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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8:1-22 빌닷의 첫 번째 논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빌닷의 첫 번째 논술
욥기 8:1-22

1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2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3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4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5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6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7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8청컨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찌어다 9(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10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발하지 아니하겠느냐 11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 12이런 것은 푸르러도 아직 벨 때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찌기 마르느니라 13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14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15그 집을 의지할찌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잡아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16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뻗어가며 17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찌라도 18그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19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고 그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20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21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22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1. 빌닷이 욥의 자녀들이 죄로 말미암아 사망했다고 함

빌닷이 보편적인 진리를 들어 욥의 상황을 잘못 해석함

본문 1절에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욥의 세 친구 가운데 빌닷이라는 사람이 말하게 되었습니다. 먼저는 엘리바스가 말했습니다. 욥기 4장에서는 욥의 친구 가운데 엘리바스라는 사람이 말을 했고, 여기 8장에서는 욥의 친구 가운데 빌닷이라는 사람이 말을 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빌닷이 욥이 말하는 것에 대해 합당치 않게 생각해서,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느냐, 또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광풍이라는 것은 미친바람인데, 거칠고 사나우며 방향이 없는 바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욥의 말이 거칠고 방향이 없고 쓸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욥이 온당치 않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네가 그런 합당치 않고 거칠고 방향 없는 말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말은 다 그런 말 뿐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굽게 하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굽게 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공의를 바로 시행하시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 심판 받는 것을 보면, 네게 심판 받을 만한 죄가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심판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실 때에 굽게 하시는 법이 없고, 하나님의 공의를 굽게 하시는 법이 없으신데, 네가 지금 여러 가지 재앙, 환난을 받는 것은 반드시 네게 환난 받을 만한 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빌닷은 지금 그래서 욥이 환난을 받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언제나 굽게 하지 않으시고, 공의도 굽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굽게 하실리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공의가 굽게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빌닷이 하는 말이 옳은 말이지만, 그는 일방적인 것만 생각 하고 있습니다. 빌닷의 말한 내용은 욥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왜 해당되지 않느냐 하면, 욥은 죄가 있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연단시키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렇게 여러 가지 시험과 큰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빌닷이 깨닫지 못하고, 지금 보편적인 원리만 들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굽게 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굽게 될 리가 없습니다. 빌닷은 여기에 근거해서 욥이 이렇게 환난을 당하는 것은 마땅히 원인이 있어서 당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원리로 보면 하나님께서 공의를 굽게 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굽게 하지 않으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욥에 대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원리로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욥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욥을 사랑해서, 연단시켜서 더 좋은 욥을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재앙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빌닷은 일반적인 진리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편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다른 면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빌닷은 죄 때문에 징벌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나가는 그 면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죄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시험과 고난을 주셔서 더 좋은 욥을 만드시려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원리는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닷의 말은 원칙적인 진리이지만, 어느 정도만 깨닫고 나온 말입니다. 좀 더 깊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욥은 좀 더 깊은 세계에서 이렇게 시험과 재난을 당하고 있는데, 빌닷은 그 깊은 세계의 뜻은 모르고 죄가 있어서 심판 받는 것만 알았습니다. 그것도 진리는 진리입니다. 

진리를 깊이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진리를 깊이 깨달은 사람을 보고 이렇게 공격할 수 있습니다. 또 진리의 한 편만 깨달은 사람이 다른 면은 깨닫지 못하여, 그 면에서 지금 시련을 받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 받고 있는 사람을 도리어 정죄하고 괴롭게 하는 수가 있습니다. 위로하는 대신에, 도리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자리에 빠지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은 그들이 주께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을 합니다. 이것도 빌닷의 잘못입니다. 욥의 자녀가 죽은 것은 그 자녀들의 죄 값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연단시키시려고 자녀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욥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오묘한 섭리, 그 깊은 섭리를 욥의 친구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 그 세계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얕은 생각으로, 또 자신이 깨달은 얕은 진리대로 무조건 욥을 범죄자로 몰아세우고, 욥의 자녀들을 범죄자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욥이 당하는 지금의 이 고난은 다른 사람들이 깨닫고 경험하는, 그런 세계에서의 일이 아닙니다. 진리 면에서도 이렇게 얕게 깨달은 사람, 진리를 초보적으로 깨달은 사람은 좀 더 깊은 세계에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와 같이 정죄하고, 괴롭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2. 빌닷이 욥을 권면함

본문 5-7절에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빌닷이 욥을 권면합니다. 지금 이 권면은 바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환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부지런히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무엇을 그저 달라고 하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이 다른 무엇보다, 모든 것보다 더 귀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같이 하시면, 다른 것도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에 다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결하고 정직하면’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또 ‘정직하면’이라고 하였는데, 신앙 양심을 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때 정녕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또 ‘네가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빌닷이 욥에게 네가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하였지만 얼마 안 가서 그 결과는 심히 창대할 것 것이라고 권면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빌닷의 이 권면도 욥이 당한 환난이 욥의 어떠한 부정 때문인 것으로 간주하고 하는 것입니다. 욥이 죄가 있어서 이런 환난을 당하는 줄 알고 이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지금 욥은 죄가 있어서 환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빌닷의 이 권면이 욥에게 큰 유익이 된 것 같습니다. 

빌닷은 욥에게 “네가 지금 환난과 재난을 당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재난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여 전능하신 이를 찾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 하나님 앞에 빌고, 또 청결한 마음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의로운 길을 걸어가면 네 집으로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가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하였어도 나중에는 심히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권면해주었습니다.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그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빌닷의 이러한 권면은 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잘 권면한 것입니다. 

3.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우라

옛 시대 사람에게 물어보고,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우라

본문 8-9절에 “청컨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찌어다(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빌닷이 욥에게 “너는 네가 독자적으로 잘했다고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나이도 아직 젊었고 경험한 바가 많지도 않은데, 네가 아는 것이 다 바로 된 것이 아니니, 옛 시대 사람에게 물어보며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다’는 것은 인생의 일생이 짧다는 뜻입니다. 출생한 것이 몇 십 년 되었다고 할지라도 어제와 같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죽는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고 하였는데, 지식이 망매(茫昧)하다는 것은 흐리멍덩하고 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지식은 다 망매하고 흐리멍덩하며 둔하다는 것입니다. 이 넓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닷은 욥을 보고, 네가 아는 것이 지식이 망매한데, 네가 아는 것만 가지고 고집하지 말고, 열조에게 배우라고 권면해주는 것입니다. 옛 시대 사람에게 물어보고,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것도 빌닷이 잘 말한 것입니다. 

부지런히 배우며 고치는 자는 희망이 있음

옛 세대에게 배우며,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우라는 것이 좋은 권면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다 건설해놓은 것입니다. 연구해놓은 결과들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터전 위에 오늘날 현대를 건설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열조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무시하려고 하면 아주 큰 잘못입니다. 물론 열조가 이루어 놓은 것 가운데서 잘못된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옳은 것, 터득해서 연구해놓은 바른 것들은 우리가 배워야 하겠습니다. 배우는 것이 귀합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부지런히 배워서 고치는 사람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배우고 고쳐야 합니다. 고치지 않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이번 주일날 박 목사가 저보고 오후에 만나서, 창광 교회에서 말한 것 중에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는데, 저에게 가서 시정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지난 주일날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하고’에서 ‘사신 주’를 ‘살아계신 주님’이라고 본인이 말했는데, 그 다음에 알고 보니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자신이 살아계신 주님이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창광 교회 교인들에게 ‘피로 값 주고 산 주님’으로 시정해서 전달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답변하기를, 목사님이 잘못된 줄 알았고, 또 고치려고 하니 벌써 바로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고치려고 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열 번을 잘못해도, 고치려고 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아흔 아홉 가지를 잘했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를 못 고치면 망하고 맙니다. 또 만 가지 가운데 9,999를 다 잘했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한 가지를 그냥 놔두고 고치지 않는 사람은 망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발견할 때마다 고치는 사람은 희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잘못할 수가 있는데, 부지런히 고치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그렇게 고친다고 하니 참 좋다고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해서 고쳐나가면 누구든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우려고 하고 고치려고 하고 인도를 받으려고 하고 바른 것을 찾으려고 하면, 아무리 지금은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앞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단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자꾸 고치려고 하면 그 사람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단으로 나갔더라도 그것이 잘못되었으니 “이렇게 고쳐라”라고 할 때에 “예”하고 고치고, 또 “저렇게 고쳐라”라고 할 때에 “예”하고 고치면, 어느덧 이단이 정통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나 고치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잘했다고 해서 외고집으로 나가는 것인데, 지금은 잘되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부러질 날이 옵니다. 사람이 만 가지, 십만 가지를 다 바로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나가다가 실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 잘했어도 한 번 실수해서 다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안 고치는 사람은 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배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지런히 배우는 사람, 부지런히 고치는 사람은 성자(聖者)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우고, 옛 시대 사람에게 배워서 모든 것을 바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가지만 배워도 사실 굉장히 큰 것입니다. 중요한 것 한 가지 때문에 가다가 탈선되고 망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만 배워도 큰 것입니다. 자기가 연구해서 하려고 하면, 늙어 죽도록 연구해도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연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제가 얘기한 것이 생각나는데, 교역자들 중에 배우지 않고 단지 자기가 연구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항상 가르쳤습니다. 자기가 연구하는 것은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연구한다고 해도 얼마나 하겠습니까? 세월을 통해, 또 많은 연구의 결과로 지금 배울 것들이 많아 쌓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창적인 것도 그 터 위에 부단히 연구하여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축적된 경험과 지식은 배우지 않고 그저 자기가 혼자 독창적으로 해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얼마 가지 못합니다. 또 그런 사람은 과거에 열조가 이루어 놓은 좋은 것들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바로 배우게 된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북에서 이기선 목사님께 성경 배운 것을 감사하고, 또 김의홍 목사님께 말세학 배우게 된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고려 신학교에서 바른 교
리를 배우게 된 것을 감사하고, 김현봉 목사님께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도리, 자기를 만들어나가는 도리 배운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러한 것들이 기초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따라 연구해서 그 위에 조금 이루어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다 열조가 이루어놓은 것들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기초 위에 자신이 연구하며 독창적으로 해나가는 것입니다.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발전시키려고 해도 밑천과 터전이 없어서 어렵습니다. 터전과 밑천이 있어야 거기에서부터 발전을 시켜나갈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난다, 긴다 하여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아직도 인공위성을 발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못합니까? 한국 백성은 아직까지 우주 과학에 대한 기초가 부족합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우수한 머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열조가 이루어놓은 기초가 미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는 일이 잘 안 됩니다. 아직도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은 그 열조가 이루어놓은 과학의 기초가 아주 단단합니다. 많은 것들을 이루어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조가 이루어놓은 기초가 든든해야 하고, 그것을 잘 이용해야만 발전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창조되어나가는 것입니다. 

깨달은 바른 진리를 바탕으로 신앙의 세계를 잘 건설해나가야 함

신앙의 세계도 그와 같습니다. 신앙 세계도 본래부터 바로 배운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거기에서부터 이루어나가는 연구와 발전이 있어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설치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참 한심합니다. 배워야겠는데, 안 배우는 것입니다. 안 배우고 자신이 무엇을 할 것처럼 돌아갑니다. 또 바른 것을 배워야 하는데, 가르쳐주는 것은 안 배우고, 제멋대로 무슨 신비주의, 자유주의 신학, 인본주의, 이런 것들을 배워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집에서 주는 좋은 음식은 안 먹고, 돌아다니면서 무슨 사탕 과자, 인스턴트 같은 음식만 좋다고 먹는 아이와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여간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찌어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발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빌닷이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욥에게 그렇게 말한 목적은 ‘욥, 네가 지금 주장하는 것을 버려라. 네가 주장하는 것을 버리고 이제 내 주장대로 따라오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말은 바른 말입니다. 그러나 빌닷은 지금 욥으로 하여금 그가 바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열조가 주장하고 자기가 주장하는 보편적인 원리, 그것을 따라오라고 말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빌닷의 말이 바른 말이지만, 그 말을 욥에게 한 것은 잘못입니다. 바른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욥의 입장에서 보면, 빌닷의 말을 받아서 옳은 주장을 버리지 말고 받아들이면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운다고 하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빌닷은 욥의 신앙에 손해를 주려고, 즉 욥의 옳은 진리를 포기시키려고 옳은 진리를 내놓으라고 옳은 진리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확실한 진리를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내놓을 수가 없는데, 거기에다 열조의 터득한 것을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가 확실히 깨달은 바른 진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열조가 터득한 것들이 아무리 굉장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바른 진리 깨달은 것을 버리면서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른 진리 깨달은 것을 확실히 붙잡고, 그 다음에 열조의 터득한 것을 잘 배우면 좋습니다. 깨달은 바른 진리를 바탕으로 잘 건설해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4. 악한 자는 뿌리가 뽑히게 됨

악한 자는 결국 망함

본문 11-13절에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 이런 것은 푸르러도 아직 벨 때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찌기 마르느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에서 왕골은 풀 이름입니다. 왕골은 진펄에서 나는 풀입니다. 그리고 진펄은 물이 이따금 생겼다 들어갔다 하는 곳입니다. 마른 땅도 아니고 물도 아닌, 질척질척한 곳입니다. 그 진펄에서 왕골이 난다는 것입니다. 또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라고 하였는데, 갈대는 물이 있는 곳에서 자라는 풀이므로, 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한 사람들이 자라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잘되는 것은 그 뿌리박은 기반이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된다는 것입니다. 왕골이 진펄에서 자라난 것처럼 악한 사람도 진펄이라는 기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대가 물에서 자라는 것처럼 악한 사람도 물이라는 기반이 있습니다. 온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서부터 악한 사람이 득세를 하고, 세력을 쓰며, 성공을 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 사회적인 여건과 기반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악한 사람이 나와서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 그런 여건이 없으면 악한 사람이 성공을 못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대서특필(大書特筆)하면서 ‘어떤 사람이 무슨 큰죄를 지었다. 그래서 무슨 재판을 받는다’, 이렇게 떠드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런 불의한 일을 할 만한 여건이 다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그런 여건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만들어놓은 죄라고 봐야 합니다.
함석헌 씨가 독일에 가서 독일 사람들에게 “너희가 히틀러를 만들었다”라고 책망을 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만 잘못이 아니라 독일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독일 사람들의 심리와 그 사회, 문화가 히틀러를 만들어낼 만한 여건과 조건을 다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왕골이 진펄에 뿌리를 박고 있고, 갈대는 물에 뿌리를 박고 있듯이, 악한 사람은 어떤 환경과 분위기 가운데에서 그것을 악하게 이용을 하여 악으로 성공을 해서 크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이런 것은 푸르러도 아직 벨 때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찌기 마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기한이 되기 전에 벌써 말라버린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자는 자기의 기반과 환경을 잘 이용해서 악으로 크게 성공을 하지만, 기한이 되기 전에 풀이 다 말라버리는 것처럼 다 말라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어떠한 불의한 사람이 크게 성공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모든 환경과 사회적인 조건을 악용해서 그렇게 크게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다른 풀보다 일찍 말라버립니다. 갑자기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아무리 성공한 것 같아도 잠깐뿐입니다. 갑자기 다 망해서 그 다음에는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 이릅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다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곡(邪曲)한 자, 바르지 못한 사람의 소망은 다 그와 같이 일시적인 성공은 해도 가다가 갑자기 망하고 맙니다. 

본문 14절에 “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불의로 성공을 했더라도 결국 그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다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의지하고 사는 것이 다 거미줄과 같아서 바람만 세게 불어도 끊어지고, 우박이나 다른 것이 와도 맥없이 끊어집니다. 그와 같이 악한 사람들은 지금도 거미줄 처럼 사방에다 줄을 쳐놓고 많은 것을 잡아먹을 것처럼 그 조직이나 모든 건설들을 굉장하게 해놓았습니다. 불의로 성공한 어떤 사람들도 굉장한 기업체를 다 만들어놓았습니다. 세계적인 조직망을 만들어놓고, 곳곳에 지사를 설치해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미줄과 같습니다. 그러나 진실하지 못하게, 하나님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불의한 일로 벌여놓은 것들은 거미줄과 같아서 바람만 불어도 갑자기 다 끊어져나갑니다. 다 없어지고 맙니다. 무너지고 보존되지 못합니다. 

본문 15절에 “그 집을 의지할찌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잡아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굳게 잡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보존되지 못합니다. 

본문 16-19절에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뻗어가며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찌라도 그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고 그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식물이 광선을 받아서 푸르게 자라나고, 그 가지가 동산에 뻗치며, 그 뿌리는 돌에 박히고 돌무더기에 서리어 아주 견고하게 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아예 뿌리를 돌짬에다 깊이 박아서 끄떡없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광을 받아서 높이 자라나며 매우 견고하더라도 결국 뽑힌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뽑아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믿음으로 하지 않고, 또 옳게 하지 않고, 덕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바로 하지 않으면, 뿌리가 뽑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본래 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도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뿌리가 박히고 잎이 무성했던 그 자리마저도 찾을 수 없게 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뽑아버리시면, 그 다음에는 그 돌에 가서 다시 뿌리를 붙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다른 것이 흙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몇 십 년 동안 뿌리를 깊이 박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한 번 하나님께서 뽑아버리시면 그 다음에는 거기에 다시 뿌리를 박지 못합니다. 너를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것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허무한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함

세상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뿌리를 아무리 견고히 박아도 하나님 앞에 바로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뽑아버리십니다. 뽑아버리신 다음에는 ‘널 모른다’고 하시며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또 알아주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다른 것이 거기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만사가 지금 그렇지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견고하게 뿌리를 박고, 일광을 받아서 푸르게 올라가고, 가지가 동산에 뻗치고, 말년까지 부동하리만큼 든든히 번창하고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하루아침에 다 뽑아버리시면 그 뒤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정치가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도 자기 기반을 단단히 잡고, 뿌리를 돌짬에 박은 것처럼 견고히 박고, 푸르러서 동산에 뻗치지만, 한 번 뽑힌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사업가들도 그렇습니다. 사업가들도 아무리 자기가 잘하겠다고, 뿌리를 돌짬에 박는 것처럼 견고히 하고, 가지를 뻗으며, 또 거미줄을 치는 것처럼 사방에 쳐서 다 먹고 살 것처럼 모든 것을 잡으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뽑아 버리시면 망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하지 않고, 의에 서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뽑아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허무합니다.

5.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않으심

본문 20-21절에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빌닷이 욥에게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네가 만일 순전 하다고만 하면, 하나님께서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워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낙심하지 말고 네가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순전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빌닷이 욥에게 믿음에 서서 순전한 사람이 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네가 회개하지 않고 악한 길로 그냥 나가면, 하나님께서 너를 붙들어 주지 않으실 것이다. 네가 악을 버리고 순전한 가운데 선다고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를 붙들어주시고 또 웃음으로 네 입에 채우게 해주시고,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워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회개하고 바로 서면, 즉 악을 떠나서 순전한 데에 서면 하나님께서 너를 붙들어주실 것이며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고, 웃음을 네 입에 채워주실 것이며, 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워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닷이 마지막으로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고 하면서 악인의 장막은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욥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우리도 모든 죄를 회개하고, 순전한 믿음에 서야 되겠습니다. 순전한 믿음에 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웃음으로 그 입에 채워주시고, 즐거움으로 그 입술에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앞길을 형통하게, 창성하게 해주실 것입니다.