있다는 말입니다. 보화가 계속 있습니다. 

얼마를 캐내면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더 있습니다. 그 보화를 좀 더 캐내면 계속 더 있습니다. 캐내면 더 있고, 캐내면 더 있고, 캐내면 더 있고, 무궁무진하게 그리스도 안에 보화가 감추어 있습니다. 무궁(無窮)이라는 뜻은 한정 없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진(無盡), 즉, 끊어짐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는 한정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궁무진한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보화를 발견하고, 그 다음에 즐거워하고, 그 보화로 자기가 부자 되고, 그 보화로 생명을 얻고, 그 보화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는 얼마나 있다고 했습니까? 얼마나 감추어 있습니까? 무궁무진하게 감추어 있다는 말입니다. 보화를 한 가마니 발견한 사람은 그만큼 보화가 있고, 두 가마니 발견한 사람은 또 보화가 그만큼 있고, 세 가마니 발견한 사람, 다섯 가마니 발견한 사람, 일곱 가마니 캐낸 사람, 열 가마니 캐낸 사람, 스무 가마니 캐낸
사람, 이렇게 계속 캐내도 계속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캐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를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 얼마입니까?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건 자기가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교회 목사가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교회의 교인도 가질 수 있습니다. 목사가 많이 발견하고 많이 캐낸 목사는 교인들에게 다 나눠주니까, 그만큼 부자가 되고,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도하는 목사에게 인도받는 교인들은 보화가 없습니다. 조금 발견한 사람은 보화가 조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보화를 많이 발견하고, 많이 캐내서 많이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지혜, 신령한 지혜, 신령한 지식도 그리스도 안에 무궁무진하게 있는데, 그것도 자기가 발견해서 자기 소유로 삼는 것만큼 자기 것이 됩니다.

3. 믿음으로 규모를 잘 지킬 것

본문 4절에,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공교한 말로, 꾸민 말로, 공교하게 묘하게 꾸며가지고 사람을 속이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나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교역자들도 많습니다. 그런 자들이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5절에,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육신으로는 떠나 있다고 했는데, 지금 육신으로 어디 있습니까? 바울이 육신으로는 감옥에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골로새 교인하고 떠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라고 했는데, 심령으로는 언제나 교인들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혔지만 심령으로는 저희와 함께 있어, 저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 규모’라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대로 믿음 지키는 것이 규모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규모를 잘 지키고, 믿음이 굳세다는 말입니다. 규모 잘 지킨다는 것은, 성경대로 모든 것을 다 바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 늦지 않는 것도 규모 지키는 것입니다. 늦어지는 건 규모 못 지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주일학교 늦어지고, 이따금 주일학교 빠지고, 예배시간 늦어지는 것은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규모를 지키는 것은 믿음을 잘 지켜서 모든 면에 결함이 없이 원만하게 모든 것을 잘해나가는 것입니다. 원리 원칙대로, 법칙대고, 성경대로, 모든 면을 규모에 어긋남이 없이 잘 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규모대로 잘하고, 교회 생활도 규모대로 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규모대로 잘하고, 모든 것을 규모대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규모를 안 지키는 것은 신앙을 안 지키는 것입니다. 규모를 지켜야 됩니다. 예배시간 늦어지는 것은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빠지는 것도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믿음이 굳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이겨나간 모양입니다. 그것을 바울이 기쁘게 보았습니다. 

4. 말씀에 굳게 서라
예수 안에 뿌리를 박을 것

본문 6-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예수님을 주로 받은 성도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고,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고 했는데, 예수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말입니다. 뿌리를 박아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그 안에서 살고, 그 다음에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 말씀을 배운대로, 믿음에, 즉, 말씀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또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것입니다. 곡식이 뿌리를 박아야 살지 않습니까?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박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를 힘입어 살라는 것입니다. 

‘세움을 입어’라고 했습니다. 세움을 입으라는 말은,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이제는 견고히 서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교훈을 받은 대로 말씀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감사하는 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감사하는 생활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은 사람은 항상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철학과 속임수에 속지 말 것

본문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철학으로 속이는데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철학자들 중에 노스틱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물질은 다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노스틱주의자들은 물질 개혁자들입니다. ‘물질은 악하다. 그러므로 육신도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만 선하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육신은 악하다고 주장하기에 육신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성경에 물질을 하나님이 창조해놓고 선하다고 하였습니까? 악하다고 하였습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을 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육신이 악한 게 아닙니다. 육신의 부패성과 죄가 악한 것이지 육신이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요새도 여러 가지 철학들이 많이 있는데, 그 철학은 사람들의 교훈입니다. 사람이 지어낸 것이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닙니다. 철학이란 사람이 연구하고 만들어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철학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철학은 사람들이 다 연구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준 것, 하나님이 알게 해주신 것이고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들의 유전, 율법주의자들, 할례주의자들의 주장은 사람의 유전이라는 것을 알고, 철학과 헛된 속임으로 우리를 노략할까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 좇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초등학문이라는 건 유치원 때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학년 들어가기 전에 초보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초등학문은 원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세상 율법이나, 유전이나, 철학이나, 이런 것을 좋아서 좇아가는 건 다 초등학문을 좇는 것입니다. 아직도 신앙의 근본인, 영적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신신학자들도 성경에 철학을 이용하였습니다. 이런 것은 다 초등학문입니다. 아직도 원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초등학문을 좇으며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했는데, 철학을 좇는 신신학자들은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초등학문인 철학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사회주의, 공산주의, 기독교 안에 있는 신신학자들은 전부 다 초등학문을 좇아가는 것이며, 참 신앙에, 영적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23 그리스도와 그 구속.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그리스도와 그 구속
골로새서 1:13-23

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1: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내시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며, 

1:14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1: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다. 

1:16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곧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보좌들과 주권들과 통치들과 권세들이 그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다. 

1:17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 함께 서 있다. 

1:18 또 그분은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분은 근원이시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니, 이는 그분이 친히 만물 가운데 으뜸이 되시려는 것이다. 

1:19 이것은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이 아들 안에 있게 하기를 기뻐하시고, 

1:20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시어,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1:21 전에 악한 행위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1:22 이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화목하게 하시어, 너희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튼튼한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가 들은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복음은 천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1.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그리스도
흑암의 권세와 아들의 나라

본문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냈습니다. 

‘흑암의 권세’라는 것은 빛의 세계와 반대입니다. 흑암의 세계는 빛의 세계를 전혀 모르고, 흑암에서 죄 가운데서 살고 사망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영적인 흑암 속에서, 영에 대해서는 아주 멀리 떠나서 살고 있는 성도를 거기서 건져 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건져내서 그 사랑의 나라,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 즉 말하면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의 복된 세계로 옮겨놓았습니다. 

‘아들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신령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해도 되지만 왜 아들의 나라라고 했느냐 하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구속의 나라이기 때문에 아들의 나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미 옮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5-6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그랬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렸다고 했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앉아야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흑암의 권세에서 죽은 우리 중생한 영혼이 다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신령한 세계, 영적세계, 구원의 세계인데 거기에 앉아 있습니다. 옮겨 놓았고, 앉아있고, 구원을 벌써 받았습니다. 

부패성을 지닌 몸의 구속을 이루어 가야 함
 
그러나 아직도 몸은 죄 가운데 있습니다. 성도의 영혼은 이렇게 구원을 받아서 빛 가운데 있고, 또 신령한 나라에 앉아 있고 건짐을 받았지만, 우리 몸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0절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예수 믿은 사람들이 몸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고 죽은 것이라 했습니다. 사망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육신은 전적 부패하니까 육체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고,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서 영혼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패성이 있습니다. 죄와 사망 하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그리스도의 의를 입혀서 살려 놓았습니다. 영혼은 살려 놓았고 육체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습니다. 사망 하에 있습니다. 그럼 이젠 믿는 사람의 할 일이 무엇인가 하면, 그 죄 가운데 있는 육신을 구속해 내는 것입니다. 건져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몸의 구속인데 로마서 8장 23절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
을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속으로 탄식하며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의 뜻은 ‘중생한 영혼을 받은 우리까지도’라는 그 말입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께 바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몸은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 몸을 점점 건져내서 죄 가운데서 건져내는 일이 몸의 구속인데, 죄를 점점 벗어버리면서 점점 자라나는 것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음

‘흑암의 전선에서 우리를 건져 내었다’하는 말은 우리를 흑암의 세계에서 건져내었다는 것, 하늘나라에 앉혔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그 신령한 세계에 우리 중생한 영혼은 있습니다. 영은 살았으니까 거기 앉아있고, 신령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구속의 세계에서 영혼은 살고 있습니다. 흑암의 세계에서 건져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았습니다. 하늘나라를 왜 ‘아들의 나라’라고 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 낸 구속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라 하는 것은 ‘예수를 믿음으로’라는 말입니다.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다고 했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구속 곧 죄 사함을 법적으로 받아서, 많은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시에 전부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믿는 사람은 모든 죄를 사함을 받아서 구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심

본문 15-16절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는데 그 분이 어떤 분입니까? 그리스도는 예수님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즉, 하나님의 본체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볼 때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진실하심을 볼 때 ‘하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시구나’하고 알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만물보다 어떻다고 했습니까?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만물은 피조물이지만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영원 자존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 성자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나신 예수님(永遠發生)

본문 15절에,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하였습니다.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로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그리스도가 영원히 나셨습니다.
그럼 ‘나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히 나셨습니다. 인간의 생식 방법으로 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나신 예수님이십니다(주: 영원발생(永遠發生); 성부에 의하여 영원히 발생; 시2:7; 요1:14, 18, 3:16,18; 행13:33; 갈4:4; 히1:5).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심에 의하여,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의 본질을 존재케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성자의 인격적 실체의 원인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나심은 항상 계속되면서도 항상 완료(完了)된 실제 역사입니다. 즉, 예수님의 나심(發生)은 끊임없는 연속이며 완성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안 계신 때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인데, 하나님께서 계신 그때에 예수님도 계신 것입니다. 영원부터 계시고 안 계신 때가 없습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시작도 없고 끝이 없으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영원히 나오십니다(발출(發出:Procession), 요15:26; 요16:7; 롬8:9; 갈4:6). 성부께로부터 나오시고(發出), 또 성자께로부터 나오시고(發出), 또한 영원히 나오시는데, 어떻게 나오시는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그저 나오신 것이며, 영원히 나오시는 것입니다. 전에 나오신 것도 항상 계속 되면서도 항상 완료된 실존 역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입니다.
위(位)가 셋이라는 것입니다. 위가 셋인데 성부께로부터 성자가 영으로 나시고, 또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성령이 영으로 나오십니다. 그럼 성자와 성령이 계시지 않는 때가 있습니까? 계시지 않는 때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때가 없는 것처럼 성자도 없는 때가 없고, 성령도 없는 때가 없습니다. 성자가 성부께로부터 영원히 나시고, 성령이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영원히 나오시는 실존 역사이기 때문에 영원히 계시며 무시무종(無始無終)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잠언 8장 22-25절에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라고 했는데, 이미 났다고 하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산과 언덕과 바다가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란 그리스도께서 났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났다는 것입니다. 

잠언 8장 26-30절에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 창조하실 때에 창조자가 되셔서 날마다 그 기뻐한바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셨으며 하나님 앞에서 창세전에, 만물 창조하기 전부터 이미 계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예수님께서, 아들의 영으로서 계시다가 만물을 창조할 때는 만물을 다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인성과 신성이 결합되어 한 위가 되신 성자 예수님

그런데 그 영으로 나신 그리스도의 영이 동정녀 마리아의 복중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으시고서, 그리스도가 인성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영영부터 계신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마리아의 복중에 완전한 사람으로서 오셨습니다. 

영혼과 육신이 있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영혼과 육신이 있는 사람인데,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와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인성과 신성이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로 결합(結合)이 되어서 한 위가 되었습니다. 인성과 신성이 완전히 결합이 되어서 한 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성과 신성이 섞인 것도 아니고, 혼합도 아니고, 연합도 아니며, 가를 수도 없고, 또 그 중간도 아니고,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입니다. 절대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를 이뤘기 때문에 갈라놓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 중간도 아니고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이 되어서 하나의 ‘위’가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위’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과 육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에게는 예수 믿을 때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왔으므로 육신과 영혼과 그리스도의 영이 속에 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육신과 영혼과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 있고, 우리 믿는 사람 속에도 영혼과 육신과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예수님은 다릅니다. 뭐가 다른가 하면, 사람은 언제나 사람이고, 사람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대로 따로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와 계시지만 따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고 사람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영이 속에 들어가서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체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요,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믿는 사람 속에 들어와 있지만, 언제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될 수 없고 내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와 계신다고 했으니까 자기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고, 예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 속에는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계신다고 하였고, 들어와 계시니까 “나는 그리스도다”, “난 하나님이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별하지 못하면 자기가 예수라고 하고, 예수의 대리인을 샀다고 하고, 감람나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님과 같이 된 것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이 되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들어와 계신 그리스도의 영은 연합(聯合)이지 결합이 아닙니다. 하나가 아닙니다. 둘입니다. 인성은 인성대로 있고, 하나님의 신성은 신성대로 있습니다. 하나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거짓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창조자 예수님

본문 16절에,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되되었고”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시고 그리스도는 창조자이십니다. 창조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창조를 계획하시고 섭리하시고 그 주장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창조되었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 다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고, 땅에 있는 것도 다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고 보이는 것들 다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라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도 다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보좌들도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고 정사, 권세, 주관, 이것 다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는데 이것은 특별히 천사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천사의 권세, 천사의 보좌, 주관하는 세력들, 정사, 권세, 마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마귀는 영원 자존자가 아닙니다. 영원 자존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천사들을 창조하셨는데, 본래 선한 천사였던 사탄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다가 하나님께 심판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된 것입니다(겔 28:13-17, 벧후 2:4참조). 마귀도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는데 왜 가만 두는가? 그것은 마귀를 통해서 구속 사업에 이용하고, 마귀를 통해서 성도를 연단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완성시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다 이용당하고 난 뒤 마귀는 불구덩이에 던져집니다. 마귀가 없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 사업을 완성시킬 수 있지 않았습니까? 또 마귀가 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안 따먹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인류가 안 따먹었으면 불완전한 인간으로 에덴동산에 살게 되고 범죄 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담은 범죄 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사람이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악과 따먹은 다음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다시 범죄할 수 없는 생명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범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중생한 영혼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아담의 영혼보다 훨씬 낳습니다. 이러한 구속의 축복을 주시려고 마귀를 하나님께서 이용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를 하나님께서 이용하면 범죄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범죄할 책임은 하나님께 없습니다. 책임은 마귀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기 때문에 털끝만큼도 악을 용납할 수 없고 털끝만큼도 악을 낼 수가 없습니다. 털끝만큼의 악도 하나님께서는 용납 못하십니다. 마귀가 교만해지고 악하여져서 쫓겨나고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하나님께서 내셨지만 하나님께 책임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책임이 없으십니다.
마귀에게 책임입니다. 모든 천사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고 마귀까지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본문 16절 하반 절에,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만물이 다 그를 위해서 창조되었다, 천사나 마귀까지도 그를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를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우주 만물은 하나님을 위하는 세계이며 사람을 위한 세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모든 만민이 창조되었고,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고 예수님 믿는 사람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믿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감사해서 믿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는,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와 함께 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세로부터 만물을 보호하지 않으시면 만물이 즉시 멸망합니다. 만물을 다 그리스도께서 보호하여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고 파괴되지 않습니다. 만물이 다 그리스도의 주장아래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만물과 함께 계시고, 만물 안에 내재(內在)하시고, 만물을 초월하여 계십니다.

3.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
교회의 머리요, 만물의 으뜸 되신 예수님

본문 18절에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며, 몸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만물 위에 있습니다. “그는 근본이요”란 예수님이 모든 것의 근본으로서, 창조의 근본, 생명의 근본, 빛의 근본이라는 말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란 ‘예수님은 부활하신 자’라는말입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란 만물을 정복하신 예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 만물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자기 백성과 만물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 즉 머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아버지의 것이 충만하게 거함

본문 19절에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이란 하나님의 속성의 충만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진실과 의와 선과 지혜와 지식과 능력 등이, 예수님 안에 충만히 거하십니다. 즉 예수님 안에 아버지의 것이 충만하게 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 아버지의 의,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와 지식, 선, 진실, 불변성, 무한성, 독립성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충만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충만으로 만물을 지배하고 자기 백성과 만물을 구속하십니다.

4.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신 예수님

본문 20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화목을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즉 전에 하나님과 막혔던 죄악의 담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다 헐으시므로,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본문 21절에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자라는 말입니다.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본문 22절에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뿐 아니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본문 23절에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란 믿음에 거하고 굳게 서라는 말입니다. 즉 흔들리지 말라는 말이고, 복음의 소망을 가지고 나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리하리라”고 하였는데, “그리하리라”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고 하였는데,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었고, 바울은 복음의 일군이 되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