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확립을 위한 노력
골로새서 2:1-8
골로새서 2:1-8
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2:1 나는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2:2 이는 그들이 사랑 가운데 연합하여 마음에 위로를 얻고 깨달음에서 오는 넘치는 확신에 이르며,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
2:3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2:4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2:5 내가 비록 육신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질서 있게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의 믿음이 굳건한 것을 보고 기뻐한다.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것처럼,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가라.
2:7 너희는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입으며, 가르침을 받은대로 믿음 안에 굳게서서 감사가 넘치게 하여라.
2:8 아무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적 원리들을 따른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다.
2:2 이는 그들이 사랑 가운데 연합하여 마음에 위로를 얻고 깨달음에서 오는 넘치는 확신에 이르며,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
2:3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2:4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2:5 내가 비록 육신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질서 있게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의 믿음이 굳건한 것을 보고 기뻐한다.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것처럼,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가라.
2:7 너희는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입으며, 가르침을 받은대로 믿음 안에 굳게서서 감사가 넘치게 하여라.
2:8 아무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적 원리들을 따른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다.
1.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 힘을 쓴 바울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한 노력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한 노력
본문 1절에,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라오디게아 교회와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은 얼굴도 보지 못했으나, 그들을 위해 힘을 많이 썼습니다.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하였는데, 사도바울은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한 여러 곳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신앙이 잘되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그들의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기도해주면서 힘을 씁니다. 우리가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국내에 있는 못 본 성도가 많지만, 특히 외국에 있는 성도들, 선교사들 가서 선교하는 지방에 있는 보지 못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들의 신앙을 위해서 힘쓰는 일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중국에 있는 성도들, 또 구소련에 있는 성도들, 일본에 있는 성도들, 미국에 있는 성도들, 또 호주에 있는 성도들, 우리가 선교사를 보내서, 보지 못한 성도들의 신앙을 길러나가는 중에 있는데,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위해서 힘을 많이 써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위안과 사랑의 연합을 위한 노력
본문 2절에,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는’이라고 하면서 이유를 말합니다. 보지 못한 성도를 위해서 힘쓰는 이유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하려 함입니다. 그리스도를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 보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해,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서 힘쓴다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을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피땀을 흘리고 거기에 진액을 짜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적으로 해야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위에서 세워지고, 교역자의 피땀과 진액 위에 서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이지 않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피땀을 흘렸습니다. 교인들이 위안을 받게 하는 것이 첫째라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환란 가운데 있더라도 은혜를 받으면 마음의 위로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깨달으면 위안이 오고, 은혜를 받으면 마음의 위로가 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은혜를 나눠주려고 바울이 갈 때에는 은혜의 보따리를 싸가지고 간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장 11-12절에,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고 했는데, 바울이 가서 너희에게 나눠주면 너희와 내가 함께 안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차 은혜의 보따리를 싸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성도가 서로 연결돼야만 큰 성전이 지어져나간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21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라고 했습니다. 사도신경에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구절이 있는데, 성도가 서로 연락되고 신앙의 교제를 하고 서로 연결됨으로 하나님의 큰 성전이 지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커지는 것만큼 멀리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합해야 멀리까지 진리가 전파돼 나간다는 말입니다. 연합이 되지 못하면 힘이 없습니다. 멀리까지 나가지 못합니다.
진리 면에서 원만한 이해와 부요에 이르는 노력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신앙생활이라는 건 이면도 깨닫고, 다른 면도 깨닫고, 원만하게 모든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깨닫지 못한 게 있다고 하면 성격이 바로 되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18장 25-26절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한 자요 학문이 많은 사람으로서, 구약성경을 가지고 와서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들어보니까 열심히 가르치긴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볼로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대학자인 아볼로를 모셔서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알려드렸다는 말입니다. 실력은 아볼로에게 못 미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뒤에 아볼로는 원만한 이해가 됐습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브리스길라가 아볼로의 아랫사람이지만, 아볼로는 자기가 아직도 알지 못하던 내용을 브리스길라에게서 배워서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잘 전했습니다. 사도바울이 후에 아볼로를 동역자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여 예수를 믿는 진리 면에 있어서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도록 아직도 배우지 못한 면을 배워야 합니다. 깨닫지 못한 면을 깨달아야 하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던 면을 이해해야 하고, 아직도 개척하지 못한 진리를 개척해야 하고, 원만한 진리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로새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에 바울이 가지는 않았지만, 바울이 갖고 있는 진리를 가서 말해주어야겠다는 말입니다. 골로새교회가 에바브라에게 배웠는데, 물론 에바브라가 가진 진리가 바울이 가진 진리와 어느 정도 같습니다. 그래도 에바브라에게 없는 것이 바울에게 또한 있습니다. 좀 더 깊은 진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진리를 보충시켜줘야 원만한 진리에 대한 이해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이 진리를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고 애를 쓰고, 은혜를 전해주려고 바울이 항상 힘쓰고 수고하고 애썼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면이 아직도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것을 가서 나눠주고 보충을 시켜주면, 그 사람들이 원만한 지혜의 모든 이해에 이르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기독교 회의하는 곳을 참석해보면, 거기서도 물론 진리에 대하여 논의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못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려줘서 보충을 시켜주면 그 사람들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국제회의 같은데 혹시 참여하게 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그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까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것을 가르쳐준다고 대접이 달라집니다. 물론 그 즉시로 알아듣고 바로 서는 경우도 있지만 100% 효과 보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가서 진리에 대한 바른 것을 말해주면, 그들이 모르던 것을 좀 더 넓게 알게 됩니다.
2.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지혜, 지식, 보화
영생의 지혜, 지식임
본문 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했는데, ‘그 안’은 그리스도 안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무엇이 감추어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도 있고, 지식도 있고, 보화가 감추어 있습니다.
제가 소년 시절에 이 성경을 읽고, 예수 안에 지혜와 지식이 다 있으니깐 예수만 잘 믿으면 다른 건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영어공부 하다가 힘이 드니깐 공부하는 건 힘을 좀 안 썼습니다. “다 이거이 예수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 있으면 다 들어가니깐 영어 공부 할 필요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얼마동안 공부 안하다가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 지혜와 지식은 영적 지혜와 지식인데, 영적인 것을 모르고 육신의 지혜와 지식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할 필요 없다’이렇게 생각하고 잘못 깨닫고 공부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는 육신의 지혜와 지식이 있는 게 아니고, 영적지혜와 지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영적 지혜와 지식이 있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아는 지혜,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 또한 우리 사람의 영혼을 아는 지혜와 지식, 구원받는 지혜와 지식, 자라나는 지혜와 지식, 신령한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천당을 알고, 지옥을 알고, 성령의 역사도 알고, 마귀 역사도 알고, 모든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하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도 알게 되고, 성경도 알게 되고, 내세도 알게 되고, 천당과 지옥도 알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그 지혜와 지식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그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세도 모르고, 심판도 모르고, 천당과 지옥도 모르고, 자기 영도 모르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다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을 점 점 더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고, 성령을 알게 되고, 하늘나라, 지옥, 심판, 또 복 받는 길, 화 받는 길, 망하는 길, 영생 길, 다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영생 길이, 영생하는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궁무진한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만큼 소유하게 됨
보화와 지식이 감추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 보화와 지혜와 지식이 감추어 있는데 그걸 발견해서 자기 소유로 삼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 보화가 많이 있다는 말이고, 지식도 가득 있고, 또 지혜도 가득 있습니다. 광산에 금강석이 가득 나오는 것과 같이 캐면 나오고, 캐면 또 있고, 또 있고, 계속 캐 들어가면 또 있다는 말입니다. 보화가 계속 있습니다.
얼마를 캐내면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더 있습니다. 그 보화를 좀 더 캐내면 계속 더 있습니다. 캐내면 더 있고, 캐내면 더 있고, 캐내면 더 있고, 무궁무진하게 그리스도 안에 보화가 감추어 있습니다. 무궁(無窮)이라는 뜻은 한정 없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진(無盡), 즉, 끊어짐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는 한정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궁무진한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보화를 발견하고, 그 다음에 즐거워하고, 그 보화로 자기가 부자 되고, 그 보화로 생명을 얻고, 그 보화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는 얼마나 있다고 했습니까? 얼마나 감추어 있습니까? 무궁무진하게 감추어 있다는 말입니다. 보화를 한 가마니 발견한 사람은 그만큼 보화가 있고, 두 가마니 발견한 사람은 또 보화가 그만큼 있고, 세 가마니 발견한 사람, 다섯 가마니 발견한 사람, 일곱 가마니 캐낸 사람, 열 가마니 캐낸 사람, 스무 가마니 캐낸
사람, 이렇게 계속 캐내도 계속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캐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를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 얼마입니까?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건 자기가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교회 목사가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교회의 교인도 가질 수 있습니다. 목사가 많이 발견하고 많이 캐낸 목사는 교인들에게 다 나눠주니까, 그만큼 부자가 되고,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도하는 목사에게 인도받는 교인들은 보화가 없습니다. 조금 발견한 사람은 보화가 조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보화를 많이 발견하고, 많이 캐내서 많이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지혜, 신령한 지혜, 신령한 지식도 그리스도 안에 무궁무진하게 있는데, 그것도 자기가 발견해서 자기 소유로 삼는 것만큼 자기 것이 됩니다.
3. 믿음으로 규모를 잘 지킬 것
본문 4절에,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공교한 말로, 꾸민 말로, 공교하게 묘하게 꾸며가지고 사람을 속이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나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교역자들도 많습니다. 그런 자들이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5절에,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육신으로는 떠나 있다고 했는데, 지금 육신으로 어디 있습니까? 바울이 육신으로는 감옥에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골로새 교인하고 떠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라고 했는데, 심령으로는 언제나 교인들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혔지만 심령으로는 저희와 함께 있어, 저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 규모’라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대로 믿음 지키는 것이 규모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규모를 잘 지키고, 믿음이 굳세다는 말입니다. 규모 잘 지킨다는 것은, 성경대로 모든 것을 다 바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 늦지 않는 것도 규모 지키는 것입니다. 늦어지는 건 규모 못 지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주일학교 늦어지고, 이따금 주일학교 빠지고, 예배시간 늦어지는 것은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규모를 지키는 것은 믿음을 잘 지켜서 모든 면에 결함이 없이 원만하게 모든 것을 잘해나가는 것입니다. 원리 원칙대로, 법칙대고, 성경대로, 모든 면을 규모에 어긋남이 없이 잘 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규모대로 잘하고, 교회 생활도 규모대로 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규모대로 잘하고, 모든 것을 규모대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규모를 안 지키는 것은 신앙을 안 지키는 것입니다. 규모를 지켜야 됩니다. 예배시간 늦어지는 것은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빠지는 것도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믿음이 굳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이겨나간 모양입니다. 그것을 바울이 기쁘게 보았습니다.
4. 말씀에 굳게 서라
예수 안에 뿌리를 박을 것
본문 6-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예수님을 주로 받은 성도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고,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고 했는데, 예수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말입니다. 뿌리를 박아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그 안에서 살고, 그 다음에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 말씀을 배운대로, 믿음에, 즉, 말씀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또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것입니다. 곡식이 뿌리를 박아야 살지 않습니까?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박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를 힘입어 살라는 것입니다.
‘세움을 입어’라고 했습니다. 세움을 입으라는 말은,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이제는 견고히 서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교훈을 받은 대로 말씀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감사하는 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감사하는 생활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은 사람은 항상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철학과 속임수에 속지 말 것
본문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철학으로 속이는데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철학자들 중에 노스틱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물질은 다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노스틱주의자들은 물질 개혁자들입니다. ‘물질은 악하다. 그러므로 육신도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만 선하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육신은 악하다고 주장하기에 육신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성경에 물질을 하나님이 창조해놓고 선하다고 하였습니까? 악하다고 하였습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을 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육신이 악한 게 아닙니다. 육신의 부패성과 죄가 악한 것이지 육신이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요새도 여러 가지 철학들이 많이 있는데, 그 철학은 사람들의 교훈입니다. 사람이 지어낸 것이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닙니다. 철학이란 사람이 연구하고 만들어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철학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철학은 사람들이 다 연구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준 것, 하나님이 알게 해주신 것이고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들의 유전, 율법주의자들, 할례주의자들의 주장은 사람의 유전이라는 것을 알고, 철학과 헛된 속임으로 우리를 노략할까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 좇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초등학문이라는 건 유치원 때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학년 들어가기 전에 초보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초등학문은 원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세상 율법이나, 유전이나, 철학이나, 이런 것을 좋아서 좇아가는 건 다 초등학문을 좇는 것입니다. 아직도 신앙의 근본인, 영적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신신학자들도 성경에 철학을 이용하였습니다. 이런 것은 다 초등학문입니다. 아직도 원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초등학문을 좇으며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했는데, 철학을 좇는 신신학자들은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초등학문인 철학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사회주의, 공산주의, 기독교 안에 있는 신신학자들은 전부 다 초등학문을 좇아가는 것이며, 참 신앙에, 영적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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